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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事或奪之而反與之, 或與之而反取之. 智伯求地於魏宣子, 宣子弗欲與之. 任登曰:「智伯之强, 威行於天下. 求地而弗與, 是爲諸侯先受禍也. 不若與之.」
사혹탈지이반여지, 혹여지이반취지. 지백구지어위선자, 선자불욕여지. 임등왈:「지백지강, 위행어천하. 구지이불여, 시위제후선수화야. 불약여지.」
[解釋] 사물에는 빼았었다가 도리어 주는 것이 있고, 혹은 주었다가 오히려 뺏어 버리고 마는 경우도 있다. 晉나라의 智伯이 魏나라의 宣子에게 땅을 요구하자, 선자는 선뜻 그에게 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任登은 이렇게 말하였다. 「지백이 강한 것은, 그 위세가 천하에 떨칠 정도입니다. 토지를 요구하는 데 주지 않게 되면, 이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먼저 禍를 받게 될 것입니다. 주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습니다.」
宣子曰:「求地不已, 爲之奈何?」 任登曰:「與之使喜, 必將復求地於諸侯. 諸侯必植耳. 與天下同心而圖之一心, 所得者非直吾所亡也.」
선자왈:「구지불이, 위지내하?」 임등왈:「여지사희, 필장부구지어제후. 제후필식이. 여천하동심이도지일심, 소득자비직오소망야.」
[解釋] 그러자 선자는 이렇게 물었다. 「한없이 땅을 요구해 오면, 이를 어찌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임등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에게 주어서 기쁘게 해주면, 틀림없이 또 다른 제후에게도 토지를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면 제후들은 틀림없이 지백의 횡포에 귀를 곤두세울 것입니다. 그러한 때야말로 천하의 제후들과 하나로 뭉쳐 도모하게 되면, 우리의 손에 들어오는 것은 빼앗겼던 땅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魏宣子裂地而授之. 又求地於韓康子. 韓康子不敢不予. 諸侯皆恐. 又求地於趙襄子, 襄子弗與. 於是智伯乃從韓魏, 圍襄子於晉陽.
위선자열지이수지. 우구지어한강자. 한강자불감불여. 제후개공. 우구지어조양자, 양자불여. 어시지백내종한위, 위양자어진양.
[解釋] 그래서 魏宣子는 토지를 할양해 주었다. 또한 지백은 韓나라의 康子에게도 토지를 요구하였다. 韓康子 역시 땅을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후들은 모두 두려워하게 되었다. 또한 趙나라 襄子에게도 토지를 요구하였는데, 趙나라 襄子는 영토를 할양해 주지 않았다. 그렇게 되자 지백은 韓과 魏를 거느리고, 趙나라 襄子를 晉陽에서 포위를 하였다.
三國通謀. 擒智伯而三分其國. 此所謂'奪人而反爲人所奪者也.' 何謂'與之而反取之?' 晉獻公欲假道於虞以伐虢, 遺虞垂棘之璧與屈産之乘. 虞公惑於璧與馬, 而欲與之道.
삼국통모. 금지백이삼분기국. 차소위'탈인이반위인소탈자야.' 하위'여지이반취지?' 진헌공욕가도어우이벌괵, 유우수극지벽여굴산지승. 우공혹어벽여마, 이욕여지도.
[解釋] 그러나 韓、魏、趙 세 나라는 몰래 내통하여 도모하였다. 마침내 지백을 사로잡고 그의 나라인 晉나라를 三分하고 말았다. 이상이 이른바 '남에게서 뺏었다가 도리어 남에게 빼앗긴다.'라고 하는 것이다. '준 다음에 도리어 빼앗는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晉나라 獻公은 虞나라의 길을 빌려 虢을 치려는 생각에서, 우나라에 垂棘이라는 특산물인 美玉과 屈地의 특산물인 良馬를 선물로 보내었다. 그러자 우공은 이 선물들에 혹하여, 길을 빌려 주려고 하였다.
