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씨알사상 | … | 4 | ||
| 1) 시작과 목적 | … | 4 | |
| 2) 씨알은 | … | 6 | |
|
| ㄱ) 자연생명 | … | 6 |
|
| ㄴ) 사람 | … | 7 |
|
| ㄷ) 얼 생명 | … | 7 |
| 3) 성격 | … | 8 |
2. 씨알사상의 배경과 의의 | … | 10 | ||
| 1) 역사, 종교적 배경 | … | 14 | |
|
| ㄱ) 역사적 배경 | … | 14 |
|
| ㄴ) 종교적 배경 | … | 16 |
| 2) 현대 세계사적 배경 | … | 19 | |
| 3) 과제와 의미 | … | 21 | |
|
| ㄱ) 민족적 과제와 의미 | … | 22 |
|
| ㄴ) 세계적 과제와 의미 | … | 23 |
3. 씨알사상의 내용 | … | 24 | ||
| 1) 유영모의 핵심 사상 | … | 24 | |
|
| ㄱ) 천지인 합일 | … | 24 |
|
| ㄴ) 가온찍기 | … | 27 |
|
| ㄷ) 생각 | … | 29 |
|
| ㄹ) 하루살이 | … | 30 |
|
| ㅁ) 몸성히, 맘놓아, 바탈 태우며 살기 | … | 31 |
|
|
|
| |
|
| ㅂ) 밥 | … | 33 |
| 2) 함석헌의 핵심 사상 | … | 34 | |
|
| ㄱ) 내가 씨알이다 | … | 34 |
|
| ㄴ) 생각하는 백성 | … | 38 |
|
| ㄷ) 비폭력과 세계평화 | … | 40 |
4. 씨알의 깨달음과 수행 | … | 43 | ||
| 1) 천지인명상과 생각명상 | … | 44 | |
| 2) 공부와 수행 | … | 45 | |
| ㄱ) 글 읽기 | … | 46 | |
| ㄴ) 마음에 새기고 할 일 | …8 | 48 | |
| 3) 체조와 숨 명상 | … | 49 | |
|
| ㄱ) 다석의 운동법 | … | 49 |
|
| ㄴ) 다석의 앉는 법 | … | 50 |
|
| ㄷ) 숨 명상 | … | 51 |
| 4) 생활 명상과 수행 | … | 52 |
5. 씨알 누리 | …3 |
| ||
| 1) 씨알사상이 그리는 씨알누리 | … | 52 | |
|
|
| ||
|
| ㄱ) 씨알사상과 생명과학 | … | 54 |
|
| ㄴ) 씨알사상과 정치 | … | 56 |
|
| ㄷ) 씨알사상과 경제 | … | 58 |
|
| ㄹ) 씨알사상과 종교 | … | 59 |
|
| ㅁ) 씨알사상과 교육 | … | 62 |
|
| ㅂ) 씨알자치 협동생활 공동체 | … | 64 |
|
|
|
| |
|
| ㅅ) 국가를 넘어 세계로 | … | 65 |
| 2) 씨알누리의 실현 | … | 66 | |
|
| ㄱ) 개인의 실천 | … | 68 |
|
| ㄴ) 사회의 실천 | … | 68 |
|
| ㄷ) 구체적인 실행 | … | 69 |
1. 씨알사상
씨알사상은 생명을 가진 사람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밝히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길로 가자는 사상이다. 이 길로 가면 자기 생명과 정신의 씨알이 싹터 꽃과 열매를 맺고, 서로 살림과 평화의 씨알누리를 이룰 것이다.
1) 시작과 목적
씨알사상은 동서 문명의 만남과 민중의 자각운동으로 전개된 한국현대사에서 형성되었다. 강대국들의 침략과 약탈로 세계는 전쟁과 폭력으로 치닫고 한국은 나라가 망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나라를 잃은 슬픔 속에서 가난과 억압에 짓눌려 신음하던 한민족을 깨워 일으키는 운동이 일어났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깨워 일으킴으로써 '나'를 살리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안창호와 이승훈의 교육입국운동(신민회, 오산학교), 민족의 독립과 세계평화를 추구한 삼일 독립운동의 맥락에서 씨알사상이 생겨났다.
유영모와 함석헌은 오산학교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 유영모가 사람을 씨알이라 하고 씨알의 뜻을 밝혔다. 함석헌은 남북분단과 6·25전쟁의 고통을 겪고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위해 싸우면서 씨알사상을 닦아냈다. 씨알사상이 형성된 한국현대사는 어둡고 고통스러운 역사였다. 씨알사상은 국가와 문화와 인권이 무너져 내린 암울했던 시대에 옹달샘같이 솟아난 새롭고 순수한 정신의 열매다.
한 사람 속에서 나라와 세계를 보고 나라와 세계 전체에서 한 사람을 보는 씨알사상은 물질과 기계로부터 인간 영혼의 자유와 해방을 추구한다. 씨알사상은 주체적이고 건전한 생산과 판매와 소비를 추구하고 기업 활동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일자리 부족, 빈부격차 심화, 공동체 파괴의 현실 속에서 협업과 생활자치공동체를 지향한다. 민주화, 산업화, 세계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세계현실에서 씨알사상은 생명과 정신의 깊이를 드러내고 '나'를 살리고 나라를 바로 세우고 세계정의와 평화를 실현해가는 실천 사상이다.
2) 씨알은
씨알은 생명진화의 깊은 진리와 신비를 담고 있다. 처음에 생명세계에는 세균들만 있었고 세포분열의 방식으로 번식하였다. 제 몸을 쪼개는 세포분열의 번식방식은 20억년 가까이 아무런 진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씨알 속에 생명의 핵심을 담아서 제 몸 밖에서 번식함으로써 눈부신 생명진화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제 개체의 생명은 죽어도 전체의 생명은 살게 되었고 몸의 생명을 넘어서 영의 생명에로 진화발전하게 되었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서 죽는다. 사는 동안에 물려받은 생명을 물려주고 죽는다. 태어나서 사는 동안에 모든 생명체는 저도 모르게 생명을 더 깊고 풍성하게 하고 죽는다. 모든 생명체는 하나의 씨알로서 살고 죽는다.
씨알은 깨지고 죽음으로써 보다 깊고 풍성하고 높은 생명을 낳는 존재다. 깨지고 죽음으로써 생명을 더욱 깊고 풍성하게 하는 씨알의 원리는 물질과 생명과 영의 진리이고 사회와 역사의 진리다. 물질의 알갱이도 깨지고 죽어야 빛이 나고 힘이 나며 생명과 정신도 깨지고 죽어야 빛이 나고 더욱 깊고 높은 생명과 정신의 세계로 들어가며 사회와 역사도 자기를 부정하고 초월함으로써 희생하고 양보하며 협동하는 사람이 있어야 새 나라를 열 수 있다.
ㄱ) 자연생명
'씨알'은 문자 그대로 식물의 '씨앗'과 동물의 '알'이 합쳐진 말이다. 씨와 알은 그것을 배태한 한 생명체의 마감을 의미함과 동시에 새로운 생명체의 시작이며 생명이 끊이지 않고 다시 살아남을 뜻한다. 하나의 씨알에는 그 생명의 생존에 필요한 유전체 정보와 생존 비법이 내장되어 있다. 씨알은 지구상에서 발생하고 진화한 생명체의 총체적 대변자일뿐더러 그 생명을 대대로 이어가야 할 고귀한 사명을 지닌 개체다. 씨알은 작은 개체이면서 속에 전체 생명을 품고 있다. 작은 씨앗이 자라 큰 나무가 되고 수많은 열매와 씨앗을 맺는다.
ㄴ) 사람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고귀한 생명의 주체로서 몸과 맘과 얼을 가진 존재다. 사람의 몸은 자연생명의 씨알이고, 맘은 사회역사의 씨알이며, 얼은 신적 생명의 씨알이다. 사람의 몸속에 자연생명진화 과정 전체가 압축되어 있고, 맘속에 인류 역사 전체가 새겨져 있고, 얼속에 영원한 신적 생명의 불씨가 살아 있다. 사람 안에 자연생명과 사회역사와 얼 생명이 하나로 통합된다. 사람은 자연과 사회역사와 신을 통합하고 하늘과 땅과 사람을 아우른 존재다.
ㄷ) 얼 생명
씨알은 생명과 정신의 알맹이, 알짬이며, 사람의 감성, 이성, 영성을 나타낸다. 알맹이 가운데 알맹이는 영성인 얼이다. ‘씨알’의 ‘알’은 알맹이 알과 얼을 함께 나타낸다. 얼은 하늘(한얼, 한울)과 통하고 하늘은 빔(빈탕한데)이다. 빔에 이르면 자유로운 ‘큰 나’가 된다. 큰 나가 ‘참 나’다. 나, 너, 그의 ‘나’가 각각 ‘하나’로 돌아가서 ‘큰 나’가 되는 것이 귀일(歸一)이다.
씨알의 원리는 자기 속의 영원한 생명을 깨닫는 것이다. 씨알은 끊임없이 나를 되돌아보면서 내 안의 나를 들춰내어 ‘참 나’를 찾는다. 내 속에서 ‘참 나’를 찾는 것은 다석의 말대로 ‘오!늘’에서 ‘늘(영원)’을 붙잡는 것과 같다.
3) 성격
씨알사상은 동서정신의 만남과 민의 깨달음을 추구한다. 한국의 천지인 합일 사상(한 사상)을 바탕으로 동양의 유교, 불교, 도교 사상과 서구의 기독교, 이성철학, 민주정신을 종합한 사상이다. 세계화 시대에 세계시민의 정신과 철학을 제공하는 세계평화와 통일의 사상이다. 씨알사상은 민중의 자각과 주체를 추구하는 민주사상이며, 주체의 깊이를 추구하는 정신철학이다. 씨알사상은 맑은 지성을 가지고 바르게 생각하여 자연과 사회의 이치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이성철학이다.
