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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월삭 예배
<단락 1>1. 사 66:22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3. ...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달의 히브리어는 ‘호데쉬 (חודש)’ 이며, 뜻은 ‘새롭다’ 입니다. 하나님은 매달 새로운 축복을 주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샬라임이 이 땅 가운데 임하게 되어졌을 때, 절기와 월삭과 샤밧은 반복되어집니다. 이것을 믿는 자는 이사야 66장 22절에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믿음으로 말해야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근본적인 진리 중 하나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하늘에 기록되어지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는지 여부가 검토되어집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 분을 사랑하고, 그 분을 가까이 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며, 동역하길 원하시고,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없어도 세상을 구속 하실 수 있겠지만, 이 땅에 완성되어지는 하나님의 집에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거하시길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를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모든 것이 정렬되지 않게 됩니다. 전기 회로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아무리 강한 전류가 집안에 흐르고 있다고 해도 선 하나만 잘못 연결되면, 불은 켜지지 않습니다. 무언가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전기가 흘러 들어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때 촛불을 켜든지, 아니면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서 그 부분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우리의 모든 문제가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문제를 해결받기 원한다면, 우리의 삶 가운데 그 분의 능력이 왜 흘러들어오지 못하고 있는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점검해 봐야 합니다.
Ⅱ. 헤쉬반 : 여덟 번째 달
<단락 1>‘헤쉬반’을 ‘마르 헤쉬반’이라고 부르는데, 그 의미는 몰약입니다. 몰약은 향기가 짙어 시체에 사용하는 향수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헤쉬반’ 월에 육체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서, 자신을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를 짊어 매는 시간들을 가져야 합니다. 이 고난의 시간을 통과하면, 우리의 삶은 아름다운 향기 (장막절의 에트로그 열매 : 좋은 나무의 열매)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달 히브리어 알파벳 <נ : 눈>의 뜻은 충성된 종, 신실함,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있습니다.
1. 수 1: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 (예호슈아)의 이름의 뜻은 구원입니다. 그래서 예슈아’는 본래 ‘예호슈아 (Yehoshua)’ 의 줄인 형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모세와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종이었습니다. 종 (히 : 에베드)은 경작하여 (히 : 레아브다 :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것)하여 지키는 일 (히 : 레샤므라 :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다)을 행하는 자를 뜻합니다. 그래서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대제사장 직분을 받았으며, 에덴동산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치하고 다스리는 왕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들을 경작하며, 지키는 임무를 가진 인간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창 2:15). 우리 또한 예슈아를 왕과 주인으로 영접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됩니다. 영접이란? ‘예슈아는 나의 왕이시고, 나는 예슈아의 종이 되겠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슈아를 영접한 이는 이제부터 예슈아를 위해서 살아가기 시작해야 합니다 (롬 14:7-9).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단순히 미래의 어느 날 우릴 이 세상으로부터 건져내는 차원이 아니라, 지금 현재 시간 속에서 좁은 문, 좁은 길을 걸어가며,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넓은 길에서 주님을 찾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1) 아 3:1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2. ...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노라
아가서에 나온 신부는 예슈아를 찾고 찾지만, 찾아내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그녀가 예슈아를 찾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부가 예슈아를 찾고 있는 장소가 침대와 큰 길입니다. 침대는 신부에게 있어서 안전한 곳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 침상은 예슈아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한 장소입니다 (아 2장). 그러나 우리의 신앙생활은 나만 잘되고, 나의 문제가 해결되어지는 차원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되며, 과거의 영적인 체험만을 붙들고 있으면 안 됩니다. 사람들은 익숙한 곳에 머무르려고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변화되어지는 것, 새로운 것 (도전)을 싫어하며, 안정되고, 안주하려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삶의 방향을 돌려 말씀으로 돌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슈아는 큰 길 (세상의 가르침)에 있지 않고, 좁은 길, 좁은 문 (하나님의 말씀)에 계십니다. 예슈아를 왕으로 영접한 이들의 삶은 처음에 제법 좋은 길, 넓은 길로 나아가다가 점점 좁아지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슈아를 왕으로 영접한 처음부터 좁은 길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슈아를 믿는 순간부터 영적 전쟁에 들어가는 것이며, 그 시작은 우리의 육신의 것과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이는 내 마음에 계신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슈아를 영접하였다면, 세상 이들과 함께 어울려 넓은 문, 넓은 길로 달려가는 삶을 멈추어야 합니다.
2) 왕상 6:38 열한째 해 불월 곧 여덟째 달에 그 설계와 식양대로 성전 건축이 다 끝났으니
‘불월’ 이라는 단어는 바벨론 포로 이전에 여덟째 달을 대신해서 사용하던 히브리어 입니다. 숫자 8값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며, 이스라엘에서는 새로운 농사가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불’의 뜻은 비, 소나기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번 달에 노아 홍수사건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번 달부터 이른 비가 내리기 시작하며, 밀을 심기 위하여 밭갈이가 시작됩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건조한 기후이며, 땅들은 굳어 있고 메말라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이른 비를 달라고 간구하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이른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이스라엘의 모든 땅들은 부드러워지기 시작합니다.