宮之奇諫曰:「不可, 夫虞之與虢, 若車之有輪, 輪依於車. 車亦依輪. 虞之與虢, 相恃而勢也. 若假之道, 虢朝亡而虞夕從之矣.」 虞公弗聽, 遂假之道. 荀息伐虢, 遂克之. 還反伐虞, 又拔之. 此所謂'與之而反取者也.'
궁지기간왈:「불가, 부우지여괵, 약거지유륜, 윤의어거. 거역의륜. 우지여괵, 상시이세야. 약가지도, 괵조망이우석종지의.」 우공불청, 수가지도. 순식벌괵, 수극지. 환반벌우, 우발지. 차소위'여지이반취자야.'
[解釋] 그러자 宮之奇가 나서서 이렇게 간언하였다. 「안 됩니다. 무릇 우나라와 괵나라의 관계는, 수레[車]와 바퀴[輪]와 같은 관계인데, 바퀴는 수레에 의지합니다. 수레 역시 바퀴에 의지합니다. 우나라와 괵나라는 서로 의지하면서, 서로가 믿고 의지하면서 세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만일 길을 빌려 준다면, 괵나라는 아침에 멸망하고 우나라는 그날 저녁 때 그 뒤를 잇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공은 그 말을 듣지 않고, 마침내 길을 빌려 주고 말았다. 그리하여 荀息은 괵나라를 쳐서, 마침내 이를 정벌하였다. 그리고 돌아오다가 우나라를 쳐서, 역시 함락시켰다. 이상이 이른바 '주었다가 도리어 뺏는다.'고 하는 것이다.
09
聖王布德施惠, 非求其報於百姓也. 郊望禘嘗, 非求福於鬼神也. 山致其高而雲起焉, 水致其深而蛟龍生焉, 君子致其道, 而福祿歸焉.
성왕포덕시혜, 비구기보어백성야. 교망체상, 비구복어귀신야. 산치기고이운기언, 수치기심이교룡생언, 군자치기도, 이복록귀언.
[解釋] 聖王이 德을 펴고 은혜를 베푸는 것은, 백성들에게 그 보답을 바라고서 하는 것은 아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日月星辰에 제사를 지내며, 宗廟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귀신에게 복을 빌기 때문이 아닌 것이다. 산은 그 높이가 極에 이르러야만 雲雨가 일어나고, 물은 그 깊이가 極에 이르러야만 蛟龍이 생겨나며, 君子는 그 道가 極에 이르러야만, 福祿이 돌아오게 된다.
夫有陰德者必有陽報, 有陰行者必有昭名. 古者, 溝防不脩, 水爲民害. 禹鑿龍門, 辟伊闕. 平治水土, 使民得陸處.
부유음덕자필유양보, 유음행자필유소명. 고자, 구방불수, 수위민해. 우착용문, 벽이궐. 평치수토, 사민득육처.
[解釋] 무릇 陰德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陽報가 있으며, 陰行을 행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뚜렷한 名聲이 있게 된다. 옛날에는, 用水路와 堤防이 갖추어지지 않아서, 水害는 백성들을 괴롭혔다. 그래서 禹임금은 龍門을 뚫어 개척하였고, 伊闕의 산을 깎아 내었다. 물과 흙을 평탄하게 하여, 백성들이 육지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였다.
百姓不親, 五品不愼. 契敎以君臣之義, 父子之親, 夫妻之辨, 長幼之序. 田野不脩, 民食不足. 后稷乃敎之辟地墾草, 糞土種穀, 令百姓家給人足.
백성불친, 오품불신. 계교이군신지의, 부자지친, 부처지변, 장유지서. 전야불수, 민식부족. 후직내교지벽지간초, 분토종곡, 영백성가급인족.
[解釋] 옛날의 백성들은 서로 사이가 친하지 못하였고, 인륜의 질서인 五品은 바르게 행하여 지지 않았다. 그래서 契은 君臣之義와, 父子之親과, 부부의 분별인 夫妻之辨과, 長幼之序를 가르치게 되었다. 옛날에는 밭과 들은 경작되지 않았고, 백성들의 식량은 부족하였다. 后稷은 그들에게 토지를 개간하고 풀을 베어, 퇴비를 만들어 곡식을 심는 것을 가르쳐서, 백성들로 하여금 집집마다 식량이 넘쳐나고 사람마다 풍족하였다.