씨알사상은 단순한 이론과 해석의 체계가 아니다. 나를 찾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사상이다. 나를 찾고 사람다운 사람이 돼서 나라와 세상을 바로 세우는 운동을 일으키는 사상이다. 종교·문화·교육을 개혁하고 민주와 사회정의, 생명과 복지사회를 실현하는 실천사상이다. 씨알사상은 목숨을 가진 생명이 꼭 가야 할 길, 생각하는 이성을 가진 사람이 마땅히 가는 길, 덧없는 삶과 죽음을 넘어 ‘늘 삶’(永生)에 이르는 얼 생명의 길을 밝히고 그 길로 가자는 사상이다.
목숨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천하보다 소중한 얼 생명의 씨알이다. 대통령도 가난한 장애인도, 재벌회장도 노숙자도 영원한 생명의 씨알을 품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씨알임을 자각하고 씨알이 되어 씨알로 살고 씨알로 죽어서 많은 씨알을 남겨야 한다. 씨알사상은 내가 씨알임을 깨달아 씨알로 살자는 것이요, 남이 씨알임을 알아서 남을 씨알로 섬기고 받들자는 것이다. 내 속에서 씨알이 싹트고 자라게 하고 남의 속에서도 씨알이 싹트고 자라도록 힘쓰는 사상이다. 씨알사상은 씨알이 씨알을 만나 서로 나누고 섬기는 씨알누리를 열어가는 사상이다.
씨알사상은 완성된 이론체계가 아니다. 씨알사상은 씨알들의 삶과 실천 속에서 다듬어지고 완성될 사상이다. 씨알사상은 나의 사상이고 우리의 사상이다. 나의 구체적인 삶에서 실행하여 나의 주변과 세계의 끝까지 확산해 가야 할 우리사상이다. 한 알의 씨가 땅에 떨어져 새 생명으로 싹틈으로써 숱한 열매를 맺는 생명의 기적이 씨알사상을 공부하고 실천하고 다듬어 가는 많은 이들에게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2. 씨알사상의 배경과 의의
인류는 오랜 시련과 고통의 역사를 거쳐서 봉건신분사회에서 벗어나 민의 자유와 평등을 선언한 민주시대에 이르렀다. 그러나 자유를 추구한 자본주의사회는 무한경쟁과 탐욕적인 이윤추구에 매달린 결과 오늘날 큰 혼란과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나친 빈부격차와 일자리 부족, 공동체 파괴와 생태계 오염은 탐욕적이고 불의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공동체적인 정의 사회의 모색을 요구한다. 1%의 부유한 상류특권층에 대한 99% 가난한 시민들의 분노와 저항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평등을 추구한 사회주의사회는 인민의 자발적 헌신성과 의욕이 부족하고 사회경제의 활력, 생산성과 효율성이 떨어져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가장 선진적인 복지사회를 이룩한 북유럽의 나라들은 훌륭한 사회복지제도와 체제를 발전시켰으나 시민들의 의욕이 떨어지고 사회는 활력을 잃고 있다. 북유럽 젊은이들의 삶과 정신은 온실에서 기른 화초처럼 나약해져서 꿈과 도전정신을 잃고 술과 마약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북유럽의 사회복지국가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깊은 영성과 강인한 생명력을 고취시키는 사상과 철학이다.
자본주의사회, 사회주의사회, 복지사회의 근본 문제는 자발적 주체성과 헌신성, 공동체적 나눔과 섬김의 정신, 깊은 영성과 강인한 생명력이 부족한 데 있다. 한 마디로 맘을 씻어 맑게 하고 맘을 삭이고 깊이 파서 맘을 곧고 힘 있게 하는 생활철학이 없다는 것이다. 일찍이 유영모는 큰 나라 미국이 벌이를 잘하고 작은 나라 덴마크가 실속을 차려도 사납고 거친 맘을 삭힐 철학( 삭힐 줄)이 없으면 제대로 된 나라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자유에서 시작해서 평등에 이르려한 자유주의사회가 평등에 이르지 못하고, 평등에서 시작하여 자유를 추구한 사회주의사회는 자유를 잃었다. 함석헌은 사랑의 공동체 안에서 자유와 평등이 만날 수 있다고 하였다. 씨알사상은 자발적 주체성과 헌신성, 공동체적 나눔과 사귐의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생활철학이고, 깊은 영성과 강인한 생명력을 탐구하고 기르는 영성철학이다.
오늘 한국사회는 남북이 분단되어 큰 고통을 겪고 있다. 남북의 대결로 한반도에 긴장과 대결이 고조되고 주변 강대국들의 관계도 갈등과 대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 우리는 주변 강대국들의 관계를 조정하고 조화롭게 이끌어서 남북분단을 극복하고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와야 할 시대의 사명을 지녔다. 남북 사이의 깊은 적대감과 정치사회적 차이를 극복하고 민족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민주, 공동체, 평화의 정신이 요구된다. 주변 강대국들의 갈등과 대립을 넘어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큰 미래상과 깊은 지혜와 굳센 용기가 필요하다. 세계평화의 큰 미래상과 역사와 시대를 뚫어보는 깊은 지혜를 가지고 갈등과 대립을 넘어서 평화를 실현하는 강한 실천력과 정신력이 요구된다. 씨알사상은 세계평화와 통일에 대한 꿈과 강인한 실천력을 기르는 사상이며 씨알과 씨알이 만나 함께 실천해가는 사상이다.
오늘 세계는 산업기술의 발달로 물질적 풍요와 번영을 누리고 있지만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많은 가난한 나라들에서 수십억 인구가 전쟁과 폭력,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죽어 가고 있다. 가난한 나라들과 부자나라들 사이에 정치·경제·사회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 두텁고 높게 세워져 있다.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깨워 일으켜 자유롭고 건강한 삶을 살도록 이끌어야 한다. 가난한 나라들과 부자 나라들 사이의 장벽을 넘어서 더불어 사는 세상을 이룰 책임과 사명이 인류에게 있다. 씨알사상은 세계평화와 통일의 사상이고 서로 나눔과 섬김의 사상이다. 씨알사상과 정신을 익힌 사람은 세계의 폭력과 전쟁, 굶주림과 영양실조를 극복하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여는 데 앞장설 수 있다.
1) 역사, 종교적 배경
ㄱ) 역사적 배경
한국 현대사는 봉건왕조의 몰락과 식민통치, 남북분단과 전쟁, 군사독재와 개발독재로 이어지는 혹독한 시련의 연속이었다. 서양문물의 도입과 정치사회의 변혁은 능동적이고 자체적으로 준비된 과정이기보다는 수동적이고 급진적인 파괴의 고통 속에서 일어났다. 모국어 사용과 역사 교육마저 금지하는 일제 식민통치 아래서 민족혼의 명맥이라도 유지하고자 하는 피나는 노력들이 여러 각도로 이어져왔다. 안창호는 나라가 망해가던 1907년에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여 교육입국(敎育立國)운동을 일으켰고 이에 호응하여 이승훈은 오산학교를 설립하여 민족교육운동을 일으키고 삼일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안창호와 이승훈은 지극히 겸허하고 낮은 자세로 민의 한 사람 한 사람을 깨워 일으켰다. 안창호는 어린 소년에게도 큰 절을 하며 가르쳤고 이승훈은 변소청소와 같은 궂은 일을 하면서 민을 깨워 일으켰다. 이들은 섬기는 교육과 섬기는 지도력의 귀감이다.
씨알사상은 안창호의 신민회, 이승훈의 오산학교, 삼일독립운동의 맥을 잇는 사상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나'를 깨워 주체로 일으켜 세움으로써 나라를 바로 세우는 교육입국운동에서 씨알사상이 생겨났다. 삼일독립선언문에 나타난 민족독립사상은 민족의 자립정신을 바탕으로 동서양 문명과 종교의 융합과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높은 철학을 담고 있다. 안창호와 이승훈의 민족자각운동과 유영모의 영성철학을 이어받은 함석헌은 남북분단과 전쟁, 군사독재 아래서 민주화운동과 민족통일운동에 앞장섰다. 씨알사상은 교육입국운동, 삼일독립운동,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한국현대정신사의 중심과 주류를 잇는 사상이다.
유영모와 함석헌은 지극히 혼란스러운 시대에 민중을 깨워 주체로 일으키는 데 온 힘을 다했다. 이들은 나라와 민족이 제대로 살아남기 위해서 동서양의 문화와 종교를 깊이 탐구하여 종합적으로 이해함으로써 나라와 온 누리가 평화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였다.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고 발전시키며 깊은 영성을 바탕으로 나눔과 섬김의 삶을 실천하였다. 이들의 삶과 사상이 씨알사상으로 압축되었고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명제로 표현되었다. 생각함으로써 깨어 있는 백성이 나라를 바로 세우고 지킨다.
ㄴ) 종교적 배경
씨알사상은 동양의 유교, 불교, 도교를 바탕으로 서양의 기독교 정신과 이성(과학)철학을 받아들인 통합의 사상이다.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이 합류하여 씨알사상을 이루었다. 씨알사상은 2,500년 전 경에 석가, 공자, 노자, 소크라테스, 예레미야(예수)를 통해 분출한 기축시대의 영성을 통합적으로 회복하려 한다.
인류정신사를 전환시켜 고등종교들을 탄생시키고 철학을 태동시킨 기축시대의 영성은 인간의 마음(이성과 영성)에서 신적 생명과 영원한 가치를 발견하였다. 이것은 이전의 종교들이 자연만물이나 국가(권력)에서 신적 생명과 영원한 가치를 찾았던 것과는 아주 달랐다. 사랑과 자비와 진리로 표현되는 기축시대의 영성과 가치는 인간내면의 깊은 곳에 있는 것이면서 개인을 넘어서 공동체적 전체로 이끌었다. 기축시대의 영성은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황금율의 윤리로 표현되었다.
