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펫을 선두로 스윙에 선율이 홀을 박차고 나와서는,
로비에서 서성이던 내 심장까지 두드렸다.
콩나물처럼 빽빽이 모인 텀블러는 주인이 돌아오길 기다렸지만,
나는, 안녕하세요 마틴입니다, 도망가고 있었지요.
낯선 팔로우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어요.
팔로우가 내 주변으로 오기라도 하면 나는 재빨리,
바쁜 건 일도 없으면서 바쁜 척 어디론가 찌그러져야 했지요.
두려움, 분명해요.
공포 영화를 볼 때나 느꼈던 감정,
두려움이란 식인 괴물이 나를 삼켰을 때가 5월 바다제쯤이네요.
이유는 이러해요.
지터벅 졸업 공연을 끝냈을 때만 해도 변비에서 탈출한 것처럼 속시원했어요.
그리고, 기분 좋게, 그렇게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린디합!!!!을 배우게 되었으니,
나도 이제 본격적인 스윙에 세계로 들어가는구나, 뿌듯했지요.
수업 첫날, 트리~플, 트리~플, 락 스탭!
소문으로만 듣던 전설에 트리플 스탭! 빠에서 선배들이 밟던 그 스탭!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신비로운 동작을 만들어내는,
평범한 인간을 위대한 마법사로 만드는 주문 같은 스탭!
마음속으로 외쳤어요.
스탭, 스탭, 락스탭, 지터벅 스탭은 이제 굿바이여!
이제 나도 트리플이여! 나도 꿀리게 없어! 나도 트리~플이랑께!
불행히도, 이런 오만방자함은,
잠시, 그래요, 찰나에 순간이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스탭에 발이 꼬였지요.
트리~플이 트~버벅, 리~버벅, 플-버벅, 버벅~, 뻐억~, 뻑~
마구 버벅대더니 기억하고 있던 패턴마저 싹 사라지더군요.
누군가 나를 타임머신에 태워서는 지터벅 1주차 수업,
락스탭을 처음 배운 그날로 내동댕이 친 것 같았어요.
머릿속은 텅 비어 백지였고 몽뚱이는 마네킹처럼 굳어 버렸어요.
지터벅을 끝내고 린디합을 들어갔던 시기,
그때가 딱 그랬어요,
다행히 바다제에는 동기와 선배가 있었지요,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내 손을 잡아주었어요.
사람 없는 텅 빈 로비 구석에 있으니 맘이 편하더군요.
창밖을 감상했죠. 감상이라, 어두운 밤인데 뭐가 보이겠어요,
그냥 한숨이나 쉬었죠.
등 뒤에서는 아름다운 노래가 들리더군요.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던 녹색 드레스에 여성이 초청 가수였다니, 미리 알았다면 인사라도 하는 건데,
사진이라도 한 장 찍자고 조를 걸 그랬나, 이런 잡생각에 매달려 있을 때 말을 걸어온 건 델로님이었지요.
“.. 제가 어제 그랬습니다.. ”
나에 축 늘어진 어깨에서 개쪽팔림과 절망을 읽어내다니.
“.. 멘탈이 탈탈 털렸습니다..”
그에게 어떤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던 걸까?
델로님은 영광스럽게도 낯선 팔로우에 춤 신청을 받았다고 한다.
그대의 용기에 찬사를, 나는 낯선 분에 손을 잡을 용기가 없다우.
음악이 시작되고 춤을 추는데 팔로우가 움직이질 않더란다.
평소 하던 대로 신호를 보냈음에도,
팔로우는 움직이지 않고,
리더에 신호를 기다리며 빤히 쳐다보는데,
지금 하고 있잖아요! 어쩌라구요! 더 이상 내가 뭘 어떻게!
초조와 불안, 몸이 움직이지 않는 가위눌림에 악몽,
야속하게도 이럴 때 음악은 엄청 길지요,
리더분들은 알 겁니다, 이 순간에 감정을.
정신은 비명을 지르고 뇌세포가 산산조각 나는,
지금 생각해보면, 쌩초보인 우리를 배려해 탐나 스윙에 팔로우 분들이
맞춰서 움직여 준 것에,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용기 가득한 청년이여, 스윙에 세계로 입문하여 상처 하나를 새겨서니,
시간이 흐른 후 웃으며 기억할 수 있는 영광에 상처가 되기를.
