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문(祭文)
이준(李埈)
아아 내 맘 슬프고도 애통하구나 嗚呼哀哉
그대가 이 세상에 태어난 거는 惟君之生
산과 강의 영기받아 태어난 거네 孕靈岳河
사물 환히 비추어서 밝게 봤나니 淸視照物
흠집 하나 없는 옛날 경쇠였었네 古磬斂瑕
지닌 학식 삼재1) 이치 환히 꿰었고 識透三才
품은 학문 사과2) 모두 궁구하였네 學究四科
숨은 이치 모두 캐어 맛을 보았고 理微必賾
정밀하게 학문 쌓아 갈고닦았네 業精而磋
그게 쌓여 크나큰 덕 이루어졌고 蘊爲德量
그게 발해 아름다운 문장되었네 發爲文華
십 년 동안 난초 차고 지내다가3) 十載紉蘭
하루아침 훌쩍 하니 베옷 벗었네4) 一夕脫麻
살짝 불자 퉁소 소리 바로 났나니 機鳴籟應
천재일우5) 만남 참말 굉장하였네 際遇堪誇
나라 운세 좋지 않아 한번 기울자 國運一否
세상일이 사특하기 그지없었네 世路千袤
그댄 그게 충성이라 여기었지만 君以爲忠
사람들은 마구마구 헐뜯었다네 衆毁交譁
그댄 그들 망녕되다 말하였지만 君曰彼佞
사람들은 아름답다 말들 하였네 衆謂之姱
이에 처음 먹었던 맘 다시 되찾아 乃尋初賦
고향 땅의 언덕으로 돌아왔다네 故山之坡
시서 서책 아무런 탈 없이 있었고 詩書無恙
솔과 계수 뒤섞이어 자라 있었네 松桂交柯
글 읽으며 덕 기르던 나머지에는 涵養之餘
간간이 소요하며 시를 읊었네 間以吟哦
혼조 때의 정사 더욱 어지러워져 昏朝政厖
참소하는 자들 범과 같이 씹었네 讒口虎呀
바른 선비 그 무슨 죄가 있었나 正士何辜
자주 풍파 휩쓸려서 위태로웠네 頻阽風波
높이 날던 기러기가 증격6) 맞았고 鴻飛矰繳
놀던 백로 소용돌이 물에 빠졌네 鷺浴盤渦
그대 훌쩍 조정에서 물러난 뒤로 自君之退
정원 매화 몇 차례나 꽃 피웠던가 園梅幾花
속된 세계 바깥에서 소요하면서 逍遙物表
세상 생각 아득하니 모두 잊었네 世念如紗
그렇지만 나라 걱정 하는 한 생각 憂國一念
오히려 사라지지 않고 있었네 尙欲無吪
성주께서 왕위 올라 교화를 펴자 聖主更化
봉황새가 산언덕에 깃들었다네7) 鳳巢于阿
서책 끼고 나아가서 계책 바치니 橫經獻謨
왕께서는 가상하게 여기었다네 王曰汝嘉
예경이라 한 질 서책 옆에 놓고서 禮經一部
평소에 늘 부지런히 강마하였네 平日講劘
여섯 가지 일에 대한 상소 올릴 땐 六條投匭
두 눈에서 피눈물이 줄줄 흘렀네 血淚交和
올린 말은 근거 삼은 바가 있었고 臣言有據
말한 견해 사특하지 아니했건만 臣見非邪
간하려고 지은 상소 불사르고서 諫書焚稿
거칠어진 전원에 와 화초 심었네 荒園種苽
맑은 물에 더러워진 갓끈을 씻고8) 纓濯滄浪
붉은 노을 속 오가며 소요하였네 身棲紫霞
신선되어 학을 타고 날아갔나니9) 化人乘鶴
그해의 운수 바로 뱀의 해였네10) 年運在蛇
일흔 살을 살고 난 뒤 몸 죽었으니 七十而止
누린 수명 어찌 길지 않다고 하랴 壽胡不遐
그대 생전 임금에게 고한 말들은 君之告王
인의였지 다른 말은 아니었었네 仁義非他
그대 생전 이조 판서 직을 맡아선 君之總銓
사심 없이 공정하게 인재 뽑았네 公正不頗
일에 대해 조처하는 재주를 보면 做事之才
막야를 막 숫돌에다 간 듯하였네11) 硎發鏌鎁
정사하며 어진 정사 펴는 걸 보면 行仁之政
풀 자랄 때 봄바람이 부는 듯했네 春噓草芽
한 시대에 우뚝했던 뛰어난 명망 一時雋望
상나라의 단비와도 흡사하였네12) 霖雨商家
가슴속에 쌓은 바를 다 못 폈지만 有蘊未施
운명이 그런 데야 또한 어쩌리 命也奈何
공이 낳은 심(杺)과 학(㰒) 두 명의 아들 二子之賢
아름다운 곡식처럼 빼어났는데 秀出嘉禾
