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재~노승봉~바드재~옥녀봉~세봉삼거리~내소사주차장
첫번 째 구간의 날머리인 치이삼거리에서 오늘의 들머리인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
용사삼거리까지는 대략 15km쯤의 거리이다.그 거리를 버스로 이동을 했으니 거리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겠지만 발걸음으로 잰다면 4시간은 족히 잰걸음을 해야 닿을 수 있는
거리가 분명하다.당일 산행의 분량에 육박하는 거리가 아닌가.오늘 날 우리들 국내 산행
의 기본적인 행태를 살펴보면, 워킹위주의 단순한 산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행태가 그러
하니 필요한 장비라고해야 기껏 식량과 식수 그리고 여벌옷을 위한 배낭과 워킹을 돕는
스틱,등산화 정도이다.그리고 산행의 성격을 살펴보면 과정을 중시하는 대간이나 맥
산행과 정상만을 고집하는 소위'봉따먹기'방식을 목적으로 하는 산행이 될 터이다.
어쨌든 등반의 기본 방식으로 일컫는 알파인 스타일이라고 할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극지법 등반 방식이라고도 할 수 없는, 지금 우리들이 일삼는 산행방식은 그들 두 방식의
틈새에서 생겨 난 돌연변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참고로,극지법 등반 방식은
히말라야와 같이 규모가 큰 산을 등반하기 위하여 우선 본거지(베이스캠프)를 설정하고
차차 전진기지를 설치하며 목적지에 도달하는 산행방식이다.남극이나 북극을 탐험할 때
쓴 데서 유래된 이 방식은 인원,물자, 시간 ,자금이 필요하다.그리고 알파인 스타일은
대규모의 인원이 동원되는 극지법에 반해 많아야 5~6명의 소수 인원이 필요한 장비와
식량을 모두 갖고 일거에 정상에 오르는 등산 방식인데,릿지나 암벽에 전진캠프나 고정
로프를 이용해 짐을 올리지 않고, 등산가의 자력으로 한 번에 올라가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으며,포터의 협력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등반 방식이다.
영성재(永誠齊)
-차창 밖으로 쉴새없이 지나가는 겨울풍경은 수도권을 벗어나고부터는 온 누리가 모두
흰색 바탕의 눈으로 덮혀있다.제설작업을 한 고속도로의 갓길주변에는 흙탕물에 얼룩
진 눈들이 두툼하게 빈 구석을 메우고 있으며, 잿빛의 들판은 오롯이 흰눈의 차지가
되어있다.서해안고속도로 상의 줄포나들목을 빠져 나와 시오릿길을 달려온 버스가
오늘의 들머리인 용사삼거리의 영성재 앞에 닿은 것은 버스에 오른지 2시간40분쯤이
흐른 뒤다(10시).들머리에 자리하고 있는 영성재(永誠齋)는, 비교적 큰 규모로 볼 수
있는데, 그것으로 가늠을 해보면 능(陵)이나 종묘 등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
으로 볼 수도 있겠고, 한 편으로는 문묘에서 유생들이 공부하는 건물일 수도 있는 곳이다.
정체를 알 수 없으니 그렇게 한 번 추측을 해 볼 따름이다.
지맥은 영성재 뒤편으로 보이는 나지막한 흑록의 멧덩이다.쌓인 눈이 무릎까지 덮을
지경이니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다들 그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않고 영성재 입구를
지나 사창마을의 진출입 양회임도로 곧장 들어선다.사창마을을 지나서 사창재 방면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를 속셈인데,들머리에서 사창재 어름까지 건너 뛰겠다는 심사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여남은 명의 산우들은 사창마을의 뒷 산인 지맥을 곧이곧대로 따르
기로 내심 작정을 하고 마땅하게 어림되는 사창마을의 어느 농가 뒤란으로 돌아든다.
배낭을 멘 여러 명의 등산객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집 안으로 불쑥 들어서더니 잠시
머뭇거림도 없이 뒤란으로 돌아 드는 게 아닌가. 그런 소란에 깜짝 놀라서 문을 박차고
나온 할머니 한 분이 그쪽은 길도 없는데,하며 안쓰러운 얼굴 표정을 짓는다.
