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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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춘수님의 '꽃' 이라는 시의 1, 2 연'>
긴긴 사연의 설화(雪花) 이야기를 다 털어 놓아야겠다. 여동생이 화분 하나를 들고 왔다. 그 해가 1991
년 여름이었다. 동생이 대학에 다닐 때부터 키우던 꽃이란다. 동생은 내가 분가한 이후에 대학에 들어갔
고 결혼하여서까지 키우다 가져왔으니 그간 십 수년은 키웠을 것이다. 그 후 내가 지금까지 27년간을 키
워 왔다. 정말 그리 오래도 사나? 할 만큼 나이배기이다. 그러면서도 이름을 몰랐던 꽃이었다면 누가 믿
을까? 아니, 처음엔 잘못 알고 있는 이름은 있었다. 뭐, '아프리칸 바이올렛'일 것이라고 들은 기억이 난
다. 동생도 이렇게 추측 이름만 주고 갔다. 그런 이름인 줄 알고 키웠다. 새끼 손가락 굵기만한 20여 cm
의 Y자형 줄기 끝에 손바닥만한 넓은 잎을 각각 대여섯 개씩 달고 있었다. 잎이 좀 두터웠다. 얼풋 보기
에도 여러해살이 상록 관엽식물인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프리칸 바이올렛이 아닌 줄 알게 되었
다. 그런가보다 하면 되겠지만 그게 그렇지 않았다. 키우면서 시도 때도 없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
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김춘수님의 '꽃'이라는 시가 늘 머릿속에 맴돌았
다. '이름을 알아야 하는데'의 서곡처럼 말이다. 키우는 사람의 갑갑한 심정을 누가 알랴? 별 수 있나. "
이름도 몰라.' 하면서 그저 상록의 잎으로 보아 더운 지방이 고향일 거라는 짐작을 하면서 키웠다. 늘 궁
금하면서도 이 꽃을 다른 데서 볼 수도 없었으니 누구에게 물어보아 알 수 있단 말인가? 딱, 한 번 해인
사 부근 모텔에서 몇 년 전에 본 일이 있다. 반가워 하며 주인에게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분도 모른다고
한다.
겨울엔 다른 화분과 함께 마당에서 거실로 옮겨져 푸르름을 뽐내었다. 마당으로 옮겨지는 초봄이 되면
꽃이 피었다. 꽃대가 올라오면서 끝에 우아한 연분홍 꽃송이를 달고 나타난다. 멀리서보면 꼭 벚나무 꽃
송이를 연상하게 한다. 아니, 복사꽃에 가까운데도 그리 연상하였다는 말이 더 맞는다. 와! 하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는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열흘이 넘어서도 그 자태를 뽐낸다. 하기는 꽃대가 올라와 시들어
가는 과정까지 바라보게 되니 근 한 달이나 꽃의 일생을 대한다. 꽃이 져도 잎이 우아하여 자주 바라보게
된다. 하기는 물주기 하면서도 보게 되지만. 10여 년, 아니 정확히 9년을 마당과 거실을 오가다 아파트
로 이사가면서 다른 40여 화분과 함께 베란다에서 줄곧 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마당에서 자랄 때다. 키
우던 개가 화분을 넘어뜨려 가지가 부러졌다. 혹시나 하고 부러진 가지를 다른 화분에 옮겨 심었더니 그
도 살아나 두 개가 된 사연도 전설처럼 담고 있다. Y형이 자연스럽게 둘 다 곧은 1자형으로 바뀌었다.
이후 이 두 화분은 단독 주택을 청산하고 아파트 생활을 10년이나 하다 서울생활을 접고 춘천으로
와 사는 동안에도 줄곧 같이 지낸다. 여기 산지도 벌써 8년이 지났다. 춘천으로 이사오면서 키우던 화
분을 다 남 주고 지지러기 화분 몇 개 버리지 못하고 가져오면서 이 두 화분은 언젠가 동생과 이야기
중에 미련이 있어 하는 듯한 여운을 느꼈기에 되돌려 주려고 가지고 왔다는 수필을 쓴 일도 있는 인연
의 화분이다. 춘천도 아파트 생활의 연속이니 추위 걱정은 없이 키우고 있다. 다만 더운 날의 한낮 뙤
약볕에 그냥 두면 잎이 늘어지기에 초여름에서 초가을까지는 그늘이나 반그늘진 곳에서 키운다. 전에
는 몰랐는데 춘천에서 키우면서 보니 줄기 밑둥에서 한두 개씩 매년 새 잎이 돋기 시작하였다. 줄기에
서 자라는 자태와 똑 같았다. 분갈이를 하면서 웬만큼 자란 이 잎줄기를 뿌리 몇 개 달리게 떼어내어
다른 화분에 키우니 탈 없이 잘 자란다. 지인에게 나누어도 주었다. 아직도 분주한 대여섯 그루가 화분
에서 자라고 있다. 몇 년 전 이렇게 분주하여 키우는 중의 한 구루가 작년부터 꽃을 피우기까지 한다.
