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9.(화) 10:00-13:30
강변역 지하 던킨도너츠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전용학
I.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1997년 정승권등산학교 졸업, 2000년 ER 6기 졸업 이후 현재까지 20여년 이상 전문등반가의 길을 걷고 있다. 그 과정을 압축한다면?
산빛산악회 소속으로 트레드클라이밍(Traditional climbing의 준말)을 즐겼다. 98년에 암벽등반에 정식 입문하였다. 나의 등반은 ER졸업 후, 피크를 이루었다. 특히 인공등반은 졸업 후 3-4년 동안 정점을 이루었던 것 같다. ER초대강사였던 최승철, 김형진이 개척한 길, 그들이 갔던 길을 따라가는 것을 목표로 벽에 도전했다. 하다 보니 등반의 꽃은 개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악 소토왕길, 적벽 2836루트, 설악 4인의 우정길 등을 개척하였다.
2000년에 ER을 졸업하고 인공등반 실전에 몰입하는 과정에서 곧바로 이듬해 강사가 되었다. 빠른 진도인 편인데, 당시 ER의 상황은 어땠는가?
생각해보면 내가 졸업할 당시가 동문회라는 실체가 드러난 시기 같기도 하다. 내가 최승철, 김형진의 발자취를 따라, 인공등반 대상지를 찾아 나서면서 최희준, 남인우, 전재석, 박건(당시 강사), 김선영 등과 함께 몰려다니며 등반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자연스럽게 동문들의 모임이 활성화하지 않았나싶다. 특히 동문회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한 최희준 선배는 동문회와 관련하여 만나볼 필요가 있다.
아마 이렇게 열심히 등반하는 모습을 보고 김형일, 김점숙 등이 나를 추천하지 않았나싶다. 2002년 빅월페스티벌이 시작되었는데(등산학교 연혁에 의하면 당시 대회명은 ‘제1회 익스트림라이더배 전국 AID클라이밍대회’였다), 첫 대회 때부터 세팅작업에 참여했던 걸로 기억한다.
ER강사를 하면서 KMG(Korea Mountain Guide)를 결성하여 등반교육가의 길로 들어섰다. 계기는 무엇인가?
KMG는 2006년에 개교했다. ER멤버였던 고경한 부부, 김홍수 선배 등 6명으로 시작했다. 계기는 2004년 김형일 강사의 소개로 혜초여행사에서 일본북알프스여행 가이드를 한 일이었다. 가이드를 하면서 안전문제, 소규모등반의 중요성, 가이드의 능력에 따라 등산의 질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내가 하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2006년 울산팀 유럽 알프스 가이드 경험은 나에게 이런 확신을 주는 계기였다. 등반에 대해 알지 못하는 세 사람을 장시간에 걸쳐 교육하고 7월에 알프스에 갔는데 모두 안전하게 마터호른에 올랐다.
등반가의 성공에 작용하는 중요한 요인은 주변 환경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산 환경은 자연스럽게 알파인등반에 있어 강점을 가지게 한다. 충분한 적설량, 기후 등 말이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이 대상지에 대한 사전 조사 등 공부이다. 한국은 이런 부분에서 아직 미흡해 보인다. 조금만 공부하고 가면 모두 다 성공할 수 있는 루트를 실패하고 돌아오는 경우를 보면 아쉽다. 나는 가이드로서 이런 부분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어렵게 시간을 내고, 돈을 들여서 가는 사람들에게 한 번의 기회는 아주 중요하다. 나는 나에게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오랜 시간을 등반 전선의 일선에서 등반가와 교육자로서 삶을 살았다. 그리고 현재 KMG는 개인이 운영하는 교육기관으로서 자타가 공인하는 위치에 있다(KMG는 2020.05.20.일 현재 341회의 회원등반을 이어오고 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돌이켜보건대 나는 산에 입문한 이후 한 번도 후퇴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여기에는 산에 대한 열정, 사랑이 전제하였겠지만 가이드로서 교육자로서 등반가로서 시대에 뒤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등반 도전과 장비사용, 시스템의 최적화 등을 위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먼저 KMG의 리더(본인)가 단일화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점일 수도 있지만, 개인등산학교로서는 장점일 경우가 더 많다. 교육시스템을 등반흐름에 맞춰, 때론 교육생 개별에 맞춰 유연하게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이다. 나는 내가 리더로서 초심을 잃지 않는 한, KMG가 크게 흔들리지 않을 거라 본다. 여기서 초심은 시간투자, 산에 대한 열정, 가이드로서 안전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 운영비의 최소화 등을 가리킨다.
두 번째는 소그룹을 유지해왔다는 점이다. KMG를 좀 더 확대할 기회는 여러 번 있었지만 소그룹을 고수했다. 예를 들어 해마다 실시하는 안전등반세미나의 경우 외부 홍보를 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KMG교육의 연장선에서, 일종의 A/S개념으로 KMG사람들을 위주로 진행해왔다.
셋째로 부수적인 문제이지만 KNG의 등반뒤풀이문화도 영향이 있다. 우리는 등반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시간이 대략 8시 전이다. 예전의 산문화라면 뒤풀이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짧은 뒤풀이는 요즘 추세에 맞는 것 같다. KMG에는 비교적 젊은 연령대의 사람들이 적응을 잘 하는 편인데 이런 뒤풀이 문화의 영향도 있을 것 같다.
