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하는 문제는 어느 한 순간에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최소한 퇴직 전 5년간은 준비했었다.
결정의 대전제는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면, 최소한 15년간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했다.
퇴직한 후라도 최소한 15년간은 의욕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퇴직 후 15년이 지나면 78세이다.
78세는 무엇을 새롭게 시작하기에 적당한 나이가 아니고 60에 시작한 일을 계속하기에도 체력적으로 한계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시점에서 뒤돌아 보았을 때, 아직 하지안았다면 후회 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림을 그려볼까,
악기를 하나 선택해서 배워 볼까,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기능을 배워 봉사활동을 할 생각도 해 보았다.
나에게 이런 종류의 일은 한다고 해도,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감을 느끼지 못할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첫번째 전제는 경제활동은 하지 않는 것이였다.
이런 조건을 고려해서 결국 결정한 것이 세계 여행이다.
15년 계속할 수 있는 장기간 여행임으로 반듯이 부부가 같이해야한다.
오래된 꿈이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아 가는 일이 젊고 건강하게 사는 방법이라 생각해서 결정했다.
비용 면을 고려해서 배낭여행을 선택했다.
물론 여유가 조금 더 있다고해도 배낭여행을 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렴한 게스트 하우스나 현지인이 사용하는 제일 싼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을 것이다.
결정하고 나니 , 여행의 질을 높이기 위해 언어 구사 능력은 필요했다.
하고싶다고 노력해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위치와 분수를 알아야한다. 63세에 새로운 언어?? 지금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 가능한지 생각해 보았다.
실현 가능하지 않는 일을 시도했다가 중도에 포기하게되다면 실망하고, 의기소침해지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필요하다고해도 우리 나이에 안되는 것은 포기하고 차선의 방법을 찾아야한다고 생각했다.
구글 번역기 기능을 편리하게 사용하는 기술을 익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세계 여행에 꼭 필요한 언어를 3개만 선택한다면 망서림 없이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이다.
여행 영어는 좀더 배우면 가능하겠다 싶다.
시도해 보자.
다음으로 필요한 언어는 중국어이다.
이 문제는 다행스럽게 dana가 잘한다.
맏는 구석이 있으니 나는 포기가 쉽다.
dana는 우리 집사람의 영어 이름 English name이다.
다음은 스페인어이다.
북미와 남미를 통틀어 영어를 쓰는 나라는 미국, 카나다, 벨리스 3개국뿐이다.
브라질이 포르투칼어를 사용하고 그 외 전 국가가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전세계 인구의 80%나 된다.
그래서 첫 여행지로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선택한 나라가 과태말라이다.
돌아보면 저비용으로 관광도 겸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었다.
과태말라는 1500년도부터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마야인이 사는 고산지대로 된 국가이다.
북으로 멕시코, 동으로 벨리스, 남으로 엘살바도로와 온두라스가 있는 중남미 국가이다.
우리에게는 커피로 유명한 나라이기도 하다.
미리 인터넷으로 학원과 홈스테이를 알아보고 신청서를 보냈다. 일대일로 강의하고 1일 4시간 교육을 한다.
모든 학원의 스페인어 강의는 미국이나 케나다인을 대상으로 교육함으로 영어로 강의하지만 일대일 대면 강의라 수강생의 능력에 맞게 강의한다 .
4월2일 문의한 인티구아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받은 매일에 확인 매일을 다시 보내주면 예약이 성사된다는 내용이었다.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었다.
매일을 보냈다.
도착하는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pick up 차를 보내주겠다고 한다.
결정하고 나니 걱정이 많다.
사람들이 풍토병 예방주사를 맞고 가라고 권한다.
그렇다고 강제 조항은 아니다.
볼리비아처럼 황열병 예방주사 접종 확인서가 있어야 입국 할 수 있는 나라는 아니다.
그러나 북부 맥시코 국경지역에는 갱단이 정부와 협상하는 보안이 걱정스러운 나라이기는 하다.
과태말라의 수도는 과태말라시티이다.
치안이 아주 불안하니 여행객은 경유만 하고, 체류하지 말라고 한다.
우리가 선택한 학원은 수도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안티구아이다.
1500년도부터 200년간 스페인 식민지 수도로 있었던 고도시이다.
1770년 화산폭팔로 폐허가 된 후 최근 복원된 도시 이다.
2015. 4 .3일 미국 텍사스에서 이륙한 에어로멕스코 항공은 2시간 50분 후 멕시코시티에 도착했다.
1시간 30분 기다린 후 과테말라행 비행기에 올랐다.
오후1시경 과테말라시티에 도착했다.
과테말라 국제 공항은 우리나라 중소도시 버스 터미널 규모로 시내에 있다.
비행장은 주택가와 펜스 하나로 경계지어 져 있고, 넓은 공터 위에 공항터미널과 몇 대의 작은 비행기가 전부였다.
공항 건물 내부로 환송객이 출입할 수 없고 승객만 출입이 가능했다.
짐을 찾아 건물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70년도로 돌아와 있는 착각이 들었다.
입구를 가득 매운 사람들이 서로 부등커 안고 이별 하는 장면이 곳곳에 보였다.
한 사람을 가운데 세워 놓고 아이와 어른이 서로 부등커 안고 오열을 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였다.
아마도 돈을 벌기위해 외국으로 나가는 아버지이자 남편이고 아들인 사람들같이 보였다.
