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1장 9-12절. 교회 성도를 위한 바울의 기도
1. 지난 시간에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에게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과 천국 소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2. 이번 시간에는, 바울 사도가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3.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4. 기도의 내용은 4가지입니다.
(1) 골로새 교인들에게 신령한 지혜를 주셔서, 성경 말씀을 깨달아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2)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골로새 교인들이 그 말씀대로 실천하여, 선한 열매를 많이 맺도록 기도했습니다.
(3) 비록 험악한 세상에서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모든 어려움들을 원망하지 않고, 기쁨으로 참아갈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4) 이처럼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잘해서, 장차 천국 기업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5. 오늘 설교의 제목은 “성도를 위한 바울의 기도”입니다.
첫째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9절.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this reason also, since the day we heard of it, we have not ceased to pray for you and to ask that you may be filled with the knowledge of His will in all spiritual wisdom and understanding,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Διὰ τοῦτο καὶ ἡμεῖς, ἀφ’ ἧς ἡμέρας ἠκούσαμεν,
because of this also we, from the day we heard
‘듣던’(ἠκούσαμεν)은 부정과거로서(we heard) 과거에 확실히 들은 것을 가리키고, 그래서 ‘들었던’이라고 번역함이 좋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οὐ παυόμεθα ὑπὲρ ὑμῶν προσευχόμενοι καὶ αἰτούμενοι
not we cease for you praying and asking
직역하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과 구하는 것을 우리가 그치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기도하는 것’(προσευχόμενοι)은 현재분사로서(praying) 계속 기도하는 모습을 가리키고, ‘구하는 것’(αἰτούμενοι)도 현재분사로서(asking) 계속 구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그치지 않노라’에서 동사(παυόμεθα)는 현재입니다(we cease).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ἵνα πληρωθῆτε τὴν ἐπίγνωσιν τοῦ θελήματος αὐτοῦ ἐν πάσῃ σοφίᾳ καὶ συνέσει πνευματικῇ,
that you may be filled with the knowledge of the will of Him in all wisdom and understanding spiritual
직역하면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 가운데서 그 분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너희가 채워지기를’ (기도하고 구하는 것을 그치지 않노라)는 뜻입니다.
‘너희가 채워지기를’(πληρωθῆτε)은 부정과거 가정법 수동태로서(you may be filled) 확실하게 가득 채워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 접속사(ἵνα, that)는 기도의 내용을 소개하는 접속사입니다(introduce the content of the prayer).
여기서 ‘지식’(ἐπίγνωσιν, knowledge)이란 영지주의적 철학적 지식을 가리키지 않고, 사해사본에 나타난 지식의 개념을 가리킵니다(the concept of knowledge found in DSS rather than that in the gnostic philosophy).
‘지혜’(σοφίᾳ, wisdom)란 하나님의 뜻을 생활에 적용하는 구약적인 개념의 지혜를 가리킵니다( the OT concept, applying the knowledge of God’s will to life’s situations).
‘총명’(συνέσει, understanding)이란 사실과 정보를 종합해서 결론을 이끌어 내고 관계를 예측하는 것을 가리킵니다(putting together the facts and information and drawing conclusions and seeing relationships).
‘신령한’(πνευματικῇ, spiritual)이란 신약성경에서 성령에 속하고 성령과 관련한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Linguistic Key. 566.
1.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의 형편을 ‘에바브라’에게서 듣고 나서부터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성도들끼리 사정을 알아야 구체적으로 기도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끼리 서로 형편을 잘 알 수 있도록 친밀한 교제가 중요합니다.
구역 식구들은 구역장님께 형편을 알려서 기도를 부탁하고, 구역장님은 혼자서 벅찬 일은 장로님들이나 권사님들이나 목사에게 알려서 같이 기도하고,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2. 오늘 본문의 말씀과 같이 기도에는 두 가지(προσευχόμενοι καὶ αἰτούμενοι: praying and asking)가 있습니다.
(1) 그냥 “기도한다”(προσεύχομαι: pray)는 것은 하나님께 상의하는 것과 같은 기도를 가리킵니다.
원래 기도란 “교통한다, 교제한다, 들어가고 나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기도란 늘 일상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하루의 일과를 주님께 보고하고, 또 주님과 의논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기도하다 보면,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을 주시고, 우리 마음도 준비시켜주십니다.
