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 준비
매월 1일, 그 전달 후원자님들께 보내는 후원자 메일을 통해 5월 2일 일본으로 출발하는 여정을 나눌 수 있었다. 내 짐이 별로 없을 거라서, 케리어 빈 공간에 책을 가져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책을 구입하기 시작했는데 최종적으로 130권 가까이 됐다. 짐 옮길 생각에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는데 성령님께서 오빠에게 부탁할 것을 말씀하셨고 마침 내가 떠나는 날, 오빠가 시간이 있어서 데려다주기로 했다. 부산에 사시는 후원자님께서 내가 보낸 후원자 메일을 읽고 공항까지 데려다주시겠다고 연락이 왔다. 벌써 오빠와 약속이 되긴 했지만 기꺼이 제안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든든했다.
케리어를 마구 던질 테니 책을 몇 권씩 정성스럽게 포장했다. 구겨진 책을 선물로 받으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을거니까...
5월 2일 – 출발 및 첫날
김해공항에서 오빠의 파송 기도를 받고 순적하게 비행기에 올랐다. 오후 비행편이라 그런지 공항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일본의 산과 바다는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어느 지점에 이르니 산 위에 아직도 눈이 녹지 않았다.
도쿄 나리타 공항에 내려서도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빨리 나올 수 있었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마중 나오신 선교사님을 만났다. 리무진을 기다리면서, 그리고 이동하면서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딱 한 번 만난 사이라 선교사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그 시간이 굉장히 유익했다.
신주쿠 카부키초(서울로 치면 강남역, 부산으로 치면 서면 정도)에 도착해서 호텔에 체크인했는데 3성급 호텔 방이 너무 좁아 내심 많이 놀랐다. (여기서 어떻게 7박을 하지....) 국내에서 사역 차 이동 중일 때에 이용하는 호텔도 3성급인데, 일본 호텔에 비하면 스위트룸이였다. 그 외에 일본은 모든 것이 작고 좁았다.
다시 호텔에서 나와서 선교사님이 사역하시는 나카이 교회로 이동했다. 교회 예배당도, 선교사님 사무실도 모두 운신하기가 불편할 정도로 좁았다. 좀 더 넓은 곳을 주십사, 기도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예배당 이전을 놓고 기도중이셨다.
시간이 많이 늦었지만 선교사님께서 교회 바로 옆에 있는 라멘 집에서 라멘을 사 주셨는데 맛은 감동적이었지만 그 식당도 너무 좁았다. 그런데 막상 현지에 계신 분들은 불편함이 없어 보였고 나 역시 일주일 동안 서서히 적응하다간 너무 늦을 것 같다는 생각에 숙소로 돌아와 성령님께 간구했다. (빨리 적응하게 해 주소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내 심장이 너무 심하게 뛰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결국, ‘주님 이게 왜 이럽니까?’라고 기도를 했는데 ‘이 땅을 향한 나의 심장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너무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다 보니, 내 심장이 조용해졌다. ‘멈췄나?’하고 걱정될 정도로... 그래서 잘 잘 수 있었다.
5월 3일 – 요다 쇼타 센세(사역자를 주로 선생님이라는 뜻인 '센세'로 부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반센세...그동안 반선생님, 반교수, 반전도사, 등으로 불렸는데 왠지 '반센세' 발음이 제일 나은 것 같았다.)
집회는 4일부터지만 2일 밤에 도착한 이유는, 2~3일 선교사님 교회에서 일본인 사역자의 집회가 있다는 말씀을 듣고 궁금해서 하루 일찍 도착하게 됐다. 요다 쇼타는, 존 레이크 미니스트리 일본 지부 대표였고 선교사님께서 돕는 사역단체였다. 미국에 있는 존 레이크 미니스트리 본부의 대표인 커리 블레이크는 나도 미국에 있을 때 만나본 적이 있었고 그분의 세미나에 참석도 했었는데, 커리 블레이크에게 직접 배운 일본인 요다 쇼타 형제가 일본에서 그 말씀을 그대로 전하고 있었다. 선교사님께서 2월에 나를 초대하시면서 이분에 대해 잠시 언급하셨었는데 그때 마음에 큰 감동이 있었다. 그 이후 2월 중순에 생명의 교회에서 집회하면서 성도님들께 받은 헌금을 그분께 전달해야겠다는 감동이 있어서 받은 헌금을 고이 간직했다가 환전하여 요다 쇼타 형제에게 전달했다.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요다 쇼타 형제는 크게 격려를 받고 감사해했다. (요다 센세 사진을 찍긴 했지만 나라면 싫을 것 같아서 여기 올리진 못하겠다.)
이후 숙소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다가 선교사님께서 저녁을 사 주신다고 하신 장소로 전철을 타고 이동했는데, 왔다 갔다 하면서 보는 일본의 거리와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은 내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다. 아무래도 복음화율이 1% 정도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여러모로 마음이 좀 그랬다. 다음 날 사역을 위해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5월 4일 – 집회 첫날
조금 일찍 교회에 도착했는데 청년들의 찬양 연습이 한창이었다. 달리 다른 장소가 없었기 때문에 성도님들이 모두 예배당에 앉아서, 연습하는 찬양팀과 함께 찬양을 부르고 계셨다. 나도 자리에 앉아 찬양팀과 함께 찬양을 했는데, 큰일이 났다. 조금 뒤에 설교를 해야 하는데 감정이 격해진 것이다. 콧물까지 흘려가며...
설교 전 성도님들께 나에 대해 대략 소개하면서 내가 대학원 때 일본을 연구했었다는 것을 처음 말씀드렸다. ‘일본이 복음화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소논문도 썼던 터라, 이번 일본 사역은 나에게 굉장히 뜻깊은 시간이었다. 이고 지고 온 책들도 간간이 선물하고 준비해 온 메세지도 열심히 전했다. 사실, 이번에 준비한 메세지는 좀 어려웠다. 또 방문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내용을 준비했다.
(설교 음원은 이번주 5월 18일 토요일 유튜브 영상 더보기란에 공유할 예정)
토요일이라 그런지 나카이 교회 성도가 아닌 분들도 제법 오셨다. 설교 중에 내가 아는 일본어란 일본어는 다 긁어모아 몇 문장 말했더니 몇몇 일본인 성도님들이 나에게 일어로 질문을 하는 등, 난처한 일이 생겼다. (앞으로는 잘난 척을 하지 말아야지) 그치만, 나카이 교회 청년의 도움으로, 외부 성도님들이 짧게 나눠 주시는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모두 자신이 가졌던 질문과 궁금증이 해소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달았다는 내용이었다. 세상에... 내가 전달한 내용보다 더 많은 것들을 깨닫다니. 성령님의 일 하심 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숙소로 돌아가 잠시 휴식하고 저녁 식사를 위해 다시 교회로 갔다. 성도님들이 그때까지 돌아가지 않으시고 교제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일본에 주재원으로 오셨다가 부부가 각각 다른 루트로 나카이 교회와 연결된 가정과 식사를 하게 됐다. 아내분은 청년부 전도사님으로 섬기고 계셨는데 두 분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모하는지, 내 마음이 너무 기쁘고 꽉 차올랐다. 대접받은 일본식 샤브샤브도 엄청 고급지고 맛있었지만 그보다 일본 땅에서 같은 말씀을 추구하는 성도님들과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고 감사했다. 헤어지기가 싫었지만 주일 집회가 남아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숙소로 향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