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서 - 고용허가제는 만병통치약인가?

[천로역정]

 

고용허가제는 만병통치약? 미디어다음 
/ 글, 사진 김준진 기자 안산역에서 300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이 사거리는 안산역과 함께 불법체류자의 집중 단속지역이다. 최근 야간 단속이 잦아지자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뭡니까 이게, 사장님 나빠요” TV 코미디 프로에 등장하는 한 장면이다. 이는 비인간적 대우와 불법 취업으로 대변되는 우리나라 외국인력정책이 낳은 비극적 현실을 패러디한 내용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 자국 산업에 필요한 분야에 외국 인력을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91년 소규모 해외현지법인 산업기술연수생을 시점으로, 1994년 산업연수생제도부터 본격적으로 외국 인력을 오게 했다. 산업연수생들은 3D업종 등 국내 근로자들이 꺼리는 산업 영역에서 필수 노동력으로 자리잡기도 했지만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산업재해 등으로 비인간적 대우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처럼 열악한 상황에서 ‘코리안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불법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급증하면서 이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이들의 근로조건을 보장하기 위한 고용허가제가 논란 끝에 도입됐다.

마침내 17일 전면 시행된 고용허가제가 ‘어두운 과거’를 뒤로 하고 적절한 외국인력정책으로 과연 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전망이 그다지 밝은 편은 아니다. 종래의 산업연수생제도가 아직 유지돼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 산업연수생제도를 통해 입국한 12만5000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아직 국내에 있다. 17만2000명(8월, 법무부 기준)에 이르는 불법체류자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고용허가제가 정착된 유럽의 경우 불법체류자가 15%대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불법체류자 비율은 70%정도다. 선진국의 불법체류자 비율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먼 셈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외국인력정책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살펴보았다.

산업연수생제도, 만악의 근원?

산업연수생제도는 이 제도의 시행 주체인 중소기업협동조합과 농·수·축협, 현지법인 등과 고용주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반대하는 제도다. ‘1년 연수, 2년 근로를 통해 선진기술을 이전’한다는 제도 본연의 취지가 실제로는 전혀 구현되지 못했기 때문. 이에 전문가들은 현재 고용허가제와 병행해 실시하고 있는 산업연수생제도는 순수하게 ‘연수’개념으로 돌아가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낸다.

안산외국인노동자 센터의 최고 수용인원은 방에서 '겹쳐' 
잘 경우, 50여명까지 가능하다. 불법체류자 수의 증가와 요즘 매일 벌어지는 단속을 피해 새로 찾아오는 인원 등에 비하면 현재 공간은 턱도 없이 모자란 실정. 저녁 식사를 마친 이주노동자들이 센터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전북대학교 설동훈(사회학) 교수는 “산업연수생제도는 누더기 정책”이라고 혹평한다. 그는 산업연수생제도에 대해 ▲불법체류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었고 ▲현지법인에서 송출비리를 불러왔으며 ▲잦은 인권침해를 유발하는 등 외국인 인력제도를 무너뜨린 주범이라고 비판했다.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정요섭 목사도 “산업연수생제도는 하루빨리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산업연수생제도 자체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노동자’가 아닌 ‘연수생’으로 구분하기 때문에 연수생들로서 노동3권, 최저임금 등의 권리를 전혀 누릴 수 없었다”는 것. 그 결과 산업연수생제도 아래에서 연수생들은 저임금과 고강도의 노동, 산업재해 등에도 꾹 참고 일해야 했다. 이 같은 처우를 견디다 못해 사업장을 뛰쳐나와 불법체류자로 남은 외국노동자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국가인권위원회도 실태조사 결과 이미 두 차례나 산업연수생제도의 폐지를 권고했다.

산업연수생제도는 왜 폐지하지 않을까

지난달 11일, 야간에 들이닥친 단속을 피하다가 
허리를 다쳐 입원해 있는 자만씨. 그는 그래도 "한국이 좋다"고 한다. 다친 허리 때문에 2주 동안 침대에서 절대 안정을 취해야 했고, 그 동안 주변 병상의 한국인들이 대소변도 받아준 것을 절대 못 잊기 때문이란다. 이처럼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산업연수생제도가 왜 아직 폐지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노동 관련 전문가들은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산업연수생제도를 관리하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의 
경우 외국인노동자들로부터 3년간 30만원의 관리비를 받아 챙길 수 있기 때문. 이렇게 중기협이 한 해에 챙기는 관리비는 100억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수·협 등에서 받는 액수는 50~60만원선이라고 한다.한국노동연구원 이규용 전문위원은 “고용허가제가 산업연수생제도를 보완하는 개선책으로 제시됐지만 결국 병행 실시하게 된 것은 관련 당사자들 간의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말했다. 애초 국무총리실 산하 외국인력정책위원회에서 고용허가제의 도입을 놓고 논의했던 시기에 고용허가제 시행에 전격 합의하는 조건으로 정부가 경영계 등의 주장을 받아들여 산업연수생제도를 유지하기로 한 것. 그는 “산업연수생제도에 더해 현재 시행되고 있는 취업관리제, 현지투자기업연수생제도도 면밀히 따져서 비슷한 부분은 고용허가제로 통합하고, 연수생제도는 본래 취지인 ‘연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중기협 “관리비는 전적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교육비, 업체 홍보비, 화물운송비 등으로 사용된다”며 “관리비를 협회 유지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소문은 오해일 뿐”이라고 말했다.

