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는 것과 잃는 것
22:29 ~40
Ⅰ. 서 론
우리는 우리가 소망하고 욕구하는 것을 반드시 가져야만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가지지 못했을 때 불행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사실은 때때로 우리가 가지고자 욕구하는 그것을 가지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불행을 초래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가져야 하는지? 우리가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자신이 가지고자 하는 어떤 욕구를 무리하게 관철시키려다가 오히려 재난을 입는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Ⅱ. 본 론
오늘 본문에는 북왕국 이스라엘 왕인 아합이라는 사람과 남왕국 유다의 왕인 여호사밧이라는 사람이 둘 다 등장합니다.
아합이라는 사람은 우리가 이때까지 살펴 본 것과 같이 우상숭배의 주범이었고 불의하고 불법한 일들을 자행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남왕국의 왕이었던 여호사밧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앞에서 인정받는 통치를 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이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국하고 이 두 사람은 다른 어느 왕들과 달리 서로 싸우지 않고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북왕국의 왕이었던 아합이 전쟁이 하고 싶어졌습니다.
길르앗 라못이라고 하는 땅이 있는데 이스라엘 동쪽에 있는 기름진 토지라고 했습니다.
이 땅이 원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오면서 차지했던 땅이었는데 얼마 전에 아람민족들에게 그만 빼앗겨 버린 겁니다.
그래서 틈만 있으면 이 길르앗 라못지역을 되찾고싶다 하는 그런 생각을 했는데 아무리 연구를 해 봐도 아람민족을 이길 재간이 없는 겁니다.
그러다가 생각해 낸 것이 이럴 것이 아니라 유다왕과 손잡자.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합이 여호사밧에게 우리 같이 전쟁을 일으키자. 제안을 했는데 유다왕 여호사밧도 선뜻 찬성을 했습니다.
좋다. 우리 민족의 땅인데 우리가 되찾자. 그러면서 뜻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유다왕 여호사밧에게는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이게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 의롭게 보이는 일이라도 지금 이 일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그런 생각을 품고 기도한다는 것이야 말로 그리스도인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여호사밧도 이 원칙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합에게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물어봅시다. 그렇게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아합이 이 소리를 듣고 나니까 어떻습니까? 자기는 사실 하나님하고는 별로 친하지가 않습니다. 괜히 하나님의 뜻을 물어본다고 하다가 거절당하면 자기 욕망을 채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합이 누구를 불렀습니까?
북왕국에 있는 선지자들 사백명을 불렀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구할 때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가? 그것을 먼저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또 성경을 통하여 그 사실을 먼저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달라고 합니다.>
북왕국의 선지자들 사백명 가량이 아합왕에게 와서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데 하나같이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함께 해주실 것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대답을 나서도 남왕국 유당왕인 여호사밧은 영 믿음직스럽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선지자는 없냐고 다른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제서야 아합은 할 수 없이 미가야라는 선지자를 불러왔습니다.
이 미가야는 항상 바른 소리만 하고 하나님의 뜻만을 전하기 때문에 아합에게는 좋은 소리를 해 준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빼버렸는데 여호사밧 때문에 할 수 없이 불러왔습니다.
불러와서 이 전쟁에 대해서 물어보니까 이번에도 미가야 선지자는 대답하기를 이 전쟁에서 아합은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되는데 지금 거짓 영들이 그렇게 되도록 아합왕을 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확한 예언이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미가야 선지자로부터 이런 정확한 하나님의 뜻을 들었으면서도 아합과 또, 여호사밧은 결국 아람과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전쟁을 시작하고 나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막상 전쟁을 시작되자 말자 아합은 겁이 나서 왕복을 벗어 던지고 군중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아람군인들 중 한 사람이 우연히 활을 쏘았는데 하필 그것이 아합왕의 갑옷사이를 맞추어 버렸습니다. 아합은 심한 부상을 입고 더 이상 빠져나올 수가 없어서 병거를 타고 피를 흘리며 싸움을 계속하다가 결국은 미가야의 예언대로 그곳에서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군인들이 아합의 시체를 거두어서 사마리아에서 장사를 지냈고 아합이 탔던 병거는 피가 고여 있었으니까 사마리아의 못에 가서 씻었는데 그 때 또 엘리야의 예언대로 개들이 와서 그 피를 핥았다고 했습니다.
1. 악한 자와 벗하여 일을 경영하지 말라.
남왕국의 여호사밧왕은 하나님앞에서 인정받는 왕이었지만 북왕국의 아합왕을 가까이하며 지냈고 그러다 보니 이 사람과 함께 전쟁을 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예언을 듣고서도 포기하지를 못했다가 너무 많은 손실을 입었습니다.
남왕국 유다의 입장에서 보면 이 전쟁은 여호사밧왕의 잘못된 처신 때문에 일으킨 전쟁인데 결국 이 전쟁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고 통을 당했습니까?
잠15:9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
잠24:1 "너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기도 원하지 말지어다"
세상에 사는 동안에 우리는 많은 사람을 대하게 된다. 내 마음에 맞다고 잘 대해주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못 대해준다면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고 또한 정상적인 대인관계를 이어가기도 힘들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피해야 하는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를 악한 길로 가담시키는 관계입니다. 우리는 다 서로를 의의 길로 인도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2. 말씀에 귀를 기울이되 듣기에 쓴 말씀이라도 버리지 말라.
아합은 하나님의 진실된 말씀을 듣기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정직하게 말씀하는 선지자는 부르지 않고 자신에게 늘 좋은 예언만 하는 거짓선지자들을 불러서 길한 예언을 하게 했습니다.
길한 예언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예언 자체가 힘을 가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정직한 예언을 들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스도인들은 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되 듣기에 쓴 말씀도 들어야 하고 또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실행하려고 애쓰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3.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분별하는가? 말씀, 기도, 조언...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고 애쓰고 거절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어떻게 하든지 그것을 얻으려고만 한다. 얻어야만 만족하고 얻어야만 성공했고, 얻어야만 응답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얻지 못하는 것이 응답이라고 여겨지만 나중에는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면서 기다리라.
아합은 끝까지 자기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려 하니까 완전히 패망하고 말았다.
4. 끝까지 돌아서지 않으면 반드시 심판하신다.
하나님께서 아합에게 많은 은혜를 베푸셨다. 그가 우상숭배했을 때에도 회개할 기회를 주셨고,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하였을 때에도 참아주셨다. 이번 전쟁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 전쟁을 일으키면 비참한 최후가 있을 것이라는 경고를 주셨다. 그러나 아합은 완전히 깨닫지도 못했고 돌아서지도 못했다.
결국 아합은 아람과의 전쟁을 일으킴으로서 스스로 무덤을 파게된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이미 예언해주신 그대로였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그 예언은 결정적이라서 아합이 잘해도 그렇게 되고 아합이 못해도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아합이 죄악가운데 살고 그 결과 그렇게 될 것을 다 아셔서 말씀해 주신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 아합의 행위와 마음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지 열려있을 수 있었다.
특히 그렇게 예언해 주셨다는 것은 그 예언을 듣고 아합이 두려워서라도 그 불의한 길을 떠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합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롬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Ⅲ. 결 론
내가 소망하고 욕구하는 것을 반드시 가져야만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포기하라고 하시면 포기할 줄 알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싫은 소리도 들을 줄 알고, 잘못된 곳에서는 돌아설 줄 알아 내 자신을 항상 지키며 세워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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