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연 저격수가 될 만한가! ＜비평글＞

청마 유치환-편-      물빛 하늘만 봐도 눈물이 되었던 감수성 많던 계절에 우체국과 시인 이영도, 통영, 바닷가에 부딪히던 파도와 나부끼던 깃발에 잠시라도 침식당하지 않은 청춘은 없었으리니 반세기가 지나서야 그의 저격수들이 몸을 일으킨다. “首 ”라는 작품에 “匪賊”이라는 단어를 앞에 놓고 그를 선양하려는 측과, 반민족 행위자 명단에서 제외되었다고 면죄부를 얻은 건 아니라며 청마 탄생 100주기를 기념하여 기념관을 짓는 등, 막대한 예산을 들이려는 통영시와 통영시의회에 시민단체들이 들고 일어난 것은 2천 년대 초부터다.      수(首)   십이월의 北滿 눈도 안 오고 오직 만물을 苛刻하는 흑룡강 말라빠진 바람에 헐벗은 이 적은 街城 네거리에 匪賊의 머리 두 개 높이 내걸려 있나니 그 검푸른 얼굴은 말라 소년같이 적고 반쯤 뜬 눈은 먼 寒天에 模糊히 저물은 朔北의 산하를 바라고 있도다 너희 죽어 律의 처단의 어떠함을 알았느뇨 이는 四惡이 아니라 질서를 보전하려면 인명도 鷄狗와 같을 수 있도다 혹은 너의 삶은 즉시 나의 죽음의 위협을 의미함이었으리니 힘으로써 힘을 除함은 또한 먼 원시에서 이어 온 피의 法度로다 내 이 각박한 거리를 가며 다시금 생명의 險烈함과 그 결의를 깨닫노니 끝내 다스릴 수 없던 무뢰한 넋이여 暝目하라! 아아 이 불모한 思辨의 풍경 위에 하늘이여 은혜하여 눈이라도 함빡 내리고지고          십이월 북만주의 눈도 안 오는데 흑룡강 삭풍이 부는 가성네거리에 참수되어 걸려있는 조선독립군 항일무장요원! 너를 제압하지 아니함은 내 죽음과 무관치 아니하니 너희 죽어서야 대일본 제국의 법에 따라 처형된 그 의미를 알았느냐. 이는 네 가지 악이 아니라 질서를 보전하려면 때에 따라 인명도 개나 닭 같을 수 있느니 이 삭막한 거리를 걸어가며 생명의 험하고 쓰라린 맛을 되새기니 끝내 다스릴 수 없었던 죽은 자여 똑똑히 보라. 하늘에서 은혜를 내리듯 눈발이라도 날렸으면...      <실록 친일파>에서 고 임종국 선생도 그의 시 “수”가 거짓 평가를 받고 있는 친일시라고 확언한 바 있지만 청마의 가족은 물론 그가 태어난 거제시와 통영시, 문학단체들은 수에 나오는 비적匪賊이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도둑이라고 줄곧 주장하고 있다. 1942년 3월 <국민문학>을 통해 발표된 이 “首”는 북만주 당시의 상황과 잔인무도한 일본괴뢰정권의 만행을 한마디로 집약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1939년에 만주 봉천으로 이주한 유치환은 1940년 6월부터 해방되던 해, 1945년 6월까지 북만주 빈강성賓江省 연수현延壽縣 신구新區의 '자유이민촌 가신흥농회' 농장을 경영하며 1943년부터 하얼빈 협화회에서 근무했다.   1931년 만주를 침략한 일본은 다음 해 괴뢰정권을 세우고 2~3십명 단위, 많게는 수백 명 단위로 일어나는 항일 만주독립군과 조선인 무장투쟁단을 토벌해 우두머리를 잡아 반드시 효수하여 사람들이 번다한 거리에 걸어놓았다는 것이니 이를 비적이라고 통칭했다는 것이다. 1939년부터 협화회에 소속된 조선인들은 동북항일연군 등을 토벌하는 데 선무공작대원으로서 산악을 누비고 다녔다. <선문반원명부(宣撫班員名簿>에서는 협화회 소속 조선인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니 유치환도 결코 이 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증명된 셈이다.   