가을 서리 내려 홀연 시들었나니 淸霜忽萎
귀신 이치 되레 어긋나고 말았네 神理還差
그대 비록 이치 통달했다 하지만 君雖達理
이로 인해 필시 몸이 병들었으리 因是而瘥
하늘 향해 그대에게 묻고 싶지만 欲問于天
하늘 멀어 구만리니 어찌하리오 九萬奈賖
그대 집안 옛일들은 다 무너져서 舊業零替
먹고살 길 그마저도 어려웁구나 生理蹉跎
황량하게 버리어진 그대 집 앞을 老屋荒涼
내가 어찌 차마 다시 지나가리오 那忍再過
그대 죽은 뒤의 일에 대한 의탁은 後事之托
악와에서 뛰쳐나온 용마가 있네13) 龍駒出洼
선행 쌓은 집은 경사 있는 법이니 積善之慶
복 받음이 어찌 많지 아니하겠나 受福不那
생각건대 그대와 나 우의 맺은 건 念我托契
젊은 시절부터 늙은 지금까지네 靑鬢而皤
이 냇가와 저기 있는 저 산등성이 某水某丘
몇 차례나 둘이 함께 노닐었던가 幾與婆娑
대숲에선 시원스러운 바람 불었고 涼飆來竹
연못 연꽃 맑은 향기 불어 보냈지 淸馥泛荷
고담 준론 옥가루가 흩어졌었고 高談玉屑
좋은 시구 하늘에 핀 꽃만 같았지 麗句天葩
아름답고 기이했던 그대의 재주 穎異之才
고려부터 신라까지 거슬러 가도 自麗泝羅
그대같이 우뚝하게 빼어난 사람 如君挺拔
몇 사람밖에 아마 없었을 거리 屈指無多
두려움이 없는 북을 둥둥 울리고 無畏之鼓
물러남이 없는 수레 몰아가면서 不退之車
서로 간에 쉬지 말자 기약하고는 相期勿休
기름 치고 두드린 게 몇 번이었나 幾脂幾撾
그대가 나를 깊이 알아준 거는 知我之深
숙아보다 훨씬 더 절실하였고14) 雖切叔牙
그대가 날 이끌어 준 깊은 정성은 導我之勤
후파 같은 이도 실로 감동할 거네15) 實感侯芭
옥당에선 마주 앉아 일을 보았고 玉署對案
사헌부서 함께 관직 생활하였지 烏府聯珂
나아가고 물러나는 의리에 대해 出處之義
말년 들어 둘이 서로 가다듬었지 晩景互磨
나의 성격 급한 것을 걱정하면서 憂我之狷
나를 향해 충고 자주 하여 주었지 忠告頻加
둘이 함께 전원으로 돌아온 뒤엔 勉以同歸
서로 간에 오가면서 축과16)하였지 追和軸薖
말년 들어 한 칸의 집 새로 짓고는 晩築一室
낙동강 강가에서 숨어 살았지 有洛之涯
분수 가와 검호 가에 떨어져 살며 汾湖兩地
쪽배 한 척 마련해서 서로 오갔지 往來一舸
달을 낚는 낚시대를 드리웠었고 釣月之竿
빗속에서 도롱이를 입고 김맸지 耕雨之蓑
이런 계책 아직은 다 못 이뤘는데 此計未成
어찌하여 깊은 병에 걸리었는가 奈何嬰痾
영질17) 크게 불러 봐도 이미 없으니 郢質亡矣
〈백설가〉18)를 어느 누가 불러 줄 건가 白雪誰歌
병든 중에 내게 해 준 한마디 말은 病中一言
지금 와서 생각해도 탄식스럽네 思之尙嗟
내가 이제 얼마나 더 살아 있으랴 吾生餘幾
서쪽 하늘 해는 이미 기울었구나 西日已斜
이 뒷날에 내가 무덤 들어간다면 夜臺他年
아마 둘이 서로 만나 볼 수 있으리 相見也麽
아름다운 의표 멀리 사라지는데 瓊標杳杳
금부 언덕 높고 높아 까마득하네 金阜峨峨
그대 묘의 묘지명을 쓰고자 하매 欲誌君墓
바가지로 바닷물을 재는 것 같네19) 如海酌蠡
한 글자도 아직 쓰지 못하였는데 文未點綴
눈물 이미 줄줄 흘러 앞을 가리네 涕已滂沱
아름다운 옥의 자질 지녔거니와 琬琰之質
몸 썩은들 부평초야 어찌 되리오 朽豈浮苴
틀림없이 화하여서 별이 되리니20) 化爲列星
옛 기록은 거짓된 게 아닐 것이리 傳記非訛
규성의 빛 찬란하게 빛이 난다면 奎彩爛然
그대 아님 그 누구의 별이겠는가21) 非君也耶
아아 내 맘 슬프고도 애통하구나 嗚呼哀哉
[주1] 삼재(三才) : 천(天), 지(地), 인(人)으로 천하 만물 모두를 가리킨다.
