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에서 문안 합니다.
매월 첫째주 화요일과 셋째주 화요일은 구조분석 방법론을
함께 연구 할수 있도록 하신 성령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목사님들께서 동참하시여 성서의 깊은 성찰이 있기를 기도 하겠습니다.
많은 은혜 받으시고 하나님만 자랑해 주세요.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아주 좋아 하세요.
주제절
외울 말씀 2장 20절이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베드로전서 2장 1-2절 단락구조분석 【성화 방법】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2: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1 <살아 있는 돌과 거룩한 국민>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악의와 모든 기만과 위선과 시기와 온갖 비방하는 말을 버리십시오.
2:1 그러므로 너희는 모든 악독과 모든 속임수와 가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1 Therefore, rid yourselves of all ①malice and all deceit and ②hypocrisy and ③envy and all ④slander,
▷ ①Or wickedness ②plural nouns ③plural nouns ④plural nouns
직역: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교활함과 위선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들을 너희는 버려라.
2:1 Ἀποθέμενοι οὖν πᾶσαν κακίαν καὶ πάντα δόλον καὶ
너희는 버려라 그러므로 모든 악독 과 모든 교활함 과 (명령분사: 과거 중간태 주격 2복)
ὑποκρίσεις καὶ φθόνους καὶ πάσας καταλαλιὰς
위선들 과 시기들 과 모든 비방하는 말들을
주해
▣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 앞에서(1:23-25) 성도들의 거듭남이 영원토록 존재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임을 밝힌 저자는 이제 그들이 거듭났다는 사실에 만족하여 머무를 것이 아니라 믿음이 계속적으로 성장해야 할 것을 주지시킨다. 본절은 성도들이 거짓 없이 형제를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1:22)대로 살기 위해 먼저 소극적으로 버려야할 것들을 기록하고 있다. 본절에 기록된 다섯 가지의 악덕들은 모두 '형제에 대한 거짓이 없는 사랑'에 거스르는 것들로, '악독'은 남을 해치려는 심사를 말하며 '궤휼'은 다른 사람을 기만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외식'은 겉과 속이 다른 행위를 말하며 '시기'는 타인의 행복을 원치 않는 마음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비방'은 악의에 찬 중상모략을 의미한다. 한편 동사 '버리다'에 해당하는 원어 '아포티데미'의 문자적 의미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버리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것이 성경에서는 주로 '죄를 버리다'라는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초대 교회 당시 죄 씻음을 상징하는 세례 의식을 행할 때 옷을 벗고 물 속에 잠기는 침례의 관습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본절에 제시된 다섯 가지의 버려야 할 항목들은 어느 시대에나 공통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하여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정확히 그려낼 수는 없다. 그러나 대강 분류해서 살펴볼 때 '악독'과 '궤휼', '외식', '시기'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악으로, 이 가운데 악독은 마음에, 나머지 세 가지는 행동에 나타나는 악을 가리키고 그중에 특별히 '비방'은 대인 관계에서 벌어지는 악을 가리키는 점을 보아 당시 소아시아 교회 안에는 신앙의 미성숙으로 말미암은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2: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2:2 갓난 아기와 같이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그리워하십시오. 여러분이 그것을 먹고 자라서,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2:2 갓난아이들처럼 영적이고 순전한 젖을 사모하여라. 이는 너희가 이 젖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는 것이다.
2:2 and like newborn babies, long for the ①pure ②milk of the word, so that by it you may grow ③in respect to salvation, ▷ ①Or unadulterated ②Or spiritual (Gr logikos) milk, so ③Or up to salvation
직역: 갓난 아기들과 같이 합당하게 순전한 젓을 너희는 간절히 사모하라 그 구원 안에서 자라나게 된다면 자라나게 하기 위함이라.
2:2 ὡς ἀρτιγέννητα βρέφη τὸ λογικὸν ἄδολον γάλα ἐπιποθήσατε,
같이 갓난 아기들과 그 합당하고 순전한 젓을 간절히 사모하라 (동사: 명령법 과거 능동태 2복)
ἵνα ἐν αὐτῷ αὐξηθῆτε εἰς σωτηρίαν,
위함이니 안에서 그것에 자라나게 되기 안으로 구원을 (동사: 가정법 과거 수동태 2복)
주해
▣ 갓난 아이. - '아이'에 해당하는 '브레포스'는 본래 태어나지 않은 애기(눅 1:41, 44)를 뜻하지만, 본절에서는 비유적으로 사용되어 '유아'(네피오이, 눅 2:12)를 가리킨다. 벧전 1:3,23절에서 '거듭난 자'들에 대한 묘사가 이제는 한 단계 진전되어 '갓난 아이'로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거듭난 자'는 그의 육신적 나이와 상관 없이 영적으로는 어린 아이이다.
▣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 갓난아이들은 단순히 젖을 원할 뿐만 아니라 강력한 본능적인 충동에 이끌리어 젖을 찾는다. 여기에 '사모하다'(에피포데인)라는 강한 어감의 동사를 사용하여 '갈망'하는 모습을 잘 표현해주었다. 갓난아이는 사모하는 것 밖에는 할 줄 모른다. 그와 같이 거듭난 성도들은 오직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하나님과 신령한 말씀의 젖을 사모해야한다. 한편 여기서 '젖'을 수식하는 형용사는 '순전한'과 '신령한' 둘인데, '순전한'에 해당하는 '아돌로스'는 문자적으로는 '악의 없는', '속임 없는'의 뜻으로 1절의 '궤휼'(돌로스)에 대조하여 쓴 것이다. 그리고 '신령한'에 해당하는 '로기코스'은 보통 '말씀'으로 번역되는 '로고스'에서 온 말이다. 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한데 칼빈이나 벵겔 등은 '말씀의 젖'으로, 알포드 등은 '신령한 젖'으로, 그리고 홀트 등은 '이치에 합당한 젖'으로 번역한다. 전장 23절에 비추어 볼 때 '말씀의 젖'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 이는…자라게 하려 함이라. - 영양이 풍부한 좋은 젖을 공급받은 아기의 육체가 날마다 건강하게 자라가듯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성도들도 순전하고 신령한 말씀의 젖을 공급받을 때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위해 마지막 때에 나타내시기로 예비하신 영광과 축복에 이르기까지 자라 나간다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을 자라게 하는 데는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만이 필요하다. 한편 '이로 말미암아'(엔 아우토)는 문자적으로 '그 안에서'라고 번역되는데, 저자가 '그것을 통하여'(디 아우투)라고 하지 않고 '엔 아우토'라고 한 것은 아마 그가 신령한 젖인 말씀과 그리스도를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베드로전서 2장 3-10절 단락구조분석 【성도가 이루어야 할 신령한 집】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2: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2:3 여러분은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습니다.
2:3 너희가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여라.
2:3 if you have tasted ①the kindness of the Lord. ▷ ①Lit that the Lord is kind
직역: 만일 너희가 주님의 인자하신 것을 맛보았습니다.
2:3 εἰ ἐγεύσασθε ὅτι χρηστὸς ὁ κύριος.
만일 너희가 맛보았습니다 것을 인자하신 그분 주님의 (동사: 직설법 과거 중간태/디 2복)
주해
▣ 너희가…맛보았으면 그리하라. - 본절은 시 34:8을 자유롭게 인용한 것으로 성도들이 어디에서 생명의 영양분을 공급받는지, 또한 그들로 하여금 더욱 강렬하고 간절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그것은 '주의 인자하심'을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여기서 '~으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에이'인데 이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만일 …이라면'이다. 그런데 이 말은 조건이나 의심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고 이유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으면'을 '…때문에' 또는 '…한즉'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좋다. 따라서 본절의 의미는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모든 하늘의 은사를 받았은즉 그 안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모하라'는 것이다. 진리의 말씀을 한 번 맛본 사람은 그것을 사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2:4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는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으셨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살아 있는 귀한 돌입니다.
