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인관과과학 케이앤듀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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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과학 요점정리 인간과과학요약 _ 2013년 인간과과학 연습문제[수정] 파일첨부|인간과과학(교양) 여현옥7기 | 조회 36 |추천 0 |2016.07.10. 23:26 http://cafe.daum.net/aonestudy/RHvs/29 인간과과학요약 _ 2013년 인간과과학 연습문제[수정] 파일첨부 첨부파일 인간과과학요약 요약13p.hwp 첨부파일 인간과과학_연습문제_수정.pdf |
1장 과학의 기원과 고대 그리스의 과학
1.1 과학의 은 언제 시작되었나?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합리적인 가설, 또는 이론체계를 만든다.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실험을 한다.
-자연을 설명하기 위한 가설의 체계를 만들어 나가는 활동이 일어난 때가 과학의 시초
1.2 고대 그리스 과학의 특징
-근대과학의 모습은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에게서 처음으로 발견된다.
-과학은 기원전 600년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밀레토스의 탈레스(Thales, BC 7세기)의 자연철학-신에 의존하는 방식 탈피, 자연에서 관찰 할 수 있는 것을 이용해서 설명
1.3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이집트:기원전 3000년경부터 역법, 수학, 의학 발달, 태양력 발명, 1년을 365일로 나눈 달력 사용,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고 시각을 정함,
-바빌로니아 : 60진법 사용
-수학은 실제적인 문제를 풀기위한 실용적인 것, 추상적인 이론의 단계로 나아가지 못함.
-초자연적인 것에서 벗어나지 못함.
1.4 탈레스와 밀레토스학파
-자연현상을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을 이용해서 설명
-다른 사람의 이론을 검토하고 비판
-기존 이론의 바탕 위에서 더욱 설득력이 높은 이론을 만들려는 노력
■아낙시만드로스 (Anaximandros, BC 6세기)
*우주는 작용하는 원리(arche)를 포함하고 있는 무한하고 정할 수 없는 것 (apeiron)
*생물체는 창조된 것이 아니라 축축한 것에서 자연적으로 발생
*변화의 과정을 거쳐서 여러가지 다른 모습을 가진 생물체가 된다
■아낙시메네스 (Anaximenes, BC 6세기)
*공기가 세계의 근원 물질
*공기의 희박화와 농축화에 의해서 각각 다른 물체가 생성된다
1.5 왜 고대 그리스에서만 과학이 시작되었는가?
-이집트, 바빌로니아, 중국은 전제군주제의 정치체제
-독립된 도시국가로 민주적인 정치체제로 자유롭게 사변하고 토론할 수 있는 여건.
1.6 변화의 문제
-밀레토스의 철학자들은 관찰하고 사변하는 감각과 정신의 활동에 대해 전혀 의문을 갖지 않음
-밀레토스학파 이후 감각과 정신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하는 철학자들이 나타남
1.7 헤라클레이토스(BC 500)
-감각은 불완전하다, 정신이 해석할 수 없다면 쓸모없는 것이다.
-만물은 끊임없이 흐른다, 변화한다(판타 레이, panta rhei)
-우주의 근원물질은 변화의 시발점이며 이것은 “불”
1.8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엘레아 학파
-감각을 통해 얻은 것은 모두 환상에 불과하다.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오직 이성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 존재는 오직 하나만 가능한 것이다.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으며 변화는 모두 외견상 그럴 뿐
1.9 파르메니데스 이후의 그리스 자연철학자들
(1)엠페도클레스(Empedokles, BC 5세기)
-파르메니데스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음
-감각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정신도 마찬가지로 불완전하다
-만물을 구성하는 뿌리 (rhizomata), 즉 근원물질은 흙, 물, 공기, 불의 사 원소
-파르메니데스의 변화는 없다는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존재의 다양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원소들의 결합과 분해를 통해서 엘레아 학파가 철저하게 부정한 변화와 운동을 좀더 설득력있게 설명하려 했다.
(2)아낙사고라스(Anaxagoras)
-자연철학을 파르메니데스가 남긴 문제에서 시작
-엠페도클레스와 마찬가지로 감각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
-감각을 통해서 얻은 것을 기초로 해서 관찰 불가능한 것에 대해 사변할 수 있다
-변화하지 않는 씨앗이 무수히 많다
-씨앗들은 각각 우리가 지각하는 성질을 하나씩 가지고 있으며, 어떤 물체든 간에 이 많은 씨앗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물체들이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가장 많이 들어있는 씨앗의 형태가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
(3)원자론
-레우키포스(Leukippos)와 데모크리토스(Demokritos, BC 5세기)
-엘레아 학파의 변화는 없다는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체로서는 변화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창조된 것도 아니고, 생성되지도 않고, 소멸되지도 않는다.
-헤라클레이토와 파르메니데스의 영향을 모두 받았다.
1.10 피타고라스(BC 6세기) 학파
-종교적 전통을 대표하는 자연철학자들
-대표하는 철학자는 플라톤
-일종의 종교집단
-혼이 모든 물체보다 먼저 존재했고, 세계는 정신이나, 계획이나, 신의 섭리에 의해서 지배
-육체는 영혼을 잠시 가두어두는 틀일 뿐
-영혼의 정화를 위한 도구를 수학에서 발견
-기하학과 수 이론에서 두드러진 발전
-세계를 구성하는 물체가 모두 추상적인 수로 이루어져 있다
-1은 점, 2는 선, 3은 면, 4는 입체라는 식의 주장
-플라톤과 헬레니즘 철학자들 그리고 나중에는 르네상스 자연철학자들에게 커다란 영향
제 2장 고대 그리스의 과학 :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2.1 플라톤 (Platon, 기원전 429? - 347)의 과학
-수학과 천문학의 연구가 본질(이데아, idea, form)의 세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기하학을 모르는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
-종교적 전통에 속했던 철학자
-세계를 우리 감각에 의해서 지각되는 현상의 세계(그림자에 불과)와 본질의 세계(영원불변)로 나누었다(파르메니데스의 변화하지 않는 존재의 영향)
-4 원소(흙,물,공기,불)를 기하학적 입체(정육면체,정이십면체,정팔면체,정사면체)로 보았다
2.2 플라톤의 물질이론
-4 원소들이 서로 변환될 수 있다(다면체들은 삼각형이라는 최소 단위로 나뉠 수 있다)
-우주는 완전한 공의 형태를 띠고 있고, 그 자체의 축을 중심으로 돌고 있으며, 지구는 그 중심에 고정되어 있다(탈레스 시대 : 물 위에 떠있는 원반형의 지구라고 생각)
-지구 주위는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 항성 등이 붙어 있는 천구들이 둘러싸고 있고, 이 천구들이 회전운동을 한다
-천구(天球)들의 반지름은 수학적인 조화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피타고라스 학파의 주장과 상통)
-르네상스기의 코페르니쿠스나 케플러 같은 자연철학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2.3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22)
-플라톤의 수제자
-플라톤을 모든 면에서 비판하고 부정
-모든 연구를 경험에 바탕을 두고 수행했다(수학과 천문학만을 중시했던 스승 플라톤과
크게 대비)
-어려서부터 의학수업
-생물학 연구
-뤼케이온이라는 학교를 세웠다(수백년 동안 존속하면서 그리스와 헬레니즘 과학의 발달에 기여)
2.4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
-기독교 교리에 위배되는 생각을 포함하고 있었음에도 불구 거의 이천년 동안 서양의 학문을 지배(뉴튼이 대학을 다닐 때인 17 세기 중엽에도 아리스텔레스의 학문은 유럽 대학의 주된 교과목)
-변화를 통해서 나타나는 새로운 존재를 무에서 생긴 것으로 보지 않고 변화하기 전의 존재 속에 들어 있는 잠재태가 현실태로 된 것
-물체 변화 네 가지 원인
1. 변화 후에도 남는 물질(질료인)
2. 변화 중에 현실로서 나타나는 형상(형상인)
3. 변화를 일으키는 작용(작용인)
4. 변화의 목적(목적인)
2.5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이론
-엠페도클레스의 사원소설을 받아들여서 세계의 근원물질은 흙, 물, 공기, 불이라고 보았다(네 원소는 끊임 없이 변환하고 있지만 변환 과정은 평형상태에 있기 때문에 지상 세계의 사원소의 양은 일정하게 유지된다)
-헬레니즘 시대에 물질의 변환 가능성을 믿고 천한 금속을 가지고 귀한 금속을 만들어 내려고 했던 연금술사들의 사상의 바탕이 되었다
-하늘은 다섯번째 원소인 아이테르 (aither)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
-진공을 부정
2.6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놓여 있는 우주 체계를 제시(자신의 사원소설의 논리적 결과):피타고라스의 제자인 필룰라오스는 기원전 6세기경에 우주의 중심에 불이 있고 그 주위를 지구,달, 태양, 다섯 개의 행성,항성천구가 차례대로 돌고 있는 우주체계 고안
-물리학 : 형이상학적 전제를 바탕으로 세워졌고 통일성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사변적이고 독단적이다
-생리학 : 정확한 관찰에 입각하려 기술-다윈 이전에 나온 생물학자 중에서 생물 세계를 이해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학자-많은 동식물을 수집하고 관찰하고 묘사했으며, 내장 기관을 조사하기 위해서 스스로 동물을 해부
-발생학, 생태학, 생식, 분류학 등에 관해 풍부한 연구를 남겼다
제3장 중세의 과학
3.1헬레니즘 시대의 과학
-에피쿠르스철학 : 세계에는 수많은 원자와 공허가 존재하며, 원자가 공호 속을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스토아철학(창시자 제논/BC335~BC263) : 세계는 가득 차 있고 연속적이며 그것을 구성하는 물질은 끊임없이 분해할 수 있다. 우주도 전체로서 하나의 거대한 생물체
3.2 알렉산드리아의 과학
-자연철학 연구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왕 : 학술련구기관 무제이온 세움
-에우클레이데스(BC330~BC275) : 기하학원론-수학지식을 체계화
-아르키메데스(BC287~BC212) : 나사와 기중기, 전쟁무기 고안
-아폴로니우스 : 원추곡선(타원, 포물선, 쌍곡선)
-헬레니즘시대에 처음으로 인테 해부 시작
-헤르필로스 : 뇌가 신경체게의 중심, 맥박 병 진단에 중요
-에라시스트라토스 : 생리적 과정을 역학적인 것으로 파악, 정맥과 동맥 구분
■갈레노스
*로마에서 활동, 의학과 생리학에 관한 많은 저작
*간에서 피가 만들어짐
*심장 격막에 구멍이 있음
*허파정맥이 피가 아니라 생명의 영이 가득 차 있음.
3.3 헬레니즘 시대의 천문학
■헤라클레이데스
*지구가 우주의 중심,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 바퀴씩 돈다.
*수성과 금성의 천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
■아리스타르코스
*태양과 달의 크기, 지구와의 거리 계산
*태양 중심의 우주체계 제시
*항성천구는 움직이지 않으며 달은 하루에 한 번 자전하는 지구 주위를 돈다
*시차가 관측되지 않는 것은 항성천구가 지구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
■아폴로니우스(BC3세기)
*행성드의 역운동과 불균일 운동, 사계절의 차이 설명을 위해 소원과 대심 도입
■히파르코스
*전체 관측의 결과 850개 이상의 별의 위치 정함 /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 중심설의 기본 자료가 됨
■프톨레마이오스
*알마게스트 저술 / 지구 중심의 우주체계
3.4 로마시대의 과학
-로마인은 행정, 도시 계획, 건축 등에서는 탁월 했지만 자연에 대한 탐구에는 관심이 없음
-폴로니우스(23~79) : 백과전서(자연사 37권) 편찬
-과학과 기술의 상호 작용이 존재하지 않았다 / 노예제 생산 체제
3.5 중세의 과학
-유럽의 중세는 서로마 제국이 붕괴하는 5세기 중엽~15세기 초
-서유럽의 중세 초부터 10세기 경까지는 학문의 불모시대
-중세 이전의 로마들인이 그리스인들이 남긴 찬란한 학문적 업적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음
-로마 초기의 학자들이 그리스 학문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일을 아주 등한히 했기 때문이다. -중세 초기의 기독교는 다른 어떤 학문보다도 성경연구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학문연구를 진작하기보다는 억제
-기술 발달 : 요인 중의 하나는 노예 공급의 감소 / 로마 제국이 세계 지배권을 상실한 결과 외부로부터 노예의 유입이 줄어듬, 인간이 신 앞에서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하는 기독교 교리
3.6 아랍 지역의 과학
-약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이슬람 문화의 지배영역 속에서 발달했던 과학
-8세기 중엽에 그리스 과학 저작들이 아랍어로 번역되는 번역 사업에 의해서 시작
-알-마문이란 칼리프는 바그다드에 지혜의 집이라는 이름을 가진 연구 센터를 세우고, 번역과 연구활동을 지원했다.
-바빌로니아,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 등지의 지식과 결합시키는 작업
-뛰어난 연구업적을 내놓은 학자 : 알-킨디, 알-하이셈, 그리고 아비케나, 아베로에스
-천문학만 제외하고는 더 발달하지 못함 / 학문에 적대적인 이슬람 정통파가 득세, 아랍세계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 나빠진 것
3.7 아랍 과학 도입과 중세의 대학
-아랍어로 번역된 그리스 학문과 이슬람화 된 그리스 학문의 본격적인 유입 : 11 세기 말에 이슬람이 지배하고 있던 스페인 남부의 톨레도와 시칠리아 섬이 함락됨으로써 시작
-라틴어로 옮기는 작업 시작됨 / 대다수가 아랍어본의 번역이었으며, 아랍어에서 스페인어를 거쳐서 라틴어로 번역되거나 아랍어에서 히브리어를 거쳐서 라틴어로 번역됨
-12세기에 활발하게 일어났던 번역 작업과 이로 인한 학문의 팽창을 12세기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번역으로 인한 학문의 양의 엄청난 팽창은 새로운 교육기관인 대학의 설립을 가져왔다. 대학이 설립되기 전까지 중세에서 교육을 주로 담당했던 기관은 수도원 학교와 성당 학교
3.8 대학의 성립
-대학은 12 세기 말 경부터 프랑스의 파리, 영국의 옥스포드, 이탈리아의 볼로냐와 파도바 등지에서 교수와 학생의 자치조합 또는 학생들만의 자치 조합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 대학들은 보통 교양학부, 법학부, 의학부, 신학부라는 4개의 학부로 구성되어 있었다.
-교양학부에서는 인문학 분야라 할 수 있는 삼학 (문법, 수사학, 논리학)과 자연과학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사학 (산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이 주로 가르쳐졌다.
-13 세기 초에 교양학부의 주된 교과목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과학, 철학 같은 학문이 차지: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이 거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고 있고 서로 통일되어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의 철학자들 중에서 자연주의적 전통에 서서 학문연구를 했기 때문에 그의 학문에는 기독교 교리에 위배되는 사상이 담겨 있었다.
-이중진리설 : 과학과 신앙의 영역을 분리하고 각각의 영역에 고유한 진리가 있다고 생각
-세계는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존재
-영혼은 육체와 함께 소멸
-세계는 인과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신의 기적 부정
3.9 아리스토텔레스 학문에 대한 단죄
-신학자들과 교양학부의 아리스토텔레스 추종자들 사이 마찰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철학에 대한 단죄(condemnation)가 단행되었다.
*세계에서 유일한 현자는 철학자들이다.(신학자들에 대한 모욕)
*아무 일도 우연히 일어나지 않고 모든 일은 필연에 의해 일어나며, 장래에 일어날 모든 미래의 일은 필연적인 것이다.
*최초의 원인(신)은 여러개의 세계를 만들 수 없었다.
*적당한 인자 (아버지와 사람과 같은)가 없으면, 사람은 신만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는 없다.
*신은 새로운 행위의 원인일 수도 없고,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 수도 없다.
*신은 하늘(즉 세계)을 움직여서 직선운동을 하게 할 수 없으며, 그 이유는 진공이 남기 때문이다.
3.10 중세 후기의 새로운 과학 논의
■오캄 (William of Ockham, 1285?-1349?)의 학설
*신의 전능과 자유
*창조된 것들 사이에는 어떠한 필연적 연관성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모든 지식은 선험적 추론이 아니라 직접적인 경험에 의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보편 개념이란 실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단지 개개의 물체를 나타내기 위한 이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장 뷔리당(옥스포드 대학의 머튼 학파)
*별들의 움직임 : 지구의 자전에 의해서도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
*뷔리당은 경험적 이유에서 지구는 정지해 있다는 결론
■니꼴 오렘
*지구가 돌 때 물과 공기도 함께 돈다
*운동의 상대성 도입
*지구가 도는가 하늘이 도는가 하는 문제는 철학적 방식으로는 결정할 수 없다는 결론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정지해 있고 하늘이 일주운동을 한다는 전통적 견해를 고수
*지구자전 논의 의미 : 이성적인 논의로는 참된 지식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참된 지식이란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생각
3.11 르네상스 시대의 과학
-르네상스기에는 중세 스콜라 학풍의 번역과 주해를 거부. 그리스 원전 자체를 중시. 근대과학의 출현에 영향을 미쳤던 헬레니즘 시대의 신플라톤주의, 헤르메스주의와 같은 신비주의에 관한 문헌들도 발굴했다.
