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청산과 녹수의 비명(간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삶 3제
--청산과 녹수의 비명을 듣고 있는가
올 여름은 우리 생활 주변에서 많은 위기의 상황을 견디었다. 지난봄부터 창궐(猖獗)한 코로나19라는 괴질이 아직도 기승을 부리면서 온 국민이 위난의 시대에 직면하고 예방과 치료에 국력을 집중하고 있는데 하절기 특유의 기온 현상이 또 다시 우리들을 위험한 지경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우리의 의료진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봉사로 코로나는 확진이 약간 감소하고 있으나 그래도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유난히도 그 위력을 과시했던 태풍 마이삭이 서해 쪽을 휩쓸어서 폭우로 온 산천을 물바다로 만들었고 다시 하이선이 동해 쪽을 강타하여 폭우와 폭풍으로 가옥이 파괴되고 전답이 침수되어 농작물의 가을 수확이 불가능하는 등의 수해는 우리들을 물심양면으로 우울하게 하는 고뇌와 원망의 시대에 살고 있었다.
이러한 천재지변의 상황은 피해 주민들의 한숨과 절망으로 변해서 복구의 의지마저 상실되어 가고 있는 현장에서는 다소 분노의 소리도 들린다. 울창한 산야의 나무와 숲을 마구 잘라 내고 골프장을 만든다, 또는 산등성이를 깎아내어 아파트를 짓는다는 등의 산림을 훼손해서 인간들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정부의 시책에서 실망하면서 이는 천재가 아니라 인재라고 항변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금수강산이라고 한다. 이 수려한 강산이 어떤 이익집단의 개발경제논리로 마구 파헤쳐서 나무와 숲은 설 땅이 점점 줄어들어 산은 벌거숭이로 변하고 비가 약간 억세게 쏟아져도 산사태가 일어나고 저수지 둑이 터지고 제방이 무너져서 산천이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는 현상을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옛 시에 ‘청산은 불묵이라도 천추화(靑山不墨千秋畵)요, 녹수는 무현이라도 만고금(綠水無絃萬古琴)이라’라고 읊었다. 청산은 물감이 없어도 천년동안 감상할 수 있는 그림이며, 계곡 맑은 물은 줄이 없어도 만년을 들을 수 있는 거문고라는 산천경개의 아름다움을 유장(悠長)한 정감으로 들려주고 있다.
우리들의 자연 파괴현상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그만큼 이 지구촌의 재앙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존의 수림을 찍어내고 개발해서 청정대기가 희박해지고 화산 폭발이 빈번해서 오염된 공기로 호흡을 해야 하는 생명의 위기를 먼저 눈치 챈 청산과 녹수가 절규하고 있다. 오호라, 사람들이여, 저 비명을 듣고 있는가.( 2020. 10. 문학의집 서울 <문집>)
-공원 숲길 산책과 걷기 운동
지난봄부터 코로나 19라는 괴질(怪疾)이 산자수려한 이 강산을 위난의 세상으로 뒤흔들어서 즐겨하던 등산을 할 수 없게 되면서 마을 근처에 있는 공원 숲길을 걷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산을 오르는 일은 건강에 좋은 유산소 흡입으로 심신을 단련하는 운동에 목적을 두지만 자연경관과의 교감을 통해서 시적인 감응으로 작품을 구상하는 적절한 기회도 동시에 가질 수가 있어서 매주 하루는 자연속으로 산행을 한다.
요즘은 모든 행사가 중단되고 사람들 만나는 일을 멀리하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하기 등 일상생활에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아직도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어서 국가적으로 위기의 시대를 극복하려는 노력에 부응하기 위해서 될 수 있으면 외출을 삼가하고 집에서 독서 등으로 소일하는 틈서리에서도 근린공원 숲길을 걸으면서 계절적인 순환의 정경에 흠뻑 젖기도 한다.
봄 햇살이 따사로운 숲길에는 바람소리, 산새소리에서 그동안 지쳐있던 영육이 생기를 얻어서 삶의 의욕을 충전시키고 지천으로 피어나는 꽃들의 향연에서는 새 생명이 소생하는 감동으로 새 희망이 넘친다.
정비석의 「산정무한」과 박두진의 「청산도」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고즈넉한 오솔길에 빠져들면 만유(萬有)의 자연과의 진지한 대화가 시작된다. 거기에는 정다운 시가 있고 흥겨운 노래가 있어서 온몸 전율하는 정감의 환희를 음미한다.
봄이면 새싹 움트고 여름 청산, 가을 단풍, 겨울 설산, 사계절의 변화무쌍한 정취에 동화하는 오솔길에서 가슴 풀어 헤지고 마음껏 피톤치드를 마시면 오염된 세상의 자연과 우리들의 삶에 활력소를 보충하는 건강을 여기에서 찾으면서 자연 친화의 시도 한 편 흥얼거린다.
‘청산과 녹수가 한 무리된 이 세상에는/ 너와 내가 호흡하며 살아가는 지상의 낙원/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한 자락 사랑의 언어가 울려 퍼지는 숲’에서는 대자연의 조화를 실감하게 된다.
하루 빨리 이 괴질의 위난을 극복하고 공원길 걷기에서 벗어나 활기찬 산행으로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가서 자연과 동행할 수 있는 온화한 세상이 그립다. 지금도 숲의 속삭임은 우리들을 안타깝게 손짓하고 있다.(2020. 7.-문학의 집 「그래도 꽃은 핀다」)
-목멱산(木覓山) 자락에서 피는 시의 꽃
언젠가 남산 국립극장 마당에서 출발하는 ‘거북이 마라톤’이란 게 있었다. 아마도 한국일보사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개최하는 건강행사였지 않나 싶은데, 이른 새벽부터 전 가족이 함께 남산길을 한 바퀴 돌고 다시 극장마당에 모여 다채로운 후속 이벤트를 마치고 해산하는 멋진 아침운동이었다.
이 남산길을 돌다보면 남산도서관과 용산도서관 못가서 ‘소월시비’가 서 있다. 누구나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시비에 새겨진 시를 읽는 정경(情景)은 아침 햇살과 함께 정겹기만 하다.
누군가 소리내어 읽는다. ‘산에는 꽃피네 / 꽃이 피네 / 갈 봄 여름 없이 / 꽃이 피네 // 산에 / 피는 꽃은 /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 꽃이 좋아 / 산에서 / 사노라네 // 산에는 / 꽃이 지네 / 갈 봄 여름 없이 / 꽃이 지네.’ 누군가는 박수를 치기도 하고 가곡으로 한 곡조 뽑기도 한다.
이 남산을 옛날에는 목멱산이라고 했다. 조선이 개국이후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고, 도성남쪽에 위치해 있는 산이라서 남산이라 불렀는데 원래 이름은 목멱산이었다. 목멱은 우리의 옛말 마뫼로 곧 남산이라는 뜻이었다.
산의 높이는 262m 이지만 앝으막한 산책로에서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나 신록의 여름, 가을의 낙엽, 겨울의 설경을 감상하면 목멱산의 참 맛과 그 향기를 느끼게 된다.
소월시비를 뒤로 하고 명동쪽으로 내려오면 우리 문학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문학의 집 서울’을 만나게 된다. 여기에서는 온갖 문학행사를 접할 수가 있는데 자연사랑문학제가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심포지엄, 시민시낭송회와 각종 문학행사(문학상 시상식, 출판기념회 등등)가 열리고 있어서 문인들이 많이 드나들면서 서로 교감하고 있다.
지난 2009년 10월 어느 가을날에는 여기 산림문학관에서 조선일보사에서 후원하는 ‘책, 함께 읽자’ 행사에서 ‘김송배 詩 읽기’를 개최하여 나의 애송시 40편을 읽는 대성황을 이루고 많은 시인과 독자들이 공감하는 시와의 만남이 있었다.