마당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흰둥이 한 마리도 기겁을 했는지 짖는 것도 잊은 체 눈만
멀뚱거리고 있다.'죄송 합니다' 라고 하는 뻔한 인삿말을 뒤로하고 무릎까지 푹푹 빠져
드는 '길없는 길'을 헤치며 지맥으로 붙으려 안간힘을 쏟는다.
나무가지에 붙어있는 눈덩이들이 조금만 몸을 스쳐도 우수수 떨어져 온 몸에 흰눈을
뿌려댄다.너나할 것없이 그러한 눈으로 칠갑을 하고 산길마져 뚜렷하지 않는 눈 덮힌
비탈을 올려친다.밀가루를 더께로 바른 절반의 모찌 같은 밀양박가의 봉분을 지나고
나면 해발113.4m봉에 오르게 된다.'유정봉'이라고 써 있는 이름표가 하나 걸려있는
멧부리다.지맥의 산길은 희미하고 그나마 두텁게 내려앉은 흰눈으로 희미함마져 가물
거리는 산길이다.눈송이들이 줄창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나무가지에 얹혀있는 눈송이
들이 산객의 온 몸을 적시기 시작한다.
10시 방향쯤으로 꼬리를 이어나가던 산길은 북쪽 방면으로 꼬리를 잇는다.접시를 엎어
놓은 것 같은 붕긋한 잡목들의 멧부리를 하나 넘어선다.그리고 다시 완만한 비탈을
올려치면 초소 용도로 쓰였을 폐건물 한 채가 자리하고 있는 해발270m의 봉우리에
오르게 된다.한 칸의 거실과 부엌용도의 공간을 함께 갖춘 폐건물,그리고 통신중계용
의 철탑까지 우뚝 서 있는 봉우리가 함께하고 있는 봉우리이다.270m봉을 뒤로하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붕긋한 멧부리를 하나 더 오르게 되는데 이 봉우리가 해발259.5m
봉인데, '작은재각봉'이라고 써 있는 이름표가 걸려있다.
사창재의 입간판
이 봉우리를 뒤로하고 무릎까지 빠져드는 산길을 짓쳐 내려서면 지맥을 가로지르는
임도로 내려서게 된다.오늘의 들머리 동네인 사창마을 쪽과 개암사가 자리하고 있는
방면 사이의 사창재 임도이다.지맥은 사창재 언덕배기를 곧장 가로지르며 이어진다.
그러나 그쪽으로는 격자무늬의 울타리가 가로막고 있으며 '출입금지'라고 써 있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샛길통행 단속이라고 하면서 위반 시에는 자연공원법에 의거 50만원
의 과태료를 부과할 거라 써 있다.
격자무늬의 목책을 우회하여 완만한 비탈길로 접어든다.산길은 부드럽게 이어지는데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무릎까지 차오르는 눈밭에서의 움직임이 가벼울 수 가 있겠
는가.그리고 조금 전부터 장갑은 이미 물에서 건진 것처럼 푹 젖어있다.눈이 스며들어
체온에 녹아 장갑을 적시기 때문이다. 여벌로 한 켤레를 더 준비를 해놓긴 했지만
벌써부터 새장갑을 사용한다면 남은 산행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있어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다.참을 때까지는 참았다가 사용해도 되겠지 싶다.
진달래를 비롯한 관목들과 참나무들의 붕긋한 해발333m봉을 넘어서면 산길은
좌측의 10시 방향으로 꼬리를 잇는다.산길은 부드럽고 밋밋하게 꼬리를 잇는다.
산길은 머지않아 삼거리 갈림길을 내놓는데, 좌측의 산길은 사창마을에서 사창재로
이어지는 임도의 중간쯤에서 빠져 나오는 산길이다.오늘 산행을 시작할 무렵에
임도를 따르던 산우들이 오른 산길인 게다.발자국이 무수하다.그렇다면 이쪽 방면으
로 오른 산우들은 이미 한참을 앞서가고 있을 터이다.산길은 이들로 인하여 좀 더
다져지고 뚜렷해졌다.