2:4 사람들에게는 버림받았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2:4 As you come to him, the living Stone - rejected by humans but chosen by God and precious to him -
직역: 참으로 사람들에 의하여 버림받고 있는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보배로운 살아있는 산돌 이신 예수에게로 나아와서
2:4 πρὸς ὃν προσερχόμενοι λίθον
에게로 예수 나아와서 돌을 (분사: 현재 중수디 주격 2복)
ζῶντα ὑπὸ ἀνθρώπων μὲν ἀποδεδοκιμασμένον, (분사: 완료 수동태 대격 단수)
산 의하여 사람들에 참으로 버림을 받고 있는 (분사: 현재 능동태 대격 단수)
παρὰ δὲ θεῷ ἐκλεκτὸν ἔντιμον,
께서는 그러나 하나님 택하신 보배로운
주해
▣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 이 구절은 시 118:22을 다소 변형하여 인용한 것으로 저자는 아마예수께서 시 118:20을 인용하여 하신 말씀을 염두에 둔 것 같다. 즉 시편에서 '버린 돌'은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영광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권세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여 쓸모없는 것으로 버림을 받은 이스라엘을 상징하였으나 예수님은 이를 자신에게 적용시켜 자칭 건축자들이라 일컫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버림을 당하실 것을 암시하셨다. 그러므로 여기서 사람에 버린 바 된 돌은 직접적으로 그리스도의 배척당하심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그리스도에게 속한 수신자들이 고난을 당할 것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 산 돌. - 저자는 '젖'의 비유에서 이제는 '산 돌'의 비유로 넘어간다. 아마도 베드로는 안드레가 자기를 주님에게 데려갔을 때 예수께서 자기에게 지어 주신 새로운 이름을 생각하였을 것이다. 물론 차이점이 있기는 하다. 베드로의 이름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트로스'는 견고한 자연석이나 다듬지 않은 돌인 바위 조각을 뜻하지만, 본절의 '돌'에 해당하는 헬라어 '리도스'는 모퉁이의 머릿돌로 택해져서 잘 다듬어지고 손질된 돌을 말한다. 베드로는 이것에 '산'(존타)이란 형용사를 덧붙여 의도적인 모순을 일으킴으로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인 예수 그리스도를 부각시키고 있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2:5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과 같이 되었으니, 신령한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시오.
2:5 너희도 산돌같이 영적인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영적인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라.
2:5 you also, like living stones, are being built into a spiritual house* to be a holy priesthood, offering spiritual sacrifices acceptable to God through Jesus Christ. / *Or into a temple of the Spirit
직역: 너희 자신도 역시 산 돌과 같이 영적인 한 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만한 영적인 제물들을 드리기
위하여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진다.
2:5 καὶ αὐτοὶ ὡς λίθοι ζῶντες οἰκοδομεῖσθε (동사: 직설법 현재 수동태 2복)
역시 자신도 같이 돌들과 산 그들이 되어진다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2복)
οἶκος πνευματικὸς εἰς ἱεράτευμα ἅγιον ἀνενέγκαι
한집이 영적인 으로 한 제사장을 거룩한 드리기 위하여 (부정사: 과거 능동태)
πνευματικὰς θυσίας εὐπροσδέκτους θεῷ διὰ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영적인 제물들을 기쁘게 받으실만한 하나님께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주해
▣ 너희도 산 돌 같이. - 그리스도를 '산 돌'에 비유했던(4절) 저자는 이제 산 돌이신 분과 연합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산 돌'이라는 명칭을 붙인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돌'이 그리스도를 가리킬 때는 단수 '리돈'이었으나 본절에서 성도들을 가리킬 때는 복수 '리도이'가 쓰였다. 이는 성도 홀로는 거룩한 집을 지을 수 없음을 시사한다. 즉 성도는 신령한 집의 기초이자 모퉁이 돌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다른 성도들과 연합할 때 비로소 아름답고 신령한 집인 교회를 세워나가게 되는 것이다.
▣ 신령한 집. - 그리스도인을 '산 돌'에 비유한 데 이어 다시금 '산돌'을 '신령한 집', 즉 '성전'에 비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개념은 본서만의 독특한 사상이 아니라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저자는 이러한 비유를 통하여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그의 독자들은 하나님의 참된 성전을 형성한다는 것을 알려주며, 이 새로운 성전은 구약에서 보이는 한 지방에 국한된 물질적인 성전과 대조적인 신령한 성전임을 주장한다. 공관복음서에 나타나 있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시온에 있는 성전을 대신하여 손으로 짓지 아니한 성전을 일으키실 것을 말씀하셨다. 이 비유에 대해 알포드 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돌은 산 것이라 하고 그 집은 신령한 것이라 하였다. 이는 단지 그들이 죽은 돌이 아니며 그 집은 물질적인 것이 아닌 것을 말할 뿐더러 산 돌이신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성령이 내주하시는 몸으로 드리는 제사의 성격을 밝히는 것이다'.
▣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 저자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라 부르는 데서 진일보하여 이제 성전 안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라고 부르고 있다(9절). 이러한 주장은 당시 일반적인 유대인의 인식에 있어서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본래의 목적은 이스라엘이 열방에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성취되지 못했던 이 이상(理想)은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성취되었다. 여기서 성도들이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께 드릴 제사는 영적 산 제사이다. 한편 여기에 논거된 만인 제사주의의 관념은 카톨릭의 특정 제사주의 교리를 거부한다. 이러한 '만인 제사주의'는 16세기 종교 개혁가들이 높이 들었던 기치들 중의 하나였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2:6 성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6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f) "보아라, 내가 골라낸 귀한 모퉁잇돌 하나를 시온에 둔다.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f. 사28:16(70인역))
2:6 이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 "보아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니, 그분을 믿는 자는 결단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2:6 For in Scripture it says: “See, I lay a stone in Zion, a chosen and precious cornerstone, and the one who trusts in him will never be put to shame.”* / *Isaiah 28:16
직역: 왜냐하면 성경 이사야 28장 16절 안에 담고 있다. 보라 내가 시온 안에 택한 보배로운 최고의 모퉁이 한 돌을 항상 둔다.
그런즉 믿는 그 사람에 대하여 결코 조금도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면 당하지 아니하리라
2:6 διότι περιέχει ἐν γραφῇ·
왜냐하면 담고 있다 안에 성경에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ἰδοὺ τίθημι ἐν Σιὼν λίθον ἀκρογωνιαῖον ἐκλεκτὸν ἔντιμον,
보라 내가 둔다 안에 시온 한 돌을 최고의 모퉁이 택한 보배로운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1단)
καὶ ὁ πιστεύων ἐπ᾽ αὐτῷ οὐ μὴ καταισχυνθῇ. (동사: 가정법 과거 수동태 3단)
그런즉 그(사람은) 믿는 대하여 그에게 아니하리라 결코 조금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단수)
주해
▣ 경에 기록하였으되. - 저자는 본절에서부터 8절까지의 내용에 구약에서 세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앞서 언급한 '돌'에 대한 그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그 가운데 본절은 사 28:16을 약간 변형하여 인용한 것이다. '기록하였으되'에 해당하는 헬라어'페리에케이'는 '기록하다'보다는 '내포하다'는 의미가 강하며 이러한 본절의 용례는 신약에서 유일하다.