-중세에는 학문적 저작과 학자들의 대화에서 라틴어만 사용되었던 것에 반해서, 17세기에 갈릴레이는 자신의 중요한 저작들을 이탈리아말로 썼다.
-출판물들의 보급에는 당시에 구텐베르크에 의해서 발명되었던 인쇄술이 커다란 역할
-관찰과 실험, 즉 직접적인 경험을 중시하는 경향
-과학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장인들의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갈릴레이는 자기 자신의 작업장을 가지고 있었고 이곳에서 손수 망원경을 제작
-케플러는 포도주 통의 부피를 재는 법을 제시
■신비주의 확산
*우주의 신비를 푸는 열쇠는 수학과 기하학에 있다고 하는 신플라톤주의
*우주는 신비적인 힘들로 가득 차 있는 네트워크이고 인간은 이 힘들과 상호작용해서 우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는 헤르메스주의
*인간이 본질적으로는 우주의 축소판이라고 하는 대우주-소우주 유비관계에 관한 생각
*성서를 숫자로써 풀려고 했던 카발라 전통
*뉴튼의 만유인력이란 개념도 신비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
*신비주의도 근대과학이 출현하는 데 기여
■르네상스 시대의 헤르메스주의
*소우주-대우주 유비 관계
*만물이 혼을 가지고 있다는 전심론
*세계의 각 지점들이 상호 작용 한다는 공감-반공감론
3.12 르네상스 시대의 과학자들
-특징 : 인문주의, 실용주의, 신비주의
3.13 쿠자누스
-독일 출신의 추기경으로 이탈리아에서 활동
-인간의 모든 인식은 수학적이고 기하학적인 비의 결정을 통해서 얻어 진다/케플러에 영향
-우주는 무한하다, 무한 속에는 중심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될수 없다
3.14 레오나르드 다빈치
-예술가면서 기술자/화가, 토목 기술자, 무기 기술자, 해부학자
-낙하운동, 투사체운동, 유체역학, 비행문제 연구, 낙하산 발명
3.15 파라겔수스
-3원리설 주장 : 물질이 황, 염, 수은으로 이루어 졌다/아리스토텔레스의 사원소설 부정
-수은을 이용한 매독 치료 성공
-인체는 우주의 축소판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 중에서 치료제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
-갈레노스의 의학 서적 공개적으로 태움
-농민 봉기 가담
3.16 근대과학의 시작
-과학 혁명은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중심체계를 내세운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가 발표된 1543년에 시작되어 뉴튼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가 출판된 1687년에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우주론과 천문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 우주체계가 코페르니쿠스-케플러의 태양중심의 우주체계
-역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스콜라 학파의 역학이 갈릴레이-뉴튼의 역학으로 대체되었다. -생리학에서는 중세에 완벽한 권위를 행사했던 갈레노스의 체계가 하비의 새로운 생리학 이론으로 바뀌었다.
-프란시스 베이컨, 데카르트, 갈릴레이가 새로운 과학연구 방법을 제시
-영국의 왕립학회, 프랑스의 과학아카데미 등 과학자들이 모여 집단적으로 발표하고 토론하는 과학단체들이 출현
제4장 천문학 혁명과 근대역학의 성립
-근대 이전: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
-근대 천문학이 확립됨에 따라 태양 중심의 우주체계
-1543년 코페르니쿠스는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라는 책에서 중세 이래 처음으로 태양 중심의 우주체계를 제시 / 원운동에 집착한다든가 천구의 개념을 그대로 사용
-독일의 천문학자 케플러: 티코 브라헤가 남긴 관측 자료를 가지고 케플러의 세가지 법칙을 발견함으로써 완전히 보완 / 태양중심의 우주체계가 거의 완벽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가지고 천체를 관측해서, 달의 모습과 목성의 위성 등을 발견함에 따라서 태양중심 우주체계는 일반인들에게도 퍼지게 되었다.
-천문학 혁명은 1687년 뉴튼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에서 보편 인력의 법칙을 발표하고, 행성의 궤도가 타원이라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함으로써 완결.
4.1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우주체계
-고대 그리스의 지구 중심의 우주체계 : 플라톤에서 시작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질이론을 바탕으로 지구중심체계를 정성적으로 매우 정교하게 만듬.
-피타고라스의 제자 필롤라오스 : 우주의 중심에는 불, 태양과 지구는 이 불 주위를 돈다
-헤라클레이데스 (기원전 388-310)는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지만 자전을 하고 있고, 금성과 수성은 태양 주위를 도는 우주체계를 제시
-지구중심의 우주체계는 2세기에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수학적으로 거의 완벽한 형태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체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과 결합해서 고대와 중세의 지배적인 우주체계가 되었다.
4.2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출현
-르네상스 시대에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체계에 처음으로 반대되는 생각
-고대의 헤라클레이데스나 아리스타르코스의 생각에 접하고 1510년 경에 이미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생각
-코멘타리올루스 (Comentariolus)라는 소책자에 자기 생각을 담아 유럽의 몇몇 천문학자들에게 보냄-공개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다/세상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될 것을 두려워해서
-태양중심의 우주체계는 그가 죽던 해인 1543년에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을 통해서 발표
■코페르니쿠스의 체계의 문제점
*행성들이 붙어서 돌고 있는 천구라는 개념을 그대로 사용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으로 천구들이 원운동을 한다는 견해를 고수
*관측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소원을 도입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와 마찬가지로 많은 천구가 뒤엉켜서 돌고 있는 복잡한 우주체계
*시차가 관찰되지 않는 것에 대해 고대의 아리스타르코스와 같이 우주가 매우 크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설명
*시차의 증명은 19세기에 들어와서 독일의 천문학자 베셀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티코 브라헤 : 지구중심체계와 태양중심 체계를 혼합한 일종의 타협적인 것, 수성과 금성만 지구 주위를 도는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이다.
4.3 티코브라헤
-천체 관측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김
-수성과 금성이 태양의 주위를 돈다
-케플러 초빙 공동 작업
4.4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
-근대 천문학의 아버지
-신비주의적 성향 : 신플라톤주의, 쿠자누스의 기하학적 신비주의, 코페르니쿠스의 우주체계 영향 -1596년에 우주의 신비 (Mysterium Cosmographycum)라는 책을 출판 - 신비적인 사변에 의한 결과를 담고 있는 책
-티코가 남긴 매우 귀중한 관측 자료를 모두 넘겨받아 약 5년 동안 화성의 궤도를 발견하기 위한 씨름
■케플러의 법칙
*제1 법칙 : 행성의 궤도가 타원을 그린다는 것(1609년 새로운 천문학에 발표)
*제2 법칙 : 행성과 태양을 잇는 선이 일정 시간 동안 지나간 면적은 항상 일정하다
*제3 법칙 : 행성 주기의 제곱과 태양으로부터 행성까지의 평균거리의 세제곱의 비는 일정하다는 것. (1619년에 우주의 조화라는 책에 발표)
4.5 갈릴레이의 발견
-태양중심체계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위해서는 수학적인 증명이 아니라 좀더 직접적인 증거가 나와야 했는데, 이 일은 갈릴레이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배율이 30배 되는 망원경을 제작해서 하늘을 관찰
-달이 지구와 마찬가지로 울퉁불퉁하고 산과 골짜기를 가지고 있으며, 목성이 네 개의 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 발견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구조를 완전히 뒤흔드는 획기적인 것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상세계가 완전한 원소로 구성되어 있고 달도 거의 완전하다고 보았는데, 갈릴레이의 발견으로 하늘의 완전성에 대한 믿음이 깨어졌기 때문
-목성이 위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
-갈릴레이는 자신의 이러한 발견을 1610년에 별들의 소식 (Sidereus Nuncius)이라는 책으로 발표
-금성이 달과 마찬가지로 차고 기운다 즉 금성에 상변화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이 현상은 금성이 태양 주위를 돌 때만 관측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태양중심체계를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증거
4.6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1687년에 뉴튼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Principia philosophia mathematica naturalia), 일명 프린키피아를 발표하여 천문학과 역학을 결합함으로써 태양중심체계는 최종적인 승리
-프린키피아에는 만유인력의 법칙과 이 법칙에 따라 행성이 타원 궤도를 그리면서 돈다는 것이 수학적으로 증명되어 있다.
4.7 갈릴레이 재판
-1610년 태양 중심 체계를 옹호하는 글 발표
-1616년 태양 중심설 가르쳐서도 안 되고 변호해서도 안 된다는 판정
-1632년 “두 개의 대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 이탈리아어로 출판
-1633년 종교재판 : 코페르니쿠스 체계 공개적으로 거부, 평생 가택연금 판결
4.8 역학의 근대화
-17 세기에 일어난 과학혁명 중에서 일반인에게 가장 커다란 충격을 준 것은 천문학 혁명 -과학 자체의 발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역학의 혁명 / 물리학의 수리화와 근대화
4.9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의 역학
-세계를 천상세계와 지상세계로 구분
-운동을 자연운동과 강제운동
-자연운동은 세가지로 지상세계의 상승운동과 낙하운동 그리고 천상세계의 완전한 원운동
-상승운동과 낙하운동은 지상세계에서 물체를 구성하는 원소가 자기 자신의 고유한 위치를 찾아가려는 경향 때문에 일어나고, 천상세계의 자연스럽고 완전한 원운동은 하늘을 구성하는 아이테르라는 원소가 완전한 원소이기 때문에 일어난다.
-낙하하는 물체는, 그것의 무게가 크면 클수록 그리고 그것이 통과하는 매질의 밀도가 작으면 작을수록 더 빨리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낙하운동과 투사체 운동에 관한 이론의 필연적인 결과로서 진공의 존재를 부정했다.
4.10 중세의 역학
-유명론자들을 중심으로 조금 근대적인 생각들 - 진공이 존재할 수 있다고 가정 - 진공 속에서 낙하하는 물체들의 속도는 그것들이 만일 동일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을 경우에는 무게에 상관없이 항상 똑같다는 결론
-영국 머튼 칼리지 학자, 프랑스 니콜 오렘 : 자유 낙하운동에서 물체가 지나간 거리와 속도의 관계 연구
4.11 근대역학의 탄생
-근대 역학은 갈릴레이에서 시작되었다.
-대학에서 공부할 때부터 그의 주된 관심은 운동의 문제
-피사 대학에 다닐 때부터 진자의 주기는 진폭에 상관없이 일정하다는 진자의 등시성(等時性)을 발견
-연금상태에 들어간 뒤에 자기 집에 칩거하면서 그의 역학에 관한 역작인 “두 개의 새 과학에 관한 논의” 를 집필 : 1638년에 출판, 역학에 관한 최종 결과 집대성.
-갈릴레이는 운동을 양적으로, 다시 말하면 수학적으로 기술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수학적 기술은 아르키메데스의 영향
4.12 갈릴레이의 낙체법칙과 투사체 운동
-낙하하는 물체가 서로 다른 속도를 가지고 떨어지는 것은 매질 때문이라고 가정
-비중이 서로 다른 여러 물체를 밀도가 다른 매질 속에서 통과시켰을 때 가벼운 물체가 밀도가 높은 매질 속에서는 대단히 천천히 떨어진다는 사실에서 도출
-진공 속에서 물체가 떨어진다는 사고 실험을 설정하여 그 속에서는 모든 물체가 똑 같이 빨리 떨아진다는 낙체의 제1법칙을 도출했다.
-이상적인 상황으로서 진공이 가정-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의 엄격하게 경험적인 방식과는 정반대되는 것
-갈릴레이의 낙체의 제2법칙은 낙하하는 물체가 통과한 거리는 낙하시간의 제곱에 비례
-강제운동과 자연운동이 동시에 일어날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거부
-처음으로 물체는 동시에 두 가지 운동에 참여할 수 있다는 매우 획기적인 생각
-대포알의 운동과 같은 투사체 운동은 수평 방향의 등속운동과 수직 방향의 등가속도 운동이 결합된 것으로 단순화할 수 있으며, 이 경우 대포알의 궤도는 포물선이라는 것이증명
4.13 관성 개념의 확립
-지구가 돌 때 수직으로 던져진 물체가 뒤로 가서 떨어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지구상의 모든 물체는 지구의 원운동을 그대로 지니며 돌고 있다고 주장
-초보적인 관성 개념의 싹
4.14 데카르트
-갈릴레이 초보적인 관성개념을 직선운동의 관성개념으로 확장
-직선 관성운동 도출 : 운동하는 물체는 항상 직선 경로를 따르려는 경향이 있다
-원 운동에 원심력이 존재한다
-운동의 보존 원리 : 충돌 전후의 운동의 합은 일정
-네덜란드 호이겐스는 데카르트의 연구에 깊이를 더해 역학의 근대화에 기여
-토리첼리, 라이프니츠 동역학의 발달에 기여
4.15 뉴턴의 역학 및 천문학의 종합
-천문학과 역학, 이론과 실험, 수학과 자연철학의 종합
-수리물리학자, 신학 연구자, 연금술 연구자, 행정가
4.16 뉴턴의 생애 연구
-1660년 케임브리지대 입학 수학, 광학, 천문학 공부
-1665년~1666년 미적분법 발견, 색체이론
-1669년 케임브리지대 교수
-1675년 빛이 색체를 가진 광선의 집합, 프리즘 실험 증명, 후크와 논쟁
4.17 뉴턴의 프린키피아 출판
-핼리와의 만남을 계기로 1687년 프린키피아(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라티어) 출판, 과학혁명의 완성
-1684년 라이프니츠 미적분법 발표, 뉴턴의 발견 무시됨
-조폐국장 취임
-1703년 왕립협회 회장 취임
-1704년 광학 출판 : 영어, 실험적
-색수차가 생기지 않는 망원경 최초 제작 : 수공업적 작업 경시하지 않음
-만유인력을 도입하여 행성의 궤도가 타원이라는 것을 증명-헤르메스주의의 영향(우주는 신비한 힘들로 짜여진 그물과 같은 것이고 이 힘들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인간도 이 힘들과 작용해서 자연세계의 현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프린키피아에서 만유인력과 여러가지 운동의 법칙을 제시함으로써 역학의 혁명도 완성
-영국의 로버트 후크도 인력이 거리에 비례해서 감소한다는 생각
-뉴턴이 다른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달랐던 점은 그가 만유인력의 법칙과 그의 운동법칙들 을 사용해서 행성의 운동을 기술하는 케플러의 세가지 법칙을 수학적으로 유도해 냈다는 것. 태양과 행성 사이에 인력이 존재 하며 행성들의 운행이 보편인력과 뉴턴의 운동법칙 에 의해서 수학적으로 기술될 수 있다는 것. 이렇게 해서 근대역학이 확립되는 것이다.
■뉴튼의 운동 법칙
*제 1법칙 : 모든 물체는 외부의 원인에 의해서 방해를 받지 않는 한 정지 상태나 직선등속 운동 상태를 자연스럽게 지속한다는 관성의 법칙
*제 2법칙 : 운동의 변화와 힘의 관계에 관한 법칙으로 운동 중에 일어나는 변화는 가해진 힘에 비례하고, 그 힘이 가해진 직선의 방향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제 3법칙 :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로서 두 물체 사이의 힘과 그 반대 힘은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라는 것이다.
4.18 뉴턴의 신비주의적 경향과 뉴턴의 영향
-연금술에도 많은 관심 : 물질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함
-인간의 초기 역사와 신화에 관심, 창조연대 계산
-뉴턴의 과학은 수학적, 합리적, 경험적, 실험적 방법 사용 : 게몽사조에 영향
제5장 근대생리학의 성립과 근대적 과학방법
-그리스 학자들은 생물을 식물, 동물, 인간으로 나누어서 생각
-생물체는 성장의 원리(식물;자연의 영), 운동의 원리(동물:생명의 영), 사고의 원리(인간:정신의 영)라는 세가지 원리 중에서 한가지 또는 그 이상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
-갈레노스 :생리 이론을 인간의 소화, 호흡, 신경 체계와 결합해서 설명하는 독창적인 이론
5.1 갈레노스(Galenos, Galen‘ AD 2)의 생리학 이론
-정맥과 동맥을 서로 독립적인 체계로 구분하고, 완전히 다른 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았다. -정맥피는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정맥을 통해 인체의 각 부분에 보내져서 주로 그것을 성장시키는 데 사용된다.
