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晏平仲의 부친상.
齊晏桓子卒, 平仲麤衰斬苴絰帶, 杖以菅屨, 食粥居傍廬, 寢苫枕草. 其老曰 : 「非大夫喪父之禮也.」 晏子曰 : 「唯卿大夫.」 曾子以問孔子, 孔子曰 : 「晏平仲可謂能遠害矣. 不以己知是駮人之非, 愻辭以避咎, 義也夫.」
제안환자졸, 평중추최참저질대, 장이관구, 식죽거방려, 침점침초. 기로왈 : 「비대부상부지례야.」 안자왈 : 「유경대부.」 증자이문공자, 공자왈 : 「안평중가위능원해의. 불이기지시박인지비, 손사이피구, 의야부.」
[解釋] 齊나라 晏桓子가 죽자, 그 아들 晏平仲이 거친 衰服을 입고, 삼으로 만든 질을 띠고, 지팡이를 짚고 왕골로 짠 신을 신고, 죽을 먹으면서 廬幕에 거처하였다. 그는 풀로 짠 자리에서 잠을 자며 풀로 베개를 삼아 베었다. 어떤 늙은이가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은 대부로서 아버지의 상을 치르는 예가 아닙니다.」 안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오직 卿大夫 만이 이렇게 하는 것이라오.」 증자가 이 일을 두고 공자께 여쭙자, 공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안평중이야말로 가히 해로움을 멀리하는 자라고 하겠다. 자신의 옳은 것을 가지고 남의 잘못을 논박하지 않았으며, 겸손한 말로 그 허물을 피하기만 하였으니, 의롭다 하리라.」
17, 계평자가 죽었을 때,
季平子卒, 將以君之璵璠歛, 贈以珠玉. 孔子初爲中都宰, 聞之歷級而救焉, 曰 : 「送而以寶玉, 是猶曝屍於中原也. 其示民以姦利之端. 而有害於死者, 安用之. 且孝子不順情以危親, 忠臣不兆姦以陷君.」 乃止.
계평자졸, 장이군지여번감, 증이주옥. 공자초위중도재, 문지력급이구언, 왈 : 「송이이보옥, 시유폭시어중원야. 기시민이간리지단. 이유해어사자, 안용지. 차효자불순정이위친, 충신부조간이함군.」 내지.
[解釋] 季平子가 죽었을 때, 노나라 임금은 그게 璵璠으로 염을 하고자 하였으며, 구슬까지 기증하였다. 공자가 처음 벼슬하여 中都宰가 되었을 때인데, 이를 듣고서 직급을 뛰어 넘어 저지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패물과 구슬로 죽은 사람을 보내는 것은, 마치 시체를 저 들판에 말리는 것과 같다. 그것은 백성들에게 간사한 이익을 단초에 보여주는 것으로, 죽은 이에게 해로운 일이 되는데, 어찌 그렇게 하려 합니까? 또한 효자는 자신의 정분을 따르느라 어버이를 위태롭게 하지 않으며, 충신은 간악한 징조로 임금을 함정에 빠뜨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를 중지하게 되었다.
18, 조상해서는 안 될 초상.
孔子之弟子琴張與宗友衛齊豹, 見宗魯於公子孟縶. 孟縶以爲參乘焉. 及齊豹將殺孟縶, 告宗魯, 使行.
공자지제자금장여종우위제표, 견종로어공자맹집. 맹집이위참승언. 급제표장살맹집, 고종로, 사행.
[解釋] 공자의 제자인 琴張이 宗魯 친구인 衛나라 齊豹와 함께, 公子 孟縶을 보며 이에 宗魯를 추천하였다. 맹집은 종로를 임용하여 자심의 參乘으로 삼았다. 그런데 제표가 반란을 일으켜 맹집을 죽이려 들자, 금장은 종로에게 알려, 떠나도록 하였다.
宗魯曰 : 「吾由子而事之, 今聞難而逃, 是僭子也, 子行事乎. 吾將死以事周子, 而歸死於公孟可也.」 齊氏用戈擊公孟, 宗以背蔽之, 斷肱中, 公孟, 宗魯皆死. 琴張聞宗魯死, 將徃弔之.
종로왈 : 「오유자이사지, 금문난이도, 시참자야, 자행사호. 오장사이사주자, 이귀사어공맹가야.」 제씨용과격공맹, 종이배폐지, 단굉중, 공맹, 종로개사. 금장문종로사, 장왕조지.
