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학창시절 가장 존경했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한완상 교수님의 말씀 <마땅한 불평등마져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는 말씀을 잊을 수가 없으며 군대시절 뿐 아니라 지금까지 삶의 지표로 삶고 있다.
[소원수리 자체가 부조리이다]
나의 군대시절은 1975년 6월에 전주 35사단에 입대하였다. 고된 훈련으로 황토물을 마셔보기도 하였고. 식사는 1분내 끝내라는 구호에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소원수리를 받는다며 훈련병사들을 집합시키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행정법상 행정쟁송 소송전에 하는 소원전치주의와 같은 것이었다. 뜻밖이었다. 속으로 참 다행이라 생각했으나 결과는 정 반대이었고 혹독한 기합밖에 없었다.
설령 못 마땅해도 부대장의 뜻에 따라 긍정적으로 써야 한다는 정말 공산주의자나 똑같은 짓이었다.ㆍ
[전방부대 911포병부대 시절]
전방 포병155미리 곡사포 부대에 배치를 받아 본부 행정반 서무를 맡게 되었는데 선임 하사가 인수인계를 하는데 칼빈 탄피1박스를 보에주면서 1발에 1원씩 시중에 팔수 있다면.병기.탄약을 전부 돈으로 환산하며 알려 주는 것이었다. 나중 알고 보니 군대 무상 보급품을 모두 팔아 먹는 것, 대검.방독면.숫가락.등 웃지 못할 일이 잃어버린 수.젓가락 찾기 바빴다.
그러던 어느날 소원수리를 받는다고 내무반에. 집합하라는 것, 나는 간단하게 쓰고. 나왔다. {소원수리 자체가 부조리이다} 잠시후 난리가 났다면서 모두 연병장에. 집합되었다며, 작전과 이충수 병장이 찾아와 필적감정을 했다면서 이거 네가 쓴것 맞지! 하여 그렇다고 태연하게
대답하니 임마 빨리 포대장실 가 보라는 것, 연병장에는 완전군장으로 병사들이 집합되었고. 난 급히. 포대장실로 갔더니. 가자마자. 너익거 무슨 뜻이냐 다짜고짜 책망하여, 뭐가 잘못 됐습니까? 하니 갑자기. 엎드리라며 곡괭이 자루로 엉덩이를 두들기기 시작하였다. 일부러. 엉덩이를 내리지 않았더니. 더욱 골이 나서 군홧발로 짓밟는 것이었다. 나중에 지쳤는지 포기하고 너. 앞으로 6개월내 일체. 진급과 외출.외박도 없다고. 잘라 말했으나 그져 덤덤하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군수품 빼 먹는 도둑놈이었다. 동기생인 쌀 담당 장건환이 술 취하면. 실탄 좀 달라면서. 다 쏘아 죽이겠다며 ㅠㅠ
아무래도 안되겠다며 어느날 취사반 식사투입구에서 나오는 식기를. 살짝 밀어 제끼며, 난. 이런 꽁보리밥을 먹어본적이 없다면서~~
식당에 있던 군수과의 정상병이 군수과장에게 보고하여 이를 다시 부대장에게 보고되어 호출된 포대장이 몹시 심한 질책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병기과 선임중사가 포탄 사격에. 매우 중요한 조명등을 가지고 다니면. 팔고 있다는. 소리를듣고, 일체 열쇠를 주지않고. 잠궈버렸다.
알파 포대에 동기생이 몹시 불안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병기담당이었는데 50기관총 사격훈련으로 탄피 1발을
분실했는데. 못찾으면 사형이라며. 위에서 겁박을 한다며. 초조해하기에 걱정하지 말라. 야간사격 훈련으로 망실처리된 것으로 망실 보고하면 해결된다고 하여. 간단하게 해결하였고,이후에. 전방 관측소까지. 출장하여. 포반장들로부터 애로 사항을 청취하고 언제든지 말하라하였다.
<8.1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 데프콘 111발령
무슨 일인지 모르고 모두 완전군장으로 무
장하고 침상에 그대로 누워. 취침하였고
당시에는 전쟁이라도 났음 하는 생각이었다. 우리 부대 주변 산위에는 보병들이 박격포.등을 메고 포위히듯 진을 치기도 하였고.나는 포대에 포신을 모두(18대) 북쪽을 향해서 포찬를 설치한라 명령을 시달하였다. 급히 상황실 암호실에 가서 비밀문서 이송준비를 하였으며 문서 이송한다면서 혼자 기관총 장착 포차트럭에 타고 의정부에 가기도 하였다.
