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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26) 프레임의 법칙 / 역지사지로 언행을 하라 | (31) 오늘 내가 슬픔을 넘어 기쁜 이유/리차트,위트장군과 부인 함묘순 여사 실화 이야기 6.25. 한국전쟁 때 결단 | (36)555555555555555 | ((41)55555555555555 | (46}888888888888888 |
(27) 곧은 길로 가라/ 프랑스 누이14 때 이야기 | (32) 국보 새한도의 뒷이야기/추사 김정희 작품 | |||
(28) 아프레 쓸라/나는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있는가? 한번쯤 생각을 *** | ||||
(29) 겸손/정약용 목민심서 중에서 | ||||
(30) 아름다운 인연/페니실린 발견자,플레망 교수와 처칠의 인연 |
(26) 프레임의 법칙 /역지사지로 언행을 합시다
■ 프레임의 법칙 (Frame law).. ■
오래 참아가며 역지사지(易之思之)로 言行을 합시다.
아래 4사례를 보시죠
易之思之 : 상대방(相對方)의 처지(處地)에서 생각해봄.
1. 미국 알래스카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젊은 아내는 아이를 낳다가 출혈이 심해 세상을 떠났다.
다행히 아이는 목숨을 건졌다.
홀로 남은 남자는 아이를 애지중지 키웠다.
아이를 돌봐 줄 유모를 구하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남자는 유모를 대신 훈련이 잘된 듬직한 개를 구해 아이를
돌보게 했다.
개는 생각보다 똑똑했다.
남자는 안심하고 아이를 둔 채로 외출도 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남자는 여느때처럼 개에게 아이를 맡기고 잠시 집을 비우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의 사정이 생겨 그날 조금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남자는 허겁지겁 집으로 들어서며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주인의 목소리를 들은 개가 꼬리를 흔들며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개의 온몸이 피범벅이었다.
불길한 생각이 들어 남자는 재빨리 방문을 열어보았다.
아이는 보이지 않았고 방바닥과 벽이 온통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남자는 극도로 흥분했다.
`내가 없는 사이에 개가 아들을 물어 죽였구나` 이렇게 생각한 남자는 즉시 총을 꺼내 개를 쏴 죽였다.
바로 그 순간,
방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란 남자가 방으로 들어가 보니 침대 구석에 쪼그려
앉은 아이가 울먹이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당황한 남자는 밖으로 뛰쳐나와 죽은 개를 살펴보았다
개의 다리에 맹수에게 물린 이빨 자국이 선명했다.
곧이어 남자는 뒤뜰에서 개한테 물려 죽은 늑대의 시체를 발견했다.
"오, 맙소사~~!"
남자는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늑대와 혈투를 벌인,
충직한 개를 자기 손으로 쏴 죽이고 만 것이다.
^0^프레임의 법칙(Frame law)이란?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떠한 `생각의 틀`을 갖고 상황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진다는 법칙이다.
2. 어느 선생님이 매일 지각을 하는 학생에게 회초리를 들었습니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날마다 지각을 하는 것을 보고 그 학생이 괘씸해서 회초리를 든 손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회초리를 든 다음 날 아침, 그 선생님은 차를 타고 학교에 가다가 늘 지각하는 그 학생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한 눈에 봐도 병색이 짙은 아버지가 앉은 휠체어를 그 학생이 밀고 요양시설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순간 선생님은 가슴이 서늘해졌습니다.
지각은 곧 불성실이라는 생각에 이유도 묻지 않고 무조건 회초리를 든 자신이 부끄러웠고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가족이라고는 아버지와 단 둘 뿐이라서 아버지를 지켜드려야 하는 입장에 있는 지각한 학생, 게다가 요양시설은 문을 여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학생은 요양원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아버지를 모셔다 드리고,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뛰어서 학교에 왔을 텐데...
그래도 매일 지각을 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 날 역시 지각을 한 학생은 선생님 앞으로 와서 말없이 종아리를 걷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회초리를 학생의 손에 쥐여주고 자신의 종아리를 걷었습니다.
그리고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라는 말과 함께 그 학생을 따뜻하게 끌어 안았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울었습니다.
^0^프레임(frame)이란 `창틀`이란 의미지만, 여기서는 `관점(point of view)`이나 `생각의 틀`을 말한다.
누구나 고정관념과 선입견과 편견을 갖고 있다.
한번 굳어진 고정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것을 깨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잠깐의 순간이라도 역지사지(易地思之) 하는 습관을 가져보면 좋을듯...