[解釋] 그러자 종로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자네로 인하여 맹집을 섬기게 되었는데, 지금 어려운 경우라고 해서 도망쳐 버린다면, 이것은 그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그대는 그대의 일을 하게나. 나는 장차 죽음으로써 그대를 선기는 도리로, 그 죽음을 맹집을 위하여 바치는 것이 옳은 일일 것일세.」 제표가 창을 잡고 맹집을 공격하자, 종로는 자신의 등으로 이를 막았고, 결국 팔이 잘리고 말았으며, 공자인 맹집도 끝내 그의 창에 찔려 종로와 맹집은 죽었다. 금장은 종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장차 그에게 조문을 하려고 하였다.
孔子曰 : 「齊豹之盜, 孟縶之賊也, 汝何弔焉? 君不食姦, 不受亂. 不爲利病於回, 不以回事人. 不蓋非義, 不犯非禮, 汝何弔焉?」 琴張乃止.
공자왈 : 「제표지도, 맹집지적야, 여하조언? 군불식간, 불수란. 불위리병어회, 불이회사인. 불개비의, 불범비례, 여하조언?」 금장내지.
[解釋] 이에 공자가 말하였다. 「종로는 제나라의 도둑이요, 맹집은 衛나라의 賊臣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조문을 가려고 하느냐? 군자는 간사한 사람의 봉록을 먹지 않아야, 그 반란을 입지 않는다. 이익을 위하여 남의 회유에 병들지 않아야, 그 회유로 인하여 남을 섬기지 않아도 된다. 의가 아닌 것을 덮어주지도 못하고, 예가 아닌 것을 고쳐 주지도 못하면서, 너는 어지 조문을 가려고 하느냐?」 금장은 이에 조문하는 일을 그만 두었다.
19, 예에 어긋나는 哭.
郕人子革卒, 哭之呼滅. 子游曰 : 「若是哭也, 其野哉. 孔子惡野哭①者.」 哭者聞之遂改之.
성인자혁졸, 곡지호멸. 자유왈 : 「약시곡야, 기야재. 공자오야곡①자.」 곡자문지수개지.
[解釋] 郕 땅의 사람인 子革이 죽었을 때, 哭하는 자 가운데 그 滅이라 외치며 우는 것이었다. 자유가 말하였다. 「이처럼 곡을 하는 것은, 너무 예에 어긋난다.」 공자는 그렇게 예에 어긋나게 우는 소리를 미워하였다. 그 자가 이를 듣고 마침내 곡하는 방법을 고쳤다고 한다. 정현은 주석하여 말하기를, 「해당하는 일이나 장소가 적절치 않은 것에서 우는 것을 野哭이라 한다.」고 하였다. 그 자가 이를 듣고 마침내 곡하는 방법을 고쳤다고 한다.
[註解] ①野哭 : 들[野]에서 哭을 한다는 뜻으로, ≪禮記≫에 나오는 말이다. 곧 野哭은 예법에 맞지 않게 하는 곡을 말한다.
20 공보문백의 처첩.
公父文伯卒, 其妻妾皆行哭失聲. 敬姜戒之曰 : 「吾聞好外者士死之, 好內者女死之. 今吾子早殀, 吾惡其以好內聞也. 二三婦人之欲供先祀者, 請無瘠色, 無揮涕. 無拊膺, 無哀容, 無加服, 有降, 從禮而靜. 是昭吾子也.」
공보문백졸, 기처첩개행곡실성. 경강계지왈 : 「오문호외자사사지, 호내자녀사지. 금오자조요, 오오기이호내문야. 이삼부인지욕공선사자, 청무척색, 무휘체. 무부응, 무애용, 무가복, 유강, 종례이정. 시소오자야.」
[解釋] 公父文伯이 죽자, 그의 처첩이 모두 行哭을 하다가 失盛을 하고 말았다. 그러자 공보문백의 어머니 敬姜이 경계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듣건대 밖으로 남을 사귀기를 좋아하는 자는 선비를 죽게 하고, 안으로 여색을 밝히는 자는 여자들이 죽게 된다고 하였다. 지금 내 자식이 이렇게 일찍 죽었으나, 나는 그가 안으로 여자들만 좋아하였다는 소문이 나는 것이 싫다. 너희들 부인들이 선인들의 제사를 받들고자 한다면, 청 하노니 수척해질 대로 하지 말며, 눈물을 자꾸 뿌리지도 말아라. 가슴을 치지도 말 것이며, 슬퍼하는 표정도 짓지 말라. 상복도 한 단계 높은 것을 입지 말며, 오히려 안 단계 낮추어 입도록 하여라. 예에 따라서 조용히 치르도록 하여라. 이것이 내 아들의 덕을 밝혀주는 것이다.」
孔子聞之曰 : 「女智無若婦, 男智莫若夫. 公父氏之婦智矣! 剖情損禮, 欲以明其子爲令德也.」
공자문지왈 : 「녀지무약부, 남지막약부. 공보씨지부지의! 부정손례, 욕이명기자위령덕야.」
[解釋] 공자가 이를 듣고 말하였다. 「여자들의 지혜로서 부인과 같은 이가 없고, 남자의 지혜로서 남편만한 이가 없다. 公父氏의 부인은 지혜로운 여자로구나! 감정을 끊어버리고, 그 예를 덜면서까지, 자신의 아들의 훌륭한 덕을 밝히고자 하였다.」
21, 자로의 죽음에 젓갈을 엎어버린 공자.
