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나이에 박사 학위 공부를 한다고 목요일 논문 발표가 있었다. 그동안 준비한다고 쌓인 스트레스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미루었던 사무실 일 때문에 갔다 곧바로 돌아와 토요일 경산 문인협회 행사 준비를 위해 국장님과 같이 준비물 체크 및 개별포장 등을 준비하고 집으로 돌아와 쉬었다.
문제는 그동안 육체적으로 논문 압박에 대한 스트레스와 긴장감에서 벗어났으나 정신적으로 공황 상태라서 그런지 이날 밤 잠이 오지 않아 단 1분도 못 자고 행사를 위해 출발했다. 이제까지 살면서 커피를 마셨거나 더러 잠이 오지 않더라도 새벽 4~5시가 되면 깜빡 잠이 들어 1~2시간만 자도 큰 문제가 없었는데 이날 평생 처음 올나이트를 하고 경산 문인협회 행사에 가이드로 가지 않을 수 없어 나섰다.
이것도 평소 같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그동안 누적된 스트레스와 압박감에다 기관지확장증이 재발해 잠을 한숨도 못 자고 안내하잖니? 죽을 맛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거의 다 계획을 짜고 안내해야 하는 마당에 실수할 수 없어 몸이 비록 말이 아니지만 참가했다. 그렇다고 아프다는 핑계로 가만히 있지는 못하고 오히려 더 활발하게 이것저것 챙기고 안내한다고 진땀 솟았다.
비록 몸은 망가지고 잠마저 못 자 엉망진창이지만 타인에게 그렇게 비추어지는 것이 예의가 아니기에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며 억지로 하루를 버티었다. 그래도 그동안 내가 몇 번 답사하고 나름 준비한 자료와 지식이 있었기에 문인협회 사람들에게 신선한 여행코스와 색다른 문학기행을 선사할 수 있었든 같아 보람되고 자부심마저 느꼈다. 그간 패턴을 보면 주로 문학기행이란 으레 문학관 중심으로 별 볼거리 느낄 거리 없는 형식적 코스였다면 요번은 비록 어쩔 수 없어 문학관 두 코스는 연결되었지만 나름 색다르게 의령 氣 받기 관광코스를 추가한 점이다.
참가한 30여 명 중에 몇 명은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 잘 모르고 있고, 알아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의령이 부자 동네인지 풍수지리학적, 경제사적 의미를 듣고 확인해 볼 기회는 거의 없었기에 다들 신기해했다. 그 전초전으로 솥바위(鼎巖) 현장에서 안내했지만 별 실감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舊지수초등학교에 있는 k-기업가정신센터와 승산마을을 안내받으며 모두 놀라워했다. 풍수나 명리 등 강호 동양학에 대하여 신뢰나 관심이 없었던 분들이라도 놀라운 통계와 현실 앞에서 믿기 어렵다며 다들 신기해했다.
나름 논리와 역사 지식을 갖고 풀이하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면이 없지는 않으나 여전히 서양 과학만을 추종하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미신적 전설적 이야기는 믿기도 어렵고 인정하기도 싫은 분위기였을 것이다. 누가 봐도 논리적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실이라 다소 혼란스러웠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보이는 것만 진실이고 과학이 아닌 것이 너무나 많은 인간 세상에 여전히 보고 듣고 배워온 것만을 믿는 현대인에게는 어쩔 수 없지 않나 싶다.
세대별로 이런 문학기행에 대한 기대와 의미가 다 달랐다. 연세가 많고 이것저것 다 경험해 본 노인층에는 주로 맛 기행이나 장소의 상징성만 관심을 두고, 아직 젊고 호기심은 많은 젊은 세대에게는 거리가 멀더라도 새롭고 배울만한 것에 가치와 의미를 두기에 조화를 이루기가 힘들다. 그렇지만 장강의 물은 언제나 앞 물을 밀어내듯 흐르는 세월과 흐름은 어쩔 수 없다는 것 실감해보며 새삼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인생무상과 허무함을 느껴본다.
