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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명 |
연락처 |
직 장 |
비 고 |
1 |
강도묵 |
011-401-5013 |
경동기술공사대표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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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이종익 |
010-4408-7504 |
보명테크(주)전무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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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김인주 |
010-5616-2111 |
대덕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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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이명기 |
011-427-6356 |
천태산업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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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장석근 |
010-2233-1500 |
음악해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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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조익만 |
017-406-3374 |
대신증권지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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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김호민 |
011-420-6900 |
솔로몬홀딩스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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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서광덕 |
016-410-1063 |
원불교대치교당교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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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도래지
법성포 좌우두는 인도승 마라난타가
A.D 384년에 중국 동진을 거쳐
백제에 불교를 전하면서 최초로 발을
디딘 곳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관광명소로 개발하고 있다.
법성포의 법(法)은 불교를, 성(聖)은
성인인 마라난타를 가리킨다.
한반도 불교 전파는 삼국시대 고구려(소수림왕 2년 전진의왕 부견)와 신라(눌리마립간때 묵호자)의 경우는 불교의 전래경로와 초전 법륜지가 분명하나 백제불교의 전래는 전해진 경로와 최초도래지가 불확실하였으나 인도의 명승 “마라난타 존자”가 영광의 법성포로 들어와 불법을 전하고 불갑사를 개창하여 백제 불교가 시작되었다고 구전되어 왔다. 1998년 영광군의 학술고증(동국대학교)을 통하여 영광땅이 백제불교의 최초 도래지라는 사실을 밝혀내게 되었다. ♧ 부지면적 - 45,439㎡ (13,745평)
길안내
• 서울(호남고속도로) - 정읍 I.C - 고창 - 영광(318km : 3시간 50분)• 서울(서해안고속도로) - 영광 I.C(298km : 3시간 40분) • 광주 - 문장 - 영광(48km : 50분) • 목포 - 함평 - 영광(64km : 50분) • 전주 - 고창 - 영광(93km : 2시간)
전남 영광군 백수 해안 드라이브와 영화 <마파도 >촬영지 동백마을.
전남 영광에는 아름다운 '백수 해안 드라이브'길이 있다. 금방이라도 바닷물이 넘실거릴 정도로 바다와 가까운 해안도로. 77번 국도를 연결하는 14번 군도에 있는 영광 백수해안도로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었다. 도로변에는 해당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반긴다. 가녀린 분홍빛 꽃잎을 파르르 떨고 있는 해당화나 띄엄띄엄 자리 잡은 어촌 마을을 만나는 것이 즐겁다. 바다에 들어앉은 낙월도, 안마도, 칠산도 등 섬들도 반긴다. 해안길 곳곳에 만들어진 전망대에서 숨을 고르고 노을전시관이나 정유재란 열부순절지(도지정 지방기념물 제23호)를 들러보면 된다. 또 바다로 내려갈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나무 데크를 따라 해안으로 나서도 좋다. 풍치 좋은 백암전망대를 지나쳐 만나는 동백마을에는 영화 <마파도 >촬영지가 있다. '1박 2일' 촬영지이기도 하다. 영화 세트장은 조악하지만 바다 풍경은 그런대로 볼 만하다. • 주변볼거리: 염산면에 있는 염전단지는 마치 오래된 영화 속 배경을 보는 듯하다.
또 법성포는 굴비의 원산지. 법성포 뒤편, 느티나무 군락지인 숲쟁이 근처에서
법성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백제 불교 도래지 기념관과 계마와 가마미를
잇는 해안길도 괜찮다. 꽃무릇으로 알려진 불갑사도 있다. • 찾아가는길: 서해안고속도로-영광나들목-영광 방향 23번 국도-영광읍-백수
방면 844번 지방도-만곡에서 오른쪽 군도로 진입-천정저수지-원불교 성지-
모래미(대신삼거리)에서 77번 국도 이용. • 추천 맛집: 백수해안도로에 간간이 횟집이 있다. 법성포구 일번지 식당(굴비한정식), 백재식당(백반류), 다랑가지식당(061-356-5588,꽃게굴비정식),
만나식당 (061-356-2377, 탕류) 등이 있다.
또 설도포구에도 횟집이 즐비하고 영광 읍내 문정식당(061-352-5450, 한정식)
이 괜찮다. • 숙박: 해안도로에 답동펜션(061-352-7806), 두우펜션(061-353-2400)이 있으며
법성포구에는 반도모텔(061-356-0993) 등이 있다. 영광 읍내에는 관광호텔
아리아(061-352-7676), 카리브모텔(061-353-1400) 등이 있다.
