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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義] 문공이 내정을 닦고 피난 나온 周襄王을 귀환토록 함. |
文公修內政納襄王
문공수내정납양왕
晉나라 文公이 內政을 닦고 周나라 襄王을 들여보내다.
元年春, 公及夫人嬴氏至自王城. 秦伯, 納衛三千人, 實紀綱之僕. 公屬百官, 賦職任功, 棄責薄斂, 施舍分寡, 救乏振滯, 匡困資無, 輕關易道, 通商寬農, 茂穡勸分, 省用足財, 利器明德, 以厚民性, 擧善援能, 官方定物, 正名育類, 昭舊族, 愛親戚, 明賢良, 尊貴寵, 賞功勞, 事耈老, 禮賓旅, 友故舊.
원년춘, 공급부인영씨지자왕성. 진백, 납위삼천인, 실기강지복. 공속백관, 부직임공, 기책박렴, 시사분과, 구핍진체, 광곤자무, 경관이도, 통상관농, 무색권분, 성용족재, 이기명덕, 이후민성, 거선원능, 관방정물, 정명육류, 소구족, 애친척, 명현량, 존귀총, 상공로, 사구로, 예빈려, 우고구.
[解釋] 晉나라 文公 원년 봄에 文公과 夫人嬴氏가 王城으로부터 이르렀다. 秦伯이 호위병 3천 명을 들여보내니, 실로 근간이 되는 군병이었다. 문공이 백관들을 모아서 직책을 부여하며 공로가 있는 이에게 맡기고, 죄책을 면제하며 부세를 적게 걷고 덕을 베풀며 금법을 풀어 주며 재물이 적은 이에게 나누어 주고, 궁핍한 이를 구원해 주며 침체된 이를 구제해 주고, 곤궁한 사람을 바로잡아 주며 재물이 없는 이를 도와주고, 관세를 가볍게 하며 도로를 잘 다스리고, 상인들을 통하게 하며 농사짓는 사람에게 너그럽게 하고, 농사를 힘쓰며 分配를 권하고, 국용을 줄이며 재물을 풍족하게 하고, 器用을 날카롭게 하며 덕교를 밝혀서 백성들의 性情을 후하게 하고, 선한 이를 등용하며 능한 이를 데려다 쓰고, 일정한 벼슬을 세워 놓아서 백 가지 일을 안정시키고, 명분을 바로잡아 선한 이를 키워서 오래된 가족을 밝히고, 친척을 사랑하며 어진 이를 드러내고, 귀하여 총애할 신하를 존중하며 공로 있는 이에게 상을 주고, 노인들을 섬기며 손님들을 예우하며 옛 친구를 친애하였다.
胥籍狐箕欒郤栢先羊舌董韓, 寔掌近官, 諸姬之良, 掌其中官, 異姓之能, 掌其遠官, 公食貢, 大夫食邑, 士食田, 庶人食力, 工商食官, 皁隷食職, 官宰食加, 政平民阜, 財用不匱.
서적호기란극백선양설동한, 식장근관, 제희지량, 장기중관, 이성지능, 장기원관, 공식공, 대부식읍, 사식전, 서인식력, 공상식관, 조례식직, 관재식가, 정평민부, 재용불궤.
[解釋] 胥、籍、狐、箕、欒、郤、栢、先、羊舌、董、韓氏는 친근한 관직을 맡게 하고, 여러 姬氏의 훌륭한 사람들은 그 中官을 맡게 하고, 성이 다른 사람으로서 유능한 이는 지방관을 맡게 하고, 公室은 貢物을 먹게 하고 대부들은 읍에서 나오는 것을 먹게 하였으며, 士는 公田에서 나오는 것을 먹게 하고, 庶人들은 각각 그 노력함으로 먹게 하고, 百工과 官商은 관청에서 주는 봉급을 먹게 하고, 皁隷는 직책으로 먹으며, 家臣들은 家田을 먹으니, 정치는 공평하며 백성들은 편안하고, 재용은 결핍되지 않게 되었다.
