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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재림의 징조
1-8절, 재림 직전의 두 가지 징조
[1-2절]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그리스도]3)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마음이 쉬 동요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 우리는 그 앞에서 모이게 될 것이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때에 인자(人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30-31절). 그러나 바울은 성령의 계시나, 혹은 자기에게서 받았다 하는 말이나 편지를 통해서나 그리스도의 날이 이르렀다고 마음이 쉬 동요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주의 재림 직전에 징조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께서도 그 징조들에 대해 말씀하셨었다(마 24장).
[3-4절]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아무도 너희를 어떤 방식으로든지 속이지 못하게 하라]. 먼저 배도(背道)[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죄](전통본문)4)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하나님처럼](전통본문)5)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사도 바울은 주의 재림 직전의 징조들 중에 특히 두 가지를 언급한다. 첫째는 배교(背敎)이며, 둘째는 죄의 사람의 나타남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이 두 가지 징조가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이 두 가지 징조가 나타나기 전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르렀다고 마음에 쉽게 동요하거나 당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의 첫 번째 징조는 배교이다. ‘배교’라는 원어(헤 아포스타시아)는 ‘그 배교’라는 말로서 절정적 배교를 암시한다. 배교(apostasy)는 ‘믿음의 변절 즉 믿음에서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역사상 교회가 믿음에서 떨어진 때가 있었다. 중세시대 천년은 신앙적으로 변절된 시대이었다. 16세기 종교개혁이 있기 전 교회는 배교의 상태에 있었다. 그러므로 루터와 칼빈 같은 개혁자들은 로마 천주교회를 배교한 단체라고 보았다. 그런 시대에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개혁,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났고 성경과 복음에 기초한 개신교회가 나타났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세계 교회들 속에서 다시 배교(背敎) 곧 믿음의 변절이 있을 것이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백여년이 지난 오늘날, 개신교회는 또다시 배교의 상태에 떨어져 있다. 이것은 교회역사상 없었던 심각한 배교이다. 개신교회 대교단들의 대다수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을 용납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신적 권위와 무오성을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과 신성(神性), 기적들, 대속(代贖), 부활, 재림을 부정한다. 세계의 대다수 개신교단들은 신학적으로 자유주의적이거나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넓어진 교회’들이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오늘날 개신교회들은 천주교회와의 화합과 교제와 일치를 추구하고 있다. 이런 포용주의적 입장은 복음주의라는 이름을 가진 많은 지도자들과 은사주의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은 배교와 타협과 혼란의 시대이다. 이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분명한 징조가 아니고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의 또 하나의 징조는 죄의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다. ‘죄의 사람’은 심히 부도덕한 자를 가리킨다. 그는 죄와 불법으로 가득한 자이다. 그는 결국 멸망할 것이므로 ‘멸망의 아들’로 표현된다. 또 그는 ‘대적하는 자’로 표현되는데 그것은 그가 하나님과 복음 진리와 참된 교회들을 대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적그리스도이다. 그는 요한계시록 13장에 예언된 첫 번째 짐승, 곧 하나님을 훼방하고 성도들을 핍박할 자를 가리킨다고 보인다(계 13:1-7). 그는 악한 정치가나 악한 나라일 것이다. 그는 자신을 높여 하나님 성전에 하나님처럼 앉아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을 신격화시킬 강력한 독재자나 독재 국가일 것이다. 세계는 다시 한번 인간 숭배의 시대와 강력한 독재 국가의 시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5-7절]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불법의 비밀은 이미 활동하였다. ‘불법의 비밀’이라고 표현한 것은, 장차 죄의 사람이 나타나 공공연하게 행할 불법에 비교해 볼 때 아직은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불법의 활동들이기 때문이다. 교회역사상 많은 죄의 사람들이 있었다. 옛날 로마 제국의 황제들로부터 현대의 히틀러나 스탈린에 이르기까지 많은 지도자들이 불법의 활동들을 하였다. 그러나 아직 최종적, 절정적 인물인 그 죄의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본다. 아직 그의 나타남을 막는 자가 있다. 그는 성령이실 것이다. 그는 저 예언된 죄의 사람이 나타나지 못하게 막고 있으시다. 아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가 되지 않았다고 본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 막는 일을 놓으신다면, 그 죄의 사람, 즉 악한 독재자나 독재적 국가는 세상에 자기의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8절]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저 불법자가 나타나면 주 예수님의 재림도 있을 것이다. 