간간히 눈발이 날리던 잿빛의 하늘이 열리고 파란 하늘이 드러나더니 금빛햇살까지
쏟아져 내린다.금빛햇살을 잔뜩 머금은 흰눈이 은빛햇살을 산객에게 쏟아낸다.잿빛의
뒤안에 자리하고 있던 먼 산들이 차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계란후라이 모양으로
흰눈이 두껍게 덮혀있는 봉분이 자리하고 있는, 비석조차 없는 묘지가 자리하고 있는
해발398m의 상여봉,워낙 눈의 두께가 깊어서 삼각점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상여봉을
그렇게 넘어서면 머지않아 행색이 그와 엇비슷한 멧부리에 오르게 되는데,그 봉우리가
해발 352m의 노승봉 정상이다.이 멧부리에도 널찍한 터에 묘지 1기가 자리하고 있다.
선산김가의 묘이다.
노승봉에서 지맥은 우측의 3시 방향으로 급선회를 이루며 꼬리를 잇는다.흰눈이 수북
하게 쌓여있는 산길은 앞서 간 산우들 덕분에 더욱 뚜렷하다.흰눈의 산길은 잡목들과
눈을 잔뜩 뒤집어 쓰고 있는 수목들 사이로 구불거리며 꼬리를 이어 나간다.꺽다리 노송
한 그루가 초병처럼 자리하고 있는 해발 297m 봉,삼각점이 정수리 한복판에 박혀있는
삼각점봉이다.삼각점봉을 뒤로하면 지맥을 가로지르는 2차선 차도로 내려서게 된다.
상서면 청림리와 보안면 우동리 사이를 잇는 1번 차도가 오르내리는 바드재이다.
바드재
바드재에서 지맥은 언덕배기를 곧장 가로지르며 꼬리를 잇는다.오르막 산길은 완만하게
시작이 되면서 산불초소를 하나 내놓는다.초소는 텅 비어있으며 출입구는 굳게 잠겨있다.
울멍줄멍 줄을 잇는 바위들은 한결 같이 흰눈을 잔뜩 뒤집어 쓰고 있다.잿빛의 구름을
젖히고 파란 하늘이 열렸다.파란 하늘 위로 부서진 흰 구름이 담배연기처럼 떠돈다.
그리고 태양은 볕에 굶주려 있는 언 대지를 행해여 금빛햇살을 흔전하게 쏟아내고 있다.
비탈진 산길에 한 팔 간격의 말뚝을 박고, 고정로프를 기다랗게 매어 놓았다.지금 오르고
있는 산길이 바위의 슬랩 구간인지도 모르겠다.두툼하게 쌓여 있는 흰눈 탓에 가늠하기가
쉽지않다.
비탈을 좀더 올려치면 그러한 행색의 고정로프로 난간을 마련해 놓은 전망대가 기다린다.
흰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 변산국립공원의 여러 산군(山群)들이 시원스레 조망이 된다.
그런 뒤에 완만한 치받이 오르막을 올려치면 우묵한 접시를 엎어 놓은 것 같은 멧부리에
오르게 되는데, 삼거리 갈림길이 나 있으며, 그 어귀에는 산행안내 이정표가 서 있다.
버드재를 0.8km쯤 지난 지점이며, 용각봉삼거리를1.1km가량 남겨둔 지점이다.그리고
우측으로 보이는 산길은 옥녀봉으로 향하는 길인데, 이곳에서 50여 미터쯤 떨어져 있는
봉우리이다.산불감시철탑이 정수리를 온통 차지하고 있는 해발 432.7m의 옥녀봉에는
삼각점이 부여된 봉우리인데,수북하게 쌓여있는 흰눈으로 확인은 하지 못하게 된다.
조금 전의 삼거리의 높이와 가늠이 안 될정도의 옥녀봉을 뒤로하고 삼거리로 돌아와
용각봉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내변산주차장까지의 거리가 6.5km라고 이정표가 귀띔
한다.
옥녀봉의 무인산불감시철탑
내리받이 비탈을 따르면 이동통신철탑의 곁을 지나가게 되고, 가마소삼거리(3.6km) 쪽
으로의 등하행 산길이 나 있는 갈림길을 지나게 된다.옥녀봉을 0.9km지난 지점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사거리 갈림길이 나 있는 안부가 산객을 기다린다.우측으로 나 있는
산길은 가마소삼거리(3.3km) 방면이고 좌측으로 보이는 산길은 굴바위(0.9km) 쪽이다.