3. 공자가 제자들과 함게 진나라로 가던 도중에 양식이 떨어져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안회가 가까스로 쌀을 구해 와 밥을 지었습니다.
공자는 밥이 다 되었는지 알아보려고 부엌을 들여다보다가
밥솥의 뚜껑을 열고 밥을 한 움큼 먹고 있는 안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공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안회는 제자 가운데 도덕수양이 가장 잘 되어 공자가 아끼는 제자였습니다.
공자는 크게 실망하고 곧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윽고 안회가 밥이 다 되었다고 하자 공자가 말했습니다.
"안회야~~!
내가 방금 꿈속에서 선친을 뵈었는데
밥이 되거든 먼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하더구나."
밥을 몰래 먹은 안회를 뉘우치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안회는 곧장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스승님~~! 이 밥으로는 제사를 지낼 수는 없습니다.
제가 뚜껑을 여는 순간 천장에서 훍덩이가 떨어졌습니다.
스승님께 드리자니 더럽고 버리자니 아까워 제가 그 부분을 먹었습니다."
공자는 안회를 잠시나마 의심한 것이 부끄럽고 후회스러워
다른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전에 나는 나의 눈을 믿었다.
그러나 나의 눈도 완전히 믿을 것이 되지 못하는구나.
그리고 나는 나의 머리도 믿었다.
그러나 나의 머리도 역시 완전히 믿을 것이 되지 못하는구나.
너희는 보고 들은것이 꼭 진실이 아닐수도 있음을 명심하거라."
^0^성인 공자도 이렇게 오해를 했는데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은 어떠하겠습니까~~?
때문에 귀로 직접 듣거나 눈으로 본 것이라고 해도 항상 심사숙고하고, 결정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그 사건 자체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섣불리 결론을 내려 평생 후회할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4. 인도의 시인 타고르 집에 그의 집 마당을 쓰는 어느 한
하인이 있었다.
어느날 그 하인이 3시간 넘어도 오지 않았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타고르는 그를 해고해야겠다고 작정했다.
3시간 후 허겁지겁 달려 온 하인에게 타고르는 빗자루를 던지며 말했다.
"당신은 해고야~~!
빨리 이 집에서 나가~~!"
그러자 하인은 빗자루를 들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어젯 밤에 딸 아이가 죽어서 아침에 묻고 오는 길입니다."
타고르는 그 말을 듣고 인간이 자신의 입장만 생각했을 때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 배웠다고 합니다.
^0^이처럼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화가 나고 미움이 생길 때는
잠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27) 정직, 곧은 길로 가라/프랑스 루이 14 때 이야기
프랑스 ‘루이 14세’ 때 이야기.
프랑스 어느 포목점에 15살 젊은 점원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계산을 잘못해서 손님에게 두 배의 돈을 받았다. 점원은 자기의 잘못된 계산임을 알고 주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손님을 찾아가 더 받은 돈을 다시 돌려주었다. 주인은 점원의 그런 행동에 화가 나서 바로 해고해 버렸다.
그 후 그 젊은이가 정직 때문에 해고당한 소문을 듣고 돈을 돌려받은 손님이 점원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나는 파리에 큰 은행을 가지고 있다네. 자네 같은 정직한 직원이 필요하지. 나와 함께 파리에 가서 일해보지 않겠나?”
점원은 손님의 요청을 수락했고, 파리의 은행에서 일하게 되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한 점원은 훗날 프랑스의 재무장관 자리에까지 올랐다.
루이 14세 때 프랑스의 살림을 맡아 강력한 나라를 일군 뛰어난 재상 “장 바티스트 콜베르(1619~1683)”의 얘기다.
정직은 성공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정직한 사람이 불이익을 당하기도 하고, 거짓으로 자신을 꾸미는 사람이 잘 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정직한 사람을 바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정직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
영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하루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고,
일주일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고,
한 달을 행복하려면 말(馬)을 사고,
일 년을 행복하려면 집을 짓고,
평생을 행복하려거든 정직하게 살아라!” (펌)
어제보다 더 즐거운 오늘 보내세요.