▣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 메 카타이스퀸데'는 문자적으로는 '급한 일을 당치 아니하리라'는 뜻이다. 이에 대하여 혹자는 이 말씀이 현재에 성도들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 부끄러움을 당치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데 , 문법으로 또는 구약적 배경으로 볼 때 이것은 미래의 돌연한 환난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2: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2:7 그러므로 이 돌은 믿는 여러분에게는 귀한 것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g) "집짓는 자들이 버렸으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돌"이요, (g. 시118:22(70인역))
2: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하였고,
2:7 Now to you who believe, this stone is precious. But to those who do not believe, “The stone the builders rejected has become the cornerstone,”* / *Psalm 118:22
직역: 그러므로 믿는 그 사람들은 너희에게 보배이나 그러나 믿지 않는 그 사람들이 버렸던 바 그 돌이 '시편 118편22절에' ,"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2:7 ὑμῖν οὖν ἡ τιμὴ τοῖς πιστεύουσιν,
너희에게 그러므로 이나 보배 그(사람들) 믿는 (분사: 현재 능동태 여격 2복)
ἀπιστοῦσιν δὲ λίθος ὃν ἀπεδοκίμασαν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복)
믿지 않는(사람) 그러나 그 돌이 바 버렸던 (분사: 현재 능동태 여격 복수)
οἱ οἰκοδομοῦντες,
그(사람들) 건축하는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복수)
οὗτος ἐγενήθη εἰς κεφαλὴν γωνίας
이 돌이 되었다 으로 머릿(돌) 모퉁이의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디 3단)
주해
▣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 본절과 8절은 심한 대조들로서 이루어지고 있다. 우선 본절은 그리스도 자신이 '보배'이자 '장애물'로서 대조되고 있으며,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도 날카롭게 대조되고 있다. 바울도 그의 서신에서 이와 비슷한 대조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는 그리스도의 성역이신 '십자가의 도'에 대하여 논하지만 여기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신분 자체'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한편 '보배'( 헤 티메)를 형용사로 보아 '보배로우나'로 해석하는 학자가 있는데, 관사 '헤'가 있는 것으로 보아 명사로 간주하는 것이 옳다. 따라 구절은 믿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가 영광이 되신다는 의미이다.
▣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 이 구절은 시편 118:22을 인용한 것으로 예수께서도 인용하셨으며, 베드로 자신도 예루살렘 성전 미문에서 행한 설교 중에서 인용한 바 있다. 자칭 건축자들이라 일컫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버렸지만 그러한 배척을 통하여 그리스도는 이방인들까지 포함하여 그를 믿는 자들의 머릿돌이 되셨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자들, 특히 아시아 지역 성도들을 박해하는 자들에게 큰 경고가 된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 버림받은 것같이 보였던 그리스도가 하나님에 의해 영광을 받으신 것같이, 지금 박해를 당하고 있는 아시아 지역의 성도들도 영광을 받으므로 그들을 박해하고 있는 자들이 오히려 굴욕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비록 지금 견디기 힘든 고난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장차의 영광에 대한 소망을 바라보며 현재의 고난을 오히려 기쁨으로 이기고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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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2:8 또한 h) "걸리는 돌과 넘어지게 하는 바위"입니다. 그들이 걸려서 넘어지는 것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요, 또한 그렇게 되도록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2:8 또한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라고 하였다.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넘어지는데, 이는 그들이 그렇게 되도록 정하여진 것이다.
2:8 and, “A stone that causes people to stumble and a rock that makes them fall.”* They stumble because they disobey the message - which is also what they were destined for. / *Isaiah 8:14
직역: 또한 걸림 돌과 실족하게하는 돌(반석[말씀])은 그들이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걸려 넘어진다. 역시 이같은~것들이 정해졌다.
2:8 καὶ λίθος προσκόμματος καὶ πέτρα σκανδάλου·
또한 돌 걸림의 과 반석이 실족하게 함의
οἳ προσκόπτουσιν τῷ λόγῳ ἀπειθοῦντες εἰς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복수)
그(들이) 걸려 넘어진다 그 말씀에 순종치 아니하므로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복)
ὃ καὶ ἐτέθησαν.
그것 역시 그들도 정해졌다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3복)
주해
▣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 - 이 구절은 사 8:14에서 인용한 것으로 앞절에서 인용한 시 118:22과 함께 '머릿돌'과 '부딪히는 돌'을 대조시킴으로 그리스도의 양면성을 강조하고 있다. '부딪히는 돌'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콤마'는 '사람이 우연히 걸려 넘어지는 장애물'이란 뜻이며, '거치는 반석'(스칸달론)은 '사람을 빠지게 하기 위하여 설치해 놓은 함정'이란 뜻이다. 전는 그리스도에 대적함으로써 파멸하는 자에게 해당하는 말이며 후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마음에 회의를 일으켜 그 생애에 지장을 받는 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여하튼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보배'이지만,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마음대로 살아가는 자들에겐 심각한 방해물이 된다.
▣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 '순종치 않다'로 번역된 헬라어 '아페이둔테스'는 직역하면 '믿지 않는'이란 뜻이지만 주로 '불순종', 즉 '고의적인 반대'를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말씀에 순종치 않는 자들은 복음에 대하여 능동적으로 반항하는 자들이며 이들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그리스도, 즉 복음은 이들의 전진을 방해하는 부딪히는 돌이 될 수밖에 없다. 참 신앙은 순종으로 나타나지만 불신앙은 불순종으로 나타난다.
▣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 '정하신'으로 번역된 헬라어 '에테데산'은 '규정하다'는 뜻을 가진 동사 '티데미'의 부정과거형으로 하나님의 예정하심에 적용되는 말이다. 여기서 저자는 성도인 수신자들을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신 것처럼, 말씀을 순종치 않는 자들은 멸망을 위해 예정된 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저들의 넘어짐은 사람들 편에서 볼 때 말씀에 불순종하여 넘어진 것이지만 하나님 편에서 볼 때 그는 이미 예정된 것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불순종하는 자들이 불순종으로 넘어지도록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유기'(遺棄)라 부른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2:9 i) 그러나 여러분은 택함을 받은 민족이요, 왕의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국민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그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i. 사43:20,출19:5-6,사43:21)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고, 왕 같은 제사장들이고, 거룩한 나라이고, 그분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움에서 그분의 놀라운 빛에 들어가게 하신 분의 덕을 선포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2:9 But you are a chosen people, a royal priesthood, a holy nation, God’s special possession, that you may declare the praises of him who called you out of darkness into his wonderful light.
직역: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위한 소유이며, 너희를 어두움에서 부른신 놀라운 이유는 너희가 그의 빛 안에서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기 위함이라. (사43:20,출19:5-6,사43:21)
2:9 ὑμεῖς δὲ γένος ἐκλεκτόν, βασίλειον ἱεράτευμα,
너희는 그러나 족속 택하신 왕 같은 제사장
ἔθνος ἅγιον, λαὸς εἰς περιποίησιν,
나라와 거룩한 백성 위한 (그의) 소유를
ὅπως τὰς ἀρετὰς ἐξαγγείλητε τοῦ ἐκ σκότους ὑμᾶς
위함이라 그 아름다운덕을 너희가 선포하기 그 에서 어두움 너희를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2복)
καλέσαντος εἰς τὸ θαυμαστὸν αὐτοῦ φῶς·
부르신 안으로 그 놀라운 그의 빛을 (분사: 과거 능동태 속격 단수)
주해 앞에서(7,8절) 불신자의 운명을 기록한 저자는 이제 그들의 운명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분을 감격적으로 기술한다. 본절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족속'( 게노스), '나라'(에드노스), '백성'(라오스)이란 말들은 구약 70인역에서 인용한 것으로서,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의 특수한 성격을 표현하는 것이나 여기서는 새로운 이스라엘, 즉 그리스도인의 특권을 표현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칭호들은 모두 성격상 단체적인 성격을 띄고 있으며 개인으로서 각각의 그리스도인들 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지칭하고 있다.
