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지식백과] KFC [Kentucky Fried Chicken] (세계 브랜드 백과, 인터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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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는 미국에 본사를 둔 패스트푸드 체인점으로 켄터키프라이드치킨(Kentucky Fried Chicken)으로 유명하다.
세계적인 외식업체 얌브랜드(YUM! Brands, Inc)의 자회사이다
대한민국에서는 1984년 두산그룹과의 합작으로 진출, 서울 종로에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이라는 이름으로 첫 매장이 생겼다.
[네이버 지식백과] KFC [Kentucky Fried Chicken] (세계 브랜드 백과, 인터브랜드)
2014년 기준 KFC의 모회사인 얌브랜드에는[ KFC, 피자헛, 타코벨]이 소속되어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1984년 두산그룹과의 합작으로 진출, 서울 종로에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이라는 이름으로 첫 매장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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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홈페이지에서 발췌
[65세에 전설이 된 커넬 샌더스]
65세의 노인, 커넬샌더스에게 남은 것이라곤 중고 포드 승용차와 가게를 처분하고 남은 단돈 105불,
그리고 그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11가지 허브 비밀양념”을 이용해서 만든 후라이드 치킨 조리법이 전부였다.
며칠 고민한 끝에, 그는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오리지날 래서피 후라이드 치킨을 다른 식당에서 메뉴로
추가해 준다면 그 제조방법을 가르쳐주고 치킨 한 조각당 몇 센트씩 로열티를 받아내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남들은 은퇴를 생각할 나이에 커넬샌더스는 중고차에 허브와 스파이스 그리고 압력솥을 싣고 미국 전국의
레스토랑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쉬울 리가 없었다. 더욱이 당시는 프랜차이즈 사업에 대한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매일 차 안에서 잠을 지새우며, 홍보용으로 만든 후라이드 치킨 밖에 먹을 수 없는 힘든 나날이었다.
하지만 커넬샌더스의 11가지 양념 비법으로 만든 후라이드 치킨을 한번 맛본 사람들은 그 맛에 매료되었고,
커넬의 치킨은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KFC는 커넬이 처음으로 KFC 치킨을 팔기 시작한 지
60년이 지난 2011년말에는 전세계 약 110여개국 17,000점이 넘는 매장을 구축하는 유례없는 레스토랑이 되었다.
65세부터 시작된 KFC의 전설, 커넬샌더스의 일생은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보람된 삶이었다.
[샌더스 카페의 성공과 실패]
또 한번의 실패에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1930년 켄터키주 남서부 ‘코빈’이라는 마을에서 새로운 주유소를
시작한다. 그의 서비스 경영에 대한 소문을 들은 쉘오일(Shell oil)에서 주유소 경영을 부탁한 것이다.
덕택에 초기 자본 없이 경영에 뛰어들 수 있었다. 더욱이 커넬의 새 주유소는 켄터키주의 주요 도로인 국
도 25호선상에 위치하고 있었다.
새로운 주유소는 미국의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거의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허기진 상태에서 주유소를 찾는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자동차에 기름이 필요하듯이
손님에게는 허기를 채워줄 만한 식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에 그는 주유소 귀퉁이의 작은 공간을
이용하여 테이블 하나와 여섯 개의 의자를 마련하고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커넬샌더스의
“샌더스 카페”가 첫 선을 보이게 되었다.
주유소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청결한 식당과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샌더스 카페”는
곧 여행자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다. 식당이 유명해지자, 주유소를 옮겨 좀 더 큰 식당을 차렸다.
여행자들 사이에선 “샌더스 카페에 들러야 제대로 된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1935년 45세의 커넬이 마을의 유명인사가 되어, 켄터키 주지사로부터 커넬(Colonel) 이라는 명예 대령의
칭호를 받은 것도 이 때의 일이다. (이는 영국에서 나라에 위대한 공을 세운사람에게 백작이나 공작의 칭호를
내리는 것과 비슷한 제도이다.)
얼마 후 커넬은 예상 외로 바빠진 레스토랑 일에 전념하기 위해 주유소 사업을 포기한다. 그리고 곧이어
‘여행자들이 안심하고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결심을 하고 레스토랑 옆에 모텔을 지었다.
모텔 역시 시대를 앞서는 서비스와 청결함으로 번창 일로를 걸었다.
[KFC의 탄생과 전설이 되기까지]
물론 어려운 일들도 많았다. 1939년에는 레스토랑과 모텔이 모두 불타버렸다. 하지만 커넬은 또다시 일어나
1941년 같은 자리에 142석의 대규모 ‘샌더스 카페’를 세운다. 이번에는 모텔은 없이 레스토랑만으로 다시 시작했다.
