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정원
유 창 복
황 노인/ 상경/ 세탁소/ 동네/ 고비/ 이농/ 입시/ 성장/ 막내/ 옥상정원/ 에필로그
[1] 황 노인
1.
벚꽃이 흐드러질 무렵 황노인이 큰아들과 손주 둘을 앞세우고 양평 사는 막내아들 집에 왔다. 황노인은 집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마당 주변을 휘휘 둘러보더니 좋은 집에 산다며 예상치 않은 칭찬을 했다. 작년 이맘때 처음 왔을 때는 왜 이런 산속에서 사냐고 못마땅해 했었는데, 막내 준영은 아버지가 오늘은 웬일인가 싶었다. 뒤따르던 큰형 준혁도 고개를 한쪽으로 갸웃하며 준영에게 공감을 표했다.
황 노인은 미아리에서 출발한 이후 내내 뒷자리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고 있었는데 양수리를 지나 북한강 강변도로에 접어들자, 시트에서 등을 떼고는 차창에 바짝 붙어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강변을 따라 촘촘히 서있는 어른 몸통만한 굵기의 나무들에서 가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분홍의 벚꽃들이 빼곡히 피어났다. 나무 아래에 떨어져 수북이 쌓인 꽃잎들이 달리는 차들이 일으키는 바람에 도로 위에 어지러이 휘날렸다. 창문을 열라는 소리에 준혁은 잠시 멈칫하다가 빼꼼이 열었는데, 봄이라지만 아직 차안으로 밀려드는 바람을 맞기에는 쌀쌀해서 바로 닫았다. 그 잠깐 사이에 허공을 날던 꽃잎 한 장이 차 안으로 휙 날아들어 황 노인의 볼에 달라붙었다. 큰길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마을길은 퉁이 많기도 했고 교행이 어려운 좁은 구간이 많아서 서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준혁이 차창을 반쯤 열고 백미러로 황 노인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황 노인은 창이 열린 틈으로 고개를 빼다시피 내다보려 해서 아예 활짝 열었다. 차창에 바짝 붙어 동네를 두루두루 살피던 황 노인은 동네에 집들이 참 많다며, 이 많은 집들이 1년 새에 언제 다 들어섰냐며 놀라며 물었다. 준혁은 작년에 오실 때도 있었던 집이에요, 하자, 황노인은 그릏나, 했다.
황 노인이 아프다. 며칠 전부터 갑자기 잘 먹질 못했다. 노인의 식성이 워낙 소식이라 많이 먹지는 못해도, 가리는 음식도 별로 없고 남기는 것 없이 식사를 잘 하는 편이어서, 준혁의 아내도 입맛 당기는 게 뭐가 있을까, 찬거리 부실로 탓을 돌리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90줄에 들도록 평소 소소한 잔병치레조차 안하던 황 노인은 하루 일과도 아주 규칙적이었다. 노인치고는 늦은 시간인 8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나서 바로 동네 한 바퀴를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거실 한 귀퉁이에 놓여진 자전거 운동기구를 30분이 넘도록 탔다. 몇 년 전 둘째 손주가 중고거래로 들여놓고 한 일주일 타는 것 같더니만 이내 수건걸이로 전락했다. 황 노인이 아니었으면 틀림없이 건조대로 남거나 좁아터진 마루에서 퇴출되고 말았을 게 틀림없었다. 저녁 먹기 1시간 전이면 다시 어김없이 집을 나서 동네 한 바퀴를 한 번 더 했다. 아침 식사 후에는 집 아래쪽 길음시장 방면으로 한 바퀴 돌고, 저녁 식사 전에는 집 위쪽 큰길을 따라 역시 한 바퀴를 돌았다. 그날 이후 7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켜진 황 노인의 루틴이었다.
7년 전 그날, 황 노인의 아내가 밤새 연기처럼 세상을 떠났다. 설을 며칠 앞두고, 차례상 장만한다고 아침 밥상 물리자마자 일찌감치 며느리를 앞세워 시장에 다녀온 황 노인의 아내는 애기 머리통만 한 배와 사과를 장바구니에서 꺼내서 소쿠리에 담아 베란다 바닥에 두고, 문어와 조기, 각종 나물꺼리들은 봉지째 냉장고에 따로따로 차곡차곡 쟁여 넣어두면서, 차례 지내고 가는 아들들에게 제사음식 챙겨줄 생각에 벌써부터 흐뭇한지 넉넉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날도 저녁 늦도록 평소에 즐겨 보던 연속극 다 보고 제시간에 잠들었는데, 다시 깨어나지 않았다. 아내가 너무도 황망하게 가버린 뒤로 황 노인은 스스로 운동을 시작했다. 여든여섯 나이가 노인치고 적은 나이가 아니었지만, 뭐든 일단 시작하면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이어가는 성미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책과 자전거운동을 꾸준히 했다.