위의 시처럼 남의 나라를 침략한 괴뢰정부의 보전을 위해 법도와 률에 따라 인명도 개나 닭이 될 수 있다하니 당시 만주 벌판을 누비며 하얼빈을 중심으로 목숨 걸고 항일투쟁에 몸바쳤던 억울한 죽음들, 더구나 비적이란 이름을 달고 개나 닭처럼 죽었으니 어찌 눈을 감으랴!   그렇다면 논란이 되고 있는 이 “匪賊”이 항일투쟁군 이냐 일반적인 도둑을 가리키는 것이냐. 현대사 아세아 연구원인 거제 출신의 전갑생님이 일본 방위성 자료와 만주 현지로 자진 급파하여 당시의 비적이 있었는가를 샅샅이 탐문하고 파헤치고 돌아와 2008년 언론에 발표함으로써 당시의 한반도이든 만주 현지이든 도둑 떼는 전혀 없었다는 것으로 이 논란에 종지부는 이미 찍힌 것이나 다름없다. 그 밖에도 친일잡지 춘추에 발표한 학병출정 장려시 “전야”와 아세아의 산맥을 넘어서 동방의 새벽을 일으키다, 로 끝을 맺고 있는 “북두성”이 청마 유치환을 도리 없이 친일시인으로 낙인 찍고 있다. 그러나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엄혹한 시대에 나약한 예술혼의 초상화가 아닐까. 혹은 민족개조론 등 40편이 넘는 일본 찬양과 선동의 글뿐만 아니라 강연까지 쫓아다녔던 이광수, 주요한과는 다르게 친일 서너 작품에 불과하니 다른 차원으로 해석해야 할까?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하면 청마가 선무공작대원이었다면 중국과 만주의 산과 숲을 누비며 독립군을 색출하는 행동요원이었던 것이니 글줄이 적다한들 그의 친일행적을 가벼이 보아야 하는 것일까.  더구나 그의 친일로 대표 되는 위의 시 "수"에서 다음의 글귀는 찬찬히 볼 필요가 있다. 너희 죽어 律의 처단의 어떠함을 알았느뇨이는 四惡이 아니라질서를 보전하려면 인명도 鷄狗와 같을 수 있도다혹은 너의 삶은 즉시 나의 죽음의 위협을 의미함이었으리니힘으로써 힘을 除함은 또한먼 원시에서 이어 온 피의 法度로다 질서를 보전하려면 인명도 계구와 같은 수 있도다--에서 그 질서란 어디의 질서인가. 이는 침략자의 질서이며 다음의 글귀혹은 너의 삶은 즉시 나의 죽음의 위협을 의미함이었으리니--이 대목은 선무공작대원이었던 청마의 역할을 그대로 드러내는 글귀로 읽힌다. 그러니 가슴 아프지만 그 가족들과 그 후학들의 주장은 거리가 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생명파 시인으로서 자신의 목숨 부지를 위해 영혼을 삭북과 저열에 팔아버린 것이니 그렇다면 이 시대에 수 놓인 비열은 없었을까. 감히 친일이라는 그 무거운 주제와 같이 다룰 수는 없는 일이나 이미 한국 사회를 강타한 미투! 걸려든 컴컴한 눈동자보다 더 많은 숫자, 걸쭉한 진창 속에 몸을 숨긴 잠룡들! 그들로부터 시작되는 압제와 문단 권력으로부터 나는 자유롭게 살아오고 있는가! 친일문인들의 비판글을 쓰면서 이제야 저격수를 자처하는 나 또한 색채가 다른 이 시대의 비열과 저열로부터 자유로웠나,를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