승산마을에서 가이드의 자세한 능성 구씨, 김해 허씨 가문에 관한 이야기와 지수초등학교에서 k-기업가정신센터에서 한국 기업 역사와 정신을 자세히 안내받았다. 기업의 역사를 보니 먹고 사는 문제가 얼마나 큰 문제이고 의미 있는 일인지를 이런 企業史를 통해 확인해 볼 좋은 기회였지 싶다. 단체 손님이라 마땅하게 점심 장소는 의령 메밀국수, 또는 진주냉면이 제격이나 대형차로 주차와 단체 손님을 받을 만한 규모와 서비스가 바탕이 되어야 함에 고심 끝에 진주지점에 근무할 시 알아 놓은 성지원으로 정했다.
메뉴는 거의 다 삼계탕으로 별 특색은 없었지만, 장소가 대형 예식장 급 복합공간으로 단체 손님을 받기에 적합해 사전 답사도 없이 전화로 예약해 다행히 별도의 공간으로 안내되어 도착하자 곧바로 식사할 수 있어 시간상으로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삼계탕 맛은 보통 정도였으나 갈비탕은 전공이 아니라서 그런지 별로였다고 한다. 대형 음식점이라 단체 손님에 맞게 잘 준비되어 그런대로 괜찮았다고 본다.
다음은 문학기행 답사 필수코스인 하동의 이병주 문학관과 토지의 박경리 문학관을 답사했다. 이병주 문학관은 외딴곳에 특별히 문학과 관련이 없으면 가기 힘든 곳이라 대부분 사람이 가보지 않는 곳이라 그저 한 번 방문해 작가의 삶과 문학에 대해 직접 확인해 볼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이병주 작가님의 출신이 이곳 하동 북천역 근처라 마침 하동에서 閉 驛舍인 북평역은 코스모스와 메밀꽃 단지로 유명한데 지금은 개량 양귀비꽃과 안개꽃 유채꽃으로 채워져 관광객이 다소 보였다. 이곳 이병주 문학관까지 올라오는 관광객은 없고 대부분 폐역 주변 공원 중심이지만 그 영향이 이곳 이병주 문학관 마을까지 뻗쳐 문학관 입구 마을에도 제법 양귀비꽃과 안개꽃이 반겨주었지만, 시간이 없어 지나쳤다.
나는 이병주 문학관에서 미리 빠져나와 일행 한 분과 둘이 세 곳을 덤으로 꽃 잔치를 둘러보게 되었다. 박경리 문학관으로 나오면서 북천역 주위에 펼쳐진 꽃단지를 보며 모두 아쉬워했지만, 일정상 어쩔 수 없이 지나치고 누구나 거의 다 가본 최참판댁과 박경리 문학관에 갔다. 옛날에 몇 번 와본 적이 있어 낯설지 않았지만, 그동안 많이 개발되고 세련되게 관광객을 위해 해놓았지만, 왠지 너무 인위적인 냄새가 났다.
이곳 하동의 박경리 문학관은 소설의 배경인 하동 최참판댁 중심으로 만들어진 형식적인 문학관이고 실제는 인간 박경리의 체취가 남아 있는 원주 토지 문학관이 제대로 된 박경리 문학관이다. 말년에 농사지으며 오랫동안 생활해온 원주에 거의 모든 것을 남겼고 이곳 하동에는 형식상 문학관의 형태만 갖추어진 상태라 크게 볼거리는 없고, 다만 최참판댁이나 박경리 문학관에서 바라보는 시원한 악양 들판과 비스듬히 휘감고 나가는 섬진강의 눈맛은 언제나 보아도 볼만한 명장면이었다.
한 바퀴 돌아보고 경산으로 귀가하면서 경산 문인협회의 오랜 전통인 즉흥 삼행시 경연이 있었다. 올해 주제어는 박경리로 저마다 재치와 文-氣로 많은 분이 참가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최종 2명이 시상되었다. 이런, 3행시에도 재치와 내공이 합쳐야 기발하고 산뜻한 문장이 나오는 법인데 올해도 작년에 받은 분이 다시 받는 기염을 토했다. 그만한 실력과 내공이 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그 후 돌아가면서 저마다 노래 솜씨를 뽐내며 마무리되었다.