(1)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는 어떻게 하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을 수 있을까요?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이는 육신의 종 노릇하는 나를 예슈아의 십자가에 죽인자로 여기며 살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삶을 교정해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즉,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그러나 굳은 마음을 소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No’부터 말하며, 본인의 생각을 먼저 주장합니다. 반대로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Yes’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과 연합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습니다.
Ⅲ. 하나님께서 이 번달 쓰시는 지파 : 므낫세 지파의 달
<단락 1> 1. 창 41:51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므낫세의 뜻은 <잊어버리다, 뛰어넘다>입니다. 어떤 이는 어려움과 힘듬이 왔을 때, 자신의 방법과 능력으로 잊어버리고, 뛰어넘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능력이 강해지면, 하나님의 생각과 능력은 약해집니다. 모든 사람은 한계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한계 (유한한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실 기회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파의 기름부으심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대가 지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자기를 부인하는 삶은 엄청나게 힘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을 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을 부인할수록,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찬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샬라임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삶의 중요한 순가마다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주십니다.
Ⅳ. 성경에 나오는 이번 달 사건들
<단락 1> 1. 창 7:11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민간력 2월 = 성서력 8월)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12.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창세기 1장부터 출애굽기 12장을 민간력으로 쓰여 졌으며, 출애굽기 13장 이후부터 유월절 사건 이후부터 성서력으로 쓰여 졌습니다. 노아의 홍수 사건 당시 온 세상은 침례탕 (히 : 미크바)과 같았습니다. 홍수의 물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모든 옛 사람과 자아가 죽고, 홍수를 통과한 이들은 새 사람으로 탄생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침례탕 (히 : 미크바)의 뜻은 무덤에 들어가는 것, 어머니 자궁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옛 사람, 옛 자아는 예슈아의 무덤에서 죽고,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새 사람이 탄생하는 것을 의미 합니다 (롬 6:3-4).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노아에게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주십니다.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된 노아는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방주를 만들며, 예행연습 (리허설)을 하게 됩니다.
1) 마 24: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지막 때 예슈아가 재림하실 때, 노아의 홍수처럼 일곱 대접 심판이 시작됩니다. 그 때 의인들이 먼저 예슈아께로 휴거 당할 것이며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방주에 올라탐), 이 땅에는 진노의 심판이 쏟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의 홍수가 끝나고 새롭게 재창조된 땅에 노아와 그의 식구들이 다시 내려온 것처럼, 휴거 당한 예슈아의 신부들은 예슈아와 함께 이 땅 예루샬라임으로 다시 내려올 것입니다. 이처럼 악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홍수에 휩쓸려 갔지만,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 (의인들)은 땅을 기업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1) 마 24: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끝난 이후에 예슈아께서 자신의 구원자이며, 열방의 왕이라는 그제서야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회개할 시간은 지나갔습니다. 즉, 회개는 제한되어진 이 땅에서의 시간을 통해서만이 하는 것입니다. 물론 회개하며, 심판의 과정을 통과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심판 이후에 시작 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견딜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구원을 믿음으로 받는다고 해서 의 (말씀에 순종)를 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노아 홍수 사건은 마지막 때 구원과 심판 가운데 반복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이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지만, 결국 구원받은 자는 소수가 될 것입니다.
2) 슥 1:1 다리오 왕 제이년 여덟째 달 (히 : 헤쉬반) 에 여호와의 말씀이 ...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이번 달 스가랴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계시를 받게 됩니다. 스가랴서의 핵심은 예슈아께서 예루샬라임의 왕으로 거하시기 위해 다시 오시며, 적그리스도를 물리치시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열방의 나라과 왕들의 이름은 없어지고, 한 나라의 이름 이스라엘 안으로 정렬될 것이며, 열방의 왕이신 예슈아께서 통치하시고 다스리실 것입니다 (슥 8:2-3, 렘 3:17). 즉, 마지막 때 예루샬라임은 모든 열방 앞에 하나님 나라가 펼쳐지는 무대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루샬라임을 사랑하지만, 사단은 예루샬라임을 미워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부로, 하나님의 군사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어질 때까지 예루샬라임을 사랑하며 (시 122:6), 예루샬라임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사 62:6). 그 이유는 하나님은 성경에 계시된 당신의 뜻을 성취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계시며, 이는 변경될 수 없습니다. 즉, 창세전부터 계획해 놓으신 인류 구속의 계획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예슈아는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안락한 삶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슈아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16:24). 십자가는 강요되는 것보다는 기꺼이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자기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다보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 매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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