황 노인은 평소 말수가 거의 없다. 애들이 와도 왔나, 밥묵자, 가봐라, 세 마디 하면 그날 할 말은 다 한 셈인데, 입맛을 잃은 시아버지가 걱정스러운 며느리가 이것저것 물어도 황 노인은 속이 답답하다고 할 뿐 별 뾰족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끼니마다 황 노인이 좋아하는 계란찜이며 참기름에 재서 구운 김이며 상에 해 올려도, 수저를 들고 몇 술 뜨다말고 이내 상을 물렸다. 그나마도 삼키면 바로 토할 것 같다며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동네 병원에서 소화불량이라며 지어준 3일치 약을 다 먹어도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특별히 통증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먹는 것이 거의 없으니 기력이 자꾸 떨어져 매일하던 산책도 거르고, 자전거 운동기구에는 아예 올라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속이 불편하다고 한지 일주일쯤 되던 날 아침, 갑자기 황 노인은 준혁에게 막내가 사는 양평 집에 가자고 했다. 몸도 불편한데 양평까지 가시려 하냐, 말릴 새도 없이 먼저 옷을 챙겨 입고 거실로 나와 서서 다그쳤다.
3년 전에 준영의 아내가 도시에서 살기 싫어, 전원주택을 지어 살고 싶다고 해서 집터를 보러 다니던 중에, 지은 지 1년도 채 안됐는데 집장사가 날림으로 지은 것 같지 않은 집을 만났다. 집 짓다가 10년 더 늙는다고 아내를 겨우 설득해서 계약을 해버렸다. 양수 전철역까지는 차로 15분 정도면 갈 수 있는데다, 20여 년 전에 일찌감치 귀촌 자리로 알려진 곳답게 귀촌주민들도 많아 선주민 텃세도 그리 세지 않다는 부동산 아주머니의 이야기에 솔깃했다. 제법 깔끔한 전원주택들이 길을 따라 군데군데 함께 무리지어 터 잡고 있어서 마을이 어설퍼 보이지 않았다. 마을의 초입이나 중심 지대는 농촌이라도 땅값이 만만찮았다. 게다가 준영의 아내가 번잡한 걸 질색해서 숲이 우거진 환경을 제일 조건으로 내세운 터라, 마을 위 끝자락에 한적하게 자리 잡은 집터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준영 부부는 이사 오자마자 마당 곳곳에 철마다 돌아가며 꽃이 피도록 갖가지 나무를 부지런히 심었다. 마당 한 모퉁이에는 땅따먹기 하듯 금을 그어 텃밭을 일구기 시작했는데, 해가 바뀔 때마다 그 금이 야금야금 불어나 아예 맞은편 언덕 위 땅 주인에게 사용 허락을 받았다. 언 땅이 풀리자마자 언덕 위에 올라가 하루 종일 곡괭이질 삽질해서 완전 돌밭을 포실포실한 흙으로 덮힌 텃밭으로 탈바꿈시켜놓고 뭘 심을지 행복한 궁리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마당을 다 둘러보고 나와 언덕 위를 올려다보던 황노인은 대뜸 저기엔 옥수수 실컷 심어도 되겠다,한다. 준영은 웬 옥수수?, 하며 그것도 괜찮긴 하겠네 하는데, 황 노인이 다시 느그 어무이가 좋아했을 낀데,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준영은 아버지가 죽은 엄마를 호칭할 때, 어무이라고 부르는 게 아직도 어색하게 여겨졌다. 엄마 돌아가신 뒤로 언제부턴가 느그 ‘엄마’에서 느그 ‘어무이’로 바뀌었는데, 엄마에 대한 존중의 뜻을 담은 거라 생각했지만 그게 너무 억지 같았다. ‘어머니’라는 표현보다는 다감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갑자기 엄마 죽은 다음 저러니 가식적인 것 같았다. 게다가 준영은 엄마가 평소에 옥수수를 좋아하셨나 생각해보니 알 수가 없었다. 준영이야 갓 쪄낸 찰옥수수라면 앉은 자리에서 서너 자루는 해치울 뿐 아니라, 끼니로 옥수수를 먹어라 해도 마다 않을 정도로 좋아하지만, 엄마가 옥수수를 즐겨 먹었던 기억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옥수수 껍질이 자꾸 이에 껴서 싫다고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런데 아버지는 왜 느그 어무니가 좋아할 거라 하시나, 하면서 준영은 새로 만든 텃밭에는 옥수수를 심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아버지, 아직 쌀쌀한데 이제 들어가시죠.”