[주-D002] 사과(四科) : 공자(孔子) 문하(門下)의 네 가지 학과(學科)로 덕행(德行), 언어(言語), 정사(政事), 문학(文學)을 말한다.
[주3] 십 …… 지내다가 : 고결한 인품을 지니고 10년간 전원 속에 숨어 살았다는 뜻이다. 《초사(楚辭)》 〈이소(離騷)〉에, “강리와 벽지를 몸에 두르고, 가을 난초 엮어서 허리에 찼네.〔扈江離與辟芷兮 紉秋蘭以爲佩〕” 하였다.
[주4] 하루아침 …… 벗었네 : 선비가 입는 베옷을 입고 지내다가 조정으로 나가 벼슬하였다는 뜻이다.
[주5] 천재일우 : 현명한 임금과 충성스럽고 어진 신하가 천 년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잘 만났다는 뜻이다.
[주6] 증격(矰繳) : 화살의 일종으로, 오늬에 줄을 매어서 쏘는 화살인데, 흔히 남을 해치는 수단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상산사호가 태자의 자리를 안정시키고 떠나가자, 고조가 척부인(戚夫人)에게 춤을 추게 하고는 노래를 부르기를, “큰기러기 높이 날매 한 번에 천리를 나네, 날개가 이미 이뤄져서 사해를 가로지르네. 사해를 가로지르니 어찌 할 수 있으리오, 비록 증격 있다 한들 그 무슨 소용이리.〔鴻鵠高飛 一擧千里 羽翮已就 橫絶四海 橫絶四海 當可奈何 雖有矰繳 尙安所施〕” 하였다. 여기서는 정인홍이나 이이첨 무리의 모함을 받은 것을 말한다.
[주7] 성주(聖主)께서 …… 깃들었다네 : 인조가 반정(反正)을 일으켜서 왕위에 오르자 조정으로 나아갔다는 뜻이다.
[주8] 맑은 …… 씻고 : 은거한 채 지냈다는 뜻이다. 전국 시대 때 초(楚)나라의 굴원(屈原)이 쫓겨나서 강담(江潭)에 노닐 적에 한 어부가 굴원이 세상을 불평하는 말을 듣고서 빙그레 웃고 뱃전을 두드리며 떠나가면서 “창랑(滄浪)의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을 것이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내 발을 씻으리라.” 하였다.
[주9] 신선되어 …… 날아갔나니 : 죽었다는 뜻이다. 옛날 사람들은 사람이 죽은 뒤에는 신선이 되어 학을 타고 유람을 한다고 여겼다.
[주10] 그해의 …… 해였네 : 어진 자가 죽었다는 뜻이다. 후한 때의 대학자인 정현(鄭玄)이 말년에 꿈속에서 공자를 뵈었는데, 공자가 ‘빨리 일어나라. 금년에는 진년(辰年)이고 내년은 사년(巳年)이다.’ 하였다. 이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 뒤에 참위설(讖緯說)로 추론해 보고는 자신이 죽을 것을 미리 알았는데, 그로부터 얼마 안 있다가 병이 들어 죽었다. 정경세는 계유년(1633, 인조11)에 죽었는바, 간지(干支)에 사(巳)가 들어 있지 않다. 그런데도 이렇게 말한 것은 정현(鄭玄)과 같은 성씨(姓氏)이기 때문에 끌어다 쓴 것이다.
