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size=3>방글라데시 펜시 아줌마 “병원 못가요. 도와주세요.”
성주의 한 조그만 시골마을 한귀퉁이 2층집, 월 12만원(전기·수도세 포함)짜리 월세방에 멀리서 보아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잉꼬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방글라데시에서 온 아불바샬과 아메나펜시 부부입니다. 이미 체류기간을 넘겨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살아 온지도 3-4년이 지났습니다. 뒤늦게 남편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에 어렵게 만든 관광비자를 가지고 한국에 온 아내 펜시는 한국에 와서 남편 뒷바라지를 할 뿐 한번도 작장에 나가서 일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오직 남편 바살이 벌어오는 임금으로 한국에 들어올 때 진 빚을 갚기 위해 대부분의 돈은 송금을 하고 나머지 돈으로 겨우 끼니 정도를 이어가는 형편으로 살면서도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이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결혼한 지 4년이 지났지만 그들에게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두 사람은 애타게 아기가 생기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임신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펜시는 식욕이 점점 감퇴되면서 새벽이 되면 계속 구토 증상이 나타나고 위액을 입으로 쏟아내는 고통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밥도 먹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임신한 사람처럼 계속 배만 불러오고 있습니다. 가까운 개인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타다 먹어 보았지만 약값만 소비할 뿐 아무런 차도가 없었습니다. 급기야 남편 아불바샬은 선교센터에 도움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어떻해요. 도와 주세요.” 성주로 차를 몰고 가 부부를 교회로 데리고 와서 하룻밤을 재우고, 이튿날 대구의료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하루에 다 끝나지 않는다고 하여 이틀동안 교회에 머물면서 종합검진을 받았지만 특별한 이상징후가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의 매일 저녁 바살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목사님, 어제밤에도 또 아팠어요. 어떻해요.” 먼 길에 자주 나올 수도 없는 형편이기에 보호자의 신분으로 의료원을 다시 찾았고, 15일치 약을 지어 택배로 보냈습니다.
이 약을 먹고 치료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래도 의사의 처방을 믿고 기다려 보는 수 밖에는 아무런 대책을 세울 수 없었습니다.
왜 그토록 원인도 모르는 병이 났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왔습니다.
영천에서 일한 2개월치 임금을 한푼도 받지 못하고 회사가 부도가 나서 일을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던 일들, 큰 길가에 있는 프레스공장에서 일하면서 출입국 사람들이 올까봐 자꾸만 문을 바라보다가 몇 번씩 아찔했던 순간들을 넘기면서 이러다간 큰일나겠구나 하며 몰래 회사를 빠져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일들, 실직을 한 지 3개월이 지나고 아내의 약값을 마련하지 못하여 마음 졸이며 회사를 찾아 봤지만 불법고용의 두려움으로 고개를 가로지으는 사장님들의 냉정한 눈 빛에 텅 빈 가슴을 안고 집에 돌아오는 남편을 보는 아내의 서글픔, 집에 돌아가고는 싶지만 쌓인 빚과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으로 꾹 참고 기다려야 하는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면서 한 외국인근로자와 그 아내는 날마다 눈물을 삼켜야 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펜시의 병은 마음의 병일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누군들 병을 앓아 눕고 싶은 사람이 없겠지만 펜시의 원인 모를 질병은 정작 화병에 가까운 신경성 질환이라는 돌팔이(?)진단을 내려 봅니다. 미등록(불법)외국인근로자이기에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입장에 오랜 실직으로 인한 생활고까지 겹쳐 펜시의 시름은 더욱 가중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얌전한 시골처녀와 같은 앳된 미소와 자태로 “목사님 나 병원 못가요. 도와주세요.”라는 그녀의 작은 목소리는 십자가에서 목말라 하시는 주님의 고난을 기억케 하고, 귀찮은 마음에 도망가고 싶지만 그녀의 고운 눈망울을 생각하면 더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한 죄책감과 아쉬움에 부끄러움이 더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