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각 가정에서 터져 흐르는 긴박한 아나운서들의 목소리가 온 집안을 긴장감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코스피, 나스닥, 코스닥을 비롯한 전세계 주가가 최초로 동시 대폭락을 기록하였습니다. 전세계 오일가격이 폭등하고, 물가가 빠른 속도로 치솟고 있습니다."
직장을 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출근을 하지않고 슈퍼와 마트등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마트을 가득 매우고 다량으로 물건들을 사재기했다. 이번 경제위기가 2차 대공황이라는 것을 모두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남 중심 빌딩의 스크린에서 아나운서가 위기가 고조된 목소리로 현재 경제 위기상황을 보도했다.
"이번 위기는 메가톤급 쓰나미에 해당할 정도로 거대합니다. 한국 삼성, 엘지, 현대를 비롯한 국내 30여개의 대기업이 부도 신청을 냈으며, 일본의 도요타, 쏘니를 비롯한 수십여 기업과 미국의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쉐보래 등이 부도을 맞고 폐업을 신청했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이 채무불이행으로 부도를 맞았으며, 아시아의 모든 신흥국들, 그리고 중국 마저 채무불이행에 대한 부도를 신청했습니다. 현재 수많은 마트로 사재기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번 상황을 수습하고자 IMF에서 모든 통화를 하나의 통화로 전환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반대 의견 때문에 전세계 통화시스템의 동결과 통합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듯 합니다."
각 은행에서는 은행의 부도를 1차적으로 막기 위해 모든 은행의 합병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 제 1 금융권들이 그래도 가장 신용이 나은 국민은행의 이름으로 병합을 실시했다. 그리고 인출사태가 지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범국가적인 차원으로 베일인 제도를 뉴스를 통해 국민들에게 통보를 했다.
뉴스에서 경제부차관이 나와서 새로운 금융제도에 대하여 발표를 했다.
"국가의 부도가 기정사실화 된 상황에서 본원은행인 한국은행은 제 1 금융권 통합을 실시하고, 뱅크런의 전 계좌 인출사태를 막기 위해 미연에 실시한 베일인, 예금자손실부담 제도를 시행하였습니다. 다만 국민의 사유재산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IMF에서 추진하는 암호화폐에서 기축통화가 정해지는 시기에 예금자손실부담으로 국가부도를 막는 공신의 국민들께 큰 혜택이 갈 것을 약속 드리는 바입니다.“
예금자손실부담, 베일인 제도는 일종에 은행 안에 있는 국민의 돈을 국가에서 관리하며 은행의 부도를 막는 데 쓰는 제도였다. 지난 1997년 금 모으기로 싼값으로 금을 매도하여 빚을 탕감하는 데 쓰였던 점이나, 평화의 댐을 건설한다고 모금을 하여 국민의 돈을 갈취한 일이나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는 거의 반 강제적인 것이었으며, 이미 돈을 완전히 인출한 사람과는 관계없이 은행에 예금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추후에 어떤 혜택이 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당장에 돈이 없는 사람들은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은행에서 돈을 찾지 못하자 거리로 나와 피켓을 들고 폭력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경찰 군병력들이 버스를 끌고 그들의 데모를 제지하고 물 대포와 고무총을 난사하고 세종로와 여의도대로, 강남 대로로 촛불 시위 행렬과 폭력 시위 행렬이 나뉘어 내전을 방불케 하듯 국가에 거대한 대규모 폭력 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수한은 새벽부터 눈을 뜨고 있었다. 꿈이 워낙 실제같아서였다. 하지만 그의 현실은 꿈속 유토피아와 달랐다. 그는 당장 생존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태였다.
문득 수한은 예전에 세계 대공황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을 당시 달러와 금을 일부 숨겨 놓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는 결혼하면서 이사 올 때 그것을 챙기는 것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님 집에 비밀 장소에 고스란히 숨겨져 있을 금과 달러를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내는 여전히 세상 모르고 잠에 골아 떨어져 있었고, 인서 역시 방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는 시계가 5시를 가리키는 것을 확인하고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차키를 챙긴 뒤 현관 밖으로 나섰다.
부모님 집은 그가 사는 아파트에서 그닥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는 차로 10분 만에 부모님 집에 도착하여 벨을 눌렀다.
새벽 잠이 없으신 아버지가 문을 열어주었다.
"아니이른 새벽에 왠일이냐?"
"상황이 급한 것 같아서요. 이런 상황에 아무것도 준비된게 없거든요."
"그래도 침착해야지. 그러다가 병난다. 일단 올라가자."
"네."
3층 단독주택 집으로 들어간 수한은 새벽부터 움직여서 아버지, 어머니까지 긴장하게 만들어 놓았다. 수한의 어머니는 둘째 아들의 출현에 눈을 비비며 대하고 있었다.
"수한이야. 새벽부터 왔냐? 새아기는?"
"자고 있어요."
"인서도 잘 있고?"