▣ 택하신 족속. - 이것은 사 43:20을 인용한 것으로 저자는 구약을 인용함으로써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특권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옮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셨으나 그들은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징벌을 받고 언약의 땅인 가나안에서 쫓겨났다. 하나님은 이제 그들 대신에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구원받은 자들을 '택하신 족속'으로 삼으셨다. 이 족속은 더 이상 육적인 혈통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이 택하신 바 모퉁이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교회 공동체 안의 모든 성도들을 한 족속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 왕 같은 제사장들. - 이 구절은 출 19:6을 인용한 것이다. 저자는 앞서 5절에서는 '제사장'이란 말에 '거룩한'이란 형용사로 수식하였으나 여기서는 '왕 같은'이란 형용사로 수식한다. 이 말은 하나님 나라의 제사장이란 뜻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왕이요 제사장으로 보는 것이 더 좋다. 왕이요 제사장의 모델은 살렘 왕 멜기세덱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는 아브라함을 축복한 왕과 제사장을 겸한 자로서 영원한 왕이시며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이제 이러한 특권이 성도들에게 부여되었는데 이것은 이 세상에서 성도와 하나님을 중보할 어떤 제사장도 필요치 않으며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를 능가할 어떤 사람도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 거룩한 나라요. - 역시 출 19:6에서 인용하였다. 이것은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던 이름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 위해 구별된 거룩한 나라였으나, 그들의 내적인 불결함 때문에 거룩함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그리스도의 피에 의해 씻김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거룩한 나라'이다. 따라서 거룩한 나라인 성도들, 즉 교회는 내적인 정결을 유지해야 하며 세상을 향하여 거룩함을 보여 주어야만 한다.
▣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 출 19:5에서 인용한 것으로 신 7:6과 말 3:17에서도 동일한 구절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 말을 신명기에서는 '특별한 백성'으로 말라기에서는 '특별한 소유'로 번역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하고 소중히 간직된 소유라는 뜻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제 교회를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라고 하셨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값 주고 사심으로 자신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신 것이다.
▣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 사 43:21의 인용으로 이것은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이상과 같은 세 가지의 특수한 신분을 주신 목적을 밝히고 있다. 그것은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의 덕을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역할을 감당케 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택하였으나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깨닫지 못하고 특권 의식에 빠져 복음의 배타주의로 흐름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영적 이스라엘'된 성도들에게 이 특권들을 다시 주심으로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는 자로 삼으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일차적으로 우리 자신을 복주시기 위함이나 궁극적으로 세상에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으며, 바울도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고 하였다. 이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인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지으셨는지에 대하여 이 세상에서 우리가 나그네란 사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어두움에서 이끌어 빛으로 인도하셨는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증거해야 한다. 당신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두신 이 기이한 사명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라.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2:10 여러분은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그분의 백성이요, 전에는 자비를 입지 못한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자비를 입은 사람입니다.
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으나,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들이다.
2:10 Once you were not a people, but now you are the people of God; once you had not received mercy, but now you have received mercy.
직역: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받지 못하였더니 그러나 이제는 긍휼을 받은자이다.
2:10 οἵ ποτε οὐ λαός, νῦν δὲ λαὸς θεοῦ,
그(너희) 전에는 아니더니 백성이 이제는 그러나 백성이요 하나님의 (엡5장8절)
οἱ οὐκ ἠλεημένοι, νῦν δὲ ἐλεηθέντες. (분사: 과거 수동태 주격 2복)
그(사람들) 못하였더니 긍률을 받지 전에는 그러나 긍률을 받은자 (분사: 완료 수동태 주격 2복)
주해
▣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 저자는 본절에서 2개의 극단적이고 대조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택함 받은 성도의 신분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본절은 호 1:6-10; 2:23을 결합하여 간접적으로 인용한 것이다. 호세아는 부정한 여인 고멜에게서 낳은 자녀에게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을 통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셨다가 다시 회복시키실 것을 보았다. 본서의 저자는 이 이야기를 자신의 수신자들에게 적용하여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중생하여 이제는 완전히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이로써 그들이 전에는 긍휼을 입을 자격이 없던 자들이었으나 이제는 긍휼을 입어지금 가해지고 있는 박해자들의 박해로부터 보호를 받을 것이며 마지막 때의 궁극적인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박해에 처한 수신자들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는 것이며 또한 오늘의 성도들에게도 커다란 교훈을 준다. 성도들이 자신의 신분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마지막까지 어떠한 악의 세력으로부터도 보호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된 성도는 비록 어려움에 처한다 해도 소망을 잃지 말고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야 할 것이다.
베드로전서 2장 11-12절 단락구조분석 【성도의 사회생활 자세에 대한 원론적 교훈】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2: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2:11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나그네와 거류민같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적인 욕정을 멀리하십시오.
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는 외국인과 나그네 같은 너희에게 영혼을 대적하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권한다.
2:11 Dear friends, I urge you, as foreigners and exiles, to abstain from sinful desires, which wage war against your soul.
직역: 사랑하는자들아 내가 계속해서 나그네들과 거류민과 같이 권면한다. 그것들은 그 혼을 거스려 싸운다 그 육체들의 정욕을 삼가라
2:11 Ἀγαπητοί, παρακαλῶ ὡς παροίκους
사랑하는자들아 내가(계속해서)권면한다 같이 거류민들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1단)
καὶ παρεπιδήμους ἀπέχεσθαι τῶν σαρκικῶν ἐπιθυμιῶν
그리고 나그네들과 삼가라 그 육체들을 정욕의 (부정사: 현재 중간태)
αἵτινες στρατεύονται κατὰ τῆς ψυχῆς·
그것들은 싸운다 거스려 그 혼을 (동사: 직설법 현재 중간태 3복)
주해
▣ 사랑하는 자들아. - 앞의 1:13-2:10까지에서 대체적으로 개인 생활에 관한 권면을 준 저자는 이제 본절부터 3:17까지에서는 성도들이 사회인으로서 처신해야 할 바를 교훈한다. 특히 본절과 12절은 그에 대한 원론적인 교훈을 담고 있다. 시작하는 말인 '사랑하는 자들아'(아가페토이)는 수신자들에 대한 베드로의 애정 섞인 용어이다. 베드로는 이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그의 서신에 8번에 걸쳐 나타난다. 바울 서신과 요한과 야고보 서신에도 많이 나타나는데 주로 주의를 환기시킬 때나 간곡한 권면을 시작할 때 사용되었다.
▣ 나그네와 행인. - 그리스도인들의 위치와 삶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나그네'(파로이코스)는 '이국에 정착해 사는 사람' 또는 '낯선 땅에 거주하는 사람'을 의미하고, '행인'(파레피데모스)은 외국 땅에 영구적으로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동안만 체류하는 '방문객'을 의미한다. 두 단어가 조금 다른 의미를 갖지만 전하고자 하는 바는 가지이다. 즉 성도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나그네들이며 영원한 시민권이 없는 행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전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을 현실 도피적인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늘에 속한 자라는 사실이 성도로 하여금 고난 속에서 힘들지라도 일상생활을 힘 있게 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 '육체'(사륵스)는 일반적으로 인간 본성이 존재하는 영역으로서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으나, 이 단어가 '육체의 정욕'이라는 형태로 사용될 때는 구속받지 못한 상태에 있는 인간의 전체적인 본능과 죄의 좌소 그리고 매개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육체의 정욕'은 우리의 부패한 본성에서 나오는 모든 악한 욕구들을 말한다. 이것들은 이 세상의 풍속을 따르고 하나님을 거스리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영혼의 거룩성을 파괴시키는 데 앞장선다. 또한 이것들을 절제하지 않으면 이 땅에서 나그네로서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적극적인 절제를 통하여 육체의 정욕이 발붙일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2:12 여러분은 이방 사람 가운데서 행실을 바르게 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그들이 여러분더러 악을 행하는 자라고 욕을 하다가도 여러분의 바른 행위를 보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2:12 너희가 이방인 가운데서 행실을 선하게 하여라. 이는 그들이 너희를 악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비방하다가도 너희의 선한 행위들을 보고 하나님께서 돌아보시는 날에 그분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다.
2:12 Live such good lives among the pagans that, though they accuse you of doing wrong, they may see your good deeds and glorify God on the day he visits us.
