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무시되는 사회에 대응하기
이 흥 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 사회에서는 어른이 말씀을 해도 꼰대라고 치부하며 무시당하기 일쑤다. 합당한 법을 들이대도 어떤 핑계를 대며 법망을 피하는 데만 정력을 소모하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어른이 무시되면 도덕불감증이고 법을 무시하면 무법천지가 된다.
사회통제기능이 무력 말고는 없는 듯하다. 무력을 물리적인 힘이니 당장에 피할 길이 없어서 임기응변으로 듣는 척 하는 것이지 진정한 질서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리적인 힘이 멀어지거나 제거되면 바로 원위치로 돌아가게 된다. 마땅한 사회통제기능이 보이지 않는다.
왜 이렇게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법은 힘없는 자에게만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다. 힘 있는 자를 바라보는 평민은 울화가 나고 속 터지고, 힘 있는 자는 멋대로 법을 가지고 놀고 있는 형국이다. 내가 살아 온 동안 이렇게 되기까지는 그리 머지않은 일인 것 같다.
1980년대까지 만 해도 냇가에서 고기를 잡아 천렵을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서 고깃국 한 그릇 대접하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냇물에 사는 물고기는 먹을 수 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자연을 보호한다면서 냇가 천렵도 금지되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자연과 사람이 멀어지는 현상이었고 여러 이유로 사람이 자연으로부터 유리되는 현상이었다.
사람이 자연으로부터 분리되는 현상은 사람이 자초한 현상이고 그 현상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현상을 지워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찌되었거나 그 이후로 사람 사는 질서가 더 강해진 듯 하면서 오히려 무시되는 현상이 나타나서 불치의 병처럼 자라나고 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거리에서 잘못을 저지르는 아이를 지나가는 어른이 보면 타일렀고 그 타이름은 곧 사회규범으로 통용되었다. 1991년 봄 강릉 단오제 구경을 가던 버스 안에서 목격담이다.
단오제 행사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깨끗한 한복차림으로 의자에 앉은 노인들을 이 사람 저사람 옷을 만지고 다니고 있었다. 이때 노인 한 분이 그러면 안 된다고 꾸짖었다.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고, 아이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은 안하고 오히려 왜 아이의 기를 죽이느냐고 노인에게 대들었다. 이 모든 과정을 알게 된 운전사는 차를 세우고 그 아이와 엄마를 내리라고 했다. 아이 엄마는 왜 내가 내려야 하느냐고 항의를 했다. 운전자는 “이차는 사람이 타는 차입니다.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은 태울 수가 없으니 내리시지요.” 라고 했다. 차안 대부분 손님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냈고 얼굴이 붉어진 아이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차를 내리고 말았다.
2024년인 오늘 날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격세지감이라고 하기에는 사람 사는 사회가 얼마나 많이 변하고 있는지가 쉽게 가늠된다.
어른의 말이 곧 법이 될 수는 없다. 또 시시로 변하는 사회에서 모든 일에 어른의 생각이 옳을 수도 없는 일이다. 세상 살아가는 세세한 것들에서는 젊고 기발한 세대가 당연히 앞서갈 것이다. 하지만 연륜에 의해 축적된 사람 사는 이치는 나이 많은 어른이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지금 나이 많은 어른들은 많은 날을 겪어왔다. 그들이 겪어낸 경험들은 젊은이들의 기술로 제품화도 할 수 있는 단서도 있을 터이다. 그래서 노인을 살아있는 박물관이라는 이들도 있게 된다.
사라져가는 박물관들이 무시당하고 있다. 두뇌활동이 둔해졌다고 때로는 강아지나 고양이보다 대접이 뒤지고 있다는 소리도 드린다. 늙어가는 일은 고독으로 가는 길이 되고 있다. 아무도 곁에 오려고 하지 않으니 고독할 수밖에 없다.
늙은이도 대접받는 일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겠다. 가졌던 기능을 정비 하던가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서 아무도 곁에 오지 않아도 홀로 심심하지 않게 하고 자신이 자존감을 갖게 해야 하겠다. 몸과 마음을 늘 청결히 하고 붙잡을 것은 붙잡고 있어야 한다.
붙잡을 것은 첫째가 정신 줄인데 그거야 제 뜻대로 안 될 터이니 정신이 온전할 때 저장된 두뇌의 것들을 꺼내서 형상화문서화해야 한다. 실물도 남기고 글로 쓰고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어서 지나오면서 머리에 저장했던 모든 걸 좀 서툴더라도 형상화나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그러면 그 미미하기만 하게 생각한 기록물들이 자신을 보호하게 된다. 후예들이 그 기록을 보면서 다시 생각하고 노인의 등위를 몇 등급은 높여줄 것이다.
다음은 돈줄이다. 돈줄도 필요한 만큼은 꼭 쥐고 있다가 마지막 가는 날 손을 펼 때 놓아야 한다. 손 발치에 있던 누군가 집어 들더라도 끝까지 쥐고 있어야 대접을 받게 된다.
내가 어른인데 무시한다고 외쳐봐야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오직 자신이 무시당하지 않도록 단속 하면서 사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순응하는 자신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첫댓글 태백특집을 여기에 잘못 올렸다 지워서 2번이 되었으니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이박사님 여기서 읽어도 좋은 데요. 음성이 우렁차고 힘이 넘쳐서
이박사님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이번 여행 함께 하지 못해 못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