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약 10여년 전 어느 가을날의 일이었다.
취미로 마라톤을 시작한 딸이 자기가 운동을 해보니까 여러 가지로 좋으니까 “어머니 모신문사에서 주최하는 다대포 마라톤대회에 5Km 참가 신청을 해 놓았으니까 연습 좀 하세요” 라고 말하는 것이 계기가 되었다. 누구든지 어떤 일을 자기가 해보고 좋으면 그 일을 권하게 마련인가 보다. 어쨌든 딸아이가 대회 신청을 해 준 것이 대견하기도 해서 대회에 참가하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대회신청을 해 놓으면 어느 정도 연습을 해야 한다고 해서 연습은 이웃에 있는 학교나 성지공원, 호수에서 하게 되는데 하루의 연습량은 대략 5킬로 미터부터 시작했다. 성지 공원은 호수가 넓고 풍광이 좋아서 시민들의 휴식처로서 손색이 없다. 혼자서 달리기 연습을 하다 보면 너무 힘이 들어서 작은 소리로 나도 할 수 있다는 말을 반복하며 힘을 스스로 싣게 된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 했을 때 내 나이 오십대 초반이었다. 그전에도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 돌아 본적이 고작인 내게 마라톤이라는 거창한 구호가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의 큰 부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까지 걷기 대회에는 몇 번 참여한 적이 있어도 마라톤 대회에는 한 번도 참가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겁도 나고 마음이 설레 이기도 해서 과연 내가 5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해서 많이도 망설였었다.
그래서 인터넷 홈페이지에 글을 한번 올렸더니 다들 자기일인 것처럼 열렬히 응원해 주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도 다하는 일을 나는 왜 못하나 하는 오기로 도전을 결심했다. 또 한 가지 내 마음을 끈 것은 다대포 라는 지명이었다. 부산엘 몇 십 년을 살아도 다대포 구경을 한 번도 못 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대회 날짜가 다가 왔다.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맑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다. 길가에는 하얀 코스모스와 주황색 코스모스, 금잔화가 어우러져 만발했었다. 드디어 터널을 지나고 이름 모를 야생화가 저마다의 자태를 자랑하는, 낙동강 변을 한참을 지나서 어느새 오늘의 마라톤 경기장인 다대포 바닷가에 닿을 수 있었다. 전국에서 찾아온 수많은 아마추어 마라토너들과 응원하러 온 가족들로 그 넓은 백사장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넓은 백사장의 한쪽에서는 마라톤 대회를 축하하는 농악놀이도 한창이고, 맑고 상쾌한 가을 하늘 아래 푸른 파도는 한 폭의 수채화 그 자체였다. 이름 모를 물새들과 은빛 갈매기들은 전국에서 찾아온 선수들을 마냥 반겨 주는 듯 했다.
대회에 참가한 수많은 선수들이 하나 같이 여유 만만하고 밝게 웃는 맑은 얼굴이었다. 무엇이 저토록 선수들의 얼굴을 밝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아! 저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다들 하나 같이 즐거운 표정들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빨강, 노랑, 초록 등 원색 선수 복 을 입은 아마추어 선수들은 저마다 준비운동을 하느라 열심이었고, 본부석에서는 연신 주의사항을 마이크로 방송을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는 가벼운 간식거리도 와 먹거리 판을 벌여놓고 멀리서 오느라고 식사도 못한 선수들은 허기를 면하려고 어묵 좌판에 끼리끼리 모여 앉았다.
그날 대회에 참여한 아마추어 선수들을 대강 둘러보니, 반백의 할아버지, 장애인 아저씨,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이는 할머니, 몸이 비만인 아가씨들도 서로서로를 격려하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딴에는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마라톤 고수(? )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라톤은 풀코스를 뛰어야 마라톤이라고 하고 그 이하는 그냥 달리기라고 해야 한다고 해서 나도 하루 빨리 하프코스를 뛰고 조금 더 연습을 해서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해야지 하는 마음에서 조바심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김해에서 마라톤 대회가 있으니 꼭 참여하라는 동료들의 통보가 왔었다. 날씨는 겨울 날씨라 꽤 추웠지만 우리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대회장엘 갔다. 다른 대회는 미리 참가 신청을 해놓아서 물품을 챙기는데 여유가 있는데 반해 그날은 현장에서 참가 신청을 했다. 참가비 만원을 지불하고 티셔츠 하나씩을 받아 들고는 부산했다. 우리도 준비 운동을 하는 대열에 함께 참여했다.
