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석(立石)
□ 마을 유래
입석 마을은 신기천과 황강의 합류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고제면의 중심지이다. 시가지는 세 갈래의 강줄기 주변에 발달해 있다. 고제면의 지명 유래가 된 높은 다리가 있으며[현재는 현대식 다리로 건립], 고려 때의 절터에 큰 돌이 서 있어 선돌[입석]이라 하였다고도 하고, 신선이 살던 곳이라 하여 선들, 선평(仙坪)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350여년 전에 문화 유씨가 처음으로 살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마을의 남쪽 끝을 접척, 남서쪽을 샛담, 또는 작은
물, 북쪽을 높은다리, 북쪽끝을 선돌 등 네뜸으로 나눈다.
황강 동편으로는 거창중학교 고제분교장과 고제문화체육회관, 고제자동차부분정비 등 상업 시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신기천의 서편으로는 고제교회와 가옥이 강변에 자리하고, 하천 합류점의 북쪽으로는 고제면사무소, 고제면 보건지소, 북부농협과 하나로마트, 거창 고제우체국, 고제파출소 등 관공서와 상업 시설이 있다.
□ 산천지명
◦ 북바위 : 고제면 보건소 뒤 노인 게이트볼장 맞은편 도로위 언덕에 있다. 생긴 모양이 북같이 생겼다 하여 북바위라 한다.
□ 마을의 문화자원
◦ 음각선인상 입석(陰刻仙人像立石) : 고제면 입석1길 7[농산리 753-3] 입석마을에 위치한다.
음각선인상 입석은 청동기 시대 선돌에 선인상(仙人像)을 조각하여 큰 바위에 부처를 새긴 불상이다. 입석 마을은 약 350여 년 전 문화 유씨가 정착하여 일가를 이루었으며 경작지의 논 한가운데 선돌이 있어 경작 시마다 불편하여 옮겨 놓았다고 한다. 이후에 마을에 재앙이 계속되어 다시 원래 위치로 옮겨 놓으니 계속하여 풍년이 들고 재앙이 사라졌다고 하는 전하여 내려온다. 이후 마을에서는 돌을 ‘입석’이라 하였고 마을 이름도 ‘선돌’, ‘입석’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2000년 11월경 문화재 보수 사업으로 입석 마을 회관 1m 앞쪽에 있던것을 현 위치[13m 이격]로 축대를 조성하여 옮겼다.
음각선인상 입석은 커다란 바위를 길게 다듬은 후 신선(神仙)의 모습을 새긴 것이다. 입석의 높이는 2.2m 정도인데, 가장 넓은 쪽의 너비는 1.5m, 두께는 약 30㎝ 정도이다. 정면에 새겨진 그림의 크기는 약 1.8m이다. 입석의 왼쪽 아래 면에는 알구멍[性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선인상은 선으로 간략하게 표현되었는데 얼굴 부분은 상세하게 나타나나 다리 아래는 간략화했다. 조선 전기 미륵불 형태로 추정된다.
선인상이 있는 곳은 과거 한양으로 가는 삼남 대로변으로 앞에 높은 다리가 있던 곳이다. 청동기 시대 선돌에 후대 안녕을 기원하면서 새긴 조선 시대 불상으로 시간을 달리하는 문화가 융합된 독특한 문화재이다. 고제면 농산리 입석 마을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1997년 1월 30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2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 높은다리 : 고제면 농산리 입석 마을 높은다리는 옛날 거창에서 서울로 통하는 봉산 성초역을 가는 길목에 놓였던 돌다리이다. 이 다리는 옛날 한 도승이 높이 6m, 길이 11m쯤 되는 장대석을 고제천 위에 가로 질러 다리를 놓고 이곳을 지나는 길손을 도왔다고 한다. 곁에는 선돌이 서 있어 입석 마을 이름을 낳고 높은다리로 인해 고제면 이름이 되었다.
