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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跋文
주눅들지 않는 당당한 土種의 꿈
鄭 洋(우석대학교 명예교수, 시인)
1
여러 해 전 내가 전원생활이라는 걸 좀 해본답시고
산마을에 살 때의 일이다.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그
산마을에 마이크를 달고 와서 헐값에 닭을 팔고 가는
닭장차가 있었다. 녹음된 마이크로 만 원 한 장에 살진
암탉이 다섯 마리라고 몇 차례나 떠들었지만 실제로는
만 원에 아홉 마리나 열 마리씩 흥정이 됐다.
알 다 빼먹고 이제는 사료만 축내게 된 폐계廢鷄인 줄
알면서도 아랫마을 박 씨는 그걸 수십 마리씩 사서 철
망 두른 자기네 대숲에 풀어놓는다. 덩치는 크지만 날
기는커녕 거의 걷지도 못하다가 간신히 기우뚱거리며
걸음마를 배울 무렵쯤 되는 3주쯤 후에 그 폐계들은 ‘산
에 놓아기른 토종닭’이 되어 다시 팔려나간다. 박 씨 말
로는 사료값 빼고도 세 곱절은 남는 장사라고 했다.
토종닭 백숙 요리를 유난히 즐기는 친구 덕분에 나는
‘산에 놓아기른 토종닭’으로 변신한 그 속성 토종닭을
먹게 될 때가 더러 있다. 씹으면 씹을수록 질기기만 하
고 이빨만 아픈 그 재수 없는 폐계를 뜯을 때마다, 쫄깃
쫄깃하면서도 차지고 씹을수록 고소한 뒷맛이 입안에
착착 앙기는 토종닭, 명절이나 제삿날이면 투가리에 묻
은 냄새까지 혓바닥으로 싹싹 핥아먹던 어린 시절의 그
토종닭 맛이 새록새록 그리워지곤 했다.
시집 해설 글 첫머리를 빠다 냄새 묻은 유수한 문학
이론 같은 걸로 열어가야지 무슨 느닷없는 닭타령이냐
고 이 시집의 독자들께서는 굳이 탓하지 마시라. 나도
더러 그런 해설 글을 쓰긴 했지만 학교 강단을 떠난 나
이에 곰곰 생각해보니 그게 참 속절없는 짓이고 실인즉
슨 시를 이해하는 데 별 도움도 되지 못했던 것 같은
자괴감이 남는다. 정군수의 새 시집 초고를 읽는 동안
더 깊어진 그런 자괴감과 더불어 줄곧 내 머릿속에 맴
도는 닭 이야기나 좀 더 이어가야겠다.
알에서 깨어나 3주 만에 삼계탕이 되는 속성 육계나,
알을 보아도 품을 줄을 모르고 알만 낳고 살다가 폐계
가 되어 헐값에 팔린 지 3주 만에 걸음마를 배우며 다시
팔려나가는 속성 토종닭들 때문에 진짜 산에서 놓아기
른 토종닭은 그 명맥을 유지하기가 힘든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 속성 육계나 폐계의 모자란 맛을 가리려고
경우에 따라 찹쌀, 현미, 녹각, 밤, 대추, 엄나무, 인삼,
헛개나무, 오갈피나무, 버섯, 전복, 묵은지(묵은 김치)
등등 온갖 양념이 동원되기도 하지만 그런 양념만으로
는 속성된 육계나 폐계의 치명적 맹점이 가려지지 않게
마련이다. 한국에서 태어났으면서도 무슨무슨 치킨이
라는 서양 이름표를 달고 죽는 닭고기에 길든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씹을수록 오래오래 입안에 남는 토종닭
의 정겨운 뒷맛은 말 그대로 아는 입만 안다.