재림의 주께서는 강림하여 나타나셔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 불법자를 죽이시고 그를 폐하실 것이다. ‘나타나심’이라는 말은 주의 재림을 묘사하는 말로서 그의 영광의 광채가 나타나실 것을 암시한다. 깊은 밤이 지나 새벽이 밝아오듯이, 극심한 배교와 불법의 때 후에 주께서 밝은 빛 가운데 오실 것이다. 장차 개신교회들은 천주교회와 연합할 것 같다. 개신교회의 세계적 협의체인 세계교회협의회(WCC)는 로마 천주교회(RCC)와 즐거이 교제하며 연합을 추구하고 있다. 그때 천주교회 교황은 다시 온 세계교회를 지배하는 자가 될 것이다. 또 온 세계는 강력한 독재자 혹은 독재 국가의 손에 들어갈 것이다. 그것은 아마 공산주의 독재일 것이다. 그러나, 그때 주 예수께서는 영광 중에 재림하셔서 악한 종교지도자나 악한 독재자를 멸하실 것이다(계 19:19-21).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주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하다고 쉬 동요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고 소망하면서 날마다 평안 중에 충실히 살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주의 재림의 징조들을 기억해야 하며 특히 배교하는 일과 죄의 사람의 나타남을 기억해야 한다. 배교의 징조는 오늘날 세계교회협의회(WCC)와 천주교회(RCC)와의 교제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또 죄의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나, 강력한 공산주의 독재자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성도들은 이런 징조들을 주시해야 한다.
셋째로, 재림하시는 주 예수께서는 악한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들을 다 죽이시고 폐하실 것이다. 우리는 재림의 징조들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고 오직 성경말씀을 굳게 믿고 순종하며 고난을 각오해야 한다.
9-12절, 사탄의 속임수
[9-10절] 악한 자의(후)[그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사도 바울은 불법[죄]의 사람의 활동에 대해 몇 가지로 증거한다.
첫째로, 죄의 사람의 활동의 근원은 사탄이다. 그는 사탄의 역사(役事)를 따라 올 것이다. 사탄은 악한 천사들 즉 악령들의 우두머리이다. 그는 많은 능력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우리도 믿기 전에는 그를 따라 살았었다. 그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이며 지금도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다(엡 2:2).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있다(요일 5:19). 요한계시록 13장에 보면, 용 곧 사탄은 짐승 곧 불법한 자에게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주었다(계 13:1-2).
둘째로, 죄의 사람의 활동 방법은 기적주의와 불의와 속임이다. 그는 우선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으로 행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7:22-23에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마태복음 24:24에서도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또 요한계시록 13:13, 15는 마지막 때에 사탄이 이적을 행하는 거짓된 종들을 사용할 것을 예언하였다: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우리는 오늘날 은사주의를 주목하고 그것이 죄의 사람의 도구가 될 것이라고 경고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신비한 은사 체험들을 구하지 말고 성경적 기독교를 굳게 붙들어야 한다.
죄의 사람은 또한 불의와 모든 거짓으로 행할 것이다. 그는 죄악된 일을 담대히 하는 자이다. 우리는 그에게서 도덕성과 양심을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또 그는 속이는 일에 능숙할 것이다. 그와의 대화에는 진실이 없고 그와의 약속은 헛될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도덕성이 없는 이념과 정치인들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공산주의는 하나님과 도덕을 부정하는 사상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사람과 세상을 경제적 관점에서만 보고 경제적 평등을 위해 먼저 노동자들이 세상을 지배해야 하고 이 사회주의 혁명에 이익이 되면 거짓말도 선이라고 본다.
셋째로, 죄의 사람의 활동 대상은 멸망하는 자들이다. 이 세상에는 항상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구원 얻은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멸망하는 사람들이다. 구원 얻은 자들은 만세 전에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救贖)을 얻고 성령의 역사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 얻은 자들이다. 그러나 멸망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들의 죄 중에 버려두셔서 그들의 죄에 대한 공의의 심판을 받게 하신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한 적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주로 믿은 적이 없다. 죄를 회개치 않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은 멸망할 것이다. 장차 나타날 저 죄의 사람은 멸망하는 자들에게만 활동할 것이다.
넷째로, 죄의 사람이 멸망하는 자들에게 활동하는 이유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진리의 사랑은 복음 진리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킨다. 기독교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의 소식이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일서 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구원을 얻지만, 멸망하는 자들은 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죄의 사람이 그들에게 임하는 것이다.