故三后之後, 無不王者有陰德也. 周室衰, 禮義廢, 孔子以三代之道, 敎導於世. 其後繼嗣至今不絶者, 有隱行也.
고삼후지후, 무불왕자유음덕야. 주실쇠, 예의폐, 공자이삼대지도, 교도어세. 기후계사지금부절자, 유은행야.
[解釋] 그러므로 三后의 후예들로서, 왕이 되지 않은 자가 없었는데 그것은 陰德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周나라 王室이 쇠미해 지고, 禮義가 폐하여 지자, 孔子는 夏、殷、周 三代의 道에 따라서, 세상을 배움으로 이끌었다.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後嗣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된 것은, 그러한 숨은 陰行 있었기 때문이다.
秦王趙政兼呑天下而已, 智伯侵地而滅, 商鞅支解, 李斯車裂. 三代種德而王, 齊桓繼絶而霸. 故樹黍者不獲稷, 樹怨者無報德.
진왕조정겸탄천하이이, 지백침지이멸, 상앙지해, 이사거열. 삼대종덕이왕, 제환계절이패. 고수서자불획직, 수원자무보덕.
[解釋] 秦나라의 왕인 趙政은 천하를 모두 집어 삼켰으면서도 망하였고, 智伯은 토지를 침탈했으면서도 멸망을 당하였고, 商鞅도 몸이 찢어지는 형벌에 의해 죽었고, 李斯도 車裂刑으로 죽었다. 三代는 德을 심은 다음에 王者가 되었고, 齊나라 桓公은 끊어진 세상을 이었으며, 나중에는 覇者가 되었다. 그러므로 메기장[黍]을 심은 자가 찰기장[稷]을 수확할 리가 만무하고, 원한을 심은 자는 덕으로 보답 받을 수 없는 것이다.
10
昔者宋人好善者. 三世不解. 家無故而黑牛生白犢. 以問先生, 先生曰:「此吉祥. 以饗鬼神.」 居一年. 其父無故而盲. 牛又復生白犢. 其父又復使其子以問先生. 其子曰:「前聽先生言而失明. 今又復問之, 奈何?」
석자송인호선자. 삼세불해. 가무고이흑우생백독. 이문선생, 선생왈:「차길상. 이향귀신.」 거일년. 기부무고이맹. 우우부생백독. 기부우부사기자이문선생. 기자왈:「전청선생언이실명. 금우부문지, 내하?」
[解釋] 옛날 宋나라 사람으로 善行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三代에 걸쳐서 태만히 하는 일이 없었다. 어느 때 그 집에서 이렇다고 할 이유도 없이 검정소가 흰 송아지를 낳았다. 이에 대하여 長老에게 묻자, 장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은 吉祥이오. 귀신에게 바치도록 하시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그 집의 아버지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소는 또 하얀 송아지를 낳았다. 아버지는 또 아들을 보내어 그 장로에게 묻도록 하자, 그 아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전에 장로의 말대로 하였더니 아버지는 지금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또 물어 보라고 하시니, 어찌된 일입니까?」
其父曰:「聖人之言, 先忤而後合. 其事未究, 固試往復問之.」 其子又復問先生, 先生曰:「此吉祥也. 復以饗鬼神.」 歸致命其父, 其父曰:「行先生之言也.」 居一年, 其子又無故而盲. 其後楚攻宋圍其城.
기부왈:「성인지언, 선오이후합. 기사미구, 고시왕부문지.」 기자우부문선생, 선생왈:「차길상야. 부이향귀신.」 귀치명기부, 기부왈:「행선생지언야.」 거일년, 기자우무고이맹. 기후초공송위기성.