"그럼요. 그런데 전 잠이 안오네요."
"그래 아버지와 얘기해봐라. 따뜻한 꿀물이라도 타줄게."
"네."
일단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기 위해 응접 테이블에 앉은 두 부자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 혹시 금같은 것 모아놓으신 것 없어요?"
"금이야 예전에 IMF 겪은 뒤, 2008년도 미국 부도사태 있고나서도 조금 사뒀던 것이 있긴 하지."
"다행이에요. 저도 이번에 대공황 겪는다고 루머 돌때, 루머가 사실이 되긴 했지만, 아버지 집 제 옛날 방 안에다가 금이랑 달러를 사뒀었거든요."
"정말이냐? 그런데 당장에 식량 위기가 올 수도 있으니 금이 있다고 끼니를 해결 할 수도 있는 것도 아니지 않냐?"
"그건 그래요. 그래도 금이라도 챙겨놔야죠."
"그래. 일단 금을 모아보자. 한 일년 먹을 것은 집에 비축이 되어 있으니 그때까지 국가에서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겠냐?"
"그럼 저희 식구들 다 여기로 와야겠네요?"
"너만 있는게 아니고, 네 형도 있으니 다 오게 되면 집이 미여터질텐데."
"아니면 형이나 나 둘 중에 하나는 상황 봐서 처가댁으로 가서 힘을 합치는 게 나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 그럼 형이랑 한번 상의해보거라."
그때 어머니가 꿀물을 탄 차를 가져왔다.
"감사합니다. 엄마도 같이 드시죠."
"아니다. 나는 더 잘란다. 얘기하고 가거라."
"네."
수한은 차한잔을 살짝 들이키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은행도 뱅크런을 막으려고 영업정지 상태고, 완전 먹튀 아닌가요?"
"그러게. 국민들이 스스로 어떻게 생존하라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식이면 국민들이 모여서 청와대 급습하고 쿠테타라도 일으켜서 정부 돈 국민들에게 나눠줘야하는 거 아닌가요?"
"이녀석아 그게 무슨 소리냐? 그러다가 진압대에게 맞아 죽어."
"하긴. 놈들이 이런 식으로 경제위기 부추겼으니까 공권력 강화하고 국민 잡는 대원들 확대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겠네요."
"그건 그렇고. 일단 네가 숨겨놨다는 금이나 한 번 찾아봐라. 그리고 집에 돌아가고. 알았지?"
"네. 아버지."
수한은 그의 방에 들어가서 온갖 박스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디에 금을 숨겨놨는지 생각이 안나서 한참 생각을 하다가 농 안 쪽 깊숙한 곳을 뒤져보았다.
그리고 옷장 안쪽 벽에 붙어 있는 탈취제 망을 꺼내보았다.
그 안에 복주머니 형태의 검은색 주머니 하나가 걸려 있었다.
"아! 그렇지."
그는 금을 그 주머니에서 확인했다. 당시 10그램 짜리를 열 개 정도 샀었던 기억이 났다. 역시 십그램 골드바가 열개가 있었다.
'일단 백그램 확보했고, 달러를 찾자."
그는 달러를 숨겼을 만한 곳을 연상하며 천천히 서랍장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책들도 확인해보았다. 그런데 문득 오래 전 대형 사전이 눈에 띄어서 꺼내보았다.
오래된 대형사전 겉포장 박스가 스카치 테이프로 밀봉되어 있었다. 그는 칼로 스카치 테잎을 끊고 사전을 박스에서 꺼내 펼쳐보았다.
역시 그 안에 달러가 삼만달러나 들어 있었다.
"아싸!"
그는 삼만달러와 백그램 금을 챙긴 뒤 방으로 가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찾았어여."
아버지는 방에서 나오며 물었다.
"그래 얼마정도 되냐?"
"금은 백그램, 달러는 삼만달러정도 되요."
"지금 대공황사태라 돈의 양은 의미가 없다. 금은 잘가지고 있거라."
"네. 아버지."
그는 아버지의 배웅을 받고 다시 집을 나와서 차로 갔다.
수한은 다시 한 번 달러와 금을 확인한뒤 가방 속에 잘 넣어두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벌서 아침 7시가 다 되어 있었다.
아침부터 집을 비운 탓에 이지가 막 전화를 걸려는 순간에 수한이 집으로 들어왔다.
"여보! 내가 금이랑, 달러를 구해왔어."
"정말이야? 어디서?"
"옛날에 부모님 집에 숨겨놨었지.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당시 루머가 하도 많이 돌아서 불안해서 구했었거든. 결혼하고 까맣게 잊고 있었네."
"잘됐다."
"당신은 뭣좀 가진 거 없어?"
"난 이런 상황이 올지 몰라서 준비를 못했어. 현금 조금 가진 것 밖에."
"현금 얼마가지고 있는데?"
"몇 십 만원."
"큰일이네. 처가집이랑 한번 통화해봐."