입구를 가득매운 사람들 뒤에 내 이름이 적혀 있는 피켓을 들고 있는 중년 남성을 발견했다.
택시기사이고, 차는 kia bisto 소형차이다.
아마도 중고차를 수입해서 영업차로 사용하고 있는 모양이다.
여기 차들은 수송 수단이기는 하지만 매연을 생산하는 기계이기도 하다.
너무하다 싶다.
연료를 연기로, 시커먼 연기로 가는 차들 같다.
차 안에서 본 과태말라시는 거대한 빈민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운 타운을 제외하고는 도로변 낡은 건물에, 창문은 견고한 쇠창살로 되어있고,
고산이라 도시 곳곳에 계곡같이 깊이 파인 곳에는 버려진 쓰래기가 가득했다.
약 1시간 산길을 넘어가니 바로 안티구아 이다 .
안티구아의 도로는 주먹크기의 자갈로 포장되어있다.
시속15키로 정도로 달리는 차는 자갈 굴리는 소리를 내면서 간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간다.
언덕을 내려와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에 우리 게스트 하우스가 있다.
가옥이 특이한 구조이다.
담이 높다. 높은 대문을 열고 들어 가면 대문보다 더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작은 성같은 공간이 개인 주택이다 .
이 곳의 대부분의 집들이 이런 구조이다 .
중세 유럽의 가옥 구조가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 기사에게 약간의 팁을 주었다.
학원과 게스트하우스 계약 금액에 픽업 비용도 포함 된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결제하는 과정에 보니 40불이 부과되어 있다.
두 사람 1주일 비용 총합이 660불이었다.
두 사람 일주일 3끼 식사에 게스트 하우스 와 강의료 총합이 약 65만원인 셈이다.
산페드로 와 케찰테낭고에서 이어지는 학원 강의료와 체류비 중 가장 비싼 일주일이 된 셈이다.
이루마, 79세의 게스트하우스 여주인이다.
150미터의 단신에 금발의 백인이다.
일주일 머무는 동안 머리 카락하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지 못했다.
간단한 영어로 우리가 배우고 온 그날의 스페인어를 복습 할 수 있게 식탁 대화를 유도하는 센스있는 부인이었다 .
남편은 공무원으로 퇴직 한 분이지만 노환으로 귀가 먹어 대화 자체가 안되었다.
학원에서 우리를 가르치는 교사는 모두 마야인이다.
교사들은 안티구아 인근의 농촌에 살고 있고 ,일정한 자격을 취득한 교사들이다.
꼬깔 모양의 짚으로 된 지붕 밑에 2인용 테이블로 된 정자가 교실이고, 같은 구조의 원두막같은 교실이 숲속 정원에 배치되어있다.
시내에 있지만 높은 담으로 둘려 있어 또 다른 하나의 작은 세계인 셈이다.
오전 4시간 수업 후 귀가해서 점심을 먹고 오후 시간은 시내 관광을 하면서 보냈다.
안티구아,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다 .
도로까지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성당과 개인주택 그리고 관공소나 작업장들이 옛날 그 모습 그대로 도시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
도시 어디에서나 볼수 있는 이등변 삼각형의 활화산이 안티구아의 상징처럼 보인다.
오전에 배우고, 오후에는 도시를 관광하면서 일주일을 보냈다.
도시 전체가 유적지이지만 관광은 일주일이면 충분한 작은 도시이다.
관광도 할겸 다른 도시의 학원을 알아 보았다.
과테말라를 대표하는 마야의 유적지 외에는 관광지로는 아띠뜰란 호수가 있다 .
고산 위에 화산 분화구 같은 거대한 호수이다.
한 때 체 게바라가 혁명를 그만두고 이 곳에서 살고 싶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유명한 곳이다.
호숫가 12개 민족이 살고 있는 마을 중 산패드로에는 안티구아 같은 교육과정으로 운영하는 스페인어 학교가 많이 있다.
학교를 선택하고 등록신청을 했다.
폐허가된 성당 정원.
숙소 뒤 십자가 언덕, 전 도시를 조망하기 제일 좋은 곳이다.
거리에서 만난 여행자.
두 남녀는 거리 공연을 하며 세계 여행 중이다.
바퀴 하나인 자전거를 타고 지글링을 하는 묘기로 공연을 한다.
여자 아이는 얼굴에 항상 웃음을 담고 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새상은 무슨 색깔일까.
그녀는 노년을 생각하고 현재를 살고 있을까.
도시 전체는 자갈로 포장되어있고, 오래되어 검게 때가 덧씌워져 있다.
집들은 높은 담으로 둘려쌓여져 있고, 내부는 넓은 정원을 중심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거리에는 오래된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약간의 인테리어를 한 상점이 많다. 마치 식민지 시대에 살고있은 느낌이 든다.
지금은 바퀴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차가 지나 다니지만 초기에는 마차나 말를 타고 긴 총을 매고 있는 제복입는 군인이 다녔을 그 길이다.
거리 공원에서 점심을 먹고있는 dana.
20대 초반에 결혼하는 이 곳 젊은이들은 애정표현이 공공장소에서도 스스럼 없이 한다.
도시 곳곳에 허물어진 교회 건물이 있다.
우리 숙소 여주인 이루마.
버스 정류장 옆 재래시장.
시외버스 터미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