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장도서 / 하재영
얼마 전 청주 문화원에서 해마다 특집 주제를 정해 책을 발간하는데 2022년은 장서가(藏書家)를 찾아서 대담하고, 그 내용을 정리해서 만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 대상에 ‘내가’ 포함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전화를 받고 서가 책을 훑어보며 내가 ‘장서가’가 맞을까 생각되며 망설여졌다. 적은 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게 내세울 정도는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장서가’는 그야말로 ‘책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을 이야기한다.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소장했다. 서재 가득 꽂힌 책들과 지내는 일은 분명 즐거운 일이며 행복한 생활이다. 나 역시 방 한 칸은 책으로 도배했고, 책을 옆에 끼고 다녔으며, 어디를 가든지 책을 구매했고, 지금도 그 습관은 이어지고 있다.
막상 대담에 응하고 나니 한편으로 부끄럽기도 하였다.
‘우물 안 개구리 아닐까?’
충청도란 지역에 살면서 나름 책을 많이 갖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질에 있어서는 크게 내세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바닷가 도시 포항에 살다가 2021년 귀향하기 전까지 35년을 아파트에 살았다. 아파트에 살며 몇 번 이사할 때마다 몇 박스씩 버렸던 책이었다. 그러던 것을 10여 년 전부터는 책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그것이 지금의 카페 ‘시월(詩月)’을 문 열게 한 힘이었다. 카페를 열겠다는 내 말에 몇 사람은 일 년도 넘기기 힘들 것이라며 그만두라고 했다. 하지만 문 연 카페는 아직도 근근이 유지하고 있다. 카페 간판을 ‘시월(詩月)’이라고 칭한 이유도 책 때문이었다. 갖고 있는 책 대부분이 문학 서적이기에 문학을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詩)자를 첫 자로 사용하고, 터 잡고 있는 마을 월곡리의 ‘월(月)’자를 뒤에 붙여 ‘시월(詩月)’이란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찾아온 사람들이 마을과 궁합이 잘 맞은 이름이라고 칭찬하며 단골로 오시는 분도 생겼다.
책을 소장한다는 일은 독서를 바탕에 둔 행위이다. 독서는 간접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다. 독서는 익힌 것을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세상을 보다 넓게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우는 일이다. 그렇기에 독서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일이고,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 일이기에 어느 누구도 딴지를 걸지 않는다. 나 역시 책을 사랑하고 행한 독서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자주 이야기한다. 종종 찾아온 손님 중에 많은 책을 보고서는 소장한 책을 다 읽었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난간함 질문이다. 궁색한 대답으로 제목은 다 읽었다고 한다.
사실 세상은 과거와 달리 변하고 변했다. 하루에도 수만 종의 책이 쏟아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택에서 아파트로 주거 공간을 바꾸면서 책을 소장한다는 것은 쉽지 않게 되었다. 그것과 함께 과학의 발달에 따른 컴퓨터의 출현은 독서 경향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태블릿 피시 하나면 수만 권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고, 핸드폰으로 활자를 가까이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책은 분영 과거와 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
그렇다보니 책은 필요하지만 소장 가치가 떨어지는 세상이다. 세월이 흘러도 종이책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분명 책을 소장하는 의미는 과거보다 퇴색되었음을 어느 누구도 부인 못할 것이다. 주택으로 이사하며 뒤쪽에 있는 창고 하나를 서고로 만들었다. 임대로 놓았던 것을 내 보내고, 책을 넣어둔 것이다. 책을 넣고 정리하는 데만 몇 개월이 걸렸다. 서고 이름을 ‘시월서고(詩月書庫)’라고 붙혔다. 카페 이름이 ‘시월’이기 때문이다.
인근 충청도 지역에서 책을 갖고 있는 사람 중에 3만 권 정도면 크게 뒤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중 5천여 권은 시집 종류다. 그런 것이 나를 장서가라고 불리게 된 연유였을 것이다.
질문자는 이것저것 많은 질문을 하였다. 특히 소장한 책 중 가장 애장하는 책은 어떤 것인지 물었다. 당연한 질문이겠지만 막상 그 질문에 선뜻 대답한다는 것이 두 권의 시집이었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시집은 ‘시집구상(詩集具常)’과 ‘농무(農舞)’였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찾은 정답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한 것은 대담을 마치고, 그들이 떠난 후였다.