직역: 너희가 이제는 이방 사람들 가운데 있는 동안 생활방식을 아름답게 가져라. 그들이 너희를 악을 행하는자들과 같이 비방하는 자들에 의하여 그 권고의 날에 너희 아름다운 행위들에 지켜보면서 하나님께 영광스럽게 하기 위함이라.
2:12 τὴν ἀναστροφὴν ὑμῶν ἐν τοῖς ἔθνεσιν ἔχοντες καλήν,
그 생활방식을 너희는 가운데 이제는 이방사람들 너희가가져라 아름답게 (명령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2복)
ἵνα ἐν ᾧ καταλαλοῦσιν ὑμῶν
위함이라 안에 동안 그들이 비방하는 너희를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복)
ὡς κακοποιῶν ἐκ τῶν καλῶν ἔργων ἐποπτεύοντες
같이 악행하는자들과 의하여 그 아름다운 행위들에 지켜 보면서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복수)
δοξάσωσιν τὸν θεὸν ἐν ἡμέρᾳ ἐπισκοπῆς.
영광스럽게하기 그 하나님을 에있어 날 권고의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3복)
주해
▣ 행실을 선하게 가져. - 앞절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소극적으로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을 했던 저자는 이제 적극적으로 선행을 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본절은 마 5:16에서 말씀하신 주님의 명령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믿지 않는 자들의 행실은 벧전 1:18절에 나와 있듯이 망령되다. 반면 그리도인의 행실은 '선'(善)해야 한다. 여기서 '선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칼로스'는 겉모양의 선하고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안의 성격조차도 옳고 정의로운 것을 말한다. 이런 '선함'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드러난다.
▣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 이는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했던 위험한 상황들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주는 표현이다. 당시 그리스도교는 새로운 미신이라는 오해를 받았는데 로마의 역사가였던 타키투스는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평판을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추행 때문에 미움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추행'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리스도인들이 애매한 오해와 비난을 받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성경 안에도 그러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가이사의 명을 거역한다'거나 '전각의 물건을 도적질하며 여신을 훼방한다'는 등의 고소를 당하기까지 하였다.
▣ 권고하시는 날에. - 저자는 그러나 그러한 오해의 눈길이 결국 하나님을 높이는 결과를 맺기 바라고 있다. '권고하시는 날'(엔 헤메라 에피스코페스)이 언제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 날에 대하여는 ① 최후의 심판의 날, ② 성도들이 세상 법정에 서는 날, ③ 성도들을 비방하는 자들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에 의해 변화를 받아 회개하는 날 등의 주장이 있는데 뒤에 따르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에 비추어 볼 때 세 번째 견해로 보는 것이 좋다.
베드로전서 2장 13-17절 단락구조분석 【국가 위정자에 대한 성도의 자세】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2: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2:13 여러분은 주님을 위하여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에 순종하십시오. 주권자인 왕에게나,
2: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님을 위해 복종하여라. 권세를 잡은 왕에게나,
2:13 Submit yourselves for the Lord’s sake to every human authority: whether to the emperor, as the supreme authority,
직역: 만일 주님을 통하여 인간에게 속한 모든 제도를 왕에게든지 최고권위에 있는 자에게 같이 너희는 복종하라
2:13 Ὑποτάγητε πάσῃ ἀνθρωπίνῃ κτίσει
복종하라 모든 인간에게 속한 제도 (동사: 명령법 과거 수동태 2복)
διὰ τὸν κύριον, εἴτε βασιλεῖ ὡς ὑπερέχοντι
통하여 그 주님 만일 왕에게든지 같이 최고권위에 있는 자에게 (분사: 현재 능동태 여격 단수)
주해
▣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 - 저자는 '선행'(12절)에 대한 실례를 들기 위해 일반인, 아내, 노예 등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각각의 처지에서 지켜야 할 규범(規範)들을 길게 설명한다. 그 첫째 권고가 '국가 내에서 시민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행할 것인가'이다. '제도'라는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티시스'는 고전 헬라어에서는 도시 같은 것의 '토대'를 의미했으나 신약에서는 주로 '창조' 혹은 '창조물'이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역사(役事)에만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여기의 '제도'를 '사람이 세운 모든 제도'라고 번역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세우신 제도'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이것은 모든 인간 제도들은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것으로 모든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바울의 견해와 일치한다.
▣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 여기서 베드로는 당시 성도들이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불복한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고소당하였던 일을 상기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에 베드로는 징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인간적인 동기가 아니라 주님을 위한 동기를 가지고 세상 제도들에 복종하라고 권면한다. 왜냐하면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 바이기에 그것들에 순복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정하신 법에 순종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며, 또한 주님 자신도 인간으로서 인간제도에 순복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순복함으로 그리스도를 전하고 주를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결국 우리가 그리스도를 창조주로서 믿고 따른다면 그분의 창조물인 인간과 그 모든 제도들에 대하여 겸손하게 순복하여야 한다.
▣ 위에 있는 왕. - 당시는 로마 황제를 가리킨 것이나 오늘날은 각 나라의 최고 통수권자를 가리킨다. 한편 본서가 기록될 당시의 로마 황제는 악명 높은 폭군이었던 '네로'였던 바 이러한 자에게까지 복종하라는 베드로의 권고는 세상의 권력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철저한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2: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총독에게 하라
2:14 총독들에게나, 그렇게 하십시오. 총독들은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벌을 주고,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게 하려고, 왕이 보낸 이들입니다.
2:14 또는 악을 행하는 자들을 벌하고 선을 행하는 자들을 칭찬하기 위해 왕이 보낸 총독들에게 복종하여라.
2:14 or to governors, who are sent by him to punish those who do wrong and to commend those who do right.
직역: 만일 악을 행하는자들을 징벌 하고 선행하는자들을 칭찬하기 위하여 보내어진 통치자들에게 너희는 그를 순복하라
2:14 εἴτε ἡγεμόσιν ὡς δι᾽ αὐτοῦ
만일 통치자들에게든지 같이 통하여 그를
πεμπομένοις εἰς ἐκδίκησιν κακοποιῶν,
보내어진(순복하라) 위하여 징벌을 악행하는자들의 (분사: 현재 수동태 여격 복수)
ἔπαινον δὲ ἀγαθοποιῶν,
칭찬을 또 선행하는자들의
주해
▣ 혹은…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 '방백'(헤게몬)은 지방 총독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어떤 특별한 목적을 받고 황제에 의해 임명되었다. 그들에게 부여된 임무는 본절에 나와 있듯이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포장하다'(에파이로)라는 말은 '들어 올리다', '높이다'는 뜻으로 선행한 자에 대하여 포상을 한다든지 칭찬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일부 학자들은 본절의 '그'를 '하나님'으로 해석하여 하나님이 왕을 통해 보낸 방백에게 순종하라는 의미로 본절을 해석하기도 하는데, 헬라어 본문의 문법상 타당성이 없지 않으나 문맥의 흐름으로 볼 때 단순히 황제에 의해 파견된 방백에게 순종하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2: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2:15 선을 행함으로 어리석은 자들의 무지한 입을 막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2:15 이는 너희가 선을 행함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잠잠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2:15 For it is God’s will that by doing good you should silence the ignorant talk of foolish people.
직역: 이와같이 선을 행하며 지각없는 무지의 사람들을 잠잠하게 하는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2:15 ὅτι οὕτως ἐστὶν τὸ θέλημα τοῦ θεοῦ
때문이라 이와같이 이다 그 뜻 그 하나님의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ἀγαθοποιοῦντας φιμοῦν (부정사: 현재 능동태)
선을 행하며 잠잠하게하는 것 (분사: 현재 능동태 대격 2복)
τὴν τῶν ἀφρόνων ἀνθρώπων ἀγνωσίαν,
그 그 지각이없는 사람들을 무지의
주해
▣ 선행으로…막으시는 것이라. - 베드로는 13,14절에서 권세자들에게 순복할 것을 권고한 데 이어 본절에서는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당시 불신자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온갖 죄명을 뒤집어 씌워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12절)이라고 비난하였다. 이에 대해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이 인간 제도와 세상 권력자들에게 순복함으로 선행을 하는 것이 그들의 입을 막는 최선의 길임을 교훈하고 있다.