[11-12절]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미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멸망하는 자들은 진리를 거부할 뿐 아니라, 저 죄의 사람에게 속아 거짓된 것을 믿고 따르며 불의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을 섭리 가운데 허용하실 것이다. 진리는 성경에 밝히 계시된 이신칭의(以信稱義)의 복음 곧 죄인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복음 신앙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역사적 기독교이며 성경적 기독교이며 옛신앙이다. 그 개요는 개혁신학으로 정립되어 있다. 그런데 멸망하는 자들은 성경 진리를 믿지 않고 거짓 것을 믿고 따를 것이다. 거짓 것이란 가짜 기독교, 성경 진리에서 이탈한 기독교, 변질된 기독교, 속화된 기독교, 거짓 기적을 추구하는 은사주의 기독교이다. 오늘날의 적지 않은 교회들은 성경의 근본교리들을 지키지 않고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을 따르거나 포용하고, 우상숭배적 천주교회를 포용하고 심지어 이방종교들을 포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심히 두렵게도, 이것은 교회들이 구원받은 표를 상실하고 멸망의 표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목사들과 성도들은 성경적,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지켜야 한다.
멸망하는 자들은 또한 불의를 좋아한다. 사상과 윤리는 같이 간다. 진리를 저버린 사람들은 도덕적으로도 타락한다. 불신앙, 배교, 자유주의, 신앙적 변질과 해이 등은 불의, 탐욕, 음행, 포용주의, 타협 등 윤리적 부패와 해이로 나아간다. 그 결말은 하나님의 심판과 정죄이며 멸망이다. 우리는 오늘 시대의 이런 풍조를 경계해야 한다.
본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나타날 죄의 사람의 활동들의 근원과 방법과 대상과 이유에 대해 증거한다. 죄의 사람의 활동들은 사탄의 활동에 뿌리를 두고, 그 방법은 거짓된 기적과 불의와 속임이며, 그 대상은 멸망하는 자들이고, 그 이유는 저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우리는 거짓된 기독교를 분별하고 배격해야 한다. 오늘날에는 진리를 부정하는 사이비 기독교회들이 많다. 우리는 역사 깊은 이단인 천주교회, 또 특히 19세기 중반에서부터 번성하기 시작한 각종 이단종파들, 또 20세기 초부터 퍼져나간 배교적 자유주의 신학, 타협적 복음주의, 혼란한 은사주의 등을 분별해야 한다. 오늘날 적지 않은 교회들은 진리에 대해 충실하지 않다. 그들은 신앙의 선진들이 강조했던 신앙의 근본 교리들을 저버리고 있다. 천주교회와 자유주의 신학이 포용되고 은사주의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것들은 다 말세의 징조들이다. 그러므로 참된 성도들은 정신을 차리고 거짓된 기독교를 배격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성경적, 역사적 기독교를 굳게 붙들어야 한다. 역사적 기독교는 성경에 근거한 바른 교리와 바른 윤리이다. 우리는 바른 교리에 굳게 서야 한다. 우리는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굳게 붙잡아야 한다. 또 성경적 기독교의 교리들을 잘 정립한 사상 체계인 개혁신학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 우리는 윤리적으로도 바로 서야 한다. 바른 믿음은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삶으로 나타나며 또 그러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생활로 깨어 있고 성경적, 역사적 기독교 진리들을 다 믿고 개혁신앙을 지키고 또 성경의 교훈대로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말세를 사는 참된 성도들의 바른 신앙생활이다.
13-17절, 성경적 교훈을 지키라
[13-14절]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인들, 즉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을 구원해주신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근원과 그 구원의 방법과 그 구원의 목표에 대해 증거하였다.
첫째로,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의 선택에 근원을 두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즉 태초에, 창세 전에(엡 1:4) 우리를 택하셨다. 선택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의 행위이다. 로마서 9:16, “[선택은]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지 않으셨다면, 결코 아무도 구원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구원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말미암았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요 3:5). 사도 바울은 디도서 3:4-5에서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고 말했다. 구원(중생)은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사역이다. 그러나 인간편에서 구원은 진리 곧 ‘구원의 복음’(엡 1:13)을 믿음으로 얻는다. 복음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진리이다. 바울은 그들의 구원을 ‘복음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복음 안에서 부르신다. 회개와 믿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다.
