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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일(금) 1977
유달리 아침부터 햇발이 강하다. 오늘쯤은 입항이 될까? 무슨 연락이라도 없을라나? Second Pilot Mr. Muro에게 물어봐도 그저 ‘May be'일 뿐이다. 주위의 배들이 열서너척이더니 3-4척은 들어간 모양이다. 이제 우리 차례가 다 돼갈텐데 -.
옆의 Greece선에서 작업중인가 본데 거기 접근하던 카누가 전복, 한 놈은 올랐는데 한 녀석은 그냥 물 속에서 나오지 못한 모양. 아마 강한 강물의 흐름을 타고 떠내려 간 모양이다. 그리 야단스럽지도 않고 같이 탔던 그 여인도 빠진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나 별로 느낌도 없는 모양이다. 그냥 간걸로 아는지? 하기사 물밑에도 땅은 있으니까.
낮에 20여분 일광욕을 했는데 등이 땅긴다. 서서히 구어야겠다. 오늘은 또한 유난히도 덥다. 실내 온도가 33도이다. 선풍기가 연일 죽어라고 돌고 있지만 그 바람이 그 바람이다. 선내를 한 바퀴 순시하다. Inventory(선용품목록) 재정리를 지시한 것이 진행중이다. 좀 시원스레 개조했으면 싶은 곳이 한 둘이 아니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걱정 없다더니 이 배가 그 짝이다. 日魯(이찌노)시절 그대로 산 것이니까 전부 그때의 소모품, 선용품들이 그대로 썩어가고 있다. 지금은 쓸모가 없이 돼버린 것이다. 모선(母船)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던 왕년의 모습이 떠오른다. 진료실에 흩어러진 수많은 약품, 의료기구, 심지어 등사판까지 구비하고 있다. 전부 꺼내고 재정리하고 쓸 것 못 쓸 것을 구분, 사용 가능한 것은 별도 보관토록 지시했다.
1등기관사가 발병했다. 편두선인가? 목이 몹씨 아프다던데 -. 이곳 Malaria는 그 종류가 다양하단다. 그것인가? 일단 마라리아로 보고 3항사에게 주사 치료해 보기로 하다. T.M(테라마이신)도 투약해봐야지. 이런 곳에서, 이 더위에 몸져누우면 정말 괴롭고 살맛 안 날 거다. 옷을 벗고 있으니 입기가 싫어진다. 어찌 보면 이곳 사람들은 옷을 입은 것이 아니고 그냥 가리는 정도다. 그래도 샤스라도 걸치고 스럽퍼라도 끼는 녀석은 제대로 사는 축인가 보다. 벗은 곳은 시원하고 땀이라도 마르는데 입은 곳은 잘 마르지 않으니 고역이다. 매일 씻고 자주 내의를 갈아 입는다. 언젠가 동남아 원목선에서 경험한 습진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본선용 쌀을 실었다는 일본선 Togo Maru와 교신을 하다. 앞으로 4일 후면 Lagos에 닿는단다. 계속 Contact(연락) 하기로 하다.
2nd. Apr.(토)
한 주일이 어찌 가는지 모른다. 하루가 그렇다. 어제 오늘은 무척이나 덥다. 텁텁한게-. 시원스럽게 소나기라도 한 줄기 했으면 좋으련만. 어쩌면 오늘 중에는 입항의 징조가 있다고 Mr. Muro가 이야기하더니 저녁때 다시 물으니 또 내일 보잔다. 내일은 일요일, 또 며칠은 후딱 가겠다. 73동방호에서 VHF로 부른다. 송신은 가능한데 본선의 송신을 Catch못하는 모양이다. 물 있으면 20톤만 달랜다. 줘야지. 여기까지 와서 뭘 못 도와주랴. 대신 우리가 조금 아껴 쓰면 된다. 우리도 쌀과 아세치렌 등 편리를 보았다. 접선 급수했다. 그 배 Capt. 허의 내밀한 얘기가 무척 마음에 걸린다. 왜 사람들이 자기의 욕심만을 생각하는 것일까? 합리적인 방법도 있을 법한데. 그것이 자기의 능력의 전부가 아닐터인데-. 내 스스로도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좀 더 먼 훗날을 생각하면 그럴 수는 없지만, 당장의 물욕엔 마음이 움직일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러나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고 한계가 있는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나 혼자를 위해서 남을 속이고 등치는 일은 아직 싫다. 아니 영영 못할 지도 모른다. 현대 문자로 한다면 ‘무능의 탓’ 인지 모른다. 그러나 내 지난 과거에도 결코 그러한 전철이 없었기에 지금의 위치를 남 보담 앞서 획득했다고도 볼 수 있다. 어쩌면 한 두번의 실수가 여태끗 쌓아온 탑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더욱이 나 같은 경우 이 세상을 요령으로 살아오지 않은 사람인 편이다. 누구의 힘을 입고 빌려서 따 낸 것이 아니다. 그저 내 한 몸과 마음의 성실성 때문이 아닌가. 이것이 현세를 사는 데는 가장 고루하고 나약하고 우둔한 짓일런지는 모른다. 그러나 결코 전부가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어딘가는 성실한 사람이 잘사는 사회의 기반 위에 하나의 동화된 상태로 끌려가는 것이리라. 또한 이 세상은 강하고 유능한 자만이 잘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름대로 살길은 주어져 있는 것이다. 오직 자신의 신념, 자신의 목표를 따르고 찾아가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밤일을 찾아 물위를 헤메는 검은 밤꽃들의 외침이 아련히 들린다. 또 어느 배에서 맞아드리는 모양이다. 아직은 보기만 해도 징거러울 따름이다. 아예 본선에서는 접근을 금한다. 상륙해서야 제야 어디가든 선내에 머무는 것은 허락치 않는다. 왠지 너무 탁해질 것만 같은 느낌이다. 무는 벌레만 없어도 좀 덜하겠는데 -. 자꾸 부리키는 데는 영 환장할 지경이다. 어구야.