"알았어."
그때 신수한의 핸드폰으로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나다. 아버지다."
"네. 아버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전화한거다. 지금 집에는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식량은 있지만 시골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를 마냥 둘 수가 없구나. 그러니까 시골로 가서 당분간 지내야할 것 같아. 시골 네 할어버지와 할머니 집으로 가서 거기에서 일을 도와드리면서 지내자. 그러니 새아기에게 잘 얘기해서 시골에 갈 방법을 찾아보거라. 우리는 지금 차비 다 되었으니까."
"그럼 저는 이지랑 상의해보고 연락드릴게요."
"그래. 우리는 지금 출발한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수한은 이지에게 물어보았다.
"인서를 데리고 시골로 갈까? 거긴 집도 넓어서 우리랑 형네 집까지 같이 들어가도 방이 남으니까."
"그래?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어떻하고?"
"장인어른이랑 장모님은 시골에 땅이나 집이 있으시니?"
"아니. 서울 집이 다야. 시골에 집없어."
"이거 큰일이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한번 여쭤봐. 어떻게 하실 건지도."
"전철타면 한 시간이면 가는 거리인데, 가서 상의해보는 건 어때?"
"그래. 그런데 전철이 운행할까?"
"무슨 소리야. 국가 부도났다고 전철이 멈추겠어?"
"우선 전화를 드려보는 게 순서인 것 같은데?"
"알았어."
이지는 휴대폰을 들고 그녀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그녀의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이지야. 큰일이구나."
"엄마. 당장 식량 문제도 있고, 현금이나 달러, 금 같은 거 모아둔 거 없어?"
"금은 조금 있는데, 얼마 안돼. 그리고 일단 식량은 한 반년치는 되는 것 같은 데, 가스만 안 끊기면. 버틸 수는 있을 거야."
"엄마 수한씨 시골집에 가면 한동안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는데, 어떻하지?"
"너는 그렇게 해라. 운재랑 니 아빠랑 방법을 찾아봐야지."
"알았어. 나중에 다시 전화 걸게."
전화를 끊은 이지는 수한에게 그녀의 생각을 말했다.
"자기 아버지 시골 가시면 한동안 자기 부모님 집에 식량으로 버티면서 엄마, 아빠 상황도 같이 지켜보다가 서로 돕는 방향으로 하는 건 어때?"
수한은 마음이 급했지만, 급하다고 일을 잘 풀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 같았다. 그리고 당장 시골에 사람들이 몰려가서 농사를 짓는 상황도 바로 적응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나는 형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할 것 인지 물어볼게."
수한은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형. 아버지 시골 가신다는데 같이 가기로 한거야?"
"수한이야. 나는 니 형수랑 장모님 시골로 내려가기로 했어. 네가 아버지랑 어머니 모셔야 할 것 같아."
"나도 지금 아내가 장인, 장모님을 두고 갈 수가 없다고 해서. 그냥 가기는 좀 그런데."
"그래? 일단 알아서 움직이자. 상황도 지켜봐야하니까."
"정부에서 언론으로 공표하기까지 했는데, 답없는 거 아니야?"
"그래도 지켜봐야지."
"알았어."
수한은 전화를 끊고 다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일단 저는 여기 장모, 장인이 계셔서 그냥 가기도 그래요. 상황보고 시골에 가는 방향으로 하는데, 당분간 아버지 어머니 집 음식좀 가져와서 먹어도 되죠?"
"그래? 음식을 왠만한 건 다 챙겨서 가고 있는데. 지금. 어쩌지?"
그때 옆에 있던 어머니가 전화를 바꿔달라고 하며 인계를 받고 말하기 시작했다.
"수한이야. 집에 가면 김치냉장고에 김치가 있고, 창고에 쌀 세 포대는 남겨놨다. 열쇠있지?"
"열쇠 있어요."
"그럼 그거 가지고 가서 당분간 챙겨먹거라."
"알겠어요. 조심히 내려가세요."
"그래."
전화를 끊은 수한은 이지에게 말했다.
"일단 장인, 장모님도 방법 생기고 문제도 하나 하나 해결하시고, 우리도 여기서 버텨도 되면 최대한 버텨보자. 만약 그게 힘들면 시골로 가서 농사라도 지어서 서로 나누어 먹기라도 해야지."
"응."
수한은 이지를 붙들며 다시 한 번 당부했다.
"이럴 때 일 수록 서로 힘을 합쳐야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거야."
"알았어."
"나는 지금 부모님 집에가서 음식을 가져올 테니까. 자기는 인서 잘 보고 있어."
"응."
아파트에서 차를 끌고 도심 밖으로 나온 수한은 은행마다 몰려있는 사람들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제 2금융권인 저축은행 앞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도로 밖까지 밀려나올 정도였다. 차들은 사람들 때문에 중앙선을 넘어서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고, 그로인하여 도로 위의 정체가 심해지고 있었다.
