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물범
Meghan Louise Wagner
미단
P275 폴과 다이애나에 관한 여러 버전 중 대부분에서 그들이 캘리포니아 가는 길에 코끼리물범을 보기 위해 잠깐 멈추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생각을 한 건 폴이다. 그는 코끼리물범에 대해 읽은 후로, 바닷가는 가는길에서 벗어나 있지만, 잠깐이라도 가서 실물로 보고 싶다. 1969년이다. 다이애나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동물의 스냅사진을 찍을 준비를 하고, 그 물범들은 그리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수년 동안 그 자리에 있다고 폴이 설명한다.
“동물원 같은 곳이야?” 다이애나가 묻는다.
“아니,” 그가 답한다. “그 동물들은 거기 그냥 살아.”
운전하는 동안, 소와 말들이 점점이 박혀있는 푸른 언덕을 지나간다. 허스트 캐슬이 멀리 보인다. 그 캐슬은 한 백만장자가 애인을 기쁘게 해주려고 지은 거라고 폴이 말한다. 다이애나는 눈을 반짝이며 “시민 케인 영화 봤어.”라고 한다.
임신 4개월 차인 다이애나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배 뭉침이 염려스러워 쉬어가고 싶다. 폴은 운전을 계속하고 싶다. 언제 또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다이애나는 물범이 존재하는지 확신도 할 수 없는 마당에, 폴이 근처 병원으로 갈 수 있는 교차로를 지나칠 때마다 그에게 소리 지른다.
어쩔 수 없이 폴은 진료소에 그녀를 데려간다. 나이 지긋한 의사는 어린 임산부에게 첫 임신으로 흔히 있는 예민한 반응일뿐이라고 한다. 의사는 폴에게 얼음주머니를 주고 폴은 그걸 다이애나에게 준다.
주차장에서 그녀는 바닷냄새를 느낀다. 그녀는 얼음주머니를 뒷자리에 던지고, “우리 그냥 내 사촌 집으로 곧장 갈래?”라고 묻는다.
또 다른 버전에서는, 폴과 다이애나는 진료소에 가지 않고 곧장 바닷가로 간다.
해가 막 져버린 후 도착한다. 폴은 차를 주차하고 다이애나는 그에게 가보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꼼짝하지 않는다. 사막의 서늘한 밤을 많이도 이리저리 거닐어 보았지만, 캘리포니아 해안의 추위는 베이킹소다와 식초가 만나 그녀의 피부에서 부글거리는 느낌이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추위다.
소름이 돋은 채로 배뭉침을 겪고 있는 그녀를 두고 폴은 자리를 뜨고 물가에 있는 바위들을 더 잘 보기 위해 절벽을 따라 걷는다. 그 바위들은 바다 저 멀리서부터 오랜 여행을 한 후, 쉬고 있는 바다표범들일 수도 있다. 태양이 사그라지자 그는 다른 바닷가를 한 번 더 들러볼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는 다시 차로 돌아온다. 남쪽으로 운전해 가면서 그는 바다 물범을 계속 생각한다. 바닷바람은 창문을 통해 들락날락하고 그는 오래전에 바다 물범에 대해 읽은 것들이 머릿속에 제대로 떠올려지는지 궁금하다. 로스앤젤레스까지 가는 내내 궁금함은 따라다닌다. 다이애나의 사촌이 베개나 수건이 더 필요한지 물어볼 때마다 그 궁금함은 그의 피부를 벗겨낸다. 어느 날 밤에 그 궁금함으로 그는 침대에서 굴러 일어나고 다시 해안가로 운전해 돌아간다.
P276 또 다른 버전에서는, 폴은 결코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하지 못한다. 떨고 있는 다이애나를 차 안에 두고 자리를 뜬 후 밧줄을 타고 넘어간다. 그 밧줄은 해가 지면 해안가 출입을 막으려고 쳐 놓은 거다. 그는 모래투성이 바위 위로 걸어가다가 소금기 가득한 강한 바람을 숨 막히게 맞기도 한다. 거대한 덩어리들이 바위인지 살아있는 동물인지 어두워서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는 자세히 보기 위해 더 가까이 간다. 그는 바다 물범 중 하나만이라도 얼굴을 보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사라져 버린다.
다이애나 편에서 볼 때 여러 가지 다른 버전들이 있다. 그녀는 그가 너무 가까이 갔다고 여긴다. 아빠가 되기 싫어 도망갔다고 여긴다. 그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여긴다. 수영하다가 빠른 소용돌이에 휘말렸다고 여긴다. 오토바이 애호가들에게 납치당해 강제로 플라스틱 우유 잔에 든 밀주를 마셨을 거로 여긴다. 군에 입대하여 베트남에 보내졌다고 여긴다. 히치하이크하여 클리블랜드로 돌아갔다고 여긴다. 그가 누이동생을 찾으러 동쪽으로 갔다고 여긴다. 그녀는 그가 아마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여긴다.
다이애나가 캘리포니아에 결코 도착하지 못한 또 다른 버전이 있다. 그녀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칵테일 나르는 일을 한다. 폴은 프로메타우스 뷔페식당에서 예비요리사다. 때때로 그들의 동선은 호텔 로비에서 겹친다. 폴은 내빈 출입구를 이용해선 안 되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다이애나는 그가 머리를 꼿꼿이 세운 채, 빳빳한 하얀 요리사복을 차려입고 금박패널로 된 홀을 거니는 걸 본다.
그녀는 팁을 받기 위해 알랑거리며 밤낮을 보낸다. 폴이 자그만 부엌에서 버너에 불을 붙일 때 그녀는 침대에서 늘어지게 누워 아침을 보낸다. 그는 그 자신이 예비요리사 수준보다 훨씬 낫다고 여기고 그녀에게 으스대고 싶어 한다. 그는 팬에서 달걀부침을 미끄러트리며 옮긴다. 감자는 속은 부드럽고, 겉은 바삭하다. 토마토 조각들과 소금, 후추를 위에 뿌린다. 그가 토스트에 바른 버터는 신선한 크림 맛이다.