3rd Apr. (일)
하루가 또 간다. 행여나 했던 입항은 또 무위. 급료 조정 결과 발표의 반응이 예상했던대로 컸다. 애당초 회사의 실수라 보지만 회사 나름대로의 어떤 복안이나 애로가 있을 것이라 보고 일단 사실대로 보고하고 본선에서 지급키로 하다. 내게도 어느 정도의 착오는 있었다. 아무리 회사가 그렇고 바빴어도 차근히 챙겼어야 했고 그 대책도 강구했어야 했는데 회사를 너무 믿었던 결과다. 좋은 경험이다.
원칙은 6개월 혹은 1년 연장 할 것 없이 몽땅 교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임선장이 미처리한 부분이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그렇다고 어물쩍 넘길 수는 없는 것이다. 분명한 한계를 그어두고 몇 사람을 보내는 경우가 있어도 -.
No.2와 2/E가 문제가 된다. 2기원과 장시간 얘기했다. 젊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생각이라 느끼지만 좀 더 깊이 있고 장래를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한 것도 같다. 또한 그에겐 누군가 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자가 없는 탓도 있는 듯 하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일은 자신이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자신의 일에 자신 이외의 판단은 어디까지나 참고할 따름일 뿐이다. 일단 대아에 연락을 해야 하고 선내에서도 보다 다각적으로 파악하고 통솔해야 할 것 같다. 아직 장장 1년 남았는데-. 지난해부터 있던 사람들의 예를 수석조타수를 통해 들었다. 사실인지는 모르나 술 때문에 불상사가 있었던가보다. 술! 그놈의 술, 어찌 세상에 나와서 뭇 사람을 망치고 골탕을 멕이나. 술 때문에 성공한 놈 있다는 소릴 들어본 적이 없으니 조심하기는 해야 한다. 한 번의 실수는 평생을 어둡게 살아가게 하는 수가 많고 일생을 무거운 부담 속에서 헤메야 하는 수가 있다. 많은, 좋은 본보기의 예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德丸해운의 보고서 초안을 일단 통신장에게 수정을 의뢰하다. 내게는 수정 이상의 숨은 의도가 있다. 선내에서 야구공으로 운동을 할 수 있어 좋은 거리다. 줄넘기도 3일전부터 한다. 이 적막한 시간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금년의 목표다. 건강! 그리고 공부. 또한 맑은 정신과 건강한 육체의 원만한 조화! 모두가 내 스스로의 의지로서 행하고 이겨나가야 하지 않는가? ‘克己’ 바로 그것이다. 붓을 들 수 없는 것이 유감이나 될 수 있을 거다. 다행이 잉크가 있지 않느냐? 당분간 밀린 일이 끝나면 만들어 보자.
4th. Apr. (월)
9시쯤 Life Boat로 Mr. Muro의 안내에 따라 Wari시에 가보다. 강을 따라 다시 1시간반. 중도에는 별것이 없으나 강변에 땅속에서 솟아나는 천연가스를 태우는 붉은 불기둥이 검푸른 숲속에서 활활 타오른다. 주위의 그 푸르름 못지않게 활기가 넘친다. 왜 조물주는 세상 그르지 못하게 나누었을까? 좀 더 잘 살기 위해서 아득바득 악을 쓰는 우리네의 실정을 생각하면 부럽기도 하고 슬며시 울분이 솟기도 한다. 아니 주물주가 오히려 공평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모래땅 속에 석유를 묻어두었고, 푸르른 초원 밑에는 아무 것도 넣어두지 않은 것을 보면-.
Wari Habour Master(항만청)부근에서 마침 Charterer측과 Agent의 Manager인 Mr.Fadaka를 만나 사무실까지 갔다. 시내, 그것은 보잘 것 없으나 각종 상품선전의 광고들이 엄청 많다. 좋은 것을 느끼기 시작한 Black People들의 그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몸부림과 그것을 충동질함으로서 구매력을 확충하려는 선진 다국적 대기업들의 상술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6일쯤 입항. 양하에 10-15일 잡는다. 그 후에 Lome를 한 항차 더 한 후 Las로 가는가? 알 수가 없다. 왕복 3시간. 강한 일사광선 아래 점심을 늦게 했는가 머리가 아프고 피로가 유달리 심하다. 원래 직사광선에는 약한 내 자신임을 알고 있으니 극력 피하고는 있지만. 탈 없어야지.