기축시대의 영성과 철학은 신분계급과 미신과 국가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의 제약 속에서 형성되고 발전되었다. 석가는 생명의 자람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생각이 부족하고 공자에게는 민주정신과 민중의식이 부족했다. 노자에게는 역사와 사회를 변혁하려는 적극적 의지와 저항의식이 부족했다. 소크라테스에게는 민주정신이 결여되었을 뿐 아니라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공동체적 관심과 배려가 부족했다.
예수도 여성 평등을 분명히 가르치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의 12제자에 여성이 포함되지 못했고 복음서에서 사람 수를 헤아릴 때 여성의 수를 빼기도 했다. 예수는 또 이성적 생각을 또렷이 하도록 강조하지 않았다. 그래서 죽은 예수가 하늘에서 구름타고 다시 올 것이라는 신화적인 생각이 일찍이 기독교의 교리가 되었고, 후대의 많은 기독교인들을 지성적 혼란에 빠지게 했다. 예수는 민중이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늘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했으나 민중이 역사를 창조하는 주체임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래서 기독교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주체로 민중을 내세우지 못했다.
시대의 제약과 공간의 한계 때문에 철학과 종교가 분리되고, 각 종교들 속에서 기축시대의 영성은 변질되고 타락하였다. 이성의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과 영성의 진리를 탐구하는 종교가 분리된 것은 인류의 정신을 위해 불행한 일이었다. 이성과 영성이 분리되면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듯이, 종교와 철학이 분리되면 온전한 인류정신문명을 이룰 수 없다. 이른 바 고등종교들은 성현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종교에 머물렀다. 자연과 국가권력에서 신성을 보았던 자연종교와 국가종교로 돌아가 기복신앙과 권력숭배에 빠지게 되었다.
씨알사상은 민주화, 산업(과학기술)화, 세계화 시대의 사상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역사와 사회, 자연과 우주, 얼과 신의 씨알로서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꽃과 열매를 맺어 ‘서로 살리고 더불어 사는 씨알누리’를 이루는 사상이다. 씨알은 남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 제 때를 사는 존재요, 제 삶을 사는 이다. 씨알은 스스로 생각하여 깨닫는 존재요, 자신의 이성과 영성에서 생명과 정신의 한없는 보물을 캐내는 이다.
2) 현대 세계사적 배경
수세기 전부터 서세동점(西勢東漸)으로 시작된 세계화는 산업화와 정보화의 물결을 타고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압도적인 서세(西勢)의 높은 파고에 제3세계는 속수무책이다. 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는다. 배타독선(排他獨善)의 기성종교는 세계평화에 기여하기보다는 오히려 증오와 폭력을 증폭 조장하고 있다.
민주주의, 자본주의, 국제무역, 과학기술의 발달로 도시화와 세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 차원의 불안 요소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부각되고 있다. 지구 온난화에 따라 각종 재해와 이변이 일어나고, 환경오염의 총체적인 확산으로 생태계 파괴와 인류 생존의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다. 전쟁과 재난으로 가정과 사회가 파괴되고, 굶주림과 질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다.
교육, 경제의 발전과 정보통신의 확산으로 시민 사회의 경제력, 판단능력과 성숙도는 한층 높아졌다. 그러나 산업과 사회의 고도 전문화, 효율화, 자동화, 국제경쟁화, 자본화는 빈부의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 생활은 편리해졌는데 일자리가 부족해서 생계 자체가 위협받는다. 이것은 세계적인 추세이고 세계적인 문제다. 현대 인류 문명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근본적이고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인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세계가 하나의 커다란 지구촌으로 변하는 오늘날 다양한 국가와 민족과 문화와 종교를 화해시키고 공동선을 이루어 나아갈 지도적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아쉬운 상황이다. 이는 어떤 물리적인 힘이나 하나의 기발한 정책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구촌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나고, 개인과 집단의 안녕과 질서가 확립되고 문화의 성숙한 발전을 위한 정신적 기틀과 가치관이 바로 세워져야 가능한 일이다.
씨알사상은 서세동점의 세계화 과정에서 동서문명의 창조적 만남과 민의 주체적 자각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씨알사상은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을 깨워 일으켜 나라를 바로 세우고 나라와 나라, 종교와 종교 사이를 소통하고 회통시키는 세계평화와 통일의 사상이다.
3) 과제와 의미
ㄱ) 민족적 과제와 의미
오늘날 한국은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정착과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구가하며 어려운 나라를 도와주는 나라로 크게 성장하였다. 그러나 남북한 대치 상태의 긴장과 주변 강대국들에게 둘러싸인 동북아 정세의 불안정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로 뻗어나갈 고유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의 창달은 아직도 요원하다.
한민족은 준비 없이 8.15 해방과 6.25 전쟁을 맞아 막대한 혼란과 고통을 치렀다. 앞으로 남북통일 과정에 닥칠 불안과 긴장의 요소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민족에게 민족 화합과 절제된 준비 과정이 요구된다.
씨알사상은 씨알의 자람을 기다리는 농부의 지혜를 배우고 익히는 사상이다. 씨알의 자람과 결실을 기다리는 농부는 기다림 속에서 필요한 일을 필요한 때에 하는 지혜를 가진 이다. 씨알사상은 한국역사와 한국사회를 하나의 생명체로 본다. 씨알사상은 한국사회와 역사의 성장과 결실을 기다리면서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필요한 때 필요한 일을 하는 성숙한 지혜를 탐구하고 가르치고 실천하는 사상이다. 씨알사상은 한민족이 분단의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해 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일을 필요한 때 하도록 이끄는 사상이다.
ㄴ) 세계적 과제와 의미
오늘날 인류는 국가와 민족의 벽을 넘어 하나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 세계화의 급속한 흐름 속에서 정치·경제와 종교·문화·사회에서 큰 혼란과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씨알사상은 국가민족의 장벽을 넘어서는 세계통일의 사상이고, 동서양 기성종교 사이의 갈등을 극복하는 세계평화 사상이다.
씨알은 개인 생명의 존엄성과 인생의 고귀한 가치를 존중하고, 나라의 건강한 정치 경제를 바탕으로 한 세계 평화 공존을 염원한다. 선진 문물과 문명을 받아들이되 충분히 소화하여 자기 고유문화에 동화하고 더욱 발전시키기를 원한다. 씨알사상은 민족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된 나라를 이루고 동아시아와 세계 평화 및 번영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씨알들의 사상이다.
3. 씨알사상의 내용
1) 유영모의 핵심 사상
ㄱ) 천지인 합일
기축시대 성현들의 가르침과 삶에서 비롯된 이른 바 고등종교들은 성현들의 뜻을 깨달아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의 고등종교들에는 기축시대 이전 낡은 종교들(자연종교, 국가종교)의 미신적 기복신앙과 권력숭배가 남아있다. 기복종교는 사람의 탐욕을 이용하여 사람을 물질의 종이 되게 하고, 국가종교는 사람의 두려움을 이용하여 사람을 권력자와 제도의 종이 되게 한다.
과학과 기술이 발달한 산업사회에서도 탐욕에 빠진 사람은 자연만물을 지배하고 착취할 대상으로 삼고,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하늘의 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종교의 종노릇을 한다. 낡은 종교들에서 사람은 남(자연과 사람)을 이용하고 지배하면서 파괴하거나 남의 종이 되어 자기를 학대하고 파괴한다.
낡은 종교와 낡은 인간관에 사로잡힌 사람은 욕심과 두려움 때문에 하늘 땅 사람과 서로 어울리는 삶을 살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하늘, 땅, 사람을 자기의 이기적인 목적을 채워주는 수단과 대상으로만 여긴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서는 하늘과의 소통도 막히고, 자연(땅)과의 친화도 깨지고, 사람과의 사귐도 끊어져서, 외로움과 적의, 두려움과 노여움, 망상과 착각에 빠진 삶을 살게 된다.
참된 삶을 추구하던 유영모는 1943년 2월 5일(음력 설날) 이른 아침에 북악(北岳) 마루에서 몸이 하늘과 통하고 맘이 땅의 중심을 꿰뚫는 천지인 합일 체험을 하였다. 하늘에 머리를 두고 땅 위에 곧게 선 사람은 하늘과 땅을 하나로 되게 하는 천지인 합일의 책임과 사명을 가진 존재다. 사람은 땅에서 솟아올라 ‘얼 나’가 되어 하늘과 땅과 사람의 하나 됨에 이르러야 한다. 하늘은 하나 됨의 자리다. 유영모는 사람이 하늘(하나 됨)의 씨알맹이를 품은 ‘씨알’이라고 하였다. 씨앗이 하늘의 햇빛과 바람, 땅의 흙과 물을 통합하여 생명창조활동을 펼치듯이, 사람은 천지인 합일을 이루어 생명과 정신의 창조 활동을 해야 한다.
사람 속에서 천지가 하나로 된다. 땅에서 네발로 기던 짐승이 두발로 직립하면서 사람이 되었다. 하늘을 머리에 둔 사람이 하늘을 그리워하게 되자 하늘의 정신인 얼이 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았다. 사람의 몸은 흙에서 난 것을 먹고 흙에서 산다. 흙으로 된 몸이 하늘의 원기를 마시면 몸과 하늘이 하나로 되고, 마음이 하늘을 생각하면 땅의 몸과 하늘의 얼이 하나가 되어 천지인 합일이 이루어진다. 천지인 합일이 이루어지면 몸이 성하고 마음이 놓이고 얼의 세계인 하늘이 열린다. 하늘이 열린 사람은 텅 빈 하늘의 세계에 노닐면서 막힘없이 자유롭게 사랑과 정의를 실행한다. 유영모는 천지인 합일을 직접 체험하였고 하늘 말씀을 숨 쉬며 제소리를 하고, 사랑과 진리를 실행하며 하루를 일생처럼 살았다.