[解釋] 그러자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성인의 말은, 처음에는 틀렸더라도 나중에는 맞는 법이다. 이 사건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니, 한 번 더 가서 물어 보도록 하여라.」 그래서 그 아들은 다시 장로를 찾아 가서 물었더니, 장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은 吉祥이다. 다시 귀신에게 바치도록 하게.」 아들이 돌아와서 아버지에게 복명을 하자, 그 아버지는 말하기를, 「그 장로의 말대로 하여라.」고 하였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지난 후에는, 그 집의 아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후 楚나라가 宋나라에 공격하여 성을 포위하였다.
當此之時, 易子而食, 析骸而炊. 丁壯者死, 老病童兒皆上城, 牢守而不下. 楚王大怒, 城已破, 諸城守者皆屠之. 此獨以父子盲之故. 得無乘城. 軍罷圍解, 則父子俱視.
당차지시, 역자이식, 석해이취. 정장자사, 노병동아개상성, 뢰수이불하. 초왕대노, 성이파, 제성수자개도지. 차독이부자맹지고. 득무승성. 군파위해, 즉부자구시.
[解釋] 이때 당시에 송나라 사람들은, 제 자식을 바꾸어 잡아먹었고, 사람의 해골을 쪼개어 불을 때는 참혹한 상태였다. 또한 젊은이들은 모두 전사를 하자, 병든 늙은이와 아이들까지 성벽에 올라가, 수비를 굳히며 항복을 하지 않았다. 이에 楚나라 왕은 크게 노하여, 즉시 성을 쳐부수고, 여기저기서 성벽을 수비하던 자들을 모두 도륙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아버지와 아들은 눈이 보이지 않는지라, 성벽에 올라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초나라 군사들이 포위를 풀고 돌아갔을 때, 그 아버지와 아들의 눈은 원래와 마찬가지로 보이게 되었다.
夫禍福之轉而相生, 其變難見也. 近塞上之人, 有善術者. 馬無故亡而入胡. 人皆弔之, 其父曰:「此何遽不爲福乎?」 居數月, 其馬將胡駿馬而歸. 人皆賀之, 其父曰:「此何遽不能爲禍乎?」
부화복지전이상생, 기변난견야. 근새상지인, 유선술자. 마무고망이입호. 인개조지, 기부왈:「차하거불위복호?」 거수월, 기마장호준마이귀. 인개하지, 기부왈:「차하거불능위화호?」
[解釋] 대저 禍福은 서로 돌고 돌면서 나타나는 것이요, 그 변화는 짐작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국경지대의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으로, 術法이 교묘한 자가 있었다. 이 집의 말[馬]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도망처서 胡 땅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모두 이 사건을 동정하였는데, 그 집의 아버지는 말하기를, 「이런 일이 어찌 福이 되지 않으리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났을 때, 그 말이 胡 땅의 駿馬를 데리고 돌아 왔다. 사람들은 모두 이 사건을 축복하였는데, 그 집의 아버지는 말하기를, 「이런 일이 어찌 禍가 되지 않으리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家富良馬, 其子好騎, 墮而折其脾. 人皆弔之, 其父曰:「此何遽不爲福乎?」 居一年, 胡人大入塞. 丁壯者引弦而戰, 近塞之人, 死者十九. 此獨以跛之故, 父子相保. 故福之爲禍, 禍之爲福, 化不可極, 深不可測也.
가부양마, 기자호기, 타이절기비. 인개조지, 기부왈:「차하거불위복호?」 거일년, 호인대입새. 정장자인현이전, 근새지인, 사자십구. 차독이파지고, 부자상보. 고복지위화, 화지위복, 화불가극, 심불가측야.
[解釋] 그래서 이 집에는 좋은 말들이 많아지게 되었는데, 그 아들이 승마를 즐기다가, 落馬하여 넓적다리가 부러졌다. 사람들은 모두 이 사건을 동정하였는데, 그 집의 아버지는 말하기를, 「이런 일이 어찌 福이 되지 않으리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후 1년이 지나자, 胡人들이 대거 국경을 넘어서 쳐들어 왔다. 젊은이들은 활들 들고 전쟁에 나가 싸웠는데, 국경 일대의 사람들은, 열 명 중에 아홉은 모두 죽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절름발이가 되었던 까닭에, 이집의 아버지와 아들은 살아남게 되었다. 그러므로 福이 禍가 되고, 禍가 福이 되는, 이러한 轉變의 상황을, 예측하기란 가히 어려운 것이다.