-간에서 피 생성, 정맥을 통해서 인체의 각 부분으로 흘러가서 소비
-심장격막에 구멍이 있다
-허파와 심장을 연결하는 폐정맥이 공기로 가득 차 있다
-갈레노스의 이론은 중세에 아랍세계를 통해서 유럽에 전해졌다.
5.2 르네상스 시대의 해부학자들
-고대의 원전을 중시하는 경향. 갈레노스의 저작들이 대부분 라틴어로 편찬
-갈레노스의 해부학 연구가 가장 활발하게 수행되었던 곳은 이탈리아의 파도바 대학/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1564)와 콜롬보 (Matteo Realdo Colombo, 1516-1559) 파브리치우스(Girolamo Fabricius, 1533-1619) 같은 학자들이 해부학 연구를 통해 갈레노스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실들을 발견
-베살리우스 : 심장격막에는 갈레노스의 이론과는 달리 구멍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에 발표
-파브리치우스 : 정맥에 판막이 있다는 것을 발견, 단지 정맥피의 힘을 약하게 하고 신체 각 부분이 영양분을 골고루 공급받을 수 있도록 피의 속도를 늦추는 작용을 한다고 보았다.
5.3 윌리엄 하비와 생리학의 근대화
-갈레노스 생리학은 영국의 윌리엄 하비가 혈액순환 이론을 확립함으로써 무너진다.
-하비가 심장을 연구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심장을 동물의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 보았기 때문
-심장이 소우주의 중심이고 대우주의 중심인 태양과 같다는 하비의 말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소우주-대우주 유비관계 영향을 엿볼 수 있음
-많은 종류의 동물들을 살아 있는 채로 해부했다. 그 이유는 심장의 작용을 좀더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였는데, 따라서 그는 특히 심장 박동이 느리기 때문에 관찰하기가 쉬운 냉혈동물의 심장을 연구했다.
-대정맥을 통해서 우심실로 들어간 피는 허파동맥을 통해서 모두 허파로 들어가고 허파를 통과한 후에는 좌심실로 전달된다는 사실을 발견
-우심실에 판막이 있으며 이 판막이 피가 반대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막는 작용을 한다는 사실도 발견, 또한 허파를 통해서 좌심실로 들어간 피는 심장이 수축함에 따라 대동맥을 통해서 동맥계로 흘러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5.4 하비의 혈액순환의 발견
-피가 온 몸을 통해서 계속해서 흐른다
-좌심실에서 동맥으로 흘러가는 혈액의 양이 동물 신체에 들어 있는 혈액 전체의 양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계산을 통해서 보여 주었다.
-하비의 실험 중에서 가장 유명했던 것은 결찰사(結紮絲) 실험이었다.
-하비가 수행한 또 한가지 실험은 혈관에 가는 철사를 주입하는 것이었다. 이때 그는 철사가 한쪽 방향으로만 잘 들어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628년에 출판된 “심장과 피의 운동에 관하여 (De motu cordis et sanguinis)”라는 책에다 발표했다.
-정맥과 동맥을 연결하는 모세혈관의 존재를 보여주지 못함
-피가 왜 허파를 통과하는가 하는 호흡과 관련된 문제도 설명하지 못했다.
-모세혈관의 발견은 1661년에 말피기(Marcello Malpighi, 1628-1694)에 의해서 이루어짐
5.5 근대적 과학방법
-17세기 새로운 과학 연구방법 추구 : 베이컨과 데카르트
5.6 베이컨과 귀납적 방법
-법학을 공부했다.
-과학만이 진리와 인류번영에의 열쇠를 제공할 수 있고, 경험주의만이 올바른 과학연구의 열쇠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
-그의 경험주의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놓고 관찰하는 데서 출발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경험주의와는 다른 것이다.
-현대과학은 베이컨주의에 입각해 있다
-그 전에는 과학이란 자연을 그대로 관찰해서 그것의 운행과 이치를 찾으려는 활동
-베이컨은 자연이란 인간에게 봉사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과학이라고 생각
-환경문제는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해결된다는 생각 : 베이컨주의
-베이컨은 16세기의 파라켈수스와 같이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학문을 가르치는 대학을 비판하는 데서 출발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은 올바른 방향에서 자연을 탐구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들의 연구를 비판하고 거부함으로써 이 올바른 자연탐구가 상실되었다고 주장
-베이컨은 우선 그때까지 축적된 그리스 학문과 그에 대한 주석을 모두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집된 사실을 바탕으로 참된 이론과 자연법칙을 도출할 수 있다-귀납적 방법-왕립학회 회원들은 대부분 베이컨주의자였으며, 지식이 힘이라는 베이컨의 주장을 믿는 사람들
5.7 데카르트와 연역적 방법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라는 말은 자기 자신의 실재를 믿는다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신은 그 자신의 자유 의지에 다라 수학적 진리들을 영원하고 불변한 것으로 확정했다. 수학적 진리들은 자연의 법칙인데, 신은 이것들을 인간에게 선물처럼 주었다.
-모든 자연현상을 기계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던 기계적 철학을 체계화했는데, 이는 그의 방법이 연역적이고 수학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주가 물질(외연, 연장)로 가득차 있고 기계적인 접촉에 의해서 운행한다는 기계적인 우주체계를 제시했다. -우주에 대한 생기론적 설명이나 헤르메스주의의 신비적인 원격작용 그리고 뉴튼의 인력개념을 거부했다. -연역적 방법과 기계적 철학은 18세기 중엽까지 프랑스와 독일의 대륙과학에 영향을 미쳤는데, 그 결과 과학의 발전을 저해하기도 했다.
5.8 갈릴레이의 과학 연구방법
-수학적으로 그술할 수 있는 문제설정-기본 가정을 만듬-실험 도는 사고 실험을 통해 검증
5.9 과학단체의 출현
-중세에는 현대와 마찬가지로 과학활동의 중심이 대학, 16,17세기에 들어오면 대학은 오히려 새로운 과학의 출현에 방해요인으로 작용
-대학은 12세기에 아랍세계를 통해서 고대 그리스의 학문이 급격히 유입되면서 설립되었는데, 이 대학에서 주로 가르쳐졌던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이었다.
-그의 학문은 기독교 신앙에 위배되는 면을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신학자들과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 사이에서 마찰
-이탈리아 린체이 아카데미 : 갈릴레이도 회원
-피렌체 실험 아카데미 ; 공동 실험
5.10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메르센느 : 비공식 / 자연철학 토론
-최초의 본격적인 과학단체 : 몽모르 아카데미
-1666년 재무상 콜배르 주선 왕립 과학 아카데미 설립
-국가의 후원을 받았고, 동시에 국가의 통제를 받았다.
-재정이 풍부했기 때문에 지구의 크기를 측정하는 연구와 같이 개인으로서는 할 수 없었던 대규모 관측이 수반되어야만 가능한 연구도 수행할 수 있었다,
5.11 영국 왕립협회
-1662년에 찰스 2세의 재가를 받아 왕립학회(Royal Society)라는 공식명칭을 얻었다.
-왕립학회는 지금까지도 존재하는 학회로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학술단체이다.
-왕으로부터 받은 혜택은 전혀 없었던 순수한 민간단체였다.
-철학회보 발간
-왕립학회는 과학아카데미보다 재정이나 조직면에서 빈약하기는 했지만, 17세기 말에 들어서면 유럽과학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정보수집이나 교환 등을 통해서 여러가지 과학활동을 격려할 수 있었던 왕립학회가 더 적합했던 것.
5.12 근대적인 과학 실험장치의 출현
-망원경, 현미경, 정밀시계, 온도계, 기압계, 공기펌프 등
-망원경: 갈릴레이는 획기적인 천체 현상을 발견하는 데 이 기구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현미경 : 하비의 피의 순환이론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줌으로써 생물학 연구의 지평을 크게 넓혀주었다.
-공기펌프 : 중세까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던 진공을 만들고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과학자들에게 제공했다. 이 진공펌프를 가지고 처음으로 여러가지 과학실험을 했던 사람은 영국의 과학자 로버트 보일이었다.
제6장 근대화학과 진화론의 성립
-16세기와 17세기에 형성된 근대과학에는 화학은 포함되어 있지 않음
-화학분야의 혁명적인 전환을 이룩할 이론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라부아지에와 돌턴에 의해 확립
-라부아지에의 연소이론과 원소이론 그리고 돌턴의 원자론이 19세기에 화학이 급속도로 발달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
- 화학도 학문으로서 정립되어야 한다는 생각 : 17세기 영국의 로버트 보일
6.1 플로기스톤 이론
-독일 슈탈이 파라켈수스의 3원리설을 발전시켜 체계화한 것
-산소라고 하는 아주 새로운 물질의 발견/프리스틀리가 발견했으나 플로기스톤을 뽑아내는 공기라고 부름
6.2 라부아지에와 근대화학의 성립
-프리스틀 리가 뱔견한 기체가 산소라는 사실을 밝혀냄
-연소이론을 확립하고 화학명명법을 도입함으로써 근대화학의 기틀을 마련함
-연소 과정중에 생성된 기체의 무게는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늘어난다는 것 확인
-프루스트의 일정성분비의 법칙, 돌튼의 원자론과 배수비례의 법칙에 의해서 화합물의 조성이 설명되면서 화학 분야의 혁명 완성
6.3 진화론의 성립
-생물학은 18세기를 거쳐 19세기에 들어와서야 진화론, 유전학, 근대적인 분류학이 성립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벗어나 근대과학의 면모를 갖추게 됨
6.4 진화론의 성립에 영향을 준 학문 분야들
-진화론은 다윈 한 사람의 노력에 의해서 성립한 것은 아니다. 월리스가 말레이지아 군도를 여행하면서 자연선택의 반복에 의한 생물진화라는 생각에 도달했고 이것을 다윈보다 먼저 발표하려 함.
6.5 지질학
-지층의 생성이론 출현 : 수성론과 화성론
-수성론(베르너)은 지층의 형성에서 물의 작용을 중시하는 이론
-최초의 원시대양에서 변화 시작
-처음에 물이 어디서 와서 어떻게 줄어들었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6.6 화성론
-대표적 인물 : 영국의 허튼
-열의 역할을 중시하는 이론, 진화 관념의 형성에 영향
-오래전부터 육지가 존재, 지구 내부의 열과 압력에 의해 융기하고 이동하고 변형
-생물체가 갑자기 창조된 것이 아니라 긴 시간을 통해서 점점 변화되었다는 진화의 관념이 형성되는데 기여
6.7 자연신학
-자연신학의 목적은 신이 창조한 자연을 관찰함으로써 신의 섭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19세기 초에 영국에서 활동했던 자연신학자 페일리(William Paley)의 유명한 유비관계.
-자연신학이 진화관념의 형성에 공헌한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물의 적응이라는 문제에 관한 연구
-생물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신의 자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과정에 의해서 그렇게 된다는 생각을 하면, 바로 진화라는 생각이 도출된다.-진회관념의 형성에 기여
6.8 고생물학
-화석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 프랑스의 라마르크와 퀴비에
-라마르크 : 생물이 진화 했다는 결론
-퀴비에 : 격변설, 종의 변화나 진화 가능성 부정
-진화론 확립에 많은 자료 제공
6.9 분류학
-린네 : 진화 관념의 형성에 기여
6.10 다윈
-1831~1836년 비글호 항해
-생물이 진화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커다란 영향 : 라이엘의 “지질학의 원리“
-생물을 인위적으로 선택해서 번식시키면, 많은 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
6.11 진화론 체제의 발견
-1838년 가을에 다윈은 우연히 맬더스의 인구론을 읽게 되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찾았던 해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생존경쟁을 생물체에 적용/생존을 위한 싸움에서 변이를 일으키는 힘을 발견
-적응 능력이 강한 개체가 남는 과정을 그는 인위선택과 대비되는 개념을 사용해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라고 불렀다.
6.12 윌리스의 등장과 “종의 기원” 출판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견해는 두 사람(윌리스, 다윈)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신학자들의 반발 : 토마스 헉슬리 방어(윌버포스와의 논쟁)
-다윈 진화론의 영향 - 사회 다윈주의 : 영국의 철학자 스펜서(Herbert Spencer). 그는 적자 생존 (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말을 만들어냈고, 거의 모든 사회현상에 이 진화 관념을 적용했다.
-다윈의 이론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변이가 어떤 방식으로 유전되는가 하는 것 : 유전의 문제는 오스트리아의 수도사 멘델에 의해서 해결/1900년 드 프리스, 코렌스, 체르막의 재발견에 의해 인정 받음
제 7장 현대과학의 출현
-다윈의 진화이론과 맨델의 유전법칙으로 생물학도 기계론적 과학의 지배 아래 들어감
-18~19세기 낭만주의, 독일의 자연철학 : 기계론으로부터 유기체적 자연으로 회귀 주장
7.1 괴테와 독일 자연철학
-다윈의 진화이론과 멘델의 유전법칙으로 이제 생물학마저 기계론적 과학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18, 19세기에 낭만주의와 독일 자연철학이 등장하여 기계론으로부터 유기체적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 낭만주의적 ‘반동’에 가담, 독일 계몽사조의 최고봉, 과학 이외의 부문에서는 대단히 계몽적이었지만 과학에서는 뉴턴적인 냉혹한 과학을 따뜻한 것으로 만들고 싶어했고, 그의 이러한 의도가 낭만주의적 과학으로 나아가게 했던 것이다. -뉴턴 과학에 대한 적대감 : 고대 이래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자, 입자, 프리즘으로 분해된 광선과 같은 고정적.분절적인 자연에 반대하여 생물학적인 연속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뉴턴의 오류는 실험과 추상화에 기초한 그의 방법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으로 보았다.
-‘자연의 근원까지 파헤쳐 들어가면 화가 있을 것’ : 자연을 수학을 사용하여 추상화하고, 망원경, 프리즘, 거울 등의 도구를 들이대어 자연을 조작하고 괴롭힘으로써 결국 자연으로부터 생명을 앗아가고 만다.
-자연에 다시 생기를 불어 넣으려는 괴테의 생물학적 낭만주의는 독일에서 자연철학(Naturphilosophie)이라는 학파를 낳는 데 영향을 미쳤고, 자연철학은 독일 과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실제의 과학적 성과가 별로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19세기 말이 되면 자연철학은 기계론적 과학에 완전히 패퇴당하고 만다.
7.2 과학과 기술의 접근
-자연철학을 일축한 근대과학은 19세기 말에 기술과 결합하기 시작
-기술자들은 과학의 방법이나 지식을 기술 혁신에 이용하려 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 최초로 나타난 분야는 무기화학 및 유기화학과 전기 분야였다.
-19세기 독일의 화학자 리비히(Justus von Liebig, 1803-73)는 식물을 화학적으로 분석하여 영양 물질로서 무기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하여 무기질 비료를 발명
-유기화학자들은 유기합성 및 분석 중에 발견된 유기물질을 인공 염료로 만드는 데 성공함-19세기 중엽에 이루어진 전기 현상에 관한 많은 과학적 발견 : 발전기, 전동기, 조명
-근대과학은 기술을 포함하고 있고 이 기술의 뒷받침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모든 과학적 발견은 기술적 응용에 속박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유럽에서 태어난 근대과학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물적인 조건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7.3 양자이론과 상대성 이론
■양자이론( 보어, 하이젠베르크, 파울리, 디락, 보른)
*현대물리학의 발전에 상대성이론 못지않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이론,
*미시세계의 사물들이 거시세계의 그것과 달리 불연속적이고 확률적인 방식으로 존재하고 운동한다고 주장함으로써, 300년 이상 지속되어 온 뉴턴-패러다임(자연을 하나의 거대한 기계, 즉 인과적이고 결정론적인 관계들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와 같다고 생각하였다)을 부정하였다.
*양자개념(막스 플랑크) : 고전적인 연속성 대신 불연속성이 강조된다. 빛 에너지가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어떤 연속체가 아니라, 불연속적으로 존재하는 에너지 양자로 되어 있음
*양자이론에 따르면 우연 혹은 확률과 예측불가능성이 이 우주를 지배
*미래의 상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오직 확률적 예측만이 가능하다
*양자이론은 미래의 발생 가능한 현상에 대해 확률적인 예측만을 제공해 줄 뿐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로 이에 강하게 반발
*양자역학의 입장에서는 근본적으로 입자의 위치 x와 운동량 p를 동시에 확정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
*1927년 하이젠베르크가 정식화한 불확정성원리 : 한 입자의 물리량에 대한 측정결과가 반드시 확정된 값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여러 값들의 확률적 분포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특수상대성 이론
*특수상대성 이론을 뒷받침하는 두가지 원리는 광속불변의 원리와 상대성 원리이다.
