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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위로
1-12절, 성도의 본분
[1-2절]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이는]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앎이니라].
사도 바울은 ‘주 예수 안에서’ 권면하였는데, ‘주 예수 안에서’라는 말은 ‘주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주 예수께서 주신 구원 안에서’라는 뜻이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이미 사도 바울에게서 교훈을 받았다. 사도들을 통해 주신 교훈들은 오늘날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권위로 주어진 말씀이다. 사도 바울은 이제 그들이 그 교훈대로 행하기를 더욱 많이 힘쓰라고 권면한다.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되지만, 인간편에서도 힘써야 한다. 성화는 우리의 마땅한 의무이다. 베드로후서 1:10에서 사도 베드로도 말하기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이나 사도 베드로가 성도들에게 더욱 힘쓰라고 권면한 까닭은 그들이 주 예수께서 그들을 통해 주신 명령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들의 교훈과 명령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사도들의 교훈들과 명령들, 즉 신약성경의 교훈을 힘써 행해야 한다.
[3-4절] [이는]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성도들이 마땅히 행할 바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바를 더욱 많이 힘써야 할 이유는 하나님의 뜻이 그들의 거룩함이기 때문이다. 죄가 세상의 근본 문제이므로 죄로부터의 거룩함은 모든 문제의 대답이다. ‘곧 음란을 버리고’라는 말씀은 거룩함이 무엇보다 음란, 곧 성적인 부도덕을 버리는 것임을 보인다. 미혼자들과 독신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을 통제하고 절제하며 살아야 하고, 결혼한 자들은 바른 부부관계를 지켜야 한다. 바른 부부관계를 벗어나는 것이 거룩하지 못하고 불결한 것이며 곧 음란의 죄악이다.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이라는 원어(토 헤아우투 스큐오스 크타스다이)는 ‘자신의 그릇을 취할 줄’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결혼을 가리킨다고 본다(Thayer, BDAG, 박윤선). 그러나 ‘그릇’이라는 말의 성경의 용법에 따라4) ‘자신의 몸을 다스릴 줄’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크리소스톰, 칼빈, NIV).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를 취할 줄 안다’는 말은 음란에 떨어지지 않고 바른 결혼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성도는 아내 외에 다른 여자를 취해서는 안 된다. 결혼 외의 성관계는 음란의 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큰 죄이다. 성도는 부부의 관계를 거룩하고 존귀하게 지켜야 한다.
[5-6절]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육신의 욕망]을 좇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伸寃)하여 주심이니라.
성도의 거룩한 삶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과 대조된다. 이방인들은 육신의 욕망을 좇아 음행하지만, 성도들은 부정당하고 과도한 욕망을 통제하고 죄악된 욕망을 버리고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를 취해야 한다. 결혼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부부의 아름다운 관계를 거룩하고 존귀하게 유지해야 한다.
‘분수를 넘어서’라는 말은 ‘탈선’과 ‘외도(外道)’를 가리킨다. ‘형제를 해한다’는 말은 문맥상 성적인 탈선과 외도로 다른 형제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을 말한다. 성도가 이러한 잘못에 떨어지지 말아야 할 이유는 이 모든 일에 대해 주께서 보응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징벌은 무섭다. 경건한 다윗이 자기의 충성된 신하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고의적으로 전쟁터에서 죽게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간음죄와 살인죄 때문에 다윗의 집에 칼이 떠나지 않을 것을 선언하셨다. 하나님의 징벌은 무서웠다. 다윗의 가정에는 오빠가 이복 여동생을 강간하고, 동생이 이복형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고, 아들이 아버지를 반역하는 일까지 일어났었다(삼하 11장 이하). 범죄로 인해 다윗이 치룬 대가 즉 그가 받은 훈련은 매우 혹독하였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은 참으로 두려운 것이었다.