<상위 1%가 되는 사람 특징>
(28) 아프레 쓸라/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아프레 쓸라 (Apres cela)
인생은 어디서 와서 무엇을 위해 살며 어디로 가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누구나 한번 쯤 이러한 의문을 가져보았을 것입니다
인생은 어디서 와서 무엇을 위해 살며 어디로 가는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이 질문은 동서양의 모든 철학자의 질문이요 모든 인간이 갖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명쾌하게 답을 못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한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큰 돌 비석이 하나 있고 그 비문에는 ‘아프레쓸라(Apres cela)’ 라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해서 적혀 있다고 합니다
‘아프레 쓸라’라는 말은 ‘그 다음은,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이라는 뜻인데, 그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학을하던 한 법대생이 마지막 한 학기를 남겨 놓고 학비를 도저히
마련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는 고민 끝에 신부를 찾아가 도움을 청 합니다
그러자 신부는 “마침 조금 전에 어떤성도가 좋은 일애 써 달라고
돈을 한 묶음 갖다 놓고 갔네 이건 분명히 자네를 위한 것 일세” 하고는 돈을 세어 보지도 않고 이 학생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뜻밖의 도움을 받은 이 학생은 기쁜 얼굴로 봉투를 받아 돌아나오는데 신부가 잠시 불러 세웁니다
“한 가지 묻겠는데 자네는 그 돈을 가지고가서 뭘 하려나?”
”말씀을 드린 대로 등록금을 내야지요.”
“그 다음은?” “열심히 공부해서 졸업을 해야지요“ ”그 다음은?”
“법관이 돼서 억울한 사람 들을 돕겠습니다“
“좋은 생각이구만 그래 주면 좋겠네 그럼 그 다음은?”
”돈벌어 장가도 가고, 가족들도 먹여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다음은?”
심상치 않은 질문에 학생은 더 이상 대답을 못했습니다
신부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 다음은 내가 말하지 자네도 죽어야 하네
그 다음은 자네도 심판대 앞에 설 것일세 알았는가?”
학생은 집으로 돌아왔지만 ‘Apres cela’라는 신부질문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학생은 결국 돈을 신부에게 돌려 주고 수도원으로 들어 가서 수도사가 되었고,
보람되고 귀한 일 들을 많이 하며 생을 보냈습니다
그가 죽고 난 뒤에 그의 묘비에는 그가 한 평생 좌우명으로 외우던
세 마디를 써 놓았답니다
”Apres cela.. Apres cela..Apres cela를 써 놓았답니다“
우리들은 일생을 살아 가면서 수 많은 계획들을 세워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 행복하게 살기를,
어떤 사람은 명예를 얻어 남 들에게 부러움을 사기를,
어떤 사람은 권력을 얻어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며 살아 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그 다음은,그 다음은..?
어리석은 사람은 오늘의 삶이 전부인양 현실에만 급급하여 살아갑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내 삶이 언젠가는 끝나는 날은 반드시 온다!’ 라는 것을 항상 생각하며 삽니다
우리의 영혼과 삶이 무기력하게 되는 이유는 종말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프레 쓸라” 우리도 늘 기억하며 살아가야 할 단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이 시한부이기에 더 소중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끝나는 그날 후회없도록 하루 하루를 의미있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29) 겸손/정약용 목민심서 중에서
👉 겸손 (謙遜)👍
제 3의 손,
우리에게는 세개의 손이 필요하다. 오른손, 왼손, 그리고 겸손이다.
두개의 손은 눈에 보이지만 겸손은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는 있다.
겸손(謙遜)은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존중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자신보다 뛰어난 자들이 있음을 겸허하게 받아 들이는 자세를 말한다.
부자가 없는 체 하기 보다는 식자가(識字=지식(知識)과 판단력(判斷力)이 있는 사람)
모른 체 하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가진 재산이야 남이
안 보이게 감출 수는 있지만
아는 것은 입이 근질근질하여 참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제3의 손 !
살면서 꼭 필요한 손이다. 스스로 잘났다는 자만, 남을 무시하는 오만, 남을 깔보고 없인 여기는 교만, 남에게 거덜먹거리는 거만, 이 4만의 형제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은 겸손뿐이다.
살면서 적을 만들지 말라고 했다. 언제 어디서 좁고 막다른 골목에서 만나면 피하기 어렵고 언제 어디서 마주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명의 친구
보다도 한명의 적을 만들지 말라고 성현께서 말씀 하셨다.
"겸손은 천하를 얻고 교만은 깡통을 찬다 !"
늘 이런 사람이 되고자 힘쓰야 한다.
겸손은 사람을 머물게 하고 칭찬은 사람을 가깝게 하고 넓음은 사람을 따르게 하고 깊음은 사람을 감동케 한다.😂😀😄
(정약용 목민심서中)
오늘도 겸손의 자세로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30)아름다운 인연
1945년 노벨생리학상 수상 알렉산더,플레망(1881~1955)과 영국수상 윈스턴,처칠(1874~1965)의 인연
페니실린 발견자 //플레망 교수
아름다운 인연!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친구간의 우정이 얼마나 중요 한지는 두 말할 필요 가 없이 느끼며 살고 있다.