지금은 문학의 위기를 말한다. 사람들이 문학서적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에 매달려 자기의 영혼을 소진시키는 기현상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시집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은 오래전의 이야기이고 대학에서는 문사철(文史哲)의 학과가 위기에 놓였다는 풍문이 사실로 나타나고 있어서 안타깝다. 그러나 이 남산 자락에 들어와 보라. 언제나 시의 꽃이 피고 그 향기가 우리들의 영혼을 안온하게 진동시키고 있을 것이다. 시여 비 개인 남산자락에 걸린 무지개로 영원하라.(문학의 집. 서울)
이 가을, 시집 한 권 읽읍시다
벌써 귀뚜라미가 울어쌓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연일 단풍 소식과 함께 행락인파들이 언론매체를 장식하고 있다. 가을은 분명히 풍요의 이미지를 풍긴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이 시대의 가을은 물질적인 풍족보다는 정신적인 빈곤이 대칭적으로 상기된다. 왜일까. 지금 우리는 인문학의 위기시대를 맞아 정서의 궁핍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어서일까.
우선 요즘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경쟁사회에서 요행수를 바라거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만 건재하면 그만인 무서운 세상에서 독서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차라리 주식에 투자하고 복권이나 사고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터득하는 편이 자신을 위해서 가장 바람직하다는 정서의 형태는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를 병들게 하고 말 것이다.
옛날에는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고 해서 가을은 독서의 계절로 책 읽기를 권장했으며, 공자는 주역을 너무 많이 읽어서 책을 꿰맸던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韋編三絶)는 고사도 있다. 또한 남자는 오로지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男兒須讀五車書)는 등의 교훈은 그 의미가 퇴색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학생들은 학교에서 입시 교육의 포로가 되어 있고 일상인들은 텔레비전과 사이버공간에서 영상매체들과의 단순한 교감에서 맛보는 일시적인 쾌감에 매혹되어서 책은 아예 가까이 하지 않는 생활의 연속이니까 국민 정서가 말라붙어서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이기주의가 팽배할 수밖에 없는 무서운 사회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구조변경이나 국민생활의 개혁은 독서를 지향하는 의식의 정립을 위해서 국가가 정책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문학교육을 통한 정서의 올바른 이해와 조화를 탐색하는 사색이 필요하다. 사색의 중심축에는 독서가 방향을 제시하고 있어서 문학서적의 탐독이 더욱 절실해 진다.
우리 문학인들은 이러한 여건에서도 대체로 독서에 충실하고 있는데 이는 그의 체험이 작품 창작에서 소재나 주제의 투영에 절대적인 몫을 한다는 점을 유념하는 것 같다. 문인들이 재생하는 체험중에는 직접체험도 중요하지만, 간접체험 특히 독서에서 얻어지는 지적 자양분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이 작품 속에서 값지게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일찍이 데카르트가 말했듯이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의 가장 뛰어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는 명언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독서의 효과나 그 필요성은 지성인들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생활화하는 인생의 덕목으로 깊이 간직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 원로 시인 한분이 내게 작품을 쓰면서 국어사전을 몇 번 읽었느냐고 물어본 일이 있었다. 나는 대답을 못했다. 한 번도 제대로 읽은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흔히들 문학에서 말하는 쾌락적인 기능이 전혀 없는 사전을 몇 번씩이나 통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후 언어에 대한 고갈에 직면하면서 그분의 말이 옳구나하는 마음으로 변해서 당장 교보문고로 달려가 세 권을 한꺼번에 구입하고 안방과 마루, 심지어 화장실에까지 던져두고 손닿으면 무작위로 읽어서 언어를 보충했는데 지금도 그 방법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어떤 용도에 따른 적절한 독서가 아니라, 마음의 양식이 되는 독서를 하고 교양을 충만시키는 지식을 확보하는 일들이 습관화해야 우리가 걱정하면서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인문학 곧 문학, 철학, 사학이 제대로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을에는 누구나 시집 한 권씩은 읽어야 한다. 시 한편 한편에서 감응할 수 있는 인생의 가치관이나 존재의 의미를 다시 음미해 볼 수 있는 진정한 방향의 메시지가 제시되어 있어서 요즘처럼 을씨년스런 정서의 충전을 위한 한 방편이 되지 않을까 싶다. (2011. 3. [대산문화] 겨울호)
글감이 있는 그곳
--시의 꿈이 영글었던 ‘황강’ 은모래
서부 경남 오지(奧地) 산촌에서는 가뭄이 극에 달했다. 타들어가는 논바닥을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모내기를 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들판이 모두 말라비틀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랑물은 마른지 오래고 저수지도 말랐다.
태양이 작열하는 산동네에는 한(恨)으로 단련된 주름살이 늘어만 갔다. 나는 고향이 경남 합천이다. 아버지의 한숨소리 사이로 얼비치는 산그림자를 따라 다녔다. 송아지 꼬삐를 끌고 저녁해가 저물도록 풀밭에서 하늘을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좀 자라서는 꼬부랑 산길을 쫓아 면소재지 학교에 가면 그 옆으로 흐르는 황강의 넉넉한 물길을 따라 다녔다.
은모래가 반짝였다. 발가벗은 채로 마구 뒹굴었다. 가끔 은어떼 뛰어오른 은빛 물결에 넋을 잃었다. 우리는 씨름을 하다가 지치면 강물 속으로 풍덩 몸을 던져 땀을 식혔다. 이렇게 아름다운 고향이 있었다.
우리 집 뒤에는 대나무숲이 있고 그 뒤에는 동산이 있었다. 그 뒷동산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면 초가지붕마다 피어오르는 저녁 연기는 한 폭의 그림이어서 해질녘이면 혼자 앉아서 전원 속에 파묻혀 옹기종기 살아가는 산촌의 정겨운 모습은 바로 나에게서 시로 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중환(重患)으로 세상을 떠나고부터 우리집은 삶이 중단되는 고난이 시작되고 나는 진주로 대구로 부산으로 방황을 시작한다. 학업을 포기하고 실의의 나날을 보내던 중 책 몇 권을 챙겨들고 해인사로 튀었다.
여기에서는 대자연의 소리-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독경소리 등에서 어떤 깨달음의 정감을 느끼게 되고 인생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아주 고매(?)한 의문에 몰입하게 된다,
시를 썼다. 시인이 되어야겠다. 고향의 전원을 소재로 하고 산촌에서 착하게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심정을 주제로 했다. ‘바람 부는 날은 흔들리는 풀잎을 닮아 나의 가슴앓이가 시작된다. 하늬바람에도 온몸으로 웅성대던 어릴 적 대숲으로 가보면, 게딱지 초가지붕 위로 너울대던 저녁연기는 따스한 한 폭의 정경으로 채색되어 내가 자라서도 남아있기를 염원하던 동심을 청솔밭에 묻어둔 채 시를 쓰는 일은 조그마한 향수에서 출발한다’고 첫 시집 『서울허수아비의 수화』후기에서 말했다.
나는 네 번째 시집을 고향 합천 이야기로 묶었다. 시집『황강』이다. 고향의 풍습과 전설, 자연환경, 추억 등 88편이 담겨졌다. 성춘복 시인은 내 시집 『황강』을 읽고 ‘인간에겐 생명의 모태로서의 자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돌아가야 할 본질적인 장소로 생명의 시원을 나타내고 바로 고향의 의미를 지닌다’는 서평을 해 주었다.
허형만 시인도 ‘자연을 소재로 쓴 향토적 정서의 시가 한국적 전통의 동일성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김송배 시인의 고향의식은 단순한 시적 소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정신으로까지 승화하고 있음을 본다.’라는 평문을 써주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조상들의 유택(幽宅)이 모셔진 고향을 자주 찾지 못했다. 황강 은모래 사장도 많이 변해 있었다. 합천댐을 막아 강물길도 변하고 갈대밭으로 이어졌다. 읍내 바로 옆에 서있는 함벽루에서 가끔 황강을 회상했다. 나는 영원한 전원적 자연 서정시인이기를 염원하면서-.