▣ 어리석은 사람들. - '어리석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프로'은 아주 강한 표현으로 '몰지각한'을 의미한다. 70인역에서는 의(義)와 진리(眞理)에 대항하여 자신을 세우는 교만한 불신자들을 묘사할 때 일반적으로 쓰였다. 본절에서는 관사 '톤'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12절에 기록된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옳다. 이들은 세상 지혜에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나 하나님의 진리에는 무식한 자들로서 이성이나 지식이 없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비방을 일삼는 터무니 없는 말쟁이들이다. 이들의 입을 잠잠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에 맞서 변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선행을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온갖 비방과 험담 그리고 박해 가운데서도 묵묵히 기독교 진리를 실천하며 행동으로 선행을 보여 주는 자세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 또한 가져야 할 자세임에 틀림없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2: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2:16 여러분은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그러나 그 자유를 악을 행하는 구실로 쓰지 말고, 하나님의 종으로 사십시오.
2:16 너희는 자유인으로 살아라. 그러나 그 자유를 악행의 구실로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라.
2:16 Live as free people, but do not use your freedom as a cover-up for evil; live as God’s slaves.
직역: 너희는 자유인들과 같이 그 자유를 누리며 악을 가리우는것 같이 사용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들 같이 살아라
2:16 ὡς ἐλεύθεροι
같이 자유인들과
καὶ μὴ ὡς ἐπικάλυμμα ἔχοντες τῆς κακίας τὴν ἐλευθερίαν
그리고 말고 같이 가리우는 것 누리며 그 악의 그 자유를 (명령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2복)
ἀλλ᾽ ὡς θεοῦ δοῦλοι.
오직 같이 종들 하나님의
주해
▣ 자유하나…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에 의한 자신의 '자유'에 대해 자부심과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전절에서 저자는 '복종'을 강조했다. 이에 따른 혼동을 이해시키기 위해 저자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개념과 실현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죄에서 해방되어 '진리'에 의해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 '자유'를 잘못 사용하여 권세자들에게 대항하거나 자기의 악을 은폐해서는 안 된다. 자유를 방종과 혼동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의 세력과 죄, 세상의 악한 세력으로부터 자유를 누리는 자들이지만 하나님의 뜻에 단순히 복종해야만 하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누리는 참 자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께 철저히 복종할 때 안전하게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독교의 역설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망의 권세를 가진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어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의 종된 자들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방종으로가 아니라 세워진 권위들에 대한 자발적인 순종으로 나타내져야 한다. 합법적인 제도에 순복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법들의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자유로이 준수되어야 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2: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2:17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신도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경하십시오.
2:17 모든 이들을 존경하고, 형제들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왕을 존경하여라.
2:17 Show proper respect to everyone, love the family of believers, fear God, honor the emperor.
직역: 모든 사람을 존경하라. 형제를 사랑하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왕을 존경하라.
2:17 πάντας τιμήσατε,
모든사람을 존경하라 (동사: 명령법 과거 능동태 2복)
τὴν ἀδελφότητα ἀγαπᾶτε,
그 형제를 사랑하라 (동사: 명령법 현재 능동태 2복)
τὸν θεὸν φοβεῖσθε,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동사: 명령법 현재 중수디 2복)
τὸν βασιλέα τιμᾶτε.
그 왕을 존경하라 (동사: 명령법 현재 능동태 2복)
주해
▣ 뭇 사람을 공경하며. - 이제까지(13-16절)의 권면의 내용이 묶여지며 결론지어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을 공경해야 한다. 물론 이방인은 '무식한'(15절)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자들이며,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삶을 부여받은 고귀한 자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자고해서는 안 된다. 또한 어느 누구도 멸시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비록 죄로 인하여 일그러지며 심각한 손상을 입은 자들이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며 심지어 더할 수 없이 악한 사람이라고 해도 멸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독특하게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공경하며'(티메사테)는 확증적 의미의 부정과거 명령법이 사용되어 단호하고도 결정적 원칙으로 세워놓는 듯하다.
▣ 형제를 사랑하며. - 여기서 '형제'는 같은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즉 성도들은 먼저 주 안에서 한 식구된 형제자매들을 사랑해야 한다. 특별히 여기서 '사랑하며'(아가파테)는 현재 능동태 명령형으로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는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여기서 '두려워하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베이스데'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고, 순종에로 이끌어주는 경외심과 존경심을 의미한다.
▣ 왕을 공경하라. - 존경 혹은 공경은 하나님께서 그 권위를 부여한 자들에게 돌려져야 한다(13절). 특히 그 대상이 네로와 같이 악한 사람일 경우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그 공경의 동기로서 강조되는 것이 특별히 필요하다.
베드로전서 2장 18-25절 단락구조분석 【주인에 대한 종의 자세】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2: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2:18 하인 여러분, 가장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주인에게 순종하십시오. 착하고 너그러운 주인에게서만이 아니라,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그리하십시오.
2:18 종들아, 너희는 모든 일에 두려움으로 주인들에게 복종하여라. 선하고 너그러운 자들에게 뿐 아니라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렇게 하여라.
2:18 Slaves, in reverent fear of God submit yourselves to your masters, not only to those who are good and considerate, but also to those who are harsh.
직역: 사환들아 너희는 모든 두려움 안에서 주인들에게 순복하고 오직 선한사람들에게와 관용하는 사람들 뿐아니라
또한 그 마음이 삐뚤어진 사람들에게도 그리하라
2:18 Οἱ οἰκέται ὑποτασσόμενοι
그 사환들아 순복 하게 되고 (분사: 현재 수동태 주격 2복)
ἐν παντὶ φόβῳ τοῖς δεσπόταις,
안에 모든 두려움 그 주인들에게
οὐ μόνον τοῖς ἀγαθοῖς καὶ ἐπιεικέσιν
아리라 오직 그 선한사람들에게 와 관용하는사람들
ἀλλὰ καὶ τοῖς σκολιοῖς.
또한 그리고 그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들에게도 그리하라
주해
▣ 사환들아…주인들에게 순복하되. - 앞에서 성도가 사회 속에서 국민으로서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하여 권면한 저자는 이제 가정 문제에 대한 권면을 한다. 저자는 먼저 종들을 향한 권면을 하는데 이러한 권면은 바울 서신들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이처럼 서신서들에 종에 대한 권면이 많이 나오는 것은 초대 교회 성도들 중 많은 사람이 종의 신분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당시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는 주인과 종의 구별이 없이 한 형제라고 가르침으로 해서 많은 종들이 교회에 들어 왔고 이들 중에 자신의 주인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는데 이들로 인해 가정과 사회의 문제가 야기될 뿐 아니라 교회가 박해를 받는 구실이 되기도 하였다. 이에 저자는 종의 신분을 가진 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듯 주인들에게 순복하라고 권한다. 한편 '사환들'로 번역한 헬라어 '오이케타이’는 일반적으로 종을 의미하는 '둘로스'보다는 제한적인 의미를 가진 말로 한 집안에서 주인의 권위 아래 있으며 집안 일을 돌보아 주는 몸종과 같은 신분에 있는 자들을 말한다. 그리고 '두려움'(포보스)은 인간 주인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것이다. 즉 성도의 모든 행동을 주시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서 주인들에게 순복하라는 것이다.
▣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 - '관용하는'(에피에이케스)은 '공평하고 온유한', '이치에 맞는'이라는 뜻으로 70인역에서는 이 말이 주로 하나님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여기서 이러한 사람들은 어떤 일에 대하여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종들을 대하는 너그러운 사람들로 아마 그리스도인인 주인들이 이 부류에 속하였을 것이다.