요즘 사람들은 탐욕에 사로 잡혀 얼이 빠져 정신은 없고 몸뚱이만 있는 것처럼 다시 땅을 기어 다니고 있다. 탐욕을 이루려는 무한경쟁 속에서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이 생명과 자연을 파괴하면서 피폐한 삶을 살고 있다. 몸은 무겁고 맘은 답답하고 얼은 죽어 있다. 몸의 욕심과 집착에 사로잡힌 마음을 비우고, 몸으로 하늘 숨을 쉬고, 맘으로 하늘을 생각하면 생명의 씨알맹이인 얼이 깨어난다. 얼이 깨어 솟아오를 때, 사람은 비로소 사람다운 사람으로 거듭난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 몸이 성하고 맘이 놓이고 얼이 솟아오르는 것을 천지인 합일이라 한다.
ㄴ) 가온찍기
가온찍기는 천지인 합일에 이르는 것이고 영원한 생명의 씨알맹이가 싹트게 하는 것이다. 가온찍기는 나의 삶 속에서 하늘의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가치를 자각하고 내 속의 한 가운데를 명중시켜 참 나를 찾는 것이다. 이 가온찍기야말로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요, 찰나 속에 영원을 보는 것이다.
가온찍기는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 가온찍기는 ‘나의 존재’에서 이름이나 욕심, 부차적인 인간관계와 같은 껍데기를 점찍어 버리고, ‘살아 있는 나’에 이른다. 둘째, 가온찍기는 살아 있는 ‘나’의 불꽃(생각)을 자꾸 태워 나감으로써 ‘나’를 새롭게 한다. 셋째, 가온찍기는 지금 여기의 자리에서 땅을 굳게 딛고 진리를 실천해 가는 것이다.
가온찍기란 하늘과 땅의 중심인 사람의 마음 한가운데를 한 점으로 찍는 것이다. 마음은 우주와 시간의 중심이며, 생명의 알맹이인 하늘의 얼이 계신 곳이다. 탐욕과 분노와 애증으로 부풀어 오른 마음을 한 점으로 찍어 내려놓고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얼의 한복판을 명중시키면 막힘없이 자유로운 얼의 세계인 하늘이 열려 마음이 하늘이 된다.
가온찍기는 마음의 껍질을 깨고 얼을 살리는 것이며, 거짓 나를 버리고 참 나를 드러내는 것이다. 얼이 살면 ‘참 나’가 되어 참되게 살 수 있다. 모든 일은 지금 여기 나에게서 시작되고 결정된다. 시간과 공간의 중심인 내 마음을 한 점으로 찍어 얼의 나가 탄생할 때 나는 우주의 주인으로 서로 나누고 섬기는 사람다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
ㄷ) 생각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다. 생각함으로써 사람이 되고 사람 구실을 한다. 생각은 내 생명을 불태워 나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생각에는 자연만물을 탐구하는 과학적인 추리와 하늘(하나님)과 소통하고 연락하는 영감(靈感)이 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평면으로 달리다가 하늘로 솟아올라가듯이, 사람은 평면적인 추리를 하다가 영감에 이른다.
사람 속에는 영원한 생명인 얼이 있다. 이 얼을 사모하여 얼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 생각이다. 얼은 하늘의 뜻이므로 생각하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하늘의 뜻은 이성적인 생각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자기를 비우고 불살라 하늘로 올라가 하늘의 말씀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생각은 단순한 논리와 개념의 행위가 아니라 몸과 맘과 얼이 담긴 생명의 행위이고 얼과 혼의 행위다. 생각은 하늘의 하나님(영원한 얼 생명)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생명과 마음과 얼을 불태우는 행위다.
생각은 하늘과 소통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곳에 하늘이 있고 하늘로 솟아오를 때 ‘얼 나’인 참나가 태어난다. 날마다 거룩한 생각의 불꽃을 피워 올려 하늘의 말씀을 받아 제소리로 살자는 것이 인생이다. 생각하는 사람은 하늘과도 통하고 사람과도 통하고 땅과도 통해 천지인 합일을 이룬다.
ㄹ) 하루살이
하루살이는 어제에 매이지 않고 내일의 걱정에서 벗어나 오늘 하루를 영원처럼 사는 것이다. 하루를 일생처럼 사는 것이 ‘하루살이’요 ‘오늘 살이’다. 아침에 잠이 깨어 눈을 뜨는 것이 태어나는 것이고, 저녁에 잠자리에 드는 것이 죽는 것이다. 하루살이는 날마다 ‘새로 남’과 죽음을 연습하는 것이고, ‘오늘 살이’는 오늘 참되고 영원한 삶을 맛보는 것이다. ‘오늘’에는 ‘늘(영원)’이 들어 있다. 유영모는 ‘오늘’을 ‘오! 늘’이라 하여 오늘에서 ‘늘’(영원)을 잡으려 했다.
유영모는 오늘의 구체적인 일에 집중하고, 그 구체적인 일 속에서 영원한 삶에 들어가려고 한다. 어떤 일에 집중하는 그 시간에는 그 일에만 ‘내’가 있고, 그 밖에 천만 가지 사물에 ‘나’는 없다. 따라서 ‘나’와 내가 지금 하는 ‘일’은 하나가 된다. 이렇게 ‘오늘’, ‘내’가 ‘여기’에서 몰입하는 ‘일’을 통해 다른 사람이나 만물과 생명력을 갖고 소통하는 새로운 세계가 끝없이 열린다. 오늘 하루의 삶과 일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짓고 새 세상을 열어간다.
ㅁ) 몸성히, 맘놓아, 바탈
태우며 살기
사람다운 사람이란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하고 영혼이 맑은 사람이다. 사람다운 사람은 하늘과 소통함으로 하늘의 사랑과 말씀으로 이웃과 더불어 사랑하며 산다. 모든 종교의 목적과 인간의 꿈은 거기에 있다. 유영모는 스스로 그렇게 살았으며, 천지인합일, 가온찍기, 줄곧 뚫림, 거룩한 생각을 통해 누구나 그렇게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바탈(本性)이 있다. 몸의 감성, 맘의 지성, 얼의 영성이다. 바탈 중에 바탈은 얼의 영성이다. 몸이 성하면 감성이 뚜렷하고 감성이 뚜렷하면 지성이 맑아지고 지성이 맑으면 얼(뜻)이 솟아오른다. 몸이 성하면 마음이 놓이고 마음이 놓이면 바탈(본성)이 살아난다. 바탈이 살아나면 개성이 자라고 개성이 자랄수록 더 깊은 바탈을 느끼게 되어 자기의 바탈을 파고들어 간다. 바탈을 깊이 파고 들어가면 인생은 한없이 발전해가며 이 바탈을 타고 하늘에까지 도달한다.
몸이 성하고 마음이 놓여서 바탈을 살려서 실현하고 완성하는 것은 사람이 사람으로 되는 일이며 사람노릇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나가 되는 일이다. 내가 나로 되는 일은 ‘하는 것’이면서 ‘되는 것’이다. 내가 힘껏 하면서 위의 힘으로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유영모는사람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을 받아서 사람을 사니 사람 노릇을 하기처럼 쉬운 것은 없다.”고 했고 “내가 할 일은 쉬는 것뿐”이라고 했다.
몸 성히, 맘 놓아, 바탈(뜻) 태우는 삶은 몸과 맘과 바탈을 온전하고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깨끗하다는 것은 정신이 욕심 때문에 물질에 달라붙거나 매이지 않는 것이다. 정신이 물질의 주인이 되어 필요한 만큼 알맞게 물질을 쓰는 것이 깨끗하게 물질을 쓰는 것이다. 밥 욕심에서 깨끗해야 몸이 성하고, 욕정에서 깨끗해야 마음이 놓이고, 생각과 의지가 깨끗이 불태워질 때 얼이 살아난다. 사람과 일과 물건과의 관계에서 깨끗하려면 사람과 일과 물건에 기대지 말고 그것을 탓하지 말고 스스로 제 바탈에 힘입어 ‘제게로부터’ ‘스스로 하면서’ ‘깨끗이’ 살아야 한다.
ㅂ) 밥
밥을 먹는 목적은 정신이 깨어나 사람이 되자는 것이다. 밥 먹고 정신 차려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밥은 하나님의 은혜로 수많은 사람의 덕으로 대자연의 공로로 주어져서 먹는 것이다. 밥값으로 내는 돈은 밥의 가치의 몇 억분의 일도 안 된다. 사람들이 수고한 대가의 일부를 지불하는 것뿐이다. 밥은 순수하며 거저 받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밥은 다른 생명체가 제 생명을 나에게 바친 것이고, 나를 살리기 위해 드려진 희생제물이다. 그러나 밥은 나에 머물지 않고 나를 넘어서 나 속에 계신 하나님(전체 생명의 님)께 드리는 것이며, 내가 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먹는 것이다. 따라서 밥 먹는 것은 예배드리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과 이웃에게 밥과 제물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밥을 먹고 밥이 되어야 한다.
2) 함석헌의 핵심 사상
ㄱ) 내가 씨알이다
내 속의 속에 생명과 정신의 씨알맹이가 있다. 내 씨알맹이의 뿌리는 한없이 깊다. 수십억 년 생명진화의 역사, 2백만 년 인류사, 5천 년 민족사가 나의 몸과 맘에 새겨져 있다. 내 속에 우주보다 깊고 우주보다 영원한 생명의 불씨가 들어 있다. 몸으로는 작고 덧없는 존재이나 속에는 무궁한 생명을 품고 있다. 나는 역사를 창조하는 주체이고 역사를 후세에 전달하는 매체이며, 역사의 알맹이 실체다. 내가 씨알로서 제대로 살면 수십 억 년 생명진화의 역사가 보람 있고, 2백만 년 인류사가 뜻이 있고, 5천 년 민족사가 목적을 이룬다.
