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MTB의 역사에 대한 소고
1 Teaming의 시작
1996년 4월, 봄기운이 아직도 약간은 찬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주엽동에서 호수공원으로 넘어가는 육교를 두 대의 Specialized 자전거가 마주보고 지나쳤다. 한대는 빨간색의 S-Works, 또 한대는 검은색의 Stumpjumper.
두 자전거는 서로 지나친 뒤 약 20미터 쯤 가다가 동시에 브레이크를 잡고 뒤 돌아 보았다. 그리고 서로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금세 친해져서 자전거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하고 연락처 주고받고 다시 만나 라이딩을 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 두 사암은 당시 한국 MTB계의 전설적인 인물인 조동안님과 엠티비 경력 100킬로미터도 안되는 이승철님 이었다.
이것이 일산MTB의 시작이었다.
2. 회원 조직의 발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김용철님, 그리고 류기형님이 조인하였다.
그리고 회원은 급속하게 늘어갔다. 지나가다 MTB족이 보이면 다가가서 섭외했다. 그동안 수많은 회원이 스쳐갔다. 아쉬운 점은 여성회원이 없었다는 점이다. 너무 빡세게 타니까 그랬나보다.
John Matthew, Demian Hirsch 같은 미국인
강남으로 이사 간 이승철, 강창호
뉴질랜드로 이민 간 류기형. 캐나다로 이민 간 신동익
항영감님이나 경택수 형님, 박이사님과 같은 시니어 분들
그리고 지금은 안 나오시는 장의찬 의사, 주엽동 팀 일부 등 올드보이들
이 모든 것은 지금도 초심을 잃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는 조동안 회장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요사이는 이철구님을 중심으로 한 신한은행팀, 양성현님 등 새로운 멤버가 많이 보강되었다. 점점 건전하고 건강한 팀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회장이나 총무 같은 조직도 없이 이 정도 돌아가는 클럽은 없을 것이다. 정말 부담 없이 즐기는 자유 클럽임에 틀림없다.
3. 리이딩의 역사
96년 첫해는 정말 무섭게 자전거 탔다. 장맛비를 아랑곳 하지 않고 산야를 누볐다. 빗속에서 타면 브레이크 패드의 거의 반이 달았다.
그리고 벌써 내년이면 일산엠티비의 역사가 10년째에 들어선다.
그 동안의 투어링 역사는 이미 조회장님의 쓴 ‘지금까지 가 본 코스’에 잘 정리되어 있다. 이 리스트가 곧 일산MTB의 라이딩 역사이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우리만의 역사이다.
시중에 많은 클럽이 있지만 이만한 History를 가진 클럽은 없다. 정말 자랑스럽다. 내가 일산MTB를 아직도 안 떠나는 이유는 우리만의 문화와 역사이다.
4. 회원과 샾과의 관계
우리는 자전거로 모였기에 누구나 회원으로 환영하였다. 단 자전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은 회원으로 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유로운 자전거 구입과 회원활동에 불편을 줄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주소록에 회원으로 기록된 적이 없다. 다소 미안하지만 그 덕분에 10년을 한결같이 동호회가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나는 장소도 호수공원이다. 아지트가 없어서 다소 썰렁하지만 자유인을 지향하는 우리로서는 오히려 더 편하고 좋다.
오히려 여려 샾을 상대하니까 정보도 더 정확하게 얻고, 서비스나 가격도 더 나은 것 같았다.
5. 온라인의 역사
그 동안 우리의 사이트는 여러 차례 이사를 하였다. 여러 포털사이트를 거쳐 현재는 Freechal에 자리를 잡고 있다. 자전거가 좋아서 모인 오프라인 조직인 관계로 온라인 네트워크는 아무래도 취약하였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인터넷 사이트의 보강이 필요하다.
그래도 쓰잘떼기 없는 잡담과 술 먹는 이야기로 양을 채우는 다른 사이트와는 달리 그야 말로 자전거만 이야기하는 순수한 사이트를 운영해 왔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 나갈 것으로 믿는다.
6. 우리의 미래
주5일제가 정착되면서 MTB 인구는 급속히 늘 것이다. 그리고 동호회도 많이 생길 것이다.
우리 클럽은 이미 10년의 역사를 지닌 전통 있는 클럽으로서 명성을 쌓았다. 아무런 속박 없이 부담주지 않고 자유롭게 산야를 누빌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문화를 만들어 가야한다. 자유인의 문화를.
저희 동호회는
자유인인 동시에
자연인으로
거듭 태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