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吳起爲魏將而攻中山, 軍人有病疽者, 吳起跪而自吮其膿, 傷者母立而泣. 人問曰:「將軍於若子如是, 尙何爲而泣?」 對曰:「吳起吮其父之創而父死, 今是子又將死也, 今吾是以泣.」
오기위위장이공중산, 군인유병저자, 오기궤이자연기농, 상자모립이읍. 인문왈:「장군어약자여시, 상하위이읍?」 대왈:「오기연기부지창이부사, 금시자우장사야, 금오시이읍.」
[解釋] 吳起가 魏나라 장수가 되어 中山을 공격할 적에, 병사들 중에 종기를 앓는 자가 있었는데, 吳起가 무릎을 꿇고 몸소 그 고름을 빨아주자, 종기를 앓는 자의 어미가 그 자리에서 슬피 울었다. 사람들이 묻기를, 「장군이 당신의 아들에게 이 정도로 대해주는데, 오히려 어찌하여 슬피 우는 것이오?」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吳起 장군이 그의 아비의 상처를 빨아주었는데 아비가 은혜에 감동하여 물러서지 않고 싸우다가 전사하였소. 이제 이 아이도 장차 전사할 것이니, 내가 이 때문에 우는 것이라오.」라고 하였다.
25.
趙主父令工施鉤梯而緣播吾, 刻疎人迹其上, 廣三尺, 長五尺, 而勒之曰:「主父常遊於此.」
조주보령공시구제이연파오, 각소인적기상, 광삼척, 장오척, 이륵지왈:「주보상유어차.」
[解釋] 趙나라 主父가 工人으로 하여금 갈고리가 달린 사다리를 설치하고 播吾山에 올라가서, 그 위에 사람의 발자국을 새기게 하되, 너비는 석 자로 하고, 길이는 다섯 자로 만들어, 거기에 새기기를, 「主父가 일찍이 이곳에서 노닐었다.」고 하였다.
26.
秦昭王令工施鉤梯而上華山, 以松柏之心爲博, 箭長八尺, 棊長八寸, 而勒之曰:「昭王嘗與天神博於此矣.」
진소왕령공시구제이상화산, 이송백지심위박, 전장팔척, 기장팔촌, 이륵지왈:「소왕상여천신박어차의.」
[解釋] 秦나라 昭王이 공인으로 하여금 갈고리가 달린 사다리를 설치하고 華山에 올라, 松柏의 고갱이로 博을 만들게 하되, 箭의 길이는 여덟 자로 하고, 棊의 길이는 여덟 치로 해서, 새기게 하기를, 「昭王이 일찍이 天神과 함께 여기서 博戱를 하였다.」고 하였다.
27.
文公反國, 至河, 令籩豆捐之, 席蓐捐之, 手足腁胝, 面目黧黑者後之. 咎犯聞之而夜哭, 公曰:「寡人出亡二十年, 乃今得反國, 咎犯聞之不喜而哭, 意不欲寡人反國邪?」
문공반국, 지하, 령변두연지, 석욕연지, 수족변지, 면목려흑자후지. 구범문지이야곡, 공왈:「과인출망이십년, 내금득반국, 구범문지불희이곡, 의불욕과인반국야?」
[解釋] 晉나라 文公이 망명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黃河에 이르렀을 적에, 명령하기를 籩과 豆를 버리고, 거적때기를 버리며, 손발에 굳은살이 박이고, 얼굴이 거무튀튀한 자는 뒤에 서도록 하였다. 咎犯이 이를 듣고 밤중에 소리 내어 울자, 文公이 이르기를, 「과인이 나라를 떠나 망명한 지 20년 만에, 이제 귀국하게 되었는데, 그대는 이 소식을 듣고서 기뻐하지 않고 소리 내어 울고 있으니, 과인이 귀국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오?」라고 하니,
犯對曰:「籩豆所以食也而君捐之, 席蓐所以臥也而君棄之, 手足腁胝、面目黧黑, 勞有功者也, 而君後之. 今臣與在後, 中不勝其哀, 故哭. 且臣爲君行詐僞以反國者衆矣, 臣尙自惡也, 而況於君?」 再拜而辭, 文公止之曰:「諺曰, 築社者, 㩷撅而置之, 端冕而祀之. 今子與我取之, 而不與我治之, 與我置之, 而不與我祀之, 焉可?」 乃解左驂而盟于河.