두어 시간 지나 점심때가 되어 준영의 아내가 밥상을 차리려 하자, 황 노인은 손사래를 치며 그만 집에 돌아가겠다고 일어섰다. 준혁도 어차피 상을 차려도 제대로 드시지지 못하니 그냥 가는 게 좋겠다고 거들고 나섰다. 준영 부부가 어쩌지 못하고 엉거주춤 하고 있는 사이 황 노인은 거실 문을 열고 나섰다.
2.
며칠 후 준영은 준혁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 암이시란다.”
양평 다녀간 이튿날 황 노인은 정밀검사를 위해 서울대 병원에 입원을 했고, 사흘 후 나온 검사결과가 암이었다. 위암 말기. 준혁은 차마 아버지에게 곧이곧대로 위암이라고 전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좋겠냐?”
“글쎄요…… 그래도 말씀을 드려야 되는 거 아닐까요?”
“그럼, 많이 놀라실 텐데. 연세가 많아서 여기서 급격하게 더 나빠지는 것도 아니라고 하니까 일단 좀 두고 보는 게 좋겠다.”
“네, 알겠어요.”
준영은 철렁했다. 그렇게 짱짱하던 아버지가 암이라니, 그것도 말기라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아니 어떻게 암이 말기가 되도록 아무런 증세도 없다가 갑자기 말기가 된단 말인가. 준영은 준혁에 바로 전화를 걸어, 다른 병원에 가서 검사를 다시 받아보자고 했다. 준혁은 반대했다. 조직검사 결과인데 오진일 가능성이 적고, 연세도 많아 다시 검사를 하는 것도 부담이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불안해하시니 당분간은 조용히 있어보자는 말이었다.
위암 말기면 아흔셋 연세에 가망이 없는 것 아닌가, 수술을 한다면 아예 위를 떼 내는 것일 텐데 개복수술을 감당할 나이도 아니고, 수술이 잘 되어 식도와 소장을 연결한들 위장 없이 음식을 제대로 먹고 소화시킬 수도 없을 테고, 그렇게 얼마나 버텨낼 수 있나. 그럼 저렇게 돌아가실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단 말인가. 여기서 더 생각이 진전되지 않았다. 준영은 일단 아버지 얼굴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회사에 전화를 걸어 반차를 내고 미아리로 차를 몰았다.
“아무래도 내가 오래 몬 살지 싶다.”
준혁이 검사결과를 말했을 리 없는데 아버지는 벌써 식구들의 표정과 집안 분위기로 다 눈치를 챈 것일까, 자신의 몸이니 누구보다 본인이 잘 느껴서일까, 90을 넘긴 노령임을 감안하고 지레 저러시는 걸까…… 황 노인은 이미 포기한 듯 엷게 웃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양평 다녀간 며칠 새 몰라보게 해쓱해진 얼굴에, 더더욱 힘없이 흘러내린 눈꺼풀 속으로 움푹 꺼져 들어간 눈동자는 불안과 공포로 떨리고 있었다. 아니,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애절한 눈빛이었다.
“예전에 다들 아버지 죽는다고 했을 때도 살아나셨잖아요. 이번에도 잘 이겨내실 거예요.”
준영이 국민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무렵 해윤은 얼굴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뼈가 불거질 정도로 바짝바짝 말라갔다. 해윤은 간경화로 상당 부분의 간을 잘라내는 큰 개복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수술 후 몇 달 괜찮더니 병세는 다시 재발하고, 의사는 더 이상 해볼 것이 없다며 손을 놨다. 상임은 믿을 수 없었다.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라도 건지겠다고, 잘 걷지도 못하는 해윤을 부축해 이 병원 저 병원을 두드리며 살려만 달라고 애원하고 다녔다. 세탁소고 살림이고 안중에도 없었다. 그나마 말귀 알아듣는 준혁에게 동생들 잘 챙기라 당부해놓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신이 반은 나간 채 허공을 딛고 다녔다.
“애들이 셋입니더, 우리 애들 아부지 좀 살리 주이소.”
