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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아달월 곧 십 이 월 십 삼 일 - 이 날은 (1) 하만이 내린 조서에 따르면 유대인을대량 학살하기로 결정된 날이었으며(3:13), (2) 모르드개가 내린 조서에 따르면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학살하려고 하는 대적들에게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결정된날이었다(8:11, 12). 따라서 이날에는 유대인들과 그 대적들간의 살상 행위가 필연적으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아달월은 바벨론식의 달(月) 이름으로서 종교력으로는 제12월, 민간력으로는 제6월, 그리고 태양력으로는 2-3월에 해당되는 때이다.
왕의 조명을 행하게된 날이라 - 여기에서의 '왕의 조명'은 오직 모르드개에 의해작성된 것만을 가리키는 듯하다. 왜냐하면 조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트'는 '왕의 칙령'. '법령'등을 의미하는데 본 구절에서는 이 용어가 단수로 쓰여졌기때문이다.사실 하만에 의해 반포된 조서는 페르시아의 관례상 어쩔 수 없이 취소되지못했을 뿐(8:8),왕이 그 조서의 효력을 제거하기 위한 조서 모르드개에 의해서 반포케 했다는 점에서 실제적으로 사장(死藏)된 것이나 진배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유대인을 극도로 혐오하는 자들은 하만이 내린 조서를 근거로 유대인들에 대한 적대행위를 감행할 것이 뻔했다.
유다인의 대적이 저희를 제어하기를 바랐더니 - 하만과 그 추종자들이 왕을 유혹하여 유대인들을 집단 학살하려고 음모를 꾸몄던 사실(3:7)을 가리킨다. 물론 음모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사람의 숫자는 적었다. 하지만 그 음모가 조서로 구체화되어(3:13,14)반포됐을 때, 하만의 뜻을 좇아 유대인들을 대량학살하는 데 참여할 뜻을 가졌던 자들은 심히 많았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서 '제어하기를'(리쉬로트)은 '통치하다' 혹은 '지배하다', '권력을 갖다', '군림하다'란 뜻을 갖는 동사'솰라트'의 부정사형으로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만큼 해롭게 하는 것을가리킨다(전8:9; 단3:27; 6:8). 그래서 혹자는 이를 '움켜서 쥔다' 라고 해석하고 있다(Rawlinson).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를 미워하는 자를 제어하게 된 - 모르드개에 의해 반포된 조서에 따라서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학살하려는 자들을 오히려 죽일 수 있게 된 상황을가리킨다. 그런데 '미워하는 자'는 '혐오감을 갖다' 혹은 '악의를 품다'. '증오하다'등의 뜻을 갖는 동사 '사네'의 분사로 이와같은 감정적인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다. 한편, '도리어'(나하포크)는 '변하다' 혹은 '뒤집다', '전복하다', '반대로 돌다'등의 뜻이 있는 동사 '하파크'의 수동형 부정사로서 상황이 반전된 상태를 가리킨다(Keil, Lange Commentary).
=====9:2
유다인들이...각 도, 각 읍에 모여 - 유다인들의 이 같은 행동은 왕의 조서 첫조항에 따른 것이었다(8:11). 그런데 본 문구는 당시 제국내의 유대인들 전체가 한곳에 모두 모인 것은 결코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왜냐하면 개역 성경의 각 도,각 읍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르'가 본 구절에서 복수의 형태로 나타나기때문이다. 이것은 유대 백성들이 살던 모든 도시에 유대인들이 모였었음을 가리킨다(Keil).
자기를 해하고자 하는 자를 죽이려 하니 - 여기서 '해하고자 하는 자'(비므비크쉐이 라아탐)는 문자적으로 '자신들의 멸망을 추구하는 자'의 뜻이다. 그리고 '죽이려하니'(리쉴로아흐 야드)는 '손을뻗다'는 뜻으로 죽이는 모습을 묘사한 단어이다. 그런데 이 두 단어로 된 어구는 본서의 2:21에서는 '모살하려'로, 3:6에서는 '멸하고자'로 각각 번역되어 그 의미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한편, 본 문구는 유대인들이 결코 선제 공격을 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다시 말해서 유대인들은 사신들에게 공격을 해오는 자들 만을 자신들의 대적으로 보고그들 만을 죽였던 것이다. 모든 민족이 저희를 두려워 하여... 막을 자가 없고 - 문자적으로는 '막을 자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두려움이 그 모든 백성들 위에 떨어졌기 때문이다'의 뜻이다. 그런데 모든 민족들에게 임한 이 두려움도 8:17의 경우처럼, 하나님께서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려는 섭리임이 분명하다.
=====9:3
본절은 대세의 흐름에 편승하는 데 민감한 관리들이 유대인들 편에 서기로 재빨리결정했음을 말해준다. 원래 그들은 하만의 조서에 따라서, 유대인들을 죽이려는 자들을 돕는 입장에 서야만 했다. 그런데 하만의 조서가 취소되지 않은 채, 모르드개에 의해 조서가 내려졌기 때문에 그들은 온전한 중립적 입장에 서 있어야했다(8:9). 그러나 그들은 절대적 권력을 장악한 신층 세력인 모르드개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유대인들을 지지하는 입장이 되었다.
관원(사르) - 왕의 신하를 가리키는 광의(廣義)의 단어이다(3:12). 이는1:3에서는 '방백'으로 번역되었다.
대신 - 3:12 주석을 참조하라.
방백(페하) - 3:12 주석을 참조하라.
왕의 사무를 보는 자들 - 3:9의 '왕의 일을 맡은 자'와 동일하다. 보다 자세한 것은 그곳의 해석을 보라.
다 유다인을 도우니 - 여기서 '도우니'(메나스임)는 '올리다' 혹은 '세우다' '일으키다' 등의 뜻을 갖는 동사 '나사'의 분사로서, 지속적으로 격려하고 지지하는 것을 가리킨다(Rawlinson). 그러나 이것은 관리들이 노골적으로 유대인들을 돕는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지지하는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왜냐하면 만일 관리들이 노골적으로 유대인들을 돕는다면 왕의첫 번째 조명(3:12 - 14)를 범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9:4
한글 개역 성경에는 안 나타나 있지만, 히브리 원문에는 '왜냐하면'을 뜻하는 접속사 '키'가 본절 초두에 놓여 본절이 3절의 이유임을 말해준다.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여 - 그의 지위와 명예 그리고 권세가 아울러 높아진것을 가리킨다(8:2, 15 ; 10:3).
점점 창대하매 - 여기의 '창대하매'(* ,가돌)는 앞의 '존귀하여'와 동일한 단어이다.