범대왈:「변두소이식야이군연지, 석욕소이와야이군기지, 수족변지、면목려흑, 로유공자야, 이군후지. 금신여재후, 중불승기애, 고곡. 차신위군행사위이반국자중의, 신상자오야, 이황어군?」 재배이사, 문공지지왈:「언왈, 축사자, 건궤이치지, 단면이사지. 금자여아취지, 이불여아치지, 여아치지, 이불여아사지, 언가?」 내해좌참이맹우하.
[解釋] 咎犯이 대답하기를, 「籩과 豆는 식사를 할 때 쓰던 것인데, 군주께서 버렸고, 거적때기는 잠잘 때 쓰던 것인데, 군주께서 버렸으며, 손발에 굳은살이 박이고, 얼굴이 거무튀튀한 자는 수고하여 공을 세운 자인데, 군주께서 뒤에 서도록 하였습니다. 지금 신도 뒤에 서게 되었으니, 마음속으로 슬픔을 견딜 수 없으므로 소리 내어 운 것입니다. 그리고 신은 군주께서 귀국하시도록 숱한 속임수를 썼으니, 저 스스로도 미운데, 하물며 군주께서는 어떠하시겠습니까?」라 하고, 두 번 절하고 떠나려고 하자, 文公이 말리며 이르기를, 「속담에 社稷을 지을 때는 옷을 걷어붙이고서 토지신의 神像을 세우고, 端冕을 갖추고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으니, 지금 그대가 나와 함께 나라를 얻었으되 나와 함께 나라를 다스리지 않겠다고 하니, 나와 함께 토지신의 신상을 세웠으되 나와 함께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하는 격이다.」라 하고, 이어 수레의 왼쪽 곁마를 베어 黃河에 맹세하였다.
28.
鄭縣人卜子, 使其妻爲袴, 其妻問曰:「今袴何如?」 夫曰:「象吾故袴.」 妻因毁新令如故袴.
정현인복자, 사기처위고, 기처문왈:「금고하여?」 부왈:「상오고고.」 처인훼신령여고고.
[解釋] 鄭縣 사람 卜子가, 아내로 하여금 바지를 만들게 하였는데, 그의 아내가 묻기를, 「이번 바지는 어떻게 만들까요?」라 하니, 남편이 말하기를, 「내가 입던 헌 바지처럼 만들라.」고 하였다. 그래서 아내가 새 옷을 해지게 해서 헌 바지처럼 만들었다.
29.
鄭縣人有得車軛者, 而不知其名, 問人曰:「此何種也?」 對曰:「此車軛也.」 俄又復得一, 問人曰:「此是何種也?」 對曰:「此車軛也.」 問者大怒曰:「曩者曰車軛, 今又曰車軛, 是何衆也? 此女欺我也.」 遂與之鬭.
정현인유득거액자, 이부지기명, 문인왈:「차하종야?」 대왈:「차거액야.」 아우부득일, 문인왈:「차시하종야?」 대왈:「차거액야.」 문자대노왈:「낭자왈거액, 금우왈거액, 시하중야? 차녀기아야.」 수여지투.
[解釋] 鄭縣 사람 중에 수레의 멍에를 주운 자가 있었는데, 그 이름을 몰라서 어떤 사람에게 묻기를, 「이것은 어떤 물건이오?」라고 하자,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이것은 수레의 멍에요.」라고 하였다. 얼마 뒤 또다시 하나를 주워서, 그 사람에게 묻기를, 「이것은 어떤 물건이오?」라고 하니,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이것은 수레의 멍에요.」라고 하자, 물었던 사람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지난번에 수레의 멍에라고 하더니 지금 또 수레의 멍에라고 하니, 이것이 어찌 그리 많단 말이오. 이것은 당신이 날 속인 것이로다.」고 하고는, 마침내 그와 싸웠다.
30.
衛人有佐弋者, 鳥至, 因先以其裷麾之, 鳥驚而不射也.
위인유좌익자, 조지, 인선이기권휘지, 조경이불사야.
[解釋] 衛나라 사람 중에 주살질을 돕는 자가 있었는데, 새가 다가오자, 먼저 두건을 흔들어 유인하려고 하였으나, 새가 놀라 날아가는 바람에 쏘아 맞히지 못하였다.
31.
鄭縣人卜子妻之市, 買鼈以歸, 過潁水, 以爲渴也, 因縱而飮之, 遂亡其鼈.