*광속불변의 원리는 빛의 속도는 어떤 경우에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관측자의 운동속도에 따라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은 또한 물질이 에너지와 등가라고 하는 법칙도 발견 : E=mc(2제곱)
7.4 현대 과학기술과 원자탄 개발
-현대과학은 냉전이데올로기의 강한 영향 속에서 중앙집중화,거대화의 길을 걸었다.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개발, 핵발전, 우주탐사, 거대 입자가속기, 핵융합 등의 과학기술은 모두 냉전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산물
7.5 핵분열의 발견
-1919년 영국의 실험물리학자 러더퍼드 :질소 원자를 알파 입자로 쏘았을 때 새로운 원소(산소)가 생성된다는 사실 발견
-1932년 채드윅 중성자 발견
-원소 변환 실험에 중성의 입자 이용 생각 : 파리의 졸리오 퀴리 부부, 로마의 엔리코 페르미, 베를린의 오토 한과 리제 마이트너
-페르미 : 우라늄을 중성자로 포격했을 때 초우라늄 원소가 생성된다 / 틀린 판단-핵분열 물질이 생성된 것
-오토 한과 슈트라스만 우라늄에 대한 중성자 포격에 의해 생성되는 물질은 바륨과 크립튼이라는 사실 발견하고 1938년 12월 학술비에 발표
-1939년 졸리오 퀴리 우라늄이 분열할 때 중성자가 생성된다 것과 연쇄반응이 일어난다는 내용 네이쳐에 발표
7.6 미국과 독일의 원자탄 개발 과정
-2차 세계대전 발발하자 독일에서 원자무기의 개발 가능성 검토 시작
-미국에서는 실라르드 등 망명 유대인을 중심으로 미국 정부로 하여금 원자탄을 개발하게 하려는 움직임
7.7 맨해튼 계획과 원자탄 개발
-1942년 6월 맨해튼 계획 수립
-1945년 7월 최초의 원자탄 폭발 실험 성공
7.8 원자탄 사용 반대운동
-프랑크 보고서 : 세계 사람들의 반대와 경약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원자탄의 사용 반대
7.9 독일의 원자무기 연구
-원자탄 개발에 소극적
7.10 원자탄의 원리와 파괴적 작용
-핵전쟁의 더욱 우려할 만한 결과는 핵겨울이다. 핵폭발로 생긴 수많은 양의 먼지, 연기, 그을음, 재 등은 대기를 오염시키고 태양빛을 차단하며, 그 결과 급격한 기후 변화가 일어남
7.11 원자탄 개발과 과학 연구의 변화
-상대성 이론을 만든 아인슈타인이나 등 양자역학을 만들어낸 주역들은 사실 깊은 정신적 노력과 수학적 계산을 통해서 이론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오직 지적인 유희, 지적인 만족의 차원에서 과학 연구를 수행했고, 고도의 사고와 수학적 계산을 통해서 만족을 얻어냈던 것이다.
-이차대전을 겪으면서 이 ‘순수한’ 과학들도 군사기술 속에 편입되었고, 지금까지 과학 응용의 결과로 나온 무기 중 최악의 결과를 내놓고 말았다. 두 이론은 원자폭탄을 내놓음으로써 과학 중에서도 가장 ‘순수’하다고 자처하던 과학이 가장 최악의 살상무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과학의 ‘순수성’에 대한 환상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과학연구를 거대화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당시에 시험되었던 바와 같이 많은 과학자들이 모여서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된 연구를 하는 것을 말한다.
-이로부터 과학이 정부, 산업체, 군대와 손잡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 생겨났다.
7.12 대안적 과학의 가능성
-20세기 말에 생태위기가 고조됨에 따라 현존 과학에 대한 비판과 대안 과학이 조금씩 힘을 얻어가고 있다.
-지금까지의 과학이 남성적, 기계론적, 입자적이었다고 비판한다.
-과학을 부드럽게 여성적으로 만들어야 하고, 자연을 하나하나 분리하고 조작하는 기계론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을 유기체적인 것으로 보는 ‘전일적인’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
-프리초프 카프라 : 동양사상에서 새로운 과학 수립의 실마리
-제임스 러브록 ; 현대과학의 성취와 방법은 부정하지 않으면서 독립된 과학자의 과학을 주장
-자연철학은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정신적 피폐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 것이지만, ‘신과학’은 생태위기로 인한 인간의 사멸 가능성을 앞에 두고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차이
-인공생명, 생명공학, 나노기술, 컴퓨터 과학, 정보과학 등의 첨단 과학들은 계속해서 자기 증식을 해갈 것이고, 자본과 결합하여 경제적, 사회적으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해갈 것이다. -21세기의 과학은 20세기의 거대과학과는 다른 분산적이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아주 커다란 형태를 지닌 위협적인 것이 될 가능성도 크다.
제8장 21세기의 과학기술
-20세기 후반의 과학기술은 냉전이데올로기의 강한 영향 속에서 중앙집중화․거대화의 길을 걸었다.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개발, 핵발전, 우주탐사, 거대 입자가속기, 핵융합 등의 과학기술은 모두 냉전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산물
-국가의 통제하에 거대 규모로 운영
8.1 20세기의 중앙집중적 과학기술
-원자력발전은 핵무기 개발의 부산물로서, 서방세계에서 핵무기의 원료와 핵무기 보조기술을 얻을 목적으로, 또는 냉전 상황에서 핵기술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시작한 기술이다. -영국․프랑스․소련․미국 등은 새로운 에너지원의 개발을 위해서가 아니라, 핵무기 개발과 핵기술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원자력발전을 시작
-초기에 원자력발전 연구에 참여한 과학기술자들은 대부분 ‘총과 대포를 녹여 쟁기와 낫으로’ 만들겠다는 생각, 과학연구의 결과인 핵분열 기술이 인류에게 큰 혜택을 가져올 수 있음을 반드시 보여주어야만 한다는 ‘이데올로기’의 지배
-유인 우주비행 : 우주계획은 수많은 연구자들이 막대한 연구비를 사용하면서 수행한 것으로, 모두 냉전시대의 체제경쟁 속에서 자국과 체제의 우월함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지녔으며, 또한 미사일 개발이라는 군사적 목적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거대 입자가속기 : 물질의 궁극적인 구성입자를 탐구하는 순수물리학 연구의 도구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도 있겠지만, 미국과 소련 정부에서 엄청난 돈과 인력이 필요한 입자가속기 계획을 지원해준 이유는 그것이 우주계획과 마찬가지로 과학기술을 통해 자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가속기 실험에서 얻어지는 여러 연구결과가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러 연구기관에서 공동으로 수행한 프로젝트 : 중앙집중적인 특성, 1954년에 시작된 대륙간 탄도미사일 프로젝트(Atlas Project)에는 수십개의 기업체와 대학의 연구기관에서 수만명의 과학기술자가 참여했고 수십개의 하청업체와 수십만개의 부품공급업체가 참여한 거대 프로젝트였다.
8.2 20세기 말 과학기술의 변화
-미국 국방성의 제안과 투자로 만들어진 아르파넷(ARPANET)이 군사용에서 민간용으로 ‘개방’되어 인터넷으로 발전
-소형 퍼스널 컴퓨터가 개발되어 각 개인에게 보급
-전체 개발비용이 8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초전도 충돌형 가속기(Superconducting Super Collider) 계획이 1993년 30억 달러가 투입된 후에 폐기
-인간게놈 계획이 각국의 협력프로젝트로 시작
-국가 주도의 우주탐사계획 규모가 크게 축소
-민간용 위성 개발계획이 확대
-핵연구도 점차 쇠퇴
-새로운 에너지 기술이 주목
-변화의 특징 : 규모의 축소, 분산화, 민간 주도
-과학기술의 중심이 물리학으로부터 생물학으로
-중앙집중적 거대규모 연구가 분산적이고 네트워크로 연결된 연구에 자리를 내준다
-국가-학문의 공고한 결합이 느슨해지거나 무너지는 반면, 민간자본-학문의 결합이 강해지리라는 것
-전력공급원으로서의 원자력발전은 이미 낡은 기술
-원자력발전과 같은 중앙집중적이고 거대한 기술보다는 분산적이고 소규모의 에너지 기술이 전력공급원으로 빠르게 부상, 이러한 기술은 수십년 안에 기존의 거대 원자력발전․화력발전 기술을 밀어내고 에너지 기술의 중심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원자력발전, 풍력발전, 바이오매스(biomass)발전 등과 같은 재생가능 에너지원을 이용하는 소규모의 새로운 발전기술은 10여년 전부터 소리없이 퍼지기 시작해서 급속도로 확대
-연료전지나 소형 열병합발전기 등도 발전․수송․난방 등의 부문에 서서히 도입
-기존 전력공급망으로부터의 해방, 소규모의 자급자족까지도 가능하게 하는 분산적인 형태로 바뀌어가는 것이다.
-소형 퍼스널 컴퓨터 : 거대하고 폐쇄적인 컴퓨터 씨스템을 부수는 분산적인 기술을 목표
-1970년대말 퍼스널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까지 중앙집중형
-아르파넷에 의해 대형 컴퓨터들도 부분적으로 분산적인 성격, 대학이나 연구기관 또는 미국 정부 소유의 대형 컴퓨터들만을 연결했고 그 구성원만 배타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중앙집중적
-소형 컴퓨터가 등장하고, 이것들과 대형 컴퓨터들이 서로서로 거미줄처럼 연결된 인터넷이 성립하면서 컴퓨터는 분산적인 기술로 변모, 사방으로의 이동과 서로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분산적․개방적인 기술로서 작동한다.
-2001년 2월에 게놈프로젝트의 최종 연구결과를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프랜씨스 콜린즈(Francis Collins)와 쎌러라 지노믹스의 크레이그 벤터(Craig Venter)가 공동으로 발표했다-복제양을 처음으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영국의 로슬린 연구소(Roslin Institute) 이언 윌머트(Ian Wilmut)의 연구실
-한국에서 최초로 복제소를 출산시킨 황우석 교수의 연구실 모두 기존의 거대 연구기관에 비하면 아주 작은 규모의 것
-우주탐사나 우주여행의 경우는 아직도 여전히 강한 중앙집중형으로 수행
-무게가 수톤밖에 안되는 어느정도 분산적인 성격의 소형 우주선들이 개발될 수 있을 것
8.3 21세기 과학기술의 네트워크적 연결
-기술이 분산적으로 작동하면서도 서로 수평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로써 형성되는 네트워크의 지배를 강하게 받고 있다는 점이다.
-전세계의 컴퓨터는 대부분 인터넷이라는 정보통신망의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커다란 기술 씨스템을 만들어낸다.
-분산적으로 작동하는 것들이 모두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매우 복합적인 것을 만들어내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거대한 무엇으로 화한다는 점이다.
-21세기의 생명조작 기술이나 정보통신 기술은 분산적으로 작동하고 더욱이 네트워크로 연결되기 때문에, 통제나 폐기 또는 방향전환이 불가능
-분산적인 전력기술의 경우는 다르다. 외딴곳에서 어느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에너지 자립을 위해 태양광발전을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
8.4 두 가지 네트워크형 과학 기술
-21세기의 네트워크형 기술이란 분산적인 기술들이 서로 연결되어 양방향으로 소통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기술이다.
제9장 21세기 과학과 기술의 특징
-MIT의 컴퓨터공학자 바이쩬바움 : 전세계를 연결하는 컴퓨터 씨스템은 조망이 불가능
9.1 정보통신기술의 취약성
-분산적이면서 양방향으로의 소통과 조종이 가능할 뿐 아니라 전체를 파악하기가 불가능
-어느 한 사람이 씨스템의 한쪽 구석에서 나쁜 의도로 장난치는 것이 씨스템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어떤 이용자가 해킹을 하거나 바이러스를 유포시키면 네트워크를 거의 마비상태로 몰고 갈 수 있는 것
-인터넷상에는 통과 가능한 경로가 수없이 많기 때문에, 해커가 조금만 복잡한 경로를 택해서 공격하면 그를 추적하기가 거의 불가능
-중앙통제기구가 존재하지 않고 모든 작업단위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인터넷은 전체적인 조종과 통제가 불가능한 것
-크고작은 조작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현재 이러한 조작은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
9.2 네트워크형 기술과 감시
-분산적인 네트워크형 기술은 감시에 이용될 때 위험 : 국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감시의 주체,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을 감시
-네트워크형 기술에 의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감시가 가능해진 사회에서는 누가 누구를 언제 왜 감시하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사방에서 수많은 감시 주체에 의해서 감시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체적인 통제와 조망도 불가능하다.
-국가는 감시의 독점력을 상실, 기업․갱집단․테러리스트․개인 등과 감시의 경쟁상태
-네트워크형 기술은 이미 감시를 일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9.3 정보의 보관
-디지털 네트워크형 기술의 또다른 불안정성은 그곳에서 모든 것이 빠르게 생성되고 빠르게 유통되고 빠르게 사라진다는 것
-인터넷 속의 정보를 보관할 수 있다 해도 그 수명이 길지 않다는 것이다.
제10장 21세기 과학기술과 사회 변화 전망
-외인버그, 팬로즈 :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합하는 대통일이론이 완성되면 진정한 의미의 과학은 더이상 존재할 수 없을 것
-사회생물학을 종합한 윌슨(Edward O. Wilson) : 모든 지식을 통합하고 연결함으로써 (통섭 concilience) 궁극의 지식에 도달하고자 한다. 이 지식이 우리는 누구이고 왜 지구상에 존재하는가를 설명해주면 그 이상의 근본적인 지식추구는 불필요해질지 모른다.
10.1 과학이론의 완성과 과학의 종말
-20세기 말에 이루어진 수많은 과학기술적 발견들의 특성과 21세기에 과학기술을 주도할 분야의 성격으로 미루어볼 때 궁극적 이론을 찾는 작업은 점차 의미를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21세기 과학기술을 뒤바꿀 디지털혁명과 유전자혁명이 이론적 작업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뒷받침해준다.
-20세기 말에 과학계뿐만 아니라 세상에 굉장한 충격을 준 과학적 사건은 복제양 돌리의 탄생. 수백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기술적 노력의 결과. 체세포 복제는 불가능하다는 생물학의 정설을 완전히 무너뜨렸고, 생식공학과 생식유전학에 커다란 전기를 가져왔다.
-1987년 베드노르츠(J.G. Bednorz)와 뮐러(K.A. Müller)의 초전도체 합성. 도 이론의 뒷받침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게놈 해독이라는 바탕 위에서 진행되고 있는 유전자혁명은 그야말로 기술적인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게놈 해독 연구는 유전자나 유전자 조각의 증식, 절단, 절단부위 맞추어보기 작업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이루어진 다윈의 진화이론, 멘델의 유전법칙, 진화이론과 유전법칙을 종합한 새로운 종합이론, 그리고 20세기 중반에 확립된 분자생물학으로 유전자혁명의 이론적 작업은 거의 마무리된 셈
-디지털혁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양자론도 20세기 중엽에 거의 완결
10.2 거대이론의 실현 가능성
-초끈이론이 완결되어 대통일이론으로 자리 잡는다 해도 소수의 이론가들의 지적 유희에 그칠 가능성
-1960년 표준이론의 등장으로 통일이론에 대한 환상을 되살려 놓음
-21세기 기술혁명의 시대에는 거대 이론의 추구가 과학기술에서 미미한 역할 밖에 하지 못하는 주변적인 것으로 추락할 수 있음
-21세기 과학기술로 초래될 혁명적 변화는 끊임없는 기술개발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
10.3 21세기 과학기술과 사회 문화적 변화
-21세기 과학기술은 정보기술과 생명 조작 기술이 과학기술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디지털 혁명과 유전자 혁명이 급속도로 전개되는 양상을 보일 것.