=====9:5
유다인이 칼로 그 모든 대적을 쳐서 - 유대인들이 이같이 할 수 있었던 데는 관리들이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가졌던 것(3절)이 큰 힘이 됐을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8:11-13에 언급된 조서의 내용과 같이 대적들을 진멸했을 것이다. 한편,'대적'은 유대인들에 대한 혐오감을 무력을 통해 나타내려고 했던 자들이다(8:11).
도륙하고 진멸하고 - 3:13 주석을 참조하라.
미워하는 자에게 마음대로 행하고 - 이것은 본절 앞의 문구 '그 모든 대적을 쳐서도륙하고 진멸하고'와 동일한 의미로 이해된다. 본서의 저자는 이 같은동의적(同意的)대구법의 표현 방식을 빌어서 유대인들의 대적들에 대한 진멸 행위가 완벽하게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9:6
유다인이...수산에서 오백 인을 죽이고 - 본절에서부터는 5절에 언급된 유대인들의진멸행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본 한글 개역성경은 5절을 유대인들의 진멸 행위의 전체적 개요로 보지 않고 하나의 구체적 모습으로 본다. 그래서 본절을 번역하면서 원문에도 없는 '또'라는 단어를 삽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본 문구의 '도성수산'은, '수산'시(市)의 서쪽 언덕 위에 인공적으로 만들어긴 요새 지역으로서 왕궁 이외의 다른 거주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아마도 이곳은 인구가 조밀했을 것으로 추측된다(Rawlinson).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도성 수산'과 '수산'은 다르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도성수산'에서 오백 명을 죽이면서 하만의 열 아들도 함께 죽였는데(7-10절), 그 아들들의 시체가 '수산'에서 달렸다는 언급(14절)을 볼 때, 본장에서의 '도성 수산'은 '수산'과 별 구별없이 사용된 듯하다. 한편, '죽이고'(하라그)는 8:11에서 '도륙하고'로 번역된 단어이다(3:13 주석 참조).
멸하고(아바드) - 8:11에서 '진멸하고'로 번역되었는데 이를 참조하라(3:13).
=====9:7,8,9
여기서는 유대인들에 의해 도성 수산에서 살해된 하만의 열 아들의 이름이 나열되고있다.
바산다다 - '기도로 인해 주어진'의 뜻을 갖는 페르시아어 '프라스나-다타'(Frasna-data)의 히브리어 음역인 듯하다(Oppert).
달본 - '거만한', '오만한'이란 뜻이 있는 페르시아어 '다르폰'(Darphon)의 히브리어 음역이다.
아스바다 - '말을 선물로 받은'이란 뜻을 갖는 페르시아어 '아스파나타'의 히브리어 음역이다(Oppert, Rawlinson).
보라다 - '많은 병거를 가진'이란 의미의 페르시아어 '파루-라타'(Parurath)의 히브리어 음역이다(Rawlinson).
아달리야 - '용감한'의 뜻을 갖고 있는 페르시아어 '아달랴'(Adalya)의 히브리어음역이다(Oppert). 아리다다 - '관대한'을 뜻하는 '아리다타'(Aridata)의 히브리어 음역이다(Rawlinson).
바마스다 - '가장 위대한'을 뜻하는 페르시아어 '파라메쉬타'(Parameshta)의 히브리어 음역이다(Benary).
아리새 - '정복하기'란 의미를 갖고 있는 페르시아어 '아리사야'(Arisaya)의 히브리어 음역이다(Rawlinson).
아리대 - '주기'(to give)를 뜻하는 페르시아어의 히브리어 음역이다(Rawlinson).
왜사다 - '바람처럼 강한'이란 의미의 페르시아어 '와유-자다'(Vayu-zatha)의 히브리어 음역이다(Rawlinson). 한편, 이들의 이름이 이렇게 한꺼번에 계속적으로 나열되어서 언급된 것은 그들이 모두 한 순간에 죽은 것을 나타내려는 이유에서 일 것이다.
=====9:10
그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 사실 왕의 조서에 따른다면, 유대인들은 대적의 생명과 재산을 아울러 빼앗을 수도 있었다(8:11).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이같이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않음으로써, 대적들에 대한 자신들의 공격 행위가 결코 더러운이익을 탐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확연히 증명해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대적들에 대한 자신들의 행위가 대적들을 멸하는 그 자체에만 의의가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한편, 이렇게 함으로써 하만의 아들들의 재산은, 주인을 잃은 재산 일체는 왕에게 귀속됐던 고대법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아하수에로 왕의 것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러한 유대인들의 태도는 약500년 전에 사울이 아말렉을 물리치고 난후 탐심에 빠져 전리품을 취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샀던 사건(삼상 15:17-23)과 좋은대조를 이룬다.
=====9:11
국가의 중요한 일은 항상 '실록(6:1)에 기록되어야 했으므로 유대인들에 의해 살해된 자의 숫자가 왕께 보고된 것은 당연하다 할 수있다. 또한 왕은 그러한 관례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사신의 조서가 어떻게 실행되었는지 그 결과 보고를 받을 필요성이있었을 것이다.
=====9:12
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이르되 - '에스더'는 모르드개 혹은 그밖의 소식통에 의해서 12월 13일에 몇 명의 대적들이 유대인들에 의해서 살해 됐는지를 보고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왕은, 에스더가 모르는 것으로 간주한 채 자신이 부하들로부터보고 받은 바를 에스더에게 말해주고 있다. 아하수에로 왕은 이같이 함으로써 자신의 에스더에 대한 사랑을 간접적으로 표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왕의 다른 도에서는 어떠하였겠느뇨 - 수산에서 죽은 수효를 생각해 볼 때 전국적으로는 엄청난 숫자의 대적들이 살해되었을 것이라는 사실(16절)을 암시하기 위한 감탄문이다(Rawlinson). 이제 그대의 소청...요구가 무엇이뇨 - 왕은 유대인에 의해서 살해된 대적의 숫자와 함께, 그 대적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기세가 대단하였다는 보고도 받았을 것이다(Schultz). 따라서 사태의 추이를 익히 알고 있었던 아하수에로 왕은 나머지 대적들을 소탕할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해서 다시 이같이 에스더에게 '소청'의 유무를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왕은 에스더와 유대인들에 대해 은총을 허락하고 또 은혜를 내릴 것을 요청케 한 것이다. 그러나, 아하수에로 왕이 이처럼 유대인들에게 호의적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의 결과인 것이 틀림없다. 즉, 아하수에로 왕은 난폭할 뿐만아니라 즉흥적이고 허영심이 많은 군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아하수에로가 본절에서 처럼 반응한 것은 그의 성격과 마음을 여호와께서 움직이셨기때문이다.