정현인복자처지시, 매별이귀, 과영수, 이위갈야, 인종이음지, 수망기별.
[解釋] 鄭縣 사람 卜子의 아내가 시장에 가서, 자라를 사서 돌아올 적에, 潁水를 건너다가, 자라가 목이 마를 것이라고 생각했으므로, 풀어주어 물을 마시게 하였는데, 마침내 자라를 잃어버렸다.
32.
夫少者侍長者飮, 長者飮亦自飮也.
부소자시장자음, 장자음역자음야.
[解釋] 어떤 젊은이가 어른을 모시고 술을 마실 적에 어른이 술을 마시면 자기도 마셨다.
一曰. 魯人有自喜者, 見長年飮酒不能釂則唾之, 亦效唾之.
일왈. 노인유자희자, 견장년음주불능조즉타지, 역효타지.
[解釋] 일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魯나라 사람으로 善行을 본받으려는 자가 있었는데, 연장자가 술을 마시다가 들이킬 수 없어서 게워내는 것을 보고는, 자기도 그것을 본받아서 게워내었다고 한다.
一曰. 宋人有少者欲效善, 見長者飮無餘, 非斟酒飮也而欲盡之.
일왈. 송인유소자욕효선, 견장자음무여, 비짐주음야이욕진지.
[解釋] 일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宋나라 사람 중에 善行을 본받고자 하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어른이 술을 남김없이 마시는 것을 보고는 술 마시기를 감당해내지도 못하면서 다 마시려고 하였다.
33.
書曰:「紳之束之.」 宋人有治者, 因重帶自紳束也. 人曰:「是何也?」 對曰:「書言之, 固然.」
서왈:「신지속지.」 송인유치자, 인중대자신속야. 인왈:「시하야?」 대왈:「서언지, 고연.」
[解釋] 옛 책에 말하기를, 「잘 묶고 잘 여며라.」고 하였는데, 宋나라 사람 중에 이 글을 연구한 사람이 자신의 허리띠를 두 겹으로 하여 허리를 죄었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어째서 그렇게 하는 것이오?」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책에서 그렇게 말해서 그대로 한 것이오.」라고 하였다.
34.
書曰:「旣雕旣琢, 還歸其樸.」 梁人有治者, 動作言學, 擧事於文, 曰難之, 顧失其實, 人曰:「是何也?」 對曰:「書言之固然.」
서왈:「기조기탁, 환귀기박.」 량인유치자, 동작언학, 거사어문, 왈난지, 고실기실, 인왈:「시하야?」 대왈:「서언지고연.」
[解釋] 옛 기록에 말하기를, 「새기고 다듬은 다음, 다시 원래의 소박함으로 돌아간다.」라고 하였는데, 梁나라 사람 중에, 이 기록을 연구한 사람이 행동과 말과 학문에 대해 늘 文飾을 일삼으면서 말하기를, 그 기록대로 하기가 어렵구나고 하였다. 이로 인해 도리어 실질을 잃었는데, 어떤 사람이 묻기를, 「어째서 그렇게 하는 것이오?」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기록에서 그렇게 말해서 그대로 한 것이오.」라고 하였다.
35.
郢人有遺燕相國書者, 夜書, 火不明, 因謂持燭者曰:「擧燭.」 云而過書擧燭, 擧燭, 非書意也, 燕相國受書而說之, 曰:「擧燭者, 尙明也, 尙明也者, 擧賢而任之.」 燕相白王, 王大說, 國以治, 治則治矣, 非書意也. 今世學者多似此類.
영인유유연상국서자, 야서, 화불명, 인위지촉자왈:「거촉.」 운이과서거촉, 거촉, 비서의야, 연상국수서이열지, 왈:「거촉자, 상명야, 상명야자, 거현이임지.」 연상백왕, 왕대열, 국이치, 치즉치의, 비서의야. 금세학자다사차류.
[解釋] 郢 땅 사람 중에 燕나라 相國에게 편지를 보내려는 자가 있었는데, 밤에 편지를 쓰는데 불빛이 밝지 않아서 촛불을 든 자에게 이르기를, 「촛불을 들라[擧燭].」라고 하고는, 편지에 擧燭이라고 잘못 썼는데, 擧燭은 편지에 쓰려고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燕나라 相國이 편지를 받아보고 기뻐하여, 말하기를, 「촛불을 든다[擧燭]는 것은 밝음을 높이라는 뜻이고, 밝음을 높인다는 것은, 賢者를 발탁하여 임용하라는 뜻이다.」고 하고는, 燕나라 相國이 왕에게 아뢰자, 왕이 크게 기뻐하여, 나라가 이 때문에 잘 다스려졌다. 나라가 잘 다스려진 것은, 잘 다스려진 것이지만, 편지의 본래 의도는 아니니, 지금 세상의 학자들 중에는 이와 비슷한 부류가 많다.