가수도 있고 저마다 숨은 실력을 발휘했지만 나는 컨디션 난조로 뒤에서 억지로 버티며 왔는데 기억에 남은 것은 구활 고문님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하는 고백 조의 최백호 노래를 멋지게 불러주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여든 중반에 장거리 여행을 같이하면서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 같이 걷고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대단한 건강관리와 열정과 문인협회에 대한 사랑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작년에 이어 올해도 후배 문인들을 위해 이렇게 참석해주신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후광인데 마지막에 멋지게 그동안 풍물에서 우러나오는 세월의 맛과 흔적을 얹어 멋들어지게 한 곡 뽑는 노년의 멋에 힘찬 박수를 보냈다.
나도 나중에 저 연세에 저렇게 꼿꼿하고 당당하게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지 또한, 후배 문인들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식지 않고 이런 문학여행에 참여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살아 있는 전설로 명콤비인 두 분이 아직도 왕성한 문학 활동은 물론 그 옛날 추억담과 문학사적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정담이야말로 마지막 접해 볼 문인 2세대 원로들이기에 더욱 존경스럽고 감탄해 마지않는다.
경산 문인협회로 봐서는 보배인 두 고문님이 시와 수필로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인정하면서 티격태격 톰과 제리같이 어쩌면 사모님과의 삶보다도 더 내면적인 공감과 이해와 짝사랑을 해오신 두 분이기에 한 기둥이 무너지면 급격히 기울어질 큰 고목과 같은 존재이기에 늘 건강하시고 함께 계속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몇 차례 곁에서 지켜보면 서로가 의지하고 짝사랑하는 모습에서 정말 오랜 우정에서 나오는 깊은 인간적 신뢰와 동행의 위로에 대해 깊이 공감하는 사이임을 배우게 되었다.
정말 같은 고향에서 문학이란 테마로 시와 수필이란 영역으로 지켜오시는 80년이란 세월과 흔적 속에 얽힌 수많은 사연과 이야기들이 시가 되고 수필이 되어 고향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역설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는 큰 고목임을 알고 있다. 고목은 존재를 떠나봐야 그 가치를 알듯 언젠가 또 많이 그리워하겠지요. 그때까지만이라도 지금같이 늘 넉넉한 웃음과 포근히 감싸는 후배 사랑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에 회장님이 몇 곡 더 할 시간이 없어 아쉬워했지만, 여행을 마치고 끝마무리로 3대 진주 곰탕에서 저녁을 하고 모두 귀가하여 답사 여행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처음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수고해주신 회장님과 정 국장님의 덕분에 깔끔하게 아무런 군더더기 없이 마무리되어 협조해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 특히 나 작가 수강생들이 10명이 참가하여 경산 문인협회에 대한 높은 관심과 사랑을 보태주어 회장단에 큰 힘이 되었고, 선배로서 더 잘해야겠다는 자극과 경산 문인협회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어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네요.
감사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경산문협 회원님들
2024. 5. 22. 21.20
1일 가이드 이상일 (올림)
첫댓글 잠도 주무시지 못하고
안내하시고 도와주신다고 참으로 고생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문학기행문도 멋지게 잘 쓰셨습니다.
우리 경산문협의 보배입니다.
선생님의 노력과 안내 덕분에 멋진 기행을 해서 그 고마움을 우리 경산문인은 모두 아실 것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즐거우시며 행복하셔요.
거듭 거듭 감사드립니다. ~~~^^
이상일 작가님!
그날 경산문협 회원들을 위한 수고가 대단히 많았습니다
경산문학의 보배 이십니다.
기행문도 탁월 합니다.
항상 건강 챙기시며 좋은 나날 만들어 가세요.
감사 합니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박사 학위는 통과된 건 가요?
대단하십니다
문협기행에 가이드로 휼륭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