“형님, 음악이 너무 좋지 않습니까?”
홀 입구에서 서성이던 뿌룩 마왕님.
“이 분위기가 너무 좋습니다.”
맥주에 취하고 음악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는.
“지터벅 졸업 공연할 때 미쳐 버리는 줄 알았어요.”
패턴을 외우고 순서대로 맞춰서 하는 게 고통이었다고 한다.
“즐거운 게 아니라 스트레스였죠, 다시는 졸업 공연 안 할 겁니다.”
지금 못하면 다음에, 다음에 안 되면 다다음에, 스트레스 받지 말고 즐기면서,
마왕님이 이 스타일을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벚꽃이 만발하던 3월, 아마도 지터벅 수업 5주와 6주차쯤,
꽃구경을 떠났던 많은 동기가 돌아오지 않았던 그때, 마왕님도 그만두려고 했다.
수업을 빠지면 진도를 쫓아가기 힘들었고, 팔로우는 다들 왜 이렇게 춤을 잘 추는지,
팔로우에 사소한 행동이나 작은 눈빛에도 내가 제대로 못 해 짜증이 난 걸까,
눈치를 보게 되고 나중에는 눈조차 제대로 마주칠 수 없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머리가 빠개질 것 같았다고 한다.
이렇게 고통받으며 내가 왜 춤을 배워야 하지, 그만두려 할 때
빠에서 열린 벚꽃 스윙 파티를 참여하게 된다.
맥주가 있고, 음악이 있고, 춤이 있는 분위기에 푹 빠져서는,
즐기자, 스트레스 따위를 왜 받아, 즐기는 거야,
마음을 완전히 바꿔 먹었다고 한다.
당시 정모에 출근하던 모범생인 나는 몰랐던 내용이다.
마왕님이 말해 주지 않았다면 꽃구경을 떠난 그들이 돌아오지 않은 이유를 영원히 모를 뻔 했다.
가끔 팔로우에 손을 잡고 홀로 걸어갈 때,
내가 지금 핵 펀치 마이크 타이슨에 손을 잡고서는 링에 오르는 건 아닐까, 하는 공포를 느낄 때가 있다.
공포나 두려움은 새로운 걸 시도할 때 젤 먼저 찾아오는 친구,
문을 열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쉽지 않다.
마왕님도, 델로님도 나에게 한 말이 있다.
“내년 바다제에는 우리도 즐겁게 놀고 있겠지요?”
그들은 기죽지 않았다.
이 멋진 분위기를 맛보았으니 내년에는 부디 주인공이 되기를.
미안하게도, 나는 웃기만 했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쫄아서는 심장이 덜덜,
나에 5월,
우리에 5월을 기억하며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 6월 6일.. 밤 11시경에..
첫댓글 마틴님 ~ 항상 열심히 하시는거보면 보기좋아요~~~👍👍👍 항상 응원 할게요 ~🤩 초중급까지~!!! 화이팅!!!
ㅎㅎ 누구나 다 겪는 성장통입니다. 아프지 않을 수는 없으나 그 아픔을 이겨내는 방법을 다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이겨냅니다. 엄청난 상처를 받는데 매번 저도 ㅎㅎ 저도 저 나름의 방식으로 매번 상처에 마데카솔을 ㅎㅎ. 형님의 글 너무 재밋습니다. 다음에도 3편 기대합니다. ㅋ.
차면 기울고 기울면 차는 법. 한번 기울었으니 이제 찰 때입니다 샥샥
마틴님 항상 응원하고있습니다~☆^^☆ 글을 보며 저는 반성(?)을 하게 되네요😅 3년차 5년차 아마 10년차가 되어도 올 춤에 대한 고민과 몸과 맘에 혼선은 성장의 때가 오고 있다는거 아닐지...^^ 화이팅!!!
ㅋㅋㅋㅋㅋ 즐기세요!! ㅋㅋㅋㅋ
댓글 감사합니다.. 글을 쓸 때는 몰랐는데 댓글을 읽게 되면 완전 부끄부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