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경북농구협회 연혁
경북 농구는 1920년대 보급기를 거쳐 30년대에 활기를 띠었다. 이 당시 대구 농림과 대구사범이 맞수로 각축을 벌여 주목을 받았다. 30년대 후반 동호인 모임이 속속 등장했고 일제 말엽에는 이 모임들이 불순단체로 몰려 시련을 격기도 했다. 1940년대 대구의 유일한 일반부 농구팀이었던 대구 농구 구락부가 활동했고 여기에는 권승호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
40년대 말에는 대구중, 대구상업중, 계성고, 대구대 팀이 활약했으며 전국 정상권에서 맴돌았으나 정상 일보 직적에서 물러나는 불운을 여러 차례 겪었다. 40년대와 50년대 전국대회에서 김재현, 이상삼 등은 뛰어난 기량으로 계성고를 정상권 팀으로 이끌었다.
50년대 중반에는 장신 센터 임봉건이 이끄는 대구상고가 두각을 나타냈는데 대구상고는 55년 전국체전에서 1점차로 준우승에 머무는 아쉬움을 맛보았다. 대구상고와 함께 나중에 대구 시장을 지낸 이상연이 명가드로 활약한 사대부고, 작은 체구에도 발 빠른 몸놀림을 구사하던 이용택의 대건고 등이 활발히 농구를 했다. 이용택은 나중에 영남대 감독, 대구시 체육회 운영과장 등을 역임했다.
광복 이전과 직후의 활발한 농구사를 바탕으로 경북농구협회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육성 및 행정이 점차 체계가 잡히면서 경북 농구의 발전도 속도가 빨라지게 됐다. 64회 전국 초급대학 농구대회에서 이용택이 이끄는 청구공전은 서울의 명지공전을 누르고 우승했고 다음해에도 같은 팀을 결승에서 눌러 2연패를 차지했다.
71년 이용택은 선수시절을 마감하고 막 창단된 영남대 감독으로 부임, 부임 첫 해부터 75년까지 전국체전에서 연속 5회 준우승에 오르는 역량을 보였다. 그러다 드디어 76년 전국체전에서 임대섭, 정성호, 박흥달, 장세욱, 김동훈, 김기훈 등이 주축을 이룬 영남대는 결승전에서 서울의 강호 국민대와 맞붙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 끝에 61대60으로 승리, 지방대 팀으로서는 처음으로 전국대회에서 우승하는 감격을 맛봤다.
70년대 중반 경북 농구는 전국 정상권에 오르는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계성고와 효성여고가 주인공이었다. 계성고는 모교의 명센터 출신 임판석 감독이 팀을 이끌며 스파르타식으로 선수들을 조련, 73년 전국고교 삼남농구대회에서 군산상고와 정상급의 실력을 선보였다. 계성고는 75년에 전국체전, 추계연맹전 등 전국대회 3관왕에 오르는 위업을 달성했다.
1981년 대구광역시 체육회 분리 이후 경북농구협회는 당시 대다수 가맹경기단체가 겪게 된 어려움이지만 경북지역에는 명맥을 이어나갈만한 농구팀이 없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정복득회장을 중심으로 정해걸(현 의성군수)부회장, 이진갑 전무이사을 비롯한 전체 임원들이 힘을 모아 초등부에서 고령 쌍림, 상주화산, 두릉(전 상주 모동초등학교 교감 박병길)초등학교를 창단 하였으며, 의성남부, 청송, 예천용문, 안동경덕중, 고령여중, 의성여중, 의성여고, 등의 신생팀이 경북농구의 명맥을 이었다. 그러나 신생팀으로서 한계를 넘지 못하고 전국체전 등 각종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진 못했다.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정복득회장 체제하에서 경북농구는 기반여건을 다지는데 주력했다.
남시홍(현 경북농구협회 전무)은 경주계림초등학교가 1984년에 포항에서 개최되는 전국 소년 체육대회에서 준우승, 1985년 상주중학교 농구팀을 창단시켜 첫 부임하면서, 86년도 전국 추계중고연맹전에서 사상 첫 3위 입상후 졸업생 모두가 상산고등학교 입학하여 농구팀을 창단하여 현 농구협회 사무국장 임성열 상주중감독, 정충종 코치 체제로 상산고등학교 팀을 지도하여 88년 전국대회 우승, 89년 전국대회 우승, 각종 전국단위 대회에서 2관왕에 오르는 위업을 달성했다.
남시홍감독은 상주중학교 부임이후 86, 87, 88, 89, 90년까지 전국소년체전 겸 각종 전국대회에서 준우승 3회, 3위 8회입상, 91년부터- 96년까지 의성여고 농구팀을 지도하여 93년도 전국추계 중,고 연맹전에서 우승, 94년 전국체전 3위, 95년 전국체전 준우승, 대통령기 3위, 쌍용기 고교 초청경기 준우승, 춘계 중,고 연맹전 3위, 전국 협회장기 준우승에 오르는 역량을 보였다. 전 상산 초등학교 농구감독 이병재, 권택근코치 이사는 1986년부터 상주 상산 초등학교를 지도하면서 98년 전국 소년체전에 준우승, 99년도 전국 어린이 농구대회 우승 및 전국 소년체전에서 사상 처음으로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각종 전국 단위 대회에서도 많은 실적을 남겼다. 상산고 출신인 이은호 선수는 대학시절 및 대우 실업팀 에 몸담을 적에 국가 대표 선수로 활약 하였으며, 현재 동양 프로팀에서 박재일 선수와 함께 몸을 담고 있다.
그러나 경북농구의 경우 협회 소재지와 각 종별팀의 소재지가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특히 협회 소재지가 안동에서 상주로, 다시 안동으로 복귀하는 등 어려움을 격다. 1996년 이종덕회장이 취임 하면서 김천에 정착하게 되었다. 현 김동열 회장은 1996년부터 2013년까지(8년간)부회장, 2004년부터 현재까지 14년간 회장을 맡으면서, 경기단체우수상, 경기단체모범상, 경상북도체육단체상, 경상북도체육상, 김천시체육문화상을 받았다. 특히, 김천시청농구팀을 창단 시키면서 전국체육대회 3년패 및 8회 우승, 한국농구대잔치에서 6관왕, 각종 전국단위대회에서 39회 우승을 차지하는 감격을 맛보았다. 전국체육대회 종합1위 1회, 종합2위 2회, 종합3위 3회를 획득하였다. 그리고 경북농구협회 산하 9개팀 상주중앙초, 상주여중, 상주여고, 상산초, 상주중, 상산전자고, 동국대, 김천시청, 상무 농구팀이 전국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이처럼 16개 전국 시·도 가운데 탁월한 기량을 뽐내는 우수한 단체로 이끌며 경북농구의 위상을 드높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