성경에도 이런 말씀 이 있다.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잠언)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잠언)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한복음 15:13)
우리들은 서로의 인연이 오래도록 좋은 인연으로 지속되기를 원한다.
살아있는 동안 같이 아파하고 함께 웃고 즐기는 희로애락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곁에 있다면 그 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늘 마음의 한 켠을 비워놓고 이런 친구가 있기를 기원한다.
오늘은 영국의 한 귀족 아들과 농촌의 한 가난한 농부아들 소년의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를 소개 하고자 한다.
어느날 귀족의 아들이 시골마을로 수영을 하기 위해 갔다가 호수에 뛰어 들었는데, 발에 경련 이 일어나 죽을 뻔하 게 되었다.
귀족의 아들은 소리를 질렀고, 그 소리를 들은 농부의 아들이 그를 구해 주게 된다.
그리하여 둘은 친구 가 되었다.
둘은 편지를 주고 받으며 우정을 키워 갔다.
어느덧 13살이 된 시골 소년이 초등 학교를 졸업하자 귀족의 아들이 그에게 물었다.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시골 소년은 “의사가 되고 싶어. 하지만 우리 집은 가난하고 형제도 아홉명이나 되어 집안일을 도와야 해.”
귀족 아들은 가난한 시골 친구를 돕기로 결심하고 아버지를 졸라 그를 런던으로 데리고 갔다.
시골 소년은 런던의 의과대학에 다니게 되었고,포도상구균이라는 세균을 연구해 페니실린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이 시골 소년이 바로 1945년 노벨 생리 학상을 수상한 알렉산더 플레밍 (Alexander Flem ing,1881~1955)이다.
플레밍의 학업을 도운 귀족 아들 소년 은 정치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26세의 어린 나이에 국회의원이 되었 으나, 폐렴에 걸려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다.
그 당시 폐렴은 불치 의 병으로 여겨지는 무서운 병이었지만 플레밍이 만든 페니실린 이 급송되어 그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 다.
그렇게 시골 소년이 두 번씩이나 생명을 구해 준 귀족아들 소년은 다름아닌 민주주의를 굳게 지키고 영국을 구한 윈스턴 처칠 (Win ston Churchill, 1874~1965)이다.
이렇게 우연한 기회로 만난 두 사람 의 우정은 평생을 계속하면서 두 사람 의 삶에 빛과 생명을 서로에게 주었다.
만약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줄 수 있다면 그 삶은 결코 헛되지 않다.
후일 영국 수상이 된 그 귀족의 아들 윈스턴 처칠이 어린시절 시골에서 우연히 알게 된 가난 한 농부의 아들을 자기는 귀족의 아들 이라고 무시했다면, 그 시골 소년은 의사 가 되어 페니실린을 발명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처칠은 폐렴 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귀족아들 소년과 가난한 시골농부의 아들 소년!
이들의 깊은 우정으로 인해 한 사람은 의사가 되어 영약 페니실린을 개발해 인류를 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고, 또 한 사람은 두 번씩이나 받은 새생명으로 나라를 구하고 민주주의를 지킨 수상이 될 수 있었 다.
우리 모두 새겨볼 만한 ‘아름다운 인연‘에 대한 교훈이 아닐까요!
(31) 오늘 내가 슬픔을 넘어 기쁜 이유
리차드 위트장군과 그의 부인 한묘순 여사에 실화 이야기 6.25.한국전쟁 때 결단
<오늘 내가 슬픔을 넘어 기쁜 이유>
리차드 위트컴 장군(Richard S. Whitcomb)과 그의 부인 한묘숙 여사에 대한 전설적인
실화다.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장성, 그는 당시에 미군 군수사령관이었다.
1952년 11월 27일, 부산역 건너편 산 판자촌에 큰 불이 났다.
판자집도 변변히 없어 노숙자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피난민들은 부산역 건물과 인근에 있는 시장 점포 등이 유일한 잠자리였는데 대화재로 오갈 데가 없게 됐다. 입을 옷은 커녕 먹을 것조차 없었다.
이때 위트컴 장군은 군법을 어기고 군수창고를 열어 군용 담요와 군복, 먹을 것 등을 3만 명의 피난민들에게 골고루 나눠주었다.
이 일로 위트컴 장군은 연방 의회의 청문회에 불려갔다.
의원들의 쏟아지는 질책에 장군은 조용히 말했다.
