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바로 여기야!’
일본이 자랑하는 최고의 자전거코스인 ‘시마나미카이도(島波海道)’를 보고 나는 부러움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지만 국내에서 대항마를 찾았다. 개인적으로 ‘시마나미카이도’에 필적할 국내코스로 지목한 곳은 바로 신안 ‘다이아몬드 제도’다.
시마나미카이도는 혼슈(本州)와 시코쿠(四國) 사이에 징검다리처럼 놓인 섬들을 연결하는 전장 약 70㎞의 코스로, 고속도로 다리 옆에 자전거길을 만든 것이 특징이다. 솔직히 산악경관은 일본이 더 웅장하고 다채롭지만 해안 경치는 우리나라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2017년 길이 7.26㎞의 새천년대교 개통
신안군이 다이아몬드처럼 아름답고 형태도 다이아몬드 꼴인 마름모 형태를 이뤄 애칭으로 붙인 ‘다이아몬드 제도’는 목포 서쪽 바다에 펼쳐져 있다. 길이 10㎞ 내외의 큰 섬들만 9개나 되고, 작은 섬들까지 합치면 신안군 전체 섬(1004개)의 1/3 정도는 이곳에 모여 있을 것이다. 시마나미카이도처럼, 이 섬들 사이에도 다리가 하나둘 놓이고 있다. 동북의 자은도~암태도~팔금도~안좌도와 서쪽의 비금도~도초도는 각각 하나로 연결되었다. 안좌도~자라도 간에는 교량이 건설 중이고, 나머지 섬들 사이에도 교량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육지와는 뚝 떨어져 있던 이 제도(諸島, 섬 무리) 자체가 육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암태도와 압해도(이미 목포와 연결됨)를 잇는 새천년대교가 2017년 개통되기 때문이다. 새천년대교는 길이가 7.26㎞에 달해 서해대교(7.31㎞)와 맞먹는 엄청난 규모의 사장교다, 사장교(斜張橋)는 교량을 받치는 케이블이 주탑에서 비스듬하게 연결되어 미학적으로 매우 아름답고 역동적인 긴장감도 느껴진다. 현수교(懸垂橋)는 가장 위쪽에 걸쳐 있는 주케이블에서 철선이 수직으로 교량과 연결되는 것이 다르다. 9월 현재 새천년대교는 주탑과 모든 교각이 바다 위로 장대한 도열을 이루었고, 상판을 연결하는 작업이 착착 진행중이다.
새천년대교는 자동차 전용은 아니어서 다리가 연결되면 다이아몬드 제도를 한데 아우르는 멋진 바닷길 코스가 생겨난다. 이 길은 장담컨대, 시마나미카이도보다 더 웅장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새천년대교가 개통되면 최북단의 자은도에서 안좌도까지 약 40㎞의 코스가 일단 만들어지고, 추후 9개의 큰 섬이 모두 연결되면 일주 120㎞의 장대한 징검다리길이 완성된다. 길이와 규모에서 시마나미카이도를 압도할 것이다. 신안군에 따르면 다이아몬드 제도를 포함해서 섬과 섬,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교량은 총 26곳으로, 그 중 12곳이 완공되었고 2곳은 공사중, 12곳은 추진 중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신안군은 그 많은 섬들을 모조리 다리로 연결시켜 아예 육지로 만들 작정이다. 새천년대교가 개통되기 전, 아직은 진짜 섬으로 남아 있는 자은도~안좌도를 가보았다. 비금도~도초도에서 아주 강렬한 인상을 받아서 자은도~안좌도에도 기대가 컸다.
압해도 송공항의 혼잡
다이아몬드 제도로 들어가는 가장 가까운 길은 압해도 서쪽 끝의 송공항에서 배를 타는 것이다. 새천년대교도 송공항 바로 옆에서 암태도 오도항 부근으로 이어지니, 송공항은 다리가 생기건 말건 ‘다이아몬드 제도의 관문’ 자리를 굳건히 지킬 것이다.