36.
鄭人有欲買履者, 先自度其足而置之其坐, 至之市, 而忘操之, 已得履, 乃曰:「吾忘持度.」 反歸取之, 及反, 市罷, 遂不得履, 人曰:「何不試之以足?」 曰:「寧信度, 無自信也.」
정인유욕매리자, 선자도기족이치지기좌, 지지시, 이망조지, 이득리, 내왈:「오망지도.」 반귀취지, 급반, 시파, 수부득리, 인왈:「하불시지이족?」 왈:「녕신도, 무자신야.」
[解釋] 鄭나라 사람 중에 신을 사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먼저 자기 발을 재고는 치수를 적은 것을 자리에 두고 시장에 이르러서야, 가지고 와야 하는 것을 잊었음을 알았다. 이미 신을 골라놓고서는 말하기를, 「내가 치수 적은 것을 갖고 오는 것을 잊었다.」고 하고, 그것을 가지러 돌아갔다. 다시 돌아왔을 때는 시장이 파해서 결국 신을 살 수가 없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어찌 발을 신에 재보지 않았소?」고 하자, 말하기를, 「차라리 치수를 잰 것은 믿을지언정, 내 발은 믿지 못하겠소.」라고 하였다.
37.
說四、王登爲中牟令, 上言於襄主曰:「中牟有士曰中章、胥己者, 其身甚修, 其學甚博, 君何不擧之?」 主曰:「子見之, 我將爲中大夫.」
설사、왕등위중모령, 상언어양주왈:「중모유사왈중장、서기자, 기신심수, 기학심박, 군하불거지?」 주왈:「자현지, 아장위중대부.」
[解釋] 해설 네 번째、壬登이 中牟의 令이 되어, 趙襄子에게 진언하여 아뢰기를, 「中牟에 中章과 胥己라는 선비가 있으니, 몸을 잘 닦았고 학문은 매우 해박합니다. 군주께서 어찌 기용하지 않습니까?」라고 하니, 趙襄子가 이르기를, 「그대가 그들을 나에게 알현시키시오. 내가 그들을 中大夫로 삼겠소.」라고 하였다.
相室諫曰:「中大夫, 晉重列也, 今無功而受, 非晉臣之意. 君其耳而未之目邪?」 襄主曰:「我取登旣耳而目之矣, 登之所取又耳而目之, 是耳目人絶無已也.」 王登一日而見二中大夫, 予之田宅, 中牟之人棄其田耘、賣宅圃, 而隨文學者邑之半.
상실간왈:「중대부, 진중렬야, 금무공이수, 비진신지의. 군기이이미지목야?」 양주왈:「아취등기이이목지의, 등지소취우이이목지, 시이목인절무이야.」 왕등일일이견이중대부, 여지전댁, 중모지인기기전운、매댁포, 이수문학자읍지반.
[解釋] 相室이 간하여 아뢰기를, 「中大夫는 晉나라의 중요한 지위인데, 지금 공적이 없는데도 그런 지위를 주는 것은 晉나라의 제도가 아닙니다. 군주께서는 귀로 듣기만 하였지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하셨습니다.」고 하자, 趙襄子가 이르기를, 「내가 壬登을 기용할 때 이미 耳目으로 확인하였는데, 임등이 천거하는 자에 대해 또 이목으로 확인한다면, 사람을 이목으로 확인하는 일이 결단코 끊이지 않을 것이다.」고 하였다. 壬登이 하루 만에 두 中大夫를 알현시키자, 趙襄子가 그들에게 토지와 집을 내렸다. 이에 中牟 사람들 중에 농사를 포기하고, 집과 채마밭을 팔고는, 학문에 종사하는 자들이 고을의 절반이나 되었다.
38.
叔向御坐平公請事, 公腓痛足痺轉觔而不敢壞坐, 晉國聞之, 皆曰:「叔向賢者. 平公禮之, 轉觔而不敢壞坐.」 晉國之辭仕託, 慕叔向者國之錘矣.