=====9:13
수산에 거하는 유다인으로 내일도... 행하게 하시고 - 하만의 조서(3:12,14)나 모르드개의 조서는(8:11, 12) 모두 하루 동안만 유효하였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 적대적 공격을 해왔던 모든 대적들을 그 하루 동안에 모두 진멸키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오히려 남은 대적들이 세월이 어느 정도 지나 다시 세력을 규합하여 유대인들에게 큰 해를 입힐 것이 뻔하였다. 그래서 에스더는 그러한 것을 미리 예견하며대적들의 완전한 진멸을 위해 왕에게 다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에스더는하나님의 백성들이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는 절대명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 자신의 개인적 원한을 갚으려는 의도에서 그러한 요청을 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달게 하소서 - 유대인들이 자신의 대적들을 죽일 수는 있었지만, 그 시체를 훼손시키는 등의 일은 멋대로 할 수 없었다. 만약 그 같은 권한이 부여되었다고 하더라도, 12월 13일 하루만에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어달 시간적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에스더는 이처럼 그 다음 날인 12월 14일에 그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어달 수 있게끔 아하수에로 왕에게 간청을 한 것이다. 에스더는 이처럼 하만의 아들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어닮으로써 (1) 유대인의 대적 아각자손(3:1)인 하만 일가가 완전히 진멸됐다는 사실을 가시화하고, (2) 유대인의그밖의 대적 혹은 그들에게 적대적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엄중한 경고(삼상31:10)를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Paton). 한편, 이처럼 나무에 다는 것은 히브리와페르시아에 유행했던 당시의 관습이었다(Keil & Schultz, 신21:22 ; 스6:11).
=====9:14
왕이...조서를...내리니...열 아들의 시체가 달리니라 - 여기에서 왕이 내린 조서의 내용이 혹자의 주장처럼 유대인들에게 다음날도 싸울 수 있다는 것만을 허가하는 것(C.A.Moor,Keil)은 아니다. 오히려 아하수에로는 다음날의 싸움과 하만의아들들의 시체를 나무에 달 수 있게 한 조서를 동시에 내린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Schultz). 그런데 혹자의 추측처럼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가 하만이 매어 달렸던높은 나무(7:9, 10)에 일부 달렸고, 그 나머지도 그 옆에 새로 세웠을 나무에 나란히 달렸을 것이(Paton)라는 견해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 한편, 죽은 시체를 나무에 다는 것은 그 시체에 대한 대단한 모욕일 뿐만 아니라 그와 관계한 사람에서 까지도 심한 모욕으로 간주되었다.
=====9:15
본절에 나타난 유대인들의 행위는 왕이 내린 새로운 조서(14절)에 따른 합법적인것이었다.
또 삼백 인을 수산에서 도륙하되 - 여기의 '삼백 인'은 12월 13일에 미처죽이지 못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 - 본서 저자는 이와 같은 표현을 본절 뿐만 아니라10절과 16절에도 기록하여 유대인들의 바른 행위와 그들의 살륙의 정당성을 강조하고있다.
=====9:16
여기서는 수산 이외의 지역 유대인이 왕의 조서를 어떻게 실행했는지를 보여준다(6절).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 8:11 주석을 참조하라.
대적들에게서 벗어나며 - 이것은 앞의 문구 '생명을 보호하여'와 동일한 의미로 봐야한다. 따라서 이것을 어느 특정한 지역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서는안 될 것이다(22절). 그러므로 혹자의 생각처럼 '대적들을 살륙하고 그 숫자를 보고하기 위해 싸움의 장소에서 벗어났다' 라고 하는 견해(Rawlinson)는 재고될 필요가있다.
자기를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인을 도륙하되 -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 대해서는1절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수산 이외의 지역에서 살해된 대적의 숫자 '칠만 오천 인'은 수산에서 하루 동안 살해된 숫자500명에 비하면 조금 많은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칠십인역(LXX)과 같이 이를 일만 오천 인으로 보는 것은 타당치않다.
=====9:17
아달월 십 삼 일에 그 일을 행하였고 - 이것은 16절에 언급된 유대인들의 정당한행위가 언제 이뤄졌는지를 분명히 말해주는 표현이다.
십 사 일에 쉬며 - 수산 지역의 유대인들은 왕의 특별한 조서에 따라 '십 사 일'에도 대적들을 물리쳤다(15절). 그러나 다른 지역의 유대인들은 '십 삼 일' 하루 동안에(8:12) 대적들을 진멸하였기 때문에, 그 다음날에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안식을 누릴 수 있었다.
그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겼고 - 8:17 주석을 참조하라.
=====9:18
수산...유다인은 십 삼 일과 십 사 일에 모였고 - 15절을 참조하라.
=====9:19
본절은 16, 17절의 결과로서 수산 이외의 지역 유대인들이 12월 14일을 경축일로지키게 되었던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므로(알 켄) - 여기서 '알'은 '~위에'라는 뜻이다. 그리고 '켄'은 '이것' 혹은 '이같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둘이 합쳐져서는각자의 의미가 되살아나기 보다는 오히려 앞에 언급된 내용의 결론을 유도하는 접속사가 된다(창2:24 ; 느6:6). 따라서 여기의 '그러므로'는 본절이 16, 17절의 결론에 해당됨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용어는 대체로 어떤 습관의 유래에 대해 설명할 때사용된다(Schultz).
촌촌의 유다인 곧 성이 없는 고을 고을에 거하는 자들 - 여기서 '촌촌의'(페라우짐)는 '고을 고을'(페라조트)을 가리키는 단어로서, 요새화되어 있지 않고 탁 트인 마을 혹은 도시를 가리킨다. 따라서 '촌촌'과 '고을 고을'은 곧 요새화되어 있었던 '수산'과 대조되는 수산 이외의 다른 모든 지역들을 가리킨다(Keil,Rawlinson). 이와 같은 대조에 대해서는 신3:5과 삼상 6:18을 참조하라.
아달월 십 사 일로 경절을 삼아 - 이처럼 수산 이외 지역의 유대인들이 '경절'을'십 사 일'로 정한 것은, 그들이 그 전날에는 대적들과 싸우고 그 날에는 안식을 얻고 잔치를 베풀었었기(17절) 때문이었다. 그러나 수산에 사는 유대인들은 '십 오 일'에야 쉴 수 있었기(15, 18절) 때문에 '경절'이 다른 지역 유대인들과는 달리 '십 오일'이었다(21절). 그런데 여기의 '경절'(욤 토브)은 문자적으로는 '좋은 날'이라는 뜻으로서, 그 날에 있었던 상서로운 역사적 사건을 계속 기억하기 위해 특별히 정한 기념일이었다(출 12:14). 한편, 이 날에는 모든 노동을 그치고 그 날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되새기며 하루를 보냈다(8:17).
서로 예물을 주더라 - 이것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성탄절 등에 주로 행하는 선물 교환과 거의 흡사하다. 유대인들은 이같이 함으로써 상호 연대감을 증진시키려고했었다(Baldwin). 한편, 이러한 당시의 관습은 오늘날에도 유대인들 사이에 계속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듯하다(Rawlinson).