"우리 미군은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지만, 미군이 주둔하는 곳의 사람들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그들을 돕고 구하는 것 또한 우리의 임무입니다. 주둔지의 민심을 얻지 못하면 우리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고, 이기더라도 훗날 그 승리의 의미는 쇠퇴할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하자, 의원들은 일제히 기립, 오래도록 박수를 쳤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 온 뒤 장군은 휴전이 되고도 돌아가지 않고, 군수기지가 있던 곳을 이승만 정부에 돌려주면서 "이곳에 반드시 대학을 세워달라."고 청하였다.
부산대학이 설립된 배경이다.
그러나 부산대 관계자도, 교직원도, 졸업생도 재학생도 이런 역사적 사실을 거의 모른다.
그리고 장군은 메리놀 병원을 세웠다.
병원기금 마련을 위해 그는 갓에 도포를 걸치고 이 땅에 기부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애썼다.
사람들은 '장군이 체신없이 왜 저러느냐'고 수근댔지만 개의치 않았고 온 맘과 힘을 쏟았다.
전쟁 기간 틈틈이 고아들을 도와온 위트컴 장군은 고아원을 지극정성으로 운영하던 한묘숙 여사와 결혼했다. 위트컴 장군이 전쟁 고아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다.
그리고 그는 부인에게 유언했다.
''내가 죽더라도 장진호 전투에서 미처 못 데리고 나온 미군의 유해를 마지막 한 구까지 찾아와 달라''고...
부인 한묘숙 여사는 그 약속을 지켰다.
북한은 장진호 부근에서 길죽길죽한 유골만 나오면 바로 한묘숙 여사에게로 가져왔고, 한 여사는 유골 한 쪽에 300불씩 꼬박꼬박 지불했다.
그렇게 북한이 한 여사에게 갖다 준 유골 중에는 우리 국군의 유해도 여럿 있었다.
하와이를 통해 돌려받은 우리 국군의 유해는 거의 대부분 한 여사가 북한으로부터 사들인 것들이다.
한 여사는 한 때 간첩 누명까지 쓰면서도 굴하지 않고 남편의 유언을 지켰다.
남편만큼이나 강한 여성이었다.
장군의 연금과 재산은 모두 이렇게 쓰였고, 장군 부부는 끝내 이 땅에 집 한 채도 소유하지 않은 채 40년 전에 이생을 달리했다.
부산 UN공원묘원에 묻혀있는 유일한 장군 출신 참전용사가 바로 위트컴 장군이다.
끝까지 그의 유언을 실현한 부인 한묘숙 씨도 장군과 합장되어 있다.
이 땅에는 이러한 장군을 기리는 동상 하나가 없다. 부산에도, 서울에도, 아니 부산대학교에도 메리놀병원에도 물론 없다.
그런데 오늘, 장군이 떠난지 꼭 40년 만에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위트컴 장군 조형물을 만들기로 결의했다.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국가 예산 말고, 재벌 팔을 비틀지도 말고, 70여 년 전 수혜를 입었던 피난민 3만 명, 딱 그 수만큼 1인당 1만 원씩 해서 일단 3억을 마련하기로 했다.
브라보!
민주주의의 생명은 참여다.
보은도 십시일반 참여해야 한다고.
오늘 그 첫 결의를 했다.
1만 원의 기적을 이루어보자.
70년 전, 전쟁고아들을 살뜰하게 살피던 위트컴 장군을 생각하면서, 메리놀 병원을 세워 병들고 아픈 이들을 어루만지던 장군의 손길처럼, 대학을 세워 이 땅에 지식인을 키우려던 그 철학으로, 부하의 유골 하나라도 끝까지 송환하려고 했던 마음을 생각하며 각자 내 호주머니에서 1만 원씩 내보자. 딱 커피 두 잔 값씩만 내보자.
1만 원의 기적이 한국병을 고칠 수도 있지 않을까?
'설마 이 땅에 1만원씩 낼 사람이 30만 명도 안 되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하니 또 내 마음은 두둥실 하늘을 날 것만 같다.
그리고 정부는 장군에게 무궁화 훈장을 추서한다는 소식이다. 너무 늦었지만 감사한 일이다.
정말 기쁜 날이다.
팝콘이 탁탁 터지듯이 그렇게 내 온 몸의 세포들이 기쁨에 겨워 꿈틀거린다.
에스프레소 덕분인가?
까뮈 엑스오 덕분인가?
이제 나는 죽어도 한묘숙 여사를 만나 웃으며 두 손을 잡을 수 있게 됐다.
브라보!
* 부산 출생인 박선영 국제대학교 교수의 페이스북 글입니다
(32) 국보 새한도의 뒷이야기/추사 김정희
세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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