오늘은 별실이 집이 생각난다. 그리고 아내가 떠오르고-. 무슨 일이나 없는지? 떠난 뒤의 소식을 무척 기다리고 있을텐데. 오늘 Agent에서 동방호의 편지는 갖다 줬지만 4장 중 2장은 한국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온 것이었다. 너절너절해졌다. 용케 이 구석까지 되돌아 찾아오는 걸 보면 신기한 생각도 든다. 접안하면 소식 전해야겠다. 늘 써 모았으면 좋으련만 송달이 어렵다니 자꾸 망설여진다. 차츰 커가는 애들의 각각 다른 성격들이 마음에 생각키운다. 내일은 식목일이라 어쩌면 집 앞뜰에 한 그루의 나무라도 심을지 모르겠다. 아무 탈없이 오직 건강하고 단란한 가운데 하루하루가 되어 갔으면 하는 마음 진심으로 빈다. 일찍 잠자리에 들다.
5th. Apr. (화) 1977
대아에서 4월부터 POB를 가족지불로 한다는 Telex 오다. Agent의 Mr. 우쯔구 녀석. 뚱뚱이 검둥이가 다녀갔다. Lagos에 다녀왔다며 편지도 가지고 왔다. 국장 것 2장 갑판장 2, 조기장 1장 그리고 나머지는 동방호 것이다. 우쯔구, 마치 ‘Uncle Tom's Cabin’에 나오는 맘씨 좋은 아저씨 같은 인상이다. 위스키 한 병을 줬더니 입이 함지박만큼이나 벌어지며 최고란다. 네가 좋아서가 아니고 내가 필요해서지만 주면서도 기분이 좋은 느낌이다. 입항은 역시 내일, 모래? 또 그렇단다.
아무렴 현재 접안 중인 대형선의 양하가 끝나야 할 것 같단다. 3-4일은 걸리겠지. 가끔 나 자신의 위치를 망각해버릴 때가 있다. 항해도 없고 안전한 곳에 정박중이니 신경을 덜 써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가장 예민하게 해야 할 선원들에 대한 통제와 견제가 그렇다. 종일 책을 벗삼고 일체 아래층에는 내려가지 않는다. 내일부턴 좀 더 세밀히 touch(간섭)해야지. 전임 공장영 선장이 Lagos 출국전 memo를 보냈다. 성의를 베푸는 것은 좋으나 미처리된 부분을 남겨두고 미루는 것은 적이 못마땅하다. 특히 배는 자신이 하선할 경우 그 후임자가 처리치 못할 일이 많다.
엊저녁부터 몸의 컨디션이 정상같지 않드니 오늘 오후에는 소화가 안 된다. 무척 신경이 쓰인다. 며칠째 하는 줄넘기와 가벼운 운동은 계속하는 것이 좋을 것만 같다. 야식을 걸러고 소화제를 먹는다. 좀 일찍 자리에 들자, 당분간-. 창고에 있는 stamp ink 중 검정색을 꺼내 붓에 적셔보았다. 그런대로 틈틈이 연습이 될 것도 같다만 종이의 조달이 문제일 것 같다. 입항시 찾아봐야지.
C/O(일항사)의 신한국문학전집을 그제부터 읽기 시작한다. 잠자리에서는 金亨錫교수의 수필집을 읽는다. 낮에는 주로 영어 책과 씨름하고. 스스로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자. 아내가 언젠가 ‘늦다고 느낄 때가 바로 적기’라는 말이 늘 생각키운다. 부끄러울 것도 없고 못할 것도 없지 않는가. 남이 한 시간해서 될 것을 나는 2-3시간해야 할 재능밖에 없다면 그 이상의 노력을 하면 될게 아닌가. 아는 놈 한테는 당할 수 없다. 비록 예까지 와서 검둥이들한테 시달림을 받지만 말마져, 서류하나에 까지 그들에게 달려서야 안 된다. 힘닿는 데까지 해보자. 짜증도 나고 능률도 안 오를 때도 있겠지. 그런 땐 바람을 쐬며 머리도 식히고 -. 이 세상 더구나 내가 발 딛고 살아야 할 고국의 환경에 이만큼 뒤지고 멀어져 자는 대신 다른 것이라도 앞서야 하지 않겠나. 지금 내 일본어 실력(?)은 나를 알든 사람들은 놀라고 있다. 이것이 좋은 교훈이다. 누구의 시킴이나 가르침이 아니다. 스스로 이룬 나 혼자만의 노력의 대가아닌가. 금년의 목표를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의 조화’에 두고 해보자. 집안의 일, 아내의 일 그리고 애들의 일은 일단 뒤로 미루자. 오직 염려뿐이라면 차라리 믿고 맡겨두고 잘 될거라는, 아니 잘됐을 거라는 常念을 갖자. 그것이 어쩌면 서로를 위하고 자신을 위하는 길인지도 모른다. 여보! 그렇게 합시다. 우리 다시 만나는 날 온 마음과 전체의 몸으로 얘기를 나누더래도 우선 서로의 생각게 빠져 자신의 순간을 조금이나마 잃어버린다면 무슨 보람과 소용이 있겠오.