11
或直於辭而不害於事者, 或虧於耳以忤於心而合於實者. 高陽魋將爲室, 問匠人, 匠人對曰:「未可也. 木尙生, 加塗其上, 必將撓. 以生材任重塗, 今雖成, 後必敗.」
혹직어사이불해어사자, 혹휴어이이오어심이합어실자. 고양퇴장위실, 문장인, 장인대왈:「미가야. 목상생, 가도기상, 필장요. 이생재임중도, 금수성, 후필패.」
[解釋] 하는 말로서는 적합하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 있고, 귀로 듣는 바로는 납득되지 않고, 마음에 들어맞지 않더라도 실제로는 적합한 것이 있다. 高陽魋가 장차 집을 짓기 위해서, 목수에게 상담하여 물었는데, 목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직은 안 됩니다. 재목이 생나무이기 때문에, 그 위에다가 흙을 바르면, 틀림없이 휘어지고 말 것입니다. 생나무에 무거운 흙을 바르는 경우에는, 지금 당장은 비록 괜찮을지라도, 나중에는 틀림없이 무너지게 됩니다.」
高陽魋曰:「不然. 夫木枯則益勁塗乾則益輕. 以勁材任輕塗, 今雖惡, 後必善.」 匠人窮於辭. 無以對, 受令而爲室. 其始成, 竘然善也, 而後果敗. 此所謂'直於辭而不可用者也.'
고양퇴왈:「불연. 부목고칙익경도간즉익경. 이경재임경도, 금수악, 후필선.」 장인궁어사. 무이대, 수령이위실. 기시성, 구연선야, 이후과패. 차소위'직어사이불가용자야.'
[解釋] 그러자 高陽魋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럴 리가 없어. 무릇 나무는 마르면 점점 강해지고 흙은 마르면 점점 가벼워지게 마련일세. 강한 재목에 가벼운 흙을 바르는 것인 즉, 지금 당장은 비록 나쁘다고 할지라도, 나중에는 반드시 좋아질 것이야.」 이에 목수는 대답할 말을 잃었다. 목수는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집을 지었다. 갓 지었을 때에는, 보기에 썩 좋았으나, 얼마가 지나자 과연 무너지고 말았다. 이것이 이른바, '말로는 올바르지만 실제로는 쓸모가 없다.'고 하는 말이다.
何謂虧於耳, 忤於心而合於實? 靖郭君將城薛, 賓客多止之, 弗聽. 靖郭君謂謁者曰:「無爲賓通言.」 齊人有請見者曰:「臣請道三言而已. 過三言請烹.」 靖郭君聞而見之. 賓趨而進, 再拜而興, 因稱曰:「海、大、魚!」 則反走.
하위휴어이, 오어심이합어실? 정곽군장성설, 빈객다지지, 불청. 정곽군위알자왈:「무위빈통언.」 제인유청견자왈:「신청도삼언이이. 과삼언청팽.」 정곽군문이견지. 빈추이진, 재배이흥, 인칭왈:「해、대、어!」 즉반주.
[解釋] 귀로 듣기에는 납득이 안 되고, 마음에 들어맞지 않지만 실제로는 적합한 것은 어떤 경우일까? 靖郭君이 장차 薛땅에 城을 쌓으려고 하자, 빈객들이 몰려와서 말렸지만, 정곽군은 이를 듣지 않았다. 靖郭君은 謁者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빈객들의 말을 아뢰지 말라.」 그런데 그때 정곽군을 꼭 만나고 싶다는 齊나라 사람이 있었는데, 「제가 청하건대 세 마디의 말만 하게 해주십시오. 세 마디 이상의 말을 지껄이면 삶아서 죽이시기를 청합니다.」 정곽군은 그의 말을 들어 보기로 하였다. 그 빈객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서, 재배를 한 다음 몸을 일으키며, 이에 외치며 말하였다. 「海、大、魚!」 그리고는 몸을 홱 돌려 달려 나갔다.