(2)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기도와는 달리, 본문에 “구한다”(αἰτέω: ask, petition)는 말로 표현된 기도가 있으니, 보통 “간구한다”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간구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나서, 그 뜻을 이루어 주시도록 끈질기게 간청하는 기도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기도를 많이 해서 하나님과 교통하고 일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하겠지만, 특별히 큰 문제나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는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간절히 기도하는 간구의 기도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3. 우리 성도들은 바울의 본을 받아서, 기도하며 살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성도다운 힘 있는 삶을 살아가려면, 기도를 많이 해서, 성령님의 능력을 얻어서 올바르고 성공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기도해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얻지 못하면, 내 힘과 내 의지로는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① 기도는 자기가 직접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하지만, 기도는 자기가 직접 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자신과 자녀손들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그런데 기도하기를 쉬어서는 안 됩니다.
기도하는 것을 쉬는 것은 죄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12장 23절에서, 사무엘 선지자는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치 않겠다고 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이 왜 죄입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죄가 됩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님의 도우심을 못 받아서, 자기 뜻대로 살게 되고, 죄를 짓게 되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것은 모든 죄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필요 없다는 사람이요, 뭐든지 자기 맘대로 하고, 자기 의지로 할 수 있다고 자만하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②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사이가 나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도 사이가 나빠지면, 전화도 않고, 찾아가지도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사이가 나빠진 성도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맘대로 사는 것은 불신앙이고, 벌 받을 일입니다.
③ 성경에 기도하라는 말씀은 거의 다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기도하라,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간구하라, 이렇게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항상 기도하라, 낙망치 말고 기도하라 등 모두 명령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약 1:5)
그러므로, 오늘 바울 사도의 기도를 본받아 날마다 기도에 힘쓰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는 새벽에 나오셔서, 기도하시는 분, 아침에 나오셔서 기도하시는 분, 낮에 나오셔서 기도하시는 분, 저녁과 밤에 나오셔서 기도하시는 분, 심지어 밤을 새워가며 기도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더욱 기도에 힘쓰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기도할 때, 첫째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신령한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9절 후반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 바울 사도가 골로새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첫째 기도 제목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성도들은 다음과 같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10절. 주께 합당하게 행할 수 있다.
10절. 주를 범사에 기쁘시게 한다.
10절.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10절.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자랄 수 있다.
11절. 안내하면서 오래 참을 수 있다.
11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릴 수 있다.
2.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아는 데는 성령님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영 즉 성령님”은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11:2)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성령님이 함께 하셔야 하므로, 우리는 열심히 기도하여 날마다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예수님께서도 성령님이 오시면 성도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6:13)
성령님이 감동하시고,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를 잘 따라가면, 올바른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9절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라고 했고, 10절에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라고 했고, 10절 후반부에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공적인 교회 생활과 목회를 위해서도 날마다 기도하여 성령님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수행해야 하고, 성공적인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위해서도 날마다 기도하여 성령님의 감동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이처럼 성령님을 모시고, 성령님의 감동과 인도를 받아 살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내 마음과 내 판단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불신자와 다름없는 사람입니다.
즉 불신자들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28).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매일 기도하여 성령님의 감동과 인도를 따라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어린양 예수님이 성령님을 통해서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요한계시록 14:4.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우리는 성령님의 순간적인 감동을 잘 파악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다른 생각과 다른 행동으로 성령님의 감동과 인도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3. 바울 사도가 성도를 위해서 첫째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도록 기도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아는 것이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일을 해야 잘 하는 것입니다.
인간 자기의 뜻대로 일을 하면,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1) ‘사울 왕’은 열심히 일한다고 했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일해서,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사울 왕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은 먼저 사울 왕이 하나님께 예배하며, 순종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적군을 무찌르는 것은 그다음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자기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공적비도 세웠습니다.
결국,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지 아니하심으로, 가련하게도 귀신에게 물어서 점하는 수넴여인을 찾아갔다가 멸망 당했습니다.