冬, 襄王, 避昭叔之難, 居於鄭地氾, 使來告難, 亦使告於秦. 子犯曰:「民親而未知義也, 君盍納王以敎之義? 若不納, 秦將納之, 則失周矣, 何以求諸侯? 不能修身, 而又不能宗人, 人將焉依? 繼文之業, 定武之功, 啓土安疆, 於此乎在矣, 君其務之.」 公說, 乃行賂于草中之戎, 與麗土之翟, 以啓東道.
동, 양왕, 피소숙지난, 거어정지범, 사래고난, 역사고어진. 자범왈:「민친이미지의야, 군합납왕이교지의? 약불납, 진장납지, 즉실주의, 하이구제후? 불능수신, 이우불능종인, 인장언의? 계문지업, 정무지공, 계토안강, 어차호재의, 군기무지.」 공열, 내행뢰우초중지융, 여려토지적, 이계동도.
[解釋] 겨울에 襄王이 昭叔의 난리를 피해서 鄭나라 땅인 氾에 거처하면서 사신을 보내어 난리를 통고하고, 또한 사신을 보내어 秦나라에도 통고하였다. 子犯이 말하기를, 「백성들이 임금을 친애하면서도 의리를 알지 못하니, 임금께서는 어찌 양왕을 들여보내서 백성들에게 의리를 가르치지 않으십니까? 만약 들여보내지 않았다가 秦나라가 장차 들여보내게 된다면 周나라를 섬기는 것을 잃게 될 것이니, 어떻게 제후의 맹주가 되기를 바라겠습니까? 능히 내 몸을 닦지 못하고 또 능히 다른 사람을 높여 주지 못한다면 사람들이 장차 어찌 의지하겠습니까? 文侯의 사업을 잇고 武公의 공적을 안정시키며 토지를 넓히고 경내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 이 일에 있으니, 임금께서는 힘쓰십시오.」라고 하니, 공이 기뻐하여, 草中의 戎과 麗土의 翟에게 뇌물을 보내서, 동쪽 길을 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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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義] 왕실의 친척을 해치지 않아야 백성들이 의지함. |
文公出陽人
문공출양인
晉나라 文公이 陽樊 사람들을 풀어 주다.
二年春, 公, 以二軍下, 次于陽樊. 右師取昭叔于溫, 殺之于隰城, 左師迎王于鄭, 王, 入于成周, 遂定之於郟. 王, 饗醴, 命公胙侑.
이년춘, 공, 이이군하, 차우양번. 우사취소숙우온, 살지우습성, 좌사영왕우정, 왕, 입우성주, 수정지어겹. 왕, 향례, 명공조유.
[解釋] 晉나라 文公 2년 봄에 文公이 2軍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가서 陽樊에 주둔하였다. 右師가 昭叔을 溫에서 잡아서 隰城에서 죽이고, 左師가 鄭나라에서 襄王을 맞이하니, 양왕이 成周에 들어오거늘 마침내 郟에서 양왕을 안정하게 하였다. 양왕이 醴酒로 연향을 베풀고 문공에게 命服을 주고 祭肉을 내리고 束帛을 주었다.
公, 請隧, 弗許, 曰:「王章也, 不可以二王. 無若政, 何?」 賜公南陽, 陽樊溫原州陘絺鉏欑茅之田, 陽人不服, 公, 圍之, 將殘其民,
공, 청수, 불허, 왈:「왕장야, 불가이이왕. 무약정, 하?」 사공남양, 양번온원주형치서찬모지전, 양인불복, 공, 위지, 장잔기민,
[解釋] 문공이 隧를 청하거늘 허락하지 않고, 말하기를, 「왕의 표상이니, 왕을 두 사람으로 할 수 없소이다. 정치가 없는 것처럼 될 것인데 어떻게 하겠소?」라 하고, 공에게 南陽의 陽樊、溫、原、州、陘、絺、鉏、欑茅의 땅을 주었다. 陽樊 사람들이 승복하지 않거늘 문공이 포위하고 장차 그 백성들을 해치려 하였다.