폴의 누이, 헬렌은 그들이 사는 작은 아파트에서 함께 지낸다. 칵테일 라운지에서 다이애나와 함께 일한다. 다이애나가 아파트에 들어올 때, 밥 먹는 테이블에서 헬렌이 핑크 매니큐어를 바르는 것을 보면 화가 난다. 헬렌이 다 커버린 여자임에도 하루에 세 번씩이나 거품 목욕을 하는 것에 화가 난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사촌 가까이 살자는 얘기를 다이애나가 꺼낼 때마다 폴은 “헬렌은 어쩌고?”할 때 화가 난다.
폴은 침대에 있는 다이애나에게 아침을 차려주며, 그와 그의 누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의 자식인 쌍둥이, 폴룩스와 헬렌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말한다. 다이애나는 포크와 나이프로 토마토 속을 자르면서, “카스트로와 폴룩스가 쌍둥이인 것 같은데.”라고 말한다.
폴은 침대 옆 탁자에 있는 커피잔에 커피를 다시 가득 채운다. 아침 접시는 그녀의 허벅지 위에 있고, 아직 따뜻하다. “카스트로와 폴룩스는 엄마만 같아,” 그가 말한다. “폴룩스와 헬렌은 같은 피를 가진 오누이고 둘 다 제우스의 아이들이야. 그래서 그들은 신의 영역에 속해.”
그는 트로이 전쟁과 반신반인에 대해 할 말이 더 있지만, 다이애나는 남자친구의 누이가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을 갖게 됐건 말건 생각하고 싶지 않다.
P277 오하이오의 클리블랜드를 절대 떠나지 않기 때문에 캘리포니아에 가지도 않은 폴과 다이애나의 또 다른 버전이 있다.
폴과 그의 누이 헬렌이 15살 일 때, 웨스트사이드 마트 가까이, 가족이 하는 식품 가게에서 그들은 함께 일하기 시작한다. 아버지, 니콜라스는 일을 시작할 때마다 게임을 한다. 그는 일간지의 십자말풀이를 보고 그들에게 실마리를 알려준다. 문제를 맞히는 사람은 그날의 할 일을 먼저 선택할 수 있다.
폴은 매번 이길 방법을 궁리한다. 다른 사람들이 잠에서 깨기 전에 그는 일찍 일어나서 신문을 살짝 훔쳐본다. 복도로 살짝 엎드려 지나가서, 아침의 희뿌연 빛에, 신문이 구겨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뒤적거린다. 그는 십자말풀이의 실마리를 보고 준비한 것을 머리에 새기며, 원래 있던 현관문 옆에 신문을 말아 놓는다. 그러고 나서 점심시간에 카페테리아에서 나와 학교도서실로 걸어간다. 만약 백과사전에서도 답을 찾을 수 없다면, 그는 도서관 사서에게 “셰익스피어가 누구랑 결혼했는지 알아요?”라고 묻거나, “기각류가 뭐예요?” 하고 묻는다.
그의 이런 준비에도 불구하고 헬렌은 재빠르다. 아버지는 계산대 위에 높이 자리 잡고 앉아, 접어놓은 종이에다 연필을 두드린다. “제2의 시저,” 그가 말한다. “알파벳 8자.”
“아우구스투스.” 턱을 살짝 기울이며 헬렌이 답한다.
니콜라스는 알파벳을 세어보지만, 폴은 걱정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곧 27 가로는 4개의 알파벳이라는 것과 노르웨이의 도시라는 실마리와 같이 맞물려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아버지가 머리를 가로젓기 전에 폴은 까치발을 하고 말한다. “옥타비아누스.”
그날은 꼭 해야 할 두 가지 중요한 일이 있다. 쥬시 프릇 껌 쌓아 놓는 일과 유제품을 채워 넣는 일이다. 초가을인 데다 거의 3도에 가까운 대형 냉장고에 폴은 들어가기 싫다. 간단한 설명 후에 아버지는 헬렌에게 작업용 면장갑을 건넨다.
폴이 껌을 차곡차곡 정리하며 시간을 보낼 때, 좀처럼 생기지 않던 후회의 꼬챙이가 그의 척추를 훑는다. 이긴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걸까. 출입문의 벨 소리가 울리자 엄마, 크리스티나가 들어온다. 그와 헬렌처럼 붉은색 머리카락인 엄마는 푸른 우산을 들고 있다. 니콜라스는 비가 오냐고 묻는다. 크리스티나는 그와 폴 사이를 힐끗 쳐다보고 “왜 맨날 헬렌에게만 힘든 일을 시켜?” 한다.
바깥에 가로등이 오랜지 불빛을 로레인 거리에 드리우자, 폴은 엄마가 저녁을 진짜 준비하시려나 아니면 샌드위치를 또 먹어야 하는지 가늠하고 있다.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 매일 저녁 요리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문소리가 나고 두 남자가 총을 들고 들어선다. 크리스티나는 우산을 떨어트리고 아버지에게 그들이 원하는 건 뭐든지 다 주라고 말한다. 아니면, 적어도, 그 남자들이 세 사람을 모두 쏘기 전에 엄마가 그렇게 말한 거란 생각이 폴에겐 든다.
P278 또 다른 버전으로는, 헬렌이 이긴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다이애나를 화나게 만든 그녀, 작은 부엌의 식탁에서 손톱을 칠하고 하루 세 번 거품 목욕을 한 바로 그녀, 그 헬렌이다. 이 헬렌은 폴이 수를 쓴다는 걸 알고 있다. 그의 성격으로 보아 그럴만하다. 그들이 열다섯이 되었을 때,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동이 트기 전에 매일 아침, 그가 좁은 복도에 숨어드는 소리를 헬렌은 듣는다.