(2) 그러나, ‘다윗’은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다윗은 자기 원수 사울 왕을 당장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찾아왔어도, 자기 뜻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기뻐하실 뜻을 찾아서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3:22)
4.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1)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예언 기도를 받으러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렇게 환상을 보여주거나, 예언의 말씀을 주시거나, 신비한 현상을 통해서 계시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선교지에서 성경이 전혀 번역되지도 않는 곳에서는 이처럼 신비한 현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나타내 보이시는 예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성경이 온 세상에 널리 펴져 있고, 수 많은 전문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는 때에는, 그런 신비스러운 현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2) 하나님의 뜻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해서 기록하신 성경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그냥 읽는다고 성경 말씀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문적으로 성경만 연구하시는 학자들도 성경을 모르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성경을 공부하여, 하나님의 뜻을 늘 알기 원하는 모범적인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성경 말씀에 대한 바울 사도의 설교를 듣고, 이 말씀이 그러한가 하면서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모범적인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기도하면서도, 성경을 읽지 않고, 설교를 듣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요술 램프속에서 나타나는 신기한 존재로 잘못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해서 기도하는 성도는 성경 말씀을 읽어보아야 하고, 설교 말씀을 들어보아야 하고, 주일학교에서 가르치는 장로님들이나 예배인도자님들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집 안에 밥과 고기와 빵과 고구마와 과일과 생선 등 음식이 많이 있는데, 엎드려 하나님께 “먹여주시옵소서!”, “먹여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고만 있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습니다.
5.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1) 우리가 성령님의 감동과 도우심을 찾아 기도하면, 점점 더 밝히 하나님의 뜻을 알아갈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어두워서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지 못할 때라도,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면, 성령님께서 우리를 간섭하셔서 하나님의 길로 인도해주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도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성령님께서 감동해주시고, 인도해주셔서 성공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이 없는 지역이나, 또 글을 전혀 모르는 분들에게는 환상이나 음성이나 꿈으로라도 깨우쳐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기도해서 성령님의 감동과 인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기도하고 성경 말씀을 연구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2) 성도가 기도하면 오늘 말씀대로 성령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성경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들은 그만큼 성경 연구도 많이 해야 합니다.
또, 성경 말씀을 많이 읽는다고 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경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주셔서 기록된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을 읽기 전에 기도를 많이 하고,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서 성경을 읽고 연구하시면, 많은 은혜를 받으실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와 성경 말씀은 뗄라야 뗄 수 없는 신앙생활의 두 가지 필수품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성령의 검”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설교 말씀을 들을 때도, 성령께서 감동으로 깨닫게 해주시는 것을 마음에 감동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도로 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는 예배 시간에 설교를 잘 들으시는 교회로 유명합니다.
정말 설교 시간에 눈망울들이 다 똘망똘망 하셔서, 말씀을 잘 받아들이시는 것을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6. 또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일반은총을 통해서도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세계 자연질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주셨습니다.
또한 일반 도덕법칙과 국가의 통치 원리인 법률을 통해서나 사회 상식이나 공서양속을 통해서나, 선배님들의 경험적 교훈을 통해서, 전문가의 상담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만 하고, 성경만 연구하지 말고, 우리 속의 선한 양심의 판단과 선배들의 경험과 전문가의 상담과 도덕과 법률과 자연법칙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야 합니다.
이처럼 일반은총으로 주신 자연계시를 무시하고, 특별계시인 성경으로써만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하면, 불신자보다도 못한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찾을 때 첫째 기도하고, 둘째 성경에 비추어보고, 셋째 경험자들이나 전문가들에게 상담하는 것을 중요시 해야 합니다.
바울이 기도하는 두 번째 기도의 제목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성도님들이 그 말씀대로 실천하여, 많은 열매들을 맺기 원하는 것입니다.
10절.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that you will walk in a manner worthy of the Lord, to please Him in all respects, bearing fruit in every good work and increasing in the knowledge of God;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περιπατῆσαι ἀξίως τοῦ Κυρίου, εἰς πᾶσαν ἀρεσκείαν,
to walk worthily of the Lord, into all pleasing
‘합당하게 행하여’에서 동사(περιπατῆσ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인데(to walk) 확실히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도록 기도하는 것을 가리키고, 문법적으로는 앞 절에 ‘기도하고 구하노라’(προσευχόμενοι καὶ αἰτούμενοι)에 연결되고 있습니다.