옥녀봉을 1.1km쯤 지난 지점이며 지맥의 방향은 맞은 쪽의 완만한 오르막이다.오르막
산길로 발을 옮기자마자 산길은 조릿대 숲 길이며 산길은 이전의 산길보다 희미하고
다소 거칠다.
가파른 비탈을 애면글면 올려친다.네발짜리 아이젠이 기능이 좀 모자란다.체인아이젠을
가져 왔더라면 좀 더 수월했을텐데 너무 안이한 감이 없지 않다.기신거리며 비탈을
올려친다.용각봉 정수리가 빤히 올려다 보인다.그런데 치받이 오르막 산길은 머지않아
용각봉의 정수리를 향하지 못하고 8부능선쯤에서 산허리를 끼고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는
게 아닌가.정수리 쪽으로 곧장 올려치는 산길도 나 있는 것 같은데 아무도 그 쪽으로는
발걸음을 한 흔적이 안 보인다.숫눈 그대로이다.
옥녀봉 전경
용각봉을 그렇게 맥없이 경유하고 주능선으로 붙으니, 시원한 조망이 산객을 기다린다.
흰눈을 잔뜩 뒤집어 쓰고 있는 변산국립공원의 여러 산군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에 들어
온다.쟈켓은 눈으로 칠갑을 한 탓에 비를 맞은 것처럼 번질거리고, 등산화와 스패츠 등을
비롯한 무릎 밑도 물질을 하고 난 것처럼 축축하기만 하다.그러한 축축한 기색에 주눅
까지 든 분위기를 단박에 눈의 호사로 반등이 되고 만다.파란 하늘이 내려다 보고 있으며,
흰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 먼 산들이 눈을 밝혀주고 있으니 다시 힘이 용솟음치고 있는
게다.
그런데 그와 같은 시간은 이내 연기처럼 사라지고 파랗기만 하던 하늘은 금세 잿빛으로
바뀌더니 눈마저 날벌레처럼 휘날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사위는 단박에 해거름의
저물녘처럼 어둑해졌다.고조되어가던 분위기는 다시 금이 간 물항아리처럼 가라앉아
가고 마음만 바쁘게 돌아간다.삿갓을 벗어 놓은 것 같은 봉우리 하나를 넘고 가파른
비탈을 올려치면 세봉삼거리다.아직도 넘어야 할 세봉과 관음봉이 이제는 거뭇한 실루엣
으로나마 가늠이 된다.
관음봉과 세봉 그리고 내소사
세봉삼거리에서 세봉과 관음봉을 차례로 넘어서 재백이 고개에서 내소사 주차장으로
내려서려면 1시간30분 정도가 걸릴 것이다.그러나 눈길이라면 상황은 판이하게 달라
진다.2시간쯤은 기본이고 그 이상이 걸릴 지 아무도 장담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닌가.
결국은 논의끝에 이곳 세봉삼거리에서 내소사 주차장으로의 하산이 결정이 되었다.
거기까지는 3km도 채 안 되는 거리이니 30~40분 정도면 하산을 마칠 수 있는 거리다.
사위는 이제 눈발은 날리지 않는데 바람의 세기는 강해졌다.바람의 영향인가?
세봉삼거리를 뒤로하는 산길에서의 조망이 다소 툭 터졌다.
세봉과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변산국립공원의 주능선과 내소사의 경내가 한눈에 들어
온다.석포들판을 핥으며 불어제끼는 서해안의 찬바람을 정면으로 거스르며 바위
비탈을 내려서고, 흰눈이 수북한 소나무 숲 길을 짓쳐 내려서면 이내 내소사 주차장
이다.텅 빈 주차장에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버스가 유일하다(16시). 잠시잠깐
트였던 하늘이 다시 잿빛의 그늘막을 씌우기 시작한다.눈발도 간간히 섞여들기
시작한다.산우들이 비닐천막 안에서 분주하게 빈 속을 채운다.비닐천막을 흔들어
대는 바람의 요란스러움이 매우 시끄럽다.휘날리는 눈발이 비닐천막을 연신 두드려
댄다.이렇게 도깨비 같은 날씨에 시달린 산우들이 그곳을 떠난 시각은 17시30분쯤이다.
(201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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