‘詩集具常(시집구상)’은 1951년 발간한 시집이다. 1951년이면 6.25전쟁으로 백성은 공포와 궁핍에 시달릴 때다. 책의 앞표지는 세월의 흐름에 부분 찢어지고, 내지 한 장은 뜯겨나간 상태다. 뜯겨나간 부분은 책을 받은 사람의 이름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것에 이어진 페이지에는 ‘부침무상(浮沈無常) 신축 3월 11일’에 ‘운성(雲城)’이라는 글씨가 있다. ’운성(雲城)‘은 구상 시인의 호다. 1961년(신축년) 구상 시인이 누군가에게 글씨를 써서 주었던 시집인데 그것이 돌고 돌다가 ’시월서고(詩月書庫)‘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서 ‘詩集具常(시집구상)’은 내 문학의 진지성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선배 예술가들의 예술을 향한 열정은 어떤 열악한 환경도, 하물며 포 소리 들리는 전쟁도 문제없는 일이었다.
또 한 권은 신경림 시인의 ‘農舞(농무)’다. 문학청년으로 등단을 준비할 때 격하게 나에게 다가온 시는 신경림의 ‘농무’였다. 그렇게 난해하지 않으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 주변 가난한 풍경을 시로 썼기 때문이다. 정작 신경림의 ‘농무’란 시집을 구입한 것은 1980년 전후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온 책이었다. 많은 시집을 읽고 발간 연월일에 관심을 갖으면서 ‘농무’는 1973년 ‘월간문학사’에서 처음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300부였다. 책을 여러 권 소장하면서 그 책을 갖고 싶었다. 온라인 경매에 ‘농무’란 책이 나왔을 때 내 나름 큰 금액에 입찰했지만 낙찰받지 못했다. 내가 넣은 금액보다 큰 금액(200만원 전후)에 낙찰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구한 것은 어느 여름 서울 나들이에서였다. 으레 어디를 가면 서점이든 헌책방을 기웃하던 습관대로 골동품 가게가 즐비한 곳에 자리 잡은 고서점에 들렀는데 그 책이 있었다. 맘먹고 큰돈을 주고 구입했다.
애장도서란 그야말로 아끼는 책이다. 절실한 기독교 신자는 성경을, 불자는 불경을 서슴없이 이야기할 것이다. 많은 책을 아끼고 사랑하지만 이번에 생각한 책들이 앞으로도 계속 나의 애장도서가 될지는 모를 일이다. 시인으로서 시를 쓰면서 시집은 분명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책이다. 그 많은 시집 중에 선뜻 내 뇌리에서 떠오른 두 권의 시집은 분명 내 무의식 속에서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증거다. 살아가는 내일 다른 책이 내 곁에서 나를 끌어당기며 내 삶에 영향을 끼칠 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아닌 게 아니라 21세기에 장서가로 누군가에게 알려졌기에 두 권의 시집을 소개한다는 그 자체가 나에게는 또한 기쁨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대담은 정작 내가 좋아하고, 애장하는 책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는지 모른다.
책들아, 고맙다.
- 2022년 11월 경북문협 카페에서
첫댓글 월곡리에 달빛이 밝겠습니다.
교원대학교를 품고 시월(詩月) 카페까지 정착하였으니 문향이 끊이지 않겠습니다.
하시는 사업에 보람이 더해지기를 기도드립니다.^^
책장에 꽂아놓고 제목만 읽어도 행복해지던 책들..
시월(詩月)에 다녀오고부터는 제가 버린 한 트럭분의 책들더 생각이 납니다.
주인 잘못 만나 버려진 나의 책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참입니다. <문학인의 집> 1층에 <따비책방>에도 300여권 기증했었는데~지금은 그나마 사라졌으니....
선생님의 시월에 가고 싶습니다. 작년에 새집을 짓고 방이 여럿이던 한옥 집에 소장하고 있던 책 한 트럭을 어쩔 수 없이 버리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해결책이 없어 버릴 수 밖에 없었답니다. 나이를 먹고 보니 제 힘으론 감당이 어렵더군요.
존경스럽습니다. 선생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