6th. Apr.(수)
오늘도 입항은 허사. 그러나 크게 실망하거나 안타까워 할 필요는 없다. 어쨌든 하루 4월 6일은 지나간 것이다. 그보다 오늘 하루를 스스로가 어떻게 보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다. 어차피 우리는 시간을 벌러 나온 것이다. 1년이다. 별반 외부의 신경 쓰이는 일 없는 때인 만큼 그 만큼 내 시간에 많으니까 보다 유용하게 쓰면 그걸로 족하다. 기어이 어제 저녁부터 설사가 난다. 더운 지방에서의 설사는 특히 금물인데 -. 오늘 3-4번 출입을 했다. 어제 그제 별다른 것을 먹지 않았는데?
정로환을 먹었다 저녁 때 조금 나아지긴 한다. 떠날 때 아내가 너무 찬걸 먹지 말라던 것이 늘 마음에 있다. 방에 냉장고가 있어 항시 먹을 순 있지만 그리 많이 먹는 편은 아니다. 한 모금 먹을 때마다 아내의 얼굴이 떠오른다. 찬걸 좋아하지만 왜 그런지 더운 지방에서는 비교적 덜 먹힌다. 다행이다. 약도 꼭 더운물로 먹는다. Lome에서 산 Mineral water도 가끔 먹긴 하지만 끓인 물을 식혀두고 먹는 것이 마음에 든든하다. 내일부턴 나아야 할텐데 -.
본선에 오고 나서는 밤에 옷을 입지 않고 자는 버릇이 생겼다. 워낙 덥고 땀이 나니까 밑이 축축할까봐서 그렇기도 하다. 효과는 보지만 입고 자기가 거추장스럽기도 해진다. 사람이란 눈, 귀, 입뿐만이 아니고 몸 자체도 간사하다는 걸 느낀다.
저녁때 한바퀴 돌아보다. 마작패, 바둑패, 화투패 그리고 책을 보는 4개의 부류가 있다. 한 사람도 방에 있는 자가 없다. 저녁바람의 서늘함 그리고 일을 마치고 목욕 후 식사를 마친 다음 시원함은 모든 것을 잊게 해주는 듯도 하다. 귀중한 시간들을 제대로 잘 이용하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는지 -.
일본 패잔병 小野田(오노다)씨의 ‘나의 루판섬 30년전쟁’을 읽기 시작하다. 다시금 사전을 일일이 찾기가 귀찮지만 재미보담 하나의 일어공부로 보자.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여러 가지다. 그러나 한 가지에 1-2시간씩 해도 하루는 쉬이 간다. 아직은 시간이 모자라지 남아서 지루한 생각은 없다. 지금이 상태가 오래 계속되는 것이 오히려 기다려진다.
내 스스로가 느끼지만 과연 내가 직업으로서 선박생활이 적성에 맞는 것일까? 회의를 느낄 때도 있다. 확실히 어딘가 잘못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직업이라는 의식 속에 자꾸만 끌려가는 듯도 하고-. 그렇다면 내게 가장 적합하고 맞는 것이 뭘까? 가만히 있어도 돈을 버는 직업? 그런 게 있을까? 좀 더 깊이, 신중히 생각하고 모색해 볼만한 일이다. 시원하게 깎은 망고맛이 일품이다. 그런대로 여기 생활에 멋과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해상 호텔에 투숙한 셈치고 -. 渡辺국장에게 이렇게 놀면서도 돈을 번다니까 웃는다. 저나내나 마찬가지 겠지만 60이 다돼가면서 이것도 여간 고생이 아니지. 아들이 둘인데 둘 다 Banker란다. 그 중 하나는 영국 London에 와 있어 갈 때 London을 경유했으면 좋겠단다. 그러나 자신이 일할 수 있는데까지 일하는 그 정신만은 높이 사야하고 또 건전하게 본받아야 한다.
7th. Apr.(목)
No.2 장씨와 2기원이 기어이 문제가 되다. 일단 사표를 받기로 하고 C/E에게 전하다. 막상 받고 보니 떱떠름한 모양인지 이렇궁 저렇궁이다 어쨌던 전체 선원의 입장을 살리기 위해서도 회사의 체면여하를 막론하고 자를 것은 잘라야 한다.
내일쯤 대아로 일단 Cable하자. 저네 스스로가 생각해도 굳이 명목이 선거나 분명한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원 사람들이 그런지 모르겠다. 전보를 하기 전에 한 번 더 기회를 줘봐? 뱃사람이 사회에 어둡고 내일을 생각치 못하는 게 바로 좋은 본보기를 보는 것 같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일을 자신이 돌보지 않으면 누가 돌보나? 제3자의 간여나 동조, 또는 값싼 동정에 쉬이 휘말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며 무책임한가를 절실히 느끼지 못한 탓이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렇다. 그들을 보내는 것과 보내지 않고 설득해서 같이 있어 보는 것 둘 중 내 자신에게 또는 회사에 미치는 영향을 놓고, 또 전체 선원의 영향 등을 고려할 때 무엇보다 내 중심, 그것도 내 개인이라기 보다 공적인 입장에서 앞으로 1년간 이 선박을 무사고로 끌러나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된다면 그 이상 중요하고 절실한 일은 없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의 노력을 되는 일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일도 많다. 運이라들 할 수도 있지만 運을 전혀 도외시 할 수도 없고 또한 어딘가 자신의 눈길, 손길, 마음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의외의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것이 곧 내 개인을 위하는 길도 되리라.