숙향어좌평공청사, 공비통족비전근이불감괴좌, 진국문지, 개왈:「숙향현자, 평공례지, 전근이불감괴좌.」 진국지사사탁, 모숙향자국지추의.
[解釋] 叔向이 晉나라 平公을 모시고 앉아 정사를 奏請할 적에, 평공이 장딴지가 쑤시고 발이 저리며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는데도 감히 앉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晉나라 백성들이 이 소식을 듣고 다들 말하기를, 「叔向은 현자이다. 평공이 그를 예우하여,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도 감히 앉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고 하였다. 晉나라 백성들 중에 벼슬하거나 의탁하기를 그만두고, 叔向을 흠모하여 배우려는 자들이 나라의 절반이나 되었다.
39.
鄭縣人有屈公者, 聞敵恐, 因死, 恐已, 因生.
정현인유굴공자, 문적공, 인사, 공이, 인생.
[解釋] 鄭縣 사람으로 屈公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적이 온다는 말을 들으면 두려워서 죽을 듯했다가, 적이 물러나 두려움이 그치면, 다시 깨어났다.
40.
趙主父使李疵視中山可攻不也, 還報曰:「中山可伐也, 君不亟伐, 將後齊、燕.」 主父曰:「何故可攻?」 李疵對曰:「其君見好巖穴之士, 所傾蓋與車以見窮閭隘巷之士以十數, 伉禮下布衣之士以百數矣.」
조주보사리자시중산가공불야, 환보왈:「중산가벌야, 군불극벌, 장후제、연.」 주보왈:「하고가공?」 이자대왈:「기군견호암혈지사, 소경개여거이견궁려애항지사이십수, 항례하포의지사이백수의.」
[解釋] 趙나라 主父(武靈王)가 李疵로 하여금 中山을 칠 만한지에 대해 살펴보게 하였는데, 이자가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중산은 칠 만합니다. 군주께서 서둘러 치지 않으면, 齊나라와 燕나라에 뒤쳐질 것입니다.」고 하였다. 주보가 이르기를, 「무슨 까닭으로 칠 만하다고 하는가?」라고 하니, 이자가 대답하기를, 「중산의 군주가 바위굴에 숨어사는 隱者를 드러내기를 좋아해서, 수레 덮개를 기울이고 수레를 나란히 한 채 초라하고 좁은 골목에 사는 선비를 만난 것은 열 차례이고, 대등한 예로 벼슬이 없는 선비에게 몸을 낮춘 것은 백 차례입니다.」고 하였다.
君曰:「以子言論, 是賢君也, 安可攻?」 疵曰:「不然. 夫好顯巖穴之士而朝之, 則戰士怠於行陳, 上尊學者, 下士居朝, 則農夫惰於田. 戰士怠於行陳者, 則兵弱也, 農夫惰於田者則國貧也. 兵弱於敵, 國貧於內, 而不亡者, 未之有也, 伐之不亦可乎?」 主父曰:「善.」 擧兵而伐中山, 遂滅也.
군왈:「이자언론, 시현군야, 안가공?」 자왈:「불연. 부호현암혈지사이조지, 즉전사태어행진, 상존학자, 하사거조, 즉농부타어전. 전사태어행진자, 즉병약야, 농부타어전자즉국빈야. 병약어적, 국빈어내, 이불망자, 미지유야, 벌지불역가호?」 주보왈:「선.」 거병이벌중산, 수멸야.
[解釋] 군주가 이르기를, 「그대의 말대로라면, 바로 賢君인데, 어찌 칠 만하다고 하는가?」라고 하니, 이자가 대답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무릇 바위굴에 숨어사는 선비를 드러내기를 좋아하여 그를 조정에 나오게 한다면, 戰士들은 전쟁터에서 힘써 싸우려 하지 않을 것이고, 위로 학자를 존중하고, 아래로 선비를 예우하여 조정에 세우면, 농부들은 농사를 게을리 할 것입니다. 전사들이 전쟁터에서 힘써 싸우려 하지 않으면, 군대는 약해질 것이고, 농부들이 농사를 게을리 하면, 나라는 가난해질 것입니다. 군대가 적보다 약하고, 나라는 안으로 가난한데도, 망하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니 치는 것이 또한 가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主父가 말하기를, 「좋다.」고 하고는, 군대를 일으켜 中山을 쳐서 마침내 멸망시켰다.