倉葛, 呼曰:「君, 補王闕, 以順禮也. 陽人, 未狎君德, 而未敢承命, 君將殘之, 無乃非禮乎? 陽, 有夏商之嗣典, 有周室之師旅, 樊仲之官守焉, 其非官守, 則皆王之父兄甥舅也. 君, 定王室而殘其姻族, 民將焉放? 敢私布之於吏, 唯君圖之.」 公, 曰:「君子也.」 乃出陽人.
창갈, 호왈:「군, 보왕궐, 이순례야. 양인, 미압군덕, 이미감승명, 군장잔지, 무내비례호? 양, 유하상지사전, 유주실지사려, 번중지관수언, 기비관수, 즉개왕지부형생구야. 군, 정왕실이잔기인족, 민장언방? 감사포지어리, 유군도지.」 공, 왈:「군자야.」 내출양인.
[解釋] 倉葛이 소리쳐 말하기를, 「임금께서 양왕의 결함을 보충하는 것은 예에 따르는 것입니다. 양번 사람들이 아직 임금의 덕을 熟知하지 못하여 감히 명령을 받들지 못하는데, 임금께서 장차 해치려 하시니, 예가 아니지 않습니까? 양번에는 夏나라와 商나라의 後嗣와 법전을 가지고 있으며 주나라의 민중과 樊仲의 관직을 지키는 자가 있으니, 관직을 지키는 자가 아니면 모두 양왕의 부형이나 생질、외숙입니다. 임금께서 왕실을 안정시키면서 그 姻族들을 해친다면, 백성들이 장차 어찌 의지하겠습니까? 감히 사적으로 軍吏에게 말을 하였으니, 임금께서는 생각하십시오.」고 하니, 문공이 「군자로다.」고 하고, 마침내 양번 사람들을 풀어 주었다.
17
[大義] 신의를 지키자 적이 항복함. |
文公伐原
문공벌원
晉나라 文公이 原을 치다.
文公, 伐原, 令以三日之糧, 三日而原不降, 公, 令疏軍而去之. 諜, 出曰:「原, 不過一二日矣.」
문공, 벌원, 영이삼일지량, 삼일이원불항, 공, 영소군이거지. 첩, 출왈:「원, 불과일이일의.」
[解釋] 晉나라 文公이 原을 정벌할 때에 3일의 양식을 가져가라고 명령하였는데, 3일이 지나도 원이 항복하지 않으니, 문공이 철수 명령을 내려 떠나자고 하였다. 斥候가 나서서 말하기를, 「原이 하루나 이틀을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고 하였다.
軍吏以告, 公曰:「得原而失信, 何以使人? 夫信, 民之所庇也, 不可失也, 乃去之, 及盟門, 而原請降.
군리이고, 공왈:「득원이실신, 하이사인? 부신, 민지소비야, 불가실야, 내거지, 급맹문, 이원청항.
[解釋] 軍吏가 그 말을 보고하자, 문공이 말하기를, 「원을 얻는다 해도 3일 약속의 信義를 잃는다면, 어찌 사람을 부릴 수가 있겠느냐? 무릇 信義라는 것은 백성들을 덮어 주는 바이니, 信은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고 하고, 마침내 떠났다. 盟門에 이르자 원이 항복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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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義] 先軫과 子犯이 전쟁의 정세를 잘 파악하고 정당하게 대처하도록 권하여 城濮 전투에서 楚나라에게 승리함. |
文公救宋, 敗楚於城濮
문공구송, 패초어성복
晉나라 文公이 宋나라를 구원하고 城濮에서 楚나라를 패배시키다.