10.4 거리의 소멸
-디지털 혁명이 극도로 진행되면 실체적인 것의 움직임이란 오직 재화의 이동을 위한 것이 될 것만이 될 것이고, 지식과 관련된 움직임은 거의 사라지게 되리라는 전망
-현실과 환상 사이 경계의 소멸은 가상현실 기술로 인해 일어나게 되는 현상
-국가나 지역의 경계 소멸은 이미 상당히 진행-인터넷
10.5 생명공학의 발달과 동식물종 간의 경계 소멸
-유전자 이식기술, 생식공학기술 : 생명공학기술 중에서 과학기술의 최첨단으로 자리 잡음
-인간 정체성의 환란이라는 문제를 겪을 가능서이 크다
10.6 청년과 노년 사이의 경계 약화
-염색체 속에서 노화를 지배하는 유전자를 찾아내어 이들 유젖ㄴ자의 작동을 멈추거나 느리게 작동하도록 조절: 텔로미어(세포가 영구히 분열하지 못하도록 하는 작용을 지닌 유전자)라는 염색체 말단의 유전자를 조작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밝혀내고 이것을 수선
10.7 남녀와 부모자식 사이의 경계
-연령은 어리지만 아버지나 어머니와 같은 세대에 속하는 복제 인간
10.8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경계
-세포 수준에서의 연결이란 세포와 인공물 사이의 정보 소통이 세포들 사이의 소통과 똑같이 이루어지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이 상태에서는 세포나 세포로 구성된 조직과 인공물은 기능상 차이가 없는 동등한 것이 된다-사이보그 인간 출현
10.9과학기술의 지혜로운 활용
-인터넷의조망 불가능성과 중앙 컨트롤 포인트의 부재 때문에 교란은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전체적인 전복은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전체의 중심, 감시와 통제의 중심이 없는 씨스템에서는 공격을 통해 권력 전체를 빼앗을 중심도 존재하지 않음
-과과학기술의 지혜로운 활용은 과학기술 전체와 개별 과학기술의 성격을 규명해 가는 과정에서 얻어질 수 있을 것
제11장 현대 과학기술, 비판적 전망
11.1 과학기술과 인간의 신 노릇
-인간이 신처럼 되어 신 노릇을 해보겠다는 욕망은 인간의 근원적 욕망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술은 자연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말한 것에서도 우리는 당시 그리스인들의 기술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장자가 약은 꾀를 가지고 만든 기술은 ‘신묘한 천성’을 제멋대로 흥분시켜 결국 도를 얻지 못하게 만든다
11.2 근대 과학기술과 인간의 균형감각 상실
-근대과학이 성립할 당시의 서양인들의 균형감각 상실을 대표하는 사람은 프랜시스 베이컨
‘아는 것이 힘이다’ : 지식을 통해서 자연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오만한’ 상태에 도달
이러한 생각은 칸트를 거쳐서 현재까지도 자연과 인간에 대한 지배적인 생각으로 남음.
-칸트의 명제는 ‘인간은 인간 그 자체로서 가치있는 것으로 결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 인간복제 반대 논거 - 식물과 동물을 조작하고 복제하는 것은 인간을 위해서 유용하기 때문에 허용하고 지원해야 하지만, 인간 복제는 인간존엄성을 해칠 수 있으므로 절대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베이컨이나 칸트에게는 인간이 모든 것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인간이 과학기술의 대상으로까지 전락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간도 데카르트의 철학에서는 대상화된다. 물론 데카르트는 정신과 육체를 구분하여 육체만을 시계장치처럼 움직이는 기계로 대상화했다.
-데카르트의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은 최근까지도 그대로 지켜져 왔다.
-분자생물학이 발달하고 뇌신경세포 속의 화학작용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이를 인공지능에 응용하려는 연구가 급속히 부각되면서 정신과 육체의 이분도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인간의 성격, 병, 행동 등이 모두 유전자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유전자 결정론이나 행복, 슬픔, 기쁨, 감격 같은 인간의 감정 변화를 모두 뇌신경세포 속의 화학 변화로 설명할 수 있다는 극도의 환원주의적 접근은 정신과 육체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유전자를 변형하고 신경세포를 다른 기계 장치로 바꾸어서 맞춤인간이나 싸이보그를 만드는 것이 최고의 기술로 여겨질 것이다.
11.3 핵분열 기술의 성격
-핵기술은 인간의 물질 조작, 다시 말하면 인간이 물질적인 자연에 가하는 폭력이 극단에까지 이른것이다.
-핵기술은 원자핵이라는, 자연의 가장 미세한 부분까지도 으깨어버림으로써 자연을 철저하게 짓밟는다.
-이러한 마음은 인간을 짓밟는 것도 ‘자연스러운’행위라는 더욱 오만한 생각을 갖게 만든다.
-핵기술의 최초 개발자들 중 한 사람인 알빈 와인버그(Alvin Weinberg)는 핵발전을 “파우스트적거래”(faustian bargain)라고 표현했다.
11.4 생명적 자연에 대한 과학기술의 개입
-환원주의의 시각에서 생명체를 볼 때는 그것의 문화적, 미학적 양태는 고려되지 않는다.
-생명공학은 머지않아 생명의 근원인 수정란 속의 유전자를 마음대로 조작해서 맞춤동물, 맞춤인간을 만들고야 말 것이고, 전자공학.정보공학.나노기술과 결합하여 인공물도 생명체도 아닌 사이보그적인 존재를 만들어내려 할것이기 때문이다.
-생명공학이 초래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이와 같은 인간 존재 자체의 부정과 제거일 것이다.
11.5 과학기술에 의한 인간 수명의 연장과 사이보그
-컴퓨터로 만들어 내는 가상현실은 창조 연습에 해당
-인터넷이라는 전 지구 통신망도 인간이 전능한 존재에 도달하려는 연습 과정
핵분열 기술, 컴퓨터 시스템, 유전공학은 한편으로는 인간이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는지도 모르지만 인간을 원래 그가 출발한 지점보다 훨씬 비참한 상태로 추락시킬 가능성도 숨기고 있다.
제12장 과학체제 밖의 과학, 과학 연구 스타일
12.1 과학자의 연구와 인문학자의 연구
-기성 과학계는 진정으로 반성하는, 또는 반항하는 과학자 그 누구라도 그 경력을 파멸시킬 수 있는 충분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12.2 반성적인 과학 연구
-한국이나 일본의 경우 과학계 대단히 경직되어 있어 주류가 아닌 연구는 존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음
-독일이나 북유럽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대학이나 연구소를 떠나는 경우에도 반성적으로 과학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이 좁지 않다.
12.3 시민과학, 자립적 과학
-다카기 진부로, 제임스 러브록 : 근대과학의 방법을 통해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매우 고귀한 것으로 여기고 있고, 근대과학의 탐구방식은 인정하면서 “과학과 에콜로지의 통합”을 역설하거나 ‘시민과학’을 주창
12.4 현대과학에 대한 근원적 반성
-프리초프 카프라 : 근대과학의 환원주의적 패러다임과는 다른 전일적인 패러다임을 가진 과학을 만들어 내고자 노력, 상당한 정도는 근대과학의 방법론이나 지금까지 이루어진 많은 근대과학의 성과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시바 : 에코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만 보는 기존의 도구주의적이고 환원주의적인 과학이 아닌 생태적으로 건전하고 페미니즘적인 자급 과학과 기술, 여성과 민중에 기반을 둔 풀뿌리 지식과 과학을 추구한다. 근대과학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생명들의 공생관계, “살아있는 관계의 재창조”를 주장한다.
-한스-페터 뒤르: 독일의 지도적인 물리학자이자핵발전 반대자, 뮌헨공대의 연구용 원자로 가동을 반대하는 환경단체들의 운동에 참여하기를 거부
-옌스 라이히 : 생명공학의 전개는 막을 수 없는 대세이고 그 자신도 유전자 치료를 받아야 할 병에 걸리면 치료를 받겠다고 말하는 것 / 근대과학의 패러다임을 버리지 못한 결과
-로버트 융크: 과학기술은 여전히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산업문명을 철학, 종교, 예술 그리고 영성에까지 의존해서 확장하는 일”이라고 주장
-루돌프 바로 : 과학기술의 세계로부터 완전히 떠나야 한다는 낭만주의적인 입장
-다양성의 인정과 연대 불가피/ 폭력에 기반한 기존 과학기술체제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
12.5 과학자들의 연구 스타일, 과학지식의 객관성
(1)과학자들의 논문 문체
-연구내용도 중요하지만 발표하는 형식도 중요한 요소 : 지극히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방식을 취한다.이런 이유로 과학자들의 문장이 다른 학자들의 문장에 비해 뒤떨어진다.
(2)과학지식의 객관성
-과학에서 그럴듯한 설며은 존재할 수 있지만 완전무결한 앎, 완전무결한 과학적 사실이란 존재할 수 없다.
(3)상온 핵융합:주관이 지배한 과학의 한 예
-1989년 미국의 폰스와 플라이쉬만
제13장 과학자의 생애로 본 근대과학 1 : 갈릴레이와 케플러
13.1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
-처음부터 로마교회와 대항하려는 생각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고, 따라서 목숨까지 걸고 열렬하게 태양중심체계를 옹호한 것도 아니다.
-지구가 자전하며 태양 주위를 돈다
-태양중심체계라는 ‘진리’를 옹호했다가 종교재판이라는 형태로 가톨릭 교회의 탄압
-1589년 피사대학의 교수가 된 그는 대학교수로 있으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을 공격-대학의 오만하고 고지시한 법규들에 대해 폭로하는 등 권위에 대항하는 일을 일삼음
-3년 후에는 재임용에서 탈락
-갈릴레이도 배율이30배나 되는 망원경을 제작
-달을 관찰 : 지구와 똑같이 산과 골짜기가있는 울통불퉁
-목성 : 목성 주위를 도는 네 개의 위성을 발견-메디치의 별들이라고 명명
-달이 지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은 하늘과 지구가 완전히 다르다고 봄으로써 그때까지 하늘과 지구를 갈라놓았던 고대와 중세의 우주관을 뒤흔드는 것
-하늘은 지구와는 완전히 다른 물질로 구성되어 있고, 완전한원운동 외에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완전히 부수어 버렸다.
-목성이 위성을 가지고 있다는 발견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것이었다.
-별들의 소식 (Sidereus Nuncius)이라는 책으로 발표
-자기 이름을 전유럽에 알리고 싶었기 때문-다른 글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어로 썼던 것과 달리<별들의 소식>을 유럽 공통어였던 라틴어로 저작
-후속 관찰에서 금성이 위상변화를 한다는 것과 태양에 흑점이 있다는 태양중심체계에 유리한 또 다른 증거를 발견
-교회는 1616년에 코페르니쿠스 이론을 가르쳐서도 안되고 옹호해서도 안된다는 금지령을 선포
-린체이 아카데미-새로운 철학의 대변자, 개인적인 해석이나 실험과 관찰에 입각한 해석을 중시
-1623년에 ”시금자(금의 순수성을 검사하는 사람)“ 출판/새로운 철학을 대변하고 예수회의 주장을 누를 수 있는 내용
-1632년에 “두 개의 대 우주체계에 관한 대화” 출판 / 대화의 형식 / 태양중심체계의 우수성 / 이탈리아어
-1633년 금지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로마 종교재판
-교황은 갈릴레이를 새로운 철학의 상징적 대표로 단죄하여 자신의 수구로 돌아선 입장을 천명함으로써 교황권을 확립하려함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체계를 공개적으로 부정, 죽을 때까지 가택 연금 판결
13.2 요하네스 케플러
-근대천문학의 아버지
-1596년 “우주의 신비” 출간(신비주의적 성향)
-티코 브라헤와 천문학 공동 연구
-1609년 “새로운 천문학” 출간
-1618년 케플러의 제3법칙 발견(제1,2법칙은 새로운 천문학에 발표)
-케플러이 3법칙은 엄밀하게 수학에 바탕을 둔 것이나 우주에 대한 케플러의 신비주의적 태도, 신과 우주의 관계에대한 사고 등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아이작 뉴턴(헤르메스 영향)
-갈릴레이의 “별들의 소식”을 읽고 새로운 발견에 열광하며 그의 발견이 옳다고 인정
제14장 과학자의 생애로 본 근대과학 2 : 라부아지에
14.1 라부아지에(Antoine-Laurent Lavoisier, 1743-1794)
-과학이론에서뿐만 아니라 생활에서도 매우 근대적인 면모를 보여준 인물
-법학을 공부, 지질학을 연구, 광석의 분석에 흥미를 느껴 화학으로 들어왔다.
-1772년 초 「원소에 관한 체계」 : 물, 공기, 불은 고정되거나 자유로운 두가지 형상 중의 하나로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
-고정 상태와 자유상태, 물질과 결합한 상태와 분리되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라는 생각은 분해한 후에 합성하여 다시 고정시키는 라부아지에의 실험방식을 결정했으며, 그의 새 연소이론을 낳는 바탕이 되었다.
-라부아지에의 최초의 본격적인 화학실험은 물과 흙의 변환 가능성을 확인하는 실험
-물은 흙으로 변환하지 않는 근본물질일 것이라는 결론/정량적인 방법을 사용, 무게라는 개념을 무기로 사용함으로써 화학을 양적인 과학으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
-1772년의 인과 황의 연소실험 : 물질의 무게는 물질이타고 난 다음에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증가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플로기스톤 이론의 추종자들은 무게가 증가하는 이유를 물질이연소하면서 플로기스톤은 빠져나오지만 그것이 음의 무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설명)
-훌륭한 화학 연구자들이 이 플로기스톤 이론에 얽매여서 자신이 실험에서 얻은 발견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 프리스틀리- 산소를 분리하고도 그것이 산소라는 것을 규명하지 못하고 플로기스톤 없는 공기라는 희한한 이름으로 그것을 불렀다.
-1774년에 황과 인의 연소 실험을 정밀하게 반복한 후 공기나 공기의 어떤 부분이 그 물질에 흡수되기 때문에 무게증가 현상이 나타난다는 결론
-프리스틀리로는 1774년에 수은의 금속재를 가열하는 실험을 통해 연소를 돕는 공기를 얻었고, 이것이 호흡에도 좋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공기는 산소였는데, 플로기스톤 이론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프리스틀리는 이것을 플로기스톤이 없는 공기 - 그렇기 때문에 다른 물체로부터 플로기스톤이 방출되는 것을 돕는 - 라고 불렀다. 프리스틀리는 산소를 발견했지만 새로운 연소이론이나 산화이론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그는 연소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전제를 마련해 놓고도 옛 질곡에 갇혀 화학을 변혁할 수 있는 기회를 라부아지에에게 넘긴 것이다.
-라부아지에는 프리스틀리로가 발견한 이 공기가 바로 무게를 증가시키는 원인이라 생각하고 이 “좋은 공기”를 분리하는 실험에 착수했다. 그리고 분리한 공기를 다시 인이나 금속 등에 흡수시키는 실험을 통하여 자기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시 말하면 실험을 통해 이 기체를 분해했다가 다시 고정시키는 과정을 수행했다
-1776년 이 기체를 산을 만드는 원소라는 뜻을 가진 산소라고 명명했던 것이다.
-과학사학자 길리스피의 말을 빌면 화학혁명은 라부아지에의 연소 개념을 모든 화학 반응으로 확장한 것이었다.
-라부아지에의 연소 이론은 물질의 결합과 분리라는 화학 현상에 바탕을 둔 것이고, 정량적인 분석을 통해 확립된 것이다.
-라부아지에 이론의 성공으로 인한 중요한 변화 중의 하나는 원소와 화합물이란 개념이 명확해졌다는 것이다.
-더 이상 분리가 일어나지 않는 물질, 즉 분해되지 않는 것이 원소로 자리잡은 것
-화합물은 분해되는 물질
-라부아지에는 단순한 화합물의 이름을 분리되는 두 원소 각각의 이름을 합쳐서 만드는 새로운 명명법을 도입했다.
-라부아지에의 변혁은 물질 자체와 물질의 변화를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합리적”인 이해란 무엇인가? 그 결과는 설명틀의 단일화, 자연의 대상화, 자연의 무생물화가 아닌가? 물질의 변화란 살아 있는 자연의 생성과 소멸과 변화의 일부가 아니라, 어떤 생명없는 물질이 다른 생명 없는 물질로 바뀌는 것일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물질로부터 유기체적, “신비적”인 색채를 제거함으로써 인간에게 다른 측면에서의 빈곤을 가져왔다. -
-괴테는 근대과학에서 자연을 외부의 대상으로 보고 그것을 파헤쳐 들어가는 방식에 대해 인간이 자연의 근원현상(Urphänomen)을 규명해 들어가면 언젠가는 화가 닥치리라고 우려
-라부아지에의 개인적인 생애는 한사람의 조용한 과학자의 그것은 아니었다. 그는 세금 징수를 대행하는 일을 해서 생계를 꾸려나갔고, 정부의 여러 가지 커다란 용역사업을 수행하여 돈을 벌고 지위를 얻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랑스 혁명 후 그는 단두대에서 처형당함
-라부아지에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면 괴테의 말과 같이 자연을 깊숙이 파고들어 근원적인 것을 캐려 한 결과 화를 입었다는 해석을 내릴 수도 있다.
-그의 죽음 후 200년이 지난 지금 그가 기초를 놓은 화학이 발달한 결과 지구가 처하게 된 운명을 보면 괴테의 말처럼 라부아지에와 그의 후배들이 이룩한 일이 결국 화를 자초했다는 해석이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제15장 과학자의 생애로 본 근대과학 3 : 프리츠 하버와 하이젠베르크
15.1 프리츠 하버
-독일의 우월한 군사력과 탁월한 산업을 자랑스러워했고, “완전한” 독일인이 되기 위해 별다른 고민 없이 기독교로 개종했다.