Agent의 Mr.우쯔구가 세관원을 데리고 왔다 갔다. 역시 담배만 한아름 안고 갈뿐이다. 내가 신고한 담배 1000본이 너무 많단다. ‘너희들 줄 것인데 어쩔까?’ 했더니 그냥 두란다. 또 올거냐고 물으니 ‘All finish(모두 끝남)’랬다. 알 수가 있어야지. 아무턴 입항하지도 않은데 C.Q.I(세관. 검역. 입국관리)는 끝난 셈이다. 좀 더 말만 마음같이 술술, 아니 솔솔 이래도 나오면 이놈들을 구슬리기가 쉬울 듯한데 -. 당최 마음같질 않다.
‘날은 저물어 오고 갈 길은 멀고 오줌을 마렵고운데 이 놈의 소는 자꾸 당기기만한다.’
갈수록 태산인 셈이다. 또 ‘Tomorrow'만 연발하고 갔다. 옆에 있던 Greece선 ELPID호는 강에서 타선에 이적해주고 떠나다. 언제나 우리도 저런일이 있을까? 에라 기분내킨김에 저 자리에다 Shifting해두자.
설사가 완전히 멎지 않는다. 2-3일 전연 찬 것 먹지 않고 잘 때도 두둑히 배만은 덥고 자는데도 -. 일본사람들의 하라마끼(腹卷)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소화가 잘 안 되는가? 큰 이상을 없는 것 같은데 -.
8/Apr(금) 1977
오늘이나 했더니 오늘은 이곳 Nigeria의 법정 공휴일이란다. 또 글렀다. 설사라기 보다 복부의 사정이 시원찮다. 이질인가 싶기도 하고, 종일 변소를 여러 번 다녀왔다. 하루를 개운찮게 보냈다. 약을 먹어도 안 된다.
Denmark국적선 ‘Palle scan’이 14:40시경 우리 배 선수 Stem에 접촉 Damage를 냈다. Dragging(닻끄림)한 것 같다. 큰 상처는 아니지만 일단 ‘Certificate’를 받아 두기로 하고 갔더니, 저네가 확인 후 Loyd(로이드)검사를 해 주겠단다. 그놈의 C/O 얘기로는 자기 목달아날 염려가 있다나, 세상은 어디가나 꼭 같은가 보다.
저녁에 동방호 정 기관장이 놀러와서 10시까지 있다 갔다. 여자얘기, 집안얘기, 배 이야기 등등 왔다갔다 했다. 동방호 편으로 NO.6 씨레나호 권청량 씨의 안부전보를 받다. OLB-1과 WR-2 두명에 대한 교대요청 타전하다. 회사의 회답이 궁금타. 잔류선원들은 이와 같이 장기정박이 아무렇지도 않지만 교대자들은 다소 지루함을 느끼는가 보다. 내 자신이 아직 첫 항차인데다 Charterer측도 만나지 못했음으로 다소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Lagos Trans-continental의 Kishinani에게 일단 인사겸 전보를 쳐두다. 뒤가 계속 무겁다. 영 기분이 씁쓸하다.
9th. Apr(토)
아침 8시 Harbor Master에서 동방호를 부르더니 들어오란다. 왠일일까? 분명히 Agent에선 우리가 선착순이라 했는데 -. 영 믿질 못하겠다. 어제 부딛친 ‘Palle Scan'호의 Capt.와 C/O가 왔다. 월요일 서류를 재작성해서 Sign하잔다. 그리 큰 손상이 아니니 차후 변상할 일이 생기면 하도록 하고.
저녁 후 그 배에 다시 가보다. Air con이 고장이 났단다. 냉동사 데리고 가보니 프레온이 새는 모양이다. 그 원인을 설명하는데 무척 어렵다. 어찌 옳게 전해졌는지,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C/O의 가족 사진이 무척이나 단란해 보인다. 그네들은 기껏해야 4개월 타면 4개월은 휴가, 다시 나온단다. 꿈만 같은 선원들의 천국이라 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쪽에서 본 잣대일 뿐. 통신사도 없고 선교에서 국제전화를 설치하고 하시라도 본국 혹은 타국과도 교신이 가능토록 되어있다. 역시 서양의 문명이란 것이 동양과는 본질적으로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일본의 경우 그 많은 인건비며 시설비며 들일 필요가 어디 있는가. 실용본위로 하면 얼마든지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관습이나 규범에 얽매여 답습하는 것이 많다.
오유권씨의 소설 ‘관동댁과 그 아들 내외’에서 생각 키우는 것이 많다. 마치 내 자신의 어릴 적 우리 할머니와 엄마의 그리고 아버지의 일을 써놓은 것 같아서.
관동댁 며느리는 그래도 이쪽에서 풀지 못한 속을 친정에 가서나마 풀었지만 울 엄만 그러지도 못했다. 그래서 병을 얻었는지 모른다. 콧등이 시큰해온 것이 있다.
접때 출국전날 술김에 아내한테 일을 저지른 것도 아마 엄마 때문일 것이 분명하다. 할마씨 열흘이나 있으면서 큰집과 내 집에는 전화하나 없더니 갈 때 차비 얻어러 왔다. 빌어묵을 -. 그래서 과연 옳게 대접 받을 수 있을까? 어찌 생각하면 영감없이 불쌍한 것 같기도 하지만 -. 내 어릴 때 생각하면 그냥그냥 지내버려도 상관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나이가 든 탓인지 아니면 아버지가 연만하시니 그런지 뭔가 좀 더 잘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그것이 곧 자식과 부모간의 인연이고 정이련가? 모처럼 가지고 온 가족사진을 꺼내 본다. 빙그레 미소가 나도 몰래 떠오른다. 정현이가 더욱 기승을 부릴테지. 내일쯤 다시 Wari Agent에 한번 다녀와야 겠다. 젠장!