즉 여기 부정사형(infinitive)은 의도적이거나 잠재적인 결과를 표현한 것입니다(the infinitive is used to express intended or potential results).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ἐν παντὶ ἔργῳ ἀγαθῷ, καρποφοροῦντες
in every work good, bring forth fruit
‘열매를 맺게 하시며’(καρποφοροῦ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bring forth fruit) 그리스도인들이 열매를 계속해서 맺어가는 것을 가리킵니다(the present tense indicates that fruit bearing for believers is to be a continuous thing).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καὶ αὐξανόμενοι τῇ ἐπιγνώσει τοῦ Θεοῦ,
and growing in the knowledge of the God
‘자라게 하시고’(αὐξανόμενοι)는 현재분사입니다(growing).
‘하나님을 아는 것’(τῇ ἐπιγνώσει τοῦ Θεοῦ)이란 소위 칼빈(Calvin)이 말한 ‘신지식’(the knowledge of God)입니다.
식물이 비와 이슬을 맞고 성장하듯이 성도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believers grow in (by) the knowledge of God as the dew or the rain which nurtures the growth of the plant).
1.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는 다른 성경에도 나오는 표현이고(에베소 4:1, 데살로나가전서 2:12), ‘주께 합당히 행한다’는 표현은 ‘주님과 동행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나 혼자의 힘으로 주님께 합당히 행한다는 뜻이 아니고, 성령님과 동행하고 인도를 받아서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드리게 되고(로마서 8:4), 모든 선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갈라디아서 5:22).
또한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요한복음 16:13).
그렇기 때문에 ‘행한다’(περιπατέω: הָלַךְ)는 동사는 하나님을 버리고 나 혼자 가는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시고 올바로 사는 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바울 사도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이라고 했고(요한복음 17:3), 바울은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3:8).
여기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ἐπίγνωσις)이란 경험적인 지식을 가리킵니다.
즉 남편과 아내가 함께 살 때 서로를 아는 것처럼,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가를 생활을 통해서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이 얼마나 좋으신지를 날마다 기도하고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아는 것을 가리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날마다 연구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기도해야 하고, 날마다 성경을 연구해야 합니다.
3. 둘째로 바울이 기도하는 것은 성도들이 ‘주님께 합당하게 행하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성령님과 동행하여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시고 지혜로우시고 전능하신 분인지를 체험적으로 아는 것이 중요하고, 또한 성령님의 뜻대로 우리가 순종하고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처럼 성령님의 감동에 따라 순종하고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복된 열매들을 맺고, 행복한 삶이 됩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순간적인 감동을 버리고, 우리 의지대로 행동하면, 금방 마음에 평안과 행복감이 사라지고, 생활이 엉망이 됩니다.
이런 성령님과 동행하고 순종하는 삶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면, 우리의 삶이 풍성해지고, 우리의 가정은 평안과 행복이 쌓여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물질적인 손해도 많고, 건강도 나빠지고, 인간관계가 엉망이 되고, 가정 안에 평안이 사라지는 불행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도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 두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주여 누구십니까”(사도행전 22:8), “내가 무엇을 행하리이까”(사도행전 22:10).
4. ‘주님께 합당하게 행한’ 결과는 첫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선한 열매들을 맺는 것이고, 셋째는 자라가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행복은 자녀들로 인해서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듯이, 우리 성도들이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우리의 행복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 아름다운 열매들을 맺습니다.
첫째는 우리 마음에 성령의 열매가 맺히고, 둘째 우리의 삶에 물질적 부요와 건강과 가정의 행복과 자녀의 축복이 맺힙니다.
셋째는 점점 더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더욱 알아가고 신앙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5.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1) 성도의 삶에는 복음에 합당치 않는 생활과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 있습니다.
복음에 합당치 않는 삶이란, 예수 믿기 전의 옛 사람의 욕심대로 사는 삶입니다.
즉, 아담의 자손으로서, 타락한 인간의 본성대로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도덕적인 수련과 인격도야와 종교적 수행을 통해서, 타락한 본성을 억제하면서 살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리새인들의 외식과 같은 것이고, 회칠한 무덤과 같이 속은 썩은 송장이나, 겉으로 깨끗한 척 보이는 것뿐입니다.