=====9:20
모르드개가 이 일을 기록하고 - 모르드개가 기록한 '이 일'은 (1) 유대인들이 왕이 내린 조서에 따라서 대적들을 진멸한 일(5,15,16절), (2) 유대인들이 대적들을 진멸한 후 그 다음날을 '경절'로 삼아 쉬면서 잔치 등을 베푼 일(17-19절)을 아울러 가리킬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유대인들이 직면했던 위협과 파멸의 위험에서 보존된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다(Schultz). 그러나 본 문구는 모르드개가 본서를 기록했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모르드개는 다만 유대인들에게 편지를 보내기 위하여 그간의 사건 개요를 기록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모든 유다인에게...글을 보내어 - 21, 22절에 언급된 내용의 서신을 말한다.
=====9:21
한 규례를 세워 - 이는 부림절이 정례적인 공식적 절기로 지켜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여기의 '한 규례를 세워'(키옘)는 '~위에'를 뜻하는 전치사'알'과 함께 사용되어, 어떠한 일을 특정한 어떤 사람이 필연적으로 행하도록 의무를 부과시키는 것을 가리킨다(Schultz, 룻 4:7 ; 시 119:106). 그러므로 이는어느 날을 잡아서 기리고 경축할 것을 정한다는 의미를 강하게 나타낸다.
해마다 아달월 십 사 일과 십 오 일을 지키라 - 수산의 유대인들이 '아달월 십 사일'을 자신들의 경절로 삼은 전례(18절), 그밖의 지역 유대인들이 '아달월 십 사 일'을 경절로 삼은 전례(19절)를 모두 존중하여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9:22
유다인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 여기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누아흐)는 '쉬다' 혹은 '안식하다', '조용하다'란 뜻이 있는 동사이다. 본절의 이러한 표현은 유다 백성들이 대적들의 위협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조용히지내게 되었음을 나타내고있다. 한편, 이 동사로부터 16절에 언급된 '벗어나며'나 17,18절에서 '쉬며'로 번역된 '노아흐'가 파생되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되고 - 여기서 '슬픔'(창 42:28 ; 시 13:2 ; 겔23:33)은 유대인을 대량 학살하라는 왕의 조서가 내려졌을 때 온 유다 백성들이 느꼈던 감정이었다(4:1, 3). 한편, 그들의 '기쁨'은 대적들을 모두 무찌른 후 잔치를 통해서 발산되었다(17-19절).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 여기서 '애통'(에벧)이라는 명사는,'비탄', '애도'라는 의미로 자신의 멸망을 예견했던 하만의 심정을 표현한 형용사 '아벨'과 동족의 단어이다(6:12). 또한 이 명사는 하만에 의해 내려진 조서로공포에 사로잡혔던 유대인의 마음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4:3). 이와같이 이용어의 사용에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주도의 슬픔의 감정을 나타내려는 본서 저자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한편, '길한 날'(욤 토브)은 19절의 '경절'과 동일하다. 그런데 여기서 '길한'(good)이라는 말에는 '좋은', '선한', '아름다운','기쁜'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 악이 바뀌어 선이 되었음을 나타낸다.
이 두 날 - 21절을 참조하라.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 19절을 참조하라.
서로 예물을 주며 - 19절 주석을 참조하라.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 이것은 모세 율법이 명령하고 있는 절기를 지키는 구체적방법 중의 하나이다(신 16:14 ;느 8:10). 유대인들은 절기를 이같은 방법으로 지킴으로써. 자신들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 감사하였다.
=====9:23
자기들의...시작한 대로 또는 모르드개의 보낸 글대로 - '모르드개'는 유대인들이대적들을 물리친 그 다음 날에 시행했던 행사를 근거로 해서 부림절 절기를 제정하기위한 글을 유대인들에게 보냈었다(20, 21절). 따라서 여기에 표현된 '자기들의-시작한 대로'라는 말은 '모르드개의 보낸 글대로'와 동일하다. 계속하여 행하였으니(키발). 원어는 '응낙하다', '착수하다', '받아들이다', '취하다' 란 의미의 동사 '카발'의 강조형(피엘형)으로서, '기쁨으로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을 가리킨다(스8:7 ; 욥 2:10 ; 잠 19:20).
=====9:24
본절부터 26절까지는 22절처럼 부림절이 제정되기까지의 배경을 언급하고 있다.
아각 사람 - 3:1 주석을 참조하라.
모든 유다인의 대적 - 3:10 주석을 참조하라.
유다인을 진멸하기를 꾀하고 - 3:6을 참조하라.
부르 곧 제비를 뽑아 - 3:7을 참조하라.
저희를 죽이고 멸하려 하였으나 - 여기서 '죽이고'(레후맘)는 '패배케하다' 혹은 '부수다'의 뜻을 가진 동사 '하맘의 부정사로서, 큰 능력을 동원하여 상대를 멸절시키는 것을 가리킨다(신2:15 ; 수10:10 ; 삿4:15 ; 삼상7:10).한편,이 용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적을 칠 때 나타나는 대패배를 가려킬 때도 사용되었다(출 14:24 ; 신 2:15, Keil, Schultz).
=====9:25
에스더가 왕의 앞에 나아감을 인하여 - 원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그 문제가 왕의 앞에 나아갔을 때'라는 뜻이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것은 5-7장을 살펴보라.
왕이 조서를 내려 - 왕이 하만의 형벌과 관련한 '조서'를 내렸다는 사실이 본서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총리대신을 처형하는 문제는 너무나도 중대한 문제였기때문에 왕은 구두 명령 이외에 그것을 문서화한 별도의 명령을 신하들에게 하달했을것이다.
=====9:26
한글 개역 성경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본절 초두에 '그러므로'를 뜻하는 '알켄'이라는 말이 있다(19절). 따라서 본절부터 28절까지는 앞 부분의결과에 해당된다(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19절의 주석을 참조하라). 그 중 본절은 어떻게 해서 '부림절'이라는 절기 명칭이 정해지게 되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무리가 부르의 이름을 좇아 이 두 날을 부림이라 하고 - '부르'(푸르)는 '제비'를 뜻하는 페르시아어이다(3:7). 그런데 본절에는 이 용어가 복수 형태로 쓰여져 있어, 부림 절기로 지켜지는 날이 '두 날'이었기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이 글의 모든 말 - 모르드개가 부림절 제정과 관련하여 유대인들에게 보낸 서신의내용 전부를 가리킨다(20절).
이 일에 보고 당한 것 - '그들이 보았고 그들에게 일어난 일'로 번역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 그런데 이것은 곧 24, 25절의 내용인 바, 그들이 경험한 것이 모르드개의 글의 내용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Schultz).