靖郭君止之曰:「願聞其說.」 賓曰:「臣不敢以死爲熙.」 靖郭君曰:「先生不遠道而至此, 爲寡人稱之.」 賓曰:「海、大、魚, 網弗能止也, 釣弗能牽也. 蕩而失水, 則螻螘皆得志焉. 今夫齊, 君之淵也. 君失齊, 則薛能自存乎?」
정곽군지지왈:「원문기설.」 빈왈:「신불감이사위희.」 정곽군왈:「선생불원도이지차, 위과인칭지.」 빈왈:「해、대、어, 망불능지야, 조불능견야. 탕이실수, 즉루의개득지언. 금부제, 군지연야. 군실제, 즉설능자존호?」
[解釋] 정곽군은 그를 불러 세워 멈추게 하고, 「방금 한 말의 의미를 들려주시오.」라고 하자, 빈객은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감히 목숨을 걸면서까지 희롱을 할 수는 없습니다.」 정곽군은 이렇게 말하였다. 「선생은 먼 길을 마다 않고 여기까지 온 것이니, 나를 위하여 말해 주시오.」 빈객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바다[海]의 큰[大] 물고기[魚]는, 그물을 치더라도 능히 가둘 수가 없고, 낚시에 걸려도 끌어 올릴 수가 없습니다. 함부로 날뛰다가 육지에 올라와 물을 잃게 되면, 땅강아지나 개미가 제멋대로 먹어 치웁니다. 그런데 지금 제나라는, 당신에게 있어서 연못이나 같습니다. 당신께서 그 제나라를 잃으신다면, 薛 땅이 스스로 존립할 수 있겠습니까?」
靖郭君曰:「善.」 乃止不城薛. 此所謂'虧於耳,' 忤於心, 而得事實者也. 夫以無城薛止城薛, 其於以行說, 乃不若海大魚. 故物或遠之而近, 或近之而遠.
정곽군왈:「선.」 내지불성설. 차소위'휴어이,' 오어심, 이득사실자야. 부이무성설지성설, 기어이행설, 내불약해대어. 고물혹원지이근, 혹근지이원.
[解釋] 정곽군은 흔쾌히 대답하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는 공사를 중지시킴으로써 薛 땅에 성을 쌓지 않았다. 이상이 이른바 '귀로 듣는 것으로는 납득이 안 되고, 마음에 들어맞는 생각이 아니더라도, 실제로는 적합한 경우가 있다. 무릇 설 땅에 성을 쌓지 말라고 하면서, 설땅의 축성을 중단시키려는 것은, 그 설득법에 있어서, 海大魚라고 말하는 것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처럼 사물에는 멀어 지면서도 오히려 가까워지는 것이 있고, 혹은 가까워지면서도 오히려 멀어져 가는 것이 있다.
12
或說聽計當而身疏, 或言不用、計不行而益親. 何以明之? 三國伐齊, 圍平陸. 括子以報於牛子曰:「三國之地不接於我, 踰隣國而圍平陸. 利不足貪也. 然則求名於我也. 請以齊侯往.」
혹설청계당이신소, 혹언불용、계부행이익친. 하이명지? 삼국벌제, 위평육. 괄자이보어우자왈:「삼국지지부접어아, 유린국이위평육. 이부족탐야. 연즉구명어아야. 청이제후왕.」
[解釋] 의견이 받아 들여 지고 계획이 그대로 되었는데도, 오히려 그 자신은 소외당하는 일이 있으며, 혹은 발언이 채택되지 않고 계획도 실행되지 않았는데도, 도리어 총애가 더해지는 경우가 있다. 무엇으로 이러한 것을 밝힐 수 있겠는가? 韓、魏、趙 세 나라가 제나라를 치려고, 平陸의 땅을 포위하였다. 括子가 牛子에게 보고하기를, 「韓、魏、趙 세 나라의 영토는 우리나라와 접하고 있지 않은데, 이웃한 나라를 넘어서까지 평륙의 땅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또한 평륙은 利益을 탐내기에 족할 땅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나라에 대하여 명성을 얻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청하건대 齊侯를 모시고 마땅한 땅으로 가십시오.」라고 하였다.