수한 역시 1금융권에 돈이 1억가까이 있었지만, 그 돈을 찾기는 힘들 것 같았고, 달러를 모아둔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중이었다.
그는 부모님 집에서 음식을 가지러 갔다가 쌀과 물, 그리고 김치냉장고의 반찬을 챙기려고 집안을 돌아다니던 중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미 예전에 아랫층 임차인도 모두 다 나가고 텅빈 집 안들을 돌아다니다가 옥상으로 올라가보았다. 옥상은 꾀넓은 것이 벽돌로 적당한 울타리를 쳐서 텃밭을 만들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파트에서 있는 것보다 인서랑 이지랑 여기서 살아야겠어. 이건 정말 기회가 될 수도 있어. 집을 어느 정도 개조해서 도심텃밭을 만들고 자체 농사를 짓는 거야.'
그는 좁디좁은 옥상 텃밭으로 허망한 꿈을 꾸고 있었다. 모든 경제적 인프라가 붕괴하면 도심텃밭으로 생존이 가능할 것이라는 착각이 먼저 드는 것은 그만의 전유물은 아닌듯했다.
하늘을 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했다.
그때 뭔가가 빠르게 지나갔다. 마치 전광석이 창공을 훑은 기분이 들었다.
"뭐지?"
혹시 유에프오를 본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집 안으로 들어간 그는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관찰할 목적으로 텔레비젼을 틀었다.
바이러스, 동유럽 전쟁 등 재난이 끊어지지 않는 시기였다. 얼마 전 목포의 대형 열차 전복 사고 이후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은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인터넷에서는 좀비 출현이라는 무시무시한 루머도 돌고 있었다.
TV가 켜지자 마자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는듯 동공 확장을 경험했다.
"전세계의 주요 랜드 마크 위에 떠 있는 대형 유에프오의 출현으로 세계는 긴장의 일촉즉발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유에프오는 오늘 아침 9시 11분 경에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유에프오가 등장했다니.. 드디어 세상이 멸망할 단계에 진입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심 텃밭은 물 건너 갔구나!"
상황이 너무 거칠게 흘러가는 것 같아 두려움이 먼저 일었다.
그래도 일단 마음을 먹은 바를 실천해 볼 생각이 들었다.
우선 식량부터 단독주택에 옮기기 시작했다.
당분간 아내는 인서랑 아파트에서 지내게 하고, 그는 자주 부모님집을 드나들며 옥상 텃밭을 가꾸고, 씨앗을 준비하여 비축하고, 따로 쌀과 물을 사들였다.
그리고 며칠 후
막 부모님 집을 벗어나려고 하는 상황이었다.
막 계단 아래 바닥을 디딛으려고 하는 데 갑자기 사방이 흔들리면서 그는 발을 헛딛고 말았다.
그는 대문쪽으로 구르며 엎어졌다.
구르르르
어마어마한 소음이 사방에서 울리고 있었다.
그는 흔들리는 땅에서 좀처럼 일어설 수가 없었다.
"대체 뭐지?"
그는 혼잣말을 되뇌이며 몸을 간신히 일으켜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땅이 흔들리며 사방의 건물들이 좌우로 들썩이고 있었다.
"지진이야!"
그는 차량 쪽으로 달렸지만, 땅이 심하게 흔들려서 좀처럼 빠르게 뛸 수가 없었다.
"안돼!"
수한은 당장에 떠오르는 것은 인서 뿐이었다. 하지만 아내 이지, 그리고 차차 아버지, 어머니가 차례차례 떠올랐다.
"큰일이야. 서울에 지진이 일어나다니."
지진 설계가 안된 건물들이 마구 흔들리면서 네온 사인들이 떨어지고 전봇대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그는 차 길에 세워둔 차로 달려가다가 순간 멈칫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오히려 차에서 내려 공터 쪽으로 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지진이 나면 차를 타면 안되지. 당장 내가 무리해서 움직이다가 다칠 수도 있어."
그는 최대한 건물이 없는 단독 주택 골목길 한 가운데로 뛰어 들어갔다.
단독주택들이 흔들리면서 지붕이 부서지며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주택 가운데 놀이터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뛰어들어갔다. 여러 사람들도 역시 집에서 뛰쳐나와 놀이터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놀이터 중간에 설치된 어린이 놀이 기구 중 철봉 하나를 붙잡고 지진이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젠장!"
그는 흔들리는 동안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들어 이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괜찮을 거야.'
전화 벨이 울리는 동안 그는 인서와 아내가 안전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다.
'아파트는 내진설계가 되어 있지.'
하지만 이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는 지진이 여전히 멈추지 않아 아직 못받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기다리자. 여기에서."
하지만 지진은 멈추지 않고 그는 주변에서 주택들이 기울고 무너지는 광경을 두 눈뜨고 지켜볼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큰 강도인거야?"
그때 멀리 보이는 아파트가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것을 발견하고 그는 경악했다.