두 달을 그렇게 헤매고 다녀도 아무런 희망의 소리를 듣지 못하자, 해윤은 고향으로 가겠다고 우겼다. 상임은 하는 수 없이 세탁소 문을 닫고, 애들은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는 이웃 친구들에게 부탁하고 짐을 쌌다.
“알았어. 애들은 우리가 알아서 챙길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애들 아버지나 잘 돌봐.”
상임은 뭔 일인가 불안해하는 아이들에게 곧 온다고는 했지만, 해윤이 죽어도 고향서 죽고 고향 땅에 묻히겠다고 해서 나서는 길이었으니 황망한 낙향 길이었다. 서울 가서 잘 산다던 아들이 별안간 죽을병에 걸려 돌아왔으니 고향집에서도 웬 날벼락이냐며 뒤숭숭했다. 집성촌인데다 해윤이 종손 줄기에 가까운 장손이라, 일가 친척지간인 동네사람들도 다들 자기 집의 우환인양 마음이 쓰였다. 새벽같이 나선 덕에 해윤이 고향집 별채 아랫목에 자리 깔고 눕자, 산 아래 손바닥만 하게 엎어진 마을에 산그늘이 슬금슬금 내려앉기 시작했다. 어느새 마을은 흥건히 고인 어둠 속에 잠겨들고, 가끔 컹컹, 개 짓는 소리만 들렸다.
죽으러 고향 간 해윤은 늙은 어머니의 정성어린 간호를 받았다. 해윤의 어머니는 유독 얼굴에 주름이 많고 이도 거의 없었다. 눈곱이 자주 끼는지 눈을 비비면서 항상 눈물을 흘렀고 눈가는 항상 짓물러있었다. 그 어머니는 해윤의 두 번째 계모였다. 해윤의 아버지가 두 번을 사별하고 세 번째로 맞이한 아내였다. 어머니는 나이도 꽤 든 데다가 의지할 곳 없는 처지라, 혼자 된 노인 수발들며 노후를 의탁할 요량으로 해윤 아버지의 후처 자리에 들었던 거다.
평생 읍내에서 약을 짓다가 나이가 애지간해 문 닫고 들어앉은 한약방 어른이, 오토바이 사고로 크게 다친 자식에게 먹일 양만큼만 해마다 약재를 장만했는데, 그 약재를 어머니의 간곡한 요청을 못 이겨 내어주었다. 해윤의 어머니는 매일 새벽안개를 뚫고 사람 손이 덜 타는 뒷산 골짜기 샘터를 찾아가, 천천히 길어 올린 샘물을 하루치만큼만 작은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았다. 출렁이면 효험이 떨어질세라 꽤 먼 길을 조심조심 머리에 이고 날랐다. 귀한 약재를 이슬 같은 샘물로 진하게 다려낸 탕약을 먹자 해윤은 3개월 만에 우선 낯빛이 밝아지고 병세에 눈에 띠게 차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곧 죽을 거라던 해윤은 구겨진 화선지 펴지듯 살아나 1년도 안 돼 다시 미아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때는 느그 어무이가 있어서…….”
준영은 또 그 어무이 소리가 거슬렸지만, 가슴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와 울컥했다.
3.
준영이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학교 마치고 오면 바로 독서실로 가서 공부했다. 저녁때 잠깐 와서 밥만 먹고 바로 다시 독서실로 갔다가 밤 12시 통금시간이 다 되어서야 세탁소로 돌아왔다. 보통은 상임에게 왔다고 인사하고 집 근처에 얻어놓은 형들과 함께 자는 방으로 바로 가버리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 날은 해윤이 술에 취해 들어와 상임과 가게에서 한바탕하고 가게 단칸방에서 떨어져 자는 날이다. 해윤은 술을 좋아했다. 온종일 다림질을 마치고 저녁 전에 나가 동네 친구들과 술 한 잔하고 밤에나 돌아올 때가 많았다. 준영이 엄마 눈치를 살피며 뭔 일 있었냐고 물었다. “일은 무슨 일, 느그 아부지 또 술 먹었지” 그러면 준영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엄마를 비스듬히 마주보고 가게 의자에 슬그머니 앉는다. 엄마의 하소연이 곧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상임의 하소연은 그야말로 언제나 대서사였다. 순서는 그때그때 달라지지만, 서울로 올라오기 전 시골에서 시집살이하던 시절부터, 그날 저녁에 있었던 일까지 이어지는 대하 드라마였다. 그 중에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가 ‘내가 우째 살리놨는데’,였다.