가장 가까운 암태도 오도항까지는 카페리로 25분 정도 걸린다. 오도항과 함께 팔금도의 고산항 가는 배편도 많다. 새벽에 서울을 출발해 송공항에서 오도행 11시 배를 탈 생각이었는데, 40분 전에 도착했건만 이미 만석이었다. 섬이 워낙 길고 커서 중요 포인트 위주로 라이딩할 생각이라 자동차를 싣고 가야 하는데 차들이 가득 차버린 것이다. 평일에도 이렇게 물동량이 많으니 역시 연륙교는 시급했다. 30분~1시간 꼴로 배가 있지만 이 정도로도 감당이 안 되는 모양이다. 저녁에 나올 때는 더 심각해서,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송공항 바로 북쪽에서 수많은 교각이 아득히 뻗어나며 바다를 건너고 있다. 바로 공사중인 새천년대교다. 서해대교 정도의 거대한 다리가 놓이고 있는데도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대단히 다원화되었고 많은 개발이 이뤄졌다는 의미도 되겠다.
목포를 중심으로 신안의 주요 섬들과 다이아몬드 제도 일대는 상전벽해의 대역사를 맞고 있다. 길이 4129m의 목포대교는 목포와 영암(삼호읍)을 연결하고, 목포와 신안군 압해도를 잇는 압해대교(3563m)도 2008년에 개통되어 목포와 신안 일대의 풍경은 해마다 급변을 거듭한다. 이제 새천년대교가 완공되면 다이아몬드 제도까지 육지가 되니 사실상 국토의 대확장이 되는 셈이다.
송공항을 출항한 배는 30분만에 팔금도 고산항에 닿았다. 배에서 바라보는 사방의 풍경은 섬이 너무 많고 높은 산은 없어서 대단히 복잡하고 광활한 느낌을 준다. 과연, 국내최고의 다도해다.
이제 최북단 자은도에서 시작해 남단의 안좌도까지, 다이아몬드 제도의 동쪽 구간을 종단한다.
자은도 - 빼어난 산악미, 즐비한 해변
팔금도 고산항에서 자은도로 직행한다. 자은도는 면적이 53.54㎢로 인천공항을 안고 있는 영종도(63.8㎢)에 육박한다. 섬 면적이 40㎢를 넘어가면 길이가 10㎞ 남짓 되어 상당히 큰 편에 든다. 대도시의 구(區) 정도 크기인데, 자은도는 인구가 계속 줄어 지금은 2천명을 조금 넘는단다. 도시라면 50만명이 북적거릴 면적이니 도로에는 차가 거의 없고 마을은 한적하기만 하다.
자은(慈恩)이라는 감미로운 이름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우러 왔던 명나라 장수 이여송 휘하의 두사춘(斗四春)이라는 사람과 관련이 있다. 두사춘은 반역자로 몰려 이곳에 피신했다가 주민들 도움 덕분에 목숨을 부지해 감사한 마음으로 자은도라고 불렀다고 한다. 자은도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기세 좋게 솟은 두봉산(364m)이다. 빼어난 암릉까지 거느리고 있고 바닷가에서 곧장 솟아 육지의 500~600m급 같은 위용을 발한다.
산과 산 사이에는 꽤 넓은 들판이 펼쳐져 섬이 아니라 어디 농촌 같다. 들판에는 벼가 영글어 가고, 살짝 기울어진 경사면은 온통 밭이다. 자은도의 마늘과 땅콩, 대파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북쪽 해안에는 크고 작은 해수욕장이 즐비하다. 가장 서쪽의 분계해수욕장부터 동쪽끝의 둔장해수욕장까지 약 10㎞의 해안은 백사장들의 장대한 열병식이다.
최북단의 한운리 반도에는 임도를 따라가는 트레킹 코스인 ‘해넘이길’이 나 있다. 산길만 약 7㎞에 달하며, 정말 조용하고 아늑한 오지의 느낌을 준다.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아서인지 잡초가 길을 넘어 들어와 수시로 종아리를 매만지는데, 까칠한 느낌이 생경하지만 어딘가 원초적이다. 북동쪽으로는 ‘슬로시티’로 유명한 증도가 잘 보이고, 북서쪽은 망망대해다.
해넘이길을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 마지막에 전장 3㎞의 장대한 백사장을 자랑하는 둔장해수욕장이 펼쳐진다. 활 모양이면서도 불규칙하게 일그러진 원호를 그리는 해안선이 독특하다. 서쪽 끝의 분계해수욕장은 오목한 만(灣) 안쪽에 포근하게 안겨 있는 입지와 노송이 그윽한 소나숲이 일품이다.
섬 안의 도로와 농로는 차량 통행이 드물고 길이 빤해서 어디를 가든 자전거 코스로는 최적이다.