그는 도저히 기다릴 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놀이터 밖 길 한 가운데 쓰러져 있는 오토바이를 하나 발견했다.
그는 쓰러진 오토바이 쪽으로 달려와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운 뒤 열쇠가 꽂힌 것을 확인한 다음 바로 올라타며 고민도 할 것없이 시동을 걸었다.
주변으로 파편들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는 당장 아파트로 달려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시동이 걸리자 그는 떨어진 파편들, 건물들 잔해들이 널린 비보호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진동 때문에 오토바이가 통통 튕겨서 그는 최대한 천천히 중심을 잡고 달려야만했다.
도심은 아비규환 자체였다. 잔뜩 겁을 집어 먹어서 제대로 대피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고 빠르게 큰 도로로 튀어나가 서 있는 차량들 사이를 달렸다.
아스팔트 도로가 부서지고 여러 군데 싱크홀이 발견되어 그는 최대한 우회하며 차량들 사이를 달렸다. 그 사이를 달리면서 이미 싱크홀 속에 몇 대의 차량들이 떨어져 있고, 갈라진 아스팔트 사이에 낑긴 차들도 있었다.
그는 겁이 났지만, 인서와 아내를 생각하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파트로 접근해갔다.
마음이 급해진 그는 아파트 입구 방향을 확인하고 달리다가 눈 앞에 경차가 달려오는 것을 미쳐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돌진했다. 경차가 급정거를 하자 그는 놀라서 옆으로 오토바이가 넘어지며 바닥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차에서 내린 남자가 오토바이랑 부딪히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판단하더니 다시 차를 끌고 쓰러진 수한과 오토바이 옆을 지나가 버렸다.
수한은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다른 생각도 할 겨를 없이 아파트 쪽으로 달려갔다.
아파트 몇 동이 쓰러져서 옆 아파트로 기울어 버티고 서 있었다. 그는 쓰러진 아파트 그가 사는 109동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아직 흔들림에 버티고 있는 109동 아파트로 달려가는 중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리와 부서진 난간이 옆으로 떨어져서 그는 깜짝 놀라며 옆으로 비켜섰다.
"젠장!"
그는 다시 아파트 입구를 찾아 5층으로 급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진이 지속됐지만 다행히 좀전 만큼 진동이 크지 않아서 움직이는데 큰 장애가 없었다.
5023호에 도착한 수한은 문을 두드리면서 벨을 눌렀다.
집 안 화장실에서 인서를 앞으로 엎은 채 숨을 죽이며 기다리고 있던 이지가 벨소리에 반가워하며 화장실 밖으로 뛰쳐 나갔다.
그녀가 문을 열자 수한은 이지와 인서를 와락 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다행이야. 어디 다친데 없어?"
이지 역시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어. 괜찮아. 자기는?"
"나는 괜찮아."
수한은 눈 앞에서 앵앵대고 있는 인서의 이마에 키스를 하며 말했다.
"인서야! 괜찮아. 울지마."
인서는 엄마 가슴 앞에 엎인 채 분위기에 탔는지 겁에 질린 듯한 눈으로 아빠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보 지금 여진이 있지만, 또 어떻게 될지 몰라 생존가방이랑 내 돈이랑 챙겨서 일단 여기를 나가자."
"응."
수한은 예전에 준비해서 응접실 창고에 넣어둔 생존가방을 꺼낸 뒤 농이 쓰러지고 텔레비젼도 떨어져 있는 방으로 들어와 달러와 금이 든 가방을 집어 들고 거실로 뛰쳐나왔다.
그는 돈과 금을 생존가방에 몰아 넣은 뒤 그녀에게 매라고 한 뒤 인서를 인계받았다.
그리고 집을 벗어나 천천히 5층에서 1층으로 걸어내려갔다.
1층으로 거의 다 도착했을 때 갑자기 주변이 더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이지의 손을 잡고 한 쪽 팔은 아기의 몸을 잘 감싸 안은 채 아파트 밖을 힘차게 달렸다.
아파트 입구를 완전히 빠져나갔을 때 계속되던 여진이 순간 멈추었다.
수한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지의 등을 받쳐 안으며 걸으며 말했다.
"아파트는 또 언제 여진이 일어날 지도 몰라. 지금 당장 음식도 없고, 일단 당장은 같이 움직이고 차가 멀쩡한지 확인해야해."
"만약 여진이 없다면 109동이 그래도 가장 안전할 수도 있잖아?"
"일단 두고봐야지. 이 정도 지진이면 단독주택도 많이 손상이 됐을 거야."
"그럼 어떻하지?"
"일단 차로가보자. 지진이 또 일어날 수도 있잖아."
그는 최대한 건물이 없는 단독주택 골목길 한 가운데로 뛰어들어갔다.