“아 글쎄에, 이장규 박사가 엄마 등을 탁, 치면서, ‘이제 살았습니다. 살 수 있습니다’ 이라는 거 아니가.” 지금의 길음역 주변 큰길가에 있던 내과병원의 이장규 박사가 검사를 해보니 암이 아니어서 수술만 잘 되면 치료할 수 있다고 진단 결과를 알려준 것인데, 엄마의 등을 '탁' 치면서까지 그렇게 기뻐하며 이야기했을까 싶기는 했다. 하기야 생때같은 어린 것들 셋을 두고, 지아비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청천벽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살 수 있다고 했으니, 상임은 평생토록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두고두고 당시의 상황을 감격적으로 회고했다. 재생되는 낡은 비디오 영상처럼 몇 번이고 똑같이 재현해내는 엄마의 표정 하나라도 놓칠세라 경청했던 준영은 지금도 마치 바로 앞에서 듣고 있는 것처럼 엄마의 흥분된 목소리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애들 아버지를 살려낸 무용담으로 고조된 상임의 하소연은 급전직하, ‘가당찮은 외간 여자’의 흑역사 이야기로 고꾸라졌다.
어느 날 웬 낯선 여자가 고향집 삽짝 문 앞을 얼쩡거리며 두리번대고 있었다. 꽃무늬가 과하지 않게 언뜻언뜻 들어간 원피스 차림에 굽이 낮은 까만 구두를 신었고, 어깨에 닿을 듯 말 듯 숱이 많은 머리를 가지런히 내렸는데, 누가 봐도 도시 여자였다. 마침 해윤의 아버지와 집안 시제(時祭) 일을 의논하고 돌아가던 동네 할아버지뻘 어른이 마당에서 여자와 마주쳤다. 해윤네 집안은 종손 줄기라 항렬(行列)이 낮다보니 새파란 청년이 아재요, 중년 초입만 되도 할배뻘 어른이 동네에 즐비했다. 마당에 선채로 쭈뼛대는 여자의 몇 마디 이야기를 듣던 할배 어른은 알겠다며 고개를 연신 끄덕이면서도 안채를 흘끗흘끗 돌아보며 여자를 내몰 듯이 밖으로 안내했다.
열여덟 꽃다운 청춘에 시집온 지 몇 달 만에 전쟁이 터지고, 애가 생기자 바로 남편은 전쟁터로 훌쩍 떠나버리고, 상임은 그 빈자리가 허전하다 못해 서럽고 시렸다. 상임은 워낙 건강 체질이었던지, 누가 보면 입덧을 하는지 마는지도 모르고 넘어갈 정도였다. 하기야 입덧을 한들 누가 챙겨주고 알아줄 형편도 아니었다. 발길질 하는 뱃속의 첫애를 감싸고 서러워 밤새 눈물로 지새우던 날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새벽에 눈뜨면 대식구들 아침 끼니 준비하고, 설거지한 그릇들 가마솥단지 옆에 엎어놓자마자 바로 밭에 나가 땡볕 아래 종일 엎드려 있었다. 중간에 돌아와 참 준비해 서둘러 다시 나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에나 돌아오면 다시 저녁꺼리 준비했다. 그 와중에 애 챙기랴 빨래하랴, 집 안팎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다보면 하루가 휘딱 지나갔다. 저녁 설거지 마치고 썰렁한 방에 들어가 애 재우다보면 어느덧 장닭의 홰치는 소리에 놀라 깨나 또 하루를 이어갔다. 독수공방에 서러울 새조차 없었다. 계모 시어머니에 큰동서 시집살이까지 하며, 밤마다 남편 무사히 돌아올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어느새 첫 아이도 태어나고 이 집안의 어엿한 둘째 며느리 위상도 자리 잡혀갔다. 마침내 전쟁이 끝나고 해윤도 다친 데 없이 무사히 귀향하자 상임은 더 바랄 게 없었다. 해윤이 농삿일에 열심인 것도 아니고, 허구한 날 마음 떠난 사람처럼 멍하니 들판 너머를 바라볼 때가 많아 불안했지만, 마당을 뛰어다니는 아들에게 만큼은 다정했다. 수시로 애 손잡고 들에 나가기도 하고, 장독에 장 뜨러 마당에 나갔다가 어깨에 애를 무등 태워 어르며 삽짝에 들어서는 해윤의 모습을 보면 상임은 그저 흐뭇하고 행복했다. 어느새 둘째도 들어서고, 첫애 때 누리지 못한 것까지 다 보상받고 싶었다. 세상 부러울 것도 꿀릴 것도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둘째 만삭 무렵에 들이닥친 외간 여자라니, 상임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피가 거꾸로 치솟았다.