정군수의 새 시집 초고를 읽는 동안 내내 아는 입만
아는 토종만의 그 정겨운 뒷맛이 새삼스러웠다. 재수없
는 폐계를 뜯으면서 토종이 그리웠듯이 오래간만에 토
종의 차진 맛을 만끽하면서 상대적으로 속성 육계나 폐
계들 생각이 나서 느닷없는 닭이야기를 하게 됐다. 우
리문단에 시인의 수가 놀라운 속도로 늘어나고 시의 독
자는 더 놀라운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이 기이한 현상
의 배경에는 아마도 그 속성 육계나 폐계를 닮은 시들
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시를 어렵게 쓰기는 쉽고 쉽게 쓰기는 어렵다는 게
시에 관한 내 지론 중의 하나거니와 정군수의 시는 밥
에 뉘처럼 어쩌다 어려운 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전체
적으로는 매우 편하게 읽힌다. 편하게 읽힐 뿐만 아니
라 그의 시를 읽는 일이 옹골지고 정겹다. 그건 아마도
정군수의 시가 읽는 이들의 향수를 환기시키는 인간적
따뜻함과 시적 진실에 대한 열정과 세상사에 관한 통찰,
그리고 그 토종적 미학의 숙련도 때문일 것이다. 편하
게 읽히는 시를 쓰기 위한 시인의 고심은 여간해서 쉽
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것은 인간적 따뜻함과 진정성
과 열정과 숙련과 시적 성실성의 총화로 벼린 통찰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정군수의 시가 풀이나 나무나 꽃과 같은
자연사물을 즐겨 소재로 삼기 때문에 독자들과의 친화
력이 상승된다고도 말하지만 최근에 정군수의 시를 집
중적으로 읽어 본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정군수는 자연
사물을 즐겨 시의 소재로 삼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소재에 특별히 구애받지 않는 것 같다. 옛날 장자가 내
세우던 포정包丁, 평소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을 소로 여
기고 저게 소라면 칼날을 어떻게 다루어야 보다 완벽하
게 뼈와 살과 가죽을 해체할 수 있겠는가만 생각하며 살
았다는 그 소잡이의 달인 포정처럼 시인 정군수도 그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시의 소재로 삼으려는 시적 집
념과 열정이 시편마다 돋보인다. 자연사물이든 인간관
계든 사회문제든 역사의식이든 정군수는 포정처럼 그가
만나는 대상들 속에서 열정적으로 시를 찾는다.
속성 육계나 속성 토종닭들 때문에 토종닭이 그 설자
리를 위협받는 것처럼 시인들이 우글거리는 우리 문단
에서 그 우글거리는 그늘에 가려 주눅들어 지내는 시인
도 하나둘이 아니다. 아예 시 쓰기를 그만둔 시인, 시를
쓰면서도 시인이 된 걸 후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시인
들이 많다. 그게 다 속성으로 우글거리는 시인들 탓이
크겠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시인 정군수는 결코 주눅
드는 법이 없다. 그의 왕성한 창작활동과 열정적 창작
교육은 후배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여준다. 그는 이런저
런 문단행사에 누구보다도 궂은일에 앞장선다. 선배들
에게 깍듯하고 후배들에게 너그럽고 동료들에게 호탕
한 시인 정군수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결코 주눅들지
않고 시적 신념과 대범함을 함께 지니고 사는 당당한
토종이다.
2
정군수의 시에는 육친을 소재로 삼은 작품이 많다.
육친은 우리 삶의 직접적 뿌리이기에 육친에 대한 애틋
한 마음은 우리 모두의 보편적 정서에 닿아 있고 그런
소재일수록 자칫하면 상투적 감상이나 그 주변에 머뭇
거리기 십상인데 정군수의 육친에 관한 시편들은 적절
한 상관물들이 동원되어 그런 상투성을 벗어나 우리의
보편적 정서에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내 몸에서 깻묵 썩은 냄새가 나지야
깨꽃 같은 등창이 몸에 번져
병석에 오래 계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깨꽃냄새 같지만 썩은 냄새는 아니예요
썩는다는 말이 불경스러워 말했지만
아버지는 눈감고 고개를 저으셨다
썩은 깻묵에서 깨꽃냄새가 날 리 없지야
썩은 깻묵에서 깨꽃냄새 날 리가 없지야
고소한 기름 다 빠져나가고
거름이 되기 위하여 썩어가는 깻묵처럼
아버지는 힘없이 세상에 몸을 부렸다
아버지 누우신 한여름 깨밭 한 뙈기
깻묵처럼 푹푹 썩는 아버지의 무덤가에
깨꽃 초롱초롱 여름바람 향그럽다
병상의 문 열리어 하늘로 훨훨 날아가는
깨꽃냄새 같은 아버지목소리
썩은 깻묵에서 깨꽃냄새가 날 리 없지야
썩은 깻묵에서 깨꽃냄새 날 리가 없지야
새들이 다 물어가지 못한 깨꽃냄새가
깻묵냄새 묻은 무덤가에 흩어진다
- 「깨꽃냄새」
병석에 누워계시던 아버지의 깻묵 썩는 냄새가 아버
지 무덤 언저리에 있는 깨밭의 향그러운 깨꽃냄새로 흩
날리게 되는 것이 이 시의 주된 흐름이다. 몸에서 깻묵
썩는 냄새가 나는 것을 걱정하시는 병석의 아버지에게
화자는 ‘썩는다는 말이 불경스러워’ ‘깨꽃냄새 같지만 썩
은 냄새는 아니’라고 아버지의 걱정을 두둔하며 감싼다.
