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련
바이올렛 (Violet) 은 얼마 전 우리 뒷집으로 이사를 왔다. 40세 중반쯤 된 노랑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미인형의 백인 여인인데 이사 오자마자 집을 수리 (Remodeling) 한다고 수선을 피운다. 자칭 인테리어 데코레이터 (Decorator) 란다. 지난번 살던 집도 너무 예쁘게 꾸며서 2년 만에 좋은 가격으로 되돌려 팔았다고 그녀의 60세 먹은 남편이 은근히 자랑하며 나에게 귀 뜸 해준다. 평생 미국 사람들과 일한 나지만 백인과 아주 절친한 친구 하나 못 만들고 은퇴를 했다. 그 점에 항상 아쉬움이 있어 하던 차에 이번엔 맘먹고 그녀를 친구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동 관심사가 있어야 친구가 되지 않을까, 음악에 대한 얘길 할까, 영화 본 얘길 나눌까? 이런저런 궁리를 했다. 그러는 사이에 그녀는 집 안을 새롭게 리모델링하기에 인부들이 모이고 그들이 타고 온 크고 작은 차들이 우리 집 차고를 막아 일상생활에 불편을 주었다. 처음엔 부수는 작업을 하더니 덤프트럭이 오고 다음엔 캐비넷 설치하는 차가 와서 몇 주 동안 작업을 했다. 그 다음엔 바닥을 깔기 위한 차가오고 연달아 페인트 공들이 왔다. 6개월이 걸려야 한단다. 그사이 먼지는 끝도 없이 쌓이고 나무와 타일 자르는 소리는 이 더운 날에 짜증마저 나게 했다. 친구는커녕 미워하고 싶어진다.
그러는 와중에 그녀의 집 차고에서 불이 났다. 차고 안을 페인팅 하느라고 전등을 종이테이프로 막아 놓았는데 정전이 된 것이다 인부들은 페인트 일을 중단하고 딴 일을 하느라 전등에 붙인 종이테이프를 붙여 놓은 것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그러는 사이에 전기가 다시 들어오고 .전기등에 붙여 놓은 종이가 과열 되어서 불이 난 것이다 그 사정을 모르는 나는 우편물을 가지러 바깥에 나갔다 소방차가 와 있는 것을 보고서야 알았다 미국 소방대원들은 차분히 소란을 떨지 않고 일을 처리하는 것에 놀랐다. 화제는 조용한 가운데 차고 문만 전기톱으로 잘라내고 끝났다. 범사에 감사하단 말이 실감나는 저녁이었다. 뒷집에서 불이 났으면 십 피트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우리 집에 불이 옮겨 붙을 것은 뻔 한일이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정신이 없어 넋이 나간 그녀를 위해 저녁은 내가 대접 하겠다고 자청을 했다. 외국인을 집안에 초청을 해 본적이 많지 않아서 포크와 나이프가 충분치 않다는 것을 느낀 것도 처음이었다. 언제나 손님이 모이면 젓가락으로 먹는 우리들이다 보니 내가 얼마나 미국 속에서 한국인으로 살았나 싶었다. 마침 사다 놓은 콩나물과 다른 나물이 있어 비빔밥을 만들었다. 비빔밥을 고추장에 비벼서 모두들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보는 사람도 즐거웠다. 한국 음식이 전 세계에 인기라고 하더니 실감이 났다. 친구란 그냥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사랑 하고 이기적이지 않고 서로 연결고리를 만들며 살아가는 것인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번엔 저녁을 하는 김에 옆집 베스 (Beth) 와 남편 빌 (Bill) 도 초청했다. 베스는 이사 온지 몇 년이 되었지만 서로 눈인사 만 하던 정도였으나 이번 화제 사건으로 우리 세집이 모이게 되었다. 어려울 때 도와 줘야 한다는 심리적인 부담이 작용한 듯 했다. 또한 민간외교란 이런 게 아닐까 싶기도 했고..
그 다음 날 저녁은 베스가 자기 집에서 스파게티를 만들어서 우리 모두를 초대했다. 베스는 백인 이지만 얼굴이 약간 검은 편이고 마음 좋은 전형적인 아줌마 스타일이라서 하얗고 날씬한 바이올렛과는 대조적이다. 씩씩한 베스가 커다란 양푼에다 담은 스파게티를 8인용 식탁 위에 얹어 놓았다. 우린 각자 먹을 만치 떠서 접시에 덜어다 .격식도 없었다.
베스는 우리를 자기가 다니는 교회 크리스마스 연례행사에 초청했다. 그날 난 그녀의 전혀 다른 면을 보았다. 평소 짧은 바지에 티셔츠 만 입고 다니던 탐 보이 같던 그녀가 빤짝거리는 비즈가 수없이 달린 청 푸른색 롱 드레스를 입고 마이크 앞에 서서 사회를 보는데 그녀의 카리스마와 멋진 스피치에 다시금 놀람을 금치 못했다. . “책 겉장 만보고 속 내용을 평하지 말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녀는 고등학교 교장선생님도 했고 지금은 교회에서 여전도회 회장 일을 맡고 있었다. 좋은 이웃 집 친구들을 둔 덕분에 이번 크리스마스는 축복 속에 함께 모여 작지만 선물 교환도 했고 베스랑 골프도 몇 번 쳤다. 이제 막 친해지려는데 그녀가 이사를 간단다. 얼마나 섭섭한지 오래된 친구를 잃어버린 것 같다 .
베스가 있었을 땐 독립기념일엔 골목의 이웃들이 모여 불락파티도 했고 햄버거도 구워 나눠 먹고 했다. 그녀가 떠난 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요즘 내가 동네반장 일을 해볼까 마음먹고 있다.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이 사는 이웃이 더 좋다는 옛말도 있다. 아침에 눈뜨면 보는 이웃들끼리 정을 나누며 살면 동네 공기도 더욱 따스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