그래서 어느 날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헬렌은 우유 살 돈을 모두 신문 사는데 써버린다. 자습실에서는, 칸이 넓게 그어져 있는 종이에다 암기하면서 답을 마구 휘갈겨 쓴다. 쉬는 시간에도, 다른 애들은 입술에 립글로스를 바르거나 머리를 빗거나 할 때 그녀는 화장실 거울 앞에서 발음을 연습한다.
“트루먼.” 헬렌이 말한다. “베릴륨, 오슬로, 코끼리물범.”
니콜라스가 계산대 뒤에서 힌트를 읽을 때, 헬렌은 답을 안다. 폴이 답을 불쑥 내뱉기 전에, 그녀는 두드러지게 발을 구르며, “옥타비아누스,” 라고 말한다. “옥타비아누스예요.”
폴의 환한 안색은 창백해지고, 기가 막혀, 그녀를 유심히 본다. 통각이 그녀의 척추 가운데를 뚫고 지나가 발가락들을 움찔거리게 한다. 그가 왜 상처받는지 이해한다. 그의 성격으로 보아 그는 반드시 이기고 싶은 거다.
니콜라스는 계산대 위로 손을 뻗어 헬렌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맞다,” 그가 말한다. “어떤 일 하고 싶니? 귀염둥이.”
그녀는 풍선껌을 고르고 폴을 냉장고로 보낸다. 그는 작업용 면장갑을 잡아채고는 뿌루퉁하게 빵이 쌓인 통로를 지나간다. 아버지는 헬렌을 도와 쥬씨 프릇 껌 상자를 앞쪽 계산대 쪽으로 옮긴다.
헬렌은 껌을 차곡히 쌓으며, 제자리를 벗어난 허쉬 초콜릿 바와 레몬 헤드도 정리한다. 아버지는 라디오로 야구경기를 경청한다. 가게 밖은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캘리포니아처럼 아직도 해가 훤하다면 경기를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 헬렌은 생각한다.
P279 그녀가 자기 일을 마치고 일어선다. “아빠” 하고 묻는다. “여분의 면장갑 있어요?”
헬렌이 옆문을 통해 냉장고에 들어가니, 폴은 버터를 1/4 정도만 정리하고 있다. 그가 숨 쉴 때마다 입김이 동그랗게 나온다.
“왜 왔어?” 그가 묻는다.
“도와주려고.” 그녀가 꿇어앉자 스타킹만 신은 다리에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이 닿는다.
폴은 웃지 않는다. 그는 내키지 않지만 도움을 거부할 만큼 언짢지 않다. 헬렌은 화물 운반대에 쌓여있는 무염 버터를 그에게 건네준다. 폴은 받아서 케이스에 집어넣는다.
리드미컬하게 주거니 받거니 작업이 계속되다가 헬렌은 와락 몸에 충격을 받아 넘어진다. 헬렌의 머리는 바닥에 짓눌린다. 머릿속이 하얗다. 폴의 몸무게가 그녀를 무겁게 짓누른다.
“가만히 있어.” 그는 조용히 말한다.
무슨 일인지 그녀는 알 수 없다. 이것도 게임인가. 바닥의 냉기가 그녀의 옷을 통해 파고들어 다리와 턱과 뺨을 서늘하게 만든다. “폴,” 하고 부르며 "그민해,” 하려는데, 총소리가 난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벌떡 일어나 도망가고 싶은데 폴이 그녀를 꼭 잡고 있다.
강도 사건에서 살아남은 헬렌과 폴에 관해선 여러 버전이 있지만, 그의 부모들에겐 다시는 버전이 없다. 몇몇 버전에서는 아이들이 조부모와 함께 산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다른 버전에서는, 가게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의 웰링턴에 있는, 삼촌과 숙모의 농장에서 산다는 얘기도 있다. 폴은 허드렛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건초를 펴서 말리고 옥수수를 따는 일은 매일 당해야 하는 고문이다. 헬렌에겐 그 일들이 싫지는 않다. 우유병을 차곡차곡 쌓았을 때 그랬던 것처럼, 감자껍질을 깔 때 그녀 마음은 이리저리 노닌다. 창문을 통해 길 쪽으로 쭉 뻗은 눈부신 녹색과 노란 들판을 응시한다.
어느 날 밤, 그들이 17살쯤 됐을 때, 폴이 멍든 눈으로 더플백을 메고 창가에 나타난다. “어딘가로 떠나보는 건 어때?” 그가 묻는다.
시간이 흐른 후에, 그들은 황금색의 들판을 지나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헬렌은 창가에 앉고 폴은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 코를 곤다. 비가 유리에 후드득 부딪히고 의자에선 팔리지 않아 오래된 우유 냄새가 난다. 헬렌은 엄지로 폴의 가방 덮개를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본다. 1/5정도 남은 위스키병, 고무줄로 묶은 현금은 놀랄만한 거는 아니다. 베티크래커의 요리책이 들어있다는 것은 놀랄만하다.
쌍둥이들이 라스베이거스에 눌러앉는다는 여러 버전에서, 폴이 다이애나와 사랑에 빠져있다는 얘기는 매번 나온다. 그녀는 20대의 금발이고 아이라이너를 검게 칠하고 부엌 개수대에 담뱃불을 끈다. 다이애나는 폴의 부탁으로 헬렌이 호텔 라운지에서 일하도록 하지만, 다이애나가 하는 일이란 헬렌을 질책하는 거다.
“하이힐을 신을 수 없다면, 단화나 신어.” 다이애나가 말한다.
