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5편
수필 - 2편.
1.
여 명(黎明)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열리고
맨처음 여명이 비추실 때
천만년 겨레의 터전을 삼으신
거룩한 내 나라 내 땅
느꺼워 고동치는 심장으로
백두대간 마루금을 밟고
반도의 어미산 태백을 우러러
천제단 돌탑 앞에 무릎을 꿇는다.
정월 초하루 신새벽
어둠 속을 헤쳐
겹겹의 능선 저 너머
칠흑의 장막을 거두고
밝아오는 동쪽 바다 여명의 빛이여
취한 듯 홍몽 속을 비틀거리는
미욱한 마음들 깨워주옵시고
이 겨레 하나됨을 이끌어 주소서.
2.
독 도 여
멀리 심해의 동쪽 끝
푸른 파도를 헤치고
배달 겨레의
넘치는 기상으로
우람하게 솟구쳐
하늘을 받치고있는
저기
두 개의 바위섬이여!
동도와 서도
정 많고 의좋은 형제
국토의 귀여운 막내동이로
서로를 마주해
겨레와 호흡하며
오천 년 유구한 역사를
지켜왔노니
독도여,
그대는 내 나라 내 땅의
자랑스런 수문장이었네.
3.
단천재 가는 길
‘역마’의 향수가
꿈엔 듯 생시엔 듯
언제나 남도길을 손짓하는
화개(花開)-
어미의 품속같은
지리산 자락을 휘돌아
모래밭도 강변도
그지없이 곱디고운 섬진강
그 물결 따라
화개로 이어지는
이 땅의 가장 아름다운 강변길
하동포구 팔십 리
쌍계사 흐드러진
십리 벚꽃길이 아니었어도
다도문화의 본향을 찾아
단천재를 가는 길이기에
소중한 발길이었지.
주인없는 빈 집 스쳐왔는데도
다도에 대해 많은 이야기
배낭에 하나 가득
담아올 수 있었네.
4
무심천의 빛
그대 간절히 고백하던 나라 사랑
그 마음 진작 알았기에
50년지기 무심천 친구들을 어울러
국토순례 거룩한 답사길 나섰느니
겨레의 숨결 역사의 발자취 찾아
내 나라 내 땅 속속들이 헤집기
헤어 보니 무릇 열다섯 해
나섰다 하면 백 명 이백 명
인도양 자카르타와 발리까지
우리들 발길 닿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랴.
오늘은 국토의 남단 마라도에 입맞춤하고
한라산 영봉을 우러러 기도하였네
벗이어, 무심천의 영롱한 빛이여
임은 우리들 가슴에 뜨거운 우정과
거룩한 국토애를 심어 주었노라
5 .
동 반 자
저기 자전거 노부부
해맑은 웃음을 보시게나.
질긴 자석의 인연으로
서로 당기고 끌어안아
살아온 평생.
사랑을 등 뒤에 싣고
바람을 가르는 나는 앞바퀴
햇살 미소로 믿고 따르는
당신은 뒷바퀴 되어
천생의 인연
하많은 세월 동행하는
그대와 나
아,
행복한 동반자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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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필
1. 방랑식객 임지호
여러 날을 벼르다 오늘은 강화도 외포리를 찾아 간다.
보고 싶은 그 주인공 우인(友人)은 가고 없지만 그냥 숨결이라도
나누고 싶기에 역마의 발길을 나서보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인연도 참 여러 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를 지칭한 대명사 방랑식객도
내 아호 낭산(浪山)도 모두 산골나그네 떠돌이가 아니겠는가.
오래 전에 방송에서 보고는 양평의‘산당(山)堂)’을 찾았다.
역마의 인연을 여기서 만났구나.
그도 나도 한 세상 이 땅의 곳곳을 떠돌며 낭인(浪人)으로 살았다.
내 역시 주말이면 배낭 하나 둘러메고 내 나라 내 땅의
온 산야를 구석구석 찾아 헤매며 이 나이까지 지내왔다.
허무러진 성터를 찾아 역사의 회고지정에 젖기도 하고
이끼긴 비석 깨어진 기왓장을 쓰다듬으며 한 세상 호령하던
영웅호걸도 세월 속에선 한낱 덧없는 존재임을 느끼곤 했다.
그저 그냥 떠돌아다니는 산 팔자 물 팔자가 좋았다고나 할까.
만나면 마음이 통하고 서로간 떠도는 영혼이 통했다.
방랑식객 임지호-
세상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할 것이다.
이 땅 위에 피어나는 모든 산꽃 들풀들이
그에게는 모두가 음식의 재료가 되고 가난을 뛰어 넘어
생명을 키워내는 식량이 되는 것이다.
그의 이름을 타고 ‘산당’이 고급 한식점으로 떠오르며
그의 삶도 안정되고 정착을 해야 했다.
