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비가 내리면 편의점에 손님이 뚝 끊긴다. 무료함을 달래보려고 책을 펼쳐보지만 몇 줄 읽지 않아 눈까풀이 스르르 내려온다. 이럴 때는 할 수 없이 게임을 하게 된다. 잠 깨우기도 즉효지만 시간 보내기는 그만이다. 평소 노트북에 깔린 지뢰 찾기, 프리셀을 자주 한다. 치매 예방에 좋다는 핑계를 대며 빠져든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게임도 많다. 그중 내가 즐기는 게임은 틀린 그림 찾기다.
화면의 양쪽에 같은 두 그림이 펼쳐진다. 언뜻 보기에는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몇 가지가 다르게 그려져 있다. 그것을 찾아야 하지만 쉽지가 않다. 머리 모양을 살짝 다르게 하고, 옷 색깔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두 눈을 부릅뜨고 찾아보지만 정해진 시간 안에 다 찾지 못하기가 대부분이다. 끝나고 답을 보면 너무나도 쉬운데 그걸 찾지 못하다니 내가 한심스럽기가 짝이 없다. 방금 했던 그림이 다시 나왔는데도 또다시 찾지 못할 때는 나에게 한없는 실망을 하게 된다. 그런데도 참아가며 하는 이유는 한가함을 지우기 위함에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이다.
아내가 새 옷을 샀을 때, 입고 자랑하면 그냥 "잘 샀네. 당신에게 참 잘 어울려!"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아내는 그러질 않는다. 내가 먼저 알아봐 주길 바란다. 한번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괜히 내 앞에서 서성거렸다. 나를 힐긋 쳐다보기도 하고 옷깃을 곧추세우기도 하면서 화면을 가렸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화면 가린다. 좀 비켜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아내는 '흥'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순간부터 한동안 시련을 겪었다. 그 이유를 알고 옷이 예쁘다고 몇 번을 말해도 아내는 마음을 풀지 않았다.
아내는 그 머리가 그 머리인데도 조금만 자르거나 웨이브를 달리해도 먼저 알아주기를 바랐다. 미장원에 다녀왔다고 해도 무엇이 바뀌었는지 모르는 판국에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찌 알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 아내와 수십 년을 같이 살다 보니 이제는 많이 발전해서 간혹 먼저 알아차려 사랑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소발에 쥐 잡을 확률보다 낮았고 오히려 대부분 오발탄 투성이었다.
아내가 예뻐 보여 "여보 살이 좀 빠졌나? 오늘 예쁜데." 했더니 "당신 눈에는 빠진 걸로 보여요. 살쪄서 죽겠구먼." 하며 핀잔을 보냈다. 도리어 "당신 뭐 잘못 한 거 있어요?" 하며 따지고 들었다. 평소와 다른 틀린 그림을 잘 찾기 위해서는 항상 관심을 가지고 바라봐야 하는 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또 한번은 입는 옷이 처음 보는 옷 같아서 "와 옷 예쁘네. 언제 샀어?" 했더니 아내는 입다 말고 한참을 째려보더니 "동서 시집올 때 사 온 걸 이십 년이 지나도 아직 입고 있어요. 요새 누가 이런 옷 입는 줄 알아요? 입을 때마다 부끄러워 죽겠어요." 했다. 나는 분위기가 감당되지 않아 헛기침하며 마당으로 피신했다.
대학 시절 누군가가 나에게 꿈을 물었을 때 "한 아름다운 가정의 가장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꿈이 너무 추상적이지만 참 멋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꼭 이루길 바란다고 했다.
그 시절 그린 밑그림 위에다 나이를 먹으며 조금씩 구체적으로 그려나갔다. 적성에 맞는 직장, 아름다운 부인, 욕심을 내어 효성 지극한 자식들도 그렸다. 풍요로운 여생을 즐기는 미래까지 그렸다.
화면 한쪽은 내가 그려 왔던 인생, 그리고 반대편에는 지금의 내 모습을 펼쳐놓았다. 두 그림의 틀린 그림 찾기를 해보았다. 언뜻 보기에는 비슷하게 보였다. 내가 꿈꾸던 아름다운 가정을 이룬 듯하여 꿈의 그림과 크게 다르지 않게 보였다. 나의 부족함에도 두 그림이 크게 벗어나지 않게 도와준 가족들이 새삼 고마웠다.
다시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틀린 그림 찾기를 통해 단련시킨 통찰력으로 구석구석을 비교해보았다. 조금만 자세히 보자 금방 틀린 곳이 눈에 띄었다. 꿈과 비교하면 현실의 그림 속에 부족함이 하나둘씩 드러났다.
꿈에서는 나에게 맞는 직장생활과 사업을 통해 살림을 모아야 하는데 직장도 변변하지 못했고 장사도 벌일 때마다 살림을 축내었다. 건강하게 집안을 끌고 가야 하는데 뇌졸중을 앓아 가족들의 가슴을 태웠다. 노후도 꿈꾸었던 풍요로움에 비해 많은 부족함이 있었다. 장미가 있어야 할 정원에 이름 모를 들꽃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뭉게구름이 떠 있어야 할 파란 하늘에는 옅은 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있었다.
두 그림의 다른 점이 드러날수록 마음이 무거워져 갔다. "그래 이상과 현실에는 항상 이 정도 차이는 있는 거야." 하며 나를 달래보았다. 두 그림이 틀린 만큼 내가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다고 하는 반성도 함께 해보았다..
이제 중년의 나이를 지나고 있다. 지금까지의 그림을 백지로 지우고 새로 그리기는 벅찬 시기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무어 있겠나. 모자란 남편이지만 아내에게 관심과 사랑을 보여줘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조그마한 변화에도 재빠르게 틀린 그림을 찾아 칭찬을 받아야 한다.
인생의 그림도 틀린 것이 몇 개 있지만, 아직 내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채색은 지금부터다. 어떻게 하면 현재의 그림이 처음 꿈으로 그린 그림과 가깝게 될까 골똘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