“아니 가당치도 않은 기, 여가 오데라고 지 발로 찾아온단 말이고. 내가 기가 매키서”
남편의 바람도 억장이 무너질 일이지만, 조강지처가 시퍼렇게 살아있고 애까지 낳아 키우고 있는 집에 외간 여자가 드나드는데, 그 꼴을 보고도 시아버지가 모른 척 헛기침만 하며 상임을 피하듯 외면하는 게 더 분하고 서러웠다.
“아버님도 그렇지, 우째 그 뻔뻔한 걸 바로 안 내쫓고 집에 들인다 말이고. 내가 그 생각만 하몬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는다.”
상임은 이날을 잊을 수 없었다. 남편도 남편이지만 시아버지가 야속했다. 시댁 식구들 모두가 자신을 배신하고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고 두고두고 이날을 떠올렸다. 해윤이 속을 썩일 때마다 항상 이날의 사건으로 넋두리를 시작했다.
4.
그때는 느그 어무이가 있어서…… 황노인은 막상 입 밖으로 말이 나오고 보니 죽은 아내가 새삼 그리운지, 움푹 꺼진 채 흐리게 껌뻑이던 눈에 어느새 눈물이 차올라 반짝였다. 준영은 황 노인의 눈을 슬그머니 외면했다. ‘느그 어무이’라는 존칭이 어쩌면 빈말이 아니고 엄마에 대한 애틋한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난 것 아닐까 싶어 아버지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어쩐지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순 없었다. 준영은 이런 어정쩡한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눈물을 짓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더욱 안쓰러워 얼른 이 분위기를 벗어나고 싶었다.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질문을 불쑥 던졌다.
“아버지, 그때 그 여자 누구였어요.”
갑작스런 질문에 황 노인은 살짝 당황하면서도, 그동안 그 일로 아내에게 수시로 당했던 게 억울했던지 눈이 커지고 방 벽에 기대놓았던 등을 당기며 해명을 했다.
해윤은 6.25가 터지자 공군에 입대했다. 서울 대방동 공군본부 근처에 배치를 받아 복무를 할 때, 영등포 지역의 관공서 공무원이었던 한 여성을 알게 되었다. 당시 해윤의 보직이 비행기에 급유하는 항공유를 비축하고 관리하는 일이었는데, 전쟁 중이라도 기름 빼돌리는 비리가 심심찮게 행해져서 병사들 손에도 콩고물이 조금 묻었는지, 해윤은 난봉꾼 흉내를 제법 내고 다닌 모양이었다. 휴전이 되고 제대하자마자 해윤은 바로 고향집으로 내려왔는데, 여자는 해윤을 못 잊어 수소문 끝에 해윤의 고향집을 알아내 찾아왔던 것이다. 해윤의 고향집에 와 보고나서야 해윤이 이미 혼인을 했고, 마당에 뛰어노는 큰놈에 다음 달이 산달인 둘째까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네 사람들도 난데없이 나타난 멀쩡한 젊은 처자의 딱한 처지를 알고 나서는 차마 모질게 내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조강지처가 엄연히 살고 있는 집에 두는 것도 피차 도리가 아니라서 일단 동네 빈집에 머물게 해놓고는 다들 난감해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분에 못이긴 여자가 당장 죽어버리겠다고 소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혹여 상임 귀에라도 들어갈까 쉬쉬 하면서 쩔쩔매다가, 결국은 동네 어른들이 처자를 잘 달래서 이튿날 무사히 서울로 올려 보내고 끝이 난 일이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바람을 핀 거는 맞네요, 그럼.”
“하, 그기…… 고향 집에까지 찾아올 줄 알았나 오데.”
너무 억울하기라도 한 듯 해명을 시작할 때의 호기는 바로 수그러들었다. 70년 전의 일이라면 바위덩이였더라도 조그만 돌멩이 하나로 닳아빠지고 티끌로 날아가고도 남았을 일 같은데, 스무너댓 살 때의 그 일이 황 노인에게는 여전히 생생한 모양이다. 어쩌면 곧 죽음을 맞이할 지도 모르는데, 얼굴이 살짝 상기되고 겸연쩍어 하는 아버지의 표정을 보니 준영은 픽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