P280 헬렌은 거실 소파에서 잔다. 그녀는 폴과 다이애나가 밤늦게 또는 이른 새벽에 내는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목욕을 오래 해야 한다. 그녀는 발가락을 욕조 넘어 연한 옥색 타일로 뻗치면서 벽 넘어 사막이 끝없이 펼쳐지는 걸 상상한다.
거의 모든 버전에서 나오는 이야기인데, 헬렌이 어느 날 밤늦은 교대근무를 하러 갈 때, 카지노의 로비를 급하게 지나치는데 왼쪽 구두의 발굽이 떨어져 나간다. 그녀는 꼬꾸라지고 스타킹이 카펫을 훑는다. 머리도 마구 흔들린다. 몸에 멍은 들지 않았지만, 이 기분, 땅바닥에 엎드린 기분은 생생하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가 손을 내민다. 그는 청바지를 입고 있는데 그것에서 재떨이 냄새가 난다. 그의 수염은 은발이고, 머리카락은 갈색이다. 그는 귀 뒤에 노란 연필을 꽂고 있어, 그걸로 보아 잡역부 같지만, 왠지 그의 뒷주머니에 십자말풀이가 꽂혀있을 것 같다.
그녀는 일어서지만, 당혹감이 느껴져, 망가지지 않은 나머지 한쪽 신발마저 벽 쪽으로 벗어 던지고 맨발로 카지노를 질러간다.
이틀 후, 그 남자는 헬렌의 구역에 있는 테이블에 나타난다. 머리카락을 단정히 다듬고 턱수염은 말끔히 면도해서, 은발은 자취도 없다. 10살은 더 젊어 보인다. 그는 넥타이 없이 짙은 회색의 양복을 입고 끝이 뾰족한 광이 나는 구두를 신고 있다. 그의 창백한 눈이 헬렌의 눈에 들어오고, 그 눈은 어떤 개의 눈빛과 너무나 유사해서, 그가 그녀를 도와주던 그 날, 이 뚜렷한 특징을 미처 보지 못한 것이 놀랍다.
그의 이름은 헨리 코벤트리다.
“모두 헹크라고 불러요.” 그가 말한다. 이스트 코스트 말투로 보아 그가 돈이 좀 있어 보인다. 그는 그녀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하는데, 고객이 데이트 신청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대답을 한 건 처음이다.
그녀는 찐 아티초크의 잎을 떼어낸 후 따뜻한 버터에 꽃봉오리를 담근다. 헹크는 그녀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어디 출신이오? 뭘 좋아하오? 남자 형제나 여형제가 있소?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있소?
헬렌은 폴이 가르쳐준 대로 치아 사이의 아티초크 잎을 뺀다. 그걸 바로 씹지 말고 알맹이만 추출한다. 그녀가 클리블랜드에서 왔다고 하자 그는 불타는 강에 대해 우스갯말을 한다.
“폴은 그곳에서 수영하곤 했죠.” 그녀가 말한다.
“그래요? 그래서 폴도 불이 붙었나요?”
“아직은요.”
P281 그 후 며칠이 지나도 헬렌은 그에게서 소식을 듣지 못한다. 그녀는 그가 멋들어진 신발을 신고 동부로 돌아갔다고 추측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호텔 식당에 있는 폴에게 달걀 한 꾸러미를 가져다주려고 가는 길에, 출입구 바깥에서 행크와 마주친다. 그녀가 그를 처음 본 날처럼 그는 흰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다. 햇살이 환해서, 그의 턱에 흰색과 회색의 수염들이 듬성듬성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겨드랑이에는 반짝이는 흰색 리본으로 장식된 신발 상자가 있다.
“이건 수선해 왔어요.” 그가 말한다.
우체국 직원이 하듯 그녀는 두 손으로 상자를 받는다.
“난 코네티컷으로 돌아가야 해요.” 그가 말한다.
“난 폴한테 달걀을 갖다 줘야 해요.”
헹크는 자리를 뜨고 헬렌은 호텔의 뒷문 출입구를 향해 가던 길을 간다. 조식 담당 요리사가 그녀를 기다리다 폴의 달걀을 받아든다. 무엇 때문인지, 그는 신발 상자안에 구겨진 포일를 넣어 간격을 만들고 달걀을 포장한다. 헬렌은 조리대에 기대서서 고쳐온 빨간 구두에 발을 넣어본다. 집으로 가는 길에, 한쪽 겨드랑이에는 달걀이 든 신발 상자를 끼고 다른 겨드랑이에는 신발이 든 상자를 끼고 걷는다.
이 이야기의 또 다른 버전으로는, 헹크는 40대의 사별한 홀아비에다 아이를 혼자 양육하고 있다. 무동리 전투에서 오른쪽 허벅지에 총탄을 맞아, 절뚝거리며 걷는다. 그가 헬렌을 만난 대부분 시간에도, 헬렌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녀가 어리다고 그는 생각한다. 20살, 한창 전성기다. 그는 그녀가 앞니 사이로 아티초크의 줄기를 치실처럼 뽑아내는 걸 바라본다. 그런데도 그녀는 매력적이다. 그의 아내가 죽은 후로 매력적인 여성과 근사한 저녁을 보낸 짜릿한 사건은 없었다. 그들이 불타는 강에 대해 말할 때, 그는 아마도 그녀가 자신을 진짜 이해해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는 그녀를 로비까지 데려다주며 함께 식사해 좋았고 좋은 밤을 보내라고 말한다. 그는 자기의 말들이 매우 경직되고 우스꽝스럽게 여겨진다. 블랙잭을 좀 더 하려고 걸어간다. 아내는 그가 도박중독이라고 비난하곤 했다. 헹크의 처지에선, 그는 꾸준히 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블랙잭 테이블에서 시간당 평균 5달러를 벌며 그건 그가 자동차수리소에서 버는 것보다 많다. 정신만 똑바로 차린다면 도박은 정직한 일인 것이다. 정해진 한도에서 욕심을 부려 더 많이 따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가 휘청거리며 방으로 돌아오니, 아침을 밝히는 빛이 커튼 사이로 깔때기처럼 들어와 공기 중 먼지를 반사한다. 누이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10살 된 아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묻는다. 누이는 아담은 지금 바깥에서 하키를 하고 있다며 전화를 받으러 오지 않는다고 한다.