[주11] 막야(鏌鎁)를 …… 듯하였네 : 일을 처리 하는 데 있어서 아주 능숙하였다는 뜻이다. 막야는 옛날의 명검(名劍) 이름으로 흔히 재주가 뛰어난 인재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주12] 상(商)나라의 단비와도 흡사하였네 : 상나라의 부열(傅說)과 같이 임금이 잘 다스릴 수 있도록 보필할 만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서경》 〈열명 상(說命上)〉에, “만약 큰 가뭄이 들게 되면 너를 사용하여 단비로 삼을 것이다.〔若歲大旱 用汝作霖雨〕” 하였다.
[주13] 악와(渥洼)에서 …… 있네 : 훌륭한 자질을 지닌 후손이 있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우복의 손자 정도응(鄭道應)을 가리킨다. 우복은 아들 둘을 두었는데, 모두 요절하였으며, 손자 한 사람만 있었다. 악와는 감숙성(甘肅省) 안서현(安西縣)에 있는 물 이름으로, 한(漢)나라 때 포리장(暴利長)이란 자가 이곳에서 둔전(屯田)을 하고 있다가 신마(神馬)가 이 물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이를 잡아 무제(武帝)에게 바치자 무제가 〈천마가(天馬歌)〉를 지었다고 한다. 《漢書 卷6 武帝紀》
[주14] 그대가 …… 절실하였고 : 자신을 잘 알아주어 아주 친한 교분을 맺었다는 뜻이다. 춘추 시대 때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가 아주 친하게 지냈는데, 관중이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세 번 싸움터에 나가서 세 번 달아났는데, 포숙은 나를 보고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나에게 늙은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 준 분은 부모이고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이다.” 하였다. 《史記 卷62 管仲列傳》
[주15] 그대가 …… 거네 : 친구이면서 동시에 스승의 역할을 하였다는 뜻이다. 한(漢)나라 때의 이름난 학자인 양웅(揚雄)이 병이 들어 집 안에 거처하고 있을 적에는 매우 가난한 데다가 술을 좋아하기까지 하였으므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아주 적었다. 그러한 때 거록(鉅鹿) 사람인 후파(侯芭)가 항상 양웅과 함께 살면서 그를 돌보아 주는 동시에 그에게 《태현경(太玄經)》과 《법언(法言)》을 배웠다.[
[주16] 축과(軸薖) : 축軸은 한가로이 서성이는 것을 말하고, 과(薖)는 마음이 관대한 것으로, 은거해 숨어 살면서 덕을 이루고 도를 즐긴다는 뜻이다. 《시경》 〈고반(考槃)〉에, “고반이 언덕에 있으니, 석인의 마음이 넉넉하도다.〔考槃在阿 碩人之薖〕” 하였으며, 또 “고반이 높은 언덕에 있으니 석인이 한가로이 서성이도다.〔考槃在陸 碩人之軸〕” 하였다.
[주17] 영질(郢質) : 자신과 뜻이 맞는 지기지우(知己之友)를 말한다. 영(郢) 땅에 석수(石手)가 있었는데 사람의 코끝에 흰 흙을 파리의 날개보다도 더 얇게 발라 놓은 다음 그로 하여금 도끼를 휘둘러 그 흙을 제거하게 하였는데도 코끝이 조금도 다치지 않았으며, 코에 흙을 바른 사람도 눈도 깜짝 하지 않았다. 이 소문을 듣고 임금이 그를 불러 자기가 보는 데서 그렇게 해 보라고 하자, 석수가 말하기를, “신은 지금도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코에 흙을 바르는 사람이 이미 죽어 버린 지 오래되어 할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莊子 徐無鬼》
[주18] 백설가(白雪歌) : 전국 시대 때 초(楚)나라에서 불렸던 고아(高雅)한 가곡(歌曲)의 이름으로, 일반적으로 고상하고 아취 있는 곡이나 시문(詩文)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주19] 바가지로 …… 같네 : 비천하고 모자란 재주를 가지고서 크나큰 덕을 다 형용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주20] 틀림없이 …… 되리니 : 살아서 뛰어난 덕을 지녔으니, 죽은 뒤에 반드시 부열(傅說)과 같이 별이 될 것이란 뜻이다. 부열성(傅說星)이 기성(箕星)과 미성(尾星)의 사이에 있는데, 이 별은 부열이 죽은 뒤에 하늘로 올라가서 별로 화한 것이라고 전한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부열이 도를 얻으면 무정(武丁)의 재상이 되어서 문득 천하를 소유할 것이며, 동유성(東維星)과 기미성(箕尾星)을 타고 올라가서 열성(列星)들 사이에 끼일 것이다.” 하였다.
[주21] 규성(奎星)의 …… 별이겠는가 : 규성은 문한(文翰)을 주관하는 별로, 우복이 문장에 뛰어났으므로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