子路與子羔仕於衛, 衛有蒯聵之難. 孔子在魯, 聞之曰 : 「柴也其來,由也死矣.」 既而衛使至, 曰 : 「子路死焉.」 夫子哭之於中庭, 有人弔者, 而夫子拜之. 已哭, 進使者而問故. 使者曰 : 「醢之矣.」 遂令左右皆覆醢, 曰 : 「吾何忍食此?」
자로여자고사어위, 위유괴외지난. 공자재로, 문지왈 : 「시야기래,유야사의.」 기이위사지, 왈 : 「자로사언.」 부자곡지어중정, 유인조자, 이부자배지. 이곡, 진사자이문고. 사자왈 : 「해지의.」 수령좌우개복해, 왈 : 「오하인식차?」
[解釋] 子路가 子羔가 함께 衛나라에서 벼슬을 할 때, 衛나라에 마침 蒯聵의 難이 있었다. 공자는 魯나라에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하였다. 「高柴는 살아서 돌아오겠지만, 中由[子路]는 죽게 될 것이다.」 이윽고 위나라의 사신이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자로가 죽었습니다.」 공자는 뜰에서 곡을 하였다. 그리고 조문을 오는 자가 있으면, 공자는 그들에게 절을 하였다. 공자 울음을 그치고, 위나라에서 온 사자를 들어오게 하여 자로의 죽음에 대해 물었다. 그 사자는 말하였다. 「자로를 죽여 젓갈을 담갔습니다.」 공자는 마침내 좌우에게 젓갈을 모두 엎어 버리게 명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내가 마차 어찌 이런 것을 먹을 수 있겠느냐?」
22, 나는 동서남북을 떠도는 자.
季桓子死, 魯大夫朝服而弔. 子游問於孔子曰 : 「禮乎?」 夫子不答. 他日, 又問墓而不墳. 孔子曰 : 「今丘也, 東西南北之人. 不可以弗識也. 吾見封之若堂者矣, 又見若坊者矣, 又見履夏屋者矣, 又見若斧形者矣, 吾從斧者焉.」
계환자사, 노대부조복이조. 자유문어공자왈 : 「예호?」 부자부답. 타일, 우문묘이불분. 공자왈 : 「금구야, 동서남북지인. 불가이불식야. 오견봉지약당자의, 우견약방자의, 우견리하옥자의, 우견약부형자의, 오종부자언.」
[解釋] 季桓子가 죽자, 노나라 대부들이 朝服을 입고 조문을 하였다. 이에 子游가 공자께 여쭈었다. 「이것은 예에 맞습니까?」 공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에, 다시 묘를 쓰면서 봉분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여쭈었다. 공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나 丘는, 東西南北으로 떠도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묘에 표시를 해 두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보았더니 봉분을 마루 모양과 같이 한 것도 있었고, 또 보니 방처럼 모가 나게 한 것도 있었으며, 또 보니 지붕 모양으로 높게 하여 꼭대기를 덮는 것도 있었고, 또 보니 도끼 모양을 한 것도 있던데, 나는 그 중 도끼 모양으로 한 것을 따르련다.」
於是封之, 崇四尺. 孔子先反虞, 門人後. 雨甚, 至墓崩, 修之而歸. 孔子問焉, 曰 : 「爾來何遲?」
어시봉지, 숭사척. 공자선반우, 문인후. 우심, 지묘붕, 수지이귀. 공자문언, 왈 : 「이래하지?」
[解釋] 이에 공자는 봉분을 만드는데 4자 높이로 하였다. 장사를 지내고 공자는 먼저 돌아와서, 虞의 제사를 지내고 있을 때, 문인들이 나중에 돌아 왔다. 비가 심하여, 묘기 무너질까 봐, 이것을 수리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공자가 물어, 말하였다. 「너희들은 어찌 이렇게도 늦었느냐?」
對曰 : 「防墓崩.」 孔子不應. 三云, 孔子泫然而流涕曰 : 「吾聞之, 古不修墓及二十五月而大祥, 五日而彈琴不成聲. 十日過禫而成笙歌.」