▣ 까다로운 자들. - '까다로운'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콜리오스'는 문자적으로는 '구부러진', '비뚤어진'의 뜻으로 완고하고, 악하고, 불공평하며, 자기 고집이 강한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인 노예들은 이러한 주인에 대하여도 불평하거나 불순종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이런 주인에게 순복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나타내야 한다는 것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2: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19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괴로움을 참으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2:19 누구든지 부당하게 고난을 받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하여 슬픔을 참으면 이것이 은혜이다.
2:19 For it is commendable if someone bears up under the pain of unjust suffering because they are conscious of God.
직역: 누구든지 부당하게 슬픔에 고난들을 격으면서 만일 하나님 때문에 참는다하면 그것은 은혜로운 일이라
2:19 τοῦτο γὰρ χάρις,
이것이 왜냐하면 은혜로운일이라
εἰ διὰ συνείδησιν θεοῦ ὑποφέρει
만일 때문에 양심 하나님의 참는다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τις λύπας πάσχων ἀδίκως.
누구든지 슬픔들을 고난을격으면서 부당하게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단수)
주해
▣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 이제 베드로는 좀 더 실제적이며 구체적인 상황을 예로 들어 그리스도인 종의 자세를 교육한다. '애매히'(아디코스)는 '부당하게'라는 뜻으로 전절에서 나타나는 '까다로운 주인에 의한 고난'을 말하며, '받아도'는 '용납한다'라는 뜻으로 '~에 대하여 반감을 갖지 않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당시 사회에서는 노예에 대한 부당한 취급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 직역하면 '하나님의 양심을 통하여' 이다. 여기서는 애매한 고난이라도 종의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행위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에 대한 자각 때문에 참는다면 바로 그것이 아름다운 행위임을 알려 준다.
▣ 이는 아름다우나. - 이에 해당하는헬라어 '투토 카리스'는 문자적으로 '은혜이다' 라는 뜻을 갖는다. 이것은 성도들이 애매한 고난을 받았을 때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는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우리 주님도 애매한 고난을 당하실 때 묵묵히 참으셨으며 이러한 행동을 하나님은 아름답게 여기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표시였다. 이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 우리는 조금이라도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지체 없이 그 억울함을 호소하며 맞서 싸우지는 않는가? 그때 우리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며 나의 행동을 지켜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참을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20 죄를 짓고 매를 맞으면서 참으면, 그것이 무슨 자랑이 되겠습니까 ? 그러나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면서 참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입니다.
2:20 너희가 죄를 지어 매를 맞고 참는다면 무슨 칭찬이 있겠느냐? 그러나 너희가 선을 행하다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은혜로운 일이다.
2:20 But how is it to your credit if you receive a beating for doing wrong and endure it? But if you suffer for doing good and you endure it, this is commendable before God.
직역: 왜냐하면 만약에 죄를 지으면서 매를 맞으면서 참는다면 무슨 칭찬이 있겠는가?
그러나 만약에 선을 행하면서 고난을 받으며 참으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 은혜로운 것이다.
2:20 ποῖον γὰρ κλέος, εἰ ἁμαρτάνοντες
무슨 왜냐하면 칭찬이 만약에 죄를 지으면서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2복)
καὶ κολαφιζόμενοι ὑπομενεῖτε; (동사: 직설법 미래 능동태 2복)
그래서 매를 맞으면서 너희는 참을것이다 (분사: 현재 수동태 주격 2복)
ἀλλ᾽ εἰ ἀγαθοποιοῦντες
그러나 만약에 선을 행하면서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2복)
καὶ πάσχοντες ὑπομενεῖτε, (동사: 직설법 미래 능동태 2복)
그리고 고난을받으면서 참을 것이라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2복)
τοῦτο χάρις παρὰ θεῷ.
이것은 은혜로운 앞에 하나님의
주해
▣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칭찬이 있으리요. - 전절의 내용과는 전혀 반대로 죄가 있어 그에 대한 징벌을 받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주장한다. 죄를 짓고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을 때 그것 역시 참기 힘든 것이지만 그러나 참는다고 하여도 그것은 신앙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여기서 '칭찬'에 해당하는 헬라어 '클레오스'는 신약에서는 이곳에서만 나타나는 단어로 '풍문', '보고', '영광'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사실 벌 받을 짓을 하고서 매를 맞는 것은 '칭찬거리'가 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 선을 행함으로… 아름다우니라. - 다시 한 번 19절의 내용을 반복함으로 두 가지 고난을 뚜렷이 대조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받아야 할 고난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아름다우니라'로 번역된 말은 19절의 '아름다우나'와 같은 단어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1 바로 이것을 위하여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여러분이 그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시려고 여러분에게 본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2:21 너희가 이것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그리스도께서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셨기 때문이다.
2:21 To this you were called, because Christ suffered for you, leaving you an example, that you should follow in his steps.
직역: 왜냐하면 이것을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격으셨기 때문이다. 너희에게 한 본을 남겨놓으셨으니 너희가 그분의 발자취들을 뒤 따르게 된다면 뒤를 따르기 위함이라.
2:21 εἰς τοῦτο γὰρ ἐκλήθητε,
위하여 이것을 왜냐하면 부르심을받았다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2복)
ὅτι καὶ Χριστὸς ἔπαθεν ὑπὲρ ὑμῶν
때문이라 역시 그리스도께서 고난을겪으셨기 위하여 너희를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ὑμῖν ὑπολιμπάνων ὑπογραμμόν,
너희에게 남겨놓으시니 한 본을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단수)
ἵνα ἐπακολουθήσητε τοῖς ἴχνεσιν αὐτοῦ,
위하여 너희가 뒤를 따르기 그 발자취들을 그의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2복)
주해
▣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 여기서의 '부르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에의 부르심이다.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기이한 빛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또한 애매한 고통도 참고 견디는 인내로 훈련하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신다.
▣ 너희에게 본을 끼쳐… 하셨느니라. - '본'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그람모스'는 신약의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단어로 문자적 의미는 '사람이 모방하는 글씨 본'이다. 즉 서예나 그림의 대가가 보고 흉내내도록 제시하는 표본을 의미하는데, 그의 제자들은 그것을 그와 똑같이 복제해야만 했다. 그리스도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의 고난당하심은 인간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게하기 위한 모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적극적으로 고난당할 것을 내다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애매한 고난을 당할 때 분노와 수치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과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요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2: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22 a) "그는 죄를 지은 일이 없고, 그의 입에서는 아무런 거짓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a. 사53:9)
2:22 그분은 죄를 짓지 않으셨고, 그분의 입에는 거짓이 없으셨으며,
2:22 “He committed no sin, and no deceit was found in his mouth.”* / *Isaiah 53:9
직역: 그분은 죄를 행하지 아니하였다. 그분의 입 안에는 교활함이 발견되지도 않으셨다.
2:22 ὃς ἁμαρτίαν οὐκ ἐποίησεν
그분은 죄를 아니하였다 행하지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οὐδὲ εὑρέθη δόλος ἐν τῷ στόματι αὐτοῦ,
도않으셨다 발견되지 교활함이 안에 그 입에 그의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3단)
주해
▣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 애매히 고난을 받는 삶의 표본(標本)이 되신 그리스도의 무죄성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본절은 사 53:9의 70인역을 인용한 것으로 '불법'을 뜻하는 헬라어 '아노미아'를 베드로가 '죄'를 뜻하는 '하마르티아' 로 대치하였다. 이는 그리스도의 죄 없으심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그는 고통을 당할 죄를 범하지 않았으며 다만 온당치 못한 처벌을 받는 종의 위치에 있었을 뿐이다. 원문에서는 '여호와의 종'이 다른 인간들에 대하여 무죄한 것으로 묘사된다.