옥당박물관
원불교영산성지
이곳은 교조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탄생과 구도지, 대각터, 입정터를 중심으로 한 원불교 성지다. 행정구역명으로 백수읍 길용리 영촌마을을 중심으로 한 7개 마을 150호의 빈촌이다. 산간지역으로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 반농반어가 행해졌던 곳이다. 법성포와 겨우 육로로는 15㎞ 떨어졌지만 조금만 걸어나가면 건너 보인다. 그러나 법성포의 영화와는 다르게 와탄천변과 산비탈을 일군 천수답, 자갈밭에 의존해 살아온 낙후된 곳이었다. 그러나 대종사의 방언공사와 정산종사때 막은 제 2방언 공사로 간척답을 6만여평이나 만들어냈고 이를 기반으로 원불교 창립의 기반을 이룬 터다.
원불교는 우주의 근본원리인 일원상(一圓相, 즉 ○의 모양)의 진리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는 종교로, 진리적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통하여 낙원세계를 실현시키려는 종교다. 박중빈은 유·불·선 3교의 경전을 비롯하여 그리스도교의 성서 등을 두루 섭렵하였는데, 특히 『금강경』이 자신이 깨달은 진리와 일치함을 깨닫고 근본 진리를 밝히는 데는 불법(佛法)이 제일이라고 생각하여 석가를 선각자로 받들고 불교와의 인연을 스스로 정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펴기 위하여서는 종래의 불교와는 크게 다른 새 불교·새 교단을 설립해야겠다고 생각하고,“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를 내걸고 교단을 열었다.
그 중 8명을 선발하고 후에 정산 송규(후에 일대 종법사)를 맞아 도합 9명을 새 교단 창립의 제자로 삼고 이 해를 원기(圓紀) 1년으로 정했다. 이들은 불교의 현대화·생활화를 주장하면서 신앙의 대상을 불상이 아닌 법신불의 일원상으로 삼고, 시주·동냥 등을 없애고 스스로가 정당한 직업을 가지고 교화사업을 시행하는‘생활불교’를 실천하였다. 1917년 저축조합을 시작으로, 1918년에는 바다를 막는 간척사업을 시작하여 이듬해 2만 6,000평의 논을 조성하고, 그 후 엿공장·과수원·농축장·양잠·한약방 등 생산적인 경영을 하여 새 교단 창립의 경제적 기틀을 마련하였다.
1924년, 서중안 등의 발기로 익산에서 "불법연구회" 를 열고 박중빈을 총재로 추대하였다. 1938년에는 『불교정전』을 간행하여 기본원리인 일원상의 진리를 내세웠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겨우 교단을 유지해나갔다. 1943년 교주가 죽자 송규가 종법사(宗法師)가 되어 교통(敎統)을 계승하고, 광복 후 1947년에는 교명을 원불교로 개칭하는 한편, 교육·자선(慈善)·교화(敎化)의 3대 실천목표를 세워 포교에 힘쓰다가, 1962년 송규가 죽자 김대거(金大擧)가 2대 종법사에 취임하였다.
교리는 법신불 일원상을 최고로 삼는데, 일원상의 신앙은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을 목표로, 어느 곳 어느 때나 신앙심을 지키어 천지·부모·동포·법률의 4은(四恩)에 보답하는 것을 불공으로 삼고, 자력양성(自力養成)·지자본위(智者本位)·타자녀교육(他子女敎育)·공도자숭배(公導者崇拜)의 4요(四要)를 실천함으로써 복락의 길을 닦자는 것이다. 또한 법신불 일원상을 대상으로 신앙하고 수행하는 정각정행(正覺正行)·지은보은(知恩報恩)·불법활용(佛法活用)·무아봉공(無我奉公)을 4대 강령으로 삼고 있다. 현재 원불교는 익산에 있는 중앙총부에서 교단을 총괄운영하고 지방에 교구와 교당을 두고 있으며, 그 운영기구로서 종법사를 중심으로 수위단회(首位團會)·중앙교의회·교정위원회(敎政委員會) 및 교정원과 감찰원 등이 있다. 교당에는 교무와 교도가 있는데, 교도는 10인을 1단으로 하는 10인 1단 교화단을 조직하는 것이 특색이다. 각종 연구소 외에 교육기관으로 원광대학교·영산원불교대학교 등의 종합대학, 전문대학 1개교, 중·고등학교 6개교, 선원 3개처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교당별로 설치한 유치원·유아원과 양로원·보육원·수양원 등 자선기관도 운영하고 있다.