-1차대전 중에 독가스 개발에 열성을 쏟음으로써 나중에 연합국의 비난의 표적이 되었고, 전후에 재판은 모면했지만 전범자 명단에 오름
-암모니아 합성법을 개발하여 독일에 질소 비료와 탄약의 무한한 원천을 제공
-1868년 12월 9일 지금은 폴란드 영토로 되어 있는 동프로이센(Ostpreussen)의 브레슬라우(Breslau)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909년 3월에 마침내 적당한 촉매를 찾아냄으로써 암모니아합성의 마지막 장애물도 넘어섰다. 이 새로운 촉매는 그가 다른 용도로 보관하고 있던 고운 오스뮴 가루였다. 하버는 이 촉매를 사용하여 섭씨550도, 175기압에서 암모니아의 수율을 8%로 올릴 수 있었다.
-하버-보쉬 제법을 개발하여 1910년 여름부터 파일럿 플랜트에서 암모니아 생산에 들어갔고, 1913년 9월부터는 하루 20톤 생산 용량의 공장에서 대규모 생산을 시작했다.
-1919년에는 암모니아를 합성한 공으로 노벨 화학상 수상
-1911년부터 1933년까지 20여년간 카이저 빌헬름 물리화학 연구소 소장직
-하버 콜로퀴움으로 알려진 연구소 세미나는 세계 화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세미나로 자리잡았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 화학 연구를 통해 전쟁을 지원하는 화학부서의 책임을 맡아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의 다른 과학자들과 함께 무기 개발을 위한 연구, 그의 연구는 TNT 원료와 고성능 수류탄 연구, 독가스 개발, 탄약의 원료인 질산염 연구 등 다방면에 걸쳐 있었다.
-그의 독가스 연구는 전쟁무기 연구 중 그에게 가장 큰 시련을 안겨 주었다. 이 연구로 그는 독가스의 아버지라는 오명을 얻었고, 전범자 명단에 올랐고, 아내를 자살로 몰고 갔던 것이다.
-화학 무기 개발 : 책임자, 하버의 연구진에는 화학자 한(Otto Hahn, 1879-1968), 물리학자 프랑크(James Franck, 1882-1964), 가이거(Hans Geiger, 1882-1943), 헤르츠(Gustav Hertz, 1887-1975) 등 나중에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도 상당수 포함
포스겐(COCl2, C=O가 몸 속의 아미노산 및 다른 단백질, 효소 등과 반응하여 신진대사를 막음으로써 생명을 위독하게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 비소와 청산을함유한 유기화합물 등 염소보다 독성이 훨씬 강한 독가스들을 찾아냈고, 전투에 투입했다.
15.2 하이젠베르크
-20세기 초 닐스 보어, 막스 보른, 슈뢰딩거, 파울러, 디락, 드브로이 등과 함께 양자역학을 체계화, 행렬역학 만듬, 불확정성 원리 확립.
-1930년대 초부터 양자역학의 철학적 기초와 그것의 확립으로 인한 자연상, 세계상의 변화를 알리는데 힘씀.
-2차 세계대전 우라늄협회 책임자
-1950년대 초부터 소립자 세계의 통일장 이론 연구
-“이젠 물리학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그들이 중요한 거야“
문제지와 정답 작성자 김추경
1) 모퍼라는 과학 철학자는 과학활동의 핵심을 무엇으로 보았는가?
①생명현상을 설명하는 것
②기술을 위한 자연이용 이론을 만드는 것
③ 지식을 모아서 집합해놓은것
☛④ 자연을 설명하기 위한 가설의 체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
2)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와 같이 추상적인 사고를 통해서 자연현상을 해석하는 방식을 무엇이라고 할수 있는가?
① 실험주의 자연설명
☛② 자연주의적 자연설명
③ 실용주의적 자연설명
④ 신비주의적 자연설명
3) 근대수학은 십진법을 사용한다. 다음중 고대에 60진법을 사용한 사람들은?
① 고대로마
☛② 고대 바빌로니아
③ 그대그리스
④ 고대 이집트
4)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별들의 운행을 자세하게 관찰한 주된 이유는
☛① 별의 운행이 지상의 사건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기 때문
② 천문학을 연구하기 위해서
③별의 운행을 관찰함으로써 지상의 측량에 도움을 얻기위해
④별의 운행이 향해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서
5) 신화의 세계와 자연에 대한 설명이 고대 그리스의 밀레토스 자연철학자들의
설명방식과 다른점은 ?
① 자연에 대한 신화의 설명은 정합성이 없고 조야했다.
② 신화는 모두 자연을 영속적인 것으로 보았다
☛③ 신화의 세계와 자연에 대한 설명은 설득력 이라는 면에서 서로 경쟁적이고 배제적
인 것이 아니었다
④ 어떤 것이 세계를 더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지 서로 경쟁적인 관계였다
6) 고대 고리스의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가 풀기 위해 고심한 것은?
☛① 감각과 정신을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는가?
② 감각과 정심을 구분해야 하는가?
③ 사변과 관찰을 얼마나 단른것인가?
④ 감각을 통한 사변은 가능한것인가?
7) 자연에 대한 사변끝에 판 타 레이, 만물은 끊임없이 흐른다(변화한다)라는 결론을 내린 자연철학자는?
①탈레스
☛②헤라클레이 토스
③아낙시메데스
④아난시만 드로스
8) 우리 인간이 감각을 통해서 얻는 것은 모두 환상이라고 주장한 자연철학자는?
① 엘페도 클레스
☛ ② 파르메니 데스
③ 아리스토 텔레스
④ 아낙시만 드로스
9) 만물을 구성한 근원물질이 흙, 물, 공기 ,불 사원소하고 처음 주장한 자연철학자는?
☛① 엘페도 클레스
② 헤라클레이토스
③ 파르메니데스
④아낙시고라스
10) 다음중 고대 그리스의 원자론을 대표하는 사람은?
① 아리스토 텔레스 , 플라톤
② 에피쿠레스, 탈레스
☛ ③데모크리토스, 레우키포스
④아낙시메네스 , 엠페도 클레스
11) 피타고라스 학파에 대한 설명중 틀린 것은?
① 수학연구에 집중했다
② 육체는 영혼을 거두어 두는 물로 보았다
☛ ③ 영혼은 사멸한다고 보았다
④ 일종의 종교집단이었다
12) 다음중 플라톤에 대한 설명중 틀린것은 ?
① 보이는 본질 세계의 그림자이다.
② 보이는 세계는 영원히 존재한다
③ 감각에 지각되는 세계는 현상의 세계이다
☛④수학보다 생물학 연구를 더 중시했다
13) 아리스토 텔레스에 대한 설명중 틀린것은?
①플라톤 사망후 플라톤 제자들이 수학에 치우치자 플라톤이 세운 학교와 아테네를 떠났다.
② 경험을 세계를 중시했다
③ 플라톤의 수제자였다
☛ ④생물학 연구를 경시했다
14) 아리스토 텔레스의 과학에 대한 설명중 틀릴것은?
① 물리과학과 생물학으로 나눌수 있다.
②물리과학은 엘리아 학파의 변화의 문제에 대한 검토와 비판에서 시작된다.
③ 존재는 잠재태와 현실태로 이루어 있다
☛④ 자연 속에 실제로 존재하게 되는것은 존재의 현실태로 부터 나온다
15) 아리스토 텔렐스의 과학에 대한 설명 중 틀린 것은?
☛①변화를 통해서 나타나는 새로운 존재를 무에서 생긴것으로 보았다
②지구상의 모든 변화를 잠재태의 현실화로 설명했다.
③물체의 변화의 원인을 네가지로 보았다.
④물체는 감각을 통해서 인지된다고 생각헸다
16) 물체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네가지 원인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
①질료인
②형상인
☛③존재인
④목적인
17) 아리스토테레스의 사원소설에 대한 설명 중 틀린것은?
① 물체가 다른 이유를 사원소의 비율로 차이로 설명했다.
☛ ② 금속은 사원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지 않다.
③ 공기는 금속보다 나무에 많이 포함되어 있다
④ 사원소는 각각 고유한 위치를가지고 있다.
18) 중세에 기술바달을 촉진한 요인 중에 하나는?
① 그리스 과학의 발달
☛ ②노예 공급의 감소
③ 기독교의 지배
④ 이슬람 세계와의 교류
19) 아랍과학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것은?
① 중심지는 알렉산드아 였다.
☛ ② 고대 그리스 과학이 (그리고 번역) 그 시원이었다
③고대 바빌로니아 과학의 계승이다.
④ 중심지는 아테네 였다
20) 12세기 이후 아랍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이유중 적합한 것은?
① 이스람 교세가 약해졌다.
② 십자군 전쟁으로 서구 과학이 전파됐다
③기독교가 아랍세계에 퍼졌다
☛ ④이슬람 정통파가 득세했다.
21) 다음 중세 대학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것은?
① 교양학부는 없었다.
☛ ② 교수와 학생의 자치조합 또는 학생들의 자치조합 형태로 나타났다.
③ 6개의 학부로 구성되어 있었다.
④ 교양학부에서는 천문학,물리학이 포함되는 사학이 가르쳤다.
22) 중세대학의 교앵학부 교수들에게 퍼져있던 이중진리설은 무엇을 말하는가?
☛① 신앙과 과학의 영역을 분리하고 각 영역에 고유한 진리가 있다는 생각
②신학과 과학은 모두 같은 목적을 추구 하지만 수단이 다르다는 생각
③자연학적 사고와 인문학적 고가 각각 고유하다는 생각
④ 영혼과 육체는 분리되어 있지만 신앙 안에서 통일된다는 생각
23) 르네성스 시대 유럽에 소개된 헤르메스 문헌들에 대한 설명중 맞는 것은?
① 처음부터 라틴어로 쓰여졌다
② 소우주-소우주 유비관계에 대한 가르침이 담겨있다.
③ 모세와 같은 시기에 이집트 살았던 사제의 저작이다
☛④ 1세기 경 헬레니즘 시대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24) 과학혁명의 주역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
① 갈릴레이
②뉴턴
③케플러
☛ ④갈레노스
갈레노스
실험생리학을 확립했으며 고대의 가장 유명한 의사 가운데 한 사람이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걸쳐 유럽의 의학 이론과 실제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출생일 | 아나톨리아 미시아 페르가뭄, 129 |
---|---|
사망일 | 216경 |
국적 | 그리스 |
요약 갈레노스는 고대 의학의 완성자로, 실험생리학을 확립했다. 또한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걸쳐 유럽의 의학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고향 페르가뭄에서 고향에서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론적인 철학과 실제적인 의학을 함께 공부했다. 161년 로마로 가 의사로서 눈부신 성공을 거두며 명성을 얻었으나, 166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2년 후 다시 로마로 소환되어 한때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시의로 임명됐다. 이때 수 백 권의 철학 및 의학 관련 글을 저술했으나, 대부분 소실됐다. 동물해부, 특히 원숭이 해부를 통해 생체의학을 적립했다. 또한 인간의 몸에 4가지 체액이 균형을 이루어야 건강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이러한 그의 이론과 실험들은 그 뒤 1400년 동안의 의학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5) 다음 중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중요한 천문학 저적을 남긴 사람은?
① 갈리레오 갈리레이
② 케플러
☛ ③ 코페르 니쿠스
④뉴턴
26) 다음중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지만 자전을 한다는 우주론을 내놓은 사람은?
① 갈릴레오 갈릴레이
② 뉴턴
③ 헤라클라이데스
④ 케플러
27) 아리스 텔레스의 역학에 대한 설명 중 틀린 것은?
① 진공은 존재하며 그속에서는 물체가 매무 빨리 떨어진다.
② 낙하하는 물체는 그것이 통과하는 매질의 밀도가 작을수록 빠리 떨어진다.
③운동은 강제 운동과 자연운동으로 나나었다.
④투사체 운동은 강제 운동이다.
28) 하비의 과학활동에 대한 설명 중 틀린것은?
① 많은 동물을 살아 잇는대로 해부 했다.
② 심장 판막의 중요성을 무시했다.
③ 심장을 주된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④파도바 대학 의학부를 졸업했다
29) 플리틀리라는 영국의 과학자는 많은 과학적 발견을 했다.
다음중 그중의 하나는 ?
① 수은의 산화물을 발견했다.
② 이산화 산소화 같은 공기라는 것을 발견했다.
③ 밀폐된 공간에서 촛불을 태우면 그 속의 공기의 양이 줄어든다
④ 공기는 세가지 성분능로 구성되어 있다.
30) 다음 화성론에 관한 설명중 맞는것은?
① 육지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② 지층 형성과정에서 열의 역할을 중시했다.
③ 지층형성과정에서 물의 역활을 중시했다
④ 지구의 역사을 짧게 잡았지만 육지는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31) 다원이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에 도달하게 되는 데 큰 영향을 준 책을 쓴 사람은?
①월러스 ② 허튼 ③라이엘 ④ 맬더스
32)갈릴레이가 피사의 사탑에서 했다는 실험에 따르면 그가 탑 꼭대기 에서 무거운 쇠공과
가벼운 쇠공 두개를 동시에 떨어 뜨렸을때 쿵 소리가 한번밖에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즉 두개의 쇠공이 동시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갈릴레이가 이러한 실험을 통해서 그의 제1법칙을 도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가 ㅇ런 실험을 하지 않았으라는 것을 뒷바침하는 가장 그럴듯한 논거는?
① 갈릴레이는 실험하기를 좋아하지 않했다.
② 낙체의 제1법칙은 진공속에서 전체를 달기 때문에 공기속에서 실험이 필요 없었다.
③ 실험을 하려면 종류가 서로 다른 물체를 떨어뜨리는 것이 같은 종류인 쇠공을 떨어 뜨리는
것 보다 의미 있기 때문이다.
④ 당시에 탑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33) 뉴턴의 "프린키피아"와 "광학"은 모두 중요한 업적이면서 서로 뚜렸한 차이가 있다. 그조합
으로 틀린것은?
① "광학"은 영어로 "프린키피아" 는 라틴아로 쓰였다.
② "프린키피나" 는 매우 난해하고 "광학"은 대중적이다
③ "광학"은 실험을 이용한 서술이고 "프린키치아"는기하학적 방법을 사용했다.
④"프린키치아"는 실험적이고 "광학" 은 이론적이다.
34) 양자이론과 상대성이론이 고전물리학 (뉴턴 물리학 )을 뒤흔든 이유로 옳은것을 고르시요
① 상대성 이론은 빛의 속도나 언제나 일정하다고 설정하므로써 고전물리학 제2법칙을 부정
했기 때문
② 물질의 운동을 확정하는 데 매우 복잡한 계산을 필요로 하는 양자 이론는 고전물리학의 계산
방법보다 휠씬 어렵기 때문.
③상대성리론은 절대시간 ∙공간을 전제로 한 고전물리학을 계승하면서도 물질의 질량과 운동
이 불규칙적임을 제시했기 때문.
④ 결정론을 기초로 하는 고전물리학에 반해 양자이론은 미시 세계 물질들이 불연속이고 확률
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했기 때문.
35) 다음중 프리츠 하버의 중요한 업적은?
① 암모니아 합성
② 질화칼슘 합성
③ 독일물리 화학의 창시
④ 양자화학의 창시
요약 1918년 합성 암모니아법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 독가스를 무기로 개발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해 ‘독가스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25세 때 우연히 카를루스에 고등기술학교에서 저학년을 가르치는 일을 얻은 이후 대단한 열의를 가지고 물리화학을 가르치고 연구에 전념했다. 1898년에는 물리화학 교수가 되었고 <공업적인 전기화학의 이론적 기초>, <공업적 기체반응의 열역학>으로 명성을 얻었다. 1911년 카이저 빌헬름 물리화학연구소 소장이 되었다. 그의 연구소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주요 군사기간이 되었다. 전쟁 후 연구소는 세계 물리화학 분야를 선도하는 연구 센터가 되었다. 1934년 심장마비로 바젤에서 죽었다.
1918년 합성 암모니아법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그는 카를 보슈와 함께 질소비료에 사용하기 위한 암모니아의 대량 생산법을 고안했다
제1차 세계대전 42세 때인 1911년에 그는 베를린에 있는 카이저 빌헬름 물리화학연구소 소장이 되었는데, 이 새로운 연구기관은 그가 카를스루에에 세웠던 학교보다 더 유명해졌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즉시 자신의 연구실을 정부시설로 전환시켜 정부에 협조했다. 그의 첫 관심사는 필요한 군수물자에 대한 공급을 조직화하는 것이었다. 참호전이 전개된 후 그는 화학전 부대의 책임자가 되었으며, 그의 연구소는 주요 군사기관이 되었다. 그는 독가스를 무기로 개발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36) 네튼스트와 하버의 논쟁에서 우리가 할수 있는것은 ?
① 과학자들은 경험이 많은 학자의 주장보다 참신한 주장을 더 선호한다
② 과학자들은 경제성을 기준으로 과학적 주장을 판단한다.