나는 스스로 하는 주체면서, 나라, 인류, 생명 전체를 대표한다. 씨알로서 나는 주체면서 전체다. 내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안에 내가 있다. 전체 생명의 중심과 끄트머리와 꼭대기가 내 속에 있다. 그러므로 내가 살면 전체가 살고, 내가 죽으면 전체가 죽는다. 내가 하는 일은 크든 작든 인류 전체가 하는 일이다. 내가 나라이고, 내가 전체다. 내가 꿈틀거리면 세상도 꿈틀거린다.
씨알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뭇 생명을 살린다. 뭇 생명을 살림으로써 씨알은 더 풍성해지고 널리 퍼진다. 씨알의 자리에서 보면 내 안에 '너'가 있고 너 안에 내가 있다. 내 속의 속에 전체 생명이 있다. 내 속에 있는 전체 생명의 자리에서는 나와 남이 따로 없다. 너를 살리는 것이 내가 사는 것이고, 내가 바로 사는 것이 네가 사는 것이다. 너를 높이면 내가 높아지고, 네가 이로우면 나도 이롭다. 나는 나답게 스스로 살지만, 내게 무관한 존재는 없다. 너도 그도 남이 아니다.
나는 물질과 기계, 돈과 제도의 주인이지 종이 아니다. 주인 노릇을 하려면, 물질에 대한 욕심과 집착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물질에 대한 욕심과 집착에 매인 나는 죽고, 자유로운 나로 다시 나야 한다. 씨앗이 흙 속에 떨어져 깨지고 죽음으로써 새 생명활동을 펼치듯이, 우주생명의 씨알인 나도 깨지고 죽음으로써 우주생명의 주인으로 살 수 있다.
내 속의 속에, 나의 이성과 영성 속에 생명과 정신의 무궁한 보물이 숨겨 있다. 내 속을 깊이 파고들면, 생명과 정신의 보물을 캐낼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것은 나다. 내가 나를 찾고 나를 발견하여 참 나가 되어야 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 나는 나다!하고 서야 한다. 내가 살았으면 죽어도 죽은 게 아니고, 망해도 망한 게 아니다. 그러나 내가 죽었으면 살아도 산 게 아니고, 흥해도 흥한 게 아니다. 사람은 마땅히 죽어도 죽지 않고, 망해도 망하지 않는 '나'로서 살아야 한다.
씨알은 스스로 싹트고 스스로 자라고 스스로 꽃 피고 스스로 열매 맺는다. 생명은 남이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씨알은 스스로 살고, 스스로 하는 존재다. 내가 씨알이 되고 내가 씨알로 살아야 한다. 씨알은 작고 보잘것없다. 씨알은 꾸미지 않고, 돋보이려 하지 않으며, 겸허하게 낮은 데 설 줄 안다.
함석헌은 70대 중반의 늙은 나이에 독재정권과 싸우며 '씨알의 소리'를 내느라고 힘들 때가 많았다. 잠시 힘이 빠져 늘어졌다가도 내가 이러면 안 되지, 사람 되어야지!하면서 벌떡 일어났다. 씨알이 되는 것은 저 자신이 되는 것이며, 사람이 되는 것이다.
ㄴ) 생각하는 백성
사람은 호모 사피엔스, 생각하는 존재요, 생각함으로써 사람이 되는 존재다. 사람은 때를 사는 존재라, 사는 때의 뜻을 알아야 제대로 살 수 있다. 때의 뜻은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로 통해야 알 수 있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려면, 생각해야 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통하는 자리는 사람 속에 있다. 지나간 역사는 사람의 몸에, 마음에, 머리에 새겨져 있다.
지나간 역사를 이어 새 역사를 짓는 자리는 사람의 몸과 마음속에, 생각하는 머릿속에 있다. 사람이 역사를 짓는 주체다. 생각함으로써 역사의 뜻을 깨닫고, 역사의 주체가 되고, 새 역사를 짓는다. 생각하는 것은 역사의 실마리를 풀어 새 역사의 실마리를 잇는 것이다.
때의 주인이 되려면 내가 나로 되어야 한다. 물건이나 환경, 다른 사람이나 일에 매이지 않는 '나'를 찾아야 한다. 성공과 실패, 이익과 손해, 이김과 짐, 잘 남과 못 남, 칭찬과 비난, 삶과 죽음을 초월한 '나'에 이르러야 한다. 그런 나를 찾기 위해 나의 속을 깊이 파야 한다. 나의 속의 속에서 반석과 같은 나를 발견해야 한다. 나를 찾기 위해 내 속을 깊이 파는 것이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은 내가 나로 되는 것이다.
함석헌은 생각으로 내가 나를 낚는다고 했다. 내 생명의 바다, 본성의 바다, 마음의 바다 깊이 생각의 낚시를 드리우고, 깊은 침묵 속에 기다리면, 싱싱하게 살아서 꿈틀거리는 물고기 같은 '나'를 잡을 수 있다. 생각함으로써 싱싱한 나를 잡을 수 있으면 참되고 슬기롭고 힘차게 살 수 있다. 내가 나로 되면 때의 주인이 되어 나의 때, 나의 삶을 살 수 있다.
생각하는 사람만이 나를 살리고 내가 산 사람만이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다. 저 자신이 죽어 있고, 저 자신이 바로 서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나라의 주인이 되어 나라를 바로 세우겠는가? 생각하는 사람만이 나를 살리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민주(民主)가 된다. 어떤 처지에서 무슨 일을 하든 생각해야 일을 바로 하고 일이 되게 한다. 옳은 길인지 그른 길인지, 참인지 거짓인지, 살 길인지 죽을 길인지 분별하려면 생각해야 한다.
함석헌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하였다. 생각해야 내가 살고, 나라가 바로 선다. 생각하는 사람이 옳은 길로 가서 나와 남을 구하고 나라를 일으켜 세운다.
ㄷ) 비폭력과 세계평화
오랜 생명진화 끝에 사람이 평화로운 존재로 만들어졌다. 손톱과 발톱이 부드러워지고, 이빨이 둥글고 뭉툭해진 것은 사람이 평화로운 존재로 진화한 것을 나타낸다. 상생과 공존의 평화세계를 상징하는 하늘을 향해 직립한 것이나 생각하는 이성이 발달하고 말로 표현하고 소통하게 된 것도 사람이 평화의 길로 들어 선 것을 가리킨다.
21세기에 이르러 인류역사는 비로소 민족국가시대에서 세계평화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민족국가시대는 당파심과 폭력이 지배하는 시대요, 세계평화시대는 전체심과 비폭력이 이끄는 시대다. 세계평화시대는 민족국가의 종교문화 전통과 가치를 폐지하는 게 아니라 살리고 승화시켜 꽃 피우고 열매 맺게 한다. 서로 다른 민족들의 상생과 공존을 이루는 것이 세계평화다. 세계평화시대는 민족국가를 극복하고 초월하는 시대이면서, 민족국가를 승화하고 완성하는 시대다.
인류생명의 씨알인 사람은 속에 생명과 정신의 깊이를 가지면서 개체를 넘어서 인류 전체를 나타낸다. 기축시대의 성현들이 사람의 내면에서 발견한 신적 생명과 영원한 가치는 사랑, 자비, 인(仁), 진리였다. 이것은 인간주체의 깊이와 인류전체의 보편을 함께 나타낸다. 인간내면의 본성 속에 숨겨 있는 신적 생명과 가치는 세계평화를 실현할 힘이며 토대다.
당파심과 폭력으로는 세계평화를 이룰 수 없다. 당파심과 폭력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당파심은 물질적 이해관계로 뭉친 것이요, 폭력은 물질의 힘에 굴복한 것이다. 당파심과 폭력은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것이고 짐승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세계평화주의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자는 것이고 사람답게 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평화는 사람의 내적인 힘과 전체의 마음으로 이룰 수 있다. 내적 힘과 전체 마음은 물질이 아니고 정신이며, 물질과 기계의 힘으로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것이고 뺏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내적인 힘과 전체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 비폭력이다. 폭력을 쓰는 것은 제가 먼저 짐승이 되어 남을 짐승으로 다루는 것이다. 사람이 되려면 먼저 폭력 쓰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남이 내게 폭력을 쓸 때 폭력으로 맞서 싸우면 서로 짐승이 되는 것이다. 남이 휘두르는 폭력을 당하고만 있는 것도 자신을 짐승 대접하는 것이고 남을 짐승 노릇하게 두는 것이다. 폭력에 대해서 비폭력으로 맞서는 것은 내가 짐승이 아니라 사람임을 선언하는 것이고 폭력 쓰는 자를 사람대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폭력 투쟁은 나와 우리를 구원할 뿐 아니라 적을 구원하는 싸움이다.
비폭력 투쟁은 나를 영적 존재로 해방하는 것이며, 원수와 함께 전체 하나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지극히 작은 한 사람에게서 인류 전체를 보고 작고 힘없는 사람을 존귀하게 받드는 것이다. 세계화가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원수와의 화해 없이는 평화세계가 올 수 없다. 세계가 하나로 되었기 때문에 원수를 몰아낼 곳도 없고 원수에게서 도망갈 곳도 없다. 이제 미우나 고우나, 죽으나 사나 원수와 원수가 더불어 사는 수밖에 없다. 원수를 구원하는 것이 나를 구원하는 것이 되었다. 비폭력은 새 문명, 새 종교의 원리며 토대다.