文公, 立四年楚成王, 伐宋, 公, 率齊秦, 伐曹衛以救宋. 宋人, 使門尹班, 告急於晉, 公, 告大夫曰:「宋人, 告急, 舍之則宋絶, 告楚則不許我, 我欲擊楚, 齊秦, 不欲, 其若之何?」
문공, 립사년초성왕, 벌송, 공, 솔제진, 벌조위이구송. 송인, 사문윤반, 고급어진, 공, 고대부왈:「송인, 고급, 사지즉송절, 고초즉불허아, 아욕격초, 제진, 불욕, 기약지하?」
[解釋] 晉나라 文公이 즉위한 지 4년에 楚成王이 宋나라를 정벌하니, 문공이 齊나라와 秦나라를 거느리고 曹나라와 衛나라를 치고 宋나라를 구원하였다. 송나라 사람이 門尹班을 사신으로 보내어 晉나라에 급히 고하게 하니, 문공이 대부에게 고하기를, 「송나라 사람이 위급함을 고하였소. 버려두면 송나라와 단절될 것이고 초나라에게 송나라를 치지 말라고 고하면,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초나라를 치고자 한다면 제나라와 秦나라에서 하고자 하지 않을 것이니, 어떻게 하면 좋겠소?」라고 하였다.
先軫曰:「不若使齊秦, 主楚怨.」 公曰:「可乎?」 先軫曰:「使宋, 舍我而賂齊秦, 藉之告楚, 我分曹衛之地, 以賜宋人, 楚愛曹衛, 必不許齊秦. 齊秦, 不得其請, 必屬怨焉, 然後用之, 蔑不欲矣.」 公說. 是故, 以曹田衛田, 賜宋人.
선진왈:「불약사제진, 주초원.」 공왈:「가호?」 선진왈:「사송, 사아이뢰제진, 자지고초, 아분조위지지, 이사송인, 초애조위, 필불허제진. 제진, 부득기청, 필속원언, 연후용지, 멸불욕의.」 공열. 시고, 이조전위전, 사송인.
[解釋] 先軫이 말하기를, 「제나라와 秦나라로 하여금 초나라를 원망하는 주장자가 되게 하는 것만 같은 것이 없습니다.」고 하였다. 문공이 말하기를, 「가능하겠소?」라고 하니, 선진이 말하기를, 「송나라로 하여금, 우리는 놔두고 제나라와 秦나라에게 뇌물을 주어서 그것을 의뢰하여, 제나라와 秦나라에게 송나라를 치지 말라고 초나라에 고하게 하고, 우리가 조나라와 위나라의 땅을 나누어서, 송나라 사람에게 주면, 초나라는 조나라와 위나라를 아껴서, 반드시 제나라와 秦나라에서 요청한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나라와 秦나라가 요청을 얻지 못하면, 반드시 원망을 맺을 것이니, 그런 뒤에 이용하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고 하니, 文公은 기뻐하였다. 이런 까닭으로 조나라 田地와 위나라 田地를 송나라 사람에게 주었다.
令尹子玉, 使宛春, 來告曰:「請復衛侯而封曹, 臣亦釋宋之圍. 舅犯.」 慍曰:「子玉, 無禮哉. 臣取二, 君取一, 必擊之.」 先軫曰:「子與之. 我不許曹衛之請, 是不許釋宋也, 宋衆, 無乃彊乎. 是楚一言而有三施, 子一言而有三怨. 怨已多矣, 難以擊人, 不若私許復曹衛以攜之, 執宛春以怒楚, 旣戰而後圖之.」 公說. 是故, 拘宛春於衛.
영윤자옥, 사완춘, 래고왈:「청복위후이봉조, 신역석송지위. 구범.」 온왈:「자옥, 무례재. 신취이, 군취일, 필격지.」 선진왈:「자여지. 아불허조위지청, 시불허석송야, 송중, 무내강호. 시초일언이유삼시, 자일언이유삼원. 원이다의, 난이격인, 불약사허부조위이휴지, 집완춘이노초, 기전이후도지.」 공열. 시고, 구완춘어위.