II. 우리는 빨라야 한다.
요즘 ER 동문모임(팀익스트림라이더스)에서 예전만큼 인공등반이 활성화하지 않고 있다. 뭔가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물론 자유등반은 많이 하지만, 인공등반교육과 저변확대를 꾀하고자 하는 ER로서는 난감한 부분이다. 여기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하나의 등반사례로 답하겠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등반이라고 여기는 2006년 중국 쓰구냥 야오메이봉(6,250m) 남벽 신루트 개척 등반에 갔을 때이다. 우리 팀은 초입부 피치에서 오버행을 만났다. 그 부분을 넘지 못하면 이후 등반은 무(無)인 상황이었다. 그때 나는 버드빅 두 개를 설치하고 인공등반으로 거기를 돌파했다. 이후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 돌파 덕분에 우리는 6000M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인공등반의 최정점에 있었다. 만약 내가 인공등반을 훈련하지 않았다면 그 등반은 존재할 수 없었다. 비록 정상에 이르는 칼능선 앞에서 후퇴했지만 이후 이 등반은 매우 의미 있는 등반으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 하강할 때도 마찬가지다. 하강점을 만드는 기술은 인공등반에 익숙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것이 인공등반이 필요하고, 열심히 훈련해야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더 갈 수 없는 상황에서, 또 위험한 상황에서 인공등반 기술은 길을 열어준다.
좀 더 좁혀 물어보겠다. 팀익스트림라이더스에서 인공등반이 소홀하게 된 데는 한정된 등반지 등의 외부적인 문제도 작용하겠지만 아무래도 인공등반에 대한 식상함 등 내부적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해서인 것 같기도 하다. 인공등반에 어떤 새로운 지향점이나 목표가 있을까?
나도 그 부분을 고민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손정준씨가 앨캡 노즈를 10시간에 돌파했다. 그런데 우리 ER사람 중에 5.13수준의 클라이머가 도전한다면 어땠을까? 단정할 수는 없지만 장비설치, 시스템 등 인공등반에서 배운 기술을 접목한다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본다.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 도전은 우리의 시스템을 점검하게 하고 더 최적의 스타일을 만드는 단초가 된다. 즉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도 10년이면 효율성을 점검해야 한다. 인공등반을 하는 사람이 자유등반도 더 빨리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ER이 꾸준히 도전한다면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더 좁혀보겠다. 그렇다면 그런 식의 변화를 인공등반에 한정해서도 꾀할 수 있는가?
나는 ‘속도’를 제안한다. 물론 안정적인 등반을 해나가는 것을 막을 이유도 막아서도 안 된다. 그러나 ER이 인공등반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속도’라는 개념을 접목해야 한다. 이것이 최근 등반의 추세이기도 하다. 이는 안전하고도 깊이 연관해있다. 우리가 알다시피 기후 변화 등 급박한 상황에서 시간은 생명과 관련 있다. 시간을 줄이면 그만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물론 안전한 시스템을 전제하고 하는 말이다. 나는 ER이 ‘속도등반’이라는 개념을 고민해보길 바란다. 그러면 모든 등반 시스템에 대한 재점검도 자연히 따라오고, 이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인공등반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를 줄 것이다.
향후 계획은 어떤가?
이제는 공인으로서 책임감이 더 막중하다. 요즘 한국에서 늘어난 일본 산 등반에 나름대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일본, 유럽 등지의 산행을 안전하게 이끄는 한국을 대표하는 마운틴 가이드로서 자리 잡고 싶다. 그러나 KMG를 제외하고 다른 계획을 세울 수는 없다. 나를 믿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여 기술을 전수하고 산을 알리는데 노력하겠다. 개인적으로는 작년에 인도에 있는 산을 초등할 계획이 있었는데 무산되었다. 기회가 된다면 이를 실현하고 싶다.
점심을 같이 하자는 나의 말을 뒤로 하고 전용학은 훌쩍 일어났다.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2005년 즈음 되었을까. 지금 돌이켜보니 전용학이 KMG를 만들 즈음이었다. 서초동 지하, 현재 대학산악연맹이 있는 자리에 터줏대감처럼 앉아 노닥거릴 때였다. 지금은 양양 산속에서 트리클라이밍 교육을 하는 김경태 선배가 바짝 마르고 선머슴같이 생긴 누군가를 데리고 왔다. 그는 우리 대장과 한참동안 매듭법이니 하는 산 이야기를 했다. 열띤 토론을 하고 그가 간 후, 대장이 내게 말했다. “진지한 친구야, 현섭이도 알 필요가 있어. 전용학이라는 데 기억해라.”그러나 그 후 나는 그를 만나지 못했다. 사는 길이 달라서였을 게다. ER에 와서 그를 다시 봤다. 그는 여전히 산에 자신을 건 사람이었고 그만큼 진지한 사람이었다. 그가 오늘 던진 ‘속도’라는 개념이 자꾸 맘에 걸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200521)
첫댓글 예전에 저도 전용학에 대한 글을 썼지만, 다시 그에 대한 글을 보완/첨가하여 쓰자면 1박 2일도 모자랄겁니다.
등반과 등반시스템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 지속적인 트레이닝과 자기계발, 겸손/겸양적인 마인드,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일관적이고 진정성있는 태도. 이런 것들이 클라이머 전용학을 이루는 속성들이 아닐까요!
예전 정승권등산학교 채육대회에서 전용학대표가 자랑스런 동문인 상을 수상한 적이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ER인상을 제정한다면 첫 번째 수상자로 전용학이 맞지않을까 싶네요!
말나온 김에 매년 송년회 자리에서 '올해의 ER인'상을 수상하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네, 올해의 ER인 상을 공로상 등과 연계하여 시행할 수 있는 방안을 집행부에서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제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