그러나 사실 ‘깻묵 썩는 냄새’는 현실이고 ‘깨꽃냄새’는
화자의 희망사항인 셈이다. ‘썩은 깻묵에서 깨꽃냄새가
날 리 없’다고 ‘깨꽃냄새’를 거듭 부정하시며 돌아가신
그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깻묵 썩는 냄새’를 ‘깨꽃냄새’
로 기어이 현재화시킨 것이 이 작품이다.
사실인지 잘은 모르지만 남자의 오줌이 香水를 만드
는 필수원료라는 말이 있다. 밤꽃에서 풍기는 정액냄새
가 쥐똥나무꽃 자귀나무꽃 아카시아꽃 찔레꽃 라일락
꽃 장미꽃 난초꽃 등등으로 점점 미화되어 마침내 싱그
럽고 은근하고 신비롭도록 미화된 그 향기들이 사람들
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처럼 지린내 나는 오줌도 그런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사람들을 이끄는 그윽한 향수가
되는 것일까? 오줌의 지린내를 향수로 변용시키는 까다
로운 노하우를 보통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
만, 깻묵 썩는 냄새를 깨꽃냄새로 부활시키는 이 시의
노하우는 사실 그렇게 까다롭지 않다.
이 작품의 깨꽃냄새는 죽음에 대한 예의와 연민과 효
심으로 빚어진 희망사항이다. 그 예의와 효심과 연민은
썩는다는 말을 불경스러워하는 화자의 진정성 때문에
상투성을 극복하고 우리들의 보편적 정서에 자연스럽
게 합류한다. 희망사항, 혹은 소원이라고 일컫는 것들
의 현실화를 우리는 더러 신화라고 하는데, 한 인간의
진정성이 그 자체로 신화가 될 수 있음을 이 작품은 우
리에게 친절하게 암시하고자 한다.
정군수의 시 속에는 위의 「깨꽃냄새」처럼 육친을 소
재로 삼은 시들이 여러 편 있거니와 그 중에서 어머니
를 소재 삼은 시 세 편만 내킨 김에 더 읽어보자.
인민군 무덤이 있는 화전밭에
하얀 감자꽃이 또 핍니다
구렁이 꼬리같이 징그런 대낮
하얗게 그렁거리는 감자꽃에는
감자 몇 알 캐다 총 맞아 죽은
어린 인민군의 그렁그렁한
눈망울이 맺혀 있습니다
어머니는 산꿩알 같은 감자 몇 알을
이제는 총성도 멎은
인민군 무덤 앞에 두고 옵니다
하지가 되면 어린 인민군이
감자밭으로 기어옵니다
삐비꽃도 다 날아가버린
바짝 마른 감자알이 인민군 대신
어머니와 인민군 어머니가
서로 등 다독여주는 소리를 듣습니다
어머니는 오뉴월 땡볕을
호미로 팍팍 찍어
올 하지에도 감자 몇 알
인민군 무덤에 갖다 놓겠지요.