=====9:27
뜻을 정하고(키예무) - 21절의 '한 규례를 세워'와 동일한 동사이다.그러나 21절의 '한 규례를 세워'라는 표현은 부정사(不定詞)임에 반하여, 본 단어는일반적 형태로서 부림절을 제정하기로 한 사람들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자기와 자손과 자기와 화합한 자들 - 여기서 '자기와 자손'은 부림절이 그 당대 뿐만아니라 후대에도 계속 지켜지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한편, '화합한 자들'(닐윔)은 '합하다' 혹은 '함께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라와'의 수동 분사로서 이방 종교를 포기하고 여호와의 종교를 받아들여 이스라엘에 속한 사람(사14:1 ; 56:3 ; 슥 2:11). 즉 이방인 개종자들 모두를 가리킨다(Keil, Rawlinson,Schultz).
그 기록한 정기(定期) - 모르드개가 결정한 12월 14, 15일(20, 21절)을 말한다.
이 두날을 연하여 - 이것은 유대인들이 혹시 한 날만을 부림절로 지키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따라 언급된 말인 듯하다. 왜냐하면 수산에 사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최초에 그랬던 것처럼(18절). 12월 15일 하루만을 절기로 지킬 가능성이 있었고, 그의 지역의 유대인들은 12월 14일 하루만을 절기로 지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19절). 이두 날 모두를 절기로 지켜야 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21절 주석을 참조하라.
폐하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 여기서 '폐하지 아니하기로'는 페르시아의 법이 절대로 변개될 수 없었던(1:19) 사실을 염두에 두고 부림절 절기의 지킴에 대해서도매우 강하게 강조한 듯하다. 사실 선지자도 제사장도 아닌 모르드개가 제정한 부림절은 언뜻 생각하면, 결코 신적인 권위라고는 전혀 없는 절기처럼 느껴질 수 있었다. 따라서 부림절이 제정되게 된 과정을 목격치 못한, 즉 체험치 못한 그 후손들은 그 부림절 절기를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컸었다. 그래서 이처럼 부림 절기의 지킴에대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절에 나타난 '작정하고'는 23절의 '계속하여 행하였으니'와 동일한 어근과 의미의 단어이다.
=====9:28
본절은 내용상 27절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반복을 통하여 본서의 저자는 부림절이 반드시 지켜져야 했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각 도, 각 읍, 각 집에서 - 이것은 모든 지역, 모든 공동체, 온 가족이 부림절을예외없이 지켜야 할 필요성을 암시한다.
대대로 - 부림절이 후대에도 계속 지켜져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강조를 반영이라도 하듯 히브리인들은 오늘날까지 이 부림 절기를 지키고 있다.
폐하지 않게 하고(로아바르) - 문자적으로는 '지나쳐 버리지 않도록'이다. 27절의 '폐하지 아니하기로'와 동일한 의미의 어휘이다.
=====9:29
에스더와...모르드개...글을 쓰고 - 본문구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모르드개가쓴 서신 이외에(20절) 또 다른 서신이 유대인들에게 보내졌음을 알 수 있다. 즉, 그것은 다음에 나오는 '둘째 편지'이다. 그런데 여기서 '글을 쓰고'(티크토브)는 여성 3인칭 단수이다. 주어가 에스더와 모르드개 두 사람이어서 3인칭 복수 동사가사용 되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여성 3인칭 단수 동사가 사용된 데는 그만한이유가 있다. 즉, 여기의 글을 쓰는 일, 다시말하여 편지를 쓰는 일이 '에스더'의주도 아래 이루어졌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은 아마도 첫째의 서신을 보낸(20절) 때로부터 몇 개월이 지난 후, 즉 공식적으로 제정된 부림절이 최초로 돌아오기 얼마 전쯤에 보내졌을 것이다.
전권(全權)으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어근은 '이기다', '압도하다'에서 유래한 '토케프'로 '권위', '권력', '힘'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이러한 문자적인 의미보다도 '진정으로', 또는 '감동적으로'란 해석이 더 어울리는 듯하다(Rawlinson). 한편, 이 용어는 구약에서 본절 외에 10:2와 단 11:7에도 사용되었다.
굳이 지키게 하되 - 21절의 '한 규례를 세워서'와 동일한 어휘,같은의미의 말이다.
=====9:30
화평하고 진실한 말로 - 이것은 에스더가 쓴 '둘째 편지'의 내용이 주로 어떤 성격의 것이었는지를 말해준다. 즉, 그 '둘째 편지'는 (1) 유대인들에게 에스더 자신의 선한 뜻을 표현하기 위한 인사말, 곧 '화평이 있으라'(솰롬)라는 말로시작되었으며, (2) 자신이 여전히 신실한 유대 여인임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진실한'(에메트)말로 메워져 있었을 것이다(Paton). 이러한 표현은당시 일상적으로 사용했던 말, 즉 '평안할지어다'(스 4:17) 혹은 '만한하옵소서'의 변형일 것이다(Rawlinson).
써서 - 엄밀히 말하여 히브리 원문에는 이를 표현하는 말이 쓰여 있지 않다. 뜻이잘 통하도록 하기 위한 번역자의 삽입인 듯하다.
유다 모든 사람에게 보내어 - '유다 모든 사람'에는 당시 팔레스틴에서 살던 유대인들도 포함된다(3:13). 한편, '보내어'(* , 이쉴라흐)는 3인칭 남성 단수로쓰여졌다. 이러한 서술은 결국 '둘째 편지'가 에스더의 주도 아래 쓰여졌고(29절), 모르드개에 의해서 전국에 보내졌음을 시사한다.
=====9:31
정한 기한 - 21절을 참조하라.
지키게 하였으니 - 21절의 '한 규례를 세워'와 동일한 단어이다(27절). 이는...모르드개와...에스더의 명한 바 - 문자적으로는 '마치...모르드개와...에더가 정했던 것과 같이'라는 말로 이는 '모드드개'가 첫째 편지를 보냈던 일을 가리킨다(Paton). 그런데 비록 20-22절에 보면 '첫째 편지'가 모르드개 단독으로 보낸 것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상 그 편지는 에스더의 지원 혹은 지지 아래 보내졌을 것이 뻔하다. 다만 그 편지를 보내는 일의 주도자가 '모르드개'였을 뿐이었다. 유다인이 금식하며 부르짖은 것을 인하여...정한 바가 있음이더라 - 문자적으로는'그리고 마치 유다인이 금식하며 부르짖는 것을 정했던 것과 같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모르드개의 첫 번째 서신(20-22절)에는 '금식과 부르짖음'에 관한 명령이없다. 그러나 우리는 모르드개의 서신 내용 가운데는 '슬픔'과 '애통'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다는 사실(22절)에 근거하여, 그의 서신 내용 중에는 '금식과 부르짖음'에 관한 명령이담겨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Paton). 즉, 모르드개는 유대인들이 대적을 물리친 그 다음날 안식하며 잔치했던 일에 근거하여 그 날을 '경절'로 지키게 했듯이(22절), 유대인들이 12월 13일을 인하여 '금식하며 부르짖은 것'(4:3)에 근거하여 '금식과 부르짖음'도 그 '경절' 행사 중의 하나로 지키게끔 명령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금식과 부르짖음'이 부림절의 두 날 곧, 12월14일과 15일 중 어떤 날에 행해지게끔 명령됐는 지는 알 수 없다.