P282 또 다른 버전들에서는, 헹크에게 아이라든가 사별한 아내는 없다. 그렇지만 거의 모든 버전에서 그가 총을 맞아 상처를 입었다는 것과 로비에서 넘어진 헬렌과 우연히 만났다는 이야기는 일치한다. 그가 그녀를 도우려고 몸을 굽히는 이야기도 매번 나온다. 그녀가 투덜대는 모습으로 벽을 향에 나머지 한 짝을 던져버리는 얘기도 매번 나온다. 왜냐면 한쪽이라도 망가졌다면 두 개를 다 온전히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두 개의 신발을 다 모은 후 모형화 접착제와 실과 바늘 세트를 라스베이거스에서 살 수 있는지 궁리해 보는 이야기도 매번 나온다.
이러한 버전들에서는, 헹크는 나이 차이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지고 들어갈 것이 더 적어서, 오히려 그건 더 그를 적극적으로 만든다. 몇 주 후, 그는 베가스로 다시 날아간다. 칵테일 라운지에서 금발의 여성에게 헬렌의 구역에 앉을 수 있는지 물어본다. 하지만 그 종업원이 노려봐서 실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 같아 의기소침한데 마침 헬렌이 그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그녀는 빈 쟁반을 돌리면서 빨간색 구두를 으스대며 보여준다.
“그전보다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녀가 말한다. 그녀를 저녁 식사에 또 데리고 간다. 이번에는 가식 따위는 없다. 한국전쟁에 참여한 참전용사였고 코네티컷에 있는 친구의 자동차수리소에서 일한다고 말한다. 해외에서 가져온 유일한 책은 확율에 관한 책이라는 것을 말한다. 눈 덮인 언덕길을 아주 오래 걷는 동안, 또는 길고 더운 오후에 폭파 선을 설치하면서, 그는 머릿속으로 블랙잭을 연습하곤 했다. 그녀는 그의 말에 계속 끄덕대지만, 그녀가 잘 듣고 있는지 그는 살짝 걱정한다. 그는 말의 방향을 바꿔 어떻게, 언제 총을 맞았고, 환자 막사에 누워있었던 것을 이야기하고, 그의 다친 발을 위로 매달고 있을 때도 블랙잭에서 여러 가지 백카운팅하는 시나리오를 짜보고, 인슈어런스 베팅도 온종일 궁리했다고 말한다. 그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많지는 않지만, 이기는 방법들을 찾아냈다.
헹크가 이 모든 것을 헬렌에게 털어놓자 그녀는 희망이 가득 찬 유리 같은 눈으로 그를 마주 응시한다.
이러한 버전들에서는, 마침내 결혼하여 코네티컷에서 함께 살자고 헬렌에게 말할 때까지, 헹크는 연휴 때마다 베가스에 간다. 그곳에 가는 것을 포기하도록 폴이 설득할 것을 헬렌은 알고 있으므로 폴이 일하는 동안 짐을 싸야 한다.
그녀가 마당으로 가방을 끌고 나올 때, 다이애나와 마주친다. 다이애나는 점점 불러오는 배의 곡선을 가리기 위해서인지 검은색의 수영복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다. 헬렌은 폴이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고 다이애나도 엄마로서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헬렌은 가방을 보고 끄떡거린다. “별달라질 게 없다면, 일터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알아차리기 전에 폴에게 말하지 말아줘.”
“물론이지.” 다이애나가 말한다. “내가 상관할 바도 아니지.”
P283 헹크는 아파트 단지 바깥에서 택시에 헬렌을 태운다. 헬렌과 폴이 여기 온 후로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따라 달린다. 끝없이 펼쳐지는 파란 하늘 아래 형형 색깔의 거리가,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가 사라져간다. 그녀는 구두 속에 발가락을 밀어 넣고 가능한 한 아주 강하게 꼭 끼어본다. 뜨겁고 건조한 바람이 창문을 통해 몰려들어 헹크의 옷 소매가 그녀의 목을 간지럽힌다. 그의 손가락이 맨살인 그녀의 팔을 만지며, 진짜인지 테스트하듯 부드럽게 피부를 눌러보는 걸 그녀는 느낀다.
또 다른 몇몇 버전에서는, 폴은 다이애나를 라스베이거스에 두고 떠난다. 헬렌이 떠난 후, 그가 하는 일이란 술 마시는 것뿐이다. 일하기 전에, 일하는 동안, 일이 끝난 후. 문제는 이렇다. 다이애나가 말하길, 이제 지겹고 술주정뱅이 아이를 원치 않아. 폴이 말하길, “좋아, 가서 네가 원하는 대로 해봐.” 그녀는 위스키병을 낚아채고 변기에다 쏟아붓는다. 폴이 그녀를 세게 밀쳐서 그녀는 욕조에 부딪혀 턱이 찢어진다.
옆집에 사는 뷔페 요리사 중 하나가 그 소동을 듣는다. 그가 아파트 문을 벌컥 열자 그 문소리에 폴은 황급히 요리사를 지나쳐 허둥지둥 나가버린다.