댐 막아 사는 일들이 편리해졌다만, / 동네 꼬맹이들과 함께 헤엄치던 / 모래밭엔 무성한 갈대로 뒤덮혔다 // 은모래 보이지 앟고 / 은어떼는 왔다가 갔는지 / 한 나그네가 떠듬거린다 // 다시 황강에 와서 / 너의 품에 안기려 하노니 / 맑은 시혼은 예대로 남았는가 // 이젠 반백(半白)의 회상이 / 흘러흘러 아득한 꿈길로 / 함벽루 물길에서 영혼을 만나고 있느니.
-- 「다시 황강에 와서」 전문
내 고향 합천에서는 남명 조식, 정인홍 등 명유(名儒)의 선비들이 많이 탄생한 고장이다. 함벽루에는 퇴계 이황, 우암 송시열 등 시인 묵객들이 풍유를 즐긴 곳으로 유명하다. 팔작지붕 목조와가로 누각 처마의 물이 황강으로 떨어지는 장관(壯觀)은 시의 물결로 지금도 출렁이고 있다. 나는 그곳에 묻히고 싶다.(<문학의 집 . 서울>제165호 게재
책 부자의 부러움
옛말에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고 해서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그만큼 많은 책을 읽어서 보편적인 교양과 상식은 물론이려니와 전문적인 지식도 비축해 두어야 비로소 인간다운 인격체가 완성된다는 교훈이다.
어릴 적에 큰댁에 할아버지가 거처하는 사랑방에 가보면 책이 가득 쌓인 책장과 머리맡 책상에서 수시로 펼쳐지는 책을 보고 나도 커면 저만큼의 책을 읽어야 되겠다는 꿈을 항상 되새기면서 자랐다.
할아버지는 농번기를 제외하고는 매일 새벽에 사촌, 육촌형들을 불러서 천자문(千字文)을 비롯해서 동몽선습(童蒙先習)과 명심보감(明心寶鑑)을 가르쳐주는, 집안 자녀들의 교육에도 세심한 배려를 한 덕분에 지금 나도 내 또래들에 비추어 한자를 많이 알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또한 이러한 가정의 한자교육에는 비단 한자글을 익히는 것만 아니라, 그 내용에 포괄된 의미를 배우고 다시 해석함으로써 인간의 도리, 즉 인격적인 성숙을 통해서 사회적, 인간적인 윤리와 도덕을 실천하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사소한 독서의 시작이 지금 내가 문학을 공부하고 시를 창작하는 출발점이 되었으며 얼마나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투영할 수 있는지 생각만 해도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명제를 완성하려는 의지에 넘치고 있다.
이처럼 책과의 교감은 나의 문학을 위해서도 깊은 관련이 있어서 더욱 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게 하는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짬만 나면 서점에 들려서 책을 구입하는 습관이 생기기도 했다. 비록 그때는 생존에 바빠서 금방 읽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정년퇴직 후 시간의 여유를 갖게 되면 모조리 다 읽을 것이라는 집념으로 나의 서가에는 책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나의 소년기에는 사실 책 한 권 제대로 사서 볼 가정형편이 되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사촌형에게 읽고 난 책을 얻어서 읽을 정도로 집안이 궁핍했던 경험도 그후에 책을 구입하는 버릇으로 변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돈보다는 책이 더 많아야 한다는 어린 심중(心中)이 지금의 지적인 영양분의 흡수에 작용을 해서 작품의 주제에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서가에는 아직 분류되지 못한 책들이 무질서하게 나의 시선과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우선 창작에 필요한 책만 선별해서 책상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만나고 있었으나 일반교양과 선각자나 선지자들이 펼친 지성의 깊은 서적들은 아직도 서가 한쪽에 장식품처럼 웅크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한편 내가 이제는 등단 30년을 맞이하여 집필자의 위치에 서면서 시집 9권과 수필집 4권, 평론집 4권, 시창작교재 2권 등 무려 20권의 책을 발행하는 동안 많은 시집과 소설, 수필, 아동물 등 하루에 몇 권씩 우편으로 책을 받아본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월간, 계간 문학지들이 쏟아져서 좁은 단독주택에 쌓아둘 공간이 모자란다는 어려움도 있다.
어떤 집이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그의 책장에 책이 가득 차 있으면 어쩐지 넉넉한 정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그 사람이 지적 창고에 보관된 지식이나 교양의 척도를 예감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런 사람은 부럽기도 하다. 서가에 가득한 책뿐만 아니라 그런 여유를 가지고 독서를 하면서 한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지금도 시창작 수강생들에게 나의 경험을 통한 책 읽기를 권장하고 있다. 창작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위해서 꼭 읽어야 한다는 말을 덧붙여서. 그것은 구약성서의 창세기와 싯다르다, 그리스 로마의 신화 그리고 삼국유사를 권한다. 거기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유의 행방이 집약되어 있다. 물론 고전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된다. 우리의 고전은 대체로 한자로 되어 있어서 요즘 같아서는 한자공부를 충분히 하지 않으면 읽고 의미를 숙지하게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일찍이 책이 없는 공허는 영혼이 없는 관계와 같다는 키케로나 책에는 모든 과거의 영혼이 가로 누워 있다는 칼라일의 명언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책과 독서의 중성은 인생의 가치 확인이나 존재의 성찰 그리고 만유(萬有) 자연 철리의 긍정을 위해서도 서가에는 항상 책이 넘쳐나야 하리라. 그리하여 모두가 부러워하는 책 부자가 되리라.
( 2012. 2. 『한국수필』-「책이 있는 풍경」] )
해인사 숲속에 누워
오래전 군복무를 마치고 아늑한 고향 산골에서 그동안 군생활의 피로를 풀 겸 한가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문만 열면 앞뒷산이 반겨주는 지독한 산촌에서 심신을 채충전했던 시간은 일생동안 잊을 수 없는 전원생활의 체험이었다.
산촌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자라고 학교를 다녔지만, 이곳이 정녕 내 고향이며 내가 성장하여 영원히 뼈를 묻어야 하는 보금자리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 채 농삿일을 거들면서 농군을 자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군대를 제대하고 귀향했을 때 그만큼 장성한 육체와 더불어 정신도 변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도시의 화려한 생활에의 동경이었다. 사유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이를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보자는 어른스런 화두가 날마다 괴롭혔다.
평소에 아껴서 읽던 책 몇 권을 챙겨들고 해인사로 가서 얼마간 머물렀다. 당시 여기에는 고시 준비생, 질병 치료차 요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암자를 소정의 절차를 거치면 며칠 동안 빌려서 사용할 수가 있었다.
새벽 염불이 끝나면 하루 종일 화두를 풀어내는 스님들처럼 면벽을 하거나 암자 옆으로 흐르는 개울물 소리를 듣는 일로 소일하고 있었다. 염불 소리와 개울물 소리에 밤잠을 설치는 일이 매일 발생했다. 이를 수용 못하는 번뇌가 아직도 이 영육을 감싸고 있구나하는 성찰의 소망만이 뇌리에 가득 차 있었다.
하루는 개울가 바위에 벌렁 누웠다. 울창한 삼림 속에 속세를 뉘었다. 싱그러운 숲의 내음에 취해서 심호흡을 하면서 빼꼼히 열려있는 파아란 하늘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소망을 띄워 보내는 여린 심사(心思)를 만끽하고 있었다.
아침 산사 주련에서 본 글귀(文句)가 기억났다. ‘靜聽魚讀月’ - 무슨 뜻일까. 글자대로 하면 물고기가 달밤을 읽는다는 정도인데 스님의 해석은 시 문장이었다. 고요함에서 물고기가 읽는 달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나도 이 깊은 숲속에서 물고기의 명민한 청력을 감응해봐야지.
