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가 이룩한 회화적 성취는 풍속화다. 조선후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통틀어 풍속화가라면 김홍도를 내세우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조선후기 풍속화의 절정을 보여주었던 화가다. 그가 활동한 정조 때는 풍속화가 성행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시기다. 당시 속화라고 불렸던 풍속화가 규장각의 자비대령화원 녹취재(祿取才)의 시험문제로 가장 많이 출제되었고, 정조 자신도 “모두 보자마자 껄껄 웃을 만한 그림을 그려라”고 지시할 만큼 궁중에서 권장한 장르였다.
이처럼 풍속화에 대한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김홍도라는 걸출한 풍속화가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바로 정조 직전인 영조 때에는 상황이 판이하게 달랐다. 조영석이 자신의 풍속화로 꾸민 화첩인 <사제첩 麝臍帖>에 “남에게 보이지 말라 범하는 자는 나의 자손이 아니다(勿示人 犯者非吾子孫)”라는 경고문을 적을 만큼, 풍속화를 제작을 꺼리는 분위기였다.
김홍도가 풍속화에서 보여준 놀라운 성취는 정조라는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성향의 군주의 후원과 더불어 강세황이란 스승이 있었다는 사실에 그동안 크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일 강세황이 없었더라면, 감홍도의 풍속화도 없었다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김홍도 풍속화에서 강세황의 매우 컸다. 특히 강세황이 당시, 특히 안산의 학풍인 실학사상을 갖고 있는 이들과 교유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실학적인 사상을 김홍도의 풍속화를 통해 실현했다.
사소하고 하찮은 것으로 치부했던 일상이 18세기 후반 정조 때에는 그림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사소한 것의 가치와 평범함의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인식의 전환이 풍속화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아취와 풍속으로 구분되는 주제에 대한 전통적인 차별의식이 달라진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굳어져 온 속에 대한 부정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가치관이 싹튼 것이다.
김홍도가 풍속화를 통해 추구한 일상의 아름다움은 강세황의 실학적 사상과 무관하지 않다. 강세황은 풍속화처럼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물론 당시 풍속화가 유행하게 된 배경에는 이러한 사상이 뒷받침되었지만, 그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가 강세황인 것이다.
강세황은 처가가 있는 안산에 1744년부터 1773년까지 30년을 살았다. 그가 가난 때문에 처가살이를 했다고 밝혔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기로사에 입적한 명문 사대부가 집안에다 충북 진천, 오창, 충남 공주, 천안에 적지 않은 토지를 소유한 점으로 보아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상투적으로 내세우는 수사일 뿐, 실제는 안산에서 여러 유명한 인사들과 교유하기 위해 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18세기 안산은 학문과 예술의 고장이었다. 진주 유씨, 여주 이씨 등 정권에서 소외된 남인들이 살았고, 여주 이씨는 성호 이익을 중심으로 실학사상을 펼쳐나갔다.
아울러 성호 이익의 문하들이 그의 사상을 이어받아 학문 활동을 펼쳤는데, 특히 강세황의 처남인 유경종도 이익의 제자였으며, 양명학의 개조인 정재두가 살았던 곳이 안산이다. 아울러 강세황과 교유했던 허필, 이용휴, 유경종, 임희성 등도 실학사상에 심취한 인물들로써, 일상적이고, 현실적이며, 박애적인 사상과 문학을 실현했다. 따라서 강세황이 실학의 학풍이 강한 안산에서 실학적인 인식을 갖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이러한 사상은 자연스럽게 김홍도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 풍속화의 유행은 당시 사상 및 문화계의 동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상과 서민문화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 주장이 득세하는 분위기 속에서, 일상과 통속적인 생활상을 다룬 풍속화가 등장하게 되었다. 겸재 정선이 김창협, 김창흡 등 노론 계열의 조선성리학의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면, 풍속화는 실학의 영향 속에서 발전한 것이다.
조선후기 풍속화를 개척한 윤두서도 실학적인 사고를 갖고 있고 남인 계통의 실학자들과 교류가 활발했다는 점에서 강세황이나 김홍도와 비슷하다. 한때 노론 계통의 사대부 화가인 조영석이 윤두서에 이어 풍속화를 제작했으나, 다시 김홍도처럼 남인 계통의 실학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화가가 풍속화의 주도권을 잡은 것이다.
첫댓글 샘 참석하지 못해 많이 아쉬웠는데 이렇게 올려주어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