한편, 교단 직영의 산업체로 제약회사를 비롯하여 4개의 농원과 정미소·원예원 등이 있으며, 복지기관으로 양·한방(洋韓方)의 종합병원과 보화당한의원 등이 전국 주요도시에 있다. 문화사업으로 경전의 출판과 《원광(圓光)》, 《원불교신문》 등 정기간행물도 간행하고 있다. 1993년 현재 20개의 국내 교구에 520여 교당과, 미국·일본·캐나다·중국 등 3개의 해외교구에 20여 개의 해외 교당이 있으며, 신도수는 100만여 명에 이른다.
소태산 박중빈(1891. 5. 5 ~ 1943. 6. 1) :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이 탄생한 곳으로 잘 정돈된 앞마당에서 잠시 쉬어가는 맛이 있다.
영산선학대학교 : 원불교 재단의 4년제 인준대학으로 원불교의 가르침을 성실히 수행하고 가 르침에 따라 생활하는 성스러운 배움터이다.
소태산 대종사 대각기념비 : 소태산이 노루목에서 대각을 이룬 것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으로 앞으로 넓게 펼쳐진 잔디밭이 평온함을 더한다.
옥녀봉 : 수행의 표본인 옥녀봉은 소태산 박중빈이 7세부터 수양을 시작한 곳으로 바위에 그 려진 큰원은 원불교의 상징이다.
연꽃 보은방죽
백수읍 길용리 영산성지 보은방죽 일대에 연꽃이 만개해 장관을 이루고 있다.
5천여 평의 보은방죽 옆으로 수km에 걸쳐진 갈대방죽 속에도 수십 종의 연꽃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보은방죽은 형형색색의 꽃망울을 터트리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연꽃과 뒤편으로 아늑한 돌다리가 어우러져 멋진 운치를 자아내고 있다.
대각터
4월28일 이른 새벽 소태산이 입정(入定)에
든 후 크게 깨달은 장소다.
원불교에서 기리는 대각개교절이다. 스님이나 수도자가 도를 깨우침에는 두 가지의 길이 있다. 하나는 수십년을 쉼없이 공부하여 모진 수행정진 끝에 득도하는 각(覺)의 세계다. 이른바 돈오점수(頓悟漸修)의 경지다. 다른
하나는 시정(市井) 속에 몸을 낮추고 중생들과 동고동락하다 어느 날 갑자기 섬광 같은 혜안이 열려 홀연히 깨닫는 것이다. 이것을 돈오돈수(頓悟頓修) 또는 활연대오(豁然大悟)라고도 한다. 불가에서는 신라 동시대의 고승 의상대사와 원효대사에 견주기도 한다. 구간도실
원래 옥녀봉 아래 있던 것을 원기 8년 (1923)에 이곳으로 옮겨 지으면서 영 산원으로 개칭하고 교단 창립기의 많 은 선진들이 대종사님을 모시고 수도 정진하였다.
차와 도자기(성래원)
도자기를 굽는 가마와 찻집이 있다. 찻집 앞 정원에 온갖 들꽃으로 정겨운 곳이다.
영산성지고등학교 靈山聖地高等學校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1909년에 쓴 〈불갑사창설유서 佛甲寺創設由緖〉에 의하면 384년(침류왕 1)에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창건했고, 805년(애장왕 5)에 중창했으며 그뒤에도 여러 차례의 중창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각진국사(覺眞國師)가 머물면서부터 크게 번창했는데 당시에 머물던 승려는 수백 명에 이르렀고, 사전(寺田)도 10리에 달했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80년에 중건한 뒤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팔상전·칠성각·일광당·명부전·요사채 등이 있다. 이밖에 각진국사비(1359)와 여러 점의 부도가 있고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거상인 사천왕상이 있다.
참고자료
식당이름 |
대표메뉴 |
전화번호 |
일번지식당 |
굴비정식 |
061-356-2268 |
국일관 |
굴비요리 |
061-352-2423 |
태능갈비 |
갈비 |
061-353-3366 |
낙원식당 |
한정식 |
061-351-2449 |
여수회관 |
아구찜 |
061-351-0510 |
진미식당 |
한정식 |
061-351-5124 |
아리아숯불갈비 |
한우전문 |
061-351-0627 |
조선옥 |
꽃등심 |
061-352-00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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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성지 관계인
• 청타원 이경옥소장님 011-663-3327
• 왕정달교무님 010-7511-4438
• 신성혜박물관장 011-668-0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