그 후 어느 가을날, 해인사 그 숲을 다시 찾았다. 심산유곡(深山幽谷) 계곡에 누워서 옛날에 썼던 시 한 편을 읽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 숲에 길게 누워서 번뇌를 앓고 있다.
‘가을 山寺에 후줄근히 비가 내린다/ 아침나절에 딩굴던 나뭇잎/ 뚫린 가슴픅에 날아와/ 오늘의 말씀들을 버리기 위하여/ 젖은 채로 안개 속을 떠다니고/ 굵은 빗방울이 인경을 깨워도/ 날지 못하는 꿈/ 낡은 꿈으로만 남아 있으리라/ 아, 걷어내지 못한 粉塵의 아픔 / 일백여덟을 헤아리지 못한 / 검은 구름은 밀려오는데 / 두 손 모두운 합장 / 그래도 모자라는 눈물처럼 / 늦가을 산사에 비는 내리고 / 지친 꿈속을 허우적이는 나뭇잎 몇 개 / 숲의 언어로 딩굴고 있었다.--「가을 산사에서」 전문
그후 합천문인협회(초대회장 윤한무) 창립에 기여하고 합천문협 초대 문학강연이 있은 후 해인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야로피출소 소장으로 있던 김원욱 시인의 안내로 해인사 경내, 대적광전과 팔만대장경, 성철스님의 거쳐였던 “퇴설당”을 돌아보고 온 적이 있었다.
나는 다시 고향 합천의 풍물 등을 탐구하는 시집 『黃江』을 펴내고 해인사를 또 하번 불러내어 교감하는 작품 「黃江. 20-해인사에서」를 수록하였다. 먼 옛날 홍류동 계곡 숲속에 누워서 흥얼거리던 독백의 언어와는 약간 불교의 진리에 접근하려는 심정이 엿보이고 있었다.
분명히 이승이다, 아름드리
길목 잣나무 잔잔한 회상
지금도 멈추지 못하는
홍류동(紅流洞) 계곡 물소리
어쩌면 우리 사랑을 잊어버린
날들이 한꺼번에 씻겨지는
은은한 숲 내음
그대여, 오늘은 목탁소리 귀기울이다가
가야천 드리운 나뭇잎 하나
둥둥 떠내려 보내지만
묵은 텃밭에 웃자란 잡풀 뜯어내어
고뇌와 묶어 흘려보낼 수야 있을까마는
삐리삐리 삐리리 산새 울음
젖은 가슴 속 회오리치면
그대여, 절반쯤은 극락이다
일주문 지나 봉황문 홍하문 해탈문 안으로
대적광전 큰 부처님 환한 미소
오오, 나무관세음보살--
가야산 먼 흰 구름 한 점은.
산촌에서 들리는 산바람, 물소리
요즘은 무시로 서울 근교의 운치 있는 곳을 찾아 가볍게 등산을 한다. 불광동 독바위 쪽에서 북한산을 오르다가 잠시 땀을 훔치면서 쉬고 있었다. 싱그러운 자연에 취해서 심호흡을 하고 오묘한 산세에 넋을 잃고 있을 때 계곡 쪽에서 귀에 익은 듯한 한 자락의 노래 소리가 들렸다.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넋을 놓고 경청하는 나에게 누군가가 “양희은 가수의 한계령, 좋아하나 봐요?” 홀로 수줍은 듯 나무숲에 숨어서 들려주는 구성진 한의 소리. 이 절창은 언제 들어보았던 선율인가. 산행을 중단하고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때마침 산바람이 목덜미를 시원하게 적시고 지나가고 있다.
나는 산촌에서 자라면서 전원생활의 안온함에서 체질화한 자연 친화에서 마주하는 산바람이나 물소리는 언제나 나의 시적 발상이나 동기가 되어서 자연 서정시의 근원이 되고 있어서 서정적인 자아 찾기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산행을 하면서 만나는 산바람과 물소리는 심신의 단련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어떤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정감으로 틈만 나면 등산을 하게 된다. 오늘 여기에서 듣는 양희은 가수의 애끓는 “한계령” 노래소리와 바람소리, 물소리가 삼중주로 흐뭇하면서도 유익한 산촌의 교감이 아니었나 심호흡을 하게 된다.
나는 유년시절에도 산촌의 밤을 흔드는 소리들에 익숙해져 있었다. 봄에는 개구리 소리, 여름에는 매미 소리, 가을에는 귀뚜라미 소리 그리고 겨울에는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밤 문풍지 소리들이 재생되어 상상의 나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언젠가 들은 듯 귀에 익었다
산촌의 밤을 몰래 흔들면서
길게 전율하는 신음이었다가
불면의 첫사랑이 꿈으로 보내 온
유혹이듯 설레임이었다
그것은 어느 소년의 노래였다
실버들 낭창낭창 춤추게 하고
이따금씩 산새들 합주가 시작되면
가녀린 사랑의 선율로 들린다
밤마다 깨운 적막은 켜켜이 쌓여
아직도 풀지 못한 그리움 한 자락
멀리서 전해주는 귀에 익은 목소리
그것은 차라리 동심을 풀어 흘려보내는
순하디 순한 흐느낌이었다
어디에선가 낯이 익은 듯
빛바랜 시간의 여백에서
온몸 적신 채 투명한 연가가 들린다.
--「물 詩 . 41-물소리」전문
이제 그 산촌의 밤에 들리던 물소리는 시간의 여백에서 표백되고 있다. 귀에 익고 낯이 익은 모든 것들은 하나씩 지워지고 있다. 어느 소년의 설레임과 순하디순한 흐느낌은 동화이거나 전설로 남으려 한다.
아직도 내 가슴속에서 떠나지 않는 그 소리를 듣기 위해 심산계곡을 찾는가보다. 불면으로 뒤척이던 첫사랑의 유혹은 지금까지도 내 곁에서 한 자락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다시 양희은의 한계령,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를 목청껒 불러봐야 하겠다.
* 윤제천 선생의 [수필공원]에 특집 수록
왜, 하필 또 바람인가
얼마 전 제13시집 『바람과의 동행』을 출간했다. 시집을 받아본 동료가 “하필, 어찌하여 또 바람인가?”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이 “하필”이나 “어찌하여” 등의 어구(語句)는 문법상 부사(副詞)로서 왜, 또라는 말로 그 이유를 묻는 경우의 질문이다. 나는 왜 “바람”을 작품에 자주 등장하여 그 의미를 탐구하는 것일까.
나는 『심상』지 등단 작품이 「바람」 외2편으로 그동안 많은 이미지를 탐구해왔다. 바람은 기압의 차이에 따라서 일어나는 공기의 흐름을 말하는데 계절에 따라서 혹은 장소 또는 방향에 따라서 그 이름도 다양하게 불려져서 바람이 제공하는 이미지는 무궁무진하게 우리 인간들과 상관성을 갖는다.
멀리서 쓰러진다./ 누군가 마른 풀씨만 씹다가/ 썩지 않은 마음 한쪽 남겨놓고/ 한생의 幕을 내리는가./ 하늘이 엷게 흔들린다./ 흔들리는 저 언저리/ 시린 시야 밖으로/ 돌아가 눕는 저녁 새떼/ 바람만/ 빗살고운 무늬로 어른거린다./ 오늘밤/ 귀에 젖은 물소리는/ 밤의 중심으로 흐르고/ 홀로 잠들지 못하는 섬 하나/ 거기에 나는/ 그리움처럼 남아있다.--「바람」 전문
이 바람은 흔들리는 이미지와 동시에 형체도 없이 묵시적으로 무엇을 제시하는 안내자이기도 했다. 바람 부는 대로 운명을 맡긴다는 속언(俗言)과 같이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나의 운명 같기도 해서 약간 측은한 정감이 엄습했다.