아침 일찍 여러 지방에서 참가한 선수들의 열기로 우리는 추운 줄도 모르고 준비운동을 하느라 저마다 열심이었다. 드디어 대회가 시작되고 하늘에는 빨강 노랑 파랑. 풍선들이 대회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 시키고 있었다.
드디어 대회를 알리는 신호탄이 울리고 선수들은 하나둘씩 대회장을 빠져 나갔다. 조각공원을 지나고 작은 하천을 지나고, 몇 곳의 마을을 지나고, 넓은 대로를 지나 4차선 도로로 접어들었다. 도로변에 응원 나온 많은 주민들이 큰 소리로 응원해 주었고, 농악놀이를 하던 아저씨와 아주머니들도 꽹과리를 치면서 응원해 주어서 더욱 신이났다.
나는 대회 시작 전 부회장님이 두 사람의 도우미를 붙여 주어서 그나마 완주 할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중도에서 포기하고 회수차를 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힘이 부쳤었다.
말로만 듣던 하프코스가 왜 그렇게도 멀고 힘들었던지, 죽을 힘을 다해서 헉헉거리며 달려가고 있는데 금방 오르막이 나타났다. 그날 코스는 대체로 오르막이 많이 있었다.
반환점을 돌아서 오는 길에는 김 현식 씨의 이별의 종착역(가도 가도 끝이 없는 외로운 길 나그네길 비바람이 분다. 눈보라가 친다. 이별의 종착역~)이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도우미의 구령에 맞춰서 하나 둘 외치며 힘을 북돋우기도 하고 도우미와 간간이 즐거운 이야기도 하면서 종착지점을 향해 젖 먹던 힘을 다해 달렸는데 때로는 길가에 나와 있던 주민들이 잠깐씩 일손을 멈추고 박수를 쳐 주기도 해 그나마 힘이 났다.
종착지점을 약 10킬로미터쯤 남겨 두었을 때부터 경찰차의 안내를 받으면서 제일 꼴찌로 들어왔는데 꼴찌에게 박수를 이라는 말처럼 오늘 처음 하프코스를 완주하느라 고생도 많았지만 많은 분들에게 박수도 받고 축하도 많이 받았다. 비록 꼴찌는 했지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도 새삼 느낀 유익한 하루였다.
겨우 겨우 완주는 했는데 연습도 하지 않고 도전한 마라톤 하프코스가 너무 힘들어서 결승점에서 그냥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대체로 꼴찌 군락에 들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몸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어떤 이는 백 킬로그램이 넘는 거구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백오십 킬로그램도 훨씬 더 나가 보이는 체구로 뒤뚱 뒤뚱 뛰는 모습이란 보는 이로 하여금 배꼽을 잡게 했다. 밖에서는 회원들이 미리 준비해온 고기를 철판과 석쇠에 굽느라고 야단법석들이다.
나는 너무 피로한 나머지 차안에서 꼼짝을 하지 않고 있으니까 모두들 빨리 나와서 고기 먹으라고 야단들이었다.
긴 시간이 지나고 차에서 겨우 내려가기는 했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입맛이 없어서 거의 먹지를 못했다. 그 후 몸이 퉁퉁 붓고 온 전신이 쑤시고 아파서 며칠을 고생을 했다. 너무 무리한 욕심은 언제나 화를 불러일으킨다는 작은 교훈을 잠깐 망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 후로 많은 대회에 참여 해 보았지만 역시 연습부족으로 어떤 때는 꼴찌도 하고 어떤 때는 꼴찌 순 에서 몇 등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혀 부끄러움은 없었다.
얼마 전에는 고성 대회에 참여 했는데, 너무 힘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이 탓일까? 이런 생각을 해보면서 그러나 매 대회 때 마다 내 힘이 닿는 한 열심히 해볼 작정이다.
부산마라톤 클럽 파이팅!!
파랑새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