[解釋] 초나라 令尹子玉이 宛春을 사신으로 보내니 와서 고하기를, 「청컨대 衛侯를 회복시켜 주고 曹나라를 책봉해 준다면, 저도 宋나라의 포위를 풀겠습니다.」고 하니, 舅犯이 성내며 말하기를, 「자옥은 무례하오! 자옥은 두 가지를 갖게 되고 문공은 한 가지를 갖게 되니, 반드시 칠 것이오.」라고 하자, 선진이 말하기를, 「귀하는 허락하십시오. 우리가 曹、衛를 회복시켜 주라는 요청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이는 송나라를 풀어 주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 되니, 송나라 무리들이 강해지지 않겠습니까? 이는 초나라는 한 마디 말에 세 가지를 베풀게 되는 것이고, 귀하는 한 마디 말에 세 가지 원망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원망이 많으면 다른 사람을 공격하기 어려운 것이니, 사적으로 조나라와 위나라를 회복시켜 주는 것을 허락해서 이간시키고 완춘을 잡아 가두어 초나라를 노하여 전쟁하게 하고서 전쟁이 끝난 후에 도모하는 것만 같지 못할 것입니다.」고 하니, 공이 좋아하였다. 이 때문에 완춘을 구류하여 위나라에 가두었다.
子玉, 釋宋圍, 從晉師. 楚師旣陳, 晉師退舍, 軍吏請曰:「以君避臣, 辱也. 且楚師老矣, 必敗. 何故退?」
자옥, 석송위, 종진사. 초사기진, 진사퇴사, 군리청왈:「이군피신, 욕야. 차초사로의, 필패. 하고퇴?」
[解釋] 子玉이 송나라 포위를 풀고 晉나라 군대와 싸우려 하여 따랐다. 초나라에서 陣을 치기를 마치자, 晉나라 군사들이 30리를 후퇴하니, 軍吏가 청하여 말하기를, 「임금으로서 신하를 피하는 것은 욕입니다. 또 초나라 군사가 지쳐 있으니,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후퇴합니까?」라고 하였다.
子犯曰:「二三子忘在楚乎? 偃也聞之, '戰鬭, 直爲壯, 曲爲老.' 未報楚惠而抗宋, 我曲楚直. 其衆, 莫不生氣, 不可謂老. 若我以君避臣, 而不去, 彼亦曲矣.」 退三舍避楚.
자범왈:「이삼자망재초호? 언야문지, '전투, 직위장, 곡위로.' 미보초혜이항송, 아곡초직. 기중, 막불생기, 불가위로. 약아이군피신, 이불거, 피역곡의.」 퇴삼사피초.
[解釋] 자범이 말하기를, 「그대들이여! 초나라에 있을 때의 일을 잊었는가? 내가 듣건대, '전투란 곧은 쪽은 장대하게 되는 것이고, 굽은 쪽은 피곤하게 된다.'고 하니, 아직 초나라의 은혜를 갚지 아니하고 송나라를 구원해 준다면, 우리는 굽은 것이고 초나라는 곧은 것이다. 초나라 군사들이 기세가 등등해지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니, 피로하다고 말할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임금으로서 초나라 신하를 피하였는데, 초나라가 떠나가지 않는다면 초나라가 굽은 것이다.」고 하니, 90리를 후퇴하여 초나라를 피하였다.
楚衆, 欲止, 子玉, 不肻, 至於城濮, 果戰, 楚衆, 大敗, 君子曰:「善以德勸.」
초중, 욕지, 자옥, 불긍, 지어성복, 과전, 초중, 대패, 군자왈:「선이덕권.」
[解釋] 초나라 군대가 멈추려 하였는데, 자옥이 좋아하지 않았다. 城濮에 가서 과연 전투하여 초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군자가 말하기를, 「덕으로써 권하기를 잘하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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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義] 지혜와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는 자가 죽지 않고 禮遇를 받아 국가를 구원함. |
鄭叔詹據鼎耳而疾號
정숙첨거정이이질호
鄭나라 叔詹이 삶겨져 죽게 될 솥귀를 잡고 크게 부르짖었다.