셋째로,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는 것’이다. 그것은 성화의 완성 곧 부활의 영광을 가리킨다. 로마서 8:29-30,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3:20-21,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우리가 받은 구원은 참으로 놀라운 복이다. 하나님의 선택도,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도, 복음 진리를 믿음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함도, 또 장차 얻을 부활의 영광도 다 놀라운 복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고 사도 바울과 함께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고 감사해야 한다.
[15절]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遺傳)을 지키라.
‘이러므로’라는 말은 ‘너희가 이 놀라운 구원을 받았으므로’라는 뜻이다. 성도들의 성화(聖化) 생활을 위한 모든 교훈과 권면들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구원과 약속된 영광에 대하여 그들편에서 마땅히 응답하고 실천하고 행해야 할 바인 것이다.
우선, 우리는 진리의 지식과 믿음에 굳게 서야 한다. 지식과 믿음이 부족한 자는 넘어지고 낙심하고 실패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진리에 대한 확고한 지식과 확신이 꼭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 신약교회와 성도들에게 성경책을 주셨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믿음에 견고히 설 수 있다. 누가복음 1:4, “이는[누가복음을 쓴 목적은]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에베소서 6:10-11, 13-14,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대적하여 서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 . .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또 우리는 굳게 서서 말로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사도적 유전(遺傳), 곧 사도들을 통해 전해 받은 전통을 지켜야 한다. 그것은 ‘말로’ 직접 들은 것이든지, ‘편지로’ 받은 것이든지 다 동일한 권위를 가진다. 사도들의 교훈은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기독교는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져 있다(엡 2:20).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사도들이 증거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사도적 교훈은 개혁신학에 잘 표현되어 있다. 이것이 역사적 기독교 신앙이며 옛신앙이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통해 주신 구원의 복음 진리와 모든 교훈들은 불변적이고 영원하다. 갈라디아서는 ‘이신칭의’(以信稱義)로 표현된 이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이 없고 누가 다른 것을 전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1:8-9). 또 요한계시록 22:18-19는 그 책에 기록된 종말 예언에 무엇을 가감하지 말라고 엄히 경고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사도들이 교훈한 이 역사적 기독교, 개혁신학, 옛신앙을 잘 지켜야 한다. 이것이 보수신앙의 본질이다. 기독교는 새 것을 만들어 내는 종교가 아니고 옛 것을 지키는 종교이다. 우리는 이 옛신앙을 귀히 여기며 보수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이탈한 사람들의 모든 전통들을 버려야 하고 성경을 떠난 모든 종류의 이단들을 용납하지 말고 배격해야 한다. 우리는 오직 성경적, 역사적 기독교, 즉 사도적, 전통적, 정통적 기독교만을 믿고 보수해야 한다.
[16-1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말과 일에](전통사본)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세상의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 곧 부활과 천국과 영생의 소망을 은혜로 주셨다. 그러나 세상은 요동하는 바다 같고 인생의 행로는 고생과 수고가 많으며 우리는 삶의 현실 속에서 불안하거나 낙심치 않기 위해 시시때때로 위로가 필요하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인 선한 생활을 힘써야 한다(엡 2:10; 딛 2:14). 우리는 말과 행위에 있어서 선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말과 일에 우리를 굳게 하시기를 기원한 것이다.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 있고 또 하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구원을 확신하고 감사해야 한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만세 전의 은혜의 선택에 근거하였고 성령의 거룩케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얻었고 장차 부활과 변화의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같은 영광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와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보답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진리의 지식과 믿음에 굳게 서서 사도들을 통해 전달된 역사적 기독교 신앙, 즉 성경적 교훈, 개혁신학, 옛신앙을 확신하고 보수해야 한다. 특히, 오늘날 교회들의 배교와 타협과 혼란의 상황 속에서 우리는 성경적 교훈을 지키는 보수 신앙과 보수적 바른 교회의 건립과 교제가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지 바로 알아야 한다. 또 우리는 성경을 열심히 읽고 연구하고 개혁신학의 유산을 열심히 연구하고, 성경적 교훈, 즉 전통적, 정통적 바른 교훈을 확인하고 지키고 실천해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요동하는 세상 속에서 날마다, 일마다 우리에게 큰 위로를 주시고 모든 선한 말과 일에서 우리를 굳게 하실 것이다. 우리는 죄와 마귀의 시험이 많은 세상에서 때때로 심신으로 연약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받아 힘을 얻고 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굳게 서 모든 선한 말과 일에 힘쓰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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