암태도 - 바위투성이의 산줄기
자은도의 산세도 범상치 않지만 암태도(岩泰島)는 이름부터 아예 바위다. 자은도의 두봉산이 가파르고 높게 치솟았다면 암태도의 최고봉 승봉산(355m)은 산세가 넓게 퍼졌다. 그럼에도 기암괴석을 주렁주렁 달고 있고, 동쪽의 박달산(197m)도 온통 바위산이다. 바위가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고 해서 암태도라고 했다는데 금방 수긍이 간다. 바위산의 기세에 걸맞게 고려중기의 용맹한 무장이었던 척준경(?~1144)이 유배를 온 곳이기도 하다.
새천년대교가 연결되어 이곳에 다시 오면 그때는 승봉산과 박달산의 암릉을 천천히 걸어보고 싶다.
바위산투성이라고 하니 섬 안이 온통 산일 것 같지만 들도 많다. 섬 전체의 1/3이 경작지다. 면적은 40.08㎢로 자은도보다 조금 작지만 사방을 둘러싼 갯벌이 매우 넓어서 이 면적까지 포함한다면 자은도를 능가할 것이다. 남서쪽 추포도와의 사이에 펼쳐진 갯벌은 유네스코갯벌습지보호지역으로도 지정되어 있다.
암태도 남서쪽에는 추포도(秋逋島)가 길다랗게 뻗어있다. 한자는 다르지만 추포(秋浦)라는 이름을 들으면 나는 마냥 설렌다.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이백이 읊은 추포가(秋浦歌)의 낭만과 애상이 떠올라서인데, ‘가을 포구’라는 쓸쓸한 그 이름부터 얼마나 우수어린가. 알고 보니 추포도의 이름은 추엽(秋葉)과 포도(逋道) 두 마을의 앞자를 모은 것이라니 김이 샜다. 섬의 서안에는 길이 900m 정도의 추포해수욕장이 한적하다. 여름을 즐기던 사람들이 떠나간 빈자리는 더 공허하고 허전하다.
암태도와 추포도를 연결하는 1㎞ 정도의 노두길은 별격이다. ‘노두’는 징검다리를 뜻하는 사투리다. 예전에는 큼지막한 돌을 놓아 징검다리 같았지만 지금은 시멘트로 반듯하게 포장되어 있다. 썰물 때는 좌우로 펼쳐진 갯벌의 끝이 보이지 않지만 밀물 때는 길이 물에 잠기고 만다. 흔히들 말하는 ‘모세의 기적’이 여기서도 벌어지고 있다.
팔금도 - 비옥한 들판 가득한 일상의 섬
팔금도(八禽島)는 면적이 17.36㎢로 주변 섬들보다 훨씬 작지만 농경지가 많은 생활의 섬이다. 송공항에서 출항하는 배도 암태도의 오도항과 팔금도의 고산항 두 곳이 주 기항지다. 지형도를 봐도 한 때는 여러 개의 섬으로 나뉘어 있던 것을 제방을 쌓고 간척을 해서 하나의 섬으로 연결해 논이 많아진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주민들의 생계도 어업은 소수이고 대부분 농업이다. ‘팔금’이라는 이름은 금당산(130m)을 중심으로 사방에 8개의 섬이 새처럼 모여 있었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이 작은 섬도 하나의 면(面)이다. 자은도,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 모두가 각각의 면을 이루고 각자 면소재지와 보건소 등을 갖추고 있다. 4개의 섬을 다 합쳐도 인구가 1만이 되지 않고, 다리가 놓여 한 섬으로 거듭났건만 각자의 행정구역을 고집스레 지키고 있다.
앞서 고산항을 지나왔기에 암태도에서 중앙대교를 건너 805번 지방도를 따라 곧장 가면 채 4㎞도 되지 않아 안좌도로 넘어간다. 이 다리는 ‘신안 제1교’인데, 1990년 신안군 최초로 건설된 연도교다. 그때 아마도 감격에 겨워 다리 이름을 붙일 때 이후에는 신안 제2교, 제3교… 식으로 할 생각이었던 모양인데, 지역색이 드러나지 않는 이런 일련번호식 호칭은 아무런 의미도, 운치도 없어 지금은 주민들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무미건조한 이름으로 남았다.