牛子以爲善. 括子出, 無害子入. 牛子以括子言告無害子, 無害子曰:「異乎臣之所聞.」 牛子曰:「國危而不安, 患結而不解, 何謂貴智?」
우자이위선. 괄자출, 무해자입. 우자이괄자언고무해자, 무해자왈:「이호신지소문.」 우자왈:「국위이불안, 환결이불해, 하위귀지?」
[解釋] 牛子는 좋다고 대답하였다. 괄자가 나가자, 無害子가 들어왔다. 우자는 괄자의 말을 무해자에게 들려주었는데, 무해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제가 듣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자는 말하기를,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어서 安秦하지 못하고, 患禍에 휘말려 있으며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는 때에, 지식이라고 이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無害子曰:「臣聞之, 有裂壤土以安社稷者, 聞殺身破家以存其國者, 不聞出其君以爲封疆者.」 牛子不聽無害子之言, 而用括子之計, 三國之兵罷而平陸之地存.
무해자왈:「신문지, 유열양토이안사직자, 문살신파가이존기국자, 불문출기군이위봉강자.」 우자불청무해자지언, 이용괄자지계, 삼국지병파이평육지지존.
[解釋] 그러자 무해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듣기로는, 영토를 할양해 주더라도 사직을 안정시켜야 하며, 내 몸이 죽어서 집안이 멸망하더라도 나라를 존속시켜야 한다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하였으나 國君을 모시고 감으로써 領國을 지켜야 한다는 말은 아직 들어 보지를 못하였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우자는 무해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괄자의 계략을 채택하였는데, 韓、魏、趙 세 나라의 군대는 물러가고 평륙의 영토는 남겨졌다.
自此以後, 括子日以疏, 無害子日以進. 故謀患而患解, 圖國而國存, 括子之智得矣. 無害子之慮, 無中於策, 謀無益於國, 然而心調於君, 有義行也.
자차이후, 괄자일이소, 무해자일이진. 고모환이환해, 도국이국존, 괄자지지득의. 무해자지려, 무중어책, 모무익어국, 연이심조어군, 유의행야.
[解釋] 그 이후로, 괄자는 더욱 소외를 당하게 되었고, 무해자는 날로 승진을 거듭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患禍의 해소를 꾀하였고, 그대로 실천되어 나라의 존속을 이루어 내는 데에, 괄자의 지략은 한 몫을 하였었던 것이다. 한편 무해자의 생각은, 계획에 합치되지 않았고, 계획은 나라에 도움이 되지 못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러나 그의 마음이 國軍에게 받아들여진바 되었던 것은, 義에 맞는 행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今人待冠而飾首, 待履而行地, 冠履之於人也, 寒不能煖, 風不能障, 暴不能蔽也. 然而冠冠履履者, 其所自託者然也.
금인대관이식수, 대리이행지, 관리지어인야, 한불능난, 풍불능장, 폭불능폐야. 연이관관리리자, 기소자탁자연야.
[解釋] 예를 들면 지금 사람들은 冠이 있었냐만 비로소 머리를 장식할 수 있고, 신발이 있어야 비로소 땅을 걸어가는데, 관이나 신발은 사람에게 있어서, 추위를 따뜻하게 녹여주는 것도 아니려니와, 바람을 막아주는 것도 아니며, 햇볕을 가려주는 것도 아닌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관을 쓰고 신발을 신는 것은, 그 사람 자신이 의지하는 바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夫咎犯戰勝城濮, 而雍季無尺寸之功. 然而雍季先賞, 而咎犯後存者, 其言有貴者也. 故義者天下之所賞也. 百言百當, 不如擇趨而審行也.
부구범전승성복, 이옹계무척촌지공. 연이옹계선상, 이구범후존자, 기언유귀자야. 고의자천하지소상야. 백언백당, 불여택추이심행야.