더욱이나 방송 출연이 잦다 보니 방랑식객이라 하면
모르는 이 없을 정도의 유명인이 되었다만,
아무래도 역마살의 태생적 성정은 감출 수가 없나 보다.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말 한 마디마다 인자하고 착한 성품이 묻어난다.
텁수룩한 얼굴에 가녀린 미소를 잘 띄운다.
그러나 그의 미소는 어딘가 외롭고 쓸쓸하며
역마살을 떨치지 못하는 나그네의 고독감이 서려있다.
한약방을 운영하던 아버지의 혼외자로 태어나
생모를 일찍 여의고 부친에게 들어갔으나 적응이 쉽지 않았나 보다.
그래 소년기에 아예 집을 나와 유랑길에 나섰다 했다.
부친의 유전자를 타고난 탓에 각종 산약초에 깊은 안목이 있었다.
산골에 들면 산자락 밭둑에서 뜯어온 산야초로,
바닷가에 들면 온갖 이름 모를 해초들로
이것저것 걷어다 경로당 노인들에게 음식을 차려드렸다.
일찍 돌아가신 생모님에 대한 추억으로 노인들을 찾아 대접했다.
그의 손에서 만들어 지는 음식은 생전 먹어 보도 못하고
들어 보도 못한 이름도 모를 새로운 요리들이었다.
‘산당(山堂)’은 그가 운영하던 한식점의 상호다.
양평 강하면에서 강화 외포리로 옮기고 나니
더 멀어진 거리에 가끔 찾기도 쉽질 않았다.
때가 되면 둘이서 길을 나서 보기로 했었지.
음식 만들기에 관심이 있는 나는 그에게서 요리를 배우고
그는 나를 따라 국토 구석구석의 사연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던 그가 재작년 2021년 어느 날,
돌연 숨을 거두었다는 비보가 방송을 통해 들려왔다.
겨우 65세인데 때 이른 죽음이다.
영혼의 길동무를 잃은 슬픔이 오랜 세월 아픈 추억으로 남는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아깝고도 안타까운 사람이라고.
그의 유일한 저서 『임지호의 밥 땅으로부터』가
생전에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출간되었다.
부인 최원정 여사로부터 한 권을 건네 받고
내 책 『낭산 이야기』와 『내 나라 내 땅』을 드리고는
외포리 겨울 바다 차가운 바람 속에
허허로운 발길을 돌아서야 했다.
2023. 12. 1.
2.
천박한 외래어 남용
얼마 전에 만났던 어느 70대 노년의 말이다.
"지난 주 북한산에 갔더니 녹음도짙어지고 뷰(view)가 아주 좋더라."
"요즘 제천 청풍은 케이블카 모노레일로 한창 뜨는
핫 플레이스 (hot place)한 곳이야.“
뷰(view) 니 핫 플레이스 (hot place) 등은
근래 들어 부쩍 많이 들려오는 말이다.
글쎄, 이런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케이블카나 모노레일은 외래어로 굳어지다시피 했다.
그러나 뷰, 핫플레이스는 아무리 양보해도 쉬 수용되지 않는다.
또 하나.
우리 동네에 지금 재건축 바람이 불어 새 아파트가 우후죽순 들어선다.
기존엔 ㅇㅇ주공 1단지 2단지 3단지 ᆢ9단지라 불렀다.
그런데 새 집으로 바뀌면서 모든 단지가 모조리 해괴한 이름
으로 둔갑했다.
디에이치퍼스티어하이파크아파트, 래미안블레스티지아파트,
디에이치아너힐스아파트, ㅇㅇ프레지던스자이아파트,
디에이치자이ㅇㅇ아파트,
숫자 차례로 부를 땐 쉽게 기억이 되고 위치 파악이 되었지만,
고급(?)한 새 명칭은 너무 길고 어려워 기억도 안되고
위치 구별도 잘 안된다.
내 실력으로는 의미도 감이 잘 안 잡힌다.
시쳇말대로 늙은 시부모 찿아오지 못하도록 애써 지은 교묘한 이름들이다.
30년을 넘게 이 동네에 살았는데도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재건축 차례가 가장 늦기에
조합장에게 쉽고 짧게 이름짓자고 당부한 적이 있다.
지방도시에도 신축 아파트는 거의가 외래어 명칭이다.
국제화 시대에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대기업이 명칭을 영문으로 바꿔 표기할 수 있다.
아파트도 글로벌 시대에 해외로 나갈 것인가?
우리 언어 생활을 자국어 고유어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
외래 문물의 유입에 반드시 외래 언어가 수반된다.
우리말 표현이 어색하거나 불편한 것이야
부득이 외래어 외국어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평이한 일상어까지 자국어를 외면한다면 이를 뭐라고 해야 할꼬.
지나친 표현이겠으나, 식민지 백성의 노예 근성이라고 무시당할 만하다.
언어는 자신의 인격이고 교양의 수준을 나태내는 척도다.
더 나가서는 국민의 자존심이며 국가의 위상을
좌우하는 중요한 지표가 되는 것이다.
202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