10th. Apr(일)
출국한지 한 달 째다 새삼 세월이 덧없이 빨리 감을 느낀다. 다행한 일이다. 오늘은 유난히 맑은 날씨에 직사광선이 그대로 비친다. 오후에 Wari를 다녀오다. 동방호에서 Charterer측 Ashok Uttam 군을 만나다. 부두사정 때문이며 별 문제없으니 기다리란다. 이제는 모르겠다. 썩지만 않으면 된다. 왕복 3시간을 거을렀더니 가슴팍이랑 종아리 밑이 발갛게 익었다. 일부러 좀 거을리고 싶었던 지라 잘됐다. 그러나 며칠간 약한 볕에 조금씩 훈련을 쌓았으니까 따갑진 않다. 얇은 양말 신은 자리가 마치 선을 그은 듯 뚜렷하다.
C/O가 다시 병이 났다. 열병인가 마라리아인가 열이 39-40도까지 오른다. 걱정이다. 1/E가 며칠 앓더니 -. 3등항해사에게 최선을 다해 치료를 하게 했다. 약은 있지만 죄다 시효가 지난 것 같기도 하고 또 내용설명서가 없어 탈이다. 내일부턴 마라리아 예방약을 전부 복용시키고 좀 더 건강을 위한 유의책을 강구해야겠다. 안 되면 당장에라도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한다.
낮에 맑은 하늘이 뵈드니 석양빛이 유난히 곱다. 자색빛 강물 위에 부는 산들바람이 한결 시원하고 상쾌하다. 저녁엔 Orion좌 별자리가 선명히 보인다. 자연의 조화랄까. 한끗 감상에 젓게 하기도 한다. 오늘도 몇 척의 낯선 외국선박들이 입항했다. 언제 다들 풀고 떠나려는지? 이곳 항구 실정으로 봐선 아득하다. 아직도 4-5일 더 기다려야 한단다. 좋다! 세월은 가니까-.
설사가 멎는 듯 하다. 한결 가벼워진다. 몸과 마음이 -. 그러나 선원들의 건강이 차츰 신경쓰인다. 자신들의 최대한 노력을 해야 하고 또 하고들 있지만.
C/E가 너무 여자를 좋아하고 다소 가벼운 느낌이다. 입항시마다 직접 데리고 다녀야겠다. 천지를 모르는 듯도 하고-. 나이 값을 못한다.
11th. Apr(월)
아침 식사마치자 마자 손일하 일등항해사를 보트에 싣고 Wari병원으로 향하다. 마침 Agent만나 쉬기 안내 받았다. 병원치곤 어슬프고 의사도 의사 같지 않다. 책상하나에 구석에 약상자, 그나마 상자도 아니고 선반 같은데다 약을 담아두고 반대편 구석에 환자 뉘일 침대, 그리고 자기의 책상 위엔 청진기, 혈압계, 온도계. 손전등뿐이다. 진료서도 없고 그냥 아무 메모용지에다 끌적거린다. 흰 가운도 없다. 그냥 거리에 나서면 부두 노동자와 같은 차림이다. 그러나 친절 하나만은 고맙다. 환자가 바뀔 때마다. 소독하는 대야도 없다. 남녀구별도 없나보다. 아예 한영사전을 들고 갔다. 설사란 단어도, 구토증이란 말도 찾아줬다. 고열이 난다는 말은 글로써 가면 했고, 자기가 변소에 앉아 변보는 시늉을 해가며 물똥싸는 소리까지 내가면 그러냐고 한다. 결국 마라리아라고 판정한다. 주사 한 대, 약3봉지 받고 오다.
동방호에서 점심 먹고 약 두병 얻고- . 저녁때 해거름까지 기다리기로 했으나 C/O가 조금 나아진단다. 동방호는 우리보다 더 덥다. 남의 배에서 환자를 둘 수도 없어 서둘러 출발했다. 마침 Owining(덮개)도 준비됐고, 구름도 끼였기에 1시경에 나섰다. 도중에 억수 같은 소나기를 40분가량 만나 완전히 물 속에 잠긴 듯 했다. 으시시하기까지 한다. 전원이 7명인데 물에 덜 젖은 사람은 환자인 C/O뿐이었다. 감기에 걸리지나 않을는지. 한 명 병치료하려다 여러 명 잡겠다. 염려스럽다. 다행히 차도가 있다니 다행이다만 귀선하자마자 No.2가 아침부터 발열이 시작되고 있단다. 왜 이이럴까? 무조건 주사부터 놓아라고 지시했다. 결과는 일단 두고보자. C/O의 가뜩이나 마른 사람이 더욱 초라해 보여 안스럽다. 결국 놀고 버는 돈이 아니라고 농담을 했지만 전원 중 누가 갑자기 저리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나마 불편한 언어소통에 미덥지 못한 병원시설들인데 -. 종일 기분이 어둡다. 내일이나 모래쯤은 틀림없이 접안되겠다고 Agent나 Charterer측에서 얘기한다.