자기와 자기 자손을 위하여 - 27절 주석을 참조하라.
=====9:32
에스더의 명령 - 에스더가 보낸 '둘째 편지'를 가리킨다(29절).
이 부림에 대한 일 - '부림절'을 지키는 방법과 날짜(21,26-28절)등의 내용을 가리킨다.
견고히 하였고 - 27절의 '작정하고'와 동일한 동사이며 같은 의미이다.
그 일이 책에 기록되었더라 - 여기의 '책'은 문자적으로 '그 책'으로서, 에스더서도 아니고 모르드개가 보낸 편지도 아니다. 이것은 에스더서를 쓰는 데 사용된 자료,즉 당시 모르드개가 기록했었을 유대인들만의 역대 일지였던 것 같다. 본서의 저자는바로 이 '역대 일지'를 통하여 모르드개의 첫째 편지와 에스더의 둘째 편지 내용도 알수 있었을 것이다(Rawlinson).
유대닌들이 페르시아의 포로로 잡혀가서 경험한 사실, 즉 부림절을 그 중심으로 해
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섭리하심의 역사를 기록한 보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
다. 즉, 전반부(1-4장)는 위기에 처한 유대인들의 모습을 그린 대목으로 사넉의 역사
적 배경과 더불어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고 있다. 이에 이어지는 후반부에는 이스라엘
의 대적자 하만과 유대 백성의 구원자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펄치는 숨막히는 드라마와
같은 내용이 전개되고 있다(5-10장). 그중에서도 특히 하만을 물리친 모르드개
(5:1-8:2)를 핵으로 해서 모르드개가 승리하게 된 배경(5:1-6:3), 명예를 얻은 모르드
개(6;4-14), 하만의 죽음(7:1-10) 등을 다루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아하수에로 왕을
향한 에스더의 탄원(8:3-6), 아하수에로 왕의 또 다른 조서(8:7-14), 많은 이방인들의
개종98:15-17) 등의 사실을 언급해 승리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개요적으로 그렸다.
이러한 내용이 이어지는 본장은 유대인들의 승리와 축제를 묘사한 대목으로 본서
전체의 절정(climax)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전장(前章)까지는 사건의 내용이 매우 드
라마적으로, 또는 긴장감 있게(suspense) 전개 되었다. 그러나 본장에 들어와서는 지
금까지 취한 소설의 기법에 의한 내용의 진행보다는 사건 전체를 마감하고 요약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적을 이긴 유대인들의 승리에 그 초점을 두고 있
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본장은 (1)모르드개의 명성이 확산되는 모습을 그린 전반
부(1-4절), (2)대적들을 처형함으로 완전히 쟁취한 이스라엘의 승리를 언급한 중반부
(5-16절), 그리고 (3)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절기, 즉 부림절을 제정하게 되는 과정과
목적을 서술한 후반부(17-32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본저 저자는 하
나님의 도우심으로인해 대적들에게 승리함으로써 유대인들에게 평화와 기쁨이 왔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부림절의 절기가 왜, 어떻게 재정되었나를 밝히고 있
다.
한편 본장과 8장 사이에는 적어도 몇 개월 동안의 시간 간격이 있었을 것이다. 왜
냐하면 하만의 음모에 따른 왕의 조서가 내려지자 마자(3:13) 모르드개가 그에 대해서
방어적 노력을 시작하고(4장) 그 성과를 얻은 것은(8장), 하만의 일당이 제비를 뽑고
(3:7) 그에 따라 조서를 내린 정월 13릴(3:12)에서 얼마 경과하지 아니한 때였기 때문
이다. 따라서 최소한 9개월 동안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해하려고 한 원수들을 어떻게
무찌를 수 있을지에 대해 연구하였을 것이다. 비록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자위권(自衛權)을 갖고 있었지만, 원수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야만 한다는 사실
로 어느 정도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원수들과의 전투를 거치지 않고서는,
자신들과 자손들의 생명을 결코 보존할 수 없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그 사실을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으로 인식하고, 격전의 12월 13일(8:12)을 묵묵히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들이 공포에 떨고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
히려 그들은 자위권이 자신들에게 허락되자 마치 승리라도 얻은 양 크게 기뻐했었다
(8;17). 이유인즉, 백성들은 원수들과 접전을 치르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심
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과 경과를 통해 유대인은 승리를 얻게 되었다. 원수들의 처음 계획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일방적으로 그들에 의해서 학살당하는 입장이어야 했다. 그러나 하
나님께서는 원수들의 그 같은 계획이 성사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다. 하나님
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실 언약적 의무를 갖고 계시기 때문에(느 9:31, 32), 당
신의 백성을 결코 원수의 손에 붙여 멸망하게 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물론 유대인들은
조서가 내려짐으로써 학살당할 위기에 상황을 맞기도 하였었다(3:13-15). 그래서 유대
인들은 한때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신
실하심에 따라 유다 백성을 구출 하여 내셨던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의 본장을 요약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승리의 징조(1-4절) : 모르드개의 명성이 점차 확산되어 갔다는 것은 이스라에
리 승리가 구체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본서 저자는 모르드개의 명성이 널리 퍼
진 사실을 이방인들과 모르드개를 중심으로 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기록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르드개의 이름이 점점 널리 퍼지게 됨에 따라 이스라엘의
승리는 확정적인 것이 되었고 대적자들의 처리 문제에 대한 바탕(터)이 굳게 되었던
것이다.
(2)승리의 모습(5-16절) : 이스라엘의 슬리는 대적자들을 처형하는 양태로 표출된
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승리는 결정이 되었고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승리는 종국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와같이 일단 전환된 상황이 급속히 진
전되어 대적자를 바참히 처리한 것은 종말에 악인의 의인의 종국이 극명히 대조됨을
암시한 것이기도 하다(시 37:38;73:17-19; 잠 14:11; 마 13:43; 롬 6:21; 고후 11:15;
빌 3:19).
(3)승리의 축제(17-32절) : 이스라엘의 승리에대한 기쁨은 축제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마치 애굽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 출애굽을 기념하기 위해 유월절을
지닌 것과 같이(출 12:1-28, 43-50; 민 9:1-14;28;16; 신 16:1-8), 또한 바벧론에서
구원받아 팔레스티으로 귀환한 백성들이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린 것(스 6:19-22)
과 유사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왜냐하면 출애굽과 바벧론에서의 해방은 극한 상
황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로서 부림의 축제와 그 의미가 비슷하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본장을 통하여 (1)성도들은 사단에 대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
를 분명히 인식함으로써 세상에 대하여 담대할 수 있으며(요 16:33), (2)성도들은 위
기의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야 함(마 8:23-26)을
깨닫게 된다.