[解釋] 무릇 咎犯은 전쟁을 하여 城濮에서 승리를 하였는데, 雍季는 아주 작은 공도 세우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옹계는 맨 먼저 상을 받았고, 구범은 뒤로 돌려 졌는데, 그것은 雍季의 발언에 가치가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처럼 義는 천하가 賞讚하는 것이다. 백 가지의 의견을 말하여 백 가지의 실적이 올라갔다고 하더라도, 추세를 잘 선택하고 생각해온 행동을 명백하게 하는 것만 같지 못한 법이다.
13
或無功而先擧, 或有功而後賞. 何以明之? 昔晉文公將與楚戰城濮, 問於咎犯曰:「爲之柰何?」 咎犯曰:「仁義之事, 君子不厭忠信, 戰陳之事, 不厭詐僞. 君其詐之而已矣.」
혹무공이선거, 혹유공이후상. 하이명지? 석진문공장여초전성복, 문어구범왈:「위지내하?」 구범왈:「인의지사, 군자불염충신, 전진지사, 불염사위. 군기사지이이의.」
[解釋] 공적이 없는데도 가장 먼저 발탁되는 일이 있고, 혹은 공적이 있는데도 恩賞이 뒤로 돌려지는 수도 있다. 무엇에 의해서 이것을 분명히 알 수가 있겠는가? 옛날 晉나라 文公이 장차 楚나라와 城濮에서 싸울 때, 咎犯에게 물어 말하기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고 하자, 구범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仁義를 행하고자 하는 일이라면, 어디까지나 충신이어야 하겠습니다만, 전쟁을 함에 있어서는, 속임수인 詐僞도 상관이 없습니다. 주군께서는 오직 속임수가 있을 뿐입니다.」
辭咎犯問雍季, 雍季對曰:「焚林而獵, 愈多得獸, 後必無獸. 以詐僞遇人, 雖愈利, 後亦無復. 君其正之而已矣.」 於是不聽雍季之計, 而用咎犯之謀, 與楚人戰, 大破之.
사구범문옹계, 옹계대왈:「분림이렵, 유다득수, 후필무수. 이사위우인, 수유리, 후역무부. 군기정지이이의.」 어시불청옹계지계, 이용구범지모, 여초인전, 대파지.
[解釋] 문공은 구범의 말을 옹계에게 전하니, 옹계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숲을 불태우고 사냥을 하게 되면, 일시적으로는 많은 사냥감을 쉽게 잡을 수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 다음에는 두 번 다시 이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속임수로 남에게 대처를 하게 된다면, 비록 일시적으로는 이롭겠지만, 그 후로는 역시 두 번 다시 이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군주께서는 오직 正攻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해서 문공은 옹계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고, 구범의 책략을 받아 들여, 초나라 사람들과 싸우게 되었는데, 그들을 크게 격파하였다.
還歸賞有功者, 先雍季而後咎犯. 左右曰:「城濮之戰, 咎犯之謀也. 君行賞先雍季, 何也?」 文公曰:「咎犯之言, 一時之權也, 雍季之言, 萬世之利也. 吾豈可以先一時之權, 而後萬世之利也哉!」
환귀상유공자, 선옹계이후구범. 좌우왈:「성복지전, 구범지모야. 군행상선옹계, 하야?」 문공왈:「구범지언, 일시지권야, 옹계지언, 만세지리야. 오기가이선일시지권, 이후만세지리야재!」
[解釋] 그러나 귀국하여 유공자들을 포상할 때에, 옹계를 먼저하고 구범은 뒤로 하였다. 그러자 좌우의 측근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城濮의 전투에 있어서는, 咎犯의 계략이었습니다. 그런데 포상을 함에 있어서는 옹계를 먼저 하셨는데, 무슨 까닭입니까?」 문공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구범의 말은, 일시적인 권모에 지나지 않지만, 옹계의 말은, 만세의 이익이 되는 것이오. 내가 어찌 일시적인 권모를 먼저하고, 만세의 이익 되는 일을 뒤로 돌릴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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