- 「하지夏至」
화전밭에 감자밭이 있었고 그 감자를 캐다가 총 맞아
죽은 어린 인민군이 있었다. 신동엽의 서사시 「금강」에
등장하는 ‘진달래꽃 그늘 아래 장총을 베고 잠들던 소년
병사’와 「하지」의 ‘어린 인민군’은 서로 다른 인물이 아
니다. 「하지」는 또 윤흥길의 소설 「장마」를 연상하게
한다. 「장마」가 구렁이를 등장시켜 두 어머니를 화해시
키듯 「하지」도 감자를 상관물 삼아 두 어머니를 만나게
한다. 감자 캐다 총 맞아 죽은 낯선 병사의 무덤 앞에
해마다 하지감자를 캐다 주는 화자의 어머니와 자식 잃
은 어린 인민군의 어머니가 그 무덤 앞에서 만나 서로
등을 다독여주는 것은 물론 현실적 상황은 아니다. “바
짝 마른 감자알이 인민군 대신/ 어머니와 인민군 어머
니가/ 서로 등 다독여주는 소리를 듣” 는 것은 모정母情
을 바탕에 깔고 있는 이 시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인민
군 대신 ‘서로 등 다독여주는 소리를 듣’ 는 감자알은
잠시 화자의 역할을 대신하는 매재媒材다. 한국전쟁의
상처와 이념적 갈등을 초월하는 이 시의 모정은 시대를
건너 읽는 이의 마음을 적신다.
수의를 입히면서 어머니에게
복숭아뼈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살아생전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는
어머니의 복숭아뼈가 바짝 마른 살을 뚫고
내 손 안에서 숨을 쉰다
시집올 적 버선목에 숨어 있던
수줍은 볼 같은 복숭아뼈
심장은 멎었어도 내 손 안에서
복숭아뼈는 거친 논밭을 가고 있다
고단한 삶 견디던 옹골진 힘이
수의 안에 살아서 굳은 껍질을 깨고
자식에게 온다
짱짱하게 온몸을 받혀주던 복숭아뼈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언덕을 넘어
고단했던 삶 거두어 노을로 간다
- 「복숭아뼈」
간장독에 비친
어머니 얼굴
퍼 올리다 퍼 올리다
다 못 퍼 올리고
묵은 간장독에 인화印畵된
어머니 얼굴
아직도 집 못 떠나시고
섬처럼 가물거리며
간장독에 남아 있습니다.
- 「섬」
「하지夏至」에서 감자알이 듣는 두 어머니의 서로 등
다독여주는 소리가 비현실이듯 「섬」의 ‘묵은 간장독에
인화印畵된/ 어머니 얼굴’도, 「복숭아뼈」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복숭아뼈가 바짝 마른 살을 뚫고/ 내 손 안에
서 숨을 쉬’는 것도 현실적 상황은 아니다. 그것들은 모
두 화자의 꿈의 변용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들은 묵은
간장독에서 한평생 간장을 퍼 올리며 사신 어머니나, 복
숭아뼈의 옹골진 힘으로 고단함을 견디던 어머니의 삶
을 곁에서 지켜보았던 화자의 꿈으로 빚어낸 변용이다.
그 변용을 통해서 간장독에 붙박혀 섬처럼 가물거리는
어머니 얼굴이 화자의 가슴에 인화되듯이 ‘고단한 삶 견
디던 어머니의 옹골진 힘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단단한
복숭아뼈를 깨고 자식의 손에 전율처럼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정군수의 시들은 이처럼 현실과 꿈의 통로이기
도 하고 그 통로에서 애틋한 꿈을 건져 올리는 두레박
이기도 하다.
3
이 시집에 육친을 소재로 다룬 시가 여러 편이어서
그와 관계되는 몇 작품을 먼저 살펴보았거니와 앞서 말
한 바처럼 정군수의 시는 그 소재가 한정되어 있지 않
고 다양하다.
울돌목 하늘에 떠 있는
펄펄 끓는 용광로에서 건져 올린
두드리고 또 두드려
무지개 날을 벼린
조선낫 하나
베어내면 다시 돋는 못된 것들을
선뜩선뜩 잘라 수장시키려고
굽이치는 울독목에 담금질하여
남쪽하늘에 걸어놓았다
산 허리춤에 파르르 걸쳐 있는
진도 장날 조선낫 하나.
- 「진도 낮달」
시는 모두 은유다 라는 말을 새삼 되뇌이게 하는 시
가 이 세상에는 많다. 그 중에서도 달을 소재로 삼아
시의 은유적 속성을 성공적으로 환기시키는 서정시들
이 우리 주변에서도 자주 회자되는데, 은하수를 건너는
하얀 쪽배(윤극영의 「반달」)를 비롯해서 어머니가 걸어
준 흔들의자(송희의 「흔들의자」, 애벌레가 뚫고 나온
구멍(박성우의 「보름달」, 하늘에 감추어 둔 임의 눈썹
(서정주의 「冬天」) 등등이 그런 예에 해당될 것이다.
