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를 영하는 신자와 먹는 신자
양남하(시몬)
◇ 미사는 성체성사가 이루어지는 거룩한 잔치
“이 세상의 선한 모든 일을 다 합하여도 미사의 가치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선행(善行)은 사람의 업적이지만, 미사는 하느님의 업적이기 때문입니다.”라는 성 요한 비안네 님의 말씀을 원용하지 않더라도, 미사는 성체성사가 이루어지는 거룩한 잔치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몸(살과 피)을 받아 모심으로써 영혼의 양식을 섭취하고 살아계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거룩한 축제”라고도 할 수 있지요.
다 아시는 바와 같이, 미사는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나누신 마지막 성찬에서 비롯됩니다. 예수께서는 이 의식을 하던 중에 빵을 나누어 주시며 “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시고 포도주를 주시며 “이것은 나의 피다”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에게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라(루가 22, 19)”고 말씀하신 대로,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여 지금까지 미사성체를 계속 유지 보전하고 있는 것이 미사예절입니다. 미사 거행은 언제나 하느님 말씀의 선포, 하느님 아버지께서 베푸신 모든 은혜, 특히 아드님을 우리에게 주신 데 대한 감사, 빵과 포도주의 축성, 그리고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영성체(領聖體)를 포함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048항). 이 중에서 성체성사는 미사예절의 핵심이며 정점이지요. 미사의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빵이 축성되어 예수님의 거룩한 몸인 성체(聖體)로, 포도주가 축성되어 예수님의 거룩한 피인 성혈(聖血)로 변하기 때문에 미사를 성체성사(聖體聖事)라고 하는가봅니다.
◇ 밀떡과 포도주를 예수님의 몸과 피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문제제기를 했을 법한 질문은 “밀떡과 포도주를 예수님의 몸과 피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기본적인 문제일 것입니다. 밀떡이 성직자에 의해 축성되면 예수님의 거룩한 몸인 성체(聖體)로, 포도주가 축성되어 예수님의 거룩한 피인 성혈(聖血)로 변하느냐는 문제를 과학적으로는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과학의 경지를 초월하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유를 들면 그 원리를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꽃집에는 거의 같은 모양의 장미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장미 한 송이를 사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의 징표로 선사한다면, 그 장미는 본질적으로 다른 무엇이 될 것입니다. 즉 장미를 선사하면서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 자기 자신을 선사하기에 장미는 장미의 가치 이상의 것으로, 가격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귀중한 표징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런 표징보다 더 성스러운 변화가 바로 미사 때 축성되는 빵과 포도주가 성체와 성혈로의 변화일 것입니다. 즉, 성직자의 축성예식으로 축성되는 빵과 포도주는 장미가 주는 징표보다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차원의 성화이기 때문입니다.
◇ ‘사도신경’은 믿음을 다지는 큰 선물
장미선물을 받은 사람에게는 그 꽃은 그냥 장미가 아니라 사랑을 담은 표징이 되듯이, 미사에서의 빵과 포도주도 그냥 빵과 포도주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표징, 즉 그분 자신을 담은 표징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겠다는 마음으로 세례를 받은 신자라면, 부정확한 가정을 붙이면서까지 의심하기 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사도신경을 음미하면서 내공을 쌓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 성령을 믿으며 /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
◇ 성체를 영하는 신자가 되도록 도와주소서.
그러므로 신자들의 마음가짐을 기준으로 성체를 “영하는 신자”와 “먹는 신자”로 크게 나누어 성찰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전자(=성체를 영하는 신자)는 성체에 예수님이 현존하신다는 굳은 확신과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성체를 모시는 분이시고, 별 생각 없거나 가끔은 “밀떡과 포도주가 정말 예수님 몸과 피로 변할까?” 하는 예수님의 성사적 현존에 의심을 품기도 하면서 성체를 기계적으로 받아먹는 신자는 후자(=성체를 먹는 신자)의 부류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일찍이 사도 바오로께서도 올바른 마음가짐 없이 성체를 영하면 주님을 모독하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각 사람은 자신을 살피고 나서 영성체하라고 권했나 봅니다(고린도전서 11.27-29). 일상적인 잘못, 즉 소죄가 있는 경우에는 꼭 고해성사를 보지 않고서도 성체를 영할 수 있지만, 중대한 잘못(=대죄)이 있으면 성체를 영하기에 앞서 반드시 고해성사를 받아야 한다고….
또 미사 때 성직자의 전례의식에 의해 성령의 힘으로 변화된 성체를 수녀님이나 평신도가 분배봉사를 하는 줄을 피해 성직자 줄로 바꿔가서 성체를 받아 모셔야 직성이 풀리는 신자들 대부분은 ‘성체를 먹는 신자’부류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기품서린 인격자를 동경하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하더라도, 성직자가 분배하는 성체만이 진짜 성체이고 수녀님이나 평신도가 분배하는 성체는 뭔가 부족한 성체라고 생각하고 있는 신자라면, 근본적으로 생각해 봐야할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마음가짐은 영성체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행동일 뿐만 아니라 결국 사랑이신 주님을 욕되게 하는 행위에도 속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아버지. 성직자나 성찬의 봉사자에게는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임을 나는 믿습니다, 당신도 그리 믿습니까?”라고 묻는 심정으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음성을 내게 하시고, 신자들에겐 “예, 그리 믿습니다.”라는 심정으로 ‘아멘’이라 응답할 수 있도록 은총 내려 주소서. 그래도 부족할 때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체찬미가’라도 읊조리면서라도 주님을 찬미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길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엎디어 찬미하나이다. 숨어 계신 천주시여,
성체와 성혈 안에 분명 숨어 계시오나,
우러러 뵈올수록 전혀 알 길 없기에,
내 마음은 오직 믿을 뿐이오이다.
보고 맛보고 만져봐도 알 길 없더라도
들음만으로도 믿음 든든하오니,
믿나이다, 천주 성자 말씀하신 모든 것을.
진리의 말씀보다 더한 진실 없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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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3. 13 구로디지털단지연구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