안좌도 - 환상적인 ‘천사의 다리’
이제 마지막 섬이다. 안좌도는 59.88㎢로 다이아몬드 제도에서 가장 크다. 원래 분리되어 있던 안창도와 기좌도가 간척공사로 하나의 섬이 되면서 두 섬의 앞 자를 따서 안좌도가 되었다. 안좌면소재지는 지금껏 중에서 가장 번화(?)하다. 중심가에는 각종 가게들이 즐비하고, 외곽에는 고등학교까지 있다. 자은도, 암태도에서도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면 여기까지 와야 하는 것이다. 다리가 연결되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지만 고등학교부터는 목포로 많이 나가는 편이란다.
안좌도도 들판이 넓어서 주민들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한다. 하지만 섬의 서쪽은 대규모 염전지대여서 염전이나 김 양식도 성행한다.
안좌도 최고의 볼거리는 남쪽의 두리마을에서 반월도~박지도를 연결하는 ‘천사의 다리’다. 하늘의 천사(天使) 이미지를 내세우지만 실은 신안의 1004개 섬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니 발상이 기발하고 매혹적이다. 나무데크를 이용한 예쁜 모습인데, 반월도와 박지도를 연결하면서 총길이가 1462m나 된다. 어쩌다 찾는 관광객에게는 갯벌과 어촌의 풍경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관광코스지만 반월도와 박지도 주민들에게는 소중한 생활도로이기도 하다.
원칙적으로 자전거는 출입이 금지되지만 인적이 드물 때는 진입해도 무방하다. 반월도, 박지도 주민들에게는 사실상 오토바이 길이기도 하니까.
안좌도 최남단에는 자그마한 복호항이 있다. 바로 옆에는 자라도와 연결하는 다리가 한창 공사중이다(2016년 말 완공 예정). 하도 다리가 많고 섬이 많으니 새로 큰 다리를 건설하고 있어도 주민들도, 외지인의 눈에도 그러려니 싶을 뿐이다. 그 다음 순서는 자라도와 장산도를 잇고, 또 그 다음에는 신의도, 하의도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차근차근 다리를 놓아 기어이 제도는 하나의 섬으로 거듭날 것이다.
삭막한 교량 조형미, 갓길도 없고
답사 결과 아쉬운 점이 몇 가지 남는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연도교 사업은 관광용이라기보다는 주민들의 편의를 위한 목적이 크다. 하지만 관광 활성화는 주민들의 생활 개선에도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에 절대 도외시할 수 없는 미래의 비전이 되어야 한다.
우선, 교량들의 조형미가 떨어진다. 최근에 지어지는 다리는 거리가 길 경우 사장교를 채택해서 형태적 아름다움이 있지만 앞서 건설된 다리는 도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바다를 건너는 특별한 다리임에도 미학적 배려가 거의 없다. 게다가 폭이 너무 좁아 갓길마저 없다. 새천년대교가 개통되면 자전거로 건너기에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한꺼번에 아니라, 차근차근 하나씩 다리가 건설되고 있기 때문에 먼 안목으로 계획을 세워 나중에 자전거나 걷기를 위한 코스로도 손색이 없는 통일성을 유지하도록 다리를 지었으면 좋겠다. 시마나미카이도와 비교한다면, 다리의 미학적 완성도와 자전거나 보행자에 대한 배려 측면에서 많이 뒤진다.
10년쯤 뒤, 다이아몬드 일주 코스가 완성되면 최소한 2박3일은 잡아야 명소만이라도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비금도는 이 섬 하나만으로도 꼬박 하루는 잡아야 한다.
다이아몬드 제도 vs 시마나미카이도!
여기서까지 한일전이냐고? 꼭 우열을 가리자는 것이 아니다. 더 멋지고 아름다운 바닷길이 우리 가까이에 있으면 삶이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찾아가는 길
목포 북항에서도 배편이 있지만 하루 4편뿐이고, 송공항에서는 30분~1시간 간격으로 암태도 오도항(신석항)이나 팔금도 고산항으로 카페리가 운항한다. 송공항 발 첫배 오전 7시, 고산발 막배 오후 8시30분. 25~30분 소요. 승용차 편도 1만4천원, 승객 편도3600원.
네 섬의 간선도로 위주로 일주하면 총 주행거리는 110㎞ 정도여서 휴식 포함해 8시간 정도 잡으면 여유로워 수도권에서도 당일코스로 가능하다. 각 섬의 중심지인 면소재지에 가게와 민박집, 식당이 모여 있다.
첫댓글 코스 멋있네요....
휴가 잡아!! 가보자구
좋~~네
대박 코스네요..
이런덴 꼭 가바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