대왈 : 「방묘붕.」 공자불응. 삼운, 공자현연이류체왈 : 「오문지, 고불수묘급이십오월이대상, 오일이탄금불성성. 십일과담이성생가.」
[解釋]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묘가 무너질까 이를 수리하느라 늦었습니다.」 공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세 번 말하자, 공자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 옛날에는 묘를 수축한 일이 없었다. 장사를 지낸 지 25개월이 되면 大祥을 지내고, 그 후 닷새가 지나면 거문고를 탈 수 있었으나, 곡조는 이루지 않았다. 그리고 10일지나 禫祀를 지내며, 이때에는 생황의 음악을 연주해도 되었다.」
23, 어머니의 상을 당한 공자.
孔子有母之喪, 既練, 陽虎弔焉, 私於孔子曰 : 「今季氏將大饗境內之士, 子聞諸?」 孔子答曰 : 「丘弗聞也. 若聞之, 雖在衰絰, 亦欲與徃.」 陽虎曰 : 「子謂不然乎? 季氏饗士, 不及子也.」 陽虎出, 曾點問曰 : 「吾之何謂也?」 孔子曰 : 「己則衰服, 猶應其言, 示所以不非也.」
공자유모지상, 기련, 양호조언, 사어공자왈 : 「금계씨장대향경내지사, 자문저?」 공자답왈 : 「구불문야. 약문지, 수재최질, 역욕여왕.」 양호왈 : 「자위불연호? 계씨향사, 불급자야.」 양호출, 증점문왈 : 「오지하위야?」 공자왈 : 「기즉최복, 유응기언, 시소이불비야.」
[解釋] 공자가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을 때였다. 이미 練祀를 지낸 뒤에, 陽虎가 조문을 와서, 사사롭게 공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季氏가 장차 국내의 모든 선비들을 불러 큰 잔치를 벌인다고 하던데, 그대는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공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듣지 못하였다.」 만일 들었다면 비록 衰絰을 입었다 할지라도, 역시 가고자 하였을 것이오.」 양호가 말하였다. 「어찌 그렇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계씨가 선비들을 청하면서, 그대에게는 기별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양호가 나가자, 曾點이 물었다. 「무슨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내가 상복을 입은 몸으로서, 그가 묻는 말에 응하여, 그가 그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24, 顔回가 죽다.
顏回死, 魯定公弔焉, 使人訪於孔子, 孔子對曰 : 「凡在封內, 皆臣子也, 禮, 君弔其臣, 升自東階, 向屍而哭, 其恩賜之, 施不有笇也.」
안회사, 노정공조언, 사인방어공자, 공자대왈 : 「범재봉내, 개신자야, 예, 군조기신, 승자동계, 향시이곡, 기은사지, 시불유산야.」
[解釋] 顔回가 죽자, 노나라 定公이 조문을 한 다음에, 사람을 시켜서 공자를 찾아보게 하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무릇 이 국토 안에 있는 자는, 모두가 신하입니다. 禮에, 그 임금이 신하를 조문할 때에는, 동쪽 뜰로 올라와서, 시신을 향하여 곡을 하는데, 그것은 그 임금으로서 베푼 것에 대하여, 이를 계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25, 盟器란 귀신의 그릇.
