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식, 연필로 긁어낸 소소한 일상
2017년 부산에 터를 잡은 문성식은 눈앞에 펼쳐진 세계의 조각을 그린다.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일상도 그에겐 재료다. 작가가 살고 있는 달맞이길의 유명 식당에서 본 근사한 장미를 기본으로 한 얼개에다 청사포의 흰 장미를 섞어 그리는 식(대형 장미 연작 '그냥 삶')이다. 능수벚꽃, 매화, 목련 등 쌔고 쌘 꽃과 나무부터 경북 김천 고향집 정원을 가꾸는 아버지, 오토바이를 타고 몰려다니는 청년들, 부동산을 보러 다니는 부부까지 지금, 여기서,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을 화폭에 옮긴다. 작가는 "어떤 것은 아름다워서, 퍽퍽해서, 의미심장해서... 마음에 걸리는 것들을 그린다"고 했다. 그가 포착한 풍경의 소소한 기록 100여 점을 내건 전시 'Life 삶'은 부산 수영구 복합문화공간 F1963에 위치한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리고 있다.
문성식의 신작 '세드엔딩'. 국제갤러리 제공
문성식의 '정원과 나'. 국제갤러리 제공
일상의 한 편린까지 놓치지 않는 작가의 시선은 따뜻하고 다정하다. 특유의 작업 방식은 작품에 온기를 더한다. 그는 연필을 주로 쓴다. 캔버스에 종이죽을 발라 표면이 그슬그슬한 상태가 되면 그 위에 유화를 올리고, 연필로 긁어낸다. 문성식에게 연필은 "모든 장식을 배제하고, 생각과 의도를 드러내주는 가장 미니멀하면서 고유한 도구"다.
때로는 연필 대신 칼로 긁어 스크래치를 내거나 마지막 단계에서 채색을 하기도 한다. 전시장 한쪽에서 봄내음을 뿜고 있는 파스텔톤의 작품 '세드엔딩', '정원과 나'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문성식은 "반 젤리 상태 유화 위에 내가 (연필을) 휘두르는 궤적이 고착된다"며 "내가 이 캔버스 앞에 있었음이 증명되면서 플랫한 종이보다 더 실존적 느낌이 생긴다"고 했다. 휘두름으로써 가장 '문성식다움'에 도달하고자 한 것이다. 전시는 오는 28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