진도의 산허리에 걸쳐 있는 낮달을 조선낫으로 형상
화한 정군수의 이 작품은 시의 은유적 속성을 성공적으
로 환기시키면서도 앞서 말한 시들처럼 단순한 서정시
가 아니다. 울돌목으로 상징되는 비장한 역사감각과 그
에 수반되는 현실적 분노가 파르르 날이 선 채 산 허리
춤에 걸쳐 있다. 진도 울돌목의 하늘 아래 걸쳐 있는
정군수의 조선낫은 조일전쟁(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최
근까지 수도 없이 우리 역사와 민족적 자존심과 민생을
짓밟아 온 외세적 만행에 대한 치열한 분노의 민중적
표현이다.
허공을 가르며
심장으로 화살이 날아올 때
과녁은 눈을 감은 적이 없다
감을 눈이 뽑혔기 때문이다
지화자를 부르는 환호를 위하여
온몸으로 겁 없이 화살을 받는다
화살받이가 되어 쓰러진 사람들
감을 눈을 뽑힌 사람들에겐
새겨야 할 비문이 없다
시위를 당겨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꽂히고 꽂히고 뽑히고 또 뽑히고
숭숭 뚫린 가슴에 바람이 지나가도
그들에겐 흘려야 할 피가 없다
환호소리가 그들의 피를
다 먹어버렸기 때문이다.
- 「과녁」
이 「과녁」이라는 작품도 앞의 「진도 낮달」처럼 민중
적 역사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진도 낮달」이 파르
르 날이 서 있는 격정적 분노의 표출임에 비하여 이 「과
녁」은 그 분노가 비정할 정도의 체념으로 절제되어 있
는 것이 다를 뿐이다. ‘화살받이가 되어 쓰러진 사람들’,
감을 눈이 이미 뽑혀서 심장으로 화살이 날아와도 눈을
감지 않고 온몸으로 화살을 받는 사람들, 과녁 맞추는
환호 소리에 피를 다 먹혀 버려 더 흘릴 피가 없는 사람
들의 역사적 희생에 대한 시적 절제와 그 아이러니가
이 시의 행간에 서늘하다. 파르르 날이 서서 산 허리춤
에 걸쳐 있는 조선낫이 민중의 격정적 분노를 대변한다
면 이 「과녁」은 체념적 어법을 통하여 민중의 역사적
희생을 역설적으로 환기시킨다.
육친을 소재로 한 시들 외에도 「어떤 수달의 죽음」,
「순천만에서」, 「얼지 못하는 강」, 「비금도 제비」, 「징검
다리」, 「비」, 「바다를 잃어버린 절」, 「섬진강 겨울로 가
는」, 「운주사」, 「채석강」, 「안에 핀 꽃은 바깥을 그리워
한다」등등 일일이 언급하지 못해서 섭섭하지만 정군수
시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작품들 속에는 인간적 온기가
서려 있어서 그의 시들은 전체적으로 정겹고 친밀하고
따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녁」은 놀랄 만큼 차갑
고 싸늘하다. 그것은 정군수 시의 따뜻함이 식어서가
아니라 따뜻한 피가 더 뜨거워진 때문인 것 같다. 「과녁
」의 차갑고 싸늘한 태도는 그가 노상 정겹고 따뜻하기
만 한 게 아니라 뜨거운 피를 간직한 시인이라는 확실
한 반증일 것이다. 그 뜨거움을 감당하기 위해서 시인
정군수는 짐짓 몸을 차가운 곳에 두었을 뿐이다.