③ 과학자들은 명성이 높은 과학자의 주장을 더 선호한다
④ 과학자들은 명성보다 진실만을 기준으로 삼아 판단한다.
37)하버가 베틀린의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로 간것에 대한 적절한 평가는 ?
① 유대인에 대한 나치들의 핍박으로 부터 벗어날수 있게 해주었다.
② 하버의 연구자로서의 창조력이 만개하도록 하는데 기여하지 못했다
③ 독가스 개발에 몰두하게 됨으로써 과학 전체의 평판을 망쳐 놓았다.
④ 과학자으로서는 큰 업적을 내지 못했지만 가정적으로으로는 행복을 얻었다.
38) 하이젠베르크에 대한 설명으로 틀린것은 ?
①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② 이차대전 중 독일의 원자무기 개발을 위한 우랴늄 협회에 참여했다.
③ 이차대전중 독가스를 개발에 참여했다 <참고-1차대전독가스개발>
④ 양자역학에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
출생일-1901. 12. 5, 독일 뷔르츠부르크
사망일-1976. 2. 1, 뮌헨
국적-독일
요약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이라는 현대과학을 수립하는 데 공헌했으며 이 양자역학에서 유명한 불확정성 원리가 유래되었다. 또한 난류의 유체역학, 원자핵, 강자성, 우주선, 소립자 이론에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1932년에는 불확정성의 원리와 양자역학 창시의 업적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카를스루에에 최초의 원자로를 설계했으며,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할 것을 적극 추진했다. 1957년 서독 육군이 핵무기를 배치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하는 독일 과학자들을 이끌었다. 그는 1954년 제네바에서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를 조직한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1976년에 사망했다.
39) 제2차 대전후 등장한 원자력발전에 대한 설명으로 올바른것은?
① 핵무기 개발에 부산물이다.
② 초기에 원자력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핵무기를 개발 하려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③ 원자력을 처음 시작한 나라는 일본과 독일 이었다.
④ 초기에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사고나 폐기물의 위험이 없는 대단히 안전한 기술로
생각했다
40) 정보통신 기술에서 말하는 무어의 법칙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① 분산적 개방적 기술이 중앙집중적 기술을 이긴다.
② 컴푸터칩의 성능은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
③ 예상 가능한 사고는 반드시 일어난다.
④ 거대 기술 프로젝트는 실패할 확률이 50%이다
끝
9) 만물을 구성한 근원물질이 흙, 물, 공기 ,불 사원소하고 처음 주장한 자연철학자는?
☛① 엘페도 클레스
② 헤라클레이토스
③ 파르메니데스
④아낙시고라스
그리스의 고대 철학자인 엠페도클레스는 처음부터 자연주의 철학자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전에는 정치가가 되고싶어 했고 실제로 살던곳의 불합리한 정권을 바로잡은일도 있었습니다.주민들이 지도자로 추대하였으나 욕심을 버리고 철학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엠페도클레스는 곧 4원소설을 주장하게 되는데. 우주를 구성하고있는 세가지 물질인
물. 공기. 불에 흙을 추가하여 4원소설을 수립하게 된것입니다.
그는 모든 물질의 근원은 4가지로 구성되어있고. 물질의 변화는 이들 4원소들의
움직임으로 생기는 현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학설은 후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계승되었는데. 약 2000년동안 자연과학의
기초적인 물질론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18세기에 더이상 이 이론은 화학의 발전에 장애가 되는 이론으로 취급받아
점차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7) 자연에 대한 사변끝에 판 타 레이, 만물은 끊임없이 흐른다(변화한다)라는 결론을 내린 자연철학자는?
①탈레스 ☛②헤라클레이 토스 ③아낙시메데스 ④아난시만 드로스
헤라클레이토스
Heraclitos
출생일-BC 540경, 아나톨리아 에페소스
사망일-BC 480경
국적-그리스
요약 그리스의 철학자.
Heraclitos라고도 씀.
불이 조화로운 우주의 기본적인 물질적 원리라고 주장한 우주론으로 유명하다.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으며, 그가 썼다고 하는 단 1권의 책도 유실된 상태이다. 그의 견해는 후대 작가들이 인용한 짤막한 단편들 속에 남아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주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설명하는 데 관심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사회적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아갈 필요가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물을 서로 연관짓고 모든 자연현상을 발생시키는 보편적 원리인 로고스를 파악하지 못한 채 세계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몽상가처럼 살고 있다고 불평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로고스는 서로 반대되는 것 사이의 근본적인 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예를 들어 건강과 질병은 서로를 제약한다. 선과 악, 뜨거움과 차가움, 그밖의 서로 반대되는 것들도 마찬가지의 관계를 맺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단일한 실체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지각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즉 바닷물은 사람에게는 해롭지만 물고기에게는 이롭다. 서로 반대되는 것의 관계를 이해함으로써 헤라클레이토스는 세계의 혼란스럽고 다양한 성격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세계란 한 방향의 변화와 그와 대응하는 다른 방향의 변화가 궁극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정합적인 체계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만물들 사이에는 숨겨진 연관이 있어서 겉보기에는 "떨어져 있으려는 것"도 실제로는 "함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을 만물을 통일하는 근본물질로 보고, 세계질서는 "일정한 정도로 타오르고 일정한 정도로 꺼지는 영원히 사는 불"이라고 썼다. 그는 불의 현상 형태를 확장하여 연료·불꽃·연기뿐 아니라 대기의 에테르까지 포함했다. 이 공기 또는 순수한 불의 일부가 바다 또는 비로 변하고, 바다의 일부가 땅으로 변한다.
이와 동시에 모든 곳에서 똑같은 양의 땅과 바다가 각자 바다와 불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그 결과 동적인 평형이 이루어지며, 이것이 세계의 질서 있는 균형을 유지한다. 변화 속에서도 이렇게 통일이 유지되는 것을 헤라클레이토스는 인생과 강의 유명한 비유로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같은 강에 발을 담그지만 흐르는 물은 늘 다르다." 뒷날 플라톤은 우리의 감각에 어떻게 나타나든 상관없이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이 원리를 채택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당대에는 인기가 없었으며 후세의 전기 작가들한테도 자주 경멸을 받았다. 그가 남긴 가장 중요한 공적은 경험세계의 형식적 통일성을 인식한 점이다.
8) 우리 인간이 감각을 통해서 얻는 것은 모두 환상이라고 주장한 자연철학자는?
① 엘페도 클레스
☛ ② 파르메니 데스
③ 아리스토 텔레스
④ 아낙시만 드로스
2016년 하계 계절수업시험문제지와 정답
1) 모퍼라는 과학 철학자는 과학활동의 핵심을 무엇으로 보았는가?
①생명현상을 설명하는 것
②기술을 위한 자연이용 이론을 만드는 것
③ 지식을 모아서 집합해놓은것
④ 자연을 설명하기 위한 가설의 체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
2)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와 같이 추상적인 사고를 통해서 자연현상을 해석하는 방식을 무엇이라고 할수 있는가?
① 실험주의 자연설명
② 자연주의적 자연설명
③ 실용주의적 자연설명
④ 신비주의적 자연설명
3) 근대수학은 십진법을 사용한다. 다음중 고대에 60진법을 사용한 사람들은?
① 고대로마
② 고대 바빌로니아
③ 그대그리스
④ 고대 이집트
4)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별들의 운행을 자세하게 관찰한 주된 이유는
① 별의 운행이 지상의 사건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기 때문
② 천문학을 연구하기 위해서
③별의 운행을 관찰함으로써 지상의 측량에 도움을 얻기위해
④별의 운행이 향해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서
5) 신화의 세계와 자연에 대한 설명이 고대 그리스의 밀레토스 자연철학자들의
설명방식과 다른 점은 ?
① 자연에 대한 신화의 설명은 정합성이 없고 조야했다.
② 신화는 모두 자연을 영속적인 것으로 보았다
③ 신화의 세계와 자연에 대한 설명은 설득력 이라는 면에서 서로 경쟁적이고 배제적
인 것이 아니었다
④ 어떤 것이 세계를 더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지 서로 경쟁적인 관계였다
6) 고대 고리스의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가 풀기 위해 고심한 것은?
① 감각과 정신을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는가?
② 감각과 정심을 구분해야 하는가?
③ 사변과 관찰을 얼마나 단른것인가?
④ 감각을 통한 사변은 가능한것인가?
7) 자연에 대한 사변끝에 판타 레이, 만물은 끊임없이 흐른다(변화한다)라는 결론을 내린 자연철학자는?
①탈레스
②헤라클레이토스
③아낙시메데스
④아난시만드로스
8) 우리 인간이 감각을 통해서 얻는 것은 모두 환상이라고 주장한 자연철학자는?
① 엘페도 클레스
② 파르메니 데스
③ 아리스토 텔레스
④ 아낙시만 드로스
9) 만물을 구성한 근원물질이 흙, 물, 공기 ,불 사원소하고 처음 주장한 자연철학자는?
① 엘페도 클레스
② 헤라클레이토스
③ 파르메니데스
④ 아낙시고라스
10) 다음중 고대 그리스의 원자론을 대표하는 사람은?
① 아리스토 텔레스 , 플라톤
② 에피쿠레스, 탈레스
③데모크리토스,레우키키포스
④아낙시메네스 , 엠페도 클레스
11) 피타고라스 학파에 대한 설명중 틀린 것은?
① 수학연구에 집중했다
② 육체는 영혼을 거두어 두는 물로 보았다
③ 영혼은 사멸한다고 보았다
④ 일종의 종교집단이었다
12) 다음중 플라톤에 대한 설명중 틀린것은 ?
① 보이는 본질 세계의 그림자이다.
② 보이는 세계는 영원히 존재한다
③ 감각에 지각되는 세계는 현상의 세계이다
④ 수학보다 생물학 연구를 더 중시했다
13) 아리스토 텔레스에 대한 설명중 틀린것은?
①플라톤 사망후 플라톤 제자들이 수학에 치우치자 플라톤이 세운 학교와 아테네를
떠났다.
② 경험을 세계를 중시했다
③ 플라톤의 수제자였다
④ 생물학 연구를 경시했다
14) 아리스토 텔레스의 과학에 대한 설명중 틀릴것은?
① 물리과학과 생물학으로 나눌수 있다.
②물리과학은 엘리아 학파의 변화의 문제에 대한 검토와 비판에서 시작된다.
③ 존재는 잠재태와 현실태로 이루어 있다
④ 자연 속에 실제로 존재하게 되는것은 존재의 현실태로 부터 나온다
15) 아리스토 텔렐스의 과학에 대한 설명 중 틀린 것은?
①변화를 통해서 나타나는 새로운 존재를 무에서 생긴것으로 보았다
②지구상의 모든 변화를 잠재태의 현실화로 설명했다.
③물체의 변화의 원인을 네가지로 보았다.
④물체는 감각을 통해서 인지된다고 생각헸다
16) 물체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네가지 원인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
①질료인
②형상인
③존재인
④목적인
17) 아리스토테레스의 사원소설에 대한 설명 중 틀린것은?
① 물체가 다른 이유를 사원소의 비율로 차이로 설명했다.
② 금속은 사원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지 않다.
③ 공기는 금속보다 나무에 많이 포함되어 있다
④ 사원소는 각각 고유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18) 중세에 기술바달을 촉진한 요인 중에 하나는?
① 그리스 과학의 발달
②노예 공급의 감소
③ 기독교의 지배
④ 이슬람 세계와의 교류
19) 아랍과학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것은?
① 중심지는 알렉산드아 였다.
② 고대 그리스 과학이 (그리고 번역) 그 시원이었다
③고대 바빌로니아 과학의 계승이다.
④ 중심지는 아테네 였다
20) 12세기 이후 아랍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이유중 적합한 것은?
① 이스람 교세가 약해졌다.
② 십자군 전쟁으로 서구 과학이 전파됐다
③기독교가 아랍세계에 퍼졌다
④ 이슬람 정통파가 득세했다.
21) 다음 중세 대학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것은?
① 교양학부는 없었다.
② 교수와 학생의 자치조합 또는 학생들의 자치조합 형태로 나타났다.
③ 6개의 학부로 구성되어 있었다.
④ 교양학부에서는 천문학,물리학이 포함되는 사학이 가르쳤다.
22) 중세대학의 교앵학부 교수들에게 퍼져있던 이중진리설은 무엇을 말하는가?
① 신앙과 과학의 영역을 분리하고 각 영역에 고유한 진리가 있다는 생각
②신학과 과학은 모두 같은 목적을 추구 하지만 수단이 다르다는 생각
③자연학적 사고와 인문학적 고가 각각 고유하다는 생각
④ 영혼과 육체는 분리되어 있지만 신앙 안에서 통일된다는 생각
23) 르네성스 시대 유럽에 소개된 헤르메스 문헌들에 대한 설명중 맞는 것은?
① 처음부터 라틴어로 쓰여졌다
② 소우주-소우주 유비관계에 대한 가르침이 담겨있다.
③ 모세와 같은 시기에 이집트 살았던 사제의 저작이다
④ 1세기 경 헬레니즘 시대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24) 과학혁명의 주역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
① 갈릴레이
②뉴턴
③케플러
④갈레노스
25) 다음중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중요한 천문학 저적을 남긴 사람은?
① 갈리레오 갈리레이
② 케플러
③ 코페르 니쿠스
④뉴턴
26) 다음중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지만 자전을 한다는 우주론을 내놓은 사람은?
① 갈릴레오 갈릴레이
② 뉴턴
③ 헤라클라이데스
④ 케플러
27) 아리스 텔레스의 역학에 대한 설명 중 틀린 것은?
① 진공은 존재하며 그속에서는 물체가 매무 빨리 떨어진다.
② 낙하하는 물체는 그것이 통과하는 매질의 밀도가 작을수록 빠리 떨어진다.
③ 운동은 강제 운동과 자연운동으로 나나었다.
④ 투사체 운동은 강제 운동이다.
28) 하비의 과학활동에 대한 설명 중 틀린것은?
① 많은 동물을 살아 잇는대로 해부했다.
② 심장 판막의 중요성을 무시했다.
③ 심장을 주된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④파도바 대학 의학부를 졸업했다
29) 플리스틀리라는 영국의 과학자는 많은 과학적 발견을 했다.
다음중 그 중의 하나는 ?
① 수은의 산화물을 발견했다.
② 이산화 산소화 같은 공기라는 것을 발견했다.
③ 밀폐된 공간에서 촛불을 태우면 그 속의 공기의 양이 줄어든다
④ 공기는 세가지 성분능로 구성되어 있다.
30) 다음 화성론에 관한 설명중 맞는것은?
① 육지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② 지층 형성과정에서 열의 역할을 중시했다.
③ 지층형성과정에서 물의 역활을 중시했다
④ 지구의 역사을 짧게 잡았지만 육지는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31) 다원이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에 도달하게 되는 데 큰 영향을 준 책을 쓴 사람은?
①월러스 ② 허튼 ③라이엘 ④ 맬더스
32)갈릴레이가 피사의 사탑에서 했다는 실험에 따르면 그가 탑 꼭대기 에서 무거운 쇠공과
가벼운 쇠공 두개를 동시에 떨어 뜨렸을때 쿵 소리가 한번밖에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즉 두개의 쇠공이 동시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갈릴레이가 이러한 실험을 통해서 그의 제1법칙을 도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가 ㅇ런 실험을 하지 않았으라는 것을 뒷바침하는 가장 그럴듯한 논거는?
① 갈릴레이는 실험하기를 좋아하지 않했다.
② 낙체의 제1법칙은 진공속에서 전체를 달기 때문에 공기속에서 실험이 필요 없었다.
③ 실험을 하려면 종류가 서로 다른 물체를 떨어뜨리는 것이 같은 종류인 쇠공을 떨어 뜨리는
것 보다 의미 있기 때문이다.
④ 당시에 탑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33) 뉴턴의 "프린키피아"와 "광학"은 모두 중요한 업적이면서 서로 뚜렸한 차이가 있다. 그조합
으로 틀린것은?
① "광학"은 영어로 "프린키피아" 는 라틴아로 쓰였다.
② "프린키피나" 는 매우 난해하고 "광학"은 대중적이다
③ "광학"은 실험을 이용한 서술이고 "프린키치아"는기하학적 방법을 사용했다.
④"프린키치아"는 실험적이고 "광학"은 이론적이다.
34) 양자이론과 상대성이론이 고전물리학 (뉴턴 물리학 )을 뒤흔든 이유로 옳은것을 고르시요
① 상대성 이론은 빛의 속도나 언제나 일정하다고 설정하므로써 고전물리학 제2법칙을 부정
했기 때문
② 물질의 운동을 확정하는 데 매우 복잡한 계산을 필요로 하는 양자 이론는 고전물리학의 계산
방법보다 휠씬 어렵기 때문.
