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해도 <천사대교>
암태도 <소작쟁의기념탑>
압해도에서 암태도로 건너는 천사대교가 4월 4일 개통한 지 3개월이 되었다. 신안은 이 다리 개통으로 암태도,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 자라도가 연결되어 관광객 500만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인천대교, 광안대교, 서해대교에 이어 네 번째로 길다는 해상교량, 사장교와 현수교를 갖춘 바다다리, 육지와 섬을 잇는 연육교다. 이미 130만이 다녀갔고, 음식점 손님은 10배 이상이 늘었다는 비명이니 500만 목표는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질 거 같다.
우리나라 섬의 60%가 몰려 있다는 전남, 그중 신안군에 1004개의 섬이 있다 하여 다리 이름이 1004대교다. 8년만에 완공된 이 다리 덕분에 1시간 뱃길이 10분 자동차길로 바뀌었다. 하지만 관광객이 몰려 주말에는 1시간이 더 걸린다니 교통수단만 바뀐 것인가.
10키로가 넘는 다리는 가도가도 끝이 없이 멀게 느껴진다. 다도해라지만 바다의 다리에서 보는 바다는 깊고 멀다. 물론 다리는 인도 없는 2차선, 아름답고 산뜻해도 무서움마저 느껴진다. 두 가지 방식의 다리가 이어지니 지루하지는 않지만 무섭기는 마찬가지, 너무 길어 바다가 무섭고, 이런 다리를 놓는 인간의 힘이 무섭다.
이런 무서운 힘을 보유한 나라, 우리나라는 대단한 나라다. 3키로도 안 되는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보다 3배나 길고, 많은 섬으로 하여 풍광도 더 다채롭다. 금문교를 건너면서는 이렇게 두근거리지도 설레지도 않고 시원하지도 않았다.
다도해를 안은 아름다운 다리, 다리로 하여 더 인간에 가까워진 다도해, 세계 어떤 다리도 그 유용성과 아름다움이 비길 데 없어 보인다.
주소 : 전남 신안군 압해읍 송공리
방문일 : 2019.7.4.
하늘까지 닿을 듯한 위용이다. 압해도에서 다리로 진입하기 직전 개통을 기념하는 기념물 또한 천사대교의 위용을 잘 형상화해서 보여준다.
이 다리로 많은 섬이 뭍이 되었다. 섬 아닌 섬이 된 첫번째 섬이 암태도다. 암태도는 소작쟁의로 유명한 곳이다. 그것도 성공적으로 쟁의를 마무리한 곳이다. 추포도로 향하는 길과 팔금도로 향하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 면사무소 근처에 기념공원이 위치해 있다. 안좌도 반월도, 박지도를 잇는 명물 퍼플교를 가면서 들르기에 좋다.
위치도 좋으니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조상들의 고난을 어루만지고 새겨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더구나 한일 무역분쟁이 가시화되고 있는 요즘은 일제 탄압의 실상과 배경에 대한 이해가 더 긴요해진 시점이다.
송기숙 선생님이 비문을 썼다. <자랏골의 비가> 송기숙 선생님, 이 소작쟁의를 다룬 소설 <암태도>를 쓰신 분이니 비문 쓰기에 최적인 분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암태도 소작인들은 소작료로 소출의 7,8할을 지주에게 바쳐야 했다. 이 쟁의로 4할로 낮춰지고 그것이 전국화되었으니, 이 쟁의가 얼마나 대단한 의미를 갖는지 알 수 있다.
살인적인 소작료 부과는 사실상 지주와 일제의 합작품이다. 지주를 통해 일제는 소작인을 쉽게 통제하며 조선도 통치하고 아울러 약탈도 쉽게 하려 했다. 높은 소작료를 눈감아주고, 지주로부터 남는 쌀을 쉽사리 확보해 일본으로 빼돌렸으니, 7,8할의 높은 소작료를 물어야 하는 농민은 거의 굶주려 죽을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배불러 죽고 일한 사람은 배고파 죽어야 하는 현실, 일해도 죽고 일 안해도 죽어야 되는 참혹한 현실에서 농민에게는 항쟁 외에 다른 길이 없었다.
1923년부터 거의 1년동안 이어진 항쟁에서 지주 문재철을 옹호해 농민을 탄압한 것에서도 일제와 지주의 결탁은 확실하게 드러난다. 지주에 대한 저항은 생존권 투쟁이면서 불의에 대한 저항이고 항일운동이었다.
일제는 토지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경작권의 상속을 허용하던 오랜 관습을 없애버렸다. 경작권을 소멸시키고 소유권만 인정하게 되면서 지주의 권한은 더 막대해졌다. 경작권을 맘대로 빼앗게 되면서 '을'들의 경쟁에 몰린 소작인들이 그나마 경작권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약점을 이용하여 지주는 더 가혹하게 소작료를 높여 나갔다.
살인적인 소작료는 전면에 지주가, 이면에 일제가 있다. 암태도 소작쟁의는 전국 농민을 대표한 투쟁으로, 지주와 일제의 불의에 대한 항쟁이고, 부당하게 바꾼 제도에 대한 항쟁인 셈이다.
이들은 목포로까지 건너가 철야 단식투쟁을 하는 등 죽음도 불사하는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는 동안 전국 노동자 농민의 여론 지원을 얻게 되었다. 연일 신문에 보도되며 변호사들도 무료 변호에 나서자, 확산을 막기 위한 일제의 중재로 지주는 농민의 요구대로 합의를 맺으며 쟁의는 종결되었다. 그러나 경작권의 상속이라는 원래 권리의 회복으로까지는 나가지 못했다.
남도 지역의 쌀은 목포를 통해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그 과정에서 목포는 커나갔다. 목포 개항은 이제 100년 남짓, 일제에 의해 커진 그 흔적이 근대목포다. 목포가 근대를 강조하고 기념한다 나서면 마음이 복잡해지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암태도 소작쟁의는 단지 기념탑만이 아닌 여러가지 자연물로 기념물을 삼아 전시해 놓고 공원을 조성하였다.
역시 우리나라는 관군이 아닌 의병의 나라이다. 임진왜란 때 확실히 드러난 의병의 존재는 민족의 위기 때마다 관군을 넘어서는 힘을 발휘해왔다. 심지어 나라가 망해서도 의병의 존재는 이렇게 힘을 드러내 불의와 외세와 싸웠다.
1990년대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는 이러한 전통을 이은 현대의 의병운동이다. 중국인들은 금 모으기 행렬을 보고 자기들은 절대 안 될 일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의병의 힘이 문화적 힘으로 표출된 것이 한류다. 드라마는 민주화를, K-pop은 신명풀이를 동인으로 한다. 모두 의병의 현대적 표현이라는 말도 가능하다.
대한민국 오늘의 영광은 이러한 이름없는 수많은 의병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 영광을 감사히 누리면서 암태도 농민들의 고난과 승리를 다시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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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동했습니다. 암태도 농민들의 지치질 모르는 투지에 감동했고, 그 투쟁을 이렇게 일목요연게 전해주는 문장력에 또 한번 감동했습니다.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게 읽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는데 이렇게 긍정적으로 보아 주시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암태도는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천사다리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이중 삼중으로 착취당했던 농민들의 암울한 현실은 30년대 서정소설로는 상상할 수 없는 조선 백성의 모습이었습니다. 크기를 짐작할 수도 없는 적들과 싸워나갔던 농부들이 언제나 투지뿐이었겠습니까. 때론 아득했을 고통과 공포 속에서도 싸우면서 정의와 생존권을 위해 움직였던 것이지요. 그 고통과 투지 앞에 이제야 머리를 숙이고 왔습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