4
비금도 사람들은 집집마다
대여섯 채의 사글세를 놓고 산다 낡은 기와나
스레트 지붕을 인 가난한 집일수록
사글세를 많이 놓지만 시멘트로 지은
높은 집은 인기가 없어
한 채의 사글세도 들이지 못한다
섬마을 오월은 글 읽는 소리로 통통배가 나간다
지지위지지부지위부지시지야*
처마밑 전깃줄 빨랫줄 문간시렁 담벼락 용마름에서
화음을 이루지 못한 소리가
바닷바람에 간이 배여 오선지를 타고
선왕산으로 날아가 인동초 꽃을 피운다
새끼제비 꽃노래 가득한 오월에는
책거리하는 서당 학동들 목소리도
제비주둥이를 닮아 노랗다
지지위지지부지위부지시지야
지지위지지부지위부지시지야
비금도에는 훈장님이 따로 없다
세들어 사는 제비들이 다 훈장님이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니라
비금도 사람들은 집세 한 푼 받지 못해도
모르는 걸 모른다고 배워 손해 본 적이 없다
바닷바람이 해일을 불러 방파제를 뛰어넘어도
모르는 걸 모른다고 가르치는 제비들도
강남 갈 걱정을 따로 하지 않는다.
* 비금도(飛禽島) : 전남 신안군에 있는 섬.
*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 論語 「爲政」편
- 「비금도 제비」
날씨 탓인지 농약 탓인지 탁해진 대기 탓인지 아니면
흥부 같은 착한 사람이 드문 탓인지 요즘엔 시골에서도
제비 보기가 힘들다. 이 「비금도 제비」를 보면 비금도
는 아직도 제비들이 많이 사는, 그래서 사람이 살 만한
곳인가 보다. 제비가 훈장이 되어 사람들을 깨우친다는
이 시의 서술태도가 그렇다. 제비들이 지지배배 지저귀
는 소리를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시지야’ 라는 논어의 글귀에 빗대는 화자의
솜씨가 구수하고, 구수할 뿐만 아니라 이 시의 핵심에
수월하게 다가서도록 한다.
미친놈은 제가 미친놈인 줄을 모른다. 자기가 나쁜
놈인 줄 아는 나쁜 놈도 흔치 않다. 망국적 지역감정이
나 극우니 뉴라이트니 하는 편향적 이념을 앞세워 한국
現代史가 양산하고 있는 愚衆들도 색스와 스피드와 스
포츠 같은, 세칭 쓰리에스라는 것에 홀려 자기들이 우중
임을 모르는 채 역사에 죄를 짓는 일들이 허다하다. 자
기가 우중인 줄 아는 우중은 최소한 우중은 아닐 터이
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라는 논
어의 글귀를 빗댄 비금도의 제비소리에는 겉으로는 구
수하고 낙천적이지만 실인즉슨 우리의 안타까운 우중
들을 의식화시키고자 하는 시인 정군수의 간절함이 비
장하게 담겨 있다.
지난 해 초가을 나는 위도의 어느 펜션에서 하룻밤
묵은 일이 있었다. 이 시집의 뒷글을 맡아 귀한 시집을
어지럽히는 이 작업도 아마 그날 밤의 인연 때문이 아
닌가 싶은데, 그 밤에 나는 한 소금도 잠을 이루지 못했
다. 위도의 밤하늘 별빛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펜
션의 넓디넓은 방에서 술판을 벌인 여남은 명의 술꾼들
때문이었다. 술꾼들이 하나둘씩 술에 떨어지고 잠에 떨
어져 술상 옆에 이부자리를 펴고 눕는데 정군수는 어느
후배시인의 말도 안 되는 술주정을 들으면서 그 시늉을
다 해주다가 맨 마지막에 잠들었다.
나는 잠자리를 옮기면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드는데
그날은 수면제 챙기는 걸 깜박 잊어 먹고 술판을 저만
치 둔 채 눈 좀 붙여 보려고 밤 깊도록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새벽 2시쯤 술자리가 끝나서 그나마 다행이
다 싶었는데 상황은 예상치 못한 쪽으로 흘렀다. 코고
는 소리, 화장실 들락거리는 소리, 불규칙적인 잠꼬대
같은 것들이 술판보다 더 내 잠을 망쳤다. 그 중 가장
고약한 것이 마지막에 잠든 정군수의 잠꼬대였다.