1. 승리의 징조(9:1-4)
본문은 지금까지 숨막힐 듯 전개되던 긴장이 일단락되는 부분이다. 즉, 본문은 이
스라엘의 승리를 언급한 본장 중에서 그 서두격에 해당되는 대목으로서 승리의 조짐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당시 모르드개를 중심으로 해서 그 주변 사람들이 보인 반응을 핵
심으로 적은 장면이다. 이러한 본문은 (1)승리의 징조가 보인 역사적 시점을 언급한
구절91, 2절), (2)모르드개에 대한 이방인들의 태도를 기술한 대목(3, 4절)으로 구성
되어 있다. 그래서 본서 저자는 모르드개의 명성이 확산됨과 동시에 대적자 하만의 몰
락이라는 상황에서 그 주변의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나를 기술하고 있다. 즉, 이와같
이 기록함으로써 본서 저자는 유대인을 적극적으로 박해하려던 부류 외의 사람들이 어
떻게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했나를 밝히고, 이와 더불어 대적자들이 완전히 무력화되었
으며 이제는 오직 유다의 승리만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사실 아하수에로 왕 당시 페르시아 제국 전체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들의 총수
는 약 70만 명 정도 였다. 그에 따라 유대인들에 대해 혐오감, 혹은 적대감을 갖고 있
던 다른 민족들의 수효 또한 엄청났을 것이다. 따라서 만일 다른 민족들이 아달 월,
곧 12월 13일에 일제히 유대인들을 공격할 경우, 유대인들은 꼼짝없이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비록 유대인들의 자신들을 방어할 수 있는 자위권을 갖고 있었다고 하더
라도, 소수의 유대인들은 다수의 대적들로부터 비참하게 유린당할 것이 뻔하였을 것이
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게만 보였던 상황이 역전(逆轉)되어 가고
잇었다. 왜냐하면 하만의 죽음으로 인하여(7:9, 10) 페르시아의 모든 관리들이 유대닌
들을 지지하는 쪽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이 같은 변화
는, 반드시 그들이 유대인들을 좋아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즉, 그들은 유
대인들의 완고한 종교성 때문에 유대인들을 내심 싫어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
모르드개의 정치적 지위는 관리들의 입장을 바꾸어 놓기에 충분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관리들은 유대인들과 하만 수하의 사람들 중 어느 쪽을 지원하는 것이 자신들
에게 유익한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본문에 언급된 사람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바꾸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이것 또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즉, 하나님께
서는 관리들의 이기심을 이용하여, 그들이 유다 백성들을 지지하도록 만드셨던 것이
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심으로써 페르시아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용기를 갖
게끔 하셨다. 만일 유대인들이 자신들이 소수라는 이유로 낙심했다면, 그들의 패배는
명약관화(明若觀火)했 것이다. 그럴 경우, 유대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펼쳐오셨던 하
나님의 모든 섭리는 수포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또한 그 백성을 보호하
시겠다는 당신의 언약을 무엇이 되었겠는가!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향
한 구원의 손길을 멈추지 아니하셨고, 그 역사를 통해서 유다 백성들이 대적들과 담대
히 싸울 수 있도록 하셨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페르시아 제국의 관원들이 유대인들을
지지하는 쪽으로 선회(旋回)한 것은 유대인들의 승리를 점치게 해주는 징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본 단락을 통하여 (1)성도들의 낙심은 자신을 파멸하게 하는 두려운
요인이 될 수 있으며(민 21:4-6), (2)성도들은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함
으로써 낙심을 극복할 수 있음(행 23:11)을 깨닫게 된다.
2. 승리의 모습(9:5-16)
본문은 유대인들의 승리와 축제를 언급하는 본장의 내용에서 그 절정을 향해 마지
막으로 박차를 가하는 대목이다. 즉, 승리의 징조에 대해 기술한 전 단락(1-4절)에 이
어지는 본문은 유대인들이 경험하는 승리의 모습을 기록한 장면으로 지금까지 긴장감
있게 전개되어 온 사건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부분이다. 이로써 유대인들은 대적자들
을 물리치게 되었고 온화하고 평화스럽게 지낼 수 있게 되었음을 밝힌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문은 (1)첫째 날의 승리를 언급한 전반부(5-10절)와,
(2)하만 다들들의 시체를 매달므로 대적자들의 권세가 끝났음을 암시하는 모습을 기록
한 중반부(11-14절), 그리고 (3)둘째 날의 승리에 대해 서술한 후반부(15, 16절)로 구
성되어 있다. 그래서 본서 저자는 본문을 통해 오직 유대인들이 누린 승리의 사실만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이로써 모르드개의 권세가 지속되고 고양되었음을 드러낸다. 따라
서 다음 단락에 나타나는 내용, 즉 부림절을 지키게 된 경위와 당시 축제를 할 수 있
는 상황이 조성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17, 18절).
한편, 유대인들의 대저들은 자신들의 수령(首領)이었던 하만의 죽음(7:10)과 모든
관원들의 유대인 지지(3절)에도 불구하고 아달 월, 즉 12월 13일이 되자 일제히 유대
인들을 공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하만의 죽음과 관원들의 유대인 지지가 있
기 전까지만 해도 그 학살에 가담하려던 자들의 수효는 엄청났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
인의 대적들 중 일부는 급변한 상황과 함께 유대인 학살에의 가담을 포기하였을 것이
다. 더구나 유대인들에게 자위권이 허락된 왕의 조서(8:11) 유대인 대적들의 수효를
현저히 감소시키는 데 큰 몫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적들은 유대인을 진멸해야겠다는 자신들의 결심을 꺾지 않았
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쩌면 그들은 비록 상황은 급변했지만, 금범을 유대인들을 진멸
할 수 있는 최적.최후의 기회로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적들은 자신들의 수효가
유대인들에 비하여 절대적으로 많음을 인하여 겁없이 유대인들을 공격하였을 것으로
추축된다.