수한의 아파트와 아버지 집과는 빠른 걸음으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하지만 대지진으로 인하여 도로와 인도는 파손되었고, 붕괴된 건물만 해도 수만 채가 넘었다. 오토바이로 정신없이 달려서 10분 만에 도착한 것은 그의 정신력 덕분이었다. 그만큼 도로와 도심은 대혼돈 상황과도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도로와 인도로 나와서 그 황당한 상황에 경악을 금치못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노후된 건물이 붕괴되어 잔해에 깔린 사람도 상당수였다. 사방에서 통곡이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주변에 사이렌소리가 크게 들리고 있었고, 화재로 불이 난 건물들이 많은 지 하늘에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20분만에 다시 부모님 집 근방 그의 차 앞에 도착한 수한과 이지는 다행히 차 위에 먼지 외에 떨어진 건물 잔해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아들을 안은 채 다시 아내와 함께 부모님 집으로 가보았다. 주변에 화재가 난 곳은 없었다. 그 동네는 신축된 건물들이 많아서 화재 예방 시스템이 작동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몇 블럭 떨어진 몇 군데 빌라는 지탱하는 다리가 끊어져 엎어져서 앞 건물 위로 기대는 형상으로 있었다. 그 빌라는 주차장을 만들려고 젓가락처럼 다리를 만들어서기초가 빈약한 필로티 구조였다.
그의 부모님 집은 단독주택이었지만, 2010년에 철골콘크리트로 다시 지은 내진설계된 빌라형 주택이라서 다행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이들 가족들은 이미 위기에 대한 예방을 생각했던 사람들이었다.
수한은 우선 아기를 이지에게 맡기고 차 안에서 기다리게 한 다음 문을 열고 떨어진 벽체 잔해들을 밟으며 올라가보았다.
집안 주변이 난장판이었다. 천장의 조명등이 떨어져 깨져 있었고, 가구들이 엎어져 있었다. 전기는 나가서 켜지지 않았고, 보일러 등 많은 기계들이 작동을 멈추어 있었다.
그는 가스가 새는 지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집 쪽에 연결된 가스관은 파손되지 않는 것 같았다. 냄새도 안나서 누출된 가스는 없는 듯하여 가스를 켜보았지만, 불은 켜지지 않았다.
'역시 들어오는 쪽 지하 가스관에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그는 싱크대에 물을 틀어보았다. 물은 잘나왔다. 다시 화장실로 가서 물을 틀어보았다. 세면대 물이 안나왔지만, 옆에 샤워호스기에서는 물이 나오고 있었다.
'주택은 수도관이 바로 직결식이라서 전기가 나가도 물이 나오는 구나.'
그는 이지와 인서가 쉴만한 방을 재빨리 정리한 다음 차로 갔다.
"여보! 일단 집안으로 들어가 있어보자. 가스가 안되니 잠깐 쉬는 동안 내가 다시 아파트로 가서 상황을 확인해볼게."
"응!"
수한은 아내와 아들을 부모님 집에 둔 상태에서 아파트로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그는 이동하는 동안 아버지에게 전화를 넣었다. 하지만 신호만 갈 뿐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걱정이 충만한 가운데 아파트에 도착하여 빠르게 5층으로 올라갔다.
집 안으로 들어와 주변을 둘러보니 역시 전기와 가스, 그리고 물까지 끊겨있었다. 그는 당분간 주택에서 있어야겠다고 판단을 내려야했다.
'우리 아파트는 압력탱크식이라서 전기가 안되면 물이 안나오지.'
그는 다시 부모님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휴대폰 인터넷을 연결하여 다른 지역의 지진 상황을 확인해보았다.
이번 대지진은 서울과 경기 전 지역에 벌어진 지진이었다. 다른 지역은 멀쩡했고, 다행히 아버지와 어머니가 경남으로 내려간 뒤로 2시간이 지나서 지진이 일어났기에 그 시간이면 경기 지역은 충분히 벗어났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다시 전화를 해보려고 휴대폰을 든 순간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아버지 괜찮으세요?"
"아이구. 그래. 나랑 네 어미는 괜찮아. 너야말로 괜찮은 거냐?"
"다행히도 괜찮아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많이 다치고 사상자가 많이 나온 것 같아요. 화재도 엄청나서 아버지 집 안까지 냄새가 나요."
"아이구. 나는 운전하느라 지진일어난지도 몰랐다. 땅이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아서 바람 때문인가 싶었지. 그런데 중부고속도로 타고 가는 데 라디오를 틀었더니 글쎄 서울에 지진이 났다고 해서 휴게실에서 이렇게 전화 한거야."
"네. 아버지. 일단 이지나 인서랑 다 무사합니다. 일단 아파트는 물이랑 전기가 끊겨서 아버지 집에 와있어요. 여기 보일러랑 전기, 가스 다 안되지만 물은 나오니까 오늘 밤은 여기서 지내야할 것 같아요."
"내가 다시 올라가야할 것 같아. 이대로는 불안해서.."