다이애나는 이웃을 알아본다. 그의 이름은 맥스인데 사람들은 두꺼운 안경테와 삐뚤삐뚤한 뻐드렁니 때문에 그를 “페이스”라고 부른다. 그는 수영장이 잘 보이는, 자신의 아파트로 그녀를 데리고 간다. 얼음주머니를 천에 싸서 그녀의 턱에 대어주자 다이애나는 그가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 한 달 후에, 그녀는 직장 동료들과 마주칠 리 없는 다른 카지노의 예배당에서 그와 결혼한다. 그들의 아들-엄밀히 말하면 그녀와 폴의 아들-의 이름은 제이크다.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하고, 빨간 머리인 소년과 맥스 사이엔 생물학적인 관계가 전혀 없음에도, 제이크는 삐쭉 삐죽한 뻐드렁니다. 이것 때문에 맥스가 그와 공을 주고받을 때도, 또는 쇼핑카트에 그를 태우고 통로를 밀고 갈 때도 사람들은 그 둘이 아빠와 아들이냐고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P284 폴이 술에 취하지 않아 말짱한 버전들에서는, 경험 많은 요리사가 시간 낭비라고 말려도 그는 요리학교에 간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는 계속 노력해서 근사한 식당에서 일하는 수준까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학교에서 페이스트리 만드는데 정신이 팔린다. 그는 커스터드를 만들기 위해 달걀을 으깨는 것, 초콜릿 타르트를 만드는 것, 나무로 된 케이크 스탠드에 케이크를 쌓는 법을 배운다. 때로, 캐러멜을 만들기 위해 설탕을 녹일 때 또는 코코아 가루를 뿌리며 장식할 때, 그는 다이애나와 그의 아들을 생각한다. 그녀에게 전화해서 이제 다른 사람이 됐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문득 떠오르지만, 그는 결코 하지 못한다. 폴이 정신이 말짱하지 않은 버전들에서는 그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다이애나가 음주에 관해 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버전들에서는, 그들은 항상 캘리포니아로 간다. 결국, 폴은 항상 떠나버린다. 그녀는 그들의 아이를 혼자 힘으로 키우고 베트남에서 죽은 오빠의 이름을 따서 윌리엄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몇 주 지나자 그를 그렇게 부르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들은 너무 소중해서 빌리나 월이 될 수 없다. 그는 리암이다.
리암이 13살인 어느 날 저녁에 치아교정을 하기 위해 롱비치에 있는 치아교정 전문 병원에 간다. 다이애나는 대기실에서 여행잡지를 뒤적이고 있다. 케이블 뜨개옷을 입고 불에 거슬린 가리비를 포도주에 곁들여 먹는 사람들을 위한 잡지다. 향수 냄새가 나는 페이지에 잠시 정신을 팔다가 캘리포니아 북부지역에 사는 코끼리물범 떼에 관한 기사와 마주친다. 그녀는 접수처의 사람이 보지 않을 때를 기다려 핸드백으로 사용하고 있는 비치백에다 잡지를 슬쩍 넣는다.
차 안에서, 그녀는 리암에게 저녁으로 밀크셰이크를 먹을 것인지 묻는다.
입을 다문 그의 옆모습은 폴을 빼다 박았다. 7가에서 러시아워로 정체되어있는 차들을 그는 창문으로 내다보고 있다.
“교정기 하기 싫어.” 뻐드렁니를 보이며 그가 말한다.
“우리 여행하면 어떨까?” 그녀가 묻는다.
“교정기 대신에?”
로스앤젤레스를 통과하고 협곡들을 지나고 포도주 도시까지 가고, 핵발전소를 지나 휴양도시들을 그들은 통과한다. 긴 여행이라 그녀는 리암에게 음악을 선택하도록 한다. 라디오 주파수가 지직되어 바뀔 때마다 그녀는 창문을 연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들은 다른 차 안에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지어낸다. 오래전에 폴이 그녀를 데리고 갔던 바닷가의 북쪽에서 적어도 백마일 정도는 더 운전한다.
P285 마침내 잡지에 있는 도시에 도착할 때, 다이애나는 지도를 살펴보기 위해 정차해서 다리를 편다. 폴이 그녀를 시달리게 한 것처럼 똑같이 그녀가 아들에게도 그럴까 봐 염려스럽다. 그녀는 치아 교정기 비용을 마련할 방법도 모르지만, 지금 그들은 집에서 9시간이나 멀리 있다.
그녀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차에서 거리를 두며 걷는다. 그녀는 코끼리물범들을 찾지 못하겠다고 설명할 방법을 궁리하고 있는데, 6마리 정도의 커다란 물개가 저 아래의 바위투성이 해안가에 느긋하게 있는 걸 본다. 물개는 다른 곳으로 가지 않겠지만, 그녀는 차로 서둘러 달려가 앞창문을 손바닥으로 두드린다.
“리암,” 그녀가 말한다. “리암, 빨리 와봐.”
거의 모든 버전에서, 헬렌이 60이 채 되기 전에 헹크는 폐암으로 죽는다. 그들의 자식들은 도시에 걸쳐 여기저기 흩어져 살지만, 그들 중 아무도 가까이 지내지 않는다. 그녀가 폴에게 연락하는 게 매번 나온다. 그녀가 그의 소식을 계속 추적하고 있는 버전들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은 모두 알코올중독치료소에 관한 거다.
“내가 배운 바로는,” 그가 말한다. “내 술중독은 엄마와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죽 시작됐다는 거야. 내가 술을 마시기 전부터 말이야.”
“폴,” 그녀가 말한다. “우리는 우리 부모가 살해당하는 걸 목격했어. 네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 건 괜찮은 거야.”
“그런데 그렇지 않아, 헬렌, 그게 바로 문제야.”
그녀는 두 주 걸러 캘리포니아에 있는 그를 방문한다. 폴은 벤투라 카운티에서 건강식품 식당을 운영하고 있고 매일 밤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 간다. 어느 날 저녁 헬렌이 저녁에 먹을 샤르도네 한 병을 집을 때 그들은 언쟁을 벌인다.