[7-8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不淨)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하심임이니라.]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그의 성령’이라는 표현은 요한일서 4:13에도 나오는데, 성령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시는’ 영이심을 보이며, 또한 성령께서 ‘거룩한 영’이심을 보인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영이시며 거룩한 영이시다. 성령께서는 거룩한 영이시기 때문에 구원받은 성도들 속에 거룩한 생각과 거룩한 감정과 거룩한 의지를 주신다. 우리의 몸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의 거룩한 생각과 마음의 원천이시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음란과 불결에 대해 보응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불러 구원하심이 그를 부정(不淨)케 하심이 아니요 그를 거룩케 하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방향, 하나님의 부르심의 방향은 분명하다. 그것은 죄인을 죄로부터 거룩케 하는 것이지, 죄와 부정(不淨)과 불결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과 부르심에 합당하게 거룩하고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과 뜻을 멸시하고 저버린다면, 우리는 사람을 저버린 것이 아니요 우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린 것이며 그 잘못은 매우 크다. 여기에 사람의 죄의 심각성이 있다. 죄는, 비록 인간 관계의 죄라 할지라도, 그 성격상 하나님께 대한 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어긴 것이기 때문이다. 죄는 하나님의 권위와 명예에 대한 도전이며 침해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에 대해 보응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이다.
[9-10절]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 많이 하고.
사도 바울은 또 형제 사랑에 관해 교훈한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이미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라는 원어(데오디닥토스)는 형제를 사랑하라는 교훈이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율법에도 있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주신 새 계명에도 있고 또 성령께서 사도들의 서신에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심에도 있음을 보인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가르침이다. 오늘날 성령의 감동 속에 하는 성경적 설교도 하나님의 가르치심이다. 성경의 주요 교훈은 사랑이며 그 대상은 제한이 없다. 우리는 몇몇 사람만 사랑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택하신 모든 사람들, 즉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사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온 마게도냐의 모든 형제들을 사랑했다. 사도 바울은 이제 그들이 더욱 많이 사랑할 것을 권면한다. 우리도 모든 성도들을 대하여 또 세월이 지날수록 더 많이 사랑해야 한다.
[11-12절] 또 너희에게 명한 것같이 종용하여[조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혹은 ‘바르게’]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또 조용히 손으로 일하는 것에 대해 교훈한다. 우리는 꼭 필요하지 않은 말을 삼가며 조용한 생활을 해야 한다. 잠언 10: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또 우리는 손으로 자기 일을 해야 한다. 노동은 좋은 것이며 사람의 의무이다. 잠언 18:9, “자기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패가(敗家)하는 자의 형제니라.” 사람은 범죄한 이후 얼굴에 땀이 흘러야 먹고살도록 정해져 있다(창 3:19). 잠언 10:4-5,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성도가 손으로 자기 일을 하며 살 때 믿지 않는 자들 앞에서 바르고 단정한 모습을 보일 수 있고, 또 궁핍함도 없을 것이다. 천국을 소망하는 자들은 세상에서도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결코 게으르거나 낭비하지 말고, 또 버는 것보다 적게 쓰며 노후를 위해 자녀에게 의존하지 말고 지혜롭게 저축도 해야 한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를 행하며 더욱 많이 힘써야 한다. 성화(聖化) 즉 거룩하고 선한 삶은 하나님의 뜻이다. 물론, 우리의 거룩하고 선한 삶은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하지만, 사람편에서의 진실한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는 죄를 짓지 말고 하나님의 계명 지키기를 더욱 많이 힘써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음란을 버리고 부부관계를 잘 유지해야 한다. 미혼자들과 독신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여 자신을 절제하며 거룩하게 살아야 하고, 결혼한 자들은 부부관계를 저버리고 실수하며 외도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음행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은 참으로 무섭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교훈대로 형제 사랑함을 힘써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의 계명은 사랑으로 요약될 수 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본을 따라 서로 사랑하며 또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조용히 손으로 자기 일을 부지런히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성도는 자기 직업의 일에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해야 하며 또 돈을 낭비하지 말고 절약하며 노후를 위해 지혜롭게 저축도 해야 한다.
13-18절, 자는 자들에 관하여
[13절]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자는 자들’은 죽은 자들을 가리킨다. 죽은 자를 자는 자라고 말한 것은 죽은 자가 자는 자와 모습이 비슷하며 자는 자가 잠을 깨듯이 죽은 자도 주의 재림 때 부활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은 성도의 몸의 부활을 믿는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소망이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몸의 부활과 천국과 영생이다.