그도 감동으로 다가왔다. 방짝이 지난 겨울에 집에 온 두 지인에게 이 꽃을 자랑을 하다 자기들도 키
우고 싶다 하니 봄이 오면 주기로 한 모양이다. 머지 않아 두 화분이 다시 내 곁을 떠날 참이다.
매년 꽃이 피진 않았다. 해거리를 한다. 또 잎은 가지 맨 위에서 새 잎이 돋아나 커지면서 그 맨
아래의 잎은 시나브로 한 잎씩 푸르름을 잃고 흑갈색으로 변하면서 쪼그라지며 말라간다. 낙엽이
되지 아니한다. 가위로 잘라주어야 한다. 이렇게 위에서 새잎이 나고 아랫잎이 비례해서 그리 말
라가니 자나다 보면 언제나 대여섯 잎만을 달고 있다. 어느 정도 자란 줄기는 더 이상 자라지 않는
다. 늙어가니 오래된 두 설화는 자연 줄기가 꼬부라져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다. 정말 오랜 기간 정
을 흠뻑 주고 들고한 꽃이다. 올 2월(2018년)에서야 꽃 이름을 알게 되었다. 잔설이 남아있는 중
에 피는 꽃이라고 '雪花'라고 한단다. 3월 초인 지금 한창 요염하다. 허! 글세, 고향도 꽃이름이 암
시하듯 더운 지방이 아니란다.
'설화'라는 꽃 이름을 알게된 사연도 재미있다. 꽃이 피기 시작한 지난 2월 말이다. 막내여동생에
게 자랑삼아 핸드폰으로 꽃사진을 보내며 이름도 알아보라고 했다. 막내는 핸드폰을 아주 잘 다룬
다. 그 사진으로 네이버에 들어가 조회하더니 즉각 알아내었다고 한다. 언니는 꽃을 주고 오빠인
나는 키우고 그 아래 동생인 막내는 이름을 찾아내었으니 삼남매 삼박자로구나,흐흐. 나도 곧바로
컴퓨터를 켜고 조회하여 보았다. 베란다에서 내가 키우는 꽃을 꼭 닮은 꽃사진과 함께 시베리아
나 히말라야 바위산의 바위 틈새에서 자라는 식물로 '설화'라는 이름 외에도 '시베리아 바위취',
히말라야 바위취' 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 이어 나타난다. '돌부채'라는 이름도 있고 학
명으로는 '베르게니아'라고 하고 함경도에서도 자생한단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27년을 키우고도
모르던 이름이여! 이런 사연을 지니고 그리 오래도록 함께 살아온 남다른 그 정을 어찌 표현해야
할까? 도무지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야 김춘수님의 나머지 3, 4연의 싯구를 읊어 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올해도 꼬부랑 줄기 밑둥에서 새 잎이 하나 피어나고 있다.
차차 대여섯 잎으로 늘어날 테지.
얼마만큼 자라면 또 분주하여야지.
더 늘려서 베란다 가득 설화로 치장하고 싶다.
늘푸른 잎에 화사한 꽃도 피우는 설화와 더불어 노년을 함께 살고지고!
이런저런 설화와의 사연이 얽히고 설키면서 어언 27년이 흘렀다.
감개무량하여 이름을 안 이 기회에 우리 인연을 이렇게 글로 남긴다.
(2018년 3월)
첫댓글 잘보았습니다 잘읽고 갑니다
여기까지 오셨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새로운 공부도하고 소지하진 설화의 유래까지 읽으니 제가
선물받은 느끼입니다
다음 새가족이늘면 분양 기대해도
될까요?
그리셨어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얼르 하나 드리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