시련도 또다시 몰려왔다. 1950년에는 샌더스 카페가 위치한 국도 25호선에 새로이 우회도로가 만들어져,
손님이 격감한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일년이 채 안되어 새로운 국도 75호선의 추가 건설 계획도 발표되었다.
거듭된 실패에도 오뚝이처럼 일어서온 커넬이었지만 국도 75호선 계획 발표에는 좌절했다. 국도 75호선 건설 완료
이전에 샌더스 카페를 처분하고 은퇴할 것을 결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은퇴 이후 연금이 월 10달러도 채 안 된다는
사실에 다시 다른 길을 모색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커넬은 중고 포드 승용차에 압력솥을 싣고 숙식을 해결하며 “11가지 허브 비밀양념” 조리법을 설파하기로
결심하고 길을 나섰다. 커넬의 손을 처음 잡아 준 사람은 옛 친구 피터 허먼이었다. 커넬의 치킨을 맛본 피터는
평범해 보이던 커넬의 치킨에 매료되었다. 피터는 치킨 한 피스당 4센트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커넬과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Kentucky Fried Chicken)이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미국 남부의
손님을 대접하려는 마음의 이미지를 가장 잘 나타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최초의 KFC가 탄생했다.
레스토랑 사업 경험이 풍부했던 피터 허먼은 이후 미국 각 지역에 200점포가 넘는 레스토랑을 운영하게 되어,
KFC 최대 프랜차이즈 사업가로 변신한다. 이후에도 커넬은 꾸준히 승용차 방문 영업을 통해 프랜차이즈점을
폭발적으로 늘려갔다. 하지만 청결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원칙이 있었다. 자신의 요리를 제공하는데 어울릴 만한
청결한 식당 외에는 절대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지 않았다. 청결을 상징하는 커넬의 흰색 양복과 나비넥타이,
지팡이 차림도 이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1964년 1월, 75세의 커넬은 KFC를 존 브라운 주니어와 잭 머시에게 물려주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
하지만 커넬은 KFC의 심볼로서 이후에도 지칠 줄 모르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흰색 양복과 흰 수염,
너그러운 미소는 KFC의 청결과 친절을 나타내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징이 되었다.
1980년 12월,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커넬은 유니폼을 차려입고 미국내 KFC 프랜차이즈점을 돌며
교육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꿋꿋이 일어나던 커넬, 지금 그의 레스토랑 KFC는 2011년말 세계 약 110여 개국,
17,000점이 넘는 매장을 구축하는 유례없는 레스토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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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홈페이지에서 발췌
커넬 할랜드 샌더스
오리지날치킨(커넬이 최초 개발한 압력솥에 의해 만든치킨)
핫크리스피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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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메뉴 외에도 버거/사이드메뉴/음료 운영
커넬 할랜드 샌더스는 1890년 9월9일에 태어났다. 그의 나이 65세가 되던해부터 그는 활발하게
치킨 프렌차이징을 시작했다.
이제는 그의 치킨 프렌차이징이 세계에서 몇안되는 큰 외식산업체로 성장했다.
그리고, 커넬 샌더스는 패스트푸드 서비스업계의 선구자로서 기업가정신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매년 20억회이상, 맛좋은 KFC 메뉴가 팔리고 있다.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약 82개국의 나라에서 KFC를 맛볼 수 있다.
커넬이 6살 때 그의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의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일을 했어야만 했고,
어린 커넬은 3살짜리 남동생과 어린 여동생을 스스로 돌봐야만 했다. 이런 연유로 그는 집에서
요리를 자주 하게 되었다.
그가 7살이 되던 해에는 웬만한 요리는 다 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가 10살 되던해, 농장 근처에서
월 $2 (약 2,300원)을 받으며 일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커넬이 12살때, 그의 어머니는 재혼을 했고 그는 핸리빌 (Henryville, Indiana)에서 떠나
그린우드 (Greenwood, Indiana)로 떠났다. 그 후 그는 몇몇개의 직업을 가지며 그의 젊은시절을 보냈고,
결국 철도소방원이 되었다.
그는 법도 배웠으며, 보험외판도 했으며, 오하이오강의 유람선에서도 일했으며, 타이어도 팔았고,
주유소(편의점이 딸린)도 경영을 했다.
그가 40살이 되던 해, 코빈(Corbin, Kentucky)에서 배고픈 여행객들이 주유소에 들렀을 때 요리를 해주기 시작했다.
레스토랑을 운영한 것은 아니었고, 그의 식탁에서 여행객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것이었다.