동방호의 하역사정을 보니까 아득하다. 오전에 겨우 한 트럭분을 했다니, 그래도 3-4일이면 끝난다고 하니, 어느 놈의 말이 맞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 배의 규모로는 15-20일은 봐야 하지 않을까?
동방호 국장에게 부탁, 출항하면 일단 집에 전보하나 쳐달라고 했다. “무사함. 편지내지 못했음 동방호에서 탁송함” 너무 염려할 것 같아서다.
‘Palle Scan'호의 Capt. 혼자 다녀가다. 내일 Wari서 서류 오는 데로 가져오겠단다. 얘기는 이제 그만이라고, 좀 더 말이 시원스레 통했으면 좋으련만 -.
동방호의 정남기 기관장의 얘기에 의하면 고열로 갑자기 넘어지고 헛소리하는 사람도 있었단다. 그럴 땐 주사가 가장 잘 듣는단다. 열이 40도이면 중환자이다. 다행이 전라도 출신으로 살짝 곰보인 3/O가 체구는 작아도 보건소에서 배운 기술로 무면허 치과의사(?) 경력이있어 주사라도 놓고 약도 취급할 줄 아는 게 얼마나 복인가. 워낙 단속이 심하고 재미도 없어 치우고 승선했노라고 했다.
오늘 저녁 현재 Bennte Island에서 대기중인 배가 17척이다. 부두사정을 감안하면 이놈의 나라도 앞길이 밤중이다. 대부분 Denmark, Greece선적이다. 일본 선적은 본선 ‘Hiroshima maru'뿐이다. 한국선적은 동방호뿐이고 -. 그러나 그 배도 곧 선적이 바뀔 예정이란다.
12th. Apr.(화)
C/O의 병세가 차도는 있으나 사람이 견디질 못한다. 열은 내리고 아픈 데는 없는데 구토가 심해 무엇하나 삼키질 못하니 이 더위에 체력이 쇠잔해졌는지도 모른다. OLB-2(기관원)도 마찬가지로 열은 내리나 구토가 있다. 점심 후 드디어 접안의 기별이 왔다. 새삼 이상한 기분이 든다. 14:55시 Wari항 Kanal-2에 접안. 즉시 일등항해사와 2조수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결국 C/O는 닝겔 한 병을 맞기로 했다.
19시부터 양하 개시. 일하는 모양이 속이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냉동 파이프에 부착된 얼음이 녹아 비같이 쏟아지면서 Carton(포장)을 적신다. 문제다.
21시경 C/O를 데리러 가다. 밤길의 검둥이들이 더 무섭다. 어둠과 같은 피부색깔! 사람은 안 뵈고 옷만 뵌다. 그나마 색깔 없는 옷을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C/O가 다소 생기가 돈다. 오늘 밤 자고 나면 풀려야 할텐데. 정작 아픈 사람도 그렇지만 대리점에서 일일이 수배하고 데려가지 않으니 내가 죽을 지경이다. 이러다가 내 자신이 병이 날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 며칠이나 걸리고 다음 항차는 어디로 될 것인가? 막연하다. 내일은 다시 보낼 서류들을 작성해야겠다. 가불도 좀 신청하고 -.
4월도 중순을 접어든다. 이 달 말까진 또 어딘가 바다 한 가운데를 헤메고 다니든가 아니면 닻을 내리고 있을 테지. 어쨌던 하루는 정확히 지나간다.
13th. Apr.(수)
밤새 몇 개나 풀었는지? 새벽4시 잠이 깨어 일단 하역상태를 확인하다. C/O가 병중이니 신경이 무척 쓰인다. 느릿하기 짝이 없지만 자기네들 일이니 별수 없고-.
대아에서 전보가 왔다. 하선희망자 2명 계약되로 6개월 계속 타란다. 역시 내 예측이 맞다. 이제 본인들의 의사에 달렸을 뿐이다.
앞에 접안중인 Greece선 ‘MIMOZA'호의 늙은 선장이 찾는다. 의외의 장기체류로 부식이 바닥이 났다고. 이곳에서 구입도 불가능하니 고기 몇 상자 팔아 달란다. 같은 뱃사람의 입장에서 그냥 두어 상자 주기로 했더니 고맙단다. 우리라고 그런 상황을 겪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젊은 선장이 몹시 부럽단다. 그러나 그의 깊이 패인 주름 속에는 젊은 시절 오대양을 누비던 패기가 깃들어 있는 듯하다.
C/O는 거의 회복이 된듯하나 아직 음식을 입에 넣지 못한다. 차츰 뭘 먹기만 하면 되겠는데 -. 맥이 빠지니 자꾸 눕기만 한다. 매시간 가서 누어있지만 말고 시원한 곳에서 앉아 쉬고 조금씩 움직이도록 권유한다. 3일 앓고 3달이 되어야 원상태로 돌아온다는 지독한 병이란다. OLB-2는 계속 구토증세가 있는 모양. 내일은 한 번 더 병원에 보내자.