‘소망 없는 다른 이’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죽음을 끝이라고 생각하고 죽음 너머에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소망이 없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 절망하며 슬퍼한다. 그러나 부활의 소망을 가진 성도들은 믿는 가족이나 다른 성도의 죽음 앞에서 너무 슬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도의 죽음은 한편으로는 이별이니까 슬프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계신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가 부활 때까지 참된 안식을 누리는 기쁘고 복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14절] [이는]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예수로 말미암아]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오실 것임이니라].
우리가 먼저 죽은 성도들을 슬퍼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에 그들을 데리고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라는 말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며 믿음의 기본 내용이며 우리의 부활 소망의 근거임을 보인다. ‘예수 안에서’라는 원문(디아 투 예수')은 ‘예수로 말미암아’라는 뜻으로 ‘자는 자들’에 걸리기보다 ‘데리고 오시리라’에 걸린다고 본다(RSV, ASV 난외주). 이 표현은 죽은 성도들이 예수님의 대속 사역, 즉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루어진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부활할 것이라는 뜻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죽은 성도들의 영혼들을 그의 재림 때에 그로 말미암아 함께 데리고 오셔서 부활시키실 것이다.
[15절] [이는]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우리는]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못할 것임이니라].
바울이 하나님께서 죽은 성도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데려오신다고 말한 이유는 그의 재림 때에 그들이 먼저 부활할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은 예수님을 ‘주’라고 부른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후서에서 예수님을 26회 ‘주’라고 불렀다.5)
[16절] [이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일어날 것임이니라].
주께서 재림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죽은 성도들을 먼저 부활시키실 것이다. ‘주께서 . . . 친히’라는 원어(아우토스 호 퀴리오스)는 이 세상에 오셨던 주, 곧 사람으로 태어나 약 33년 사시고 기적들을 행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던 바로 그 주께서 다시 오실 것임을 강조한다.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라는 말씀은 주의 재림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사건, 곧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있는 사건일 것을 증거한다. 이것은 사도행전 1:11의 증거와 같다. 거기에 보면,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라는 말씀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은밀한 사건이 아니고 엄위하게 드러난 사건일 것을 나타낸다.
[17-18절]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일어날 두 번째 일은 살아 있는 성도들의 변화이다. 고린도전서 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살아 있는 성도들은 변화되어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흔히 ‘휴거’(rapture)라고 부른다. 예수께서는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4:31).
‘영접하게’라는 원어(아판테시스)는 ‘만나게, 맞이하게’라는 뜻이다. 주께서는 세상에 다시 오셔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다. 요한복음 14:2-3,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영광의 주님과 함께 거하는 곳은 아무 부족이 없는 기쁨과 평안이 넘치는 곳이 될 것이다. 주의 재림과 영광스런 부활은 성도들에게 큰 소망과 위로이다. 성도들은 이 진리와 소망으로 다른 성도의 죽음 앞에서 위로를 받는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사람에게는 몸의 부활이 있다. 이것은 성도에게는 복된 소망이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두려운 사실이다. 주께서는 두 종류의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5:28-29,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사람의 영혼은 불멸적이며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선악간의 행위에 대해 공의로 보응하기를 원하신다. 악인에 대한 심판과 지옥 형벌은 무서운 사실이지만, 성도에 대한 부활과 천국과 영생은 참으로 복된 소망이다. 죽은 성도의 부활은 복되다.
둘째로, 성도의 부활 소망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14절,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자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예수로 말미암아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셨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 그의 부활은 많은 증인들에 의해 증거되었고 네 권의 복음서와 특히 고린도전서 15장에 잘 증거되어 있다. 그의 부활은 기독교 복음의 근거일 뿐 아니라, 성도의 복된 부활의 첫열매이며 증거이다. 고린도전서 15:13-15,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셋째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오실 것이다. 주 예수님의 재림의 진리는 데살로니가전서에서 강조된 진리이다. 매 장에 재림의 진리가 계시되어 있다. 1:10,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2:19,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3:13,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5:23,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죽은 자들이 부활할 것이요 살아 있는 자들은 변화될 것이다. 그들은 다 함께 공중에서 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런 후, 그들은 영광의 천국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복된 삶을 살 것이다. 성도의 소망과 위로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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