점점더 그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자, 그가 운영하던 주유소 건너편에 142명이 앉을 수 있는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후 9년이상의 기간동안 11가지 맛좋은 양념을 완벽하게 완성시켰으며,
그 비법은 지금까지도 유지되어 오고 있다.
샌더스의 유명세는 점점더 성장했다. 주지사 루비 라푼 (Ruby Laffoon)은 그의 켄터키주의 대표적인 요리로
그의 치킨을 승화시킨 것을 기려 그를 켄터키주의 명예 대령 (Colonel: 커넬)으로 칭하였다.
(영국에서 나라에 위대한 공을 세운사람에게 백작이나 공작의 칭호를 내리는 것과 비슷한 제도임).
그리고, 1939년도에 그의 첫번째 레스토랑이 던칸 하인즈 "Adventures in Good Eating"
(맛있는 음식점등을 소개하는 잡지)지에 실리게 되었다.
1950년대 초, 새로운 고속도로가 Corbin을 가로질러 가게 되었다.
그의 사업을 접어야 함을 안 후, 그는 그의 사업을 경매에 넘겼다. 사회보장기금
$105로 그의 생활을 근근히 이어 가게 되었다.
그의 튀김 닭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그는 1952년 치킨 프렌차이징 시스템을 시작했다.
그는 차를 타고 다니며 여러도시를 돌며 그의 치킨을 레스토랑의 요리사와 직원들에게 맛 보였다.
그의 치킨맛을 좋아하는듯 하면, 단순히 악수만으로 계약을 성사시켜 닭 1마리당 5cent (약 57원)정도의
로열티를 요구하게 되었다.
1964년경, 그는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하여600개이상의 매장을 프렌차이즈로 만들었다.
1980년도에 켄터키주지사가 된 존 브라운에게 그의 프렌차이즈 회사를 2백만달러에 팔았다.
커넬의 KFC를 대변하는 인물로 계속적으로 남게 되었다. 1976년도에는 커넬이 전세계에서 2번째로
인정받는 유명인으로 조사되었다. 새로운 주인아래에서의 KFC는 좀더 빨리 성장하게 되었다.
1966년도에 주식을 공개하게 되었다. 그리고, 1969년도에는 NYSE (뉴욕주식거래장)에 상장 되었다.
1971년도에 회사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매장이 3,500개이상으로 전세계적으로 퍼져있을 때,
휴브레인사(Heublein사)에서 2억 8천 5백만 달러(3,277억원)에 인수하였다.
KFC는 R.J.Reynolds사의 보조를 받게 되었으며, 1982년도에 Heublein사는 RJR Nabisco에 의해 인수 되었다.
1986년도에 RJR Nabisco사에 소속된 KFC는 Pepsi 에게 약 8억 4천만달러(9,660억원)에 인수 되었다.
1997년 1월, 펩시코사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몇 개의 레스토랑을 개인 회사로 분배시켰다
(KFC, Pizza Hut, Taco Bell). Tricon (Triple Concept)이란 세계에서 가장 큰 레스토랑 시스템을
소유한 회사가 인수 하였다.
KFC, Pizza Hut, Taco Bell을 포함하여 약30,000개 이상의 매장을 전세계 100여개국에 소유하고 있다.
1977년 미국의 식음료업체인 펩시코사에 인수되었고, 2002년에 펩시코사의 레스토랑 부문이
얌브랜드(YUM! Brands, Inc) 주식회사로 분리되었다.(지식in에서 펌)
[네이버 지식백과] KFC [Kentucky Fried Chicken] (세계 브랜드 백과, 인터브랜드)
2014년 기준 KFC의 모회사인 얌브랜드에는[ KFC, 피자헛, 타코벨]이 소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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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할아버지의 어려웠던 시절 버팀목---좌우명...
★ 할때까지...
★ 될때까지....
★ 이룰때까지.....
KFC를 만든 커넬 할랜드 샌더스의 좌우명(사명) 이였답니다.
65세의 할아버지 나이로 이런 거대한 사업을 만들수 있었던것도...
이 좌우명이 어렸웠던 삶에 버팀목이 되었기 때문일겁니다..
우리도 꼭!!!! 나의 사명과 좌우명을 만들어 어디든 ( 매일매일 보는 곳에..) 탁 붙어놓고, 화이팅하시길..
우리 횐님들 중에 65세는 아직 없는 듯 합니다...모두들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1008번의 실패와 1009번째의 성공이라는 전대미문의 맛과 사업을 향한 전진~!!!!
우리가 반드시 본받아야 할것입니다.
***치킨홀릭(치킨hall릭)***
첫댓글 저도 열심히 살려고합니다. 귀감이 되네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