原思言於曾子曰 : 「夏後氏之送葬也, 用盟器, 示民無知也, 殷人用祭器, 示民有知也, 周人兼而用之, 示民疑也.」
원사언어증자왈 : 「하후씨지송장야, 용맹기, 시민무지야, 은인용제기, 시민유지야, 주인겸이용지, 시민의야.」
[解釋] 原思가 曾子에게 말하였다. 「하후씨가 장례를 치를 때에, 盟器를 쓴 것은, 백성들에게 죽은 자는 아는 것이 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으며, 殷나라 사람들이 祭器를 쓴 것은, 백성들에게 죽은 자가 있는 것인지 없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曾子曰 : 「其不然矣. 夫以盟器, 鬼器也, 祭器, 人器也. 古之人胡爲而死其親也?」 子游問於孔子曰 : 「之死而致死乎? 不仁, 不可爲也. 之死而致生乎? 不智, 不可爲也. 凡爲盟器者, 知喪道也. 夫子始死則矣. 羔裘玄冠者, 易之而已. 汝何疑焉?」
증자왈 : 「기불연의. 부이맹기, 귀기야, 제기, 인기야. 고지인호위이사기친야?」 자유문어공자왈 : 「지사이치사호? 불인, 불가위야. 지사이치생호? 부지, 불가위야. 범위맹기자, 지상도야. 부자시사즉의. 고구현관자, 역지이이. 여하의언?」
[解釋] 증자가 말하였다. 「그것은 그렇지 않다.」 무릇 盟器란, 귀신의 그릇인 것이며, 祭器는, 살아있는 사람의 그릇인 것이다. 옛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 죽은 부모를 죽은 이로 대접을 하였겠는가?」 자유가 이를 공자께 여쭈었다. 「죽은 자를 죽었다고 여길 수 있겠는가? 이것은 어질지 못한 것이니,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죽은 자를 살아있다고 여길 수 있겠는가? 이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니,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무릇 맹기를 함께 넣는 것은, 장례의 도를 아는 것이다. 무릇 사람들이 죽고 나면 그것으로 끝일뿐이다. 양 가죽 옷을 입고 현관을 썼던 자라고 하여도, 주고 나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그런데 너는 어찌 이것을 의심하느냐?」
26, 위패.
子罕問於孔子曰 : 「始死之設重也, 何爲?」 孔子曰 : 「重主道也, 殷主綴重焉. 周人徹重焉. 請問喪朝.」 子曰 : 「喪之朝也, 順死者之孝心. 故至於祖者. 廟而後行. 殷朝而後殯於祖, 周朝而後遂葬.」
자한문어공자왈 : 「시사지설중야, 하위?」 공자왈 : 「중주도야, 은주철중언. 주인철중언. 청문상조.」 자왈 : 「상지조야, 순사자지효심. 고지어조자. 묘이후행. 은조이후빈어조, 주조이후수장.」
[解釋] 子罕이 공자께 여쭈었다. 「사람이 막 숨을 거두었을 때에 잠시 위패를 설치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重을 설치하는 것은, 그것을 영혼의 主는 삼는 것이다. 周나라 사람들은 이를 철거하였다. 喪朝에 대하여 청하여 여쭙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상례에서의 朝란, 죽은 자의 효심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祖考의 사당에 이르러, 알린 다음에 떠나는 것입니다. 殷나라 때에는 朝를 올리고 빈소를 차렸고, 周나라 때에는 朝를 올린 다음 마침내 장례를 치렀습니다.」
27, 공자의 집에서 기르던 개의 죽음.
孔子之守狗死, 謂子貢曰 : 「路馬死, 則藏之以帷, 狗則藏之以蓋, 汝徃埋之. 吾聞弊幃不棄, 爲埋馬也, 弊蓋不棄, 爲埋狗也. 今吾貧無蓋, 於其封也與之蓆, 無使其首陷於土焉.」
공자지수구사, 위자공왈 : 「노마사, 즉장지이유, 구즉장지이개, 여왕매지. 오문폐위불기, 위매마야, 폐개불기, 위매구야. 금오빈무개, 어기봉야여지석, 무사기수함어토언.」
[解釋] 공자의 집을 지키던 개가 죽자, 공자가 자공에게 일러 말하였다. 「타던 말이 죽으면, 장막으로 묻어주고, 개가 죽으면 수레 덮개의 천으로 묻어주는 것이다. 네가 가서 묻어 주도록 하여라. 내가 듣기로 다 해진 장막을 버리지 않는 것은, 장차 말을 묻어주기 위한 것이라 한다. 지금 나는 가난하여 수레의 덮개 천도 없으니, 그 개를 묻는데 내가 깔던 자리를 주리라. 이것으로 그 재의 머리가 흙 속에 파묻히지 않도록 해 주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