한편 대적들을 수령했던 하만이 죽었다고 해서 그들의 공격이 오합지졸(烏合之卒)
식의 무계획적이고 체계없이 이루어졌던 것은 결코 아니었던 듯하다. 왜냐하면 에스더
는 대적들을 지휘한 듯한 하만의 열 아들을 나무에 매달음으로써 대적들에게 경고한
것 같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대적들은 수효가 많았고 또한 그 공격이 집요했었던
것 같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대적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격은 하루에 모두 끝났
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 날인 12월 14일에도 유대인들이 자신들에게 적대 행위를
했던 대적들을 진멸해야만 했던 것으로 보아 대적들의 공격이 지극히 강렬하고 대규모
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원수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살륙이 정당하였음을 입증해 주는 분면한 증거가
있다. 그것은 곧 유대인들이 대적들의 재물을 노략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손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만일 대적자들에 대한 살륙이 불순한 동기에 의한 것이라
면 그들은 분명히 재물에 손을 댔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보호
하기 위한 최소한의 행위인 정당 방어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무에 왕의 조서로 허용되
었던 권리까지도 포기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본서 저자는 이 내
용을 10, 15, 16절에 거듭해서 언급하였다.
한편, 본문에 나타난 유대인들의 대적들에 대한 철저한 도륙의 사실은 마치 마지막
날 대심판의 일면을 보여 주는 듯하다. 왜냐하면 최후 심판과 멸망의 날(벧후 3:7)은
대적들에 대한 진노의 날이며(롬 2:5),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기 때문이다(욜
2;30-32). 즉, 이 날을 기점으로 해서 여호와께서는 악인으로부터 의인을 분류하며(마
13:36-43) 악인에게는 영원한 형벌을 내리시는 것이다(살후 1:6-10). 그러기에 본문의
사건은 마치 그리스도의 재림 때(마 25:31) 있을 악인의 멸망을 예표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이러한 본 단락의 내용을 통하여 우리는 (1)성도들은 이 세상의 악(惡)과 격렬한
영적 전투를 벌여야 하며(엡 6:11), (2)종국에 가서는 최후의 심판을 통해 성도들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에 우리는 언제나 인내하며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한다(마 7:21-27; 살전 5:1-11)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3.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절기 제정(9:17-32)
본장 뿐만 아니라 본서 전체의 내용 중 그 핵심 대목인 본문은 부림절을 제정한 사
실을 기록한 부분이다. 즉, 본서 저자는 부림절의 기원과 그 절기의 내용을 밝히기 위
하여 지금까지 역사적 사건의 전개와 그에 따른 대적자들의 활동을 그려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본문에서 부림절을 제정하게 된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본서 저자는 본서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드러낸다.
이처럼 본서에서 그 핵이 되는 사실을 담고 있는 본문은 (1)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잔치를 베푼 사실과 시점을 언급한 전반부(17-19절)와, (2)절기 제정까지의 과정을 간
략히 요약한 모르드개의 편지 내용을 적은 후반부(20-32절)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
서도 특히 후반부는 (가)절기로 지켜 행할 것을 명한 모르드개의 명령을 서술한 대목
(20, 21절), (나)절기의 목적을 분명히 나타낸 구절(22, 31절), 그리고 (다)절기 제정
과정의 간략한 개요를 기술한 부분(23-32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본문을 통
한 본서 저자의 관심은 오직 부림절이 제정되었음을 강조하려는 데에 있고, 그 절기가
어떻게 제정되었나늘 밝히는 데에 있음을 드러낸다. 이와 더불어 부림절이 유다 백성
과 함께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섭리하심을 강조하려는 절기임을 분명히 나
타낸다. 그래서 절기의 제정시 있었던 두 번의 편지(20, 29절)를 의도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유대인들의 승리를 기념하게 하기 위해 절기를
제정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대적들과 맹렬히 전투를
벌이고 있었을 때에 어떠한 초자연 역사도 나타내지 않으셨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오
직 자신들의 수고와 행위로 대적들을 물리쳐야 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승
리가 오직 자신들의 능력으로 말미암았다고 그릇되게 생각할 가능성이 있었다. 더구나
그러한 사실이 후손들에게 전해질 경우 그들에게는 그러할 가능성이 더욱 컸던 것이
다.
그렇기 때문에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유대인들이 대적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
게 된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절대적 요소로 작용하였음을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깨닫
게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래서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그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절기를
부림절이라고 명명함으로써 그 절기의 성격을 강력히 암시하였던 것이다. 즉, 그들은
원수들의 '제비뽑기'에 의해서 극도의 환난과 슬픔을 당할 뻔했던 자신들이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구원하심에 의해서 구출 되었음을 후손들에게까지 일깨우기 원했기에 이러
한 표현으로 절기의 이름을 정했던 것이다. 이처럼 세상으 모든 사건은 결코 우연에
의해서, 혹은 인간 자신들의 능력에 의해서 지배되거나 진행되지 않는다. 그래서 모르
드개와 에스더는 바로 이러한 메시지, 즉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돌보시고 인도하시
며 구원하신다는 사실(스 9:9; 사 12:2;25:9; 습 3:17)을 영원히 기억케 하기 위해 부
림절을 제정하여 지키게 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그들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신실한 약
속(히 10:23)을 굳게 믿고 그리스도께 대한 소망에 온전히 거하기를(시 78:6-8) 강력
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부림절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본서 서론 참조).
우리는 이러한 본 단락을 통하여 (1)성도들은 악인들의 득세(得勢)로 인하여 결코
낙심하지 말아야 하며(시 73:2, 17-19), (2)성도들은 환난을 만났을 때 그것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됨을 인하여 도리어 기뻐해야 함(롬 5:4)을 깨닫게 된다.
*유대인들의 부림절 절기 준수 방식. 마카비 시대에 '모르드개의 날'로 불리워지
기도 했던 부림절은(마카비하 15:36)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가 살던 시대에도 세계
도처의 유대인들에 의해 지켜졌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실은 유대인들이 부
림절을 유월절이나 오순절 혹은 초막절과 마찬가지로 중요시했었다는 증거가 되는 바,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부림절은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에게 종요한 절기로 기켜지고 있
다.
한편 유대인들이 부림절 절기를 지킨 순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유대인들은 12월 13일에는 '에스더 금식'이라는 이름의 금식을 한다.琉??그 날
저녁 예배를 위하여 회당에 운집하며, 예배가 끝난 후에는 에스더서를 낭독한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은 하만의 이름이 거명될 때 일제히 '그의 이름을 소멸시키자'라고 외쳐댄다. 그리고 청년들은 이때 큰 소음을 내며, 부림절 방울을 심하게 울려댄다. 한편 공개 낭독을 하는 사람은 하만의 아들들이 하만처럼 나무에 달렸음을 전하기 위하여 단숨에 열 아들들의 이름을 암송한다.
그 다음 날, 즉 14일 아침에도 회중들은 다시 회당으로 모여든다. 이 예배를 위하여 수많은 찬송가와 연극, 드라마, 그리고 암송시들이 지어져왔다. 이 예배가 드려진 후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과 선물을 보냈으며(9:19) 또한 온종일 먹고 마시며 즐겼다. 유대인들은 이같이 함으로써 자신들의 조상에게 임한 불행을 오히려 기쁨으로 변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하며, 자신들에게도 그 같은 하나님의 보호하는 섭리가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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