이것은 바리새인들의 교만이요, 자기 의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아담의 후손으로 예수 믿기 전 사람은 타락한 육신의 본능을 따라서 살아갑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는 이것을 <육신의 열매>라고 해서, 우상숭배와 시기 다툼과, 성적 방탕과, 술취함 같은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5장에도,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은 이런 악한 생각,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 증거 같은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3절에도, 음란한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멀리하라고 했습니다.
(2) 그러면,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어떤 것입니까?
과거에 아담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타락한 본성에 따라 살던 때 예수 믿기 전의 옛사람은 죽고, 예수 믿음으로써, 마음속에 예수님 모시고, 성령님 모시고, 사는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말씀한 대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령님 모시고 사는 삶은 갈라디아서 5장 말씀대로 사랑과 희락과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같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2. 그런데, 선한 열매는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서 순종할 때 맺힙니다.
(1) 누가복음 8장에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 돌짝밭 같은 마음, 가시밭 같은 마음에는 말씀의 씨앗이 뿌려져도 열매를 거둘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여 착하고 부드러운 마음에 말씀의 씨앗이 뿌려지면,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순종함으로써”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힌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흘러 떠내려 보내지 마시고, 순전한 마음으로 말씀을 믿고 받아들여서, 이 말씀이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바울이 기도하는 세 번째 기도의 제목은 환난과 풍파 많은 세상에서 성도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고, 성도들도 오래참음으로써, 변질되지 않는 신앙생활하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11절.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trengthened with all power, according to His glorious might, for the attaining of all steadfastness and patience; joyously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ἐν πάσῃ δυνάμει δυναμούμενοι,
with all power being strengthened,
직역하면 ‘모든 능력으로 능력 있게 되어서’란 뜻입니다.
‘능하게 하시며’(δυναμούμενοι)는 현재분사 수동태로서(being strengthened) ‘능력있게 되어서’란 뜻인데, 한글성경은 수동태를 능동태로 번역했습니다.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κατὰ τὸ κράτος τῆς δόξης αὐτοῦ,
according to the might of the glorious of Him,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εἰς πᾶσαν ὑπομονὴν καὶ μακροθυμίαν, μετὰ χαρᾶς
unto all endurance and patience, with joy
‘오래 참음’(μακροθυμίαν, patience)이란 잘못한 사람에게 급하게 보복하지 않고, 자제하는 것을 가리킵니다(refers to the self restraint which does not hastily retaliate a wrong).
1. 앞에서는 성도의 합당한 생활에 대한 기도를 드렸으나, 본절 에서는 성도들이 강건해지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강건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힘을 좇아 강건해진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영광’(δόξα)이란 하나님의 전지전능과 사랑과 거룩 등을 종합해서 일컫는 단어입니다.
이렇게 성도들이 강건해져서 모든 핍박과 세상 고난들을 잘 견디고 잘 참아내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여기서 ‘견딤과 오래 참음’은 원래 헬라철학의 스토아학파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주장한 것인데,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수양으로 인내를 이루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것을 견디고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2.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에서 동사 ‘능하게 하시며’ (δυναμούμενοι)는 현재분사 수동태(being strengthened)로서 ‘모든 능력으로 능력 있게 되어서’란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항상 능력있는 생활을 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이렇게 동사가 수동태인 것은 우리의 힘으로 능력있는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셔서 항상(현재분사) 능력있는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4:1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5)
그런데 바울은 믿는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지극히 크다고 말했습니다.
에베소서 1:19-20.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즉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부활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이는(Warren W. Wiersbee) ‘모든 견딤’은 어려운 환경을 잘 견디는 것이고, ‘오래 참음’은 나쁜 사람에 대해서 오래 참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벌거벗고 십자가에 달리는 극한 환경 가운데서도 온전히 참으셨습니다.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사람에 대해서 오래 참은 사람은 용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잠언 16:32.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3. 우리 성도가 세상의 환난과 풍파를 견디고 참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보호하시고, 우리를 끝까지 참고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1) 보통 우리는 우리 성도가 세상의 환난과 풍파를 인내하면서, 천국 갈 때까지 신앙을 지킨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인간이 기도하면서, 참고, 말씀 붙들고, 환난과 죽음도 감수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성령님께서 붙들어 주시기 때문에, 우리의 인내가 가능합니다.