아시아 태평양(太平洋) 시대는 큰 평화바다 시대다. 한겨레는 '크고 하나'인 '한'의 정신을 품고 길러왔다. 인류 전체를 하나로 이끌 사명과 자격을 한민족은 단련해왔다. 민족분단을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이루고 세계평화의 길로 나가기 위해 한반도와 동아시아와 세계에서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실현하는 일에 앞장 서야 한다.
4. 씨알의 깨달음과 수행
자신이 씨알임을 깨닫고 씨알이 되어 씨알로 살기 위해서는 공부와 수행이 필요하다. 씨알의 깨달음을 위한 공부와 몸과 맘을 닦고 씻는 수행에는 비법이나 지름길이 없다. 제가 저를 알아가는 공부이고 제가 저를 닦고 씻는 수행이기 때문이다. 몸과 맘을 바로 하고 꾸준히 하는 것밖에 없다.
제가 저를 알고 제가 저를 닦고 씻어 제가 저답게 되는 씨알의 공부와 수행은 씨알사상을 공부하고 씨알정신을 몸과 맘에 익히는 것이다. 참 씨알로서 씨알사상을 형성한 유영모와 함석헌이 공부하고 수행했던 길을 따라 공부하고 수행하면 잘못되지 않을 것이다.
1) 천지인명상과 생각명상
깨달음을 위한 씨알의 수행에는 유영모의 천지인 명상과 함석헌의 생각명상이 있다. 천지인 명상은 가온찍기와 줄곧뚫림으로 이루어진다. 욕심과 허영을 한 점으로 줄이고 그 점의 가운데를 찍음으로써 빈탕한데의 하늘로 들어간다. 가온찍기로 뚫린 마음의 가운데가 계속 뚫려 있게 하는 것이 줄곧뚫림이고 하늘의 영(기운)을 받음이다. 위로 하늘, 신과 통하고 옆으로 이웃, 만물과 통하도록 줄곧 뚫림을 위해 힘쓴다.
생각명상은 내 속의 속에 있는 생명의 바다, 본성의 바다, 정신과 얼의 바다에서 살아 있는 싱싱한 물고기 같은 나를 잡는 것이다. 함석헌은 이것을 생각으로 나를 잡는 낚시라고 했다. 내 속의 속 생명의 바다 속에 생각의 낚시를 드리우고 무념무상의 세계로 들어가면 생명의 바다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던 얼과 혼이 깨어나서 힘차게 솟아오른다. 참 나를 붙잡고 참 나가 살면 저뿐 아니라 세상을 살리는 사람이 될 수 있다.
2) 공부와 수행
씨알 속에는 영원 전부터 하늘의 뜻이 새겨져 있고. 그 뜻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져 있다. 그러므로 씨알이 씨알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자신이 씨알임을 깨닫고 씨알의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날마다 공부와 명상과 수행을 해야 한다.
ㄱ) 글 읽기
좋은 글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글을 읽으면 거짓 나가 벗겨지고 ‘참 나’가 드러난다. 글을 읽고 또 읽어서 글과 내가 하나로 되는 지경에 이르러야 한다. 다석은 글을 읽을 때 ‘내’가 살고 죽는 이야기로 읽는다고 했고, 글을 줄이고 줄이면 ‘내’가 된다고 했다.
다석에 따르면 글은 ‘그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이'를 그리워하면 얼이 울린다. 글을 읽으면 얼이 울려야 한다. 글을 읽고 배우는 것은 그이가 그리워 얼이 울리고, 글에서 그이를 만나고 그이를 알고 그이가 되자는 것이다.
사람이 되기 위해서 글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이 사람이다. 그이는 누구나 인정하고 높이는 사람이다. 그이는 참 사람이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은 참 사람 그이를 그리워하고 그이를 만나고 그이가 되자는 것이다.
함석헌은 평생 그이, 그 사람을 그리워하고 그 사람이 되어 살려고 힘썼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에서 함석헌은 그 사람을 이렇게 노래했다.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를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잊지 못할 이 세상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 '아니'라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씨알은 그 사람의 씨알맹이다. 씨알은 알 사람, 참 사람이다. 씨알은 참 사람, 알 사람인 그 사람을 가지고 싶어서 그 사람을 그리워하고 그 사람이 되려는 이다. 인생의 목적은 그이가 되는 것이고, 그이가 되어야 나라를 바로 세우고 역사를 바른 길로 이끈다.
ㄴ) 마음에 새기고 할 일
(1) 몸의 건강을 위해 노력한다. 몸은 생명의 기쁨을 누리고 하늘의 뜻을 실행하는 거룩한 수단이다. 씨알은 운동, 걷기, 체조 등을 생활화하고 과음, 과식. 과로, 약물남용을 피하고, 게임, 흡연 등을 절제한다.
(2) 자신이 씨알임을 깨닫기 위해 공부하고 명상한다. 마음을 비워 하늘과 만나 영혼을 맑게 하고 자신이 씨알임을 깨닫는다.
(3) 일을 돈 버는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는 천직으로 안다.
(4) 나누는 삶을 생활화한다.
(5) 씨알 누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3) 체조와 숨 명상
명상을 하려면 먼저 다석의 체조로 몸을 풀고 정좌하고 앉는다. 다석의 체조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온 몸의 뼈마디를 풀어주고 온 몸에 피가 고루 잘 돌아가게 한다. 병을 낫게 하고 건강하게 하는 효험이 있다고 한다.
ㄱ) 다석의 운동법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두 다리를 나란히 앞으로 뻗는다. (1) 두 팔을 어깨 폭과 높이로 들어 올린다. (2) 어깨 높이로 올린 두 팔을 양쪽으로 힘껏 벌린다. (3) 두 팔을 안으로 오므려 굽히면서 두 손등끼리 몸통 앞뒤로 부딪친다. (4) 두 팔을 앞으로 뻗치면서 두 팔을 붙인 채 손바닥으로 위로 향하게 하여 밖으로 비튼다. (5) 그대로 머리 위로 손을 넘겨 두 손바닥으로 뒤 잔등을 소리 나게 친다. (6) 두 팔을 앞으로 돌려 어깨 높이로 나란히 든다. (7) 허리를 굽히며 두 손으로 발바닥을 잡을 수 있도록 힘껏 엎드려뻗친다. (8) 같은 자세로 한 번 더 허리를 굽혀 두 손으로 각각 발바닥을 잡고 힘을 준다. (9) 허리를 바로 하며 두 손을 앞으로 나란히 뻗는다. (10) 두 팔을 두 다리 위에 내려놓는다. 이상의 몸놀림을 30분 이상씩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해야 한다.
ㄴ) 다석의 앉는 법
명상할 때 앉는 자세는 가부좌든 결가부좌든 몸과 마음을 곧고 편하게 하는 자세가 좋다. 다석의 앉는 법을 따르는 것도 천지인 명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다석의 앉는 법을 정좌(正坐) 또는 궤좌(跪坐)라 하는데 앉는 법이 독특했다. 앞무릎은 붙이고 두 다리는 벌리고 엉덩이는 땅에 붙이고 앉았다. 다석의 정좌는 일반 정좌나 가부좌보다 고통스럽지만, 허리가 꼿꼿해지고 숨을 더 깊고 편하게 쉴 수 있다.
박영호는 유영모의 정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절로 숨이 깊어지고 피가 빠르게 돌아 온 몸이 더워진다. 위를 비롯한 내장의 여러 기관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모든 기관의 내분비가 잘되어 입 안에 침이 고인다. 이를 일러 기(氣)가 뚫린다고 일컫는다. 거기서 마음을 비워 하나님의 성령이 가득 차면 마음에 기쁨이 북극의 오로라처럼 황홀하다.” 꿇어앉는 것은 겸손함을 뜻하고 곧게 진리를 찾는 구도적 자세다.
ㄷ) 숨 명상
땅에 발을 딛고 머리를 하늘에 두고 곧게 선 사람은 하늘을 그리워하고 하늘로 솟아오른다. 생각으로 숨을 불태워 목숨이 말숨이 되게 하고 말숨이 얼숨이 되게 한다. 목숨은 하늘의 바람과 기운을 몸으로 마시는 것이다. 목으로 드나드는 바람과 기운을 생각으로 울리는 것이 말이다. 목숨에서 말의 꽃이 피도록 생각으로 목숨을 태워야 한다. 말의 꽃에서 하늘의 뜻과 얼 생명의 열매가 맺게 해야 한다. 우리 속에서 생각으로 말씀이 불타서 하늘의 숨을 쉬는 얼 생명이 살아나게 해야 한다.
하늘의 바람과 기운으로 쉬는 목숨에서 생각과 말로 쉬는 ‘말 숨’에 이르고 말 숨에서 영원한 얼 생명의 숨에 이르는 것이 숨 명상이다. 사람은 숨 쉬는 나무다. 숨은 명(命)이라, 목숨에는 하늘의 명(天命)이 들어 있다. 숨 나무는 하늘의 뜻과 사명을 열매로 맺어야 한다. 숨이 말이 되고 말에서 하늘의 뜻과 생명이 피어나야 한다.
4) 생활 명상과 수행
유영모는 “숨 쉬고, 밥 먹는 것이 도(道)”라고 했다. 몸과 맘을 곧게 하여 숨을 편히 깊게 쉬는 것이 명상과 수행의 근본이다. 흙으로 된 몸이 흙으로 된 밥을 먹고 삭이는 것이 생명의 근본이다. 도는 근본에 충실한 것이다. 삶이 도고 숨이 도며, 생각이 도고 일이 도다. 삶에서 길이 나고 생각함으로 길이 생기고 일을 함으로 길이 열린다. 함석헌은 바쁜 일상 속에서 부딪치는 사람과 어려운 일이 ‘나’를 닦아주고 깎아주어 사람 되게 한다고 하였다. 힘든 일을 하고 못된 사람을 만날 때가 나를 깨닫고 만나는 때이고 나를 닦고 씻는 때라는 것이다.