정군수의 목소리는 우람한 등치 못지않게 우렁우렁
울린다. 뭐라고 하는지 자음과 모음이 구분되지 않게
입안에서 웅얼거리는 소리여서 전혀 알아들을 수는 없
었지만 분위기로 봐서 누군가를 단단히 꾸짖으며 호통
치는 소리였다. 10분쯤 되는 간격으로 웅얼거리는 그
호통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그가 잠들기 전까지 참으며
듣던 후배시인의 말도 안 되는 술주정이 떠올랐다. 정
군수는 꼭 그렇게만 생각하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하면
서 인터넷 같은 데서나 나옴직한 그 후배시인의 극우적
모시인의 예찬을 다 들어주고 있었다.
술자리에서 꾹꾹 참았던 게 저렇게 잠꼬대가 되는가
보다 여기면서 날이 밝을 때까지 나는 모시인 예찬에
열을 올리던 후배시인, 내가 벌떡 일어나서 따귀라도 후
려치고 싶던 그 후배시인 대신 그 호통소리를 다 들어
주었다. 시 해설을 하다가 느닷없이 장황하게 잠꼬대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지지위지지부지위부지시지야’
라는 비금도의 제비 지저귀는 소리를 읽다가 그것이 위
도에서의 정군수의 호통소리로 곧바로 이어졌기 때문
이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게 아는 거라는데, 알아
들을 수 없었던 잠꼬대에 대하여 괜히 아는 체를 하는
것만 같아 어쩐지 좀 쑥스럽지만 비금도의 제비소리나
위도에서의 정군수의 잠꼬대가 나에게는 분명히 우리
나라 안타까운 우중들에 대한 호통소리로 들렸다는 것
을 차제에 밝혀 둔다.
5
정군수는 궂은일을 앞장서서 해야 되는 문인단체의
회장 일을 맡고 있다. 그런 일들은 시 쓰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도움은커녕 방해가 되는 일이 허다하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문인단체 회장을 맡고 있는 이들
에게 좋은 작품의 창작을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무리일
수도 있을 만큼 그들이 해야 되는 궂은일들은 분명히
창작에 방해가 될 것이다. 정군수가 전북문인협회 회장
에 뽑혔을 때 일단 축하는 해줬지만 그런저런 일들이
속으로 염려되었다. 그러다가 이참에 엮게 되는 새 시
집 초고를 읽으면서, 특히 「얼음연탄」, 「비움을 만나고
서야」 등의 작품을 읽고 다소 맘이 놓였다. 정군수는
소잡이의 달인 포정처럼 그의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뿐
만 아니라 그가 겪는 모든 사회적 역사적 통증 등등을
통해서 끈질기게 시적 탐구를 지속하고 있다.
중앙동 재래시장 빈지문짝 기둥에
‘얼음연탄’이라고 허물어지는 글씨로 쓴
문패만 한 간판이 붙어 있다
꼬부랑 주인한테 물었더니
여름에는 얼음 팔고
겨울에는 연탄 파는 집이란다
작은 간판에 많은 글씨를
다 넣으려니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그걸 모르고 괜히 겁먹었구나
시를 저렇게도 써야겠구나
한 수 배우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 「얼음연탄」
허물어지는 글씨로 쓴 얼음연탄이라는 간판을 보고
화자가 겁을 먹은 이유는 그 생략되어 있는 말들을 미
처 깨닫지 못하고 얼음연탄을 하나의 상품으로 알게 된
탓이고 그 얼음과 연탄이라는 서로 상반되는 속성을 지
닌 것들이 어떻게 하나의 상품이 되는가 하는 소박한
의문 때문이었을 것이다. 「얼음연탄」에서 화자가 깨닫
게 되는 것은 우선 시는 꼭 필요한 말만 써야 한다는
시창작의 기초적인 불문율이다. 그리고 서로 상충하는
사물을 하나로 엮음으로써 빚어지는 ‘낯설게 하기’의 시
적 효과다. 오랫동안 시를 쓴 정군수가 그런 걸 모를
리 없겠지만 짐짓 몰랐던 체하는 것은 우연히 눈이 띈
골목길의 옹색한 간판을 통해서 그런 시창작의 기초와
그 효과를 새삼 확인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
가 끊임없이 詩道에 정진하고 있음을 알게 하는 확실한
증표다. 한 수 배우고 돌아오는 화자의 발걸음이 가볍
지 않고 무거운 것도 세상 궂은 일들에 매달려 살다가
그런 기초적인 시창작의 자세 같은 것마저 잊게 되면
어쩌나 싶은 걱정 때문이었을 터이다.