종일 일이 집히지 않는다. 뭔가 불안한 느낌이다. 완전히 하역이 끝날 때가지 얼마나 걸릴란가. 오늘 저녁때 내린 심한 소나기로 근 1시간 반이나 중단되었다. 사입된 주부식, 청수가 걱정이고 환자들이 염려스럽다. 허지만 어쩔 수 없지. 누가 해주는 것도 아니고 오직 내가 해야 할 일들이니까. 동방호에 쌀을 다시 300Kg 건네주다. 그래도 서로 마음으로 협조가 되는 것은 내 민족뿐이 아닐까?
Agent의 Mr. Pete와 Rosaki 군, 협조를 잘 해주는 듯도 하다만 미리 준 맥주와 위스키의 힘 탓은 아닌지? 어찌 보면 보기보다 순하고 사람이 좋은 것 같기도 하다. 조금 배우고 책상에 앉아 일하는 사람과 노동자와는 완연히 다른 것 같다.
‘지성이란 모르는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다’는 어느 철인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볼 때마다 밥, 고기, 담배 달라는 부두인부와 비교해 보면 뭔가 다른 점이 있긴 하다. 역시 어디가나 같은 인간인 이상 사람나름이 이런가?
이범선씨의 소설 ‘하늘엔 흰구름이’라는 단편을 읽다. 자녀들을 고이 길러 첫딸을 시집보낸 아버지의 얘기다. 도시의 소시민, 중류가정, 크게 아쉬운 것이 없이 꾸려가는 살림살이 속에서 지난날 전쟁의 불운을 겪고 일어선 그 주인공의 느낌에 무척 공감이 간다. 앞으로 15-6년 후의 내 자신을 그려보게 한다. 내가 벌써 정화의 시집걱정을 하다니, 스스로를 돌이켜 본다. 또한 새삼 내 나이를 일깨운다. 명년 내후년이면 마흔이 아닌가! 그간 과연 무얼하고 아직도 이런 곳에서 방황을 할까? 오후에 정남기 기관장과 앉아 나눈 지난 얘기들 속에서 무척 후회스러움도 없지 않았다. 결국 이제야 여기 와서 2년을 버틴 생각을 했다면 벌써 Las(라스팔마스항)를 택해야 했는데 -. Las왔던 사람들이라고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주위에 있었던 사람들은 거의 뜻을 이뤘다. 水運(수운)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 역시 그게 나한테는 없었던가? 아니면 내 판단의 잘못이었던가? 과감하게 교단을 털고 나오던 때. 그때 벌써 무르익었던 당신과의 꿈, 막상 결혼과 더불어 닥치기 시작한 연속적인 불운, 그 가운데 태어난 정화, 그 때문에 그는 지금도 약한 체질을 갖고 있다. 하나 성실과 노력을 위해 가정마져 소홀히 하면서 쌓은 내 길이 결국 어긋나고 말았다. 어찌보면 내 자신의 경력에 비해 너무 급성장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좀 더 배를, 바다를 나아가서 수산사회를 이해 할 수 있었어야 했는데 -. 그게 또한 실책이었는지도 모른다. ‘자 이젠 어쩔것인가?’ 가 문제다. 누굴 쳐다보고 부러워한들, 또한 못난 사람보고 자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길은 택해져 있지 않는가. 새로 시작했으나 역시 예상보다 빨리는 됐다. 이제까지 보다 앞으로가 더욱 문제다. 2년을 더 이 짓하고 면허를 바꾼다면 과연 또 어떤 길이 있을까? 다소 적으나마 국내선으로 바꿔탄다면? 어쨌던 요 2-3년이 중요하다. 이제는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 어떤 결단, 또 한 번 새로운 시도를 위해 과감한 몸부림이 필요한 때다. 반면에 그것이 실패한 경우 재기하기 힘든 때가 또한 지금이기도 하다. 40대를 앞둔 지금이 가장 활발한 때가 아닌가.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매듭을 지어야 할 때다. 그러나 이제 다시 180도의 회전은 무리다. 어느 정도의 각도를 유지하면서 이 기반 위에서 세워야 한다. 그러는 동안 얘들은 커간다. 정화를 시집보낼 때가 어쩌면 곧 내일 모래같이 닥아 오고 말런지 모른다. 그래서 당신과 내가 주인공 모양으로 못내 서운해 하면서 코앞이 매캐해오는 걸 느끼며 담배통을 당길 그때까지 내 책임과 온갖 정성을 쏟아야 한다.
‘고기바구니가 비어서 서운한 것이 아니다, 가을이 깊었데서 처량한 것도 아니다. 딸애가 시집을 갔뎄어 섭섭할 것도 아닌데 그 까닭을 알 수 없는데도 그저 어쩐지 자꾸만 허전하고 서운한 것이다.’ - <하늘엔 흰구름이>의 끝 구절이다.
오늘 하루가 그랬다. 현재가 지루해서가 아니다. 선원들이 자꾸 병이 난데서도 아니고 하역작업이 꾸역꾸역 늦어지기 때문도 아닌데 어쩐지 마음이 차분하지 못하고 안절부절한 오늘이 되고 말았다. 맞지 않는 기후, 변칙적인 이곳의 부두사정, 그 속에서 정박 중 너무나 신경이 쓰임새가 많아서 그런가? 첫 항차를 마치면 다소 나아지겠지. 또한 그래야 남은 시간이 이겨나갈 수 있으니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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