"아니에요. 그대로 시골 집으로 가세요. 저희도 어떡해서든 시골로 갈방법을 찾아볼게요. 다행히 차가 멀쩡하니 도로가 정리되면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땅까지 꺼지고 갈라져서 쉽지는 않을 것 같고요. 그런데 찾아보면 길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래. 잘찾아서 서울을 빠져나와라."
"네. 아버지. 간간히 전화드릴게요."
"그래. 오냐. 오늘 밤은 잘 버티거라."
"네."
수한은 아내와 함께 엎어진 냉장고를 간신히 뒤집어서 남은 음식들을 챙기고, 다음날 서울을 빠져나갈 때 필요한 비상식량과 물, 쌀등을 챙겼다.
폭염이 내리쬐이는 여름날이라서 당장에 음식이 상할 수 도 있어서 아이스박스에 약간 녹은 상태인 냉동음식들을 넣고 물을 넣었다. 그리고 쌀과 물 한팩을 트렁크에 넣은 뒤 현금을 들고 근방 수퍼로 향했다. 그런데 수퍼에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다가 뭔가 횡한 느낌이 들었다.
수한은 땀을 뻘뻘 흘리며 수퍼 안에 들어섰는데 모든 물건이 완전히 사재기로 다 팔려 남은 것이 없었다. 사람들이 지진이 나기 전에 경제대공황 상황에 먼저 와서 다 쓸어간 것이었다. 주인도 없었고,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물론 남은 물건도 진열장에 몇가지 보였는데, 생존에 별로 도움이 안되는 품목들이었다.
다른 곳을 찾기 위해 한시간을 돌아다니다가 전통시장 근방 가정주택과 연결된 수퍼 하나를 발견했다. 그런데 주택은 조적식구조라서 지붕과 벽돌이 여러 부분 무너지고 구멍이 나 있었다.
그때 수퍼에서 오십대 남자와 여자가 물건을 등을 챙기며 트럭에 싣는 중이었다.
"혹시 캔음식 같은 거 남은 거 없나요?"
수한의 질문에 남자는 애써 무관심하며 물 건을 챙겼지만, 여자는 안쓰러운 마음에 대꾸를 해주었다.
"캔음식은 음료수 밖에 없어요. 그리고 지금 서울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욧. 더 큰 지진이 올 수도 있데요."
"정말인가요? 그럼 캔음료라도 좀 부탁드립니다. 혹시 저희 아이가 있어서 그런데 아이가 먹을 분유식 좀 얻을 수 있을까요?"
여자는 한참 고민하다가 남자가 나서며 말했다.
"본인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부탁하고 그러시면 안되요. 어서 가세요."
그때 아주머니가 어디선가 분유 한 통을 가져오며 말했다.
"우리는 아이가 없어서 이건 필요없어요. 자요. 이제 부르는게 값이에요."
"제게 백달러가 있어요. 이거면 저희 먹을 음식도 좀 챙겨주시면 안될까요?"
남자가 수한이 내미는 백달러를 재빨리 챙기며 수퍼 안으로 들어와 참치 캔 다섯개와 분유 한통, 사이다, 콜라, 기타 음료수 열개를 봉투에 담아주었다.
수한은 미리 챙긴 빈가방에 그것들을 넣고 재빨리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내에게 상황이 급하다는 것을 전했다.
"여보! 당장 음식이랑 챙겨서 여기를 빠져나가야해. 우선 당장 물이 부족할수도 있으니까 지금 수돗물이라도 식수로 펫트명에 받아서 차에 싣자. 이걸로라도 식수로 활용해야해. 자기는 우선 음식이랑 애기 분유랑 가면서 먹을 수 있게 챙겨놔. 나는 물을 채워서 차에 실을 게."
"어. 알았어."
더 큰 재난상황이 언제 발생할지도 몰라서 미리 물을 받아놓을 필요가 있기에 수한과 이지는 집안에 빈통을 찾아 수돗물을 받아 넣기 시작했다.
이지와 수한은 음식을 챙겨서 차 뒷자리와 드렁크에 채운 뒤 아기 옷, 기저기 가방과 분유을 지퍼백에 넣어 같이 챙긴 뒤 출발 준비를 마쳤다.
수한의 차량은 네이비색 신형 아반떼 차량이었다. 그는 차량의 기름이 며칠전 만땅을 채워나서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시동을 걸었다.
그는 큰 길쪽으로 길이 엉망인 것을 판단하고 반대쪽 다른 방향을 택해서 차를 출발했다.
여러 차량들이 이미 그 길로 진입하고 있었고, 차는 얼마 가지 못해서 정체되기 시작했다.
"큰일이야 여보. 차가 막혔어. 이미 서울을 빠져나가려는 차들이 북새통이야."
이지는 뒷좌석에서 아기를 돌보며 걱정스러운 듯 대답했다.
"다른 길은 없을까?"