그 당시에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 대학노트에 빼곡이 메모되어 있는 바람에 관한 글들은 다채롭다. 먼저 계절풍, 춘하추동 사계절에 따라서 부는 바람, 봄바람(春風), 꽃샘바람, 산들바람, 건들바람, 찬바람(寒風), 삭풍(朔風), 북풍 등등. 바람부는 방향에 따라서는 높새바람(북동풍), 마파람(남풍). 하늬바람(서풍)이 있고 그 강도(强度)나 장소에 따라서 폭풍, 미풍, 강풍, 태풍, 해풍, 돌개바람(회오리바람) 등등으로서 바람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에는 매우 어렵고 바람이 갖는 이미지나 상징은 다양하게 나타나서 갈피를 못잡고 헤맨 적이 있었다.
남영신 교수의 『우리말 분류사전』(한강문화사)에 의하면 “바람” 항목이 무려 86개의 호칭으로 불려지고 있으나 눈에 익은 명칭이 있고 생소한 이름도 많아서 나는 이 외의 많은 단어를 이 사전을 참고해서 작품을 정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밖에도 바람이 갖는 재미있는 상징적인 비유가 있었다. 간추려보면 약간 위해적인 언어로 미풍양속에 어긋나기도 했다.
- 바람둥이 : 바람쟁이(風客), 바람을 피우고 다니는 사람
- 늦바람 : 늦게, 늙은이가 바람이 나다
- 바람기(끼) : 들뜬 마음
- 치맛바람 : 여자의 드세거나 극성스러운 활동.
- 바람몰이 : 어떤 일에 분위기를 선동하는 일.
- 바람잡이 : 허황한 짓을 꾀하는 사람.
- 바람맞다 : 남에게 허황된 일을 당하거나 속았다.
- 바람나다 : 이성관계로 마음이 들뜨다.
- 바람 들다 : 무가 푸석푸석 바람이 들다. 다 되어가는 일에 탈이 생기다.
- 바람피우다 : 한 이성에 만족하지 못하고 몰래 다른 이성과 관계를 가지다.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바람에 대한 시를 많이 썼다. 「바람사계」 「꽃샘바람」 「바람과의 동행」 「바람의 편린」 등에서 나의 진솔한 자화상이거나 당시의 애절한 심정들이 형상화하고 있었다.
한강 선유도엘 갔다/ 가볍게 산책을 할 요량으로/ 바람과 구름과 동행했다/ 입구 화단에서 만난 꽃/ 늦가을 햇살에 대궁만 흔들리고 있다/ 이제 벌 나비도 제집으로 돌아갔는지/ 형체도 그 소리도 사라졌다/ 윙윙거리며 채취하면서 남겨진/ 화분(花粉)으로 씨앗들이 여물어 가는데/ 아무도 예전의 희노애락을 생각지 않는다// 아늑하게 흐르는 한강물이/ 오늘은 어쩐지 더욱 한가롭다/ 문득, 옛말 무자서(無字書)가 생각났다/ 보이는 부분은 선명한데/ 지워져 숨겨진 뒷모습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을 읽어내는 것이 시다/ 한강 물구비와 선유도 바람이 어우러지는 숲에서는/ 가을나무들이 단풍잎 팻말을 들고 섰다/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저 글귀/ 저승과 이승의 갈림길을 안내하고 있었다.--「바람과의 동행」 전문
지난해에는 한국시인협회에서 매년 발행하는 연간 사화집에 주제를 자화상으로 해서 회원들에게 작품을 청탁하여 여기에 「바람의 편린」을 발표한 바도 있었다.
나는 본래 바람이었다
정처 없이 불어다니는 무숙자(無宿者)
언제나 별빛 한 줄기에도
흔들리며 눈물짓는 허수아비였지
나는 사랑도 모르고 그냥 내달리는 논펄에서
어눌한 한 줄기 가난의 생명줄만
겨우 영위하던 방랑자의 후예
누구나 밝은 태양을 기원하지만
후줄근한 몰골에서 풍기는 절망의 눈빛은
지금도 하염없이 밀려다니는 바람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내 자화상은
언제쯤 어디에서 안착(安着)할 수 있을까
착목(着目)하는 사물마다 사람 냄새가
물씬 내뿜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다
나는 아직도 어쩔 수 없는 바람이다. (2018. 한국시인협회 사화집)
고향을 꿈꾸며
펑펑 눈물 같은 나의 시가 쏟아진다// 참꽃 피는 삼월 삼짇날/ 우리 형수 화전놀이 갈 적에는/ 쿵다닥 쿵닥 너의 장단만큼/ 내 가슴도 술렁거렸지// 산속 홀로이/ 무슨 애타는 사연 아름으로 엮어/ 천 년을 울고 있는 그대여/ 먼 역사의 축을 굴리며/ 벼랑에 걸려있는 나의 눈시울// 그대가 바람으로 잠들 수 없을 때/ 내가 감싸안을 가슴은 비어 있었다/ 낙차(落差)의 물보라/ 다만 여울진 무지개는 / 자연정(紫煙亭) 햇살에 묻어둔 채/ 밤이면 펑펑펑// 쏟을꺼나 슬픈 나의 시 한 소절.
*황계폭포 : 용주면 황계리에 소재한 폭포. 합천 10경의 하나.
*자연정 : 폭포 아래에 위치한 시인묵객들의 쉼터.
--「黃江 . 21--황계폭포에서」 전문
나는 합천군 용주면 공암리 음실골짝에서 빈농(貧農)의 아들로 자랐다. 초등학교에 입학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6.25라는 민족적 비극이 터져서 국가가 풍지박산이 되고 유교적인 예절과 풍습들이 잠시 혼란을 맞았으나 큰댁 사랑방 할아버지 곁에 쌓인 문집들과 한문 서적들을 모두 읽어보지 못한 아쉬움이 지금도 심저(心底)에서 맴돌고 있었다.
아버지가 중병(重病)으로 별세하시자 가정은 고난의 연속이어서 가정과 고향을 버리고 객지로 떠나 고학과 독학으로 학업을 이어갔으나 생활영위가 위협해지면서 직업전선에서 전전하다가 육군을 제대하고 나서 못다한 한문 공부와 문학공부를 독학으로 열중하던 중 나의 졸작이 중앙문단의 박목월 시인이 주관한 시전문지 『心象』지에 신인상으로 당선(심사 황금찬, 김광림 시인)하여 시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내가 발상하는 작품의 동기는 언제나 불망(不忘)의 고향에 대한 아련한 향수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고향 산촌의 아름다운 정경이나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동네 초가집 이웃들과의 정들이 항상 시의 모태가 되고 거기에서 전원적인, 친자연적인, 정감적 이미지들을 창출하는 향토시인으로 출발하였다.
그것은 조상 대대로 삶을 이어온 고향. 거기에는 조상들과 부모가 묻힌 선영이 있어서 나의 뿌리는 용주면 음실골짝이라는 상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옛 고시(古詩)에 “거두망산월(擧頭望山月) 저두사고향(低頭思故鄕)”이라 해서 고개 들면 저 산위의 달이 높이 떠있고 머리를 숙이면 불현 듯 고향이 생각난다는 구절이 객창(客窓)에서 잠들지 못하는 나의 심정을 요동치게 하였다.