마태복음 10장 19절에는, “너희가 환난과 핍박을 받을 때도,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님이시니, 그 때마다 성령님께서 대답할 것을 생각나게 해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2) 그리고, 성경에는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20)
요한일서 5장 18절에는 “악한 자가 우리를 만지지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또, 로마서 8장 35절에는 “환난이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칼이나 어떤 위협이나, 천사들이나 악마들이나, 죽음이라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또, 히브리서 13장 5절에는 “과연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않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12절에는 “저가 우리를 세상 끝날까지 지키실 줄을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디모데후서 4장 18절에는,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저내시고, 하나님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라”고 했습니다.
(3) 이처럼, 우리가 세상 환난과 고난을 참고 천국까지 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때문에 우리를 천국까지 참고 데리고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주의 5대 교리 중 5번째인 ‘성도의 견인’( perseverance of the saints)이라는 것은 사실은 하나님께서 성도를 향해서 참으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바울 사도의 마지막 기도는 성도들이 천국을 기업으로 얻게 될 것을 기쁨으로 소망하면서, 하나님께 늘 감사 생활을 하는 성도들의 삶이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12절.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giving thanks to the Father, who has qualified us to share in the inheritance of the saints in Light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εὐχαριστοῦντες τῷ Πατρὶ,
giving thanks to the Father,
직역하면 ‘아버지께 감사하면서’( 걸어가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προσευχόμενοι περιπατῆσαι: praying to walk)는 뜻입니다.
‘감사하면서’(εὐχαριστοῦντες)는 현재분사입니다(giving thanks).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τῷ ἱκανώσαντι ὑμᾶς εἰς τὴν μερίδα τοῦ κλήρου τῶν ἁγίων ἐν τῷ φωτί·
the (One) having qualified you for the share of the inheritance of the saints in the light
직역하면 ‘빛 가운데서 성도들의 기업의 부분을 너희가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이란 뜻입니다.
Nestle과 Westcott and Hort에는 ‘너희’(ὑμᾶς)로 되어 있고, Byzantine과 Greek Orthodox Church 사본에는 ‘우리’(ἡμᾶς)로 되어 있습니다.
‘합당하게 하신’(ἱκανώσαντι)은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qualified) 완전히 합당하게 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1. 천국 기업을 얻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구약 시대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12지파에게 기업으로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천국 기업을 우리 성도들에게 기업으로 나누어주십니다.
여호수아(יְהוֹשֻׁ֣עַ)의 히브리식 이름은 헬라어로 예수(Ἰησοῦ)입니다.
2. 우리 인생에게 천국의 소망이 없다면, <헤밍웨이>같이 자살하든지, <싸르트르>같이 미치든지 할 것입니다.
(1)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늙고 죽어가는 자기 인생을 뻔히 보면서, 제정신으로 살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성경 말씀대로, 불신자들은 ‘내일 죽을 터이니, 오늘 실컷 향락하고 죄짓고 사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이랴’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천국의 소망, 신랑 신부의 기쁨이 완전한 천국이 있다는 말씀을 믿기에, 오늘을 절제하고, 마음을 비우며, 희생하며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유럽인과 미국인과 일본인과 한국 사람은 경제생활이 향상되니까, 천국에 대한 소망을 버리고, 현세에서 향락을 추구하는 나라가 되어 버렸습니다.
(2) 이러한 불신 풍조 속에서,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려면, 밤에 육체의 향락을 절제해야 합니다.
밤의 향락을 절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새벽기도회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면, 밤에는 일찍 자게 됩니다.
새벽기도회에 참여하면, 세상 향락보다 성령님을 모시고 살게 됩니다.
어느 성도의 말대로, 밤은 마귀의 시간이요, 새벽은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문봉주 씨가 쓴 <새벽형 크리스챤>에 이런 내용이 잘 나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쁘시고 힘드십니까?
그렇다면 새벽예배에 참석하십시오!
너무나 바쁘고 힘드신 분들일수록 새벽예배에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연세가 많아서, 시간이 많고 할 일이 없으십니까?
그러면, 낮시간에 교회에 오셔서 기도하시고 성경 보시고 찬송하십시오.
이처럼, 날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여러분의 인생이 천국을 향한 기쁨의 행진이 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쪼록 늘 기도에 힘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면, 하나님이 성도님들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으면, 영의 양식으로 채워져서 힘있는 믿음 생활을 하실 것입니다!
날마다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천국을 향한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