文公誅觀狀以伐鄭, 反其埤. 鄭人以名寶行成, 公弗許曰:「予我詹, 而師還.」 詹, 請往鄭伯, 弗許.
문공주관상이벌정, 반기비. 정인이명보행성, 공불허왈:「여아첨, 이사환.」 첨, 청왕정백, 불허.
[解釋] 晉나라 文公이 자신의 통갈비뼈를 훔쳐본 일을 주벌하여 鄭나라를 쳐서 그 성가퀴를 엎어 버렸다. 鄭나라 사람들이 좋은 보배로 화친을 행하려고 하니, 문공이 허락하지 않고 말하기를, 「나에게 叔詹을 주면, 군사를 되돌리겠소.」고 하니, 숙첨이 가기를 청하자 鄭伯이 허락하지 않았다.
詹, 固請曰:「一臣, 可以赦百姓而定社稷, 君何愛於臣也?」 鄭人, 以詹予晉人, 晉人, 將亨之, 詹曰:「臣, 願獲盡辭而死, 固所願也.」
첨, 고청왈:「일신, 가이사백성이정사직, 군하애어신야?」 정인, 이첨여진인, 진인, 장형지, 첨왈:「신, 원획진사이사, 고소원야.」
[解釋] 숙첨이 굳이 청하여 말하기를, 「하나의 신하로 백성들을 재앙에서 벗어나게 하며 사직을 안정시킬 수 있는데, 임금께서는 신을 어찌 아끼십니까?」고 하니, 정나라 사람이 숙첨을 晉나라 사람에게 주었다. 진나라 사람들이 삶아 죽이려고 하니, 숙첨이 말하기를, 「신은 원컨대 말을 다하고서 죽기를 진실로 원하는 바입니다.」고 하였다.
公聽其辭, 詹曰:「天降鄭禍, 使淫觀狀, 棄禮違親, 臣曰, '不可. 夫晉公子賢明, 其左右皆卿才, 若復其國而得志於諸侯, 禍無赦矣.' 今禍及矣, 尊明勝患, 知也, 殺身贖國, 忠也.」
공청기사, 첨왈:「천강정화, 사음관상, 기례위친, 신왈, '불가. 부진공자현명, 기좌우개경재, 약복기국이득지어제후, 화무사의.' 금화급의, 존명승환, 지야, 살신속국, 충야.」
[解釋] 문공이 그 말을 들어주니, 숙첨이 말하기를, 「하늘이 정나라에 화를 내려서 통갈비뼈 형상을 훔쳐본 것을 본받게 하여, 예의도 버리고 친분도 어기거늘 제가 말하기를. '옳지 않습니다. 무릇 晉나라 公子가 현명하고, 그 측근들이 모두 卿의 재목이니, 만약 그 나라로 돌아가서 제후에게 뜻을 얻는다면, 화를 당해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화가 미쳤으니, 公子를 존중하여 환난을 막아 내는 것은 지혜이고, 내 몸을 죽여 국가의 죄를 대신하는 것은 충성입니다.」고 하였다.
乃就亨, 據鼎耳而疾號曰:「自今以往, 知忠以事君者, 與詹同.」 乃命弗殺, 厚爲之禮而歸之, 鄭人, 以詹, 爲將軍.
내취형, 거정이이질호왈:「자금이왕, 지충이사군자, 여첨동.」 내명불살, 후위지례이귀지, 정인, 이첨, 위장군.
[解釋] 마침내 삶는 형벌을 당하러 나갈 때, 솥귀를 잡고 큰소리로 부르짖기를, 「지금 이후로 지혜와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는 자는 나와 같을 것이다.」고 하니, 마침내 죽이지 말라고 명하고, 후하게 예우를 하여 돌려보냈다. 정나라 사람들이 숙첨을 장군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