나는 열심히 시를 쓰서 발표하였다. 시집을 열세 권이나 발간하고 문학상도 받고 나처럼 정규 대학문창과에서 시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 시를 함께 공부하고 토론도하는 한국문단의 중진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처럼 작품 중에서도 고향을 잊지 못한 작품들을 모아 시집 『黃江』을 출간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고향의 자연과 환경 그리고 소박한 풍물과 인정 등 세세한 부분까지도 응축하여 100여편의 작품을 완성하였으나 아직도 미흡한 대목이 많이 발견되어서 앞으로 기회가 되면 보완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위의 작품 「황계폭포」는 어릴 적 소풍이나 놀이로 많이 드나들면서 정이 들었던 고향 명승지이다. 그때 펑펑 쏟아지는 물줄기가 어쩌면 가난한 자의 울분 같기도 하고 눈물 같기도 한 당시 나의 심경이 용해되는 시적인 근원으로 변하지 않는 발원지가 되고 있어서 영원한 그리움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한편 황강을 막아 합천댐을 준공하면서 댐 건설을 기념 시비(詩碑)를 제작하여 영원히 기리기 위해서 기념 찬양시를 의뢰해 와서 정성껒 창작해 보냈으나 예산부족을 이유로 채택되지 못하는 실망도 감수해야 했다. 언젠가 댐을 지나가다가 보았더니 높이 솟은 이상한 조형물이 기념물로 서 있어서 조금은 실망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또한 푸른 황강물 곁으로 질펀하게 깔린 은모래에서 책보따리를 팽개친 채 해지는 즐 모르고 씨름이며 술래잡기, 은어 물고기 잡기 등 유년시절의 추억이 깔린 그 옆, 면소재지와 나의 초등학교가 있었다. 거기에서 나의 꿈은 영글었지만 가난이라는 운명으로 한평생을 고난속에 살았으나 지금은 그래도 먹고살만한 여건이 조성되어 그 당시의 아픔을 되새기면서 그때 내 또래의 재학생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을 주고자 얼마간의 장학기금을 기탁하였다. 물론 교감선생님과 애들의 감사의 글을 받고 흐뭇해한 일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평생을 애향(愛鄕)시인으로 남을 것이다. 어려웠던 조상들의 삶과 아름다운 풍습을 반추하면서 정감 넘치는 시를 쓰고 싶다. 그리하여 내 고향 용주와 합천의 전통문화를 길이 보존하고 싶다. 그리고 영원한 시인의 이름으로 음실골짝에 묻히고 싶다.*(2022.10. 용주면지)
“물멍”에 대한 변명
요즈음 어떤 한 사물이나 행위를 응시하면서 넋을 잃고 멍하게 바라보는 것 앞에 “멍”이라는 형용사를 갖다 붙여서 “물멍”이니 “불명”, “산멍”, “달멍”, “별멍”, “풀멍” 멍하게 또는 멍청하게 바라보는 습성이 생겨났다. 얼마 전까지는 일부 식자(識者)들이 관조(觀照)라는 말로 상당히 차원 높은 언어로 통용했었다.
이 관조는 고요한 마음을 가다듬어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면서 새로운 무엇을 발견하기 위해서 멍하게 바라보는 일이 많았다. 국어사전에서 이 관조는 사물의 현상이나 자태를 비추어 봄으로써 참된 지혜의 힘으로 사물의 이치를 통찰하게 되고 여기에서 미(美)를 직접 인시기하게 되는 게기가 되는 심경(心境)을 말하고 있다.
나는 어릴적 산촌에서 자라면서 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도랑)에서 많이 놀았다. 이 도랑물은 논에 물을 대기 위해서 만든 보(洑)를 만들어 물이 차오르면 어린애들이 발가벗고 멱을 감거나 낚시로 피라미를 낚아 올리면서 엄마가 밥먹으러 오라고 소리칠 때까지 저물도록 물에서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편 가뭄을 이기고 모내기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산골물을 막아서 저수지를 만들어서 농삿일에 도움을 주었다. 나는 이 저수지에서도 헤엄을 치거나 낚시를 하면서 물멍에 빠진 일이 많아졋다. 가끔 흘러가는 흰구름을 응시한 적도 있지만 물속에 비친 구름은 신선들이 노니는 별천지로 착각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바라보았던 물멍은 물에 대한 야릇한 심사(心思)가 요동치기 시작했는데 물에 대한 진지한 사유(思惟)는 산골짝에서 소가 풀을 뜯고 난뒤에 찾는 계곡물이 흐르는 곳의 발원지 옹달샘이었다. 이 옹달샘은 샘물이 보그보글 솟는 모습은 한 생명이 태어나는 신비의 정경이었다.
이 옹달샘물이 좁은 계곡을 지나 개울을 흘러 강물이 되고 결국 바다로 흘러들어가 대양(大洋)의 원대한 꿈이 이루어지는 상상에서 물의 이미지나 의미를 더욱 심도(深度)있게 추적하는 버릇이 생겼다. 오래전에 「물의 말」이라는 시 한 편을 썼다.
머물고 싶다 하얗게 부서지는/ 시간을 붙안고 그냥 기도로 남고 싶다// 깊은 산골짝
산새 울음에 묻히려니/ 그러나 / 곱게 자란 순이의 시집가는 모습으로/ 눈물 되어 떠나야 하는/ 어쩌면 세월처럼 흘러흘러/ 이젠 소금기에 절여진 내 육신이/ 모래펄에 버려지느니// 다시 돌아가고 싶다/ 비워진 마음으로/ 마알간 속살로 그냥 남고 싶다.
이웃 마을에는 유명한 명승지 황계폭포가 졀경을 이루고 있다. 봄이면 동네 아낙들이 화전놀이를 하고 군내(郡內) 학생들이 소풍을 즐기던 곳인데 사시사철 물이 마르는 일이 없었다. 이 폭포수가 흘러 동내 도랑물과 합쳐져서 황강(黃江)에 이른다. 여기는 쪼무래기들이 모여 글을 공부하고 운동장에 맘껏 뛰놀던 초등학교가 자리잡은 면소재지이다. 우리들은 하교(下校)하면 강가 모래밭에서 씨름을 하거나 놀이를 하다가 땀이 나면 그냥 황강물에 풍덩 몸을 던지고 때로는 은어(銀魚)를 잡던 추억이 내가 집요하게 추적하면서 창작한 시집이 『물의 언어학』이다
당시 나는 노자(老子)의 상선약수(上善若水)에 심취해 있었다. 물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노자의 교훈, 그 중에서도 수유칠덕(水有七德)은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덕목, 그것도 일곱 가지 물이 가진 덕목이었다. “낮은 곳을 찾아 흐르는 謙遜(겸손), 막히면 돌아갈 줄 아는 智慧(지혜), 구정물도 받아주는包容力(포용력), 어떤 그릇에나 담기는 融通性(융통성), 바위도 뚫는 끈기와 忍耐(인내), 장엄한 폭포처럼 투신하는 勇氣(용기), 유유히 흘러 바다를 이루는 大義(대의)”로써 물에 대한 많은 교시(敎示)를 들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의 진리는 오묘하다./ 물은 생명수요, 활력의 원천이다./ 물이 포괄하는 진실은/ 우리 인간들과 만유(萬有)의 자연들에게서/ 생사의 한계를 결정하는 신의 선물이다./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서/ 물도 그 흐름이나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유형이 다르고/ 생멸(生滅)의 구분도 달라지지만,/ 물은 언제나 나에게 안온한 시혼을 안겨준다./ 물의 탄생은 곧 나의 출생과 동일한 맥락으로 보았다./ 그 행로도 나의 삶의 궤적(軌跡)과 비슷하다. --시집 『물의 언어학』 “시인의 말” 중에서
그리하여 “물 시(詩)”를 91편이나 썼다. 물이 간직한 내면의 진실을 잘 이해할 수 없으나 외형(外形)으로 보여주는 풍광이나 정경들은 무한대의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어서 앞으로도 틈만 나면 “물멍”을 통해서 또 다른 인생관을 정립하거나 새로운 인생철학까지도 창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 심산유곡(深山幽谷)에서 발원한 옹달샘과 계곡 그리고 실개천, 냇물, 웅덩이, 저수지, 늪, 댐, 마지막 바다는 어떠한가. 모두가 생명을 위해서 흐르고, 스미고, 적시고, 삼키고, 날아 흩어지고 다시 비가 되고 눈이 되는 변화무쌍(變化無雙)의 자연 섭리가 여기 물에서 생성하지 않는가. 다시 물과 생명이 연관된 소재를 찾고 거기에 진정한 인간들의 가치관을 투영하는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찰랑찰랑하던 물이 갑자기 잠잠해질 때/ 무의미가 넘실거리네/ 졸졸졸 흐르던 물소리 들리지 않을 때/ 환청(幻聽) 속 이미지가 풀풀 넘치네/ 가끔 구름 한 무리 물위에 떠 있고/ 밤이면 무수한 별들이 노니는 곳/ 물벌레 화음들이 물거품으로 일렁일 때 / 여기는 생명이 영롱한 낙원인가/ 아, 사계절로 변하는 그 생명의 의미/ 그것은 이 세상 만유(萬有)의 시학이다/ 만물이 함께 동화(同化)하는 영혼의 창/ 순정한 묵언(黙言)으로 떠가는 눈짓은/ 허다하게 잊고 또 잊어버린 사랑인가/ 개울물이 흘러 바다로 가는 / 이 웅대한 우주의 암시(暗示)이다 --「물의 시학」전문
물은 이미지의 보고(寶庫)였다
--가스똥 바슐라르의 『물과 꿈』을 읽고
시를 쓰면서 어떤 사물에서 이미지를 추출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 사물에 대한 인상이 나의 체험과 지향적 사유와 동시에 충돌할 때 일어나는 영감이 대체로 시로 형상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앞개울에서 여름에는 물장구를 치고 겨울에는 썰매를 타며 놀았다. 그러나 개울가에서 흔들리는 봄 버들개지들 새 생명의 탄생에 신비함을 느꼈고 가을 낙엽이 물에 떠내려가는 것을 보면서 어쩐지 눈물이 핑도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어느 여름에는 홍수가 나서 개울과 들판을 휩쓸어 동네 사람들이 뒷산으로 대피하는 공포의 물을 보았다.