“너 정말 내 집에 술병을 들고 온다고?”
“그냥 포도주인데 뭐.”
다른 버전들에서는, 헬렌은 폴을 찾을 수 없다. 그들이 40대일 때 마지막으로 그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켄터키에서 수신인 지급통화를 하면서 송금을 해달라는 거였다.
“헹크가 이제 할 수 없다고 하네” 헬렌이 말한다. “우리도 많은 골칫거리가 있어.”
그가 사라진 후, 이제 알 수 없다는 것이 그녀를 가장 괴롭혔다. 때론 그녀는 다이애나에게까지 전화해서 혹시 그의 소식을 들었냐고 물어보지만 그럴 때마다 다이애나는 매번 웃었다.
P286 헹크가 죽은 후, 헬렌은 일에 몰두하려고 노력해서, 마침내 부동산중개사 자격증을 딴다. 저녁에는, 커뮤니티센터에서 즉흥 연극수업과 도자기 수업을 듣는다. 왜냐하면, 젊은 날을 잘 보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지금은 잘 늙고 싶은 마음이다. 그녀는 61살 생일을 앞에 두고, 50대의 혼자 사는 연극반 친구, 패티와 비가 계속해 내리는 봄날에 알래스카 크루즈를 타고 돈을 펑펑 쓰기도 한다.
“추울 거야” 패티가 말한다. “그렇지만 북극광은 볼 수 있겠지.”
그 밤들은 너무나 멋지고 매일 아침 뷔페엔 신선한 과일들이 있다. 헬렌은 줄기를 이미 잘라버린 딸기를 먹으면서 폴을 닮은 사람이 과일 깎는 칼을 들고 식당에 있는 그림을 그려본다. 덜 익은 파인애플의 섬유질을 치아에서 빼내며 그녀 앞에 여전히 펼쳐질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침 식사 후, 그녀는 옷을 껴입고 갑판을 거닌다. 태양의 빛이 가루같이 뿌려져 태평양이 반짝거린다. 그녀는 파도 속에서 움직임을 본다. 살아있는 어떤 것, 저 생물의 경로를 따라 가보고 싶다.
어떤 대머리 아저씨가 안락의자에 앉아 소리치는 바람에 그녀의 몰입은 깨지고 만다. “알파벳 열 개.” 잡지에 연필을 대고 두드리며,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 라고 그가 말한다.
헬렌은 그가 그녀에게 말하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림 리퍼” 그녀가 답한다.
“아니요, h로 끝나요.”
또 다른 버전에서는, 그녀가 답을 제대로 한다.
폴이 제대로 된 유일한 한 버전이 있다.
그가 61살이 되었을 때,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서 만난 새 여자 친구 린다를 데리고, 켐브리아로 그녀의 조카 결혼식에 간다. 12월 중순이고, 하늘은 맑고 푸르르고, 해안가는 15도 정도로 약간 서늘하다. 린다는 굵게 땋은 회색의 머리를 하고 있다. 그녀는 폴과 같은 나이고 자신의 인생도 기구하다. 부모님은 가버리고, 자매 대부분이랑은 소원하고, 텍사스에 있는 딸하고는 전혀 얘기하지 않다시피 한다. 솔직히, 그녀가 말하기를, 이런 결혼식에 초대된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이란다.
가는 길에, 그녀는 손가락으로 그의 프리우스 창문을 두드리며 말한다. “저것 봐요, 저것이 시민 케인에 나오는 바로 그 성이에요.”
폴은 본능적으로 그걸 바로잡아주고 싶다. 저건 허스트 캣슬이라고, 그리고 드라마 시민 케인의 바탕이 된 신문사의 거물,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에 관해 자세한 내용을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녀를 힐긋 쳐다보고는 말한다 “정말요?”
P287 결혼식장은 로즈메리가 넘쳐나는 정원이다. 나무판으로 지은 행사장에서 벌어진 피로연에서, 모두 샴페인으로 건배할 때, 그와 린다는 길쭉한 샴페인 잔에 사과 주스를 담아 건배한다. 하객들이 그들이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로 착각하여, 폴과 린다는 설명하는 것도 지쳐 나중에 그마저도 그만둔다. 그 둘은 세곡을 연달아 춤을 추다가 폴이 수십 년간 식당일을 하여 생긴 통증을 느낀다.
그가 묻는다. “우리가 삼십 년 전, 20대에 만났다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해 본 적 있오?”
“우린 아마 산채로 서로 잡아먹을 거예요.”라고 린다는 그의 손을 꼭 잡고 말한다.
부케를 던지는 순서가 됐을 때, 그는 피로연에서 빠져나와 크리스마스 장식 불빛으로 환한 자갈길을 따라 걷는다. 다이애나를 기억나게 하는 것은 딱히 없지만, 그는 전화를 꺼내 페이스북에서 그녀를 찾아본다. 그 페이스북은 알코올 중독자모임에서 만난 친구들만을 위해 이용하는 거다. 그녀가 최근에 올려놓은 것들은 얼마 전 피츠버그에 가서 손자들을 방문한 것이다. 그녀는 흰머리를 픽시스타일로 짧게 잘랐지만, 동시에 젊어 보이기도 하고 나이 들어 보이기도 한다. 그는 사진 중 하나에서 그들의 아들을 보지만, 폴은 아들의 프로파일을 클릭하지는 않는다.
아침에 린다는 자매 중 한 명과 잠시 동네를 산책하겠다고 한다. “그 애가 정말 말하려고 하는 게 처음이에요.” 머리를 땋기 위해 꼬면서 말한다. “괜찮지요?”
“음.” 폴은 말한다. “괜찮지.”
그는 콘티넨털 뷔페에서 커피를 가져와 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몇 마일을 달려 주립 공원으로 간다. 이르지만, 벌써 차와 관광객들이 주차장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밝은 푸른색의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있는 안내원들 옆을 지나간다. 그들은 관광객들이 질문하기를 기다리면서 철조망 담을 따라 서 있다.