- 데프콘 11 발령
(1978년 8.18일)
동막골 가기전. 그곳에 부조리가. 많다는 소문을 듣고 과장에게 나를 동막골에 파견. 교체해 달라고 말하여 제대 말년에 수십만발의. 포탄이 보관된 파견대에 가게 되었다.
파견 나가기 전 부대 주임상사가 어떻게 알았는지. 한번 보자고 하여. 갔더니. 동막골에서식당하는 00집 사장을 여기에 왔으니 만나 보 라고 하였으나. 난 거절하였다. 나름 동막골 파견대에서는. 비상걸린듯. 그곳 소대장이 내게 전화를 해서 '너 이곳에 오게되면 씩스틴으로 갈겨 죽이겠다'고. 협박하였으나 목적이 있었기에 덤덤하게 생각하였다.
다불백을 매고 동막골에 들어서니. 양쪽에 식당에 있는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려 돌악보지 않고 파견대에 도착하였다. 알고보니. 오른쪽 식당과의 심심치 않는 거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짬밥.부식거래 등등
<동막골 탄약고 파견시절>
파견부대에 도착하여 저녁 식사가 나왔는데 나와 소대장은고기가 있는데, 병사들은 국물만 있는 국이었다. 취사병을 불러 나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으니 병사들에게 나누어주고 앞으로. 취사를 하기 전에 반드시 육군 정량대로 내게 검사를 받고 밥을 하라고 지시. 정량대로 하니 역시 쌀밥이었다, 저녁에는 고참 상병이 신고를 받으며. 취사반 쪽에 나오라는 것, 스리퍼를
신고 갔더니 거수로 신고하더니. 뒤돌아 오는 순간, 퍽~퍽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위 말하는줄 빠따였다. 안되겠다. 이놈들. 저녁에 모두. 취침시켜놓고서 '앞으로 일체 이런 불명예스런 집합은없다.' 다시는 이런 구타가 없도록 하였
다,
첫날 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니 개 짖는 소리가 나면서 아랫마을. 식당 사장의 음성이 들리는 것이었다.민간인이 군사 시설보호구역에 무단으로 들어 온 것이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부대 짬밥을 가지러 온 것이다. 나가서
여기는 군사시설 부대이니 앞으로 절대 들어오면 안되면 안된다며 나가게 하였다. 군사시설 보호법 위반이니~~
통신병이 보선을 나갈 때는 베낭을 사전에 검사하여 혹시 군량미. 보급품인 달걀,닭고기등
빼 돌려 전곡.인근 식당에서 술과 돈과 바꾸어 먹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였다,
정월 보름날이 되었다. 소대징이 아랫마을 식당에서 보름날 초대가 왔다면서 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랫더니 소대장이 밖을 나가면서가려는. 자세를 하였다. 홧김에 뒷통수에 대고
들으라며 '저런 놈들 때문에 군대기 엉망이다,'
그랬더니. 다시 들어오는 것이었다. 왜 다시
오고 안 가세요? '너 때문에. 못가겠다'며 투덜됐다. 그런데 내무반에 있던 병사들이. 내 눈치만 보는 것이 느껴졌다. 나중에 안되겠다. 싶어. 정문 보초만 남겨 놓고, 모두. 집합하라며
한밤 중에. '진짜 사나이'를. 부르면서 식당에 가게 되었다. 식당 방에 들어서니. 진수성찬이 가득 차려졌고. 병사들은 실컷 먹게 되었다. 당시 여고생인 딸은 내 옆에 술 시중을 들었고, 부모들은 주방에서 일을 하는 것. 참으로 재미있는 사람들이었다. 딸을 미끼로 삼아 나를 꼬득이려 했던 것이었다.아무 효과 없는. 보름날이 된 것이다, ㅎ
본부 부대 복귀후에 말년 휴가를 다녀와서. 인사계 주임상사 장상사의 집을 찾아 담판을 시도하였다. 나는 법학을 공부하여 고지식합니다
동막골에 파견 가서 육군 정량대로 밥을 지으니 쌀밥이던데데요!
이 놈은 전방부대에. 보내온 위문품인 이불.전선풍기.전자 제품들을 빼돌리는데 전문이었다
<전역시시 부대 장병에게 남긴 말>
나는 봄과 함께 사라집니다.여러분들 나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한 사람 있으면 말하라며 인사를 하고 연단에서 내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