그후 성인이 되어 ‘물이 선하다는 것은 만물을 이롭게 하고 다투지 않으며 만인이 싫어하는 곳에 처하기 때문이다(水善利萬物而不爭 居衆人之所惡)’라는 노자 사상의 중심주제인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대하게 된다. 단순히 우리들 생명을 다스리고 생활을 편하게 해주는 물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처럼 오묘한 진리가 있었구나 싶어서 물에 매혹되고 물에 관한 이미지 추출에 골몰하게 되었다.
노자의 물이 도(道)와 덕(德)에 관한 경전이라면 가스똥 바슐라르의『물과 꿈』(이가림 역)은 시인들이 창출하려는 이미지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의 언지대로 인간의 힘과 일치하는 보다 항구적인 원소로서의 물의 실체적 이미지를 연구하여 물의 ‘물질적 상상력’의 심리학을 이룰 것임에 이의가 없다.
그의 상상력과 물질에 분류되는 물은 맑은 물, 봄의 물과 흐르는 물, 깊은 물, 잠자는 물, 죽은 물, 무거운 물, 복합적인 물, 모성적인 물과 여성적인 물, 부드러운 물, 난폭한 물 그리고 물의 모랄과 물의 말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얼핏 생각되는 이미지로는 맑은 물과 죽은 물(폐수)로 대별하여 시간과 공간 개념을 융합시켜 형상화하는 경향이 많은 데 바슐라르는 이처럼 세분화해서 이미지를 풀어내고 있다.
그가 ‘물과 꿈’이라는 복합적 상상력으로 물의 이미지를 설명한 것은 그의 화려한 경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프랑스에서는 ‘시인 가운데 가장 훌륭한 철학자라며, 철학자 가운데 가장 훌륭한 시인’이라는 독특한 칭호가 붙어 다닌다고 한다.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가정의 어려움으로 인해 독학으로 수학과 물리학 학사학위를 받고 동시에 철학교수 자격을 얻게 된다.
그는 계속해서 학구열을 발휘해서 소르본느대학에서 「근사적 인식에 관한 시론」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학문은 비교적 늦게 시작되었으나 저작활동은 대단히 활발하여『불의 정신분석』『공기와 꿈』『물과 꿈』『공간의 시학』『몽상의 시학』『촛불의 미학』등의 저서를 출간함으로써 문학, 철학, 사상 등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글에서 우리는 삶의 상징적 메아리가 울리는 내면의 흐름이나 시 창작의 긴 상상력의 도정 끝에 도달하는 관조적인 세계, 또 거기에서 분출하는 영혼의 감동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가 ‘물은 모든 곳으로 퍼져나가고 모든 것에 생명을 주면서도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것은 덕과 같다(水夫與諸生而無爲也 似德)’면서 물에는 의(義)와 도(道)와 용(勇)과 선화(善化)가 있어서 물을 좋아했다는 동양의 미학보다는 바슐라르의 물에서 되새겨 보는 새로운 이미지의 탐색은 시인들의 교범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적출된 나의 소품「물 詩 . 29」에서 ‘상징의 물’로 ‘너의 정체는 항상 애매하다 / 물안개였다가 이슬방울이었다가 / 더러는 만유의 웃음이다가 / 문득 험상궂은 폭력이다가 / 아아, 천태만상의 반전이다가 / 일엽편주 온몸으로 감싸는 / 그 평온의 정체 / 너는 언제나 질곡의 시간을 거슬러다가 / 가을 햇살에 젖은 옷을 말리다가 / 더러는 영혼을 만나러 떠나다가 / 다시 환생의 계곡에서 한 음절 선율로 흐른다’는 물과 시의 접목을 시도하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문학의 집 . 서울> 1918. 12월호-「다시 읽고 싶은 글」)
동강은 흘러야 한다
강원도 정선의 조양강과 동남천이 합쳐서 정선 가수리 마을에서 시작해 평창을 거쳐 여월까지 숩이굽이 흐르는 2백리 물길의 동강(東江), 작년부터 이 동강에 대하여 온 국민들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강이 억겁의 비경을 간직한 채 계속 흐를 것인지, 아니면 댐 건설로 운명이 바뀔 것인지 지금 많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남한강 홍수 조절과 용수 확보를 위해서 영월 다목적 댐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고부터 환경 보호단체와 사회 각층의 지식인들이 결사반대를 하고 나섰다. 정부의 생각인 홍수 조절이나 먹을 물 확보보다는 수많은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생태계의 천국을 보존해야 하며 구석기 시대 선사 유적의 보고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동강이 석회암 단층지형이라서 댐이 건설되면 붕괴의 위험이 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반대의 이유이다.
그러나 최근의 보도를 보면 정부와 여당은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물 수급량을 고려하여 보완책이 마련 되는대로 동강댐의 건설 공사는 계획대로 추진한다고 밝히고 있다. 어쩌면 올해 말쯤에는 댐 건설 공사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유리가 자연에 대응해 온 자세는 보호보다는 실리가 우선이었고 때문에 각종 자연재해를 자초했다고 보아야 한다.
일부 정치가들은 이해관계나 재벌들의 무분별한 이익 챙기기에 편승하여 마구잡이로 금수강산이 수난을 당한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적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의 수익 확보를 위해 골프장 건설을 허가하여 나무가 베어지고 물줄기를 돌려서 생태계를 파괴 시킨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공사 중 사업체가 부도가 나서 이미 파헤쳐진 산들도 그냥 방치되고 있는 사례들은 우리의 환경정책 부재를 너무나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땅에 마지막 남은 자연의 절경 동강은 한겨울에도 꽁꽁 어는 날이 사흘도 되지 않는데 이것은 동강 물속에서 샘솟는 용천수의 온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절경이다. 지금쯤은 동강할미꽃, 찔레꽃, 산벚나무, 개살구, 진달래, 홍철쭉들이 지천으로 흐드러졌을 것이고 취, 곰취, 더덕, 첨나물, 원추리, 드릅 등 산나물이 주변을 누비는 궁노루, 청설모와 함께 잘 자라고 있을 것이다.,
또한 물속에서 텅발이, 뚜꾸벵이, 갈겨니, 어름치, 송어, 매자, 꺽지, 쏘가리들이 물살을 힘차게 가르면서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이 장관이기도 하거니와 특히 이곳에서 서식하는 수달은 희귀종으로 남아 있으며 어름치는 천연기념물로 보호하고 있어서 동강에 대한 애착심은 더욱 진해지기만 한다.