▣ 궤사도 없으시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데 휴레데 돌로스'를 직역하면 '궤사가 발견되지 않으며'라는 의미로, 여기서 '발견되다'란 의미의 헬라어 '휴레데'는 때로 '이다' 혹은 '되다'라는 단순한 동사로 쓰여진다. 그러나 이 단어는 비슷한 단어 '에이나이'와 가벼운 구분이 있다. 그것은 '에이나이'는 그 자체 안에 남긴 특질, 즉 본질을 나타내는 반면, '휴레데'는 그 본질이 시험을 통하여 입증된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본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고난을 당할 만한 어떠한 거짓이나 잘못을 찾을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2: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23 그는 모욕을 당하셨으나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난을 당하셨으나 위협하지 않으시고, 정의롭게 심판하시는 분에게 다 맡기셨습니다.
2:23 그분은 모욕을 당하셨으나 모욕으로 갚지 않으셨고, 고난을 당하셨으나 위협하지 않으셨으며, 공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맡기셨다.
2:23 When they hurled their insults at him, he did not retaliate; when he suffered, he made no threats. Instead, he entrusted himself to him who judges justly.
직역: 그분은 욕을 받으며 서로 욕하지 아니하였다. 고난을 받으며 협박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공의로 심판하시는분에게 맡기셨다.
2:23 ὃς λοιδορούμενος οὐκ ἀντελοιδόρει, (분사: 현재 수동태 주격 단수)
그분은 욕을 받으며 아니하였다 서로 욕하지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3단)
πάσχων οὐκ ἠπείλει,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단수)
고난을받으면서 아니하였다 협박하지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3단)
παρεδίδου δὲ τῷ κρίνοντι δικαίως (분사: 현재 능동태 여격 단수)
맡겼었다 그러나 그 심판하시는 공의로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3단)
주해
▣ 욕을 받으시되…위협하지 아니하시고. - 본절은 고난 받으시는 종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묘사한 사 53:7에서 인용한 것이다. 여기서 두 번의 '아니 하시고'는 모두 미완료 과거형으로서 그리스도께서 계속 자극과 도전을 받으시면서도 그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않고 침묵하셨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주어진 어떤 비난에도 되돌려 비난하지 않았으며 고난을 당하는 중에도 그들에 대하여 공격하지 않으셨다.
▣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 동사 '부탁하시며'(파레디두)에는 목적어가 없다. 그래서 무엇을 부탁하셨는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데,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그 자신을'부탁하셨다. 또는 '그 사건의 재판'을 부탁하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떤 이는 '그들에게 박해를 가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셋째 의견은 받아들이기 힘들고 첫째나 둘째 의견이 올바르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의 권세를 받았고 또한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도 갖고 계셨지만 그는 오직 공평으로 심판하실 아버지의 손에 자신을 맡겼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24 그는 우리 죄를 그의 몸에 몸소 지시고,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가 매를 맞아 상함으로, 여러분이 나음을 얻었습니다.
2:24 그분이 나무에 달려 자기 몸으로 우리의 죄를 친히 짊어지셨으니, 이는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분이 채찍에 맞아 상하심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다.
2:24 “He himself bore our sins” in his body on the cross, so that we might die to sins and live for righteousness; “by his wounds you have been healed.”
직역: 그분은 나무 위에 자신의 몸으로 친히 우리의 죄를 예수가 담당하셨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우리가 살기 위함이라.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다.
2:24 ὃς τὰς ἁμαρτίας ἡμῶν αὐτὸς
그분은 그 죄들을 우리의 친히
ἀνήνεγκεν ἐν τῷ σώματι αὐτοῦ ἐπὶ τὸ ξύλον,
그가 담당하셨다 으로 그 몸에 그의 위에 그 나무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ἵνα ταῖς ἁμαρτίαις ἀπογενόμενοι
위함이라 그 죄에 대하여 우리가 죽고 (분사: 과거 중간태/디 주격 단수)
τῇ δικαιοσύνῃ ζήσωμεν,
그 의에 대하여 우리가 살기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1복)
οὗ τῷ μώλωπι ἰάθητε.
그분은 그 채찍에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다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2복)
주해
▣ 나무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쉴론'은 누가복음 23:31에서 볼 수 있듯이, 생나무가 아니라 본래 단순한 목재, 즉 나무로 만들어진 '교수대'나 '십자가 형틀'을 말한다. 베드로는 행 5:30과 10:39에서 그리고 바울은 갈라디아서 3:13에서 '십자가'의 뜻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 신 21:23과 사 53:12을 결합하여 인용한 구절로서, 골 2:14와 같이 법률적인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으나 대체적으로 제사적 의미로 이해하여 그리스도께서 희생 제물로서 자신의 몸을 드리시고 또한 제사장으로서 그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신 것을 나타낸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여기에 사용되고 있는 동사는 성경에서는 제물을 제단에 드리는 제사장과 죄를 담당하는 혹은 희생 제물에 대해 다같이 쓰이고 있다.
▣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성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같이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서 '죽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게노메노이'는 '사라지다', '제거되다', '떠나다', '옮겨지다' 등의 뜻을 가진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의 죄를 담당하셨으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은 더 이상 옛 죄, 즉 범죄의 생활과 관계가 없는 자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 사 53:5의 인용이다. '채찍'에 해당하는 헬라어 '몰롭스'는 매질로 인하여 육체에 남겨진 흔적 혹은 채찍 자국을 말하는데, 그것은 당시의 노예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육체의 흔적이다. 저자가 이 구절을 사용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당하심으로 죄인된 우리들의 영적인 상처가 나음을 받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저자의 이러한 표현은 노예로서 채찍을 맞은 경험이 있던 수신자들에게는 깊은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이 글을 기록할 때 베드로의 눈에는 그 참혹한 취급을 받던 그의 주님의 몸이 눈앞에 보였을 것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영어 ◆ 직역
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2:25 전에는 여러분이 잃은 양과 같았으나, 이제는 여러분의 영혼이 목자이시며 감독이신 그에게로 돌아왔습니다.
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으나,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 되신 분께 돌아왔다.
2:25 For “you were like sheep going astray,”* but now you have returned to the Shepherd and Overseer of your souls. / *Isaiah 53:4,5,6 (see Septuagint)
직역: 왜냐하면 전에는 양들과 같이 길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영혼들이 목자와 감독되시는 분께로 다시 돌아왔다.
2:25 ἦτε γὰρ ὡς πρόβατα πλανώμενοι, (분사: 현재 수동태 주격 2복)
있었다 왜냐하면 같이 양들과 길을 잃은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2복)
ἀλλ᾽ ἐπεστράφητε νῦν ἐπὶ τὸν ποιμένα
그러나 다시 돌아 왔다 이제 앞으로 그 목자와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2복)
καὶ ἐπίσκοπον τῶν ψυχῶν ὑμῶν.
그리고 감독을 그 혼들을 너희의
주해
▣ 전에는…잃었더니 이제는…돌아왔느니라. - 본절에서 저자는 '전에는…이제는', '잃었더니…돌아왔느니라'라는 2개의 대조적인 어구들을 사용함으로써 수신자들의 구원받기 전의 상태와 구원받은 후의 상태를 극명하게 대조시키고 있다. 이는 그들이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의 상태에 처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보호자가 되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기 위한 것이다.
▣ 목자. - 성도들을 '양'에 비유한 것에 대조적으로 그리스도를 '목자'에 비유하고 있다. 많은 곳에서 예수는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부른다. 본절에서 만은 독특하게 그리스도께서 '감독'이라고도 불리워진다. 이 단어와는 다르게 하나님이나 그리스도를 '목자'로 표현하는 것은 성경 전체에 아주 자연스럽게 보여진다.
▣ 감독.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스코포스'는 목자와 거의 동의어로서 목자의 기능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용어는 후에 교회의 주요 성직자들을 가리키는 전문적인 용어가 되었으며, 바울의 서신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은 그리스도가 장로들에 관하여 '목자장'으로 불리운 것과 연관하여 볼 때 교회의 유일한 최고의 감독은 지상의 교황이나 교회의 고위 성직자가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