일마다 사람마다 물건마다 나를 나가 되게 하고 사람다운 사람, 얼 사람이 되는 계기와 기회가 되게 해야 한다.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고 물건을 다룰 때마다, 참을 찾고 참이 드러나고 참이 실현되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도고 일이 도며 물건이 도다. 씨알은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사람과 일, 기계와 환경, 만남과 모임에서 참을 찾는 명상을 하고, 사람이 되는 길을 찾고, 몸과 맘과 얼을 닦아야 한다. 씨알은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고 물건을 다룰 때 욕심과 편견, 허영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마음에 가온찍기를 하여 마음이 줄곧 뚫리게 해야 한다. 그래서 나와 너와 그가 각자 저답게 되고 서로 하나 되는 길을 열어야 한다.
5. 씨알누리
씨알사상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살려서 평화와 통일의 세상을 여는 사상이다. 씨알사상이 그리는 세상은 씨알이 씨알이 되고 씨알로 만나 함께 이루어가는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의 씨알누리다. 씨알사상이 더욱 발전하고 널리 퍼져 씨알 정신을 꽃피우고 열매 맺어 온 세상에 씨알누리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1) 씨알사상이 그리는 씨알누리
소련과 미국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로 대결한 이데올로기 경쟁은 소련의 붕괴로 일단 막을 내리고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체제로 세계 평화가 당분간 지속되어 왔다. 중국을 비롯한 BRIC(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경제권의 발흥과 미국 및 유럽 통화권의 상대적 위축은 세계 경제 구조의 커다란 변혁을 예고한다. 아프리카와 중동 아랍 지역에서 민중에 의한 독재체제의 붕괴로 정치·사회적 불안정과 변혁도 계속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정보유통의 발달은 세계무역의 성장을 가져오면서 세계화 시대를 촉진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세계화는 정치·경제·종교·교육의 여러 분야에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으므로 한 동안 국제 경제는 불안정한 시기를 거칠 것이다.
거대 국가와 기업의 경쟁적 독과점에 의한 과학기술의 격차, 경제의 격차, 교육의 격차, 기성 직장의 붕괴, 사회보장제도의 붕괴 등으로 말미암아 기존 자본주의 체제는 한계에 이르렀다. 이제 인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세계사적 상황에 진입하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이 새로운 경제 질서의 중심축으로 떠오르는 오늘의 시대는 새로운 경제 사회 철학의 모색을 진지하게 요구한다.
한국이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의 참화에서 분연히 일어나 세계 경제 10위권에 진입한 것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변모한 한국은 새로운 국제적 위상에 맞는 국가 이상과 경제철학을 필요로 하고 있다. 다가오는 남북통일과 동북아 정세의 급격한 변화를 예상하면서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다. 경제를 일군 주체인 50세 이상의 세대와 앞으로 급변하는 세계정세의 파도를 타고 넘어야 할 20-40세 세대는 이념과 경제관 사회관 등에서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한국이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에 적응할 뿐 아니라 지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온 국민의 지혜의 총화가 그 역할을 감당하기에 합당할 정도로 성장해야 한다. 씨알은 ‘깨어있는 백성’의 수준을 넘어 ‘준비된 백성’, ‘약진하는 국민’의 차원으로 승화해야 한다. 씨알사상도 새 시대의 큰 미래상을 가지고 각 분야에서 씨알 정신과 원칙을 확인하고, 서로 살리고 더불어 사는 씨알누리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실천 운동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ㄱ) 씨알사상과 생명과학
씨알사상의 핵심은 생명존중 사상이다. 아무리 정치, 경제, 문화, 제도가 발달해도, 하나하나의 생명을 존중하지 못하는 문명은 쇠락의 길로 들어선다. 한 생명체가 지닌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각자의 유전적 다양성이 인정되는 건강한 사회가 상호존중과 협력을 통해 더욱 큰 공동선을 실현한다. 개체의 능력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협력하여 더욱 큰 공동선을 이루는 훌륭한 문명사회는 씨알 하나하나가 이기적인 작은 나(거짓 나)를 넘어서 '얼 나'(참 나)로 깨어났을 때 가능한 인간 생태계다.
생존경쟁 속에서 먹고 먹히는 악순환의 고리가 지속되고 가격경쟁과 효율을 앞세우는 고도 산업사회에서 개별 인권은 수단과 도구로 전락되기 쉽다. 쓸모없어 뵈는 야생종에도 척박한 환경에 잘 자라는 유전자들과 과일을 더 크게 하는 유전자들이 숨어 있다. 이런 생명의 진실을 생각할 때, 힘없어 보이는 사람을 효율의 잣대로만 재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생명과학의 최신 발견에 따르면 적정한 환경과 교육은 타고난 유전자의 한계도 크게 뛰어넘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하나의 씨알이 존중되어야 한다. 하나의 씨알 속에는 무궁한 생명과 가치가 들어 있다.
하나하나의 씨알이 모여 공동체를 이룰 때 큰 힘을 낼 수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도 개별적으로는 극히 미약하다. 그러나 어느 수준의 정족수가 채워지면 함께 뿜어내는 독소의 힘이 숙주를 사망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깨어있는 씨알이 충만한 국가 사회는 건강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진정한 독립과 자주 경제는 외부의 도움만으로는 결코 확보될 수 없다. 깨어있는 백성의 내생적인 힘이 모아졌을 때 비로소 나라는 세세토록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음을 우리는 세계사를 통하여 수없이 보아왔다.
ㄴ) 씨알사상과 정치
씨알정신은 스스로 하는 정신이다. 사람은 돈과 권력, 물질과 기계의 종이 아니라 주인이다. 정치와 경제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뜻을 이루고 정신과 인격이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해서 정치가 있고 경제가 있다.
모든 정치권력은 사람에게서 나오고 사람을 위해 있다. 민이 나라의 토대고 주인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에 따르면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정치는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어른과 주인으로 섬기는 일이다. 국민이 주인 노릇하며, 주인답게 살도록 하는 것이 정치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굶주리고 헐벗고 주인답게 살 집이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나라가 아니다. 국민이 기본 교육을 받지 못하고 떳떳한 일자리가 없다면 나라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없다. 헐벗고 굶주리고 잠자리가 없고 기본 교육을 못 받고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는 사람이 어떻게 이 나라를 내 나라, 우리나라라고 할 수 있겠는가? 국민의 심부름꾼으로 나선 정치인들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에 대한 염치와 도리를 알아야 한다.
민주정치는 자치(自治)다. 민이 나라의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이 정치다. 민의 자치를 위해 바닥에서 생활자치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 도시와 농촌에서 서로 돕고 돌보는 공동체적 연대와 관계망을 만들어가야 한다. 민의 생활 자치를 바탕으로 민의 삶을 보살피고 민의 뜻을 받드는 일꾼들을 선출해야 한다. 바른 일꾼을 바로 뽑는 것이 민주와 자치의 첫 걸음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대의정치는 민의 생활 자치에 근거해야 한다.
ㄷ) 씨알사상과 경제
사람은 먹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먹는다. 사람은 돈의 주인이지 돈의 종이 아니다.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요, 스스로 하는 존재다. 개인도 기업도 자유롭게 생각하고 창의적이고 자발적이며 헌신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 개인과 기업에게 활동과 사업의 자유를 주어야 한다. 그러나 돈과 시장과 기업이 인간과 사회를 지배하고 군림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돈과 시장(市場)이 무한하고 절대적인 자유를 누려서는 안 된다. 인간정신을 황폐케 하고 공동체를 파괴하고 다수의 인간을 굶주림과 절망으로 빠뜨리는 자본주의의 탐욕과 횡포는 막아야 한다.
돈과 시장은 서로 필요한 것을 효율적으로 교환하고 바꿔 쓰고 나눠 쓰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돈과 시장의 목적은 사람이 사람답고 품위 있게 사는 데 있다. 돈과 시장이 사람의 삶을 파괴하고 착취하고 공동체를 파괴한다면, 돈과 시장이 잘못 된 것이고 잘못 쓰인 것이다. 돈은 품위 있고 보람 있게 써야 하고, 시장은 일자리와 재능, 좋은 물건과 창의적인 생각이 필요한 곳과 자리에 효율적으로 골고루 돌아가게 해야 한다.
돈과 시장은 유무상통(有無相通)해야 한다. 돈은 돌아야 돈이고 시장은 없는 것과 있는 것을 서로 나누는 마당이어야 한다. 가진 것을 서로 내놓아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서로 통해야 한다. 그래서 서로 이롭고 풍성하고 아름다운 삶을 이뤄야 한다. 더 나아가서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이 서로 통하여 없는 것과 있는 것을 나누어야 한다. 그래서 없는 사람은 있음을 누리고 있는 사람은 없음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ㄹ) 씨알사상과 종교
교통과 통신이 폭발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국경선과 언어의 장벽에 갇혀 있던 다양한 종교 문화 교육이 활발히 교류되고 있다. 그러나 수천 년간 두꺼운 벽을 쌓아온 종교들 사이에 충돌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구촌을 평화롭게 구원할 방법은 기존 종교들의 틀을 초월하여 통섭(通涉)하는 새로운 문화운동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생명의 주체인 씨알들이 깨어나 맑은 지성과 깊은 영성을 가지고 이 지구촌 온 누리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역사를 통해 여러 종교를 수용하고 평화공존의 모범을 보여 온 한국은 동서양 종교와 문화를 융합하여 새로운 사상과 문화운동을 제시할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씨알사상이 그리는 씨알종교는 교회나 절 같은 예배 장소가 없고 종교의식도 없고 성직자도 없고 고정된 교리가 없다는 점에서는 종교가 아니다. 그러나 씨알 속에 하나님이 계시고 마음속을 뚫고 솟아올라 영이신 하나님을 만나 얼나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종교다. 씨알종교가 기존 종교들과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1) 씨알은 누구나 제 속에 하나님이 계셔 성직자와 같은 중재자 없이 생각을 통해 직접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2) 예배와 같은 종교의식보다는 깨달음과 삶을 중시한다.