③상대성리론은 절대시간 ∙공간을 전제로 한 고전물리학을 계승하면서도 물질의 질량과 운동
이 불규칙적임을 제시했기 때문.
④ 결정론을 기초로 하는 고전물리학에 반해 양자이론은 미시 세계 물질들이 불연속이고 확률
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했기 때문.
35) 다음중 프리츠 하버의 중요한 업적은?
① 암모니아 합성
② 질화칼슘 합성
③ 독일물리 화학의 창시
④ 양자화학의 창시
36) 네튼스트와 하버의 논쟁에서 우리가 할수 있는것은 ?
① 과학자들은 경험이 많은 학자의 주장보다 참신한 주장을 더 선호한다
② 과학자들은 경제성을 기준으로 과학적 주장을 판단한다.
③ 과학자들은 명성이 높은 과학자의 주장을 더 선호한다
④ 과학자들은 명성보다 진실만을 기준으로 삼아 판단한다.
37)하버가 베틀린의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로 간것에 대한 적절한 평가는 ?
① 유대인에 대한 나치들의 핍박으로 부터 벗어날수 있게 해주었다.
② 하버의 연구자로서의 창조력이 만개하도록 하는데 기여하지 못했다
③ 독가스 개발에 몰두하게 됨으로써 과학 전체의 평판을 망쳐 놓았다.
④ 과학자으로서는 큰 업적을 내지 못했지만 가정적으로으로는 행복을 얻었다.
38) 하이젠베르크에 대한 설명으로 틀린것은 ?
①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② 이차대전 중 독일의 원자무기 개발을 위한 우랴늄 협회에 참여했다.
③ 이차대전중 독가스를 개발에 참여했다
④ 양자역학에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
39) 제2차 대전후 등장한 원자력발전에 대한 설명으로 올바른것은?
① 핵무기 개발에 부산물이다.
② 초기에 원자력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핵무기를 개발 하려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③ 원자력을 처음 시작한 나라는 일본과 독일 이었다.
④ 초기에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사고나 폐기물의 위험이 없는 대단히 안전한 기술로
생각했다
40) 정보통신 기술에서 말하는 무어의 법칙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① 분산적 개방적 기술이 중앙집중적 기술을 이긴다.
② 컴푸터칩의 성능은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
③ 예상 가능한 사고는 반드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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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메니데스
Parmenides
출생일-BC 515경, 이탈리아 엘레아
사망일-미상
국적-그리스
요약 이탈리아 태생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이전 그리스의 주요학파 중 하나인 엘레아 학파를 세웠다. 일반적인 학설은 주요저작 중에 남아 있는 약간의 단편들과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다소 긴 운문 〈자연에 대하여 On Nature〉를 바탕으로 재구성되었다. 파르메니데스는 존재하는 다수의 사물과 그들의 형태 변화 및 운동이란 단 하나의 영원한 실재('존재')의 현상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모든 것은 하나'라는 이른바 파르메니데스 원리를 세웠다.
이러한 존재 개념을 바탕으로 그는 변화와 비존재를 주장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라고 말했다. 논리적 존재개념을 바탕으로 현상에 대한 주장을 펼쳤다는 점 때문에 그는 형이상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플라톤의 대화편 〈파르메니데스 Parmenides〉는 파르메니데스의 생각을 다루고 있다. 파르메니데스 저작의 영어 번역본(1965)은 L. 타란이 편집했다.
먼저 엠페도클레스1)는 이미 주장된 여러 학설들 가운데서 네 가지(물 · 불 · 공기 · 흙)를 선택해서 만물의 원소라고 주장했으며, 이것들을 특별히 만물의 뿌리(rizomata)라고 불렀다. 알다시피 물은 탈레스에게서, 불은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 공기는 아낙시메네스에게서 나왔고, 여기에 흙을 덧붙인 격이다. 여하튼 이 네 가지 원소가 여러 가지 비율로 섞이고 나누어지는 데서 다양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모든 식물은 그 뿌리에서 나오고 동물이나 사람에게도 혈통의 뿌리가 있듯이, 모든 사물은 뿌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엠페도클레스는 네 가지 원소가 불생불멸할 뿐만 아니라, 아무리 쪼개도 그 이상 쪼갤 수 없는 궁극적인 요소라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어떠한 것도 새로 태어나거나 죽거나 하지 않고, 다만 이 원소들이 섞이고 나누어지는 정도에 따라 생성과 소멸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이것들을 혼합하거나 분리시키는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랑과 미움’이다. 사랑의 기운이 강하면 완전하고 축복된 형태가 되면서 발전하고, 미움의 기운이 뻗치면 쪼개지고 흩어지면서 사라지고 퇴보하게 된다. 부부간에 서로 사랑하면 아이도 생겨나고 살림도 늘어나는 반면, 서로 미워하면 싸우다가 이혼하고 병들고 그러다가 심지어 죽기도 한다. 이 지구상에 사랑의 기운이 우세하면 무기 감축협상이 진행되고 평화협정이 맺어지다가, 미움의 기운이 엄습하면 핵무기 경쟁이 벌어지고 이곳저곳에서 전쟁이 터진다. 사랑은 모든 것을 살리고, 미움은 모든 것을 죽게 만든다.
이 밖에 엠페도클레스는 진화론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의하면, 이 세계는 절대자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발생했다. 사랑의 힘이 서로 떨어져 있는 원소의 분자들을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임으로 최초의 별이 형성되었고, 계속해서 천궁(天窮) · 공기 · 영기(靈氣) 등으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별의 회전에 의해 흙에서 물이 떨어져 나갔고, 그 드러난 흙 위를 바람과 햇볕이 쪼임으로 최초의 생물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아메바와 같은 단세포가 생겨났을 것이고 이것들이 점점 성장해서 하등 유기체로 바뀌고, 식물을 지나 동물로 발전하고, 그 다음에 아마 인간이 발생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 정글에서의 치열한 생존경쟁을 통해 생존하기에 적합한 동물만이 살아남았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다윈으로 대표되는 근대적 진화론, 즉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원리를 떠올리게 된다.
아낙사고라스2)는 “달이 빛을 내는 것은 태양빛을 반사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고, 당시 신으로 숭상되던 태양을 ‘불타는 돌덩이’라고 불렀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과학적인 사고를 한 셈이다. 하지만 신을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재판에 회부되었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람프사코스로 망명했으며, 그곳에서 최고의 존경을 받다가 죽었다. 죽을 무렵에 사람들이 “타향에서 죽는 것이 얼마나 슬프냐”라고 묻자, 그는 “저승에 도달하는 거리는 어디에서나 똑같다”라고 대답했다고 전해진다.
아낙사고라스는 모든 사물의 근본 원질을 종자(種子)라고 불렀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각각 그것의 씨앗으로부터 생겨난다. 따지고 보면, 엠페도클레스가 말한 뿌리 역시 씨에서 나온다. 채송화는 채송화 씨에서, 나팔꽃은 나팔꽃 씨에서 나온다. 소의 씨에서 송아지가 나오고, 사람의 종자에서 사람이 태어난다.
이처럼 종자란 질적으로 서로 다르며 아주 작은 물질이다. 봄철에 꽃씨를 학교에 가져가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얼른 보기에는 똑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 씨가 움터 땅을 뚫고 나왔을 때, 채송화인지 나팔꽃인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 이 세계에 서로 성질이 다른 많은 사물들이 있듯이, 그것들을 생겨나게 한 수많은 종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손톱이나 머리카락, 피나 뼈의 종자를 먹는 것도 아닌데 왜 그것들이 우리 몸속에서 생겨날까? 이에 대해 아낙사고라스는 “우리가 먹는 음식물 가운데 이미 그것들의 종자들이 들어 있다”라고 하는, 엉뚱한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그리고 물속에는 물의 종자만이 아니라 흙이나 공기의 종자도 들어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가운데 물의 종자 수가 가장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여동생이 포도를 씨까지 먹는 모습을 본 이종사촌 누나가 “너 이제 큰일 났다. 네 뱃속에서 포도나무가 자라나면 입을 뚫고 나올 것이다”라고 동생을 놀렸다. 여동생은 입을 벌린 채 울어댔고, 결국 누나는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씨가 자라난다는 말에 깜박 속아 넘어갔던 것이다.
한편 아낙사고라스는 이 종자를 움직여 생성과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힘을 누스(Nūs)3)라고 불렀다. 단지 물질적인 것만으로는 이 세계의 운동과 변화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최초의 일격을 가하는 원동자(原動者)로서 어떤 비물질적인 것, 즉 정신적인 원리가 필요하다는 데에 착안했던 것이다. 가령 스스로 움직이는 로봇이 있더라도 본래 그것을 움직이게 만든 쪽은 사람일 것이다. 태엽이 감겼다가 풀어지면서 움직이도록 만든 장난감 자동차도 애초에 힘을 공급하는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세상의 변화가 아무리 기계적인 인과성에 의해 움직인다 해도, 적어도 처음에는 정신적인 어떤 힘이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랜지스터라디오 뒤를 뜯어내면 지남철(자석)이 나오고 그 자석으로 모랫속을 헤집어 가느다란 쇳조각을 모은 다음, 그것들을 손으로 떼어 종이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자석을 이리저리 움직이면 쇳조각들이 움직인다.
아마 탈레스도 이런 장난을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자석이 쇳조각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그 자석에 혼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죽어 있는 물질인 쇳조각이 스스로 움직일 수는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아낙사고라스는 탈레스의 이러한 견해를 넓혀서 모든 운동이 정신적인 작용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령 사람이 움직이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에 의해서다. 비록 육체가 움직일망정 그 명령을 내린 쪽은 정신(마음)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물질적인 이 세계가 움직인다면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어떤 정신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바로 누스라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모든 자연 철학자들은 오직 물질에서 근본원소를 찾으려 했다. 그런데 아낙사고라스에 이르러 비로소 사유하는 정신의 원리가 철학사에 최초로 등장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 대부분 술에 취한 채 비틀거리는 주정꾼들이었다면,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었던 사람이 바로 아낙사고라스다”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파르메니데스는 “무(無)는 있을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라고 했으며, 운동과 변화도 없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무로서의 텅 빈 공간이 있어야만 운동이 가능한데, 그 운동장이 없기 때문에 운동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이 주장이 옳은 것 같다.
그러나 만일 그의 주장이 옳다면, 이 세계는 오직 한군데로 엉켜 붙어 있어 옴짝달싹 못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물과 사물 사이에 있어야 할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독립기념관에 전시된 일제의 고문 기구처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벽에 사람의 형태를 파서 그곳에 집어넣은 채 하루 종일 꼼짝도 못하게 했다는 그 기구 말이다.
이런 면에서 파르메니데스보다는 데모크리토스(Democritos, BC 460?~BC 370?)가 더 상식적이었던 것 같다. 그가 보기에 이 세계는 엄연히 운동하고 있었고, 계절의 변화나 밤낮의 바뀜, 생명체의 발생과 움직임 등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우리가 이러한 것을 인정한다면 운동장, 즉 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여기에서 바로 “유도 있지만, 무 역시 유 못지않게 있다”라고 하는 명제가 나온다.
데모크리토스의 초상화
<데모크리토스>, 헨드리크 테르브뤼헨, 1628,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소장그는 철학사에서 원자론을 예견한 사람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어떤 물질을 계속해서 나눠서 결과적으로 분해되지 않는 과정까지 가게 되면 원자라고 불렀다. 이 그림은 그가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고 포복절도하는 ‘(비)웃는 철학자’였음을 가장 잘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세계는 존재자(존재하는 모든 것)와 그 존재자가 채우고 있는 텅 빈 공간(무)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 공간, 즉 무는 물체와 물체 사이뿐만 아니라 물체의 안에도 존재한다. 왜냐하면 모든 물체는 그 속에 각각 텅 빈 공간, 즉 구멍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단단한 돌처럼 속이 꽉 찬 물체는 그 구멍들이 작을 것이고, 부드러운 목재처럼 헐렁한 물체는 그 구멍들이 클 것이다.
그렇다면 존재는 무엇으로 구성되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것을 쪼개 나가면 된다. 가령 분필의 근본을 알아보려면 그것을 계속 쪼개야 하고, 쪼개고 쪼개서 그 이상 쪼개지지 않는 가장 작은 입자까지 이를 수 있는데, 데모크리토스는 이것을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다’라는 의미에서 불가분의 것, 즉 원자(原子, atom)4)라 불렀다.
그리고 이 작고 수많은 알맹이들을 정반대로 붙여 나가면 결국 본래의 분필이 되므로, 분필은 그 알맹이들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사물은 원자의 결합으로 생겨나고, 원자의 분해로 없어진다. 여기에서 우리는 원자야말로 모든 사물의 근본임을 알 수 있다.
레우키포스(Leukippos)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론의 창시자로 알려진 레우키포스5)의 대표적인 제자다. 그런데 이 원자는 아낙사고라스가 말한 종자와 달리, 동일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가령 볍씨와 보리씨가 다르듯 씨앗이 서로 각각인 데 비해, 원자는 서로 질이 같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칠판과 분필에서처럼 각각의 사물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사물을 구성하는 원자의 수가 다르고 또 각각의 원자가 갖는 크기와 무게, 배열 순서와 위치 등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다이아몬드와 석탄이 똑같은 원소(C)로 구성되어 있는데도 그 양적 차이로 인해 아주 다른 성질이 나오듯이, 질(質)의 차이가 아닌 양(量)의 차이가 사물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다.
또한 데모크리토스에 의하면, 영겁(永劫)의 과거로부터 수많은 원자들이 무한한 공간 안에서 중력의 법칙에 따라 활동한다고 말한다. 그것들은 서로 부딪쳐 튕겨지면서 공간 안에 움직인다. 때로는 빙빙 돌다가 모아져 물체를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흩어져 그 물체를 소멸시키기도 한다. 모든 것은 원자의 활동으로 생겨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주가 발생한 것도 이를 계획하거나 이끌어 가는 어떤 정신에 의한 것이 아니며, 또 사랑과 미움에 의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우연에 지배되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원자의 활동에 의한 것이고, 또 모든 존재자 안에 들어 있는 자신의 기계적인 법칙성에 의해 끌려 가는 것이다.
사물만 원자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신체와 영혼 역시 마찬가지다. 신체는 어차피 특수한 성격의 ‘물질’로 보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반면, 물질이 전혀 섞이지 않은 것 같은 영혼마저 원자로 되었다는 주장에서 데모크리토스의 유물론적 경향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영혼이란 가장 미세하기 때문에 가장 활발한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는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사물이 어느 정도는 이 영성(靈性) 원자를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인간의 경우에는 그것을 비교적 많이 포함하기 때문에 다른 물체에 비해 영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뿐이다. 결국 일반 물체와 영혼의 차이란 원자들의 양적 차이에 불과하다.
따라서 애초에 인간이 생겨난 것 자체가 원자의 결합인 것처럼, 인간이 죽는다는 것도 그를 형성했던 원자들이 흩어진다는 것과 같다. 육체를 구성했던 원자가 흩어지면 육체가 없어지고, 정신을 구성했던 원자가 흩어지면 정신 역시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인간에게 사후(死後) 세계란 없다. 사람이 죽으면 한갓 무로 돌아갈 뿐, 천국이나 지옥 또는 극락 같은 곳은 없다는 뜻이다.6)
우리가 죽은 다음, 단지 무 또는 흙으로 돌아간다는 입장에서는 “살아 있는 동안이나마 즐겁게 살자”라는 주장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다. 데모크리토스의 유물론적 세계관에 입각해서 보면, 쾌락주의 윤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컨대 사람이 죽은 다음 천국이나 지옥, 극락이나 심판이 없다면 누가 애써 양심대로 살 것이며 누가 힘써 사람의 도리를 지키려 할까?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마치 개나 돼지처럼 먹고 마시고 즐기며 한평생 보내려고 하지 않을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거나 권력을 잡아 맘껏 휘두르며 살려고 하지 않을까? 이 대목에서 우리는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가 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채택했는지 짐작할 수 있으며, 사실 오늘날의 한탕주의 · 생명 경시 풍조 · 물질주의 · 퇴폐주의 등은 이처럼 천박한 사상적 바탕 위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오늘날 현대 과학의 학설이 데모크리토스의 주장과 배치되는 것도 사실이다. 가령 원자가 오직 한 종류가 아니라 100여 가지는 넘는다고 밝혀졌고 원자보다 더 작은 미립자가 발견되었으며, 물질적 존재가 질에 따라서 서로 다르다는 점도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원자론이 오늘날의 과학에 선구적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아가 그는 질적 차별을 양적 차별로 환원시키려는 자연과학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알다시피 자연과학의 특징은 질적인 것을 양화(量化)7)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하나와 여럿의 대립, 다원론자 (청소년을 위한 서양철학사, 2008. 7.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