그러나 동강댐 건설 강행이 단순히 식수 부족의 해결과 남한강 홍수 조절이 목적이라면 그 이전에 수자원 확보를 위한 노력이 우선 되어야 할 일이다. 물의 과소비와 누수 등의 낭비를 막기 위한 물의 관리와 이용에 대한 국민의 의식을 바꿀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체질화하도록 하는 일을 과제로 풀어야 할 것이다. 자연을 훼송하지 않으면서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연구하고 실행하여 깨끗한 자연을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도연명이 춘수만사택(春水滿四宅)이라고 시를 읊었다. 봄물이 사방 못에 가득하디는 말이다. 봄물은 생명을 재촉하는 이 계절에 물의 의미를 다시 새기는 것은 의미잇늩 일이다. 물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미리 계획하고 정책적으로 괸리 운용한다면 동간을 막지 않아도 될 것이다. 고로 동간은 우리 곁에서 영원히 흐를 것이다.(1999. 5. 『월간당뇨)』
봄의 소리는 영혼의 언어다
도시의 빌딩 숲에서도 봄은 온다. 두툼한 옷가지들을 챙겨 넣고 창문을 활짝 열면 겨우내 쌓였던 계절을 향한 그리움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긴 통로를 벗어난 화분들이 베란다에 줄지어 놓이고 싱그러운 보습비를 기다리는 속삭임이 들린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파랗게 찾아오는 봄의 소리를 듣는 것은 아름다움을 넘어 황홀하기 하다. 작년에도 보았던 꽃이요, 잎새이련만 화사한 웃음의 새 모습에서 무엇인가 마냥 설레이는 가슴뿐이다. 흔히들 봄은 생명의 소생으로 신비감을 맛보게하는 계절이라고 한다. 돌담너머 흐드러진 개나리의 노란 생명에서 새록새록 들려오는 탄생의 숨소리는 자연이 우리들에게 제공하는 최고의 정갈한 생명의 지혜를 일깨워준다.
아무래도 봄의 참맛은 도시보다는 수많은 감동어린 시골의 어린 시절에서 밝게, 추억에서 한결 부드럽게 느낄 수가 있다. 실개천 잔잔한 물소리를 따라 흔드리는 버드강아지의 미소 띤 파란 눈에서는 볼 붉어 수줍음 가득찬 봄처녀의 초롱한 눈매를 닮은 느낌을 받는다. 하염없이 돌아가는 물레방아, 산골 마을 앞뒷산에 지처느올 뿌려진 진달래 향내에 취한 길손이 길을 묻는 오솔길에도 봄의 소리는 정겹게 깔려 있다.
파릇파릇 보리싹이 봄볕에 고개 들고 하늘 저멀리 종달새의 노래소리 한 켠으로 아지랑이 한 다발 휘돌아가는 허공을 응시하면 우리는 살아있다는 새명의 공감을 통해서 위대한 자연의 철학을 배우게 한다. 시인 하이네는 「사랑이여! 밭두렁에서 이름 모를 풀꽃드르이 웃음소리가 들리느냐」는 그의 시를 읊조린다.
“즐거운 봄이 찾아와/ 온갖 꽃들이 피어날 때에/ 사랑의 싹이 움트기 시작하였네/ 즐거운 봄이 찾아와/ 온갖 새들이 노래할 때에/ 그리운 사람의 손목을 잡고 호소하였네”
눈부신 봄 산천을 바라보면 톡톡 터져 나오는 잎새들 사이 산새 지저귀는 화음에서 신선한 사색의 청량제가 흠뻑 뿌려진다. 사랑이여, 이 찬연한 봄의 품안으로 그대를 초청하노니 그대 기지개를 켜고 달려 나오라. 그리하여 봄밤의 아련한 적막 속 풀벌레들의 울음을 만끽(滿喫)하자꾸나.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봄처녀의 가느다란 허리까지 늘어진 갑사 홍댕기 펄럭이는 봄노래를 부르자. 迷夢의 겨울꿈을 떨쳐내고 광활한 자연의 향기를 마시면서 맑고 푸른 미래를 향하여 가슴을 펴자. 자연의 위대한 신비와 지혜는 봄의 소리에서 깨달음으로 사뿐사뿐 다가온다. 먼 환희의 그리움으로 승화한 알찬 인생을 설계해 보지 않으련.
살아 숨쉬는 모든 생명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봄이 대지에 내리면 새 움들만이 이 촉촉한 희망의 메아리에 젖는 것은 아니다. 무엇인가 우리 인간에게도 봄눈 녹듯 사무치게 풀릴 듯한 일들이 많이 있다. 함초롬히 젖어서 이슬방울 굴리는 하얀 목련꽃잎에서도 애절한 소망을 느끼는 따순 마음이 있다.
가장 순수한 이 봄날에는 부풀어 오르는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한 사랑을 그리워하자. 꽃소식 기다리는 시인의 노래를 목청껏 부르면서 아쉬움과 애틋한 정감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띄워 보내자. 그러나 아직 봄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꿈만 삼키며 긴 겨울에 묻혀 잇는 이웃이 잇다. 이 도시에 살아가는 마음 가난한 자의 봄이다.
긴 그리움이/ 봄비에 젖은 채/ 허기진 언어들만/ 바람에 날려가고 있습니다
그해 겨울/ 차갑던 영혼을 달래면서/ 들려주는 한 마당 굿거리는/ 잠시 출렁이는 강물입니다
먼선 발치에서 휘휘 돌아나온 봄바람 한 줄기는 투명한 산너머 파랗게 손짓하는 한 점 구름을 만나고 있다. 아직도 자리잡지 못한 봄볕이 어설픈 공간에서 맴도는 구름을 보는 듯 우리네의 연약한 시심(詩心)으로 메워진 이웃들에게도 포근한 봄의 소리를 전해 주리라. 공허하기만 하던 가슴 속에 새 봄의 화사한 생기를 불어넣어 삶에 대한 일말의 번민일지라도 개울물 흐르듯 씻어 보내리라.
아아, 사랑이여, 형용할 수 없이 맑은 우리의 약속을 위해서 저리도 용솟음치는 봄의 골짜기에 새겨진 노래를 함창하리라. 들꽃 한 송이 꺾어 들고 그대의 발걸음을 쫓으리라. 황혼의 들녘에 서서 초가지붕 위에 어른거리는 봄 향내를 애처롭게 기다리리라. 그러나 도시의 봄은 봄맛이 없다. 누군가 도시의 봄은 여성들의 옷차림에서부터 온다고 했다. 거리에는 온통 원색 옷차림 물결이 일렁인다.
가로수 잎이 푸르면 봄인가 싶은 감성 없는 봄은 정취가 없다. 어쩌랴, 구십춘광(九十春光-석당동안의 봄철)으ᅟᅮᆯ 잊은 채 살아가는 우리네 허양한 심정이 내면에서 향그러운 봄의 소리가 그렇게 황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정서의 목마른 영혼들이여, 오늘만은 정녕 창문을 모두 열고 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귓가에서 소곤거리는 따사로운 정간의 언어를 들어보리라.
온누리에 새롭게 펼쳐진 봄볕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나를 다시 발견하게 될리니, 아, 누가 뭐래도 이 봄의 향취는 나의 것이며 황홀한 미래의 새 희망도 내 곁에 있음이니 봄의 소리는 영원한 사랑의 노래이다. 내 마음 깊숙이 간직한 연혼의 언어이다.(1992. 4. 현대백화점 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