마네킹 / 박미림
유리질의 아침
햇살이 아닌 불빛이 주사바늘처럼 꽂히는
여기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어
진지하지 못한 시선을 마주대하는 것이
가장 큰 곤혹이야
그냥 주저앉고 싶을 때가 많아
하루종일 내 옷이 아닌 타인의 옷을 걸치고
유리벽을 통해 풍겨오는 세상의 상한 냄새를 맡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지
나는 뜨거운 피가 돌지 않는 여자라고?
생명을 빚을 갈비뼈도 없고
머리는 가발인데다가
노예근성만 남았다고?
이렇게 박제처럼 있다보니
속도 자존심도 없는 줄 아나봐
내가 더 안쓰럽고 측은한 눈으로
너희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아
이쪽에서도 너희들 속이 훤히 다 보이거든
가슴이 바위처럼 굳어져 있거나
바람의 터널처럼 휑 비어 있어
그걸 가리기 위해
갖가지 옷을 사들이는 것 아니겠어
다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있었을 뿐이야
왜?
나도 너희들 구경하는 것이 즐겁거든
-두 번째 시집 『마네킹』 (2004) 마네킹 전문 산맥출판사
첫댓글 어느 장소에서 이 작품을 낭독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실상은 오래전에 쓴 작품들이 순수했던 것을 요즘 와서 많이 깨칩니다.저도 요즘 쓴 것들은 순수하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고 무슨 멋을 부리는지... 도무지고운 시향에 젖어갑니다.
마네킹한테 사람이 뒤통수 한 방 제대로 맞았네요 ㅎㅎ
진지하지 못한 시선내 옷어쩌라구 셀러리멘 아닌 사람 어딨어우리는 감정노동자같이 어쩌면 반평생 마네킹인지도 몰라.그 영혼이 털리긴 터는 놈이나 털리는 마네킹이나 이 건조한 세상은 대체 누가 만든거야지금도 마네킹을 계속 만들어 내는 이 곳에너무 빤한 속물로 살고 있는 건 피장파장 너나 마네킹이나. 잘 감상했습니다
첫댓글 어느 장소에서 이 작품을 낭독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실상은 오래전에 쓴 작품들이 순수했던 것을 요즘 와서 많이 깨칩니다.
저도 요즘 쓴 것들은 순수하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고 무슨 멋을 부리는지... 도무지
고운 시향에 젖어갑니다.
마네킹한테 사람이 뒤통수 한 방 제대로 맞았네요 ㅎㅎ
진지하지 못한 시선
내 옷
어쩌라구 셀러리멘 아닌 사람 어딨어
우리는 감정노동자같이 어쩌면 반평생 마네킹인지도 몰라.
그 영혼이 털리긴 터는 놈이나 털리는 마네킹이나 이 건조한 세상은 대체 누가 만든거야
지금도 마네킹을 계속 만들어 내는 이 곳에
너무 빤한 속물로 살고 있는 건
피장파장 너나 마네킹이나. 잘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