고용허가제는 만병통치약인가

명동성당에서 300여일 째 농성 중인 슈학(사진, 
가운데)씨. 그는 "피부색이 틀리다고 인권침해를 당하는 부분도 많다"고 말했다. 지난달 17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고용허가제는 외국인노동자를 연수생이 아닌 노동자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일단 노동계의 환영을 받고 있다. 그러나 자유로운 사업장 이동의 금지 등 근로자로서의 권한이 약하다는 점에서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평가가 대세다. 

고용허가제 안에서 외국인노동자가 사업장을 옮기려면 
업체의 휴·폐업, 고용주의 임금체불, 질병, 고용주가 인정할 경우 등 부득이한 사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은 “고용허가제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노동3권, 최저임금보장, 4대보험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면서도 “사업장 이동의 금지 등 여러 독소조항 때문에 정기국회에서 ‘노동허가제’로 대체입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민주노총 김혁 비정규국장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실제로 노동3권 등을 보장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자본이 국적에 제한 받지 않는 것처럼 노동력의 이동이 쉬운 노동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고려대학교 강수돌(경영학) 교수는 “고용허가제의 
한계점이 분명히 있지만 사업장 이동이 완전히 자유로운 노동허가제 개념은 힘들다”며 “독일의 노동허가제도 특별노동허가제의 경우에만 제한된 업종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산업연수생제도를 통해 값싼 노동력을 마음대로 부려먹은 게 사실”이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노동3권만 보장할 게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노동을 하고 그에 합당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덧붙였다.전북대학교 설동훈(사회학) 교수도 “일단은 고용허가제를 정착시키면서 불합리한 부분은 고쳐가야 한다”면서 “사업장 이동 절차를 합리화하고 고용주의 일방적인 횡포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한편 노동부 관계자는 “고용허가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점차 수정해나갈 예정”이라며 “하지만 사업장의 자유로운 이동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완전히 허용하고 있지 않다”며 난색을 표했다.

고용허가제 정착 위해 불법체류자를 근절해야?

이주노동자, 특히 불법체류자를 포함해 이들은 
'인권침해'의 방지와 '체류비자'를 얻기 위해 더욱더 힘을 모을 예정이다. 사진은 명동성당 농성단이 지난달 25일 밤 안산센터로 합류해 간담회를 갖고, 이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결의를 다지고 있는 모습. 최근 집계된 불법체류자의 수는 17만2000여명. 정부는 고용허가제의 정착을 위해서 연말까지 그 수를 10만명 선까지 줄이겠다고 공표했다. 법무부 산하 출입국관리사무소와 경찰의 합동단속은 7월부터 엄격하게 이뤄지고 있다. 정부도 불법체류자의 정주화(定住化) 방지와 국민적 정서를 고려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고용허가제의 정착을 위해 새로운 인력들을 들여오려면 기존에 양산된 불법체류자들을 내보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 관련 단체들과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은 이미 한국 사회에 적응해 언어소통이 원활하고 숙련된 노동자는 전면 합법화를 통해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이주노동자센터 이상재 팀장은 “고용주들 대부분이 숙련공인 불법체류자들을 쓰고 싶어도 못 쓴다”며 “답답해 공장을 닫고 싶어하는 고용주들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고용허가제 실시 이후 고용주가 불법체류자를 고용했다가 적발되면 3년 동안 외국인 고용 금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주노동자 인권연대 이금연 운영위원도 “일방적으로 단속을 강화하는 것은 반한감정만 일으킨다”며 “불법체류자들에게 사면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네팔로 돌아간 한 불법체류자는 네팔노동조합총연맹에서 노동운동을 펼치고 있고 다른 불법체류자는 학교를 세워 교육과 복지를 실천하는 좋은 사례를 보여줬다”며 불법체류자에 대한 편견을 경계했다.강수돌 교수는 “그런 면에서 독일은 차라리 솔직하다”며 “신나치주의자들이 인종차별의 하나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내쫓으려 하지만, 오히려 자본가들이 나서서 그들이 나가면 독일경제의 기반이 무너진다고 말하며 거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현재 불법체류자까지는 선별적으로 사면하고, 이후 입국자들부터 엄격하게 검증하는 방안을 제시했다.노동부 관계자는 “해마다 요구되는 외국인력의 적정선이 있고 이를 필요에 따라 조정하고 있다”면서 “고용허가제에 따라 올해 2만5000명의 합법적인 인력을 들여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여러 번의 유예와 합법화 조치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들이 생산현장에 남아 있는 상태”라며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는 목적도 저숙련 노동자를 단기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국인이 꺼리는 3D 업종에 필요한 만큼만 노동력을 활용하고 떠나보내겠다는 것.법무부 관계자도 “5년, 10년 이상된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에게 영주권을 주라는 주장은 억지”라며 “이는 국민적인 합의를 모아 결정할 부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