옛날 이곳에 이름 높은 도승이 한 분 계셨다고 한다. 하루는 이 스님이 이곳의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물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 후 이곳에다가 큰 돌다리를 놓기에 소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은 다리를 놓기에는 조건이 너무 좋지 않았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냇물의 기슭은‘ㄴ’자와 같이 한쪽은 벼랑으로 높고 한쪽은 낮으며, 또한 냇물의 폭이 넓어서 도저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거기다가 다리 이쪽에서 저쪽까지 한 번에 가로지를 수 있을 만큼의 큰 돌을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마침 머루밭골에서 넓고 긴 돌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 돌은 높이가 7m, 길이가 11m, 폭이 2.5m나 되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돌을 옮겨서 다리를 놓으려고 상의를 했으나 도저히 이 돌을 옮길 수 없어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으나 별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몇 해를 그냥 넘기게 되었다고 한다. 몇 해가 지나는 동안 이곳에 다리를 놓으려는 마을 사람들의 열망도 흐지부지되어서 위험과 불편함이 따르기는 했으나 다리 놓는 일은 망각 속으로 묻혀가게 되었다. 그때, 이 스님이 마지막 방법으로 이 바위 옆에 꿇어앉아 석 달 열흘 동안 부처님께 기원을 하고는 걸어서 내려오니 스님의 발걸음이 옮겨지는 대로 돌이 성큼성큼 걸어와서 이 다리를 놓게 되었다고 한다.
◦ 경앙대(景仰台) : 마을 북쪽 길가에 있다. 통정대부 언양(彦陽) 김일량(金鎰量)이 살던 곳에 그 후손 갑태(甲泰)·갑용(甲龍)·갑수(甲壽)가 대를 쌓았다.
◦ 세심대(洗心台) : 고제면사무소앞 도로변 100m위 좌측 거창댐에서 흘러내려오는 하천옆에 있다. 안빈재(安貧齋) 유수(柳洙)가 쌓았다.
◦ 고제중학교지(高梯中學校趾) : 고제면사무소 뒤에 있다. 1952년 10월부터 1990년 4월까지 자리했던 옛 고제중학교 자리를 기념해서 1994년 동문들이 세운 비석이다.
◦ 한국전쟁(6.25) 참전자 기념비 : 입석 마을에 있다. 송산 박상규가 부지를 제공하고 유족과 지역 주민들이 뜻을 모아 2001년에 세운 것으로, 고제면 지역 참전용사 중 18명의 전사자와 90명의 참전자 이름을 새겨져 있다. 참전 전사자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넋을 위로하고 추모하기 위해 매년 고제면 주민자치회 주관으로 추념식을 개최하고 있다.
□ 마을의 전설
◦ 고제면 선돌 전설
1) 하늘 사자가 던진 돌 : 옛날, 옥황상제가 하늘나라에 필요 없는 돌을 인간 세상에 갖다버리라고 명했다. 분부를 받은 옥황상제의 사자가 이 돌을 가지고 인간 세상에 내려와 어디다 버릴지 망설이던 중,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정신이 팔려서 이곳에 그만 돌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옥황상제의 사자가 이 돌을 거꾸로 떨어뜨리는 바람에 돌이 현재와 같이 가분수의 모양으로 서 있게 되었다 한다.
2) 걸어다니던 돌 : 옛날, 이 마을의 어느 아낙네가 이른 새벽에 물을 긷기 위하여 물동이를 이고 동구 앞의 우물로 나왔다. 아직 먼동이 트기 전의 이른 새벽이라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아서 사방이 고요하고 적막하기만 했다.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다가 무심코 앞들을 바라보니 큰 물체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이른 새벽에 무엇이 저렇게 움직이는가 하고 유심히 살펴보니 큰 돌이었다. 깜짝 놀란 아낙네는 이고 있던 물동이를 떨어뜨리며 "돌, 돌, 돌 봐라, 돌! 돌이 걸어다닌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돌이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우뚝 서 버렸는데, 이 소문이 동네에 퍼지면서 ‘선돌 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3) 천 씨 바위 : 이 마을에 천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하루는 사소한 일로 남과 다투고 난 후, 뒷간에서 볼일을 보다가 문득 앞을 바라보니 산에서 큰 돌 하나가 굴러 내려오는 것이었다. 너무나 놀란 나머지 천씨는 "야, 저기 바위 굴러온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천씨의 고함 소리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쳐다보니 큰 돌이 현재의 자리에 거꾸로 멈추어 서 버렸다고 한다.
4) 시루봉 바위 전설 원래 이 바위는 마을 서쪽 약 3㎞ 떨어진 시루봉에 있던 바위인데,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바위에 와서 치성을 드리고는 바위를 조금씩 떼어 가는 바람에 바위 조각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해 흩어져 있던 바위 조각들이 제각기 걸어와서 지금의 자리에 모두 모여서 원래의 바위 모습으로 서 있게 되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