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일찍 잠이 깼다. 여전히 피곤이 온몸을 감싸고 있다. 도대체 피로가 쉬이 풀리지 않는다.
모든 것이 낯선 동네이고, 이곳에 오기 전에 뭐 여러 일로 정신이 없는 상황이라 1주간의 숙소예약 외에는 아무것도 해놓은 것이 없는 상황이다. 피곤하기도 하고, 그냥 하루를 빈둥빈둥 된다. 딱히 할 일도 없고 아는 것도 없으니, 열심히 웹서핑과 구글 지도를 살피는 것이 주된 일이다. 구글 지도! 이것 참 요물이다.
현재 위치에서 이리저리 줄이고 확대하여 보다 보면 숱한 정보들이 떠오른다. 식당, ATM, 작은 상점, 갈만하고 볼만한 관광지…….
먼저 교회를 찾아본다.
숙소에서 약 2.1km 떨어져 있고 올린 사진을 이리저리 보다가 후기를 보니 누군가 페이스북에 오늘 저녁부터 전도회가 시작된다고 알린다. 일찍 오는 사람들은 식사도 교회서 제공한다고……. 그리고 근처 식당을 검색해보니 얼마 안 가서 괜찮은 후기들이 많은 베지테리안 식당이 있다. 늦은 아침으로 휘적휘적 나가 식당에 들르니, 피차 안 통하는 언어인데 감사하게도 메뉴는 태국어와 영어가 병기되어있는데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등의 메뉴가 빼곡하다.
거칠게 생긴 남자가 메뉴를 보여주며, 고기는 안 되고 오직 채소만 된다고 떠듬떠듬 말하고 우리는 모닝글로리 볶음, 버섯 튀김, 쏨탐과 밥 두 공기를 시켰다.
그리고 카드결제가 되냐고 카드를 꺼내 드니 오직 현금만 된다고 말한다. 길 건너 패밀리 마트앞에 ATM 있어 태국 돈을 충전해간 “트레블월렛”체크카드로 돈을 좀 뽑으려고 하니, 뭔가 잘 안된다. 지렁이 기어가는 태국 글만 있고 또 밝은 햇살에 화면도 잘 안 보이고……. 어떻게 하는지 몰라 헤매다가 마트에 들어가 물으니 모른다고 손만 내젓는다.
사실 카드를 먼저 삽입하면 그때부터 일이 시작되는 건데 그걸 안 하고 다른 버튼부터 눌러댔으니 당연히 작동이 안 할 수밖에,
빈손으로 돌아오니 이미 밥이 차려져 있고, 고장 나 돈을 못 뽑았다고 하니 투박한 남자는 먼저 밥부터 먹으라고 숟가락을 입에 가져가는 시늉을 한다.
처음 먹어보는 태국 음식, 괜찮다. 특히 내 입엔 그린 파파야 샐러드인 쏨탐이 입에 거부감없이 상큼하다.
밥 먹고 오는 길에 패밀리마트에 들려 물과 과자를 좀 사고 들어오는데 햇살이 정말 화살처럼 따갑게 내리꽂힌다.
호텔 정원에 핀 흰 꽃, 붉은 꽃! 열대의 나라에 있음을 각인시켜준다.
방에 들어서는 사모님께서 과일이 드시고 싶으시다네, 구글 지도를 이리저리 찾다 보니 과일 가게가 보인다. 여러 번 반복하여 보며 위치를 숙지하고, 드디어 떨치고 나서고 결국 찾아가서 망고를 사서 대령했다.
노랗게 익은 망고를 잘라 크게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으니, 특유의 달콤한 맛과 향기가 입안 가득 퍼진다.
행복해하는 마님을 보는 건 섬기는 나의 행복!!
태국 푸켓에 대한 첫인상은?
같은 동남아 국가라 그런지, 필리핀하고 비슷하다. 말하는 억양도 비슷한 것 같고, 찌는 더위, 열대과일, 그리고 거리의 풍경들이…….
그냥 처음 도착한 여행객의 겉으로 본 모습이 그렇다는 거지, 속으로 들어가면 많이 다르겠지, 필리핀은 영어가 행정용어고 기독교 국가이고, 태국은 불교국가이고
여튼 이리저리 시간을 보낸다.
저녁 전도회 시간이 되어 첫길이고 하니 넉넉히 시간을 두고 걸어가기로 한다.
덥다, 인도가 좁다. 가끔 없는 곳도 있고, 있어도 장애물과 차와 오토바이가 점령해 있는 곳이 많다. 오토바이가 많아서 공기 질이 안 좋고 목이 따갑다.
이곳은 보행자 친화적이 아니라 차량 친화적 도로 시스템이다.
첫째 횡단보도가 많이 없다. 횡단보도가 있어도 그곳에 보행자 통행을 위한 신호등이 하나도 없다. 신호등은 오직 차량을 위한 것만 있고, 특이하게도 우리의 보행자 통행시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 여기는 차량통행을 위해 친절히 알려주고 있다는 점.
즉 보행자는 알아서 건너야 한다. 도로를 걸어서 건너는데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보호해주는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쨌든 헷갈리는 곳에선 구글 지도를 켜고 검색한 다음 또 이동하기를 계속하던 중, 갑자기 하늘이 꾸무리해지더니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진다.
필리핀의 경험으로 열대 나라의 비는 어떤 형태로 쏟아지는 걸 알기에 어른 처마 밑으로 피해 조금 기다리니, 정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장쾌하게 한바탕 쏟아지더니 뒤 끝없이 쨍하니 갠다. 잠시 더 걸어 교회에 도착하니 널찍한 마당에 학교가 있고 건물도 아름답다. 출입구를 몰라 건물을 한 바퀴도니 옆에선 일찍 온 사람들이 식사가 한창이고, 난 교회에 들어서 앉으니 한 사람이 와서 태국어가 아닌 영어로 말을 붙인다. 내가 처음이고 여행자이며 한국에서 왔으며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목사라 하니 반갑게 맞으며 한 사람을 불러 소개하는데 예배에 참석해보니 남아태지회에서 온 강사 목사였다.
모든 순서는 대부분 영어가 우선이고 태국어 통역이 따르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 태국어가 우선이고 영어통역이 있는게 정상일 텐데…. 찬미는 오직 영어로만 찬양한다.
이날 강사가 말씀 서두에 필리피노 손들어 보라고 하는데, 돌아보니 80% 이상이 손을 든다. 아하! 그렇구나, 대부분 교인들이 필리핀 이주민과 그 후손으로 이루어진 듯하다.
여튼 정겹다. 특유의 많은 순서와 장황한 소개와 소개들……. 그중에 나도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를 받기도 하고….
전도회를 마치고 30여 분 여전히 후덥지근한 밤길을 걸어오는데 위험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