새는 비어 있는 뼈 마디마디에
동토凍土의 눈보라도
열사熱砂의 모래바람도 불러들여
원시의 하늘을 날아 숲으로 온다
나무가 바람소리를 지니고 사는 것은
새의 빈 뼈에서 흘러나온 바람의 홀씨가
가지와 가지 사이에
노래의 음계를 달아놓았기 때문이다
태풍 불어 사과가 떨어질 때
새소리가 떨어지지 않고 둥지를 트는 것은
새들의 빈 뼈를 만유인력이
제일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비움을 만나고서야
바람도 성내지 않고
천둥이 벼락이 몰아쳐도
천상의 노래를 지어낸다.
- 「비움을 만나고서야」
「비움을 만나고서야」도 「얼음연탄」에서처럼 詩道를
향한 끊임없는 정진을 진솔하게 고백한 작품이다. 그런
진솔한 고백을 위하여 고심을 거듭한 흔적 또한 전편에
역력하다. 아는 것도 짐짓 모르는 체하며 구수하고 읽
기 편한 시쓰기를 즐기는 정군수의 시들 중 이 작품은
그렇게 편하게만 읽히지는 않는다.
이 작품을 쓰면서 시인이 처음 만난 어려움은 아마도,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비워야 한다라는
명제가 너무 상식적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 쓰기에
서 상식은 상투성과 직결되기 십상이기 때문에 가급적
이면 피해야 하는 것이 시 쓰기의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비워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라는 절
대적 진리를 그것이 상식적인 것일지라도 시인은 포기
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상식을 피하기 위해서 시인이 모색한 방법은 절대적
진리를 변형시키는 일이다. 그 변형을 위해서 먼저 가
벼움을 유지하려고 속을 비운 새의 뼛속에 바람을 채워
넣는다. 起承轉結의 起에 해당하는 첫 연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새의 빈 뼈에서 흘러나온 바람의 홀
씨가/ 가지와 가지 사이에/ 노래의 음계를 달아놓’ 도록
한다. 시의 씨앗이 나뭇가지에서 바람과 더불어 자라게
하는 것이다. 바람을 집어넣은 새의 빈 뼈는 너무 가벼
워 만유인력도 무서워할 정도라는 진술은 빈 뼈의 가벼
움을 강조하기 위한 합리적 과장이다.
그런 과정들을 거쳐 변형된 빈 뼈와 바람은 마지막
연에 이르러 비로소 상식의 허울을 벗고 시의 본질에
다가선다. 마지막 연의 내용은 ‘바람도 천상의 노래를
지어낸다’ 라고 한 줄로 간추려지는데, 이 시를 읽는 독
자는 아무리 바빠도 ‘바람도’의 ‘도’라는 조사에 잠깐 관
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도’라는 역동亦同보조사는 이름
그대로 ‘역시 마찬가지’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 무엇과
마찬가지라는 그 무엇이 이 시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시의 이해를 위하여 생략된 내용을 좀더 보완하자면 ‘시
인이 마음을 비워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것과 마찬가
지로 바람 ‘도’ 비움을 만나야 천상의 노래를 지어내게
된다’ 쯤 될 것이다. 빈 뼈 속에 들어 있는 바람에게 잠
시 시인의 역할을 빌려주는 셈이다.
한 편의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 마음을 비우기가 어
렵듯이 그 상식의 허울을 벗겨 절대진리를 형상화하기
도 어렵다. 이 「비움을 만나고서야」라는 시에는 그런
어려움을 무릅쓰고 좋은 시를 쓰려고 고심하는 시인의
모습이 역력히 각인되어 있다.
전북문인협회 회장으로 뽑혀 문단의 궂은일들을 앞
장서서 감당하는 시인 정군수에게 축하와 격려를 보내
기 전에 먼저 걱정이 앞서기도 했었지만 이 시집의 초
고를 읽으면서 그런 걱정들이 말끔히 지워졌다.
아무쪼록 시인 정군수가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한 토종
으로 자리 잡아 우리 문단에 활력소가 되었으면 좋겠
다. 발문을 쓴답시고 주마간산이 되고 만 것 같다. 이
글에서 미처 언급하지 못한 것들과 부족한 생각들에 관
하여 諸賢께서 高見을 보태주시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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