"길이 많이 망가져서 큰길쪽으로는 가면 위험한 것 같아. 아까 아파트쪽 가는 길에 싱크홀이 엄청 많이 생겼어. 지진으로 부실했던 곳이 땅이 꺼진 것 같아."
"큰일이네."
"일단 참고 기다리며 가다보면 시간내에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
쾅
앞에서 약간 충돌하는 소음이 들렸다.
놀란 그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의 차량이 부딛힌 것은 아니었지만, 앞에서 사고가 난모양이었다.
사고차량의 운전자들이 급하게 내려서 부딛힌 부분을 보더니 큰 파손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소리만 조금 요란했지 범퍼끼리 부딛혀서 살짝 찌그러진 정도였다. 하지만 다급한 상황에 일상과 같이 분쟁을 키울 여력이 없었다.
수한은 다시 지진이 날까봐 겁이 났다. 어서 경기지역을 빠져나가야 한시름 놓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두 시간정도 갔을 때 차량은 최대한 우회해서 겨우 외곽순환도로를 탈 수 있었다. 하지만 외곽 순환도로 역시 손상된 곳이 있어서 차들이 최대한 1차선으로만 달리고 있었다. 지나가다 옆을 보니 2차선과 3차선에 도로가 패이고 갈라진 곳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 안에는 차량들이 떨어져 박혀 있는 광경도 더러 목격되었다.
그는 차를 몰면서 하늘을 보았다. 어느 순간 구름이 가득 차고 있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태양이 강렬하게 비춰져 눈이 부실 정도였다. 직접 태양을 보면 실명할 정도로 밝았다.
차량은 정체구간이 지속됐지만, 기본 15킬로미터 속력으로 달리는 중이었다.
어느 새 하늘이 검은 구름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번개가 보이면서 빗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내 이지가 이를 보고 먼저 말했다.
"여보 갑자기 비가오네."
"그러게. 방금 전까지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는데.."
빗줄기가 갑자기 굵어지며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큰일이야. 이거 점점 굵어지는데."
쾅!
천둥소리였다.
"응애!"
인서가 놀라서 울기 시작했다. 지진이 났을 때는 겁을 먹어서 울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놀란 모양이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한 시간을 더 가다가 중부고속도로를 갈아타자 어느 정도 정체 차량이 완화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차들이 많아서 기본 50킬로미터 이상으로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그때 앞에 가는 차량들이 당황했는지 멈춰선 채 멈칫멈칫하다가 몇몇 차량들이 우측에 보이는 톨게이트로 몰리고 있었다.
놀란 수한은 비상깜빡이를 켜고 무슨 일인가 하며 차에서 내려 비를 맞으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러고 보니 고속도로 아랫쪽에 긴 호수가 보였고, 물의 수위가 거의 도로를 넘기 직전이었다.
"젠장!"
수한은 차에 다시 탄 뒤 톨게이트로 빠져나가는 차량 뒤에 바짝 붙었다.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고, 어두운 밤에 폭우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그는 톨게이트를 빠져나가 경사가 높은 곳으로 가야한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서 막 톨게이트 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는 다시 차에서 내려 뒤를 확인해보았다.
홍수가 이미 고속도로를 넘어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인서가 있는 차문을 열고 이지에게 소리쳤다.
"여보 가방이랑 음식 챙겨!"
그는 인서를 안아서 그의 가슴 앞으로 아기를 맨 뒤 머리를 방수 커버로 뒤집어 씌우고 트렁크로 가서 비상 식량과 쌀이 든 생존가방을 챙겨 뒤로 맸다.
이지 역시 차에서 내려 물과 음식이 든 가방을 뒤로 맸다.
물이 막 밀려드는 광경은 가로등에 비춰 보였고, 그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수한은 왼손은 이지의 손을 잡고, 오른 손은 인서가 머리를 붙든 채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수한은 앞에서 달리는 사람들, 산쪽 위에 있는 사람들이 몰려서 고함을 지르는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지가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생각보다 더 큰 물결이 빠르게 고속도로를 범람한 것이었다.
수한은 이지와 함께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높은 지대에서 사람들 역시 놀란 표정으로 산쪽으로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수한의 뒤에서 도망치던 사람들이 거침없이 밀려드는 물결에 휩쓸리고 말았다.
한발 한발 내딛는 순간 뒤에서 도로와 인도의 방향대로 홍수가 밀려 넘치고 있었다.
뒤에서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산으로 진입하는 입구 앞에서 그만 이지가 넘어지고 말았다.
"여보!"
이미 다섯 발자국 이나 떨어지고 나서야 이지가 넘어진 것을 확인한 수한은 그녀를 부르는 순간 눈 앞에 거대한 물결이 그녀가 있는 자리를 빠르게 휩쓸고 지나갔다.
"안돼!"
그가 경악하는 사이에 홍수는 산 위로 치고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수한은 한 순간 아내를 잃은 것에 슬퍼할 여력도 없이 인서를 살리기 위해 미친 듯이 산 위로 달려 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