(3) 기복신앙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것을 기도라 한다.
(4) 예수, 부처를 절대자로 숭배하지 않으며, 우리 각 사람이 예수 부처와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그와 같이 살아야 하고, 살 수 있다고 믿는다.
(5) 모든 종교는 장점과 더불어 단점이 있기에 절대화해서는 안 되며 그 교리를 맹목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이 시대의 지성과 성령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씨알사상은 이 시대의 눈으로 기존 종교들을 재해석한다.
지금 이 세상은 물질을 우상으로 숭배하고 무한 경쟁 속에서 사람과 생명과 자연을 파괴하는 파멸의 길로 가고 있다. 사람과 자연을 구원하고 생명을 살려 내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면 새로운 사상과 종교가 나와야 한다. 새로운 사상과 종교는 생명을 살리고 지성을 밝히며 얼을 키우는 씨알생활종교여야 한다. 지금은 씨알의 시대다. 씨알이 깨어나 역사의 주인이 될 때 새 세상이 열릴 것이다.
ㅁ) 씨알사상과 교육
씨알 교육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우치고 그렇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사람답게 살려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나는 생명의 알맹이 씨알이다. 내 속에는 거룩한 하늘의 뜻이 새겨져 있다. 그 뜻을 깨달아 알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해야 한다. 하늘의 뜻을 이룰 능력을 키우고, 그 능력을 순결한 사랑의 마음으로 이웃에게 바치며 살자는 것이 씨알의 삶이다.
이런 삶을 살 수 있으려면 참된 사람, 참 씨알이 되어야 한다. 참 사람, 참 씨알이 되는 것이 교육이다. 어떻게 해야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자기를 비우고 자기의 편견과 욕망을 내려놓고 하늘의 뜻을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는 씨알은 누구나 자기에게 주어진 하늘의 뜻을 스스로의 힘으로 깨달아 알 수 있다. 하늘의 뜻은 씨알이 자기를 죽여 싹이 터서 꽃을 피워 열매를 맺어 이웃에게 바치는 것이다. 참된 교육은 자신의 정체가 고귀한 씨알임을 스스로 생각하여 깨닫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씨알임을 깨달은 사람은 세상의 가치관에 매임이 없이, 직업에는 귀천이 없음을 알고 자기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그 능력을 최대한 키우며 사는 사람이다.
오늘날 교육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병들어 죽게 한다. 물질주의적인 이기적 욕망의 달성만을 위해 학생들에게 무제한적인 지적 경쟁을 시킨다. 자기가 누군지,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더불어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이런 본질적인 문제엔 관심이 없고 대책이 없다. 오늘 폭력과 자살로 내몰리는 우리 학생들의 비참한 참상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다. 학생들을 이런 불행의 경주로에 몰아넣고 더 빨리 달리라고 채찍질하는 우리 부모들과 교육자들은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씨알 교육은 이런 학생들을 해방시켜 생명의 고귀함을 깨닫고 생명이 생명답게 사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다.
ㅂ) 씨알자치 협동 생활
공동체
인간의 역사는 자유와 평등을 찾아 꿈틀거린 역사다. 프랑스 국민혁명의 구호는 '자유, 평등, 사랑'이었다. 자유주의는 자유에서 평등에 이르려 했으나 불평등한 자본주의에 이르렀고, 사회주의는 평등에서 자유에 이르려 했으나 공산당 독재로 막을 내렸다. 자유와 평등이 만날 길은 사랑에 있다. 사랑은 서로 주체(씨알)로 인정하고 받드는 것이다. 사랑은 자기를 비우고 초월하여 돈과 권력, 기계와 제도의 주인이 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서로 주체가 되어 나눔과 섬김을 통해 서로의 자유와 평등을 지킬 수 있다.
자유와 평등이 사랑 안에서 만나면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가 생겨난다. 모든 공동체는 스스로 하는 자치 공동체이면서 서로 돕고 보살피고 서로 살리고 세우는 공동체다. 공동체의 수준과 형태는 다양할 수 있다. 공동체의 토대는 우애와 신뢰, 자발성과 헌신이다.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귐이 없고 아래로부터 솟아나는 자발성과 헌신이 없으면 공동체는 무너진다. 사람다운 사람인 씨알만이 사랑과 신뢰, 자발성을 지니고 헌신할 수 있다. 지도자나 민이나 사람다운 사람, 씨알이 못 되면 공동체를 지탱할 수 없다.
ㅅ) 국가를 넘어 세계로
세계화 시대에 자본과 씨알(민중)의 세계화가 함께 진행되고 있다. 자본은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본가와 기업의 이익을 추구한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씨알도 국경을 넘나들며, 삶의 지평을 확장하고 있다. 자본의 세계화는 급속히 진행되는데 씨알의 세계화는 여러 가지 장애와 제약을 받고 있다. 이러한 세계화의 불균형과 부조화가 국가와 세계의 혼란과 갈등을 일으킨다.
씨알이 돈의 주인이라면 씨알의 세계화가 자본의 세계화보다 앞서 가야 한다. 그리고 자본의 지배와 수탈에 맞서 씨알의 자치 협업 생활 공동체가 지켜져야 한다. 세계화는 인류역사의 큰 흐름이므로 자본과 시장의 세계화도 결국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의 과정은 세계 민중의 상호이익과 사귐이 증진되고 생명과 정신의 가치가 실현되고 민생과 자치가 존중되는 방식으로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2) 씨알누리의 실현
사람이 씨알이 되어 씨알로 만나 씨알로 사는 세상이 씨알누리다. 씨알누리를 이루려면 먼저 자신이 씨알임을 깨닫고 참되고 영원한 생명의 씨알이 싹트게 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 씨알이 되어 씨알로 만나야 한다. 서로 생명의 알맹이와 주체인 씨알임을 깨닫고 서로 씨알을 싹틔워 꽃 피우고 열매 맺도록 서로 나눔과 서로 섬김의 길을 가야 한다. 씨알의 생명이 싹트고 자라는 것을 가로막는 모든 제도와 세력에 맞서 싸우며 씨알누리를 열어가야 한다.
자기 생명에 충실한 씨알은 그 생명력으로 이웃 씨알들과 더불어 생명이 생명답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씨알누리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남을 이기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무제한적 탐욕으로 인해 이 세상은 점점 생명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씨알은 생명을 억압하고 죽이는 모든 교육, 종교, 법, 제도 등에 저항하고 함께 사랑과 생명이 약동하는 새로운 세상을 여는 사람들이다. 씨알누리를 이루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1) 씨알의 생명은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모든 씨알에게는 기본적인 식량, 주거, 의료, 교육 등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 보장되어야 한다.
(2) 씨알은 평등하게 존중 받아야 한다. 씨알은 성별, 나이, 학력, 빈부, 외모, 직업 등 어떤 이유로도 부당한 차별을 해서도 받아서도 안 된다.
(3) 씨알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것에 대해 저항하고, 생명을 살리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4) 씨알은 어떤 형태의 부당한 억압도 하지도 받지도 않고 자유로워야 한다. 씨알이 주인이 되어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대동사회를 이루어야 한다.
ㄱ) 개인의 실천
(1) 씨알은 각자 주어진 몸과 마음의 소질을 최고도로 계발하여 가치 있는 삶을 산다.
(2) 검소하고 소박하게 산다.
(3) 숨 깊이 쉬고 알맞게 말하고 먹고 입고 자고 쓴다.
(4) 사랑으로 남을 앞세우고, 특히 어려운 사람을 보살피고 배려한다.
ㄴ) 사회의 실천
(1) 씨알 생활공동체와 시민사회 생명연대를 구성하고 조직하여 세상에서 씨알의 삶과 정신을 실현한다.
(2) 민족분단을 극복하여 한반도와 동아시아와 세계에서 평화와 통일의 씨알누리를 실현한다.
(3) 사회 각 분야의 양극화, 공동체 붕괴, 일자리 부족을 극복하는 새 문명운동, 새 사회운동을 펼친다.
(4) 얼나를 기르는 참 교육운동을 벌인다.
(5) 스스로 깨닫고 얼 생명을 꽃 피우고 열매 맺는 참 종교운동을 일으킨다.
(6) 씨알사상과 정신이 우리의 삶과 사회 속에서 전승되고 널리 전파되어 열매를 맺게 한다.
ㄷ) 구체적인 실행
(1) 봄에는 4·19 민주혁명(5·18 민주화 운동, 6월 시민항쟁)을 즈음하여 1년에 한 차례 민주화 운동을 생각하는 장소를 찾아서 민주의 뜻을 새기고 시민운동단체를 위해 헌금한다.
(2) 여름에는 6·25 전쟁을 즈음하여 남북분단과 민족통일의 뜻을 새기고 남북의 평화통일과 북한동포를 위해 헌금한다.
(3) 가을에는 씨알사상과 정신을 공부하고 사람들과 씨알사상과 정신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씨알사상과 정신의 연구와 전파를 위해 힘쓰는 단체와 기관에 헌금한다.
(4) 겨울에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보고 직접 도움을 주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단체와 기관에 헌금한다. (1회 헌금액은 1만원을 기준으로 한다.)
첫댓글 함석헌님에 관한 선생님의 글, 책
논문 쓰기 위해 많이 스크랩해 갑니다.
감사합니다...항상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