41.
說五、齊桓公好服紫, 一國盡服紫, 當是時也, 五素不得一紫. 桓公患之, 謂管仲曰:「寡人好服紫, 紫貴甚. 一國百姓好服紫不已, 寡人奈何?」 管仲曰:「君欲何不試勿衣紫也?」 謂左右曰:「吾甚惡紫之臭.」 於是左右適有衣紫而進者, 公必曰:「少卻, 吾惡紫臭.」 公曰:「諾.」 於是日郞中莫衣紫, 其明日國中莫衣紫, 三日境內莫衣紫也.
설오、제환공호복자, 일국진복자, 당시시야, 오소부득일자. 환공환지, 위관중왈:「과인호복자, 자귀심. 일국백성호복자불이, 과인내하?」 관중왈:「군욕하불시물의자야?」 위좌우왈:「오심오자지취.」 어시좌우적유의자이진자, 공필왈:「소각, 오오자취.」 공왈:「낙.」 어시일랑중막의자, 기명일국중막의자, 삼일경내막의자야.
[解釋] 해설 다섯 번째、齊나라 桓公이 자색 옷을 즐겨 입자,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자색 옷을 입었으므로, 이 당시에 다섯 필의 흰 옷감으로도 한 필의 자색 옷감을 구할 수 없었다. 桓公이 이를 근심하여, 管仲에게 이르기를, 「과인이 자색 옷을 즐겨 입으니, 자색 옷이 매우 귀해졌소. 온 나라 백성들이 자색 옷 즐겨 입기를 그만두지 않으니, 과인이 어찌해야 하겠소?」라고 하니, 管仲이 대답하기를, 「군주께서 백성들이 자색 옷을 입는 것을 그만두게 하고자 한다면, 어찌 군주께서 자색 옷을 그만 입지 않으십니까? 주위 사람들에게 나는 자색 옷의 냄새가 몹시 싫다고 하소서. 그리하여 주위 사람들 중에 자색 옷을 입고 나오는 자가 있으면, 군주께서 꼭 조금 물러나라, 나는 자색 옷의 냄새가 싫다고 하소서.」라고 하였다. 桓公이 말하기를, 「알았소.」라고 하였다. 그날로 궁궐 안에 자색 옷을 입는 자가 없어졌고, 그 다음날에는 도성 안에 자색 옷을 입는 자가 없어졌으며, 사흘째에는 온 나라 안에 자색 옷을 입는 자가 없어졌다.
一曰. 齊王好衣紫, 齊人皆好也. 齊國五素不得一紫, 齊王患紫貴. 傅說王曰:「詩云, 不躬不親, 庶民不信. 今王欲民無衣紫者, 王請自解紫衣而朝. 群臣有紫衣進者, 曰益遠, 寡人惡臭.」 是日也, 郞中莫衣紫, 是月也, 國中莫衣紫, 是歲也, 境內莫衣紫.
일왈. 제왕호의자, 제인개호야. 제국오소부득일자, 제왕환자귀. 부설왕왈:「시운, 불궁불친, 서민불신. 금왕욕민무의자자, 왕청자해자의이조. 군신유자의진자, 왈익원, 과인오취.」 시일야, 랑중막의자, 시월야, 국중막의자, 시세야, 경내막의자.
[解釋] 일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齊나라 왕이 자색 옷을 즐겨 입으니, 제나라 사람들이 모두 자색 옷을 즐겨 입었으므로, 제나라에서 다섯 필의 흰 옷감으로도 한 필의 자색 옷감을 구할 수 없었다. 제나라 왕이 자색 옷이 귀해진 것을 근심하자, 師傅가 왕에게 권하여 아뢰기를, 「≪詩經≫ <小雅 節南山>에 군주가 몸소 정사를 보지 않으면 백성들이 믿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지금 왕께서 백성들이 자색 옷을 입지 않기를 원하신다면, 청컨대 왕께서는 스스로 자색 옷을 벗고 조회에 나가소서. 여러 신하들 중에 자색 옷을 입고 조정에 나온 자가 있으면, 더 멀리 물러나라. 과인은 자색 옷의 냄새가 싫다고 하십시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날로 궁궐 안에 자색 옷을 입는 자가 없어졌고, 그달에는 도성 안에 자색 옷을 입는 자가 없어졌으며, 그해에는 나라 안에 자색 옷을 입는 자가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