철조망 아래에, 이백 마리 정도의 코끼리물범들이 해안가에 느긋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일부는 씰룩거리며 물로 향해 간다. 높은 곳에 있지만, 그것들의 튀어나와 휘어진 코, 파충류의 눈, 얼간이 같이 웃는 모습 등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가깝다. 담장을 따라 설명해 놓은 안내판들이 그에겐 필요 없다. 그는 그들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다.
P288 그들은 이동주기 때마다 다른 기각류보다 훨씬 더 멀리, 만천 마일 또는 만삼천 마일을 여행한다. 19세기에는 거의 사냥을 당해 멸종위기에 처한다. 수컷의 무게는 포드 F-150보다 훨씬 더 무겁다. 그들은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데, 싸울 때 길쭉한 코를 한껏 부풀린다. 암컷은 훨씬 작지만, 더 깊이 수영하고 더 오래 산다. 그들은 검은색으로 덮여 있다가 털갈이를 하면 은색으로 변한다. 피부를 재생하기 위해 안전한 곳을 육지에서 찾는다. 물고기나 오징어 그리고 가장 깊고 어두운 바다 바닥에 사는 어종만 잡아먹는다. 그들은 세상 곳곳으로 나가고 탐험하지만, 항상 같은 장소, 같은 해변으로, 해마다 돌아온다. 어디서 왔는지를 잊지 않는다. 진정 사는 곳을 잊지 않는다.
첫댓글 수고 많으셨습니다. 항상 선두를 끊어서 번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잘 읽어 보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으쌰쌰, 잘 읽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담담하면서도 쓸쓸한 기분이 들었어요. 왠지 10년 전 미단쌤이 번역하셨던 '축'이랑도 닮아있고요. 군더더기 없는 번역과 함께... 미단쌤, 역쉬 탁월하십니다~^^
사소한 몇가지...
p275
잠깐이라도 가서 그것들을 보고 싶다-- in thr flesh -- 실물로 보고 싶다.
그 물범들은 강제로 데려다 놓은 것도 아닌데 -- without telling what to do
그 물범들에게 그리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가 어떨까 싶네요
시티즌 케인 드라마 봤어 -- 한국에선 '시민 케인'이라는 제목을 달았었죠. 하여, 시민 케인 영화 봤어, 라고 표현하면 더 가깝게 다가 올 듯 해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진통이 염려스러워 -- a cramp
'배뭉침'으로 표기해얄듯요.
좋은 지적 감사함니다. 특히 시민 케인, 배뭉침 좋네요.
그냥 바꾸고 싶은 사소한 단어들:
275 페이지, 바닷가는 가는 길에서 벗어나 있지만 ------------>바닷가는 경로에서 벗어나 있지만
275 페이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추위다. ------->가만히 못 있는 추위다.
286 페이지, 헬렌은 일에 빠져보려고 ---------> 일에 몰두하려고
288 페이지, 피부를 재생하기 위해 안전한 곳을 -------> 안전한 장소를
참고할게요. 감사합니다.
폴과 다이애나에 관한 여러 버전 중 대부분에서 그들이 캘리포니아 가는 길에 코끼리물범을 보기 위해 잠깐 멈추는 이야기가 나온다
- 폴과 다이애나에 관한 대부분의 버전에서 그들은 캘리포니아로 가는 길에 바다표범을 보기 위해 멈춘다.
꼭 이렇게는 아니더라도 첫번째 문장을 약간 바꾸면 좋을 것 같아요.^^
그 바위들은 바다 저 멀리서부터 오랜 여행을 한 후, 쉬고 있는 휴면바다표범들일 수도 있다.
- 바위들은 바다에서 긴 여행 후 쉬고 있는, 겨울 잠을 자는 바다 표범들일 수도 있다.
p279
그는 내키지 않지만 도움을 거부할 만큼 언짢지 않다
-그는 창피했지만 도움을 거절할 만큼 창피한 것은 아니다.
“폴,” 하며 부르려 하는데 “가만.”
-"폴," 그녀는 "그만해"라고 말하려는 참이었다.
p280
1/5정도 남은 위스키병, 고무줄로 묶은 현금은 놀랠만한 거는 아니다. 베티크래커의 요리책이 들어있다는 것은 놀랠만하다.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 놀랄만 하다.
하이힐을 신을 수 없다면, 단화나 신어
-하이힐 신고 걸을 수 없다면, 단화만 신던가.
p281
달걀을 받아 든 아침 담당 요리사는 그녀에게 기다리라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달걀을 서로 구별하기 위해 포일에다 꽁꽁 싸서 신발 상자 안에 넣는다.
-조식 담당 요리사가 그녀를 기다리다 폴의 계란을 받아든다. 무엇때문인지, 그는 신발 상자 안에 구겨진 포일을 넣어 간격을 만들고 계란을 포장한다.
그녀가 반항하는 모습으로 벽을 향에 나머지 한 짝을 던져버리는 얘기도 매번 나온다. 왜냐면 한쪽이라도 망가졌다면 두 개를 다 온전히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가 투덜거리는 모습으로 벽을 향에 나머지 한 짝을 던져버리는 얘기도 매번 나온다. 왜냐면 한짝이라도 망가졌다면 두 짝을 온전히 다 가질 순 없지 않은가?.
지고 들어갈 것이 더 적어서, 오히려 그건 더 그를 적극적으로 만든다
-더는 잃을 게 없어서 그게 오히려 그를 더 이기적으로 만든다
p283
해외에서 가져온 유일한 책은 가능성에 관한 책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녀에